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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안개 속으로-6

오늘의 쉼터 2015. 3. 26. 16:57

(128)안개 속으로-6

 

 

 

 

그날 밤 용준과 술을 잔뜩 마시고는 아침에 눈을 뜨니 처음 와보는 곳이었다.

 

용준도 술이 떡이 되어 잠들어 있었다.

 

다행히 둘 다 옷을 입은 상태였다.

 

자세히 살펴보니 용준의 원룸 오피스텔인 것 같았다.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그저 정신줄을 놓고 폭음을 했다. 용준도 마찬가지였다.

 

유미는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 한 잔 마시고 용준의 집을 나왔다.

 

마취에서 덜 깬 듯 정신이 멍했다.

 

휴대폰을 들여다보니 오전 9시12분이었다.

나중에 용준에게서 들으니 어떤 여자가 몸을 흔들어 깨우기에 유미인 줄 알았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지완이었다고 했다.

 

유미의 얼굴이 지완으로 보여서 아직도 취했구나 하고 계속 잤다고 했다.

 

완전히 깬 것은 오후 1시가 넘은 시간이라고 했다. 큰일 날 뻔했다.

 

일찍 나오길 정말 잘 했다.

 

만약 유미가 용준의 집에서 널브러져 자고 있었을 때 지완이 왔었으면

 

그 사태는 또 어떻게 감당을 하겠는가.

 

그렇게 생각하니 유미의 인간관계는 한 다리 걸러 안 걸리는 데가 없었다.

 

저인망 그물처럼 주변에 얼쩡거리는 남자들을 모두 싹쓸이하는 꼴이라니.

 

지완의 남편과 애인도 모두 유미의 그물에 걸린 물고기나 다름없다.

 

따지고 보면 우정의 위대함을 찬양한 지완에게 가장 못할 짓을 하게 된 셈이다.

 

우정은 위대하지만, 남자들이 유미에게는 우정보다 애정을 주는 탓에

 

이런 사단이 생기는 것이라고 유미는 생각한다.

인규에게서는 이틀째 연락이 없었다.

 

인규는 가게에도 나가지 않은 게 분명했다.

 

휴대폰을 놔두고 갔다니 연락할 방법도 없었다.

 

지완에게 전화를 해보니 집으로든 지완의 휴대폰으로든 전혀 연락이 오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어디로 간 것일까.

새 주가 시작되는 월요일 아침.

 

유미는 마음이 찜찜했다.

 

윤 이사에게 전화를 해 보았다.

 

다행히 전화가 연결되었다.

 

“주말 잘 지냈어요?”

“잘 지냈지. 유미씨는?”

“즐겁게 보내지 못했어요.”

“왜 차가 마음에 드는 게 없어요?”

“아뇨. 차를 고를 마음이 아니었어요. 그냥 좀 우울해서….”

“무슨 일일까?”

윤동진이 알 리가 없지 않은가.

“차는 좀 있다가 골라도 되죠?”

“그야 그렇지만… 김빠지기 전에 고르는 게 좋지.

 

참! 차 얘기가 나왔으니까 말인데 그날 내 차 타이어에 펑크가 났어.”

“어머! 그래요? 큰일 날 뻔했네요.”

“뭐 다행히 빨리 알아차리고 조치를 해서 별일은 없었어.”

“왜 그런 일이….”

“글쎄… 그리고 좀 이상한 기분이 들긴 했어.

 

아파트 현관을 나오는데 어디선가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던데,

 

그게 꼭 나를 찍는 거 같은 느낌이 들더란 말이지.

 

내가 파파라치가 붙는 유명 연예인도 아닌데.

 

그 시간에 유미씨 아파트 앞에서 그런 걸 문제 삼는 게 우습다 싶어 그냥 덮어뒀지.”

인규의 짓일까? 인규가 그를 기다렸다가 어린애처럼 그런 짓을 한 걸까?

 

그러나 적어도 인규가 그렇게 유치한 짓을 할 위인은 아니라고 유미는 짐작한다.

 

하지만 모르는 일. 사람은 누구나 유치, 아니 야비해질 수 있다.

 

특히 남자는. 질투로 상처 받은 남자는 여자보다 더 은밀하게 유치할 수 있다.

그러나 더 이상한 일은 오후에야 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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