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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6)안개 속으로-4

오늘의 쉼터 2015. 3. 26. 16:54

(126)안개 속으로-4

 

 

 

 

 

윤동진이 돌아가고 난 뒤 유미는 그가 두고 간 자동차 브로슈어를 뒤적였다.

 

지완이 선물로 명품 백을 받은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선물로는 사실 너무 부담스럽다. 어찌해야 좋을까.

 

그렇다고 똥인지 된장인지 모르고 꿀꺽 받기만 해서야….

 

유미가 타는 자동차는 7년이 넘었다.

 

그것에 비하면 그가 권하는 차종들은 최신형 고급사양 수입제품들이었다.

 

갑자기 차가 바뀌면 인규나 다른 사람들이 빤하게 눈치를 채지 않을까.

 

속물이라고 손가락질하겠지.

그러다 졸려서 양치와 세수를 하려고 화장실로 향하는데 웬 포장된 와인이 보였다.

 

봉투를 보니 인규의 가게 로고가 찍혀 있다.

 

아까 동진과 안고 있을 때 무슨 소리를 들은 거 같기도 했는데,

 

그때 인규가 다녀갔단 말인가? 그렇다면 이를 어쩌나!

 

유미의 가슴에서 큰 돌덩이가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혹시 두 사람이 얽혀 있는 걸 본 건 아닐까?

인규에게 문자라도 보내볼까?

 

그러나 유미는 고개를 흔들었다.

 

긁어 부스럼이 될 거 같았다.

 

대신에 윤동진에게 문자를 보내봤다.

‘별일 없어요? 잘 가고 있죠?’

그러나 그에게서는 답이 없었다.

 

그는 10시 이후로는 보통 휴대폰을 꺼놓았다.

 

이미 열두시가 넘었다.

 

잠이 올 거 같지 않아서 위스키나 한잔 마시려고 할 때 문자수신음이 들렸다.

 

이 시각에 누가?

‘자니?’

뜻밖에도 지완이었다.

 

용준과 행복한 밤을 보냈을 지완이 이 시간에 자랑을 늘어놓고 싶은 걸까?

 

그렇다면 그걸 들어줄 기분은 아닌데….

 

유미는 자고 있는 척 무시하려다가 생각을 바꿨다.

 

야심한 시각에 연락 없이 인규가 유미의 집을 방문하는 일은 거의 없다.

 

물론 인규가 유미의 현관문 비밀번호를 알고 있는 유일한 남자라 할지라도.

 

아마도 그의 집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 게 아닐까?

‘아니.’

문자를 보내자마자 지완이 바로 전화를 해왔다.

“미안해. 마음이 불안해서…. 큰일났다.”

지완이 불안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 걸린 거 같아.”

“무슨 소리야?”

“오늘 따라 남편이 일찍 집에 와 있지 뭐니?

 

자고 있더라고. 그래서 얼른 씻고 잘 생각이었는데 씻고 나오니까 없어졌어.”

“그런데 뭐가 걸렸다는 거야?”

“오늘 용준이가 가방을 선물했잖아.

 

그 안에 걔가 쓴 사랑의 카드가 들어 있었는데 남편이 그걸 본 거 같아. 감이 확실해.”

그런 일이 있었구나.

“너한테 아무 말도 없이 밤중에 그냥 나갔단 말이지.”

“응. 너무 걱정돼서 죽겠어. 이 시각에 사고나 나면 어쩌나 해서.”

“전화라도 해보지 그러니.”

“휴대폰도 두고 나갔더라고.

 

혹시라도 휴대폰으로 다른 데서라도 연락이 올까 하고 그이 폰 들고 있어.”

그러고 보니 유미가 좀 전에 인규에게 전화를 하지 않았던 건 정말 잘한 일이다.

 

그 시각에 유미가 인규에게 전화하는 것이 지완으로서는 도무지 납득되지 않을 일이니까.

 

유미는 인규의 상황이 어떤지 이해가 되었다.

 

지금 이 시각, 인규의 마음이 받은 상처를 헤아릴 수 있을 거 같았다.

 

지완은 계속 뭐라고 걱정을 쏟아냈지만, 유미는 제 코가 석자였다.

 

다혈질인 인규가 지완에게나 유미에게나 아무 말이나 액션 없이 사라진 것은

 

그가 감당 못할 충격을 받았다는 방증일 것이다.

 

정신이 돌아와 욱하는 성격으로 다시 돌아온다면 어떤 일을 저지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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