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5)안개 속으로-3
“세단형이 좋을까? SUV가 좋을까?”
“그러니까… 난 당신 기사니까 이사님 좋을 대로 해요.
남자들은 차를 여자 고르듯 하잖아.”
“오유미 같은 걸로 사고 싶어.
잘 빠진 걸로 치면 유미씨는 세단형이지만 성격은 뭐랄까,
SUV처럼 강하고 화끈하기도 하지.”
“왜 나를 그렇게 보지? 내가 얼마나 연약하고 섬세하고 여성적인데.”
“그래, 한마디로 외유내강이지.
나도 엔진은 강하고 모양은 아름다운 차가 좋아.
하지만 차는 타봐야 알지. 그런 의미에서 잠깐 시승해봐도 될까?”
윤동진이 싱긋 웃었다.
유미가 말없이 고개를 까딱이며 윤동진의 손을 침실로 잡아끌었다.
“시동만 켰다 끄는 건 아니죠?”
“느낌이 좋으면 고속도로를 달릴 수도 있지.”
“그래, 마음껏 운전해봐요.”
동진이 유미의 위에 올라가서 자세를 잡았다.
손길이 닿을 때마다 금방 달아오른 엔진이 기분 좋은 소리를 냈다.
유미는 동진의 손길에 온몸을 맡기고 착 감기는 감창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여자의 기쁜 신음소리에 기운을 얻은 남자는 힘이 막 솟는다.
유미는 동진과 몸을 합칠 때면 더욱 더 그가 자신감과 남자다움을 느끼도록 신경을 쓴다.
지금은 섬세하기 그지없는 여성스러운 몸짓과 교성으로 동진을 흥분시키고 있다.
그 시각에 인규는 휴대폰을 집에 두고 왔다는 사실을 알고는 잠시 차 안에서 망설였다.
그냥 돌아가자니 지완에게 상처 받은 마음이 너무도 쓸쓸했다.
와인 잔을 기울이며 유미에게 위로 받고 잠들면 그나마 덜 힘들 것 같았다.
유미의 아파트 현관 디지털키의 비밀번호를 인규는 알고 있었다.
어쩌면 유미가 없을 수도 있고 혹시 다른 남자와 함께 있을 수도 있지 않은가.
그러나 그대로 돌아가기에는 인규의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폭설 내리던 밤의 따스했던 온기가 다시 그리웠다.
일단 번호를 누르고 살짝 들어가 보자.
인규는 결심을 하고 차 트렁크에 있던 와인이 두 병 든 봉투를 들고 유미의 아파트로 향했다.
비밀번호를 누르자 문이 찰칵 하고 열렸다.
거실에 불은 켜져 있으나 유미는 보이지 않았다.
유미의 이름을 부르려다가 현관에서 남자 구두를 보았다.
인규는 돌아서서 도망치고 싶었다.
그러나 마음 한편으로는 어떤 놈인지 보고 싶었다.
그때 침실 쪽에서 요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으으음, 차 좋은데! 승차감도 좋고 잘 나간다.”
“액셀을 더 밟아. 아아, 그래 좋아.”
도대체 뭘 하고 있는 거야?
컴퓨터 게임의 자동차 경주 시뮬레이션을 하고 있나?
하지만 두 남녀의 헐떡임은 더욱 고조되었다.
불 켜진 거실 소파에는 자동차 브로슈어가 흩어져 있었다.
인규는 어금니를 꾹 깨물고 침실의 열린 문틈으로 살짝 들여다보았다.
밑에 깔린 유미는 눈을 감은 채로 입을 벌리고 고통과 환희가 뒤섞인 표정으로
신음소리를 내고 있었다.
유미의 위에 올라 탄 남자는 역삼각형의 군살 없는 등판만 보일 뿐 얼굴을 볼 수 없었다.
인규는 현장을 정신없이 뛰쳐나왔다.
아아, 처용의 심정이 이럴까?
가랑이가 넷인 현장을 보다니.
게다가 지완의 현장도 안 봐도 불 보듯 뻔하니 이건 따따블의 고통이다.
인규는 차에 타고 핸들에 머리를 박았다.
차를 몰고 고속도로로 나가 분리대를 들이받고 죽어버리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그렇지 않다면 처용처럼 춤을 춰야 한단 말인가.
차라리 이 순간, 정신줄을 놓고 싶었다.
'소설방 > 유혹' 카테고리의 다른 글
(127)안개 속으로-5 (0) | 2015.03.26 |
---|---|
(126)안개 속으로-4 (0) | 2015.03.26 |
(124)안개 속으로-2 (0) | 2015.03.26 |
(123) 안개 속으로-1 (0) | 2015.03.01 |
(122) 껌 같은 사랑-16 (0) | 2015.03.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