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M.AURELIUS 暝想錄

<2>장 카르눈툼에서

오늘의 쉼터 2015. 2. 10. 10:52

<2>장  카르눈툼에서


1. 아침에 일어나면 우선 당신 자신에게 타일러라.

 

나는 남의 일에 참견하기 좋아하는 사람. 은혜를 모르는 사람. 건방진 사람.

사기꾼. 시기심이 많은 사람. 비사회적인 사람을 만나게 될 것이라고----

그들은 선과 약이 무엇인지를 모르기 때문에 이와 같이 된 것이다.

그르나 나는 선의 본질은 아름답고 악의 본질은 추하며 . 잘못을 저지르는 사람의 본성도.

단지 같은 피와 같은 근원에 속하기 때문이아니라 같은 이성과 같은 신성(神性)의 일부를

분유하고 있으므로 나와 동류라는 것을 알고 있고 따라서 나는 그러한 사람들로부터

해를 입지 않는다.

아무도 나를 추악한 일에 끌어들일 수 없고 또한 나는 나의 동류에게 화를 내거나

그들을 미워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 인간들은 발처럼. 손처럼. 눈까풀처럼. 윗이와 아랫이처럼. 협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따라서 서로 불리한 행동을 하는 것은 자연에 어긋나는 것이다.

상호간에 불리한 행동이란 화를 내고 외면하는 일이다.

 

 

 

2. 내가 어떠한 자에게든 간에. 조그마한 육체와 호흡(생명).

그리고 지배적 부분(이성)에 지나지 않는다.

 

책을 버려라.

마음을 산란하게 만들지 말아라.

이런 일은 허용될 수 없다.

그르나 마치 임종의 자리에 있는 것처럼 육신을 경멸하라.

육신은 피. 뼈.망상조직. 정맥과 동맥에 지나지 않는다.

또한 호흡도. 그것이 어떠한 것인가를 살펴보면 공기에 지나지 않고 게다가 항상 동일하지 않고

언제나 뱉아내고 빨아들이는 것이다.

그런데 세번째는 지배적 부분이다.

다음과 같이 생각하라.

- 당신은 이미 노인이다.

이 부분을 노예로 만들지 말고 비사회적인 운동을 위해 꼭두각시처럼 조중당하지 말고

현제의 운명에 불만을 품거나 미래에 대해 위축되지 말라.

 

 

 

3. 신이 만든 만물은 섭리로 가득차 있다.

 

운명 때문에 일어나는 일도 자연으로부터 분리되어 있지 않으며

또한 섭리가 다스리는 사물과 얽혀지고 뒤엉켜 있다.

만물은 섭리로부터 나온다.

그리고 그 밖에도 필연이 있으며 그것은 당신 자신도 그 일부분인 전 우주의 이익이 되는 것이다.

전체의 본성을 드러내는 것.

그리고 이러한 본성을 유지하는 데 이바지 하는 것은 자연의 모든 부분에 대해 선한 것이다.

그런데 우주는 원소의 변화에 의해서 유지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원소의 합성물의 변화에 의해서

보존된다.

이러한 원리에 만족하고 언제나 이를 당신의 확고한 신념으로 삼아라.

그러나 불평을 하면서 죽지 않고 유쾌하고 참되게 그리고 충심으로부터 신들에게 감사하면서

죽으려면 책에 대한 갈망을 버려라.

 

 

 

4. 당신은 얼마나 오랫동안 이러한 일들을 지체해 왔는가.

 

그리고 얼마나 자주 신들로부터 기회가 주어젔는데도 이러한 기회를 활용하지 못했는가를 상기하라

결국 이제는 당신 자신도 그 일부분인 우주가 무엇이며 당신의 문제는 그 한 방울의 유출물에 지나지

않는 우주의 지배자가 누구인가를 알게 되고 당신에게 허용된 시간은 한정되어 있으며 당신의 마음을

가리고 있는 구름을 몰아내는 데 이 시간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시간은 흘러가고 당신도 사라져 버리며.

두 번 다시 되돌아 올 수 없다는 것을 깨닫지 않을 수 없다.

 

 

 

5. 언제나 로마인으로서,

 

그리고 남자로서 해야할 일은 완전하고 단순한 품위와 애정과 자유와 정의를 갖고 행하고.

다른 모든 생각을 버리고 당신 자신에게 휴식을 주어야 한다는 것을 확고하게 고려하라.

그리고 마치 최후의 순간인 것처럼 모든 경솔한 짓. 이성의 명령에 어긋나는 격정적인

일탈. 위선. 이기심. 주어진 운명에 대한 불만으로부터 해방되어 일상생활의 모든 행동을 한다면

당신은 당신 자신에게 휴식을 줄 수 있다.

당신은 조용히 흘러가는 신의 존제와도 같은 생활을 하기 위해서 인간이 극복해야 할 일이

얼마나 적은가를 알고 있지 않는가.

신은 이러한 일들을 준수하는 사람들에게는 그 이상의 일을 요구하지 않기 때문이다.

 

 

 

6. 나의 영혼이여.

 

그대 자신을 학대하라. 그대 자신을 학대하라.

그러나 그대 자신을 찬양할 기회는 다시는 갖지 못할 것이다.

모든 사람의 생에는 그것으로 충분하다.

그러나 당신의 영혼이 자기 자신을 존중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영혼에 당신의 행복을 맡겨 놓았다

하드라도 당신의 생에는 거의 막을 내리려고 한다.

 

 

 

7. 당신에게 닥쳐오는 외부의 일이 당신의 마음을 어지럽히는가?

 

새롭고 좋은 다른 일을 배울 시간을 갖고 공연히 우왕좌왕하지 말라.

그르나 이때 당신은 반드시 다른 잘못도 회피하지 않으면 안 된다.

활동으로 말미암아 삶에 지치고 그러면서도 그때 그때의 목적.

요컨데 모든 상념의 목적이 없는 자는 역시 어리석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8. 다른 사람의 마음 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모른다고 해서

불행하다고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르나 자기 자신의 마음의 움직임을 모르는 자는 반드시 불행해질 것이다.

 

 

 

9. 만유의 본성은 무엇인가. 나의 본성은 무엇인가.

 

나의 본성은 만유의 본성과 어떠한 관계를 갖고 있는가.

그리고 나의 본성은 어떤 종류의 본성의 부분을 이루고 있는가.----

이러한 점을 항상 명심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당신이 그 한 부분을 이루고 있는 본성에 따라 항상 행하고 말하는 것을

방해하는 자는 하나도 없다.

 

 


10. 테오프라스토스는 악한 행동을 비교하면서---

 

인간의 상식에 따라 누구나 할 수 있는 비교이지만 ---

참된 철학자답게 욕망 때문에 저지른 과오보다 더 많은 비난을 받아야 한다고 말한다.

분노로 말미암아 흥분한 사람은 일정한 고통과 무의식적인 가책을 받으면서

이성에 어긋나는 짓을 하지만 욕망 때문에 잘못을 저지르는 사람은 쾌락에 압도 되어

그 과오에 있어서 더욱 나약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쾌락이 따르는 잘못은 고통이 따르는 쾌락보다 더 많은 비난을 받아야 한다는

그의 말은 정당하고 어느 면에서는 철학적인 타당성을 갖고 있다.

그리고 전체적으로 말한다면

후자는 우선 괴롭힘을 받고 고통 때문에 분노 하는 사람과 흡사하고

전자는 자신의 충동에 따라 부정한 것을 하려고 하며 욕망 때문에 어떤 행동을 하려고 하는 것이다.

 

 

 

11. 바로 이 순간에 이 세상을 하직하는 사람처럼 모든 일을 행하고 생각하라.

 

그르나 신들이 존재한다면 사람들 곁에서 떠나는 것을 조금도 두려워 할 일이 아니다.

신들은 당신을 악 속으로 끌어 들이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르나 만일 사실상 신들이 존재하지 않거나 인간의 일에 관심이 없다면.

신이 없거나 섭리가 없는 우주에 산다는 것은 나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일까?

그르나 진실로 신들은 존재하고 인간의 일들을 돌보며 인간이 사실상의 악에 빠지지 않도록

인간의 능력 속에 모든 수단을 마련해 주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밖에 어떤 다른 악이 있다면 이에 대해서도 신들은 이러한 일에 빠지지 않는

능력을 인간에게 마련해 주실 것이다.

그른데 인간을 나쁘게 만들지 않는 것이 어떻게 인간의 삶을 나쁘게 만들 수 있는가?

만유의 본성이 무지 때문에 이러한 악들을 간과한다는 일은 불가능 하며 알고 있으면서도

이러한 악을 막아내거나 바로잡을 힘이 없어서 간과한다는 것도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또한 무력하고 재주가 없기 때문에 만유의 본성이 선과 악을 선인과 악인을 가리지 않고

무분별하게 일어킨다는 것도 불가능하다.

그르나 분명히 죽음과 삶. 영광과 불명예. 고통과 쾌락. 이러한 모든 것은 우리를 더 훌륭하게

또는 더 나쁘게도 만들지 못하는 것이기 때문에 선인과 악인에게 동등하게 일어난다.

따라서 이러한 것들은 선도 악도 아니다.

 

 

 

12. 우주에 있어서는 사물 자체가. 시간에 있어서는 이 사물들에 대한 기억이

얼마나 재빨리 사라져버리는가.

 

모든 감각적 사물의 본성. 특히 쾌락적 미끼로 유혹하거나 고통에 의해 위협하거나.

허망한 명성으로 떠들석한 것들은 얼마나 보잘 것 없으며 비열하며 더럽고 덧 없으며.

메말랐는가.-----

이러한 모든 일을 깨닫는 것이 이성의 기능의 한 부분인 것이다.

의견이나 발언을 통해 명성을 얻는 자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죽음은 무엇인가.

그리고 인간이 죽음 자체만을 보고 반성이라는 추상적인 능력에 의해 죽음과 관련되어

연상되는 모든 것을 분리해 버린다면 죽음은 자연의 작용 이외의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게 되고. 

자연의 작용을 두려워하는 것은 어린애같은 것이며 죽음은 죽음은 자연의 작용의 뿐아니라

자연의 목적에 이바지함을 깨닫는 것.

또한 인간은 어떻게 신성(神性)에 접근하는가.인간의 어떤 부분에 의해서인가.

그리고 인간의 이러한 부분이 어떠한 상태에 놓였을 때인가를 가려내는 것이 이성의 기능이다.

 

 

 

13. 만물을 두루 살피고. 어떤 시인의 말처럼 지하의 일을 기웃거리는 사람.

 

인간의 마음 속에 있는 신령(이성)을 섬기고 진정으로 공경하면 충분하다는 것을 모르고

공연히 이웃사람의 마음 속에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

추측하는 사람보다  더 불행한 사람은 없다.

그리고 신령을 공경하려면 정념.무분별. 그리고 신과 인간이 하는 일에 대한 불평불만을

삼가하고 순수성을 유지하면 된다.

신이 하는 일은 그 탁월성 때문에 존중해야 하고 인간이 하는 일은 동류가 하는 일이기 때문에

환영해야 한다.

물론 때로는 어떤 점에서 인간이 하는 일은 선. 악에 대한 인간의 무지로 말미암아 가련히 여겨야

할 경우도 있다.

이러한 결함은 흑백을 가리는 능력을 빼앗긴 경우에 못지 않는 것이다.

 

 

 

14. 당신이 3천년을 산다 하드라도. 아니 3만년을 산다 하드라도 지금 살고 있는 삶

이외의 다른 삶을 잃거나. 지금 잃는 삶 이외의 다른 삶을 사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명심하라.

 

따라서 가장 길거나 가장 짧거나 마찬가지이다.

소멸되는 것은 마찬가지가 아니라 하드라도 현제는 만인에게 도일한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소멸되는 것은 단지 한 순간에 지나지 않는다.

인간은 과거나 미래를 상심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인간이 지금 갖고 있지 않는 것을 어떻게 빼앗아 갈 수 있을 것인가.

따라서 다음의 두 가지 일을 명심해야 한다.

첫째는 만물은 영원한 옛날로부터 동일한 형태를 갖고 순환하고 있으며

따라서 인간이  동일한 사물을 백년 동안 또는 2백년 동안.

아니 영원히 본다하드라도 아무런 차이도 없으며.

둘째는 가장 장수한 사람도. 태어나자 죽는 사람도 상심하는 것은 동일하다는 사실을.

현제만이 인간이 갖고있는 유일한 것이며 깆고있지 않는 것을 상상할 수 없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현제는 인간이 빼앗길 수 있는 유일한 것이기 때문이다.

 

 

 

15. 모든것은 의견에 지나지 않음을 명심하라.

 

견류 학파의 모니도스가 말한 것은 명백하기 때문이다.

또한 사람들이 이 말이 진실한 한해서만 이 말을 받아들인다면

이말이 유용하다는 것도 명백하다.

 

 

 

16. 인간의 영혼은 무엇보다도 그것이 종기가 되고.

말하자면 가능한  한 우주에 생긴 종양이 될 때 영혼 자신을 괴롭힌다.

 

첫째로 생기하는 것에 괴로움을 느끼는 것은 모든 다른 것의 본성을 그 한 부분으로 포함하고 있는

자연으로 부터 분리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로 영혼이 어떤사람을 외면하거나 분노한 사람의 영혼처럼 헤칠 뜻을 갖고 대결할 때.

영혼은 자기 자신을 괴롭힌다.

세째는 영혼이 쾌락이나 고통에 압도되었을 때 영혼은 자기 자신을 괴롭힌다.

네째로 영혼이 진지하지도 참되지도 못한 일을 행하거나 말하는 데 가담했을 때. 

다섯째로 영혼이 목적없는 행동이나 움직임을 허용하고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목적과의 관련 밑에서 행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무분별하게 그것이 어떤 일인가를

고려함이 없이 무슨 일을 했을 때.

그것데 이성적 동물의 목적을 가장 오래된 도시와 정체의 이법과 법칙을 지키는 것이다.

 

 

 

17. 인간의 삶에 있어서 시간은 점(點)이고 실체는 유동하는 것이며.

지각(知覺)은 혼탁하고 육체 전체의 구성은 부패하며 영혼은 회오리바람이고.

운명은 예측하기 어럽고 명성은 불확실한 것이다.

 

그리고 한 마디로 요약해서 말한다면 육체에 속하는 것은 모두 흐르는 물과 같고

영혼에 속하는 것은 꿈이요 연기이며 삶은 전쟁이고 나그네의 일시적 체류이며

후세의 명성은 망각이다.

그렇다면 인간을 인도하는 것은 무엇인가?

한 가지 철학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인간의 마음속에 신령을 모독하지 않고 상처내지 않으며 고통과 쾌락을 초월하고

목적 없이는 어떤 일도 하지 않고또한 허위나 위선을 멀리하고 다른 사람이 어떤 행동을 하거나

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없을 때. 또한 일어나는 모든 일. 할당된 모든 일을.

그 곳이 어디든 간에 자기 자신이 온 곳으로부터 일어나는 일로써받아들일 때.

끝으로 죽음을 모든 생물을 구성하는 원소의 분해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고.

즐거운 마음으로 죽음을 기다릴 때 철학이 가능하다.

그런데 끊임없이 다른 것으로 변화하는 원소 자체가 악이 아니라면.

왜 인간은 모든 원소의 변화와분해를 염려해야 할 것인가?

죽음은 자연에 따라 일어나는 일이며 자연에 따라 일어나는 일에는 악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 카르눈툼에서 씀 -

 

칼눈툼 : 다뉴브강 남쪽에 있는 판노니아의 한 고을,

야만족과의 싸움으로 이곳에서 3 년 동안 머물렀다고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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