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장 수난기 4
강 실장이 사장이 되면 가장 안정적인 부서가 개발1부와 개발2부라는 중론이 모아졌다.
감원을 하기 보다 사람이 더 추가될 게 분명하다고들 떠들었다.
그렇게 믿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럼 우린 계속 회사를 다닐 수 있다 이거죠?”
약간 혀가 꼬부라진 화련이 생맥주 잔을 들며 물었다.
병달의 소원(?)대로 회식 자리가 마련되었다.
강 실장이 건넨 돈을 도로 되돌려 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봉수는 퇴근하기 전 진국에게 오늘 일어난 일을 적어 메일로 보냈다.
그러자 진국 역시 놀랬다며 바로 답장을 보내왔다.
“화련씨 믿으라니까요.
이젠 중국 시장을 무시하곤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세상이 된 겁니다.
머잖아 중국이 경제대국으로 부상한다는 건 기정 사실이에요.
아마 일본이나 미국을 조만간에 능가할 겁니다.”
“그런 사람이 왜 하는 일마다 훼방을 놨을까?
우리가 토요일 하루 전원 월차 좀 내겠다고 했을 때도 싸늘하게 굴던 사람이었잖아.”
“그거하고 이거하곤 다르죠.
그건 그야말로 놀겠다는 거고. 이건 수고했으니
술 한잔하라는 건데 전혀 다른 성질의 이야기죠.”
병달은 안주로 나온 미트볼을 열심히 입안에 우겨 넣으며 말했다.
아무리 술을 많이 먹어도 다음 날 늘 쌩쌩한 얼굴로 나타나는 병달의 비결은 안주발이었다.
“이거 생각보다 맛있네요.”
병달은 더 이상 강 실장의 태도에 관심이 없는 듯했다.
하긴 걱정하고 염려한다고 해서 달라질 것도 없었다.
봉수는 병달의 머리를 가볍게 쥐어박고 화장실로 향했다.
막 화장실로 들어서려던 봉수는 입구에서 딱 멈춰 섰다.
매우 낯익은 여자가 봉수를 쳐다보며 고개를 갸우뚱거린 때문이었다.
“호, 혹시 코지에 다니시는…”
“네, 맞는데 누구신지…”
여자는 하늘거리는 푸른색 치마에 물결무늬 블라우스를 입고 있었다.
머리는 등까지 길었는데 웨이브가 자연스러워 매우 세련돼 보였다.
나이가 짐작이 가지 않았다.
“맞구나. 우리 바깥 사람이 강 실장이에요.”
봉수는 그제야 그녀의 얼굴이 생각났다.
다음 순간 봉수는 얼굴이 달아올랐다.
2년쯤 전에 그녀의 얼굴만 본 게 아니었다.
봉수 앞에 알몸으로 서 있던 그녀였다.
“회사 동료들하고 오신 모양이네요?”
그녀가 홀 쪽을 둘러보며 물었다.
“네. 사모님께선…”
“저는 갤러리 식구들하고 왔어요.”
그제야 강 실장의 부인이 큐레이터였다는 게 생각났다.
봉수는 화장실로 들어가지도 못하고 나가지도 못한 채 그녀가 자기 자리로 돌아가기만 기다렸다.
“얼마 전에 말이에요, 우연히 박봉수씨 특선 탄 그림을 보게 됐습니다.”
봉수의 눈이 커졌다.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지?
“대학 때 특선 받은 적 있죠?”
“있긴 있지만…”
“여자의 향기라는 그림 말이에요.
정말 좋았어요.
실은 우리 갤러리에서 신인 작가들 발굴하기 위해 예전에 열렸던 전시회나
미술전 카다로그 검토를 하다가 설마 했는데 우리 그이한테 물어보니까 동일인이라고 하대요.”
그제야 봉수는 그녀의 관심이 이해되었다.
“실은 여인의 향기와 같은 누드를 그릴 줄 아는 사람을 필요로 하고 있거든요.”
봉수는 팀원들에게 양해를 구했다.
병달이 눈을 부라리며 강 실장 부인이 앉아 있는 자리를 훔쳐보았다.
봉수는 누구보다 애란의 시선이 염려스러웠다.
“정말 강 실장 마누라란 말야? 보통 세련된 여자가 아닌데.”
병달의 눈이 반짝였다.
“정말이야.”
“강 실장은 무슨 복이 있어서 저런 마누라까지.”
병달은 눈을 뗄 줄 몰랐다.
“사람 민망하게 그렇게 쳐다보면 어떡하냐?”
봉수가 병달의 얼굴을 잡아 돌렸다.
“미인은 미인이네요.”
화련이 입을 삐죽거렸다.
어리고 젊은 여자들은 따라올 수 없는 아름다움이 그녀에겐 있었다.
게다가 일이 주는 자유분방함이랄까,
그녀는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는 듯한 분위기를 풍겼다.
기혼녀라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처음 강 실장의 집에서 봤을 때와는 너무 다른 분위기였다.
“기다리겠어요, 얼른 가보세요.”
애란이 봉수의 등을 떠밀었다.
“금방 갔다 올게.”
봉수는 마지못해 강 실장 부인이 앉아 있는 자리로 옮겼다.
“아직 제 이름도 모르죠?”
그녀는 갤러리 식구들을 소개한 뒤 명함을 내밀었다.
“양규자예요. 정식으로 인사합니다. 잘 부탁해요.”
그녀가 손을 내밀었다.
봉수는 머뭇거리다 그녀의 손을 잡았다.
손이 적당히 차가웠다.
종류를 알 수 없는 묘한 향수 냄새가 봉수의 코와 가슴을 자극했다.
“이 분이 그때 말씀 하셨던 그 분이세요?”
마주 앉아 있던 여자가 양규자에게 물었다.
“맞아. 바로 그 누드 여인의 향기라는 그 누드 그린 분이야.”
양규자의 말에 주변 사람들이 호들갑을 떨었다.
봉수는 괜히 어깨가 으쓱거려졌다.
국전에서 특선을 받았을 때 이후론 그림으로 인해 칭찬을 받기는 처음이었다.
“그렇게 잘 그린 그림은 아닙니다.”
봉수는 겸손하게 말했다.
“겸손하기도 하시네. 그러시지 마세요. 화가는 어느 정도 자만심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양규자는 거침이 없었다. 그래서? 봉수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저는 인사 드렸으니까 제 일행이 있는 대로 가보겠습니다.”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세요. 아직 이야기는 꺼내지도 않았는데.”
양규자가 정색을 하고 일어서려던 봉수의 손을 잡아 다시 자리에 앉혔다.
그리고 그녀는 자연스럽게 봉수의 허벅지 위에 자신의 손을 올려놓았다.
테이블이 높아 마주 앉은 사람들의 눈엔 보이지 않았다.
“다름이 아니라 봉수씨 그림 그려 놓은 거 있죠? 우리 전시회 한번 해요.
뭐 회사 입장에서도 좋은 거구요.
내가 말 잘하면 회사에서 지원도 나올 거구요.”
전시회? 봉수는 가슴 저 밑바닥에서 커다란 덩어리 하나가 불쑥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그림에 미련을 버리지 못해 송화를 벗겨놓고 누드를 그리고 있지만 본격적으로
전시회를 할만한 수준이나 작품 양이 많지 않아 전시회는 꿈도 꾸지 않았다.
우선 갤러리를 빌릴 대관료조차 마련할 형편이 아니었다.
“저는 아직 전시회를 열만한 수준이 아닙니다.”
양규자의 손이 조금 더 허벅지 위로 자연스럽게 올라왔다.
봉수는 다리에 힘을 주었다.
그녀의 손을 떼어낸다는 게 더 우스웠다.
유달리 스킨십이 강한 사람들이 있는 법이라고 생각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양규자는 단호하게 말했다.
“여러분들도 그 누드 봐서 알겠죠?”
“그럼요.”
“요즘처럼 다까발리는 세상에 누드, 얼마나 순수하고 좋습니까?
그런데 박봉수씨처럼 순수한 누드를 그리는 사람이 드물어요.
충분히 좋은 반응을 얻을 겁니다.”
미리 약속이라도 한 듯 봉수를 들뜨게 만들었다.
“저는 지금 회사를 다니고 있어서 시간 내기가 사실 힘듭니다.”
“어머,그럼 투잡하시는 거죠.
요즘 어지간하면 다들 투잡이에요.
박봉수씨 투잡은 멋있잖아요.
속옷 디자이너에다가 누드화가라. 근사하잖아요.”
사람들은 계속해서 봉수를 부추겼다.
봉수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려놓은 그림 얼마나 되요?”
양규자의 얼굴이 더욱 봉수 가까이로 다가왔다.
그녀가 내뿜는 향기로 봉수는 정신이 없었다.
남자의 가슴을 간질이는, 세련되고 완전히 성숙한 여자만이 내뿜는 냄새.
그게 향수나 샴푸 혹은 비누의 냄새이기는 했지만 그 냄새는 마치 처음부터
양규자의 것인양 봉수의 다리에 힘이 빠지도록 만들었다.
“20호 사이즈가 좀 되구요.작은 사이즈도 ….”
봉수는 말을 잇지 못했다.양규자의 손이 허벅지 안쪽으로 들어온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녀는 마치 자신의 손이 봉수의 허벅지를 쓰다듬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듯했다.
“그럼 한 20여점 되겠네요?”
“쓸 만한 건 그,그 정도는 됩니다.”
“그리고 좀큰사이즈로 하나 정도 새로 작업하셔서 한점더만들고 그러면 뭐 충분하겠는데요.”
메모지를 펼쳐놓고 열심히 적던 갤러리 직원이 양규자에게 말했다.
“봉수씨 좋은 기회예요.”
양규자가 애교를 부리듯 코맹맹한 소리를 냈다.
우선 자리를 모면하려면 뭐라고 답변을 해야만 했다.
하지만 거절하기엔 너무 큰 유혹이었다.
“새, 생각해보죠.”
“생각하고 자시고 할 게 뭐 있어요. 내일 당장 우리 사무실로 오셔서 계약합시다.”
“저는 대관료 낼 돈도 없고.”
양규자는 화통하고 성질도 급한 듯했다.
달리 말하자면 그건 정열적으로 일을 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런 건염려하지 마세요. 우리가 다 알아서 하니까. 그림만 있으면 되는 겁니다.”
미대를 졸업해도 죽을 때까지 개인 전시회 한번 열지 못하고 사라져가는 화가들이
부지기수인 게 현실이었다.
그런데 좋은 조건으로 전시회를 열 수 있는 기회가 왔다.거절할 수 없었다.
“한번 해 보겠습니다.”
“브라보!”
그제야 양규자의 손이 봉수의 허벅지에서 떨어졌다.
2차까지 회식자리가 이어졌지만 봉수는 양규자의 제안을 생각하느라 전혀 술이 취하지 않았다.
다들 좋은 일이라고 축하를 해주긴 했지만 과연 가능한 일인지 의심스러웠다.
괜히 사장에게 팀원들이 휘둘렸듯 자신도 양규자에게 휘둘리는 건 아닌가 싶었다.
봉수는 자취방으로 돌아와 그 동안 그렸던 그림들을 모두 펼쳐보았다.
송화를 모델로 최근에 그려왔던 그림까지 23점은 쓸 만했다.
송화를 모델로 그린 누드는 아직 완성 전이었다.
풋풋하고 신선하지만 뭔가 빠진 듯해 완성을 못하고 있는 그림이었다.
“뭐가 부족한 걸까?”
순간 양규자의 얼굴이 떠올랐다.
완숙한 여자의 미. 송화에겐 그게 없었다.
“강 실장 마누라라면 제대로 나올텐데.”
봉수는 혼잣말을 늘어놓고 놀랬다.
아직은 확답을 한 건 아니었다.
내일 갤러리를 찾아가 못하겠다고 말할 수도 있었다.
지금은 봉수에게나 회사 그리고 팀원들에게 매우 중요한 시기였다.
욕심이 나고 미련이 남지만 지금은 때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양규자는 물러서지 않을 듯했다.
그녀가 물러설 수밖에 없는 어떤 조건을 내걸어야만 했다.
아쉽지만 몇 년 더 뒤로 미뤄야겠다고 결심하고 머리를 쥐어짰다.
“그래! 마지막 작품의 모델을 서 준다면 한다고 하자.”
봉수는 무릎을 쳤다. 한 가지 문제는 해결이 되었다.
그날 밤도 봉수는 송화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송화는 여전히 전화를 받지 않았다.
송화 문제는 어떻게 처리를 해야할 지 판단이 서질 않았다.
어떤 식으로 결론이 내려지든 일단은 만나야 무슨 이야기든 할 수 있으련만
전화 통화 자체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송화에게 한번 더 전화를 걸려고 하는데 애란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이유 없이 반가웠다.
“어쩐 일이세요?”
“그냥 잘 들어가셨나 전화 한번 해 봤어요.”
송화와 만나 헤어진 후 집에 들어왔을 때가 떠올랐다.
송화는 애란처럼 전화를 걸어온 적이 없었다.
“제 생각에는요, 봉수씨가 그 전시회 했으면 해요.”
“지금 우리한테 매우 중요한 시기잖아요.”
“남은 사람들이 조금씩 시간 만들어 드리면 되죠.”
“그러고 싶지 않습니다. 저 하나 때문에 모두가 피해를 입는 건 원하지 않아요.”
“그래도 저는 개인적으로 하셨으면 좋겠어요. 먼 미래를 위해서 말이에요.”
“언젠가는 전시회를 열겁니다. 생각해줘서 고마워요.”
애란과의 통화가 끝났다.
봉수는 냉장고를 열고 차가운 캔 맥주 하나를 꺼냈다.
언젠가 송화가 사다놓은 맥주였다.
송화라면 뭐라고 말했을까? 궁금했다.
다시 송화에게 전화를 걸었다.
역시 전화를 받지 않았다.
혹 무슨 일이 생기지 않았나 궁금했다.
그저 전화를 안 받는 거라면 더 이상 관계를 지속시킬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묘한 배신감이 들었다.
송화에게 끌려 다니는 듯한 기분은 이제 떨쳐버리고 싶었다.
전화벨이 울렸다. 휴대폰 창을 보니 발신자 표시가 없었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송화니?”
저편에선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야, 야. 너 아니냐는데, 그냥 끊어 뭐 하는 짓이니.
그리곤 남자들과 여자들이 깔깔거리고 웃음소리가 들렸다.
봉수는 전화기를 통째로 들어 벽에다 던져버렸다.
전화기가 산산조각 났다.
봉수는 인사동 입구에서 차를 세워놓고 양규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네. 경인미술관 맞은편으로 쭉 내려가면 된다 이거죠.”
차를 몰고 양규자가 가르쳐 준 길을 따라 내려갔다.
봉수는 잠깐 송화에게 전화를 걸까 망설였다.
집 전화기는 박살이 나서 송화가 만약 집으로 전화를 걸었다면 받지 못했을 터였다.
만약 그랬다면 휴대폰으로도 전화를 걸었을 텐데 송화에게선 여전히 전화가 걸려오지 않았다.
“내가 원래 이렇게 미련이 많은 놈이었나.”
봉수는 차를 주차시키며 쓴웃음을 지었다.
차 밖으로 나오자 거리는 더위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발바닥이 후끈거릴 정도였다.
봉수는 ‘갤러리 화이트’라는 이름의 찾아 두리번거렸다.
주차한 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일요일이라 그런지 날이 더워도 인사동 거리는 외국인들과 구경 나온 한국 사람들로 붐볐다.
갤러리로 들어서자 그림을 구경하는 사람들이 제법 많았다.
대학에 다니던 시절 봉수는 자주 인사동엘 나왔다.
화가의 개인전을 ‘오픈’ 하면 으레 음식을 준비해 놓고 손님들을 맞이했다.
돈 많은 집안의 화가가 개인전을 열 때는 갤러리 안에 차려진 음식이 진수성찬이었다.
그 시절 봉수는 제대로 끼니 때우기도 힘들었다.
그러니까 개인전 전시회를 보기 위해 인사동에 오는 건 그림 구경보다 배를 채우는 게
우선 목적이었던 것이다.
어느 주엔 일주일 내내 저녁을 얻어먹을 수 있었고,
못해도 일주일에 이틀은 그림 구경하며 저녁을 해결할 수 있었다.
그러다 한번은 갤러리 직원에게 핀잔을 받은 적이 있었다.
너무 자주 다니다 보니 한 갤러리 직원이 봉수를 알아본 것이었다.
“학생, 여긴 그림 전시하는 곳이지, 학생 배 채워주는 곳이 아닙니다.”
그 한마디에 봉수는 다시는 인사동을 찾지 않았다.
진국 같았다면 넉살도 떨고 자신이 미대생이라도 너스레도 떨었겠지만
자격지심 때문이었는지 봉수는 그 자리에서 도망치듯 빠져 나오고 말았다.
한번은 신수정의 뒤를 밟다가 인사동까지 온 적도 있었다.
그때 그녀는 꽤 괜찮은 외모의 남자와 사귀고 있었다.
두 사람의 연애를 지켜보며 씁쓸하게 웃던 기억도 났다.
“오셨으면 사무실로 바로 오시지 않고.”
양규자였다.
봉수는 갤러리에 걸려 있는 그림들을 보며 아픈 추억을 되짚어 보느라
양규자가 다가오는 것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이번 전시된 그림 좋죠?”
동화를 바탕으로 재해석한 그림이라는 인상이 들었다.
여우와 달이 나오고, 심지어 우스꽝스러운 호랑이도 있었다.
추상성이 강했지만 색이 강렬한데다가 소재 때문인지 친근하게 다가왔다.
봉수는 더듬더듬 자신의 생각을 양규자에게 들려주었다.
“역시 그림을 그리셨던 분이라 정확하게 꼬집어 말하시네요.”
봉수는 속으로 피식 웃었다.
조금만 관찰력이 있다면 충분히 할 수 있는 말이었기 때문이었다.
양규자는 시종일관 봉수를 들뜨게 만들었다.
“가시죠.”
갤러리 안은 추위를 느낄 정도로 시원했다.
사무실 역시 서늘했다.
봉수가 팔을 쓸자 양규자가 기다렸다는 듯 말했다.
“예술을 연구하는 데엔 추위가 최고라고 생각해요.”
엉뚱한 여자군. 하지만 봉수는 자신의 생각을 입 밖으로 내놓진 않았다.
그녀의 사무실은 온통 흰색으로 인테리어가 되어 생각보다 훨씬 넓어 보였다.
마치 그림 속에 들어와 있는 기분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