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 칼과 칼집-4
아니 부정기적인 직업은 있다.
여러 종류의 사교댄스를 섭렵한 사람이라 간간이 댄스강사를 하고 있다고 한다.
돈은 없지만 시간은 철철 넘친다.
게다가 호기심과 정력은 식을 줄 모른다.
물 좋은 여자가 있는 곳이면 꼭 나타난다.
만만한 게 인규의 와인스쿨이다.
미리 와서 공짜 밥도 챙겨먹고 식후에 비싼 와인도 시음하니 일석이조다.
시간당 10만원 꼴인 와인강좌와 음식까지 그의 행차 한 번에 출혈이 크다.
“선배, 하여간 그런 거는 칼같이 지켜.”
“나처럼 와인의 품격에 맞는 이 정도 조교를 자원봉사로 어디서 구해?”
“아, 알았어요. 식사했어요?”
“물론 아니! 고급 와인으로 혀를 호사시킬 텐데 식은 밥에 김치쪼가리 먹을 순 없잖아.
격식을 맞춰줘야지. 이 집 연어 스테이크 괜찮대.
오늘 마침 화이트와인 강의가 있는 날이잖아.”
“그래요. 저도 오늘 아직 점심도 못 먹었어요. 함께 먹어요.”
점심 식사가 오자 강은 이태리 신사처럼 우아한 손놀림으로 포크와 나이프를 움직였다.
“얼굴이 좀 안 좋아 보여. 요즘 무슨 고민이 있어?”
혈색이 도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식사를 하던 강이 부드럽게 물었다.
강선배는 고등학교 서클 선배지만 어린 시절, ‘싸부’ 같은 존재이기도 했다.
여자에 관한 한 그의 조언을 금과옥조로 삼았던 시절이 있었다.
인규는 자신의 포부와 뜻대로 안 되는 사업이야기를 했다.
“그래. 내가 지금껏 살아보니 인생사 딱 두 가지 문제로 집약돼.
돈과 섹스. 결국 지금 자네 문제는 돈이잖아.
나도 요즘 같은 딜레마에 빠져 있지.”
“선배도 무슨 사업 벌이셨어요?”
“나? 나야 평생사업이 있잖아. 연애사업. 그런데 그게 만만치 않아.”
“선배 나이도 있으시니 정력도 이젠 좀 거시기하죠….”
“그게 아냐. 그런 건 아직 아무 문제없네. 문제는… 고객이 문제야.”
“고객이 문제?”
“요즘 나이 든 여자들은 말야. 아래는 벌려줘도 돈은 절대 안줘.”
인규는 그 소리를 듣자 무릎을 쳤다.
여자에게 빌붙어 지내는 그 몰락한 카사노바의 말에 공감이 갔다.
“아, 절륜하십니다.”
역시 왕년의 카사노바다운 통찰이다. 강선배의 통탄이 이어졌다.
“마누라든 여자든 돈 얘기가 씨가 먹히지 않아.
여자들이 정조보다 돈을 더 귀하게 여기는 시대가 도래했어. 말세야 말세.”
인규는 자신의 부탁을 몇 번이나 묵살하는 지완이 생각났다.
마누라도 나이 들더니 약아져서 돈 얘기를 섞으려하지 않는다.
고객인 여자들이 그러하니 강선배의 연애사업이 날이 갈수록 번창할 리가 있겠는가.
강선배를 볼 때마다 그 인물에 참 안됐다는 생각이 든다.
역시 남자는 돈이 있어야 한다.
여자들도 바지춤에서 물건을 꺼내는 남자보다는 가슴팍에서 멋들어진
두꺼운 지갑을 꺼내는 남자를 더 좋아한다.
쿨한 남자가 되고 싶다.
사랑도 돈도 권력도 명예에도 쿨한 남자.
결국 그걸 다 가진 남자만이 쿨할 수 있다.
그 중에 제일은 돈이라….
“어머, 사장님! 오늘 점심 식사가 늦으시네요.”
강선배와 디저트를 먹고 있는데 누군가 다가와 아는 체한다.
성미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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