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남몰래 흐르는 눈물-1
미림과의 동거가 올해 크리스마스면 2년이 된다.
처음에는 미림과 이렇게 함께 살림을 차릴 거란 생각을 못했다.
고등학교 동창 민수의 결혼식에서 그녀를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그녀는 민수 커플을 맺어준 한 결혼정보회사의 커플 매칭 매니저였을 뿐이었다.
민수는 고시원의 쪽방에서 몇 년 썩더니 사법고시에 패스하였다.
아직 연수원에 있는데도 어떻게 알고 결혼정보회사에서 연락이 온다고 거들먹대더니
몇 달 만에 거짓말같이 결혼을 했다.
동갑내기인 상대는 상당한 재력가의 딸로 갓 개업한 실력 있는 성형외과 여의사라고 했다.
민수 자식은 골만 발달하여 머리통만 크지 얼굴은 소크라테스처럼 생긴 놈이었다.
그러나 옛날부터 여자 얼굴 예쁜 것은 엄청 따지던 녀석이었다.
그래서 친구들은 그에게 ‘너 자신을 알라’는 소크라테스의 명언을 일깨워주곤 했다.
녀석이 성형외과 여의사와 결혼하다니.
하지만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고 성형외과 의사라고 다 예쁠까.
하지만 그녀는 예뻤다.
그 미모가 자연산인지 인공인지 용준으로서는 잘 알 수 없었다.
하긴 성형외과 의사가, 특히 여의사가 추녀인 병원에 어떤 환자들이 신뢰를 갖겠는가.
‘니 꼬라지를 알라’ 속으로 이렇게 욕을 하며 돌아설지 모른다.
못생긴 민수가 그렇게 조건이 좋은 여자와 결혼하니 출세가 좋긴 좋구나,
하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
미림을 두 번째로 만난 것은 민수네 집들이에서였다.
그녀는 뭐랄까.
사람과 사람을 맺어주는 일을 하는 사람 특유의 친근감과 신뢰감이 느껴졌다.
사람을 끄는 미소와 믿음을 주는 아나운서 같은 차분하고 명확한 말투가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출중한 외모라기보다는 수더분한 인상이었다.
나이가 몇이나 됐을까. 오히려 눈가에 웃을 때마다 잡히는 잔주름이 경험 많은
커플매니저의 푸근한 인상으로는 플러스 요인이 되는 것 같았다.
“성 매니저님, 이 친구, 결혼 좀 책임져 주세요.”
민수가 다짜고짜 취해서 들이댈 때 자신의 명함을 내밀며 언제 한 번 회사로 찾아오라고 말했다.
성 매니저님? 듣기에 따라 좀 이상하게 들린다.
그러나 그녀의 이름이 성미림이었다.
민수는 꼬박꼬박 성을 붙인 호칭으로 그녀를 불렀다.
자리가 취기로 무르익었을 때, 그녀는 먼저 일어섰다.
그날 취한 민수 자식이 염장을 질렀다.
“야, 너 얼른 백수 신세 면해야지.
자식아, 그러다 장가도 못 간다.
가난한 미대 대학원생이라.
그러면 결혼정보회사에서 매긴 등급으로는 아마 페인트공보다 한참 아래일걸?”
민수의 아내가 민수의 옆구리를 찌르며 말했다.
“자긴, 무슨 말을 그렇게 해? 용준씨가 얼마나 매력적인데!”
그러나 용준은 이미 기분이 상했다.
인간이 무슨 한우도 아니고 등급이라니.
그러면 너희들은 최상급이라 이거지?
그러나 자리가 자리인지라 화제를 돌렸다.
“근데 성 매니저 말이야, 처녀냐?”
“무슨 소리냐. 나이가 몇인데. 결혼한 유부녀지.
그 업체에서 일 잘하는 여자들은 다 결혼한 여자들이야.
성형외과 여의사가 얼굴 예쁘듯이 말이지.
생각해 봐라. 결혼업체에서 생짜배기 처녀를 쓰겠냐고.”
“야, 이 자식아. 그럼 성형외과 의사는 다 성형했냐?”
그 말에 갑자기 분위기가 썰렁해졌다.
암튼 그 여자를 다시 만난 건 그로부터 일주일 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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