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간발의 차이-5
식탁 위의 핸드폰이 뒤집힌 풍뎅이처럼 진동한다.
콩나물국에 찬밥을 말아 늦은 점심을 먹던 용준은 액정 화면을 확인했다.
유지완. 씹던 밥을 얼른 목구멍으로 삼키고 폴더를 연다.
그러나 어금니에 낀 콩나물 줄기가 잘 안 넘어간다.
급한 마음을 누르고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여보세요.”
하나, 둘, 셋. 잠시 침묵이 흐른다.
휴대폰 너머의 지완이 마음속으로 숫자를 세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여자의 참다 뱉는 들뜬 숨소리가 살짝 느껴지는 거 같다.
“여보세요? 저기…커피 향 목소리…배달인데요….”
용준은 슬며시 웃음이 났다.
순진하다고 해야 하나, 천진하다고 해야 하나. 귀엽다고 해야 하나.
친구라도 유미와는 너무도 다른 느낌의 여자다.
이렇게 작업이 빨리 먹히는 여자라니!
여자는 분명 목소리가 커피 향처럼 오래 여운이 남는다는 작업멘트에 감동한 게 분명하다.
“아, 예….”
하지만 당황한 용준은 할 말이 없다.
얼마 전에 유미는 이 여자의 전화번호를 용준에게 주었다.
착하고 또 어머니 같은 따스한 여자라고 하면서.
그때의 유미의 눈빛은, ‘야, 애송이! 엄마 찌찌나 더 먹고 와.’ 이런 눈빛이었다.
용준의 가슴은 절망으로 찢어질 듯 고통스러웠다.
그럴수록 유미를 향한 마음은 더욱 갈망으로 치달았다.
유미에 대한 그의 감정은 창녀와 여신 사이로 왔다 갔다 하며 혼란스러웠다.
유지완이라고 하는 여자가 아름다운지 매력적인지 용준은 알지 못한다.
유미는 그 부분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다만 부잣집 사모님이고 살림꾼이라는 말을 덧붙였을 뿐이다.
다만 요 며칠, 허전한 마음에 핑곗거리를 찾아 전화를 한 것뿐이었다.
그것이 바로 다림질과 콩나물국이었다.
거기에 대한 답례로 돈 안 드는 립서비스 정도야…
그런데 이 여자, 완전 작업멘트로 받아들인 게 분명하다.
“뭐…하세요?”
여자가 조심스럽게 묻는다. 용준은 얼결에 대답한다.
“아, 예. 작업 중이었습니다.”
“네? 작업이라면…?”
“예? 아, 제가 화가다 보니…회화 작업 중이었죠.”
대답을 하고 보니 자신의 임기응변이 그럴듯하게 느껴졌다.
“맞아! 참, 미대 대학원, 화가시겠구나.
정말 멋진 일을 하세요. 어릴 때 제 꿈도 화가였죠.”
“내년에 전시회 계획이 있어서요.”
내친김에 한발 더 나아간다.
그 말을 하는데 어금니에 낀 콩나물 줄기가 목구멍을 간질였다.
켁켁 기침이 난다.
제길, 콩나물은 좀 전에 내가 한 거짓말을 알고 있다.
“언제 그림을 한 번 보여주시면….”
“예, 그럴 기회가 있겠죠.”
“저도 마음에 드는 그림 몇 점은 소장하고 있어요.
예술작품은 정말 돈으로는 환산할 수 없는 기쁨을 주니까….”
“아, 그러시구나. 정말 지성과 교양을 갖추시고 계시나 봐요.”
“아이, 별말씀을…작업 중이시면, 그럼 많이 바쁘시겠군요.”
여자가 아쉬운 듯 말했다.
“아니,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모든 게 상대적이죠.
지완씨가 전화를 하셨는데 그럴 리가….”
용준은 슬쩍 운을 떼고 지완의 눈치를 살핀다.
아니 얼굴을 볼 수 없으니 그녀의 심중을 재빨리 헤아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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