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장 몽정기 7
차몽현은 직원들을 놔두고 룸에서 나왔다. 마담이 쫓아왔다.
“가시게요?”
“내가 오래 있으면 불편하겠지.”
마담이 차몽현의 팔짱을 꼈다.
직원들과 함께 술집으로 들어설 때의 활기찬 모습은 사라졌다.
“피곤해 보이세요.”
“내가?”
차몽현은 카운터 쪽으로 걸어가며 되물었다.
“아직도 사모님 영국에 계시나 봐요.”
“내가 언제 그런 이야기까지 했나?”
차몽현이 마담을 빤히 쳐다봤다.
“쓸쓸하고 힘겨워 보이세요.”
“요즘 다들 힘들어 하니까.”
차몽현이 카운터 앞에 서자 지배인이 달려왔다.
“벌써 가시게요.”
“우리 직원들 맘껏 마시도록 해줘요. 요구하는 거 있으면 다들어주고.”
“염려 놓으십시오.”
마담이 술집 입구까지 따라나왔다.
“오늘 유독 쓸쓸해 보이세요.”
차몽현은 마담의 말을 곱씹어 보았다.
‘쓸쓸한가, 그래 늘 쓸쓸했지.’
차몽현이 피식 웃고 말았다.
느닷없이 일찍 죽은 어머니가 보고 싶었다.
아내도 없고 아이들도 한국에 없었다.
아버지는 늘 차몽현의 존재를 못마땅해 했다.
마담은 그런 차몽현의 심사를 읽고 있었다.
“잠깐만 여기 계세요.”
“왜?”
“글쎄, 조금만 계세요.”
마담이 부리나케 술집으로 다시 들어갔다.
잠시 후에 차이나 드레스를 벗고 청바지에 흰색 오리털 점퍼를 입고 나타났다.
“어디 가?”
“오늘 사장님 따라 갈래요.
그냥 보내 드리면 안 될 거 같아요.
룸 들여다보니까 노래부르고 난리가 났어요.
직원들 염려는 놓으시고 오늘은 저랑 같이 있어주세요.”
“내가 그렇게 쓸쓸해 보였나?”
“아니에요. 제가 쓸쓸해서 그러는 거예요.”
차몽현이 마담을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사장님, 아니었으면 전 어떻게 살았을지 몰라요.
저 이래도 의리 하나로 살아온 년이에요.”
“우리 마누라도 의라라는 게 있었으면 좋겠어.”
차몽현은 거의 반강제로 마담의 팔에 끌려 지상으로 올라왔다.
차가 대기하고 있었다.
“포장마차에서 닭발이랑 소주나 한잔하자.”
마담이 차몽현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녀는 기사를 돌려보냈다.
그리곤 밤거리를 걷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눈에 띄는 포장마차로 들어갔다.
“오랫만이다. 한 15년만?”
차몽현은 포장마차 내부를 둘러보았다.
요즘의 포장마차는 규모만 조금 커졌을 뿐 테이블이나 의자 등 그리고 천막 풍경은 여전했다.
차몽현은 마담의 이름을 기억해내려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그녀의 얼굴과 봉긋한 가슴만 눈앞에 아른거렸다.
그녀의 이름은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다.
“미안해.”
차몽현이 그녀를 쳐다보며 말했다.
“뭐가요?”
“또 이름이 기억나지 않네.”
“피, 직원들 이름은 잘만 기억하면서.”
마담이 토라진 듯 눈을 흘겼다.
차몽현은 그녀가 유명한 여대를 졸업했다는 기억만 났다.
“미란, 이미란!”
“맞다, 미란이, 그래, 미란이였어.”
차몽현이 소주잔을 들었다.
“그런데 직원들은 좋은 술 사주시고 사장님은 왜 이런 데서 술을 드세요?”
“난 원래 포장마차가 맞아.
그런데 아버지 뜻에 따라 사장들이 즐기는 그런 문화에 익숙해지려고 노력했지.
골프도 치기 싫었는데 배워야 했고 적당히 놀음도 할 줄 알아야 한다기에 카지노도 들락거렸지.
여자도 몇은 거느릴 줄 알아야 한다기에 난봉질도 좀 하고.”
“그 덕에 저를 만났잖아요.”
그녀가 차몽현을 쳐다보며 웃었다.
그녀는 술집 여자답지 않게 미소가 순수해 보였다.
“그런데 왜 그런지 잘못 살았다는 생각이 들어.”
“사장님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세요. ‘코지’가 하루 이틀에 이루어진 회산가요.”
“오성이 없었으면 출발하지도 못했어.”
차몽현은 술잔을 들이켰다. 자신은 오너 기질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오너 기질이 부족해.”
“무슨 소리세요.”
“간부들 나를 쓰러뜨리려고 혈안이 되어 있거든. 그 날도 멀지 않았어.”
차몽현은 담담하게 말했다.
중국에서 입지를 단단하게 굳혀놓지 않는 한 물러나는 건 불 보듯 뻔했다.
“오성 회장님이 가만히 계시겠어요?”
포장마차 안은 테이블마다 늦은 귀가를 하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저마가 이야기하고 웃고 떠드느라 차몽현과 이미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아버진 나를 데리고 있는 걸 늘 거북하게 생각했어.”
“세상에 그런 아버지가 어디 있겠어요? 다 사장님 잘 되라고…”
“아버진 아직도 내 어머니를 증오하고 있지.
아버지의 두 번째 여잔가? 세 번째 여잔가?
나도 잘 모르겠다.
어머니가 자살하는 바람에 아버지가 중요한 미팅을 놓쳤거든.
그게 회사 주식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고.”
“그래도 아버진데…”
이미란은 더 할 말이 없었다.
“나중에 알게 된 건데 말야. 나를 유학 보낸 것도 나와 같이 있기 싫어서였지.”
차몽현은 잔이 넘치게 술을 따랐다.
이미란이 그의 손에서 술병을 빼앗았다.
“우리 어머니 보고 나를 떼라고 종용하셨다는군. 나를 안 떼면 국물도 없다고 하셨다는군.”
차몽현은 자신이 해서는 안될 말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왜 그런지 주체할 수 없었다.
“누나처럼 해봐.”
차몽현은 소파에 비스듬히 누워 이미란을 지긋한 눈길로 바라보았다.
차몽현의 집이었다.
그의 집엔 아무도 없었다.
넓은 거실이 적막해 보였다.
“누나처럼 하는 게 어떤 거예요?”
“동생한테 알몸을 보였다고 가정해봐.”
“그럼 다 벗어야 해요?”
차몽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튼 사장님 취향은 독특하다니까.
이제야 그게 뭔지 알았는데, 그게 룰플레이라는 거죠?”
룰플레이. 성적 상대로 하여금 자신이 원하는 역할을 하게 하고
그를 통해 만족감을 얻는 놀이를 서양에선 룰플레이라고 했다.
때론 성적 상대가 아닐 수도 있었다.
그저 순수하게 상대가 원하는 역할만 해주면 되는 수도 있었다.
하지만 종내엔 섹스로 이어졌고 그 섹스 또한 기묘했다.
이미란이 옷을 하나씩 벗었다.
“다시 입어!”
차몽현이 심각하게 말했다.
“왜요?”
“누나가 어떻게 동생 앞에서 막 옷을 벗어. 그러니까 뒤로 돌아서 벗어야지.”
이미란이 고개를 끄덕이며 차몽현의 말에 따랐다.
사실 그녀는 이미 여러 차례 경험이 있었다.
익숙한 놀이였다.
그래도 처음인 척해야 했다.
상대에게 더 큰 자극을 주려면 순수한 척 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미란은 뒤로 돌아서서 옷을 벗기 시작했다.
청바지를 내리고 쫄티를 머리 위로 벗겨냈다.
빨간 색의 속옷이 나타났다.
“천천히!”
차몽현이 꿈꾸듯 말했다.
이미란은 가능한 한 천천히 브래지어를 벗어 던졌다.
그리고 팬티를 발목 아래로 끌어내렸다.
그녀의 둥근 엉덩이가 드러났다.
“지금 동생이 숨어서 누나가 하는 행동을 지켜보고 있는 거야.
그러니까 미란씨가 그냥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해. 물을 마셔도 좋고.
뭐 커피를 끓여 먹어도 좋아. 하지만 옷을 벗은 채로 말야.”
“네에.”
이미란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없는 거라니까 대답을 왜 해.”
이미란이 살짝 미소를 띠며 고개만 끄덕였다.
벗은 채로 집안을 활보하기 시작했다.
차몽현은 소파를 어둔 구석 쪽으로 끌고 가더니 본격적으로 미란의 행동을 훔쳐보기 시작했다.
그녀는 알몸인 채로 냉장고를 열어 물병을 꺼냈다.
물을 한 모금 마시고 식빵을 꺼냈다.
그녀가 허리를 굽힐 때마다 그녀의 아래가 선명하게 드러났다.
차몽현은 슬그머니 바지를 벗었다.
그리곤 아랫도리로 손을 가져갔다.
이미란은 빵 두 조각을 꺼내 토스트기에 넣었다.
찬장을 뒤져 커피를 찾아 커피메이커에 넣고 물을 부었다.
그녀가 냉장고의 야채 칸을 뒤질 땐 그녀의 중심이 확연하게 드러났다.
차몽현의 몸이 부르르 떨었다.
그녀는 야채 칸에서 토마토와 양상치를 꺼냈다.
커피를 잔에 따르고 토스트기가 뱉어낸 빵 위에 썰은 토마토와 양상치를 얹었다.
그리고 낱장으로 되어 있는 햄을 꺼내 그 위에 놓았다.
작은 쟁반 위에 토스트와 커피를 얹어 들고 거실 한가운데로 나왔다.
그녀는 유리 테이블 위에 쟁반을 올려놓고 소파 위에 앉았다.
그녀는 무심한 척 다리를 벌리고 앉아 토스트를 씹기 시작했다.
아주 맛있게 먹었다.
그녀의 벗은 몸이 거실 조명 아래에서 환하게 드러났다.
차몽현은 다시 한번 몸을 부르르 떨었다.
‘코지’의 홈쇼핑과 사이버 쇼핑몰 담당 실장이 된 박춘만은 시계를 들여다보았다.
스튜디오에선 사이버 쇼핑몰에 올릴 속옷의 촬영이 진행되고 있었다.
모델들은 대부분 쭉쭉빵빵한 러시아 여성들이었다.
박춘만은 홈쇼핑 담당을 맡은 뒤 유통루트를 넓혀 사이버 쇼핑몰까지 영역을 확장했다.
시점이 좋았던 탓인지 고객의 반응도 좋았고 매출도 올라 박춘만은 마치 날개를 단 기분이었다.
촬영이 끝나자 러시아 모델들이 박춘만에게 몰려왔다.
“실장님, 우리 맛있는 거 사주세요.”
박춘만이 유독 귀여워하는 나타샤가 그의 팔짱을 끼며 매달렸다.
그녀는 여느 러시아 모델들답지 않게 동양적인 풍모를 풍기는 얼굴을 갖고 있었다.
모델들이 대부분 박춘만보다 크게는 머리통 하나 차이가 날 만큼 컸는데 나타샤는 키도 비슷했다.
지나치게 풍만해서 때론 징그럽기까지 한 다른 모델들과 몸매도 달랐다.
영락없이 동양인의 몸매였다. 그녀의 어머니는 고려인이라고 했다.
그래서 한국말이 능숙했다.
다른 모델들도 박춘만에게 애교를 부렸다.
“뭐들 드시겠어요?”
“우리 늘 몸매 때문에 맘껏 못 먹었잖아요.
며칠 촬영도 없고 그러니까 고기 사주세요.”
박춘만은 즐거웠다. 남은 인생도 요즘만 같다면 여한이 없을 듯했다.
젊은 시절엔 그럴듯한 사업체를 하나 운영해 보는 게 꿈이었지만
지금은 적어도 55세까지만이라도 현재의 상태를 유지할 수 있기를 바랬다.
그때까지만 버티면 퇴직을 해도 프랜차이즈 가맹점 하나 정도는 차릴 돈이 모일 것 같았다.
“갑시다. 미스터 김은?”
“저는 마저 일 끝내야죠.”
“그럼 수고 좀 해 줘요. 나중에 내가 소주 한잔 사리다.”
박춘만은 스튜디오를 나왔다.
미스터 김은 사이버 쇼핑몰 점검을 위해 남았다.
나타샤를 비롯해 네 명의 러시아 모델이 박춘만을 따라왔다.
박춘만은 ‘와사등’이라는 고기 집으로 들어가 방을 찾았다.
몇 차례 다녀본 곳이라 사장이 알은 체를 했다.
고기를 먹고 있는 사람들은 늘씬한 러시아 여자들이 지나가자 눈길을 떼지 못했다.
순간 박춘만은 자신이 포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방으로 들어서자 나타샤는 어김없이 박춘만의 곁에 앉았다.
“아까 촬영하기 전에 보니까 동방의 매니저가 다녀가던데요?”
나탸사가 박춘만에게 몸을 밀착했다.
브래지어를 하지 않았는지 박춘만의 왼팔에 물컹한 그녀의 가슴이 느껴졌다.
“다녀갔지.”
“요즘 우크라이나 애들이 많이 들어왔다고 하던데…”
다른 모델들도 박춘만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하나같이 인형 같은 얼굴이었다.
박춘만은 모델들이 왜 자신에게 달라붙는지 알고 있었다.
지금 있는 모델들은 ‘코지’가 홈쇼핑에 진출했을 때부터 계약을 맺은 모델들이었다.
그 계약 기간이 다 되어 가고 있었고 그걸 안 동방의 매니저가
다른 모델들을 천거하겠다며 다녀간 것이었다.
모델들을 결정하는 일은 이제 그 전권이 박춘만에게 있었다.
늘 누군가의 명령만 따르다 결정권자가 되고 나니 그 권력의 맛이 매혹적이었다.
“걔네들은 한국 말도 잘 한다는데.”
“어머, 실장님. 우리들도 벌써 여기서 몇 년짼데요. 걔네들은 이제 초짠데.”
“맞아요.”
한국에 온지 여러 해 되다 보니 다들 여우가 되어 있었다.
박춘만은 그녀들을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다.
“술 너무 먹는 거 같은데…”
박춘만은 손에 들린 잔과 나타샤를 번갈아 보았다.
고기를 얻어먹었으니 2차로 술 대접을 하겠다며 모델들이
거의 반강제로 박춘만을 끌고 주점으로 들어왔다.
둘은 일이 있어 먼저 자리를 비웠고 나타샤와 또 한 명의 러시아 모델이
박춘만의 양 옆에 앉아 잔을 들고 있었다.
박춘만으로서는 양 옆에 러시아 미녀를 끼고 술을 마시는 셈이엇다.
맥주 반에 양주 반. 그렇게 몇 잔을 마셨는지 알 수 없었다.
박춘만은 그 동안 업무 파악하고 잘 해보겠다고 긴장해 있던 터라
술 한잔 마음 놓고 마셔본 적이 없었다.
이제 회사에서 어느 정도 인정도 받았고 실적도 올린 터였다.
그 동안의 긴장이 적당히 기분 좋게 풀어져 있었다.
“에이, 실장님도 참. 우리는 취하려면 멀었는데.”
나타샤와 같이 남은 마리야도 한국말을 제법 잘했다.
그녀의 한 손이 박춘만의 무릎 위에 올려져 있었다.
박춘만은 길고 흰 마리야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둘은 러시아에 있을 때 대학생이었다.
모델이 꿈이었고 그 출발을 한국에서 하고 있는 여자들이었다.
“우린 체질적으로 술이 강한가 봐요.”
나타샤의 손도 박춘만의 허벅지 위로 올라왔다.
“건배!”
두 여자가 동시에 건배를 외쳤다. 박춘만은 질 수 없었다.
두 여자도 박춘만도 단숨에 잔을 비웠다.
“나타샤, 너무 염려하지 마.
우리도 이왕이면 호흡이 잘 맞는 사람들하고 계속 일을 하고 싶으니까.”
“어머, 정말이에요?”
“변수가 없는 건 아니지만 가능하면 그렇게 하도록 해야지.”
박춘만은 술 취한 와중에도 계산을 했다.
고삐를 쥐려면 단단히 쥐어야 풀어지지 않는 법이었다.
“어떤 변수가 있을까요?”
두 여자의 얼굴이 박춘만에게 가까이 다가왔다. 향수냄새가 진하게 풍겼다.
“그야, 나도 모르지. 사장이 갑자기 캔슬을 놓을 수도 있고,
나보다 더 힘 있는 사람이 로비를 해서 바뀔 수도 있고.”
마리야가 박춘만의 잔에 술을 따랐다.
“실장님은 저희들 지켜줄 거죠?”
나타샤의 큰 눈이 금방이라도 울 듯했다.
‘이쁜 것들은 그것 자체로 삶을 살아가는 무기다. 무기!’
박춘만은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타샤나 마리야는 자신의 미모를 적절하게 이용할 줄 알았다.
“모스크바에 가면 외국인들이나 높은 사람들이 잘 가는 술집이 하나 있어요.”
나타샤가 소파에 등을 기대며 머리를 살짝 박춘만의 어깨에 기댔다.
마리야는 박춘만의 손을 슬그머니 잡았다.
“제가 한국으로 올 무렵 거기 맥주 한 병 값이 간호사 한달 월급하고 맞먹었어요.
지금은 많이 나아졌겠지만 그래도 여전히 힘들어요.”
나타샤는 박춘만의 감성에 호소를 하고 있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나머지는 하늘의 뜻에 맡겨야지.”
이번엔 박춘만이 먼저 잔을 들었다. 두 여자가 따라 잔을 들었다.
“그럼 실장님,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뭘까요?
마리야랑 저는 아직 1년쯤 더 벌어야 러시아로 돌아가 공부를 마칠 수 있거든요.”
박춘만이 풀어진 눈으로 두 여자를 쳐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