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밤의 대통령

1. 배신의 밤

오늘의 쉼터 2015. 1. 1. 22:14

1. 배신의 밤

 

 

국제 호텔의 대회의실, 새벽 4시였다.
양승일의 급사로 인해 소집된 비상 회의가 열리고 있다.

동원 그룹은 전자와 섬유, 유통, 건설 등 10여 개의 상장 회사와 10여 개의 비상장 회사,

그리고 동원 그룹의 시명(쳐츱)은 산지 않지만 양숭일이 투자한 20여 개의 조직 관련 업체들로

나누어져 있었다.

따라서 사장단만 모아도 50명이 넘는 인원이었으나 오늘 회의에 참석한 것은 유통과 기획의

간부급들과 조직 관련 업체의 사장들이다.
상장 회사나 비상장 회사들은 모두 안승일에 의해 임명된 전문 경영인이 있었고 상속인이

양유경으로 정해져 있었으므로 양승일이 사망했다고 해서 영업에 큰 지장은 없다.

그러나 20여 개의 조직 관련 업체들은 하룻밤 사이에 통치자를 잃어버린 셈이 되는 것이다.
  

후계자를 분명히 주지시키고 대리인을 얼굴로 한 조직의 질서를 확려시켜야만 했다.

지금 무거운 분위기로 회의실에 모여 앉아 있는 
 백여 명 중에는 동원 전자, 섬유, 실업 등 상장 회사의 핵심 간부들도 참석하고 있었는데

그들은 조직에서 파견된 자들이었다. 의장석에는 김앙호가 임시 의장을 맡하 앉아 있었고

그의 옆자치에 앉아 있는 것은 가토 노부야스였다.

그는 참관인 자격이었지만 조직 관련 사업에 막대한 자금을 루자한 동업자인 것이다.
   

김양호가 머리를 들고 길게 늘어 앉아 있는 좌우의 무리들을 바라 보았다.

회의실은 다시 긴장감에 횝싸였다.
   

"그럼 조직 운영에 대해서 우리가 제일 먼저 결정해야 할 일이 있소.

그것은 위대하신 고 앙 회장님의 업무를 대행할 사람을 결정하는 일이오."
김양호의 목소리가 회의실을 울렸다.
   

"우리는 한 시간이라도 지휘 체계에 공백이 있어서는 안됩니다.
이런 때일수록 일사불란한 리더십이 필요한 것이오."
    말을 그치고 그가 주위를 둘러보자 우측 줄의 다섯 번째에서

손을 들고 일어서는 사내가 있다. 동원 기획의 임시 대표로 있는 최기대였다.
    "그것은 거론할 필요도 없는 일입니다.

양 회장님 생존시부터 그룹의 대외적인 대표자였으며 신임을 받고 있던 김양호 사장께서

맡아 주격야 합니다. "
   그의 목소리는 컸고 힘에 차 있어서 벽에 부딪친 소리가 실내를 울리는 듯했다.
   "또한 조직과 정부의 관계를 매끄럽게 유지시키는 데 양 회장님께서도 김 사장님에게

의존하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나는 김 사장님을 만장일치로 추대할 것을 제의합니다. "
 그러자 이쪽 저쪽에서 박수 소리가 들리더니 곧 회의장은 박수 소리에 뒤덮였다.

이맛살을 찌푸린 김양호가 난처한 표정으로 가토에게로 고개를 돌리자 가토가

머리를 끄덕이며 박수를 쳤다.
    김양호가 다시 사래들에게로 고개를 돌렸을 때였다.

왼쪽의 여섯 번째 자리에 앉아 있던 박철규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깨를 펴고 턱을 치켜 든 그의 얼굴 표정은 굳어 있었다.

그러자 박수 소리가 멈추었다.
   "나는 회장님의 보좌관으로 회장님의 근래의 계획을 알고 있는 사람이오."
   조용해진 회의실 안에 그의 말소리가 다시 이어졌다.
   "회장님은 따님인 양유경 씨의 약혼자이자 현직 검사인 이동천 씨를 후계자로 정하셨습니다.

그것은 앞에 앉아 계신 김 사장님과 가토 씨께서 잘 알고 계실 겁니다. "
   "김 사징림과 가토 씨에게 협조를 당부하셨고 저 또한 이동천 씨를 도우라는 지시를 받고

부산에 내려가 있었습니다. "
   "회장님의 지시대로 이동천 씨를 후계자로 모셔야 합니다.

회장님의 사위가 자리를 이어 받는 것이 당연한 일입니다. "
   회의실 안은 금방 찬물을 쏟아 부은 것처럼 분위기가 식었다.

박철규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김 사장님과 가토 씨, 그리고 우리가 협조해 드린다면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이고 그것이 돌아가신 회장님의 뜻을 받드는 길이 될 것입니다. "
   "잠깐, 내가 한마디 해야겠는데."
   의장석에 앉은 김양호가 부드러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이제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그아게로 집중되었다.
   "내막을 잘 모르고 말하는 것.같은데, 박 보좌관은. 이동천은 약혼자로 정식 결정된 것도 아니고

또한 후계자로 결정되지도 않았소."
   회의실은 숨소리도 들리지 않을 정도로 조용했다. 김양호가 말을 olft다.
   "그것은 이동천 검사가 주위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조직을 파헤치려 했기 때문에

회장께서 따님을 이용하신 것이오. 그 덕분에 이동천의 조사는 유야무o떠었소."
   박철규가 눈을 치켜 뜨고 입을 열었으나 말은 뱉지 않았다.
   "그것은 나와 여기에 있는 가토 씨가 증인이오.

회장께서는 우리에게 그 말씀을 해주셨소.

약혼으로 묶어 두었다가 기회를 봐서 처리하시겠다고."
   "박 보좌관의 충성심이 방향을 잘못 잡은 거요.

이동천에게 조직을 맡겨 그의 손에 의해서 조직이 차곡차곡 절단나야만 하겠소?"
   그러자 최기대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건 말도 안되는 소립니다.

그런 쓸데없는 주장으로 시간을 끌 수는 없습니다.

저는 지금 당장 거수로 결정할 것을 제의합니다. "
   "옳습니다. "
   "찬성입니다. "
   10여 명의 사내들이 일시에 외쳤고 대부분의 사내들은 박수를 치거나 머리를 31덕였다.

대세는 이미 결정되어 있었던 것이다.

김양호는 전부터도 조직에 강한 영향력을 갖고 있었으니

양승일이 없는 이동천은 그에게는 상대가 되지 않는다.

더욱이 현직 검사로 조직을 락혜치고 있다가 정략적으로 끌어들였다는

김양호의 말이 설득력이 있는 것이다.
   김양호;가 마지 못한 듯이 머리를 3덕였다.
   "좋습니다.

낮이 뜨려지만 본인을 돌아가신 양 회장님의 대리인으로 인정해 주실 분은 손을 들어 주시오."
   그러자 백여 명 가까운 사내들이 일시에 손을 들었다.

팔짱을 끼고 앉은 박철규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손을 든 채 그의 시선을 곧장 받는 사람도 있었지만 시선을 피하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회의실에 김양호의 말소리가 울려퍼졌다.
   "종습니다. 한 사람을 레고는 만장일치입니다. "
   아침 1시경이 되자 입관이 끝나 양승일의 시신은 관 속에 누여졌다.

그러자 아직 사망 발표는 하지 않았으므로 저택에 모여 있는 것은 조직원들뿐이다.
   시신이 안치된 웅접실체 혼자 앉아 있는 양유경은 아직 어잿밤 집안에서 입고 있던

셔츠에 바지 차림이었다. 응집실의 문이 열리더니 김양호와 가토가 들어섰다.
   "사친은 심장마비로 발표하3n습니다. 주치의 김 박사가 맡아 하기로 했어요."
   가토와 함께 앞쪽 자리에 앉으면서 긱양호가 말했다.
   "습격을 받아 살해되었다고 그대로 발표한다면 수라장이 될 겁니다.

주식값은 말할 것도 없고 조직 관련 업체들이 흔들리는 것은 물론 정부 당국에서도

어쩔 수 없이 조직을 파헤쳐야 합니다. "
   그는 새벽의 회의에서도 양승일의 사인은 심장마비라고 발표해 놓았다.

이해가 가는 말이었으므로 양유경이 창백한 얼굴로 잠자코 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조직의 관리 문제인데요."
   김양호가 다시 입을 열자 양유경이 퍼뜩 눈꼬리를 세웠다.
   "그건 지금 이야기하고 싶지 않아요."
   "중요한 문제입니다, 아가씨."
"이동천 씨와 이야기하세요. 나는
"이동천 씨와 관련된 일입터다. "
   정색을 한 김양호가 말소리를 낮추었다.
   "양 회장님이 이동천 씨를 택하신 것은 깊은 뜻이 있으셨기 매문입니다.

회장님은 후계자로 이동천 씨를 내세우고 뒤에서 지원할 생각이셨습니다. "
   "이동천 씨가 우리 조직에 대해서 조사하고 있었던 것은 아시지요?

그가 아가씨에 대해서 접근한 것은 무엇 때문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후계자가 되어 조직뜰 정비할 계획이었겠지요.

그가 우리 조직에 대한 인식을 바긴다고 생각되지 않습니다.

지금, 회장님도 안 계신 마당에 그를 후계자로 세운다면

그는 자신의 이상패로 정비, 정돈할려니다.

회장닝께서 수십 년에 걸쳐 이룩하신 것을 말입니다. "
   "그래서 날더러 어떡하란 말애요?"
20 밤의 대통령 제4부 -ll
   얼굴이 하알게 굳어진 양유경이 1를 쏘아보았다.
   "아버지가 누구에게 살해당했는지도 모르는 마당에,

아직 장례를 치르지도 않고‥‥‥‥
   "이동천을 거부하십시오."
   "그가 아가씨의 약혼자 입장으로 장례식에 얼굴을 비추지도 못하게 하십시오.

고와 결혼하시게 되면 조직이 위험합니다.

아버지가 안 계신 마당에 저로서도 힘에 벅찬니다. "
   아랫입술을 깨문 앙유경이 그를 노려보았다.

두 눈이 빨갛게 충혈되어 있었다.
   "아저씨가 어떻게 저한테 그런 말을."
   "제가 이제부터 아가씨의 보호자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
   "후계자는 아가쒀이고 저는 변함없는 오른팔입니다.

회장님과 저와의 관계처럼."
   "유업을 위해서는 결단을 내리십시오.

아가쒸, 이동천과 함께라면 아버지의 유업은 위태롭게 됨니다. "
   서재의 창 뀨으로 정원이 보였다.

10여 명의 사래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정돈되어 가는 느낌이 들었다.

지휘 체계가 잡혀 가는 것이다.

살륙전이 일어났던 집안은 이제 깨끗이 치워졌고 경비원들의 시체도 어디론가로 옮겨져

습격당한 흔절이라 곤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아마 양승일의 사인은 자연사로 처리될 것이었다.
   이동천은 창에서 시선을 돌려 서재를 둘러보았다.

밝은 색깔의 벽에는 수천 권의 장서가 론혀 있었고 윤기가 흐르는 나무 책상 위에 놓인 꽃병에는

장미와 안개꽃이 아직도 싱싱했다.
   가슴에 두 발의 총탄을 맞은 양승일의 얼굴은 평온했다.

그가 도착했을 대는 이미 시신이 깨끗이 닦여 있었고 김양호의 지시에 의해
주변이 철저히 통제되고 있을 때였다.

이동천은 그의 시신과 상처를 보게 된 몇 사람 중의 하나였는데

그를 마지막으로 관은 뚜껑이 덮이고 못이 박혔다.
   열려진 서재 문으로 양유경이 들어섰다. 지친 듯 흐느적거러는 걸음이었지만

두 눈꼬리는 치켜 을라갔고 입술은 꾹 닫혀 있다.

그의 뒤를 따라 어깨를 늘어뜨린 김양호가 들어서고 있었다.

자리에서 일어선 이동천이 =1녀의 어깨를 잡아 소파에 앉혔다.
   "이제 좀 쉬어, 집안일은 내가 알아서 할테니까."
   LA에 있다는 오빠가 오기 전까지는 상주 노릇이라도 해야 할 것이다.

혈압이 올라 누워 있는 김 여사도 걱정이 되었지만 양유경의 모습도 금방 쓰러질 것같이 보였다.
   양유경이 머리를 들고 그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아버지는 당신을 좋아하셨어요. 자랑스럽다고 하셨습니다. "
   낮은 목소리였지만 조용한 방안에서는 선명하게 들렸다. 이동천이
긴장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고 김양호는 창 밖으로 머리를 돌렸
다. 양유경이 말을 이었다.
   "그리고 대망을 품은 사래라고도 하셨습니다. "
긴 밤의 대통령 제실근 -fE
   "하지만 그것은 아버지가 살아 계셨을 때의 당신입니다. 아버지의
참모로서의 당신, 아버지는 후계자로서의 당신 위치를 그렇게 보셨
다고 믿어요."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금, 당신에게 조직을 넘길 수가 없어요. 이
제까지 보아 온 제가 여기 있는 김 사장님과 같이 이끌고 갈 작정이
에요."
   "난 지금 조직 이야기는 듣고 싶지 않아."
   이동천이 눈을 치켜 뜨고 말했다.
   "내가 자진해서 나선 것도 아니었는데 날 부끄럽게 하지 마라."
   "약혼은 무효로 하fl어요. 따라서 당신츤 이 집안과 아무런 연고
가 없어요."
   "돌아가 주세요, 지금."
   굳은 얼굴로 이동천은 김양호를 바라보았다. 그는 아직도 창 밖으
로 시선을 주고 있었다.
   "김 사장, 당신의 짓인가?"
   김양호가 머리를 돌려 1를 바라보았다.
   "그게 무슨 말이야?"
   찬바람이 이는 듯한 말투였다.
   "당신의 짓이라니?"
   "이 사건 모두가 말이야."
   "말을 삼가라!"
   김양호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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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넌 스스로를 과대평가차고 있는 모양인데 착각하지 마라.그리고
더 이상 미련을 갖지도 말어. 말씀대로 어서 나가!"
   그에게서 시선을 돌린 김양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양유경은 앞
쪽을 바라볼 뿐 석고상처럼 눈샙 한번 움직이지 않았다. 양유경의 옆
을 지나 양탄자 위를 소리없이 걸어 문 쪽으로 다가간 이동천은 문고
리를 잡고는 걸음을 멈추었다. 그러나 한 호흡의 순간이 지난 후 문
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김양호÷가 힐끗 양유경을 바라보고는 자리에
서 일어섰다. 다시 문 닫히는 소리가 났는데도 양유경은 그 자세 그
대로 앉아 있었다.
   "식사 안하세요?"
   그러자 머리를 든 박철규를 바라본 아내가 움직임을 멈추었다. 박
철규의 눈에서 두 줄기의 눈물이 쏟아져 내리고 있었던 것이다.
   "당신 . "
   "시』1러 ."
   박철규는 한동안 눈물이 흐르도록 내버려 두었다.
   아침 8시 반이었다. 오랜만에 집에 들른 박철규를 맞아 아내는 정
성 들여 찌개를 끓이고 반찬 준비를 하느라 정신이 없었는데 박철규
가 눈물바람을 하자 가슴이 덜컥 내려앉은 모양이었다
   식탁 건너편에 앉아석고처럼 굳어진 채 움직이지 않던 박철규가
이윽고 머리를 들었다.
   "당신 아직 미국 비자 있지?"
   아내가 눈을 치켜 뜨고 그를 바라보았다.
   "있긴 있어요. 그런데 왜요?"
24 밤의 대통령 제깎」 -ll
   하나밖에 없는 언니의 초청으로 비자를 받았지만 차일피일 미루었
던 것이다.
   "오늘 당장 미국으로 떠나."
   "어머나, 왜요?"
   "자꾸 왜냐고 묻지 말어!"
   박철규가 버럭 고함을 치자 건넌방에서 놀고 있던 세 살짜리 딸이
칭얼거리는 소리를 내었다.
   "살림은 내가 알아서 정리할테니까 그대로 두고 오늘 당장 떠나."
   이제 아내가 눈물이 글쌩해진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늦게 결혼
을 했지만 금실이 좋았던 사이였다. 무뚝뚝하긴 했지만 심지가 깊은
박철규를 아내는 따랐고 박철규 또한 나이 차이가 열 살 가깝게 나는
아내를 사랑했다.
   "회사에 문제가 생겼어. 그래서 그러는 거야. 나도 곧 뒤따라 갈테
니까."
   박철규가 말소리를 부드럽게 내렸다.
   "제발 왜냐고 꼬치꼬치 묻지는 말아. 날 위해서라도 오늘중으로
미국으로 가."
   그는 주머니에서 봉투 하나를 꺼내어 식탁 위에 내려놓았다.
   "통장이야. 2천만 원 들어 있으니까 찾아서 달러로 바러.그리고
옷가지만 간단히 챙겨서 그냥 떠나, 내 걱정은 말고."
   "언제까지 미국에 있어요?"
   낮고 떨리는 목소리로 그녀가 묻자 박철규는 입맛을 다셨다.
   "한 달, 아니 어쩌면 두 달쯤. 글쎄 걱정할 것 없어. 절대로 나를
믿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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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얼굴에 웃음을 띠는 순간 전화 벨이 울렸다.
    "여보세요."
    백복동은 박철규의 목소리가 들려나오자 어깨의 힘을 빼었다.
    "나요, 백복동이."
    "웬일입니까?"
    그는 박철규의 목소리가 늘어져 있다고 느껴졌다.
    "박 형, 빨리 나와. 상의할 일이 있어,"
    "무슨 일인데?"
   "놈들이 이 검사님을 데려갔어."
   "아니 누가 말이야?"
   박철규의 목소리가 튕겨지듯이 올라갔다.
   "어디서 말이야?"
   "양 회장의 저택에서. 함께 간 놈은 최기대하고 열 명이 넘어, 우
린 놈들을 쫓다가 놓쳤어."
   "낌새가 심상치 않길래 내가 양 회장 저택에다 전화를 했어, 백 형
사라고 내 신분도 밝히고 말이오. 금방 이 검사가 끌려간 것을 보았
고,사진도 찍어 놓았다고 했어.그랬더니 잠깐 일보러 나가셨다고
하는군 그러면서 놈들은 당황해 하는 것 같았어."
"나와. 도대체 집에서 휠 하는 거o1?"
"알았어."
백복동은 전화기를 내려놓고는 옆자리에 앉아 있는 주대흥을 바라
26 밤의 대통령 제음부 -ll
보았다.
   "어이 주 형, 일어나,"
   머리를 창에 기대고 잠이 들어 있던 주대흥이 눈을 떴다. 그러나
그뿐이다. 그는 눈만 끔벅일 뿐 몸은 움직이지 않았다.
   입맛을 다신 백복동이 운전석에 앉은 손달섭을 바라보았다.
   "가자. 박철규를 만나면 도대체 무슨 일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
   "어디로 말이오?"
   "팔래스 호텔. 그곳에서 박철규를 만나기로 했어."
   주대홍이 무거운 머리를 들었다.
   "젠장, 도대체 뭐하는 거요?"
   잠이 덜 잰 목소리로 그가 다시 물었다.
   "뭐가 그렇게 바쁜 거요?"
    김양호는 정원의 잔디밭에서 가토와 마주보고 서 있었다. 아침 헛
살이 제법 따가워지기 시작하는 10시경이었지만 1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백 형사라면 이동천이 수족으로 부리는 놈이오. 그놈이 집 앞에
서 감시하고 있을 줄은 몰랐는데."
   입맛을 다신 김양호가 말을 이었다.
   "이동천을 처치하면 시끄러워질 것 같소. 그렇다고 풀어 줄 수도
없고. "
   "당신은 배짱이 약해, 김 fl장."
   가토가 김양호를 내려다보았다.
   "잘못하면 모든 것이 한순간에 허물어질 수가 있어. 이동천을 살
                                                  배신의 밤 27
려 두어서는 안돼."
   "놈이 바보÷가 아니라면 우리를 의심하고 있을 거요. 그 꼬마 계집
애도 마찬가지이고."
   "그령지만."
   김양호의 말을 가토가 손을 들어 막았다. 그는 김양호 앞으로 바
짝 다가섰다.
   "그 빌어먹을 기무라란 놈이 부산에 머물고 있기만 했더라도 우쉐
다가 기무라와 이동천 두 놈을 같이 처치하면 깨끗해질 일이었어."
   "어쨌든 굴러 들어온 놈이오. 백 아무개란 놈이 어떤 공갈을 치더
라도 당분간은 버텨 봅시다. "
   그들에게로 사내 한 명이 다가왔다. 손에는 핸드폰을 쥐고 있었다.
   "사장님, 임용현의 전화입니다. "
   김양호가 핸드폰을 건네받아 귀에 대었다.
   "여보시오."
   "사징림, 박철규가 팔래스 호텔로 들어갔습니다. 그곳 뒤쪽 주차
장에서 누군가와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요."
   "누구이?"
   "그건 모르겠습니다. 나이 든 사람인데요."
   한동안 두 눈을 껄벅이며 가토의 가슴을 바라보던 김양호가 이윽
고 입을 열었다.
   "미행해라. 그리고 만나는 놈이 누구인가를 알아내 "
   핸드폰을 사내에게 넘겨준 김양호가 전화 내용을 말해 주자 가토
28 밤의 대통령 제』력 -ll
가 이맛살을 찌푸렸다.
    "우에다에게 맡깁시다. 박철규는 지금 상황에서 제일 위험한 놈이
오. 그리고 머리 회전도 보통이 넘는 놈이란 말이오."
    햇살이 뜨겁게 느껴졌으므로 그들은 담장 밑의 나무 그늘로 자리
를 옳겼다.
   수십 명의 사내들이 저택 안에서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 급한 일들은 대개 처리가 되었다. 사망 시간은 아침 8시로 정했
으니 석간 신문에 부고를 실으면 될 것이다.
   "박철규 그놈은 당분간 내버려 둬야 할 거요. 회의 석상에서 그런
발언을 해버렸으니 지금 친다면 조직원들의 의심을 받게 되니까."
   가토의 말에 김양호가 입맛을 다셨다.
   어젯밤 양승일을 습격한 것은 최기대와 야마구치조의 특공대들이
었다. 양승일의 저택 구조를 손금 보듯이 알고 있는 데다가 어제 오
후에 담장 쪽의 감시 카메라를 못 쓰게 만들어 놓았으니 거칠 것 없
는 습격이었던 것이다.
   "안에 들어가 보아야겠소."
   김양호가 안채를 가리키며 말했다.
   "딸은 그런 대로 말귀를 알아듣는데 마누라가 걱정이오. 드러누워
서 헛소리를 지르고 있으니 말이야."
   "장례식에 참석시키지 말고 외부와의 접촉을 막으면 되겠지."
   안채로 향하는 김양호에.게 가토가 별일 아니라는 듯 말했다.
   "아예 정신 병원에 집어넣든지 말이야."
"양승일이 죽었다니."
                                                  배신의 밤 29
    신용수가 눈을 치켜 뜨고 홍득준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반가운 기
 색은 없다. 놀란 듯 입까지 반쯤 벌어져 있었다.
    "심장마비라고 발표가 되었는데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놈들은 새
 벽 4시에 조직의 간부들을 모두 불러놓고 회의를 했고 아침 8시에
 사망 발표를 했어."
    "아마 어젯밤에 죽은 모양입니다. 그래서 미리 준비를 해놓고 사
 망 발표를 했을 겁니다. "
    홍득준이 시큰둥하게 말하자 신용수가 혀를 찼다.
    "후계자가·누가 될 것 같나?"
    "글쎄요. 새벽의 회의에서 그것을 결정했겠지요. 하지만 아직 정
보가 없습니다. "
   "기무라가 와 있지?"
   기무라를 부르라는 말이었으므로 홍득준은 인터폰을 눌렀다. 아래
충에 있던 기무라가 방에 들어선 것은그로부터 5분도 되지 않아서
였다. 기무라가 자리를 잡고 앉자 신용수가 말했다.
   "기무라, 양숭일이 죽었어."
   "들었습니다. "
   "심장마비로 죽었다는데."
   "그것도 들었습니다. "
   "누가 후계자가 될 것 같나?"
   기무라가 머리를 한쪽으로 갸우뚱했다.
  "그건 알 수 없습니다. 다만."
  "다만 뭔가?"
  "야마구치조의 권한이 강해질 것입니다. "
30 밤의 대통령 제』닦-H
   "그렇TH지 ."
   "김양호와 가토 노부야스는 20년 가깜게 밀착된 사입니다. 가토를
양승일에게 접근시킨 것도 김양호였지요."
   "야마구치조의 권한이 강괘지면 상대적으로 김양호의 세력도 강
해지겠군,"
   "예 , 사장님 ."
   "양승일의 사위라는 이 아무개 검사 말인데."
    "그자가 후계자가 되면 조금 달라질까?"
    "어려울 것 같습니다. "
    기무라가 신용수를 찬찬히 바라보았다. 생각하는 듯한 시선이었
다.
    "김양호나 가토가 이 아무개가 양승일의 사위라는 이유로 의리를
지킬지가 의문입니다. "
    "그렇다면 김양호의 시대가 되겠군."
    "어쩌면 가토 노부야스의 시대가 될지도 모릅니다,사장님,"
    그러자 이번에는 신용수가 기무라의 얼굴을 찬찬히 바라보았다.
    "의미심장한 말이군, 기무라."
    "아이즈 고데츠는 야마구치조와는 다릅니다. 사장림."
    "그렇지. 나도 양승일과는 다르지."
   신용수의 얼굴에 천천히 웃음기가 번져 갔다.
   "어쩌면 이것은 하늘이 내게 주신 기회일지도 모른다. 양승일의
급사는 어쨌든 한국의 조직 세계 판도를 바러 놓을 것이 분명하니
까."
                                                 배신의 밤 31
그는 화제를 바꾸려는 듯 말머리를 돌렸다.
   "어때? 주대홍이 그놈은 부산에서 제 몫을 하나? 조성표 그 친구
를 도와서 말이야."
   소파에 둘러앉아 잡담을 나누고 있던 사내들이 일제히 말을 멈추
었다. 저녁 1시 뉴스 시간이었다. TV에서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이동천 검사는 흑석동의 모 상가에 간다는 말을 남겨 놓고 연락
이 끊겼다는데 경찰은 곧 그의 소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발표했
습니다. "
   "빌어먹을."
   자리에서 서둘러 일어난 사내 한 명이 복도를 달려 응접실로 들어
섰다. 웅접실에 앉아 있던 김양호가 머리를 들었다. 그의 앞에도 TV
가 켜져 있었으므로 사내는 잠자코 서 있었다.
   양승일의 저택 안이었고 정원에 세워 놓은 대형 천막 아래에는 수
백 명의 조문객이 모여 앉아 있었다. 그리고 아직도 안채의 빈소를
찾는 외부 손님이 끊이지 않았다.
   "나도 보았어 "
   김양호가 짧게 말했다.
   "이것은 백복동인가 그놈이 방송국에 기사를 준 것이다. 놈은 우
리에게 경고를 한 것이야."
   "사장님, 그렇지만."
   사내가 찌푸린 얼굴로 말을 이었다.
   "놈은 우리가 이 검사를 데리고 있다는 것을 압니다. 그리고 경찰
32 밤의 대통령 제4부-ll
 들도. "
     "내가 처리하겠다. "
     자르듯 말한 김양호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오늘 밤 안에 처리할테니 걱정하지 말어. "
     응접실을 나선 김양호는 정원을 건너 별채로 들어섰다. 별채의 복
 도에 우두커니 서 있던 고대구가 다가오는 그를 바라본 채 움직이지
 않았다.
    "아가씨는 어디 계시냐?"
    "침실에 계십니다. "
    "가서 모시고 와."
    "주무십니다. "
    김양호는 팔을 휘둘러 고대구의 뺨을 쳤다. 얼굴에 손자국이 난
고대구는 잠간 한쪽으로 기울어진 머리를 돌렸을 뿐 움직이지 않았
다.
    "모시고 오라고 했다. "
    그러자 김양호를 따라온 경호원들이 앞으로 나섰다.
   "너회들은 가만 있어."
   김양호의 말에 그들은 움직임을 멈추었다.
   그 순간 앞쪽의 방문이 열리면서 양유경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횐
색 치마 저고리를 입은 그녀의 얼굴은 옷 색깔만큼이나 창백했다.
   "무슨 일이에요?"
   "말씀 드릴 것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양유경이 힐끗 고대구를 바라보았다. 무표정한 얼굴의 고대구는
머리를 든 채 김양호를 바라보고 있었다.
                                                   배신의 밤 33
   "이쪽으로 오세요."
   몸을 돌리며 양유경이 말하자 김양호는 고대구를 밀어 제치고는
그녀의 뒤를 따랐다.
   "방송에 한번 나갔으니 김양호는 지금 한창 머리를 굴리고 있을
if야." -
    백복동이 말하자 박철규가 그를 바라보았다. 차는 한남대교를 건
너가는 중이었다.
   "난 아직까지도 믿을 수가 없어. 김양호가 회장님을 배신했다니
말이야."
   "순진하기는."
   백복동이 혀를 찼다.
   "양승일이 기업체의 명의 이전과 주식을 서둘러 옳기려고 했던 것
이 김양호를 조급하게 만든 거야. 그리고 가토도 양승일보다는 주무
르기 쉬운 김양호가 동업자로 적당하다고 판단했고."
   "더구나 이 검사님은 양숭일과도 다른 성격이야. 김양호에게 야쿠
자와의 교제를 추궁한 적이 있어. 아무리 양승일이 사위로 삼았다지
만 가토는 검사님을 거북하게 생각했을 거야."
   "그렇다고 그 개자식이."
   "이봐. 당신이 회의 석상에서 떠든 건 잘한 짓이야. 잠자코 있었더
라면 지금쯤 어디에선가 칼이나 총을 맞고 누워 있을테니까."
   "재수없는 소리 ."
   박철규가 이맛살을 찌푸렸지만 생각하는 표정이 되었다.
34 밤의 대통령 제4부 -ll
      시계를 내려다본 백복동이 핸드폰을 들었다. 차는 화려한 네온사
  인이 반짝이는 강남대로를 달려가고 있었다.
      "어디 어떻게 나오나 두고 보자."
      다이얼을누르며 백복동이 말했다. 그의 두눈이 번들거리고 있었
  다.
      운전대를 잡고 있던 손달섭이 백미러로 힐끗 그를 바라보았다.
      "여보시오."
      백복동이 소리치듯 말하자 이제 옆자리에 앉은 주대흥도 눈을 껌
  벅이며 그에게로 시선을 주었다.
     "거기, 김양호 사장 바러."
     그가 전화를 한 곳은 양승일의 저택이다.
     "거기 어디십니까?"
     놀란 듯한 사내의 목소리가 들렸다.
     "난 백복동 형사야. 어서 바러."
     그러자 곧 다른 사내가 전화를 받았다.
     "난 보좌관으로 있는 엄기백이오. 나에게 말하시오."
     "보좌관? 엄기백?"
    그렇게 되물은 백복동은 박철규가 머리를 끄덕이는 것을 보았다.
    "좋아, 엄기백 보좌관. 당신들은 대한민국 공무원인 검사를 납치
해 갔어. 당신들 조직이 보이는 것이 없는 모양인데, 김양호한테 전
해. 양승일 회장의 살해 혐의에다 현직 검사치 납치 행위까지 겹쳐
있는데 도대체 어떤 배경으로 살아날 수 있는가 궁금하다고 말이
야. "
   "이것 보시오."
                                                  배신의 밤 35
   "이 씹새끼야, 내 말 아직도 덜 끝났어. 거기에다 야마구치조의 가
토 노부야스와 짜고 한국의 조직 세계를 일년에다 넘기려는 그 매국
노 같은 행위를 국민들이 용서할지 아느냐고도 물어 보란 말이다. "
   "이것 봐."
   "한 시간 안에 풀어 주지 않으면 터뜨릴 거다. 내가 이 검사하고
무슨 의리가 있는 것도 아니니까 말이야. 나도 영웅 한번 되겠단 말
이다. 이 말을 전해."
   핸드폰의 스위치를 끈 백복동이 길게 숨을 내쉬었다.
   "검사님이 그 소굴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었어. 내가 그때 말렸어
야 하는데 검사님이 너무 서두르는 바람에."
   힐끗 뒤쪽을 바라본 백복동이 다시 입맛을 다셨다.
   "우리 갈비나 뜯읍시다. 어이 주 형, 갈비 어때?"
   의자에 길게 늘어져 있던 주대홍이 번쩍 머리를 들었다.
   "좋시다. 갑시다. "
    앞차가 골목으로 우회전해 들어가자 임용현이 운전석에 앉은 사내
의 어깨를 쳤다.
   "줬다. 이제야 놈들이 차를 댈 모양이다. "
   그는 머리를 돌려 뒤를 따르는 또 한 대의 승용차를 바라보았다.
   "이봐, 천천히. 놈들이 눈치채지 않게, "
   밤 9시였으므로 저녁 시간에 조금 늦었지만 대개의 음식점은 술을
곁들여서 파는 법이다. 임용현은 앞쪽 차가 들어간 골목에 어지럽게
붙어 있는 음식점 간판들을 보았다. 골목을 오가는 행인들도 많다.
   "저기 갈비집 앞에 있는데요."
36 밤의 대통령 제』분 -ll
    앞자리에 앉은 사내가 말했다. 쥐색 승용차는 갈비집 앞에 얌전히
 주차되어 있었는데 이미 차는 비어 있었다. 모두 식당 안으로 들어간
 모양이다.
    "여기다 세워."
    임용현이 짧게 소리치자 골목의 중간쯤에서 차는 급정거를 했다.
뒤따르던 차가 하마터면 뒤 범퍼를 받을 뻔하면서 섰다. 임용현이 차
에서 내리자 두 대의 차에서 사내들이 쏟아지듯 따라 내렸다.
    "놓치지 마라."
    저고리에 소음기를 낀 권총을 감아들고 앞장을 선 임용현이 말했
다. 그까지 합해 사내들은 모두 일곱 명이었다. 저쪽은 네 명이어서
어등비등했지만 임용현은 자신이 만만했다. 이쪽은 세 명이 총으로
무장을 하고 있는 것이다.
    식당 밖에서 유리창을 통해 안을 들여다본 임용현치 부하들을 돌
아보았다.
   "저기 안쪽에 있군."
   안쪽 구석에 이쪽으로 옆얼굴을 보이며 박철규가 앉아 있었다. 그
는 이제까지 회장의 직속 보좌관으로 김양호의 보좌관이었던 자신을
벌레 취급 해왔지만 지금은 상황이 바뀌었다. 박철규의 앞에 두 사내
가 앉아 있었는데 모두 낯선 얼굴들이었다.
   "좋아, 들어가자."
   저고리 속으로 리볼버의 총신을 움켜쥔 임용현은 앞장서서 식당
안으로 들어섰다. 연기와 열기로 가득 찬 식당 안은 빈자리가 보이지
않았고 떠들색했다 그들은 익숙한 동작으로 식당에 넓게 퍼졌고 박
철규를 향해 거리를 좁혀 갔다.
                                                  배신의 밤 37
      박철규가 엽차잔을 들다가 머리를 돌렸다.
      "아니, 임용현이. 너 꿴일이야?"
     찌푸린 얼굴로 박철규가 대뜸 묻자 임용현은 저도 모르게 침을 삼
  켰다.
     "갑시다, 나하고,"
     식탁 앞으로 바짝 다가서며 그가 말했다. 박철규의 시선이 그가
  손에 감고 있는 저고리에 머물렀다.
     "그거, 총이놨"
     "잔소리 말고."
     부하들이 이제 식탁에 앉은 세 사람을 빙 둘러쌌으므로 뒤쪽에서
 는 보이지도 않았다.
    "그리고 네놈들도."
    임용현이 나란히 앉은 두 사래에게 말하자 그들은 서로 얼굴을 마
 주보았다.
    "우리 말이오?"
    "그래, 어서 나가자. 쏴 죽이기 전에. "
    "여보시오."
   40대의 사내가 입을 반쯤 벌리고는 임용현을 바라보았다.
    "우리가 어쨌다고 이러시오?"
   임용현의 시선이 그들의 앞에 놓인 냉면 그릇에 머물렀다. 반쯤
먹다 남긴 냉면 3룻 속에 젓가락이 담겨 있었다. 박철규 앞에는 음
식 그룻이 없다.
   퍼뜩 머리를 돌린 임용현이 막 몸까지 돌리는 순간 무엇인가 묵직
한 것이 뒤통수를 쳤다. 그가 식탁 위에 코를 박으며 엎어지자 옆에
38 밤의 대통령 제실근 -I[
 서 있던 부하 한 명도 어깨를 움켜쥐고는 비명을 질렀다. 뒤쪽에서
 세 명이 나타난 것이다.
    식당 아주머니들이 자지러지는 듯한 비명을 지르자 근처의 손님들
 이 젓가락을 전 채로 뛰어 달아났다.
    주대흥은 숨어 있던 화장실에서 주워 온 세면기의 구부러진 쇠파
 이프를 휘두르고 있었다. 휘두를 때마다 바람 소리를 내는 쇠파이프
 에 세 명이 맞아 떨어졌다. 박철규도 사내 두 명을 주먹으로 쳐서 자
 빠뜨렸고 백복동은 권총을 들어 겨누는 사래를 아슬아슬한 순간에
냉면 그룻을 던져 피하고는 사타구니를 차서 거꾸러뜨렸다.
    손달섭이 도망치는 사래를 다리를 걸어 넘어뜨리고는 의자를 들어
내려치는 것으로 싸움은 끝이 났다. 식당 안의 손님들이 한 사람도
남아 있지 않았으므로 자빠지고 주저앉아 있는 것은 임용현의 무리
들뿐이었다.
    "이놈이 총을 가지고 왔어."
    땅에 떨어져 있는 임용현의 리볼버를 집으면서 박철규가 혼자소리
를 했다.
   "나도 이제 쫓기는 신세가 되었어."
   그의 낮은 목소리에 주대홍이 힐끗 시선을 주었다.
   "갈비 냄새만 맡고 가는구만."
   주대흥이 임용현의 목덜미를 잡아 일으켰다.
   "이놈이오, 대장이?"
   박철규가 머리를 쿄덕이자 1는 한 손으로 임용현을 달랑 들어 을
렸다.
                                                  배신의 밤 39
   양유경이 방으로 들어서자 이동천이 머리를 들었다. 이곳은 천호
동의 단독 츤택으로 찻길과도 한참이나 떨어진 곳이다. 그의 앞자리
에 앉은 양유경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다섯 평쯤 되는 응굅실 안에서
는 퀴퀴한 곰팡이 냄새를 풍겨·왔다. 소파만 달랑 놓여 있었고 그 흔
한 TY세트도 보이지 않은 이곳은 조직에서 가끔씩 합숙소로 이용하
는 집이었다.
   바깥에서 두런거리는 사내들의 말소리가 들리다가 곧 그쳤다. 방
안의 정적을 이동천이 먼저 깨었다.
   "바딸텐데 여긴 왜 온 거야?"
   넥타이의 매듭이 늘어져 있는 데다 머리는 헝클어져 있었지만그
의 시선은 곧았다. 낮은 목소리로 그가 다시 물었다.
   "날 구해내려고 온 건가?"
   "부탁하려고 왔어요. 나나, 아버지, 그리고 회사에 대해서 상관하
지 말아 달라고."
   양유경이 그의 시선을 받았다.
   "내 앞길은 내가 알아서 헤쳐 나갈 테니까."
   이동천이 창 밖을 바라보았다.
   "김양호와 상의하고 온 모양이군."
   "날 없애려고 했다가 부담이 되었겠지. 증인이 몇 명 있었으니
까."
   "약속해 줘요.상관하지 않겠다고."
   "혼자서 혜쳐 나간다구?"
   "그래요."
40 밤의 대통령 제4부-ll
"아버지의 살해범도 흔자 찾아낼 셈인가?"
"상관하지 말아요."
"협박을 당하고 있나?"
"내가 스스로 결정한 일이에요."
이동천이 손바닥을 두어 번 부딪쳐 소리를 내었다.
"머리를 끄덕이는 것은 녹음이 안될테니 박수를 친 것이다. "
   "네 조직에서 냄새가 났어. 그것을 풍기는 놈은 김양호였다. 그놈
한테서는 시체 색는 냄새가 났다. "
    "내가 조직을 관리하게 되었다면 제일 먼저 정리할 놈이 그놈이었
지. 그것을 그놈도 눈치챘었을 것이고."
    이동천은 의자에 등을 기대었다.
    "그리고 네 아버지도 짐작하고 계셨을 것이다. "
    "아직도 미련이 있어요?"
    "한 가지 있어."
    이동천의 시선이 그녀의 얼굴에서 스타킹을 신은 발가락 끝까지를
훌고는 다시 올라갔다.
    "하지만 그것도 끝이다. "
   "당신에게 조직을 맡길 수는 없어요."
   "그렇겠지. 김양호는 말할 것도 없고 너도 마찬가지로 날 구속하
지 못했을 거야."
   "당신을 살려 주는 조건으로 약속을 해요. 이번 사건,그리고 조직
에 상관하지 않겠다고."
                                                 배신의 밤 41
   "그리고 너까지 말인가?"
   그러자 양유경이 머리를 끄덕였으므로 이동천이 웃었다.
   "상관하지 않겠다. "
   그는 어깨를 늘어뜨리며 길게 숨을 내쉬었다.
   "난 아무것도 모르고 그리고 너와는 아무 관계가 없는 사람이야.
=1러면 되었나?"
   아침 10시가 조금 지난 시간이었다.
   경부 고속도로 하행선의 천안 휴게소에 먼지를 뒤집어쓴 승용차
두 대가 들어서더니 나란히 멍추어 섰다. 하행선의 여행자가 별로 많
지 않은 모양으로 비어 있는 주차장의 공간 위로 아침 헛살이 하얗게
쏟아지고 있었다.
   승용차의 문들이 일제히 열리면서 사내들이 쏟아지듯 내렸고 그들
은 휴게소의 식당으로 들어갔다. 모두 굳어진 표정들이어서 식당의
종업원들은 시선을 마주치려 하지 않았다.
   "텁구만. "
   둘러앉은 사내들 중 입을 먼저 연 것은 백복동이다. 그러나 그의
얼굴은 땀 한방울 나지 않았고 더운 기색도 아니다.
   "여기 에어컨 없나?"
   하고 다시 중얼거렸지만 에어컨을 찾는 눈치도 아니었다. 나머지
사내들은 모두 입을 다문 채 움직이지 않았다.
   이동천은 상석에 앉아 있었다. 그가 찾아 앉은 것이 아니라 먼저
자리잡은 그들이 그에게 자리를 만들어 주었기 때문이다. 그는 주위
에 앉은 사내들을 둘러보았다.
42 밤의 대통령 제4부 -lE
   오른쪽에 앉아 있는 것은 백복동이다. 그는 시선이 마주치자 얼굴
에 웃음을 띠었는데 깎지 않은 수염에 횐 털이 드문드문 나 있다. 그
옆에 앉아 있던 손달섭은 얼른 눈을 내리깔고는 시선을 마주치려 하
지 않았다.
   이동천은 그 옆에 무심한 얼굴의 주대흥을 바라보고 얼굴에 희미
한 웃음을 띠었다. 의자에 거구를 올려놓은 그는 두 눈을 끔벅이며
그의 시선을 받았다. 그리고 그의 옆, 이동천의 왼쪽에 앉은 사내는
박철규였다.
   "조금 전에 부산 지검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는데."
   이동천이 입을 열었다.
   "난 여러가지 이유로 직위 해제되었소.파면이 안된 것이 다행이
라고 하더군."
   그는 다시 얼굴에 웃음을 띠었다.
   "조직 세계와의 밀착, 월권, 근무지 무단 이탈 둥이오. 아마 누군
가가 권력의 상충부에 날 모함했겠지."
   "미련은 없소. 양 회장의 조직에도 더 이상 연연하지 않겠고."
   떠들색하게 지껄이며 식당으로 들어선 사내 두 명이 1들의 분위
기에 눌려 입을 다물고는 멀찍이 떨어져 앉았다.
   "어차피 저도 조직을 떠난 몸입니다. "
   박철규가 입을 열었다.
   "회장님은 저에게 목숨을 바쳐 검사님을 도우라고 하셨습니다. 상
황이 어떻게 되든 전 상관 없습니다. 흘가분하게 일하려고 가족도 미
국으로 보냈습니다. "
                                                  배신의 밤 43
    "이것 정말 황당하구만."
    입을 연 것은 백복동이다. 입맛을 다신 그가 말을 이었다.
    "검사님이 말쏭은 안하셨지만 아마 새로운 조직을 세우실 것같이
보이는데, 그렇지 않습니까?"
    "그렇소."
   "제가 필요하십니까?"
   "필요한 건 당신의 정보 수집력과 기획력이오."
   "조직의 궁극적인 목표는 무엇입니까?"
   "조직 세계의 통일이오."
   자리를 고쳐 앉은 이동천이 그들을 둘러보았다.
   "내가 기꺼이 회장님의 후계자가 되려고 한 것은 한국의 조직을
통일시키고 외국 세력들의 침투를 막으려는 의도였소. 그것은 가능
하게 보였소."
"하지만 지금도 늦은 것이 아니오. 난 해낼 수 있소,"
"하지요."
백복동이 머리를 끄덕였다.
"이 빌어먹을 경찰 노룻을 끝내고 나도 새 인생을 살아갈랍니다. "
"나도 넣어 주시오."
불쑥 나선 것은 주대홍이다.
그는 사래들의 시선이 쏟아지자 목에다 힘을 주었다.
"지가 앞으로 형님으로 모시지요. 동생을 삼어 주신다먼."
이동천이 머리를 』1덕이며 웃었다.
"그럼 넌 이제부터 내 동생이다. "
44 밤의 대통령 제4부 -lF
    "보스는 형님이오."
    백복동이 아는 척을 했다.
    "우리도 모두 이제부터는 형님이라고 부르겠소. 검사 소리는 지겹
소. "
    "그령습니다. "
    박철규가 맞장구를 쳤고 입을 다물고 있던 손달설도 이를 드러내
며 웃었다.
    배장근은 이제 일곱 개의 유흥업소와 여행사 하나, 무역 회사 하
나를 소유하게 되었는데 물론 대표의 명의는 전문 경영인이거나 이
름만 빌린 인물들이었다. 그는 또한 전차섭이 살해된 이후로 밀수 조
직의 양대 거물인 서동팔과 김억수를 장악해서 그들을통해 밀로체
프가 보낸 밀수품들을 처리하는 한편, 자신이 관리하는 무역 회사를
통해 갖가지의 상품들을 러시아로 보내고 일었다.
    밀로체프는 자금 이외에도 30명이 넘는 조선족 마피아를 훈련시
켜 보내 주었으므로 병력도 갖추어진 상태였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각종 총기를 익숙하게 다룰 수 있는 인민군이나 러시아군 출신이 대
부분이었다. 따라서 부산의 밤의 세계는 기존의 보수 조직인 조성표
조직과 아이즈 고데츠,그리고 요즘 들어 수시로 왕래가 잦은 야마구
치조, 거기에다 러시아 마피아가 흔합된 혼돈의 시대가 되어 가고 있
었다. 그러나 아직 대부분의 영지를 소유하고 있는 데다가 거대한 조
직력을 깆춘 조성표는 건재했다.
   조성표는 배장근에 의해 잠시 시달림을 받았지만 아직도 여름날
밤에 모기새끼 몇 마리가 귀찮게 한다는정도로밖에 생각하지 않고
                                                  배신의 밤 45
있었다. 수십 년 간에 걸쳐서 쌓아올린 조직이다. 몇 명이 피해를 입
었다고 하더라도 그 자리는 금방 채워지게 되는 것이다.
   식당에 앉아 있던 세 사내가 들어서는 배장근을 보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점심 시간이 휠씬 지난 시간이어서 식당은 비어 있었다.
   "형님, 이쪽이 윤경산 동무이시고 이쪽은 조형근 동무이십니다. "
   김달수가 두 사내를 차례로 가리키며 말했다.
   "이분은 배장근 형님이십니다. "
   배장근은 그들과 차례로 손을 잡고는 자리에 앉았다.
   두 사람 모두 40대로 보였고 피부가 검은 데다가 마른 체력이었
다. 차이가 있다면 윤경산이 키가 더 큰 데다가 눈빛이 사나웠는데
아랫사람를 오래 부려 온 듯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오늘 아침에
부산에 도착한 그는 밀로체프가 보낸 고문관이었다. 옆자리의 조형
근은 그의 보좌관금 될 것이다.
    김달수가 헛기침을 하고 입을 열려다가 주춤거리며 그만두었다.
평소 밝고 거침없는 성격의 그였으므로 배장근은 입맛을 다셨다.
    윤경산은 소련군 장교 출신으로 소련 국적을 가진 조선족이었다.
소비에트 연방이 붕괴하자 재빨리 군복을 벗고 밀로체프와 손을 잡
은 그는 밀로체프 군단의 실력자로 부상했다는 것이다. 김달수는 물
론이고 조선족 출신들은 모두 그의 손을 거쳐 마피아에 가입했으므
로 김달수가 언 것도 무리가 아니다.
    "동무의 노고를 치하하루."
    윤경산이 입을 열었는데 마른 몸집에 비해 목소리가 컸다
    "밀로체프 동지께서도 동무의 업적을 찬양하고 계셨소."
    머리를 든 배장근이 그를 바라보며 웃었다.
46 밤의 대통령 제4부 -ll
"내가 왜 당신 동무요?"
    "한국에서는 동무란 말이 어릴 때 고추 내놓고 어깨동무할 때 쓰
는 동무밖에 없는데."
    윤경산이 눈을 부릅떴으나 입을 열지는 않았다. 김달수는 침을 삼
켰다.
    "나에게 동무란 말 쓰지 마시오. 구역질이 나니까. 난 공산당 놈들
을 보면 눈이 빙글빙글 돕니다. "
    배장근이 손가락으로 눈 주위에 원을 그렸다.
   "그리고 내가 왜 당신의 치하를 받아야 해?"
   "이보시오, 동‥‥‥‥
   그러다가 말을 멈춘 윤경산은 얼굴이 검붉게 되어서 배장근을 노
려보았다.
   "난 당신의 고문관이야. 말을 삼가. 그렇지 않으면
   "그렇지 않으면?"
   배장근이 식탁 위로 와락 상체를 굽히고는 그를 쏘아보았다.
   "날 어떻게 할테냐, 이 개자식아?"
   그가 주먹으로 식탁을 내려치자 엽차잔이 튀어올랐다가 떨어지면
서 물이 쏟아졌다.
   "내가 없으면 이 조직이 어떻게 될 것 같으냐?"
   그리고는 주머니에서 선뜻 권총을 빼어 들고는 윤경산의 가슴을
겨누었다.
   "널 쏘아 죽이고 밀로체프에게 다른 고문관을 보내 달라고 하면
당장에 한 놈을 다시 보내 줄 거야. 무슨 말인지 알아듣겠지?"
                                                  배신의 밤 47
   얼굴이 하앙게 질린 윤경산이 배장근을 쏘아보았으나 대답하지는
않았다.
   "넌 여기 머물게 되었으니 내 지시를 받는다. 밀로체프에게 연락
할 일이 있으면 내 허가를 받아야 하고, 나와 상의하지 않은 일에는
간섭할 수가 없다. "
   "네가 이곳 일에 대해서 무엇을 안다고 나설 것이냐? 잠자코 있는
것이 신상에 이로울 것이다. "
   권총을 집어넣고 자리에서 일어선 배장근이 손뼉을 치자 식당문이
열리면서 사내 두 명이 들어섰다. 조선족 출신들이 아닌 이번에 쁩은
부산 출신의 부하들이다.
   "이분들을 안내해라."
   그는 윤경산에게로 몸을 돌렸다.
   "앞으로 나를 부를 뻔 보스라고 부르도록. 난 너회들 동무가 아니
야. "
   우에다 산자에몬은 온몸에 땀을 흘리면서 다시 모래시계를 바라보
았다. 5분짜리를 네 번째 뒤집었으니 20분을 채울 모양이었다
   글로리 호텔 사우나는 부산에서 알아주는 1급 사우나로 쑥, 핀랜
드, 자외선, 증기 사우나 등이 있었는데 우에다가 즐기는 것은 핀랜
드 사우나였다.
   횐 모래가 물처럼 떨어져 내리는 것을 보던 우에다는 자신의 단단
한 몸을 내려다보았다. 40대 후반이었지만 허리와 배의 군살도 거의
보이지 않았다 한쪽 어깨에서부터 둥까지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부
48 밤의 대통령 제딘부 -ll
 하인 흔다 혜이하치의 모습을 그린 문신이 쩍혀 있었는데 그것은 그
 의 자랑거리 중의 하나였다.
    목욕탕 바깥 쪽에서 두런거리는 말소리가 들렸다. 오후 5시여서
 사우나에 손님이 뜸한 시간이었다. 모래시계는 반쯤 남아 있었다. 2
 분 30초면 숫자로 150을 천천히 세면 될 것이다.
    그때 사우나 문이 열리면서 거인이 들어왔다. 사우나에 앉아 있던
 사내들은 모두 눈을 껄벅이며 그를 바라보았다. 사우나에는 우에다
 를 포함하여 세 사람이 있었는데 두 사람은 그의 부하들이었다.
    사래는 스모 선수처럼 체격이 좋았다. 그러나 스모 선수가 배로
 무게를 늘리는 데 반해 이 사람은 어깨와 가슴 그리고 두 팔이 유난
 히 굵다.
    우에다는 힐끗 모래시계를 바라보았다. 온몸에서 물을 뒤집어쓴
 것처럼 땀이 홀러내리고 있었다. 모래시계는 1분 정도 분량의 모래
가 남아 있었지만 그는 엉덩이를 일으켰다. 그가 일어서자 부하들도
따라 일어섰다. 20여 년을 싸움터에서 보낸 우에다였다. 수없이 많은
기습을 받아 보았고 이쪽도 해본 터라 그는 예감이 이상하면 식사를
하다가도 수저를 놓고 식당을 나오는 버릇이 있다.
   그가 문 앞에 앉은 거인을 막 지나갈 때였다. 잠자코 앉아 있던 사
내가 불쑥 손을 뻗어 우에다의 한쪽 팔을 쥐었다. 거인은 이미 반쯤
몸을 일으킨 상태였고 놀란 이쪽이 잡힌 팔을 빼려고 기운을 쓰자 와
락 잡아당겼다.
   경호원 두 명이 두 팔을 벌리며 한걸음에 달려왔다. 한 명은 수도
로 거인의 어깨를 쳤고 다른 하나는 발끝으로 옆구리를 찍는다.
   주대흥은 팔 안에 안긴 우에다의 허리를 두 손으로 감싸 안았다.
                                                 배신의 밤 49
땀에 젖은 얼굴이어서 손바닥이 미』1러졌으나 곧 두 손 안에 우에다
의 머리가싸러어졌다. 경호원들이 어지럽게 손발을 날렸으나 입구
가 좁은 데다가 주대홍이 우에다를 앞으로 내세웠으므로 함부로 손
발을 날릴 수가 없었다.
   주대홍은 감싸 안은 우에다의 머리를 옆쪽으로 힘껏 틀었다. 그
순간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리면서 얼굴이 등쪽으로 돌아간 우에
다가 버둥거리던 사지를 늘어뜨렸다.
   우에다를 사내들 쪽으로 밀어 던지면서 주대흥은 아수라와 같은
모습으로 달려들었다. 한 사래의 발끝이 배를 찍었으나 선뜻 발목을
두 손으로 잡고는 빙글 휘둘러 벽에 내팽개쳤다. 태질당한 개구리처
럼 사래가 사지를 벽에 붙이고는 퍼들거렸다. 다른 사내 한 명이 달
려들다가 주충 물러섰다.
   온믐이 땀과 열에 젖어 물을 뒤집어쓴 것처럼 보이는 주대흥이 다
시 한걸음을 내딛고는 사내가 휘두른 주먹을 어깨로 받으면서 발을
들어 그의 배를 찼다. 허리를 굽힌 사내의 됫머리를 해머와 같은 주
먹으로 내리치자 곧 사우나 안은 조용해졌다. 밖에서 욕객들의 말소
리가 들렸다.
    얼굴의 땀을 손바닥으로 훌어낸 주대흥이 사우나를 나갈 매 모래
시계는 비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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