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새로운 세대

9. 새로운 세대 
    

 

 

 

"어서 오게 김 사장. 기다리고 있었어."
    니트 셔츠 차림의 양숭일이 양유경과 이야기를 하고 있다가 김양호를 맞았다.
   "안녕하셨어요?"
   자리에서 일여선 양유경이 인사를 하자 김양호가 웃어 보였다.

그는 양승일의 앓자리에 앉았다.
   양승일의 흑석동 저택은 서을애 있는 네 곳의 숙소 중 가장 규모가 컸으며 오래된 목조 건물이었다. 그러나 양승일은 특별한 일이 없는 날은 이곳에서 화초를 가꾸거나 골동품을 매만지는 것을

낙으로 여기고 있었다.
   "부산에서 소란이 끊이질 않는구만."
   양승일이 웃음 떤 얼굴로 말하자 김양호도 따라 웃었다.
   "조성표의 유람선은 배장근이 공격한 것 같습니다. 일곱 명이 실종되었다는군요."
     "그자가 우리에게 추파를 던질 만도 해. 배장근이 하나 처리하지 못하고 있으니."
     김양효가 힐끗 양유경을 바라보았다.

이제까지 양유경 앞에서 사업 이야기를 나눈 적이 없었다.
     "내가 오늘 김 사장을 부른 것은 우리 그룹을 정비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해서야.

그래서 유경이도 불렀네."
     양승일이 말을 이었다.
    "이제 사업체들을 양성화시킬 때가 되었어.

 대리인 명의로 되어 있는 업체들도 모두 명의 변경을 해야 할 것이고."
    "당연한 조치입니다, 회장님."
    김양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후계 체제도 정비되었으니 응당 그런 조치가 뒤따라야 합니다. "
    "정리하려니 골치가 아파."
   탁자 위에 놓여진 서류를 김양호 앞으로 밀어놓은 양승잎이 소파에 둥을 기대었다.
   "유흥업소 28개는 모두 타인 명의로 되어 있지만 당장에 나나, 유경이,

또는 이 검사 앞으로 돌릴 수는 없어. 당분간은 그대로 두는 수밖어1 ."
   "그렇습니다. 만일 지금 옮기신다면 후유증이 큽니다.

그리고 이제까지 대리 사장들이 잘 해왔으니 까요."
   고개를 끄덕인 양승일이 양유경을 바라보았다.
   "잘 듣고 네가 이 검사에게 이야기해 줘라.

그 사람, 나한테서 이런 이야기 듣는 것을 거북해 할테니까."
   그러자 김양호가 얼굴에 웃음을 띠었다.
   "가토 씨가 부러워하더군요,회장님.사내답다고 했습니다. "
   "난 겉모양 같은 건 개의치 않아. 그놈의 천성과 기질을 본 것이 fl . "
    양승일의 말은 계속되었다.
    "가토 씨와 합자한 사업은 어제 그 사람과 만나 이야기가 되었고,
나머지 16개의 사업체는 거기 적힌 대로 망의를 바꾸고 주식을 옮겨주게 ."
    서류를 출어보며 양숭일의 말을 듣던 김양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주식 상속에 조금 비용이 들겠지만 곧 끝내TR습니다.

별 문제는 맘습니다, 회장님."
    "자네 앞으로 동원 전자의 지분을 옮겨 놓았어. 자레가 애착을 갖는 것 같아서."
    서류를 출어보던 김양호의 눈이 둥그래졌다. 자본금 50억에 연간
매출 2천5맥억의 회사민 동원 전자는 반도체를 생산하는 유망 업체
로 매년 200퍼센트의 성장률을 기록해 왔파. 그 회사의 지분 60퍼센
트가 그의 앞으로 옮겨지도록 적혀 있는 것이다. 그것은 2천5백억
매출의 업체를 소유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저에게 이런‥‥‥‥
    김양호는 목이 메인 듯 헛기침을 했다.
    "저는 그런 자격이 없습니다, 회장님."
    "함께 같이 살아가는 거야."
    웃음 떤 얼굴로 양승일이 말했다.
"난 이제 돈에 대한 애착은 없어. 남은 것이 있다면 명예뿐일세."
    본채에서 잔디밭을 사이에 두고 별채가 세워져 있었는데 그곳이
 말하자면 안채였다. 별채로 돌아온 양유경은 용접실의 탁자에 서류
 를 던져 놓고는 소파에 앉았다. 어머니는 쇼핑하러 나갔으므로 집안
은 조용했다.
    이윽고 탁자위의 인터폰을 집어 든 그녀는 스위치를 눌렀다.
    "여보세요."
    굵은 남자의 목소리가 귀를 울렸다.
    "전데요. 잠간만 저 좀 보아요."
    인터폰을 내려놓은 양유경은 심호흡을 하듯이 길게 숨을 쉬었다.
고대구가 그녀의 앞에 나타난 것은 그로부터 5분 후였다.
    "부르셨습니까?"
   조금 느린 말투로 물으며 그가 양유경을 내려다보았다. 각진 턱에
콧등이 중간 부근에서 무너져 내린 데다가 한쪽 눈 밑에 가로로 릿어
진 상흔이 있어서 누가 보아도 쉽게 권투 선수 출신임을 알 수 있었
다. 실제로 그는 예전에 아마추어 미들급 챔피언이었다.
   "거기 앉으세요."
   앙유경이 웃는 얼굴로 앞자리를 가리키자 고대구는 무표정한 얼굴
로 자리에 앉았다. 그는 양유경의 전속 보디 가드로 양승일애 의해
특차편 사내였다.
   "요즘 바쁘세요?"
   "바쁘지 않습니다. "
   그럴 수밖궤 없다. 요즘 양유경은 거의 밖으로 나가지 않았던 것이다.
                         "저어, 내일 말예요."
                         양유경이 운음 떤 얼굴로 말했다.
                         "아쵱 일쩔 비행기로 부산에 갔다가 저녁때 돌아와.Or 우리 ."
                         "그러지요."
                         고대구가 머리를 끄덕이며 말다.
                         "회장님 허락을 받구요."
                         "몇 시 비행기로 가십니까?"
                         "됐어요."
                         얼줄애서 웃음기가 사라진 양유경이 눈을 깜박이며 고대구를 바라
                      보9171.
                         "백만 원 드릴게요. 절대로 마버지갠 비밀로 해줘요. 고대구 씨하
                      고 저만 알기로 하고.부탁드리는 거예요."
                         "2백만 원을 드릴게요. 돈 이야기로 자존심이 상하셨다면 사과하
                      겠어요. 하지만 다른 방법이 생각나질 않아서."
                         "아침에 갔다가 저벽애 오면 아무도‥‥‥‥
                         고대구의 표정 없는 얼굴을 향 말하던 양유경이 말을 멈추었다.
                      방안에는 한동안 정적이 흘렀다. 고대구는 틱을 든 채 그녀를 물』1러
                      미 바라보는 자세였고 양유경은 아랫입술을 물었다가 침을 삼켰다.
                         이윽고 그녀가 정적을 었다.
                         "알았어요. 재 말, 기분 상하셨다면 사과할게 요.쟤가 어린애같이 굴었어요."
    "아닙니다. "
    자리에서 이어선 고대구가 머리를 숙였다.
   "제가 3냥 미안합니다. "
   고대구가 방을 나가자 양유경은 벽시계를 올려다보았다. 오후 3시
였다. 이동천이 자리에 앉아 있을 시간이다.
   탁자 위에 놓여 있는 전화기로 시선을 옮긴 그녀는 한동안 그 자
세로 움직이지 않았다. 전화는 당장의 갈증을 풀어 주기는 해도 끊고
나면 더욱 목이 타는 것이다.
    택시에서 내린 오세미는 빠른 걸음으로 건널목으로 다가갔다. 오
후 6시가 되어 있었지만 아직도 이글거리는 열기에 피부가 따가운
무더운 날이었다.
    사람들 사이에 끼여 서사 건너편 신호등을 바라보고 있던 그녀는
다시 팔목 시계를 내려다보았다. 약속 시간에 늦은 것은 아니지만 왠
지 조바심이 났기 때문이다. 건너편의 수영 공원에서 오가는 남녀들
이 조그맣게 보였다.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아지자 옆으로도 사람들
이 부딪쳐 왔다. 반걸음쯤 옆으로 비켜선 오세미는 이맛살을 찌푸렸
다. 오늘따라 신호 변경이 길게 느껴진 것이다.
   "이봐, 오세미 씨 나하고 같이 좀 가실까."
   조금 전 옆에 붙어 선 사내였다.
   그가 다시 옆으로 바짝 붙어 서는데 사람들이 차도로 몰려나갔다.
그 사내가 오세미의 한 팔을 붙잡자 반대 편에서도 다른 사래가 다가
와 그녀와 어깨를 마주대었다. 그들은 걸어가는 사람들 틈에 끼여 차도를 건넜다.
   "우린 경찰이야.반항하지 말고 따라와."
   사내의 말 소리는 낮았으나 저항할 수 없는 무게가 실려 있었다.
그리고 사내가 그녀의 이름을 불렀을 때부터 오세미는 다리의 힘이
쭉 빠져 있었다.
   그들이 공원의 담을 끼고 돌아 나가자 승용차 한 대가 그들에게로
다가와 멈추었다. 그들은 됫좌석의 문을 열고 들어가 앉았다.
   "오세미 씨, 지금 어디로 가는 길이지?"
   그에게 처음 말을 건넸던 사내가 물었다. 모난 얼굴에 눈매가 날
카로운 사내였다. 차는 느린 속력으로 공원 앞을 지나더니 대로로 나
와 달리고 있다.
   "내가 무슨 죄가 있어요?"
   이제 오세미도 기운을 차렸다. 두 눈을 치켜 뜬 그녀가 다시 소리쳤다.
   "이것 보세요. 대체 왜 이러시는 거예요?"
   "정말이o 정말 죄가 없어?"
   옆쪽 사내는 잠자코 있었지만 나이가 들어 보이는 사내가 눈을 부
릅뜨고 물었다.
   "네가 지금 누구하고 같이 있는지 말해 줄까?그만하면 알겠지?"
   "넌 지금 조세준이란 놈을 만나러 가는 거야. 그렇지?"
   아랫입술을 깨문 오세미는 대답하지 않았다. 가슴이 뛰어서 대답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얼굴에 웃음을 띠며 사내가 말을 이었다.
"우린 네 목숨을 구해 준 거란 말이다, 이 순진한 자식아."
   "조새준이 널 배신했어. 지금 수영 공원 안에는 조성표 부하들이
좌악 깔려 있단 말이다. "
   "당신들은 누구예요?"
   마침내 오세미가 입을 열었다. 이재 그녀는 두려움에 가득 찬 시
선을 숨기지도 않고 있었다. 그들은 이쪽의 위치도, 그리고 행동도
파악하고 있는 것이다.
   사내가 다시 입을 열었다.
   "배장근이도 그렇지. 널 이렇게 흔자 내보내다니, 하다못해 경호
라도 붙여 줄 것이지."
   "난 서울에서 온 박철규라는 사람이야.배장근이는 이 바닥에서
발이 넓지 못하니까 조금 자세히 말해 주겠는데, 나는 양승일 회장님
을 모시고 있는 박철규라고 한다. "
   "조새준이는 」티에 여행사를 나았는데 지금 수영 공원에는 스무
명이 넘는조성표의 부하가 눈이 빠지게 널 기다리고 있어."
   "널 모텔 앞의 샛길까지 데려다 주마, 그만하면 우리가 너회들의
적대 세력이 아니라는 증거도 될 것이다. 우린 너희들의 아지트를 진
즉무터 알고 있었어."
   오새미가 침을 삼키고는 시선을 내리깔았다.
   "그런데 배장근에게 내 말을 전해 줘oITa어.모레 밤 9시에 해운대 끝 쪽의

뭘강이란 음식점에서 만나자고 해. 알아들었어?"
   그들이 탄 승용차는 이재 해안도로를 달려가고 있었다. 모델로 향하는 길이다.
   "쇗집에는 배장근과 동행 한 명으로 두 사람만 들어을 것.

이쪽도 둘이다.

물론 밖에서는 몇십 명이 기다려도 좋아. 러시아에서 들여온 총들을 가지고."
   그러고는 박철규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술잔을 든 기무라가조성표를 바라보며 말했다.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이 기무라에게 맡겨 주십시오."
    웅얼거리듯 말하는 그의 두 눈은 초점이 없는 데다가 술잔을 든 손이 건들거리고 있다.
    "야마구치조가 숫자는 많을지 몰라도 이곳은 한국이오.

아이즈 고데츠는 한국계 야쿠자란 말입니다. "
    "그거야 당연하지 ."
    천기석이 맞장구를 쳤다. 그는 기무라의 빈 잔애 위스키를 채워
주고는 힐끗 상좌에 앉은 조성표를 바라보았다.
    해운대의 고급 룹살롱인 마우이의 밀실 안이다. 그들은 지금 야마
구치조의 한국 상록애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었다. 조성표가
아가색의 어에서 팔을 풀고는 술잔을 들었다.
   "자아, 마이즈와 우리의 결속을 위해 한잔이다. "
   방안의 세 사내는 일제히 잔을 올리고는 한 모금에 술을 삼켰다.
   "야마구치조는 더이상 아이즈 고데츠의 서울 진출을 방해할 수 없을 겁니다. 
재놈들이 제아무리 한국 정부와 밀착해 있다 하더라도 말01오."
                        기무라는 술에 취했는지 다소 흥분해 있었다. =1는 아가씨가 따라
                    놓은 술잔을 집으려다 손이 텟나가 술잔을 엎질렀다.
                       "그건 우리도 바라는 바요, 기무라 씨. 하지만 당신도 서울에서 겪
                   어 보았겠지만 그게 뜻대로 되지는 않을 거요."
                       기무라가 술기운에 벌개진 눈을 들었다.
                       "우선 하나씩 정리해 나갈 작정입니다. 가까운 곳에서부터."
                       "가까운 곳이라니?"
                       천기석이 묻자 기무라가 손으로 권총을 만들어 쏘는 시능을 했다.
                       "우에다 산자에몬을 없앨 거요. 가도는 곧 제 심복을 잃게 될 겁니다. "
                      "호오. "
                      조성표가 눈을 크게 떴다.
                      "우에다라면 가도의 보좌역 아니오?"
                      "그렇습니다. "
                      "그를 어떻게?"
                      "놈은 일본에 돌아갈 때는 꼭 부산으로 내려와 페리호를 탑니다.
                   비행기 공포증이 있는 놈이지요."
                      기무라가 그들을 둘러보며 웃었다.
                      "한 달에 한 번, 매월 말에 부산으로 내려오지요. 그리고 내일이
                   월말입니다. "
                    "아이즈 고래츠와 야아구치의 전쟁이 시작되는 겁니다. "
   하얗게 불을 밝힌 대여섯 척의 배가 수평선 위에 떠 있었다.

밤 바다는 온퉁 칠혹 같은 어둠에 덮여 어디가 하늘인지 구분조차 할 수 없었다.

다만 배에서 흘러 나온 불빛으로 수평선이 회미하게 드러났다.

그러나 불빛의 크고 작은 것으로 배들의 거리를 산정할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배의 등불의 크기는 제각각일 테니까.
    계단 위에 앉아 바다를 내려다보던 오세미가 옆에 앉은 매장근에게로 머리를 돌렸다.
    "가실 거예요?"
    오늘 밤에는 별이 총총히 떠 있었다. 그녀의 눈동자에 희미한블
빛이 박혀 있었고 얼굴의 윤곽도 뚜겪하게 보였다.
    "갈 거요."
    배장근은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양승일의 조직은 서울의 최대 조직이오.아니,대한민국의 최대
조직이지. 그자는 일찍이 기업 경영을 익히고 전문 경영인들을 영입
 해서 기업과 조직을 확장해 왔어."
   "그자는 야마구치조와 제휴해서 세력을 확장하고 있어요. 그런데
이곳의 조성표는 야마구치조의 경쟁 세력인 아이즈 고데츠와 연합하
고 있지."
    "적의 적은 동지란 말이 있어. 내가 조성표에 대항하고 있으니 나
 에게 적대감을 가질 이유가 없어. 그리고 당신을 구해 준 것이나, 우
 리 위치를 알고도 내버려둔 것을 보아도."
    "조세준이 배신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아요."
   "나한테 말도 하지 않고 나가는 법이 어디 있어?"
   꾸짖듯이 말했지만 배장근이 얼굴을 가깝게 대었으므로 분위기는
경직되지 않았다.
   "놈이 배신한 것은 당연한 일이야.목숨을 걸고 의리를 지킬 만한
놈이 아니야."
   배장근이 그녀의 어를 끌어당겨 안았다. 바람에 실려 그녀의 향
기가 풍겨 왔다.
   "오늘 마룅에 사람을 시켜 조세준의 집을 살펴보았어."
   볼을 마주델 채로 그가 말했다.
   "놈은 집에서 당신을 기다리는 모양이었어. 그리고 집 주위에는
애들이 열 명도 넘게 흩어져 있다는 거야."
   "개같은 놈들."
   "당신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 안돼요."
   오세미가 그의 어에 머리를 기대면서 말했다.
   "난 지금처럼 행복한 적이 없었어요."
   파도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려 왔다. 옆쪽애서는 풀벌레가 척르륵
거러며 울었다. 이윽고 그들은 서로의 숨소리까지 들을 수 있게 되었
다.
   국계 호텔 3층얘 있는 사장실에서 김양호와 이야기를 마친 우에다
산자에몬은 곧장 아래층의 로비로 내려갔다. 바캉스 철에는 여행객
도 많지만 하릴없이 호텔로 모여 드는 군상도 많다. 아직 오전 10시
밖에 되지 않았는데 도 로비는 사람들로 북적거리고 있었다.
    "끝나셨습니까?"
    옆쪽에서 다가오는 사내는 최기대떴다. 그는 우길만이 죽은 이후
로 동원 7'1획 대표이사가 되어 있었다.
   "차를 대기시켜 놓았으니 가십시다. "
    최기대가 앞장을 서면서 말헨다. 그들은 현관 앞에서 대기하고 있
던 벤츠에 을랐다. 밴츠는 뒤를 따르는 호위 차량과 함례 호텔 앓을 떠났다.
   "우에다 씨, 모험하는 71 아쉽니까?"
   차가 속력을 내어 달리자 최기대가 우에다를 바라보았다.
   "아니 천만애, 오히려 잘죈 일아오."
   우에다가 얼굴에 웃음을 며었다.
   "기무라가 날 공격할 만도 하지. 그놈과 나는 아이즈 고츠와 야
마구치조의 선봉장 노룻을 하고 있으니까."
   "놈은 기습을 계획하고 있지만 다행히 우리는 그 정보를 얻게 되
었소. 전쟁은 첫가 운이 좋아야 하고 둘째는 기새가 있어야 합니
다. 이건 오다 노부나가가 한 말이오. 당신은 모르겠지만."
   벤츠는 기세좋게 달려가고 있었다.
   박철규가 지검 청사를 찾아온 것은 처음이었다. 지검 별관 1충의
휴게실에 들어선 그는 주춤거리면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마치 공판
을 받으러 온 피의자 같은 모습이어서 이동천은 얼굴에 운믐을 띠었
다. 전혀 그답지 않은 태도였던 것이다.
   이윽고 그를 발견한 박철규가 다가와 그의 앞자리애 앉았다.
   "전 한번도 재판받아 본 적이 없어서요."
   박철규가 얼굴을 풀고 웃었다.
   "이런 곳에 올 때는 긴장이 됩니다. "
   "그런데 웬일이오?"
   자리에 앉은 박철규가 버롯처럼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쪽에 주의
를 기울이는 사람은 없다.
   "서울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
   "우에다 산자에몬이 부하들을 데리고 온답니다. "
   "그렇다면."
   "조성표에게 기무라가 우에다를 치』3다고 했답니다. "
   "그 말을 조성표가 우에다에게 전했군."
   "그렇습니다. 그래서 먼저 선수를 치려고."
   박철규가 탁자 위로 상체를 숙이며 그를 바라보았다. 얼굴을 잔뜩
정그리고 있었다.
   "검사김, 김 사장은 저에게 우에다를 도우라고 했습니다. "
   머리를 끄덕인 이동천이 엽차잔을 들었다. 김양호는 박철규가 기
무라를 만난 것을 모른다. 박철규가 다시 입을 열었다.
   "검사님, 회장님께서는 이 일을 아십니까?"
   이동천이 머리를 끄덕이자 그는 머리를 한쪽으로 기울였다.
   "그렇다면 김 사장이 저에게 그런 지시를 내릴 수가 없을덴데 요."
   "당신을 움직이게 하는 건 나요."
   "그렇습니다. "
   "회장님은 나에게 이쪽 일을 일임하셨소,"
  허리를 편 박철규가 머리를 」1덕였다.
 "알고 있습니다. "
"회장님은 모른 척하실 거요."
"우에다와 기무라 사이에 싸움이 일어나면 그 배후에 있는 우리와
조성표의 입장이 드러납니다. "
"조성표가 기무라를 도을까?"
 "우리가 우에다를 돕는다면 기무라는 사면초가가 됩니다. "
"그러면 아이즈 고데츠의 힘이 반감되겠군."
"상대적으로 야마구치 쿠미의 힘이 강화될 것이고."
어깨를 편 이동천이 박철규를 찬찬히 바라보았다.
 "그렬게 되면 야마구치 쿠미는 우리와 조성표를 양팔로 끌어안게되」3는데."
"회장은 조직을 확장시키려고 야마구치 주미를 끌어들이셨소. 김양호 사장과 함깨 말이오."
"그렇지요."
"나는 조직의 자주성을 강화시키기 위해 야아구치 주미의 힘을 랠거요.

아이즈 고데츠, 또는 러시아 마피아와 부딪치게 해서."
"또 조성표와 아이즈 고데츠, 가능하다면 신웅수까지 끌어들여서."
"회장님은 싸안고 나는 싸울니다. 이렇게 해야 지금 같은 난국을 평정할 수 있다고 생각했소."
"지시대로 따르겠습니다. "
박철규가 머리를 숙였다.
"백 형사하고도 이야기를 했었습니다. 이제 저도 일하는 명분이 섭니다. "
"우에다를 도와 주도록 하시오."
"알73습니다. 하지만 기무라한태는 이 일을 알려 주어야겠지요?"
둘의 시선이 부딪쳤고 거의 동시에 그들의 얼굴에서는 웃음이 떠올랐다.?"
기무라가 방에 들어서자 테이블에 앉아 있던 조성표가 눈을 크게 떴다.
"아니, 기무라 씨. 잠자기 웬일이오?전화도 않고?"
"예. 급한 일이 있어서요."
기무라는 조성표가 권하는 의자에 앉았다.

점심 시간이 막 지난 시간이었다.
"급한 일이라니, 무슨 일이오?"
조성표가 그의 앞자러에 앉았다.

얼굴에 번질거리는 기름기가 배어 있었다.
"서울에 일이 있어서요."
"서울에?"
눈을 깜박이며 조성표가 그를 바라보았다
"서울에 일이라‥‥‥‥
"그래서 지금 출발해야겠습니다. "
"오늘이 월말이라 우에다가 내려오는 날이지만 할 수 얼군요. 일이 생겨서요."
    "도대채 무슨 일인데?내가 알아서는 안될 일이오?"
    "신 회장째 가야 합니다. 보스의 지시를 받아서요."
    그러자 조성표가 천천히 머리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할 수 없지. 잘 다녀오시오.그런데 언재 돌아을 작정이오f"
   "아마 일주일쯤 걸릴 검니다. 서을얘서 연락을 드리겠지만."
   손목 시계를 내려다본 기무라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참,그런데 이번에 주대흥이를 데리고 갔다 오겠습니다. "
   "주대흥이를?"
    따라 일여선 조성표가 다시 눈을 크게 떴다.
   "그놈은 또 왜?"
   "여기에 흔자 놔두면 사고를 칠까봐서요.그리고 가서 할 일도 있고."
   "하긴, 그렇군."

조성표의 방을 나온 기무라는 서두르는 걸음으로 앨리베이터로 다가갔다.

남구청 근처의 바닷가에 있는 찻집에 기무라가 들어션 것은 그로 부터 한 시간 후였다.

찻집은 아직 어린 티가 가시지 않은 10여 명의 청년들로 혀들색한 분위기였다.
   주대흥온 구석자리에서 우거지상을 하고 앉아 있었다.

그의 앞자리에 앉아 있는 기무라의 부하 두 명도 마찬가지였는데

그것은 주대흥의 분위기가 옮겨진 때문이었다.

기무라가 다가간자 부하들이 튕기듯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런 제미랄, 통역도 없이 와 않으먼 어쩌겄다는 것이여? 쪽바리 frf101."
    차마 대놓고는 못하겠던 지 옆쪽을 바라보며 주대홍이 말했다.
    "통역은 없어도 돼."
    "어이고."
    기무라의 한국말에 주대홍이 저도 모르게 소리를 내었다.
    "당신, 한국말 허네?"
    "문자까지 쓸 수 있어 ."
   "허어,나 찬"
   주대홍of 입맛을 다시더니 곧장 이맛살을 찌푸렸다.
   "그린디 왜 이제까지."
   "쓸데없는 소리는 그만두고."
    기무라가 정색을 했다.
   "날 치려고 서울에서 내려오는 놈들이 있어. 그래서 당분간 부산을 떠날 생각인데."
   "도망치려고?"
   "내가 없으면 일이 일어나지 않아. 그래서 잠깐 떠나 있는 거야."
   "그럼 잘'가."
   "그런태 내려오는 놈들이 양 회장과 동맹 관계인 야마구치조야.
그리고 양 회장의 부하들이 여기에 있고."
   "당신이 위험하게 되었어. 난 둘째로 치고, 당신은 제물로 넘계졌단 말이야."
   "제물이라니?"
   "그자들 말이 믿기지 않ort 내가 시험해 보았더니 사실이었어."
   기무라는 박철규를 만나 이야기를 들은 것과 그것의 진위를 알아
보려고 조성표에게 우에다를 치겠다고 한 것, 그서 우에다가 부하
들을 끌고 먼저 기습을 하려고 내려오고 있다는 것을 말 주었다.
그리고 나서 부산에 있는 박철규 등이 우에다와 같이 있게 되면 어쩔
수 엄이 주대흥을 쳐야만 하는 상황이 된다고 이야기했다.
   주대홍은 멍한 얼굴이 되었다. 3는 정신을 차리려는 듯 머리까지 혼돌었다.
   "어이고 골이야."
   주대흥이 말했다.
   "어떻게 돌아가는지 하나도 모르겄다. "
   "나도 이재야 알았으니까 당연하지,"
   "뭐라고?"
   "양 회장이 당션애게 호의를 가질 이유가 없었어. 나도 밀기지가
않았단 말이야."
"양 회장의 사위 될 사람이 부산에 있어. 그 사람의 작전이야."
"사위라니?"
"부산 지검에 있는 이동천이란 검사야. 양 회장의 후계자지."
"그놈이 나를 왜?그러고 당신도 별로 이쁜 데가 없을델대."
"야마구치조를 좋아하Jtl 않는 모양이지." 

"어떤 의도가 있었건 간에 당장은 우리를 위한 정보를 주었어.

1리고 그것은 사실이었고. 자, 일어나자구."
기무라가 자리에서 일어서자 주대흥이 눈을 점벅이며 그를 올려다 보았다.
   "어딜 가자는 거ot?"
   "우리를 보자는 사람이 있어."
    물론 기무라는 이동천을 본 적이 없다. 그리고 주래흥은 말할 것
도 없다. 그러나 그들 둘은 고속도로 변에 있는 휴게실에 들어섰을
때 이쪽을 바라보고 앉은 사내를 보고는 그가 이동천임을 금방 알아
차렸다. 직행 버스가 멈추는 조그만 휴게실이다. 저녁 무렵이었는데
대여섯 명의 승객들 사이에 앉아 있던 이동천은 다가오는 그들을 향
해 얼굴에 웃음을 띠었다.
    "당신이 기무라 씨고 그쪽은 주대홍?"
    앞에 선 그들을 향해 이동천이 말했다.
   "난 이동천이오.낮과 밤의 얼굴이 다른 사람이지, "
    자리에 앉은 그들을 바라보며 이동천이 말을 이었다.
   "기무라 씨, 그럼 당신은 서울로 떠나야 할테니 주대홍 씨는 나에
게 맡기고 을라가시오."
   "아니 내가 왜?"
   입을 연 것은 주대홍이다. 그는 찌푸린 얼굴로 앞에 앉은 이동천
을 바라보았다.
   "나를 맡다니, 그게 무슨."
           "난 양충일 회장의 후계자야."
           이동천이 부드럽게 말했다.
           "지금은 검사로서 말하는 것이 아니야."
           "그게 무슨 상관이여?"
          눈을 치켜 뜬 주래흥의 말에 이동천이 얼굴에 웃음을 띠었다.
          "널 받아들이겠다는 말이다. "
          "이런 지기미 ."
          "비록 네가 우궈 조직에 엄청난 피해를 입혔지만 네 의기를 높게
       평가한다는 뜻도 된다. "
          "젠장. "
          "널 이용물로만 생각하는 자들에게서 떼어내 명분 있는 일을 하도
       록 기회를 주겠다는 말이다. "
          이동천이 주대홍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시선이 부딪친 후 한동안
       서로 노려보고만 있자 기무라는 침을 삼켰다. 옆쪽에서 시골 부인 두
       명이 목청을 높여 다투고 있었다.
          이윽고 주대홍이 시선을 내리자 이동천이 입을 열었다.
          "기무라 써도 이해를 했다. 물로 내 호의에 대한 보답이기도 하TR
       지만."
          "내가 무슨 물건이이?"
          주대홍이 버럭 고함을 쳤으므로 및자리에 있던 부인들의 말 싸움
       이 뚝 그쳤다.
          "누구 맘대로 날 주고받아?"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명분 있는 일을 해라. 그런 조직에 들어가서."
        그매 휴게실 입구로 박철규가 들어섰다. 그는 곧장 다가와 그들 앞에 섰다.

"기무라 씨, 차가 기다리고 있는데. 부하들도 아짜부터 기무라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다음에 또 뵙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
이동천에게 머리를 숙여 보인 기무라가 서둘러 밖으로 나갔으나
주대홍에게는 시선도 돌리지 않았다.
경부 고속도로의 상행선이다.
시속 120킬로미터로 달리는 승용차 안에서 우에다 산자에몬은 핸드폰을 귀에 대고 있었다.

그가 소리치듯 말했다.
"기무라는 신용수에게 간다니까 아마 서울 호텔에 묵을 거요."
"그렇다면 조금 곤란한데 ."
말을 받는 것은 김 양호이다.
"서울에서 칠 수는 없어요, 우에다 씨. 부산에서라면 시끄러운 데니까

다른 놈의 짓으로 넘길 수가 있」3지만 여기서는 안돼,"
"알고 있어요."
"당장에 신용수와 우리 사이에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단 말이오. "
"보스한테도 그런 말 들었소. 보류하라는 지시였소."
"운이 좋은 놈이오.때 맞춰서 서울로 올라오는 걸 보면."
"하지만 두고 봐야지."
우에다가 앞쪽을 노려보며 말했다.
"주대흥이까지 데리고 간다니 어쪘든 당신들이 긴장하게 되겠는 데"

"7쑨뽁데. 그렇지 않소?"
   "한동안 서울이 잠잠했는데 말이오."
   "올라와서 이야기합시다. 참, 가토 씨는 지금 어디에 계시오?"
   "오사카의 별장이오."
   "알았소."
   차는 이제 수원을 지나고 있었다. 천안 근처까지 내려갔다가 톨게
이트를 돌아 다시 을라오는 싱거운 드라이브가 되어 버린 것이다.
   오늘은 회사에 나가지 않았으므로 양승일은 음접십 한쪽에 진열해
놓은 난잎을 정성스레 닦고 있었다. 그저 걸레나 헝겊으로 닦는 것이
아니다. 깨끗한 솜뭉치에 물을 적셔 꼼꼼히 닦아내는 것이어서 옆에
서 거드는 양유경은 이제 진력을 내고 있는 중이었다.
   "솜을 더 가져 오너라."
   머리를 든 양승일의 말에 양유경이 눈으로 그의 옆을 가리켰다.
   "옆에 있어요, 아뻐지."
   "이놈이 왔다갔다하기 싫으니까 아예 박스로 가져다 놓았구만."
   양승일이 닦고 있는 난은 조금 전에 자신이 닦은 것이었기 때문에
양유경은 눈쌥을 찌푸렸다.

양유경은 응접실에 들어왔다가 양승일에게 꼼짝없이 잡힌 것이다.
   "동천이는 야망이 있는 농이야."
   문득 양승일이 입을 열자 양유경은 손을 멈추었다.
   "야망이오?"
   "그래. 대야망이다. "
   "책 이름 같네."
 양유경이 다시 난잎을 솜으로 문지르다가 잎 하나가 반쯤 꺾여졌다.

그녀는 화분을 들어 구석 쪽으로 옮겨 놓았다.
양승일이 다시 말을 이었다.
 "요즘 하는 일을 보면 알아"
"어떤 일인데요?"
  "야마구치조를 견제하고 있다. "
다시 양유경이 손을 멈추었다.
"왜요?"
"새력이 커지면 우리에게도 이로을 게 없다.

한국 조직이 한국에서 야쿠자의 영향력 안에 들어가면 안돼, "
"아버지는 야마구치를 끌어 들이셨잖아요?그러시구션."
"아버지가 하실 수 없었어요?"
손을 멈춘 양승일이 머리를 저었다.
"욕심이 컸어.그것을 느꼈을 때는 너무 늦었고, 협정을 맺은 이상지켜야만 했다. "
"그런데 동천 씨가‥‥‥‥

"동천이는 조직 세계를 부정했던 놈이야. 지금도 그것이 남아 있을지 모른다. "

"양승일이 다시 난잎을 닦기 시작했다.
"그래서 너에게 정책적으로 접근했는지도 모르지."
 "하지만 일단 발을 딛고 난 이상 책임감을 가지는 사내야."
그
"아버지, "
"네 이야기가 아니다. 내 조직 이야기야."
   "밤의 세계가 없어질 수 없다는 것을 지금쯤은 알았을 것이다. 그
렇다면 밤의 새졔를 통일하여 혼란과 피를 막아야만 한타는 각오
도 설 것이고."
   "잘 하고 있어.나하고손발이 맞는다. 나는 놈이 자랑스럽다. "
   어느새 양음경의 얼굴에는 웃음이 떠을라 있었다. 그녀는 난 화분
을 내려놓고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아버지, 저 부산 내려가도 돼요?아침애 내려갔다가 저녁에."
   "조만간 동천이를 부를 것이다. "
   양유경이 눈을 크게 떴다.
   "언제요?"
   "곧. 김 사장한데 업체 현황에 대한 브리핑 준비를 하라고 했으니
준비되는 대로."
   밤이다. 오늘은 하늘이 저녁부터 흐려지더지 숨기 찬 바람이 불었
고 물결이 거칠어졌다. 제방을 두들기는 파도 소리도 높아졌으므로
사람들은 일찌감치 집으로 돌아가 변에는 인적이 드물었다.
   밤 9시 정각이 되자 인적이 드문 바닷가를 걸어오는 두 사내가 있
었다. 도로 쪽에서 상가를 향해 걸어오던 그들은 바다 쪽으로 나가려
는 듯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바람이 세차게 불었으므로 휴지 조각이
그들의 몸을 스치고 지났다.
   월강은 바닷가 쪽에 위치한 허름한 음식점이었다. 흔한 네온 간판
도 없이 함석 위에 서툰 글씨로 상호를 써놓았지만 월강의 창문은 환
하게 밝혀져 있었다.
   그들은 거침없는 발걸음으로 윌강의 미닫이 문을 열고 안으로 들
어섰다. 테이블 대여섯 개 정도의 좁은 식당 안에 두 사내가 앉아 들
어서는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서 오시오."
   자리에서 일어션 이동천이 그들을 맞았다. 옆에 서 있는 건 박철
규였고 들어선 사내들은 배장근와 김달수이다. 그들은 제각기 손을
잡은 후에 자리에 앉았으나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바다 쪽으로
열려진 창문을 통해 바람이 휘몰아쳐 들어왔다.
    이윽고 이동천이 입을 열었다.
    "난 이동천이오."
    그는 배장근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당신을 만나 보고 싶었소."
    "지난번 일은 고마웠습니다. "
    배장근이 말을 받았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의 도움은 필요없습니다. 나와 조성표와의
싸움이니까."
    "그간 사정은 들었소. 부모님에 대한 이야기도."
   "하지만 나는 러시아 마피아의 한국 책임자와 이야기를 하려고 당
신을 만나자고 한 거요."
   "양승일 회장의 지십니까?"
표정 없는 얼굴로 배장근이 물었다.
같은 시간, 서울 혹석동에 있는 안승일의 저택.
저택은 담 위에 설치된 고압 전류와 한치의 사각도 없는 감시 카메라,

그리고 담 바로 밑의 적외선 감찌기에 의해서 철저히 경비되고 있었다.

그리고 』택 내.부는 상주하고 있는 여섯 명의 경호원들에 의해 빈틈없이 체크되고 있어서

아마 청와대 다음으로 보안이 잘되고 있는 곳일 것이었다.
날씨는 맑았다.

맑은 날씨더라도 서울 시내에서는 도시의 야광 때문에 별이 잘 보이지 않았지만

이곳에서는 별이 선명히 보였다.

우측 담장 안쪽, 감지기 바로 옆에 선 유동규도 담장을 향해 소변을 보면서 머리를 쳐들고

 별을 보고 있었다. 꼭 별이 보고 싶어 본 것은 아니다.

앞쪽의 왁 막힌 담장을 보느니 머리를 쳐들고 하늘을 본 것이다.
소변을 막 끝낸 그가 진저리를 칠 때였다.

그는 담장 위로 불쑥 솟아오른 물체를 보았다.

둥글고 컸는데 순간적으로는 얼른 구분이 되지 않았다.

담장이 어둠 속에 묻혀 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담장이 부풀어 오른 것처럼도 보였다.
그 다음 순간, 모두 합해서 눈을 두 번쯤 깜짝할 시간이었다.

담장 위에 더 부풀어 오른 물체는 사람이었다:그쪽도 이을 본 모양으로
순간 멈칫하는 것 같았는데 동작은 그쪽이 빨랐다.
손에 쥐어진 검은 물체에서 횐 섬광과 함께 둔탁한 발사음이 들렸고 유동규는

소리 한번 지르지 못하고 뒤쪽으로 넘어졌다.

담장 위의 사내는 가볍게 몸을 날려 적외선 감시선을 넘어 쓰러진 유동규 옆으로 내려섰다.
   눈만 내놓은 스키용 가리개를 쓴 그는 잠시 앞쪽 별채를 바라보다가 몸을 돌렸다.

그러자 담장 위에 또 한 사내가 나타났다.

그에게로 손을 흔들자 사래는 그의 옆으로 뛰어내렸다.

먼저 떨어진 사내는 별채 쪽으로 소리없이 달려나갔다.

담장 위에서 또 한 명이 뛰어내렸고 나중에는 다섯 명이 되었다.

그들을 한마디 말도 나누지 않은 채 저택의 본채와 별채를 향해 뛰었다.
   양승일은 응절실에서 신문을 읽는 중이었다.

그는 문이 열리는 소리를 들었지만 머리를 들지 않았다.

가정부가 소리없이 다가와 녹차를 놓고 가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차가운 공기가 느껴졌으므로 그는 머리를 들었다.

문 앞에서 복면을 한 두 사내가 그를 바라보고 서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손에 쥐고 있는 것은 소음기가 끼워진 권총이다.
   신문을 내려놓은 그는 사내들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여섯 줄의 시선이 빗금으로 교차되었지만 그 순간이 긴 것은 아니었다.
   이윽고 양승일이 한쪽 입술 끝을 올리며 희미하게 웃었다.

그것이 신호라도 된 듯이 사내들의 권총에서 불줄기가 뿜어졌고 가슴에

두 발을 맞은 양승일은 앉은 채로 머리만을 떨구고 숨을 거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