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야쿠쟈와 러시아 마피아
(1)
조성표는 부산 지역의 밤의 대통령이라고 일컬어지는 인물이다.
공식적으로는 시의원이자 여행사의 대표이며 상공회의소 부의장이
었으나 그것은 대외 션전용일 뿐이다. 그는 막대한 자금 수입이 생기
는 파칭코업을 장악하고 있는 데다가 그가 배후에서 조종하는 건설
회사를 통해 부산 지역 건설 공사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
다.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밤의 세계에서 유흥업만큼 안정된 이권이
보장되는 업종은 없다. 유흥업을 장악하려면 우선 힘이 있어야 하고
그 다음이 자금이었는데 조성표는 그 두 가지 조건을 모두 갖추고 있
었다. 이제 예전처럼 폭력이 난무하고 지역 빼앗기 전쟁이 일어나는
상황은 아니다.
또한 주먹의 힘만 가지고 밤의 세계에 군림할 수도 없었다. 밤의
세계를 지배하려면 낮의 세계에 다리를 걸쳐 놓아야만 조직과 기업
야쿠자와 러시아 마피아 51
을 유지할 수 있었는데 조성표가 그 조건을 충족시킬 수 있는 인물이
었던 것이다.
조성표가 시의회 일을 마치고 부산진 구청 근처의 사무실에 돌아
온 것은 오후 6시가 조금 넘었을 때였다.
그를 따라 사장실에 들어선 천기석이 입을 열었다.
"사장님, 배장근이는 해운대 근처에 있는 것 같습니다만."
"그렇다면 잡아."
50대 초반의 조성표는 건장한 체격에 호감이 가는 용모의 사내였
다. 그러나 눈꼬리를 치켜 올린 지금의 모습은 밖의 사무실 직원들도
잘 모르는 그의 또 다른 모습이다.
"예. 그래서 오종갑이에게 애들을 딸려 보냈습니다. "
천기석이 조성표의 맞은편 소파에 앉았다. 그는 조성표의 오른팔
로 전력이 육군 대령이었으니 이 세계에서는 조금 별난 경력의 사내
였다. 그러나 조성표의 먼 친척인 데다가 군 출신답게 처신술과 관리
력이 뛰어났으므로 그는 금방 조성표의 심복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사정림, 최 사장 살해 사건은 아무래도 경찰에 신고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합니다만."
조심스러운 그의 말에 조성표는 머리를 저었다.
"안돼. 경찰이 잡으면 복잡해져. 놈은 최태진과의 무기 거래 사실
을 폭로할 것이고 게다가 증거물도 있어. 그렇게 되면 도 골치 아
파진다. "
"매스컴을 통한 지명 수배 한번이면 금방일텐데 요. 그리고 그놈도
발이 묶이게 될 것이고."
천기석은 경찰 신고에 미련이 있는 모양이었지만 말을 꾼고는 들
58 밤의 대통령 제걀』 - I
- H -』 #7f#t# #:#f)1 f
고 온 서류를 조성표 앞으로 밀어 놓았다.
"서울로 보낼 돈입니다. 결재해 주십시오."
조성표가 머리를 끄덕이며 사인을 했다. 한민당 총장인 이웅덕의
가명 계좌로 입금될 20억 원이었다.
서류를 든 천기석이 자리에서 일어서자 조성표가 말했다.
"이봐, 천 실장. 그 배장근이라는 놈, 무슨 수를 쓰더라도 반드시
잡아야 돼."
"알고 있습니다. "
"잡기 어려우면 없애 버려, "
"그렇게.지시해 두었습니다. "
"애들 입조심시키고."
대답할 필요도 없다는 듯이 머리를 숙여 보이며 천기석은 방을 나
왔다.
해운대의 허름한 카 안. 오후 1시여서 창 밖의 거리는 이미 어둠
에 덮였지만 설태에는 전등불이 반짝이고 있었다. 창가의 의자에 앉
은 배장근은 앞자리에 앉은 사내를 찬찬히 바라보았다. 짧게 깎은 머
리에 겨울 양복을 걸친 20대 중반의 사내였다.
배장근의 시선을 받은 사래가 빙긋 웃자 희고 가지런한 치아가 드
러났다. 가는 눈이 더욱 가늘어졌고 뭉툭한 콧구멍이 위로 들려 있어
서 익살스럽게 보이는 얼굴치었다.
"난 작년에 인민군 상사로 있다가 북으로 튀었지요."
사내가 거침없이 말을 내뱉자 배장근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카페
에 손님은 한 테이블뿐이었고 다행히 떨어져 있어서 그의 말을 들은
야루자와 러시아 마피아 59
것 같지는 않았다.
사내가 다시 말을 이었다.
"러시아는 살 만합데다. 북조선은 사람이 살 곳이 아니라요."
"이봐요, 김 형, 조금 조용 조용히."
"난 괜찮습니다. 난 러시아 시민권을 작년 말에 받았단 말입니다.
이곳 세관에서도 도장을 왕, 찍어 주고 통과시킵데다. "
그는 블라디보스토크의 밀로체프가 보낸 김달수라는 사내였는데
지금 신바람이 나 있었다. 아니 흙분하고 있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
이다. 그로서는 남조선에 오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
이었다. 김달수는 부산 땅을 발은 지 아직 한 시간도 채 되지 않았다.
"배 선생, 밀로체프 동지께서는 저더러 배 선생을 도우라고 하셨
습니다. 저는 이제부터 배 선생과 함께‥‥‥‥
"아니, 잠간만."
배장근이 손을 들어 그의 말을 막았다.
"난 내 몸 하나쯤은 지킬 수가 있어요.호의는 고맙지만."
"오기 전에 루벤스키 동지에게서 이야기를 모두 들었습니다. "
김달수의 얼굴이 굳어지면서 목소리가 낮아졌다.
"밀로체프 동지께서는 배 선생이 우리 동지라고 하셨습니다. 그리
고 배 선생이 싫다고 해도 난 여기 있어야 됩니다. 이미 지시를 받았
으니까요."
배장근은 입맛을 다시고는 머리를 돌렸다. 북한에서 탈출한 김달
수는 곡절 끝에 블라디보스토크의 마피아 일원이 된 사내였다. 밀로
체프는 배장근을 돕는 데는 같은 한국인인 김달수가 적격이라고 생
각한 모양이었다.
60 밤의 대통령 재4부 -I
김달수가 말을 이었다.
"난 사람 죽이는 데는 선습니다. 블라디보스도크에서 러시아 놈
열 명은 책였을 겁니다. "
"물론 여기서는 배 선생의 지시를 따르라는 지시를 받고 왔습니
다. "
배장근이 가늘게 숨을 내쉬고는 머리를 들었다
"우선 그 선생이라는 말부터 랩시다, 김 형 ."
카페 근처의 음식점에서 생선회와 함께 소주 네 병을 나누어 마신
그들은 어두운 밤거리로 나왔다. 밤 10시 반이었다. 배장근의 거처는
걸어서 10분 거리였으므로 그들은 번화한 상점가를 지나 주택가의
한적한 길로 들어섰다.
"말만 듣다가 실제로 겪어 보니간 남조선이 잘산다는 걸 이제 믿
겠구만."
김달수가 혼잣소리처럼 맡했다.
소주를 냉수 마시듯이 마셔대던 그는 두 병씩만 마시고 일어서자
서운한 눈치였지만 차장근의 말에 고분고분 따랐다.
김달수가 다시 말했다.
"뚱뚱한 사람들이 많은 것은 잘 먹어서 그런 겁니다. 그 밥집에 있
는 아주마니들은 모두 돼지같이 살이 붙었습데다. "
오가는 사람이 드문 언덕길로 들어서자 김달수가 옆에 선 그를 바
라보았다.
"형님, 숙소가 어딥니까?"
야쿠자와 러시아 마피아 61
김달수의 나이가 자신보다 한 살 적은 스물여덟 이었으므로 배장근
은 형님이라고 부르도록 했는데 김달수는 이제 입에 형님 소리가 붙
어다녔다. 붙임성이 있는 사내였다.
배장근이 턱으로 앞쪽을 가리켰다.
"언덕을 넘으면 바로야. 오른쪽 골목의 두 번째 집이지."
"형님, 뒤에서 따라오는 새끼들이 있습니다. "
그러자 퍼뜩 얼굴을 굳힌 그에게 김달수가 서둘러 말했다.
"돌아보지 마시라우요. 내가 눈여겨보았으니판."
"몇 놈이야?"
"밥집 앞에서부터 야요. 모두 다섯 놈입네다. "
"왜, 진작 말하지 않교."
"이상하다 싶었는데 인제는 확실합네다. "
"술집에 들어간 것이 걸렸군."
배장근이 혼잣소리처럼 말하자 김달수가 바짝 다가섰다
"형님, 앞에도 있습네다. "
그러나 배장근의 눈에는 왼쪽의 인도를 걸어 내려오는 두 사람의
여자끈에 보이지 않았다. 가로등도 없고 길가의 민가에서 흘러 나온
이 도로를 겨우 비춘고 있었으므로 앞쪽은 어두웠다.
"언덕 위의 양쪽에 두어 명씩 있습체다. 형님, 어떻게 할까요?"
"놈들은 날죽여서 입을 막으려는 거다. "
"죽어서야 되 갔습네까?"
"넌 자신 있나?"
"해봐야 알겠지요. 남조선 아이들하고는 한번도 붙어 본 적이 없
습네다. "
62 밤의 대통령 제4부 -I
오르막길을 다 오르자 이제 배장근도 뒤쪽의 인기척을 느낄 수가
있었다. 그러나 어둠에 덮인 앞쪽은 아직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보폭을 늘리지도 줄이지도 않은 채 서서히 오른쪽 골목으로
들어섰다.
오종갑은 배장근과 다른 한 놈이 오른쪽 골목으로 들어서자 이제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는 이쪽 지형을 잘 알고 있었다. 길 양쪽 골목
은 대부분 끝이 막혀 있다.
그가 부하들을 이끌고 서둘러 골목으로 다가가자 앞쪽에서도 부하
들이 몰려왔다. 그들도 배장근이 골목으로 들어가는 것을 본 것이다.
배장근을 술집에서 발견한 후부터 워키토키를 갖춘 부하들과 연락하
여 미리 앞쪽에 배치시켜 놓았기 때문에 이제 놈은 자루 안에 들어간
쥐였다.
오종갑은 주머니에서 재크 나이프를 꺼내 쥐었다. 골목은 이제 바
로 눈 앞이었다.
"자,쳐라!"
그가 짧게 소리치자 부하들이 일제히 골목 안으로 몰려들어갔다.
골라 뽑은 부하들이 어서 눈만 빛낼 뿐 소리없이 치고 들어갔다.
오종갑은 단추를 눌러 나이프의 날을 세우고는 부하들을 따라 뛰
었다. 골목으로 달려들어간 사내들은 곧 앞쪽에서 어른거리는 그림
자를 보았다. 막혀 있는 골목의 끝집 앞이었다. 그들은 일제히 그쪽
을 향해 달려갔근데 손에는 제각기 회칼과 쇠 파이프가 들려져 있었
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타앙!"
야쿠자와 러시아 마피아 63
밤하늘을 울리는 총소리와 함께 사내 한 명이 비틀거리며 땅바닥
에 쓰러지자 다시 두 번째의 총성이 울렸다.
"타앙!"
무더기로 쏟아져 들어오던 상태에서 두 명이 억눌린 비명 소리를
내며 땅바닥에 쓰러지자 사내들이 주춤거렸다.
"타앙!"
다시 세 번째 총성과 함께 사내 한 명이 쓰러지자 사내들은 일제
히 몸을 돌려 골목 밖으로 달아나기 시작했다.
오종갑도 그 중의 하나였다. 부하들과 어깨를 부딪치며 골목 밖으
로 뛰어나온 그는 부드득 이를 갈았다. 회칼이나 야구 배트, 쇠파이
프로 무장한 상대방과는 수없이 격전을 치러 보았지만 총 가진 상대
는 처음이었다. 언덕 아래쪽으로 몰려나온 부하들이 숨을 헐떡이며
그를 바라보았다. 이제 총소리를 들은 사람들이 경찰에 신고를 할 것
이고 곧 경찰들이 몰려을 것이었다.
"철수한다. "
오종갑이 낮게 소리치자 부하들은 일제히 몸을 돌려 길을 뛰어내
려갔다. 그들의 뒤를 따르면서 오종갑은 다시 이를 갈았다.
회칼이나 쇠 파이프로 총 든 놈과 싸운다는 것은 한마디로 미친 짓
이었다. 그는 배장근이 총으로 대항하였다는 것에 하등 반감이나 뜻
밖이라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그가 지금 느끼는 감정을 굳이 끄집어
낸다면 그것은 부끄러움이었다. 보다 강력한 무기를 가진 자에게 겁
도 없이 대들었던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뿐인 것이다.
수저를 내려놓은 양유경이 양승일을 바라보았다.
64 밤의 대통령 제라」 -I
f--4f# . ·# 14.4
"아빠, 판심을 가져 준 것을 오해할 수도 있다는 말뜻을 모르겠어
요. 제까짓 것이 뭔데 호락호락한 놈이 아니라고도 했고."
"글쎄, 그건 나도 모르겠다. "
양승일이 얼굴에 웃음을 띠었다. 그는 및자리에 앉은 김 여사가
건네준 숭능 그룹을 받아 들었다.
"어떠냐? 그놈, 사내답지 않던?"
"사내답다니요?제 분수를 모르는 철부지같이 보였어요."
"겉만 보아선 못쓴다. "
그렇게 말한 것은 어머니 김 여사였다. 몸도 둥글고 얼굴도 둥근
그녀는 목소리도 부드러웠다.
"난 네가 망나니짓이나 안했는지 걱정이 되어, 이것아."
"엄마는, 내가 여린앤 줄 알아요?"
모처럼 세 식구가 모여 앉은 아침 식사 시간이었다. 모두가 분위
기를 아끼려는 듯 말투에 따스함이 배어 나오고 있었다.
"하지만 역시 담이 큰 놈이다. 내 눈이 틀리지 않았어."
숭능 그릇을 내려놓으며 양승일이 말했다.
"사람이 자신의 직분에 충실하다는 것은 칭찬받을 만한 일이야.
그놈은 우선 네 배경에 거부감을 느꼈을 것이다. "
"아버지가 어쪘는페요? 약점 잡힐 일이라도 있어요?"
"약점은 무슨,내 약점을 잡아낼 사람은 아무도 없다. "
웃는 얼굴로 양승일이 김 여사를 돌아보았다. 그녀는 잠자코 자리
에서 일어섰다.
"아빠,혹시나 해서 묻지만 그자가 정말로 마음에 드셨어요?"
이제 양유경의 표정은 진지해졌다.
(2)
"그림, 내가 어떤 복선이 있었을 것 같으냐? 그런 새파란 놈에게
무슨, "
"어떤 재벌이라도 털면 먼지가 나온다고 하니까요."
"이놈이 별소리를."
커피잔을 들고 온 김 여사가 그들 앞에 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그 사람을 한번 보고 싶구나."
"엄마, 끝났어. 난 보기도 싫어."
"네 아버지 마음에 든 사내라니 까 보고 싶은 거야. 네가 어떻든 상
관없어."
그러자 양승일이 웃었고 양유경은 와락 얼굴을 찌푸렸다.
"그리고 그자의 태도도 마음에 든다. 네 아버지와 같of 살면서 수
없이 많은 사내들을 옆에서 지켜보아 온 덕분에 나도 남자 보는 눈이
생겼어."
"허어, 우리 마누라가 모처럼 그럴 듯한 소리를 하는구만 그래."
"난 네 아버지 같은 사업가는 질색이다. "
그러자 양승일의 웃던 얼굴이 그대로 굳어졌다.
"아니, 이 여편네가 무슨."
"난 네 남편 감으로는 공무원이나 학자, 의사 같은 사람을 고를 거
다. 그 사람은 공무원이니 되었어."
"그자는 싫어 ."
양유경이 머리를 저었다.
"내 남자는 내가 고를데니까 두 분은 더 이상 갑론을박하지 마시
라구요. 듣기에도 거북하니까."
그러자 양승일이 웃음 떤 얼굴로 커피잔을 들었고 김 여사도 더
66 밤의 대통령 제긱즌 - I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그 시간에 김양호는 북한산 기슭에 있는 그랜드 호텔 특실에서 가
토 노부야스와 rt주앉아 있었다. 가토 노부야스는 50대 중반의 스모
선수 같은 체격의 사래였다. 짧게 깎은 머리에 두 눈의 안광이 강렬
한 그는 야마구치조의 제2인자로 김양호가 주일 대사관에 근무할 때
부터 알고 지낸 사이였다.
그들은 막 아됨 식사를 마치고 응접실에서 담배를 피워 무는 참이
었다.
"김원국이가 배겨내지 못한 것은 정치권과 유대 관계가 없었기 때
문이지요. 그는 정치인들을 철새 같은 자들이라고 생각했는지도 모
릅니다. "
가토가 굵은 목청으로 말했다.
"그건 그자가 잘못 생각한 겁니다. 정권이 바뀌어도 권력은 항상
정치인이 쥐고 있다는 것을 간과한 것입니다. "
"가토 씨, 그자는 이제 모든 사람들의 기억에서 지워진 사람입니
다. "
"역사에도 기록되지 알고 말이지요."
가토가 말을 받자 김양호가 빙그레 웃었다.
"그렇습니다. 그저 전설 같은 이야기로 떠돌다가 사라질 것입니
다. "
그랜드 호델 특실은 호사가인 소유주가 멋을 부려 3실밖에 만들지
않았는데 평수로 따지면 80평이 넘는다.
김양호가 머리를 들고 가토를 바라보았다.
야쿤자와 러시아 마피아 67
"가토 씨, 요즘 조금 문제가 생겼습니다 사소한 것이기는 합니다
만."
"말씀하시오, 김 사장."
자리를 고쳐 앉은 가로도 정색을 했다.
"국제 호텔에 묵어야 정상인데 이곳으로 방을 잡았다고 해서 조금
이상하게 생각했었습니다. "
"서울 지검 특수2부에 새파란 검사 한 놈이 있습니다. "
"특수2부라면 조직 폭력을 담당하는 부서로군."
"그렇습니다. 그런데 그자가 얼마 전에 나를 부르더군요."
김양호는 이동천에게 불려갔던 상황을 이야기하자 잠자코 듣고 있
던 가토가 입을 열었다.
"한국에도 이탈리아의 피에트로 검사 같은 인물이 나을 가능성이
있습니까?"
"천만에요, 가토 씨."
당치도 않는 비유라는 듯 김양호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그럴 가능성은 전혀 없습니다. 다만 조금 귀찮을 뿐입니다. 그것
도 일시적으로."
"일시적이라고 했습니까?"
"그렇습니다. 그래서 그 동안은 조심하는 것이 나을 것 같아서."
가토가 머리를 끄덕였다.
"알았습니다. 어쨌든 한국 일은 양 회장과 당신께 일임해 두었으
니까."
"그리고 아이즈 고데츠 조직 말인데요. 그자들이 부산의 조성표와
더 이상 밀착되어서는 안됩니다. 서울의 신용수와 접촉한다는 정보
68 밤의 대통령 제4력 -I
·. ÷근· "
도 있단 말입니다. "
"칙쇼."
가토가 짧게 욕설을 뱉더니 빙그레 웃었다.
"사람을 시켜 일본 세력을 단일화해서 조선에 진출하자고 권해 보
았지만 놈은 듣지 않았소. 놈은 자신이 한국인이지 일본 세력이 아니
라는 거요."
김양호가 잠자코 머리를 끄덕였다.
아이즈 고데츠 조직은 한국인이 이끄는 일본의 야쿠자조직으로
일본 폭력단의 꾸H 조직이다. 회장인 강외수는 교토를 중심으로 세
력을 넓혀 왔고 지금은 부산의 조성표와 밀착해 있었는데 서울의 신
용수에게 접근한다는 정보가 들어왔던 것이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시오. 그 일은 우리가 알아서 할데니까."
가도가 어깨를 펴며 말했다
"말로 해서 듣지 않으면 다른 방법을 쓸 수밖에 없소.그게 효과가
빠른 법이지, "
눈부시게 칼을 놀려 횟감을 샐어 놓은 주대흥은 수건으로 손을 닦
으며 주방을 나왔다. 오후 3시 반이어서 늦은 점심 손님 두어 사람이
남아 있을 뿐으로 식당 안은 한산했다. 그는 구석의 데이블줴 혼자
앉아 있는 박미정에게로 다가가 앞자리에 앉았다.
"점심 정말 먹었냐?"
"먹었어요."
그녀는 온몸을 딱딱하게 굳히고 있었다. 카운터의 미스 김과 다른
종업원들이 이쪽을 힐끗거리다가주대흥과시선이 마주치자 황급히
야쿠자와 러시아 마피아 69
딴전을 피웠다.
"근디, 무신 일이여?"
"=1, 돈 말예요."
꼴칵 침을 삼킨 박미정이 시선을 똑바로 들었다.
"오빠,우린 받을 수 없어요."
"그게 무신 말이여?"
"그 돈, 적금 든 것이 아니죠?"
주대홍이 눈샙을 찌푸리며 입술을 부풀리자 영락없는 절간의 사천
왕 상이 되었다.
"니가 골치아본 지집애라는 것은 내가 진즉부터 알고 있었어."
박미정을 쏘아본 채 그가 말을 이었다.
"아버지 속을 그렇게도 색이더니 인자는 내 속을 뒤집어 놓는구
만. "
"오빠."
"그려. 내가 그 돈으로 너한테 점수 따려고 그런 것 같으L 아니
면 어머니한티?"
그의 기세가사라웠기 때문인지 이제 박미정은 시선을 내리간채
입을 열지 않았다.
"머리속에 든 것이 그것밖에 없단 말이냐? 나헌티 이렇게 해도 좋
단 말이여?"
"넌 내 가족이여. 니 어머니는 내 어머니나 마찬가지였고, 선생님
은 나를 자식처럼 대해 주셨어."
70 밤의 대통령 제긱부 - I
"딴 생각 말고 받어. 오빠가 주는 것으로 생각하고. 어머니한티는
자식이 드리는 것이라고 이해시켜 드리고."
머리를 든 박미정은 눈을 깜박이며 그를 바라보기만 할 뿐 입을
열지는 않았다.
"잔소리 말고 어서 돌아가."
그러면서 자리에서 일어선 주래흥은 식당 입구로 들어서는 세 사
내를 보았다. 낯익은 얼굴들이었다.
"형씨에 대해서 알아보았어. 별이 두 개더구만."
짧게 깎은 머리에 눈매가 매서운 사내가 말했다. 그는 셋 중의 형
님벨이 되었으므로 전에도 도맡아서 말을 했었다. 오후 』시였다. 점
심 영업 시간이 끝나 식당의 바깥문을 닫혀졌고 넓은 흘에는 그들 네
사람뿐이었다. 종업원들은 모두 안쪽의 휴게실에서 낮잠을 자거나
T'『를 보고 있을 것이다.
"내가 닷새 전에 이곳에서 점심을 먹었는데 생각 나나?"
"글쎄, 잘 기억이 나지 않는디."
주대흥이 눈을 점벅미며 머리를 한쪽으로 기울였다.
"그런디 도대체 무슨 일로 그러시오?그리고 선생들은 누구신디."
"무슨 일로 그러느냐구?"
형님델 되는 사내가 옆에 앉은 사내들을 돌아보았다.
"야, 이 새끼가 오리발을 내밀고 있지 않어?"
사내들의 얼굴이 험악해졌다.
"내가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 그날 회사 이야기를 한 것은 이곳에
서 점심 먹을 매뿐이었단 말이다. "
야쿠자와 러시아 마피아 11
사래가 눈을 부릅뜨고는 주대홍을 노려보았다.
"네 놈이 앞에서 이야기를 다 들었어."
"이야기라니? 나는 당신 얼굴도 모르는디."
주대홍이 의자에 등을 기대고는 붉은 입안을 내보이며 소리없이
웃었다.
"이거 대낮부터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모양이여. 당신들 간첩이오?
무슨 이야기를 했는데 그러는 거여?"
"넌 폭력으로 두 번 들어갔다 왔지?주먹이 세다고 그러더구만, "
사내의 뒤쪽에 서 있던 부하들이 한걸음씩 다가와 주대홍을 내려
다보았다.
"복면을 썼다지만 체격을 숨길 수는 없어. 그건 네 놈이 한 짓이
야. "
"어떤 짓을 했단 말이여?"
이제는 참을 수가 없다는 듯 주대흥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 어지간히 지껄이고 그만 돌아가."
그러자 양쪽에 서 있던 사내들이 일재히 주대홍에게로 달려들었
다. 주먹이 날아와 그의 턱을 쳤고 발길질에 의자가 넘어지면서 요란
한 소리가 났다.
주대홍은 사내들의 주먹과 발길질을 막으면서 한걸음씩 뒤로 물러
섰다.
"그만!"
짧은 머리의 사내가 소리치자 사내들이 움직임을 멈추었다. 자리
에서 일어션 짧은 머리가 주대홍 앞으로 다가와 섰다.
"주대홍이, 우릴 만만하게 보지 말아라."
12 밤외 대통령 제4력-I
. ,-
그는 주대흥의 어깨 위에 한 손을 을려놓았다.
"돈을 돌려준다면 우리도 생각을 다시 해보겠지만 더 기상 오리발
을 내민다면 넌 갈갈이 쩐겨 죽을 거야."
"돈은 무슨 돈?"
입가의 피를 손등으로 닦으면서 주대홍이 그들을 둘러보았다.
"이렇게 난데없이 달려들어 치고는 돈을 내놓으라구?이 새끼들
강도로구만."
"오늘 밤에 다시 오겠다. "
사내가 손바닥으로 주대흥의 랸을 가볍게 두어 번 두드렸다.
"그때까지 준비해 둬. 더 이상 기다리지 않을테니까."
몸을 돌리려던 사내가 다시 멈추어 섰다.
"그리고 참고삼아 일러 두저만 어디로 될 생각은 말아. 그럴 수도
없겠지만 말이야."
사내들이 식당을 나가자 주래흥은 넘어진 의자를 제자리에 놓고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잠간 동안의 소란이었으므로 주방 안에 있던 종
업원들은 눈치를 채지 못한 것 같았다.
"이런 개자at을 그냥."
최기대는 부드득 이를 갈고는 앞에 선 부하를 노려보았다. 박철규
는 잠자코 옆에 앉아 있었다. 무언가 생각에 잠겨 있는 표정이었다.
"그래, 유재복이가 그놈을 만나러 갔단 말이L 재놈이 캐어 보겠
다고?"
최기대의 기새에 눌린 부하는 얼굴이 하양게 굳어져 있었다.
"예. 덕보하고 유섭이를 데리고 갔습니다. "
야쿠자와 러시아 마피아 13
"그 개자식은 나한테 의심스런 놈이 없다고 했어. 입을 벌린 적도
없다고."
"일식 집에서 저 회들에게 이야기를 했던 겁니다. 그런데 앞에 있던
주방장이 들었을 것 같아서."
"그러면 왜 나에게 보고를 안해?"
"오늘 아침에야 생각이 났습니다. 그래서 제가 상무넘께 보고를
하자고 했더니 형님이 먼저 가보시겠다고 해서,"
"그놈, 주방장에게 의심이 가나?"
박철규가 묻자 부하는 1를 향해 몸을 돌렸다.
"예.조사를 해보았습니다. 폭력 전과가 두 ?f 있었습니다. "
"체격이 큽니다. 보통 체격의 두 배는 되는 놈입니다. "
"주방장이라고?"
"주방 과장입니다. 경력이 10년이 넘어서 왜 알아주는."
"가족도 없고 혼자 사는 놈인데."
"내 이 새끼를 당장에."
최기대가 엉덩이를 들씩이며 일어서려는 것을 박철규가 손을 들어
말렸다. 이번 사건은 동원 기획에서 발생되었지만 해결을 맡은 것은
박철규였다.
"유재복이가 주둥아리를 놀렸다면 돈 문제뿐만 아니라 회사 계획
까지 씨부렸을 거야. 그렇지?"
그러자 사내가 아랫입술을 깨물고는 머리를 끄덕였다.
"예, 보좌관님. 이것저것 다 이야기를 했습니다. "
74 밤의 대통령 재4력-I
"주방 과장인지 그놈은 앞에 있었고?"
"예. 횟감을 만드느라고."
머리를 』1덕인 박철규가 최기대를 바라보았다.
"일을 벌일 필요 없어. 우선 놈이 어디로 튀지 못하게 하고 나서
방법을 생각해 보자구."
세 사람이 총에 맞아 한 명이 죽고 두 명이 중상을 입은 것은 큰
사건이었다. 따라서 서울의 일간지와 TV에도 사건이 크게 보도되었
는데 내용은 피해자들이 권총 강도를 만났다는 것이었다.
부산 시내는 전 경찰력이 투입되다시피 해서 검문 검색을 강화했
지만 범인의 인상 착의부터 애매했다. 피해자들이 한결같이 어두워
서 범인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고 진술했기 때문에 몽타주도 작성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되면 짚더미에서 바늘을 찾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사건 발생 후 사흘이 지나자 수사는 활기를 잃고 있었다.
조성표가 항도 여행사의 사장실에 들어선 시간은 아침 9시 5분이
었다. 따라 들어온 천기석이 그가 소파에 앉기를 기다려 앞자리에 앉
았다.
"그놈은 아침밥을 잘 먹었다는군요. 물을 가져다 달라고도 했답니
다. "
천기석의 말에 조성표는 잠자코 담배를 꺼내어 입에 물었다. 천기
석이 라이터를 켜 올리자 그는 빨아들인 연기를 길게 뱉어내었다.
"석간에는 사건이 발표되3a지?"
"그렇게 될 겁니다. 지금쯤 그놈 부모가 경찰서에 가 있을테니까요.
(3)
"미리 신문사에다 귀띔을 해주는 게 어때?"
"그렇게 하겠습니다. "
어젯밤 천기석은 부하들을 시켜 배장근의 동생 배영근을 납치해
frl. 대학을 졸업하고 마산의 조그만 회사에 다니는 배영근은 부모
와 함 살고 있었다.
"배장근이가 나타나지 않고는 배길 수 없을 겁니다. 신문에 동생
이 납치당했다는 것을 알면 금방 우리가 한 짓인 줄 알게 되겠지요."
"곧 안도섭 씨가 을탠데 그 전에 처리야 돼, "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그 전에 해결하겠습니다. "
"이제 총 싸움이 되었다. 주먹 시대는 지났어."
"그렇습니다, 사장님. 러시아에서 밀려온 무기가 이제 한국에 깔
리고 있습니다. "
러시아에 등록 안된 무기가 3천만 정이 넘고 모스크바 시내에만
100만정의 무기가 깔려 있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더욱이
이쪽은 극동 지역의 블라디보스토크를 장악하고 있는 코사크 마피아
의 영향을 발는 곳이다. 모스크바보다 몇 배나 많은 무기가 쌓여 있
을 것이었다.
배장근이 배영근의 납치 사실을 안 것은 오후 4시가 되었을 때였
다. 김달수가 음료수와 함께 사온 석간에 납치 사건이 실려 있었던
것이다.
배영근의 친구라는 사내가 부모에게 전화를 걸어 납치되었다고 했
다는데 경찰은 그를 범인으로 지목하고 있었다. 그러나 부모는 물론
경찰도 납치당한 이유를 모르고 있었다. 그는 재산이 많지도 않은 평
76 밤의 대통령 제살1-I
범한 직장인이었고 여자 문재도 없었기 때문이다.
신문에서 머리를 든 배장근이 멍한 시선으로 벽을 바라보았다. 이
곳은 광안리 해수욕장의 민박집이어서 파도 소리가 가깝게 들려 왔
고 열려진 창문으로는 눅눅한 바닷바람이 몰려들어 왔다.
주방에 있던 김달수가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라면 봉지를 뜯었다.
천성인지 살아온 습관 때문인지는 몰라도 그의 표정에는 두려움이
없었다. 그가 머리를 돌려 배장근을 바라보았다.
"형님, 몇 시에 출발합니까?"
"여기서 30랄 거리야."
그가 짧게 말하자 김달수는 건성으로 머리를 」1덕이며 끓는 물에
라면을 집어넣었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는 한국 라면이 금값이라는
것이다.
배장근이 자리에서 일어서자 김달수가 말했다.
"형님, 라면이 다 되었습네다. "
"너 먼저 먹어. 전화하고 을테니까."
전화 박스는 민박집 건너편의 공중 화장실 앞에 세워져 있었다.
철 이른 해수욕장이어서 한낮이었지만 인적이 드물었다. 그는 박스
에 들어가 전화기를 들었다. 동생 배영근을 납치한 것은 조성표 조직
이었고 그것은 그에 대한 신호인 것이다.
발신음이 두 번 울리고는 곧 저쪽에서 전화를 받았다.
"안녕하세요? 항도 여행삽니다. "
교환이었다.
"조성표 사장을 바러 주시오."
"누구신티인"
아쿠자와 러시아 마피아 77
"배장근이라고 전해요."
교환이 잠깐 기다리라고 하더니 곧 굵은 사내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보세요, 배장근 씨?"
"그렇수다. 거기 조 사장이시오?"
"아니, 난 천기석이오."
"아,천 실장."
"배 사장, 기다리고 있었어."
"나를 기다리다니? 남이 들으면 오해하겠군 "
"이 새끼, 능청 떨지 마라."
천기석의 목소리도 높아졌다.
"잔소리 말고 이제 내 말을 들어."
"너회들이 총기 밀수를 했다는 증거물이 나한테 있어. 증인은 나
눈을 치켜 뜬 배장근의 목소리도 격해졌다.
"내가 자폭할 수도 있다는 걸 알아두라구. 어서 내 동생을 돌려보
"이거, 주객이 바뀌었군 그래."
천기석이 기가 막히다는 듯 짧게 웃었다.
"이젠 네가 큰소리 칠 입장이 아니란 말이다. 네가 입만 벙긋해도
일이 날 거야. 하나로 그치지 않을지도 모른다. 무슨 말인지 알아들
어?"
"이 개새끼들."
"넌 살인자야. 벌써 둘이나 죽였어 이젠 네가 당할 차례다. "
78 밤의 대통령 제4부-I
"하지만 네가 우리 말을 따른다면 마음을 바꿀 수도 있지.우선 첫
째로 네가 갖고 있는 총기를 우리애게 건네라. 내일 낮 12시까지 영
도의 뉴 부산호텔 지하 주차장 경비실에 갖다놔."
"그러면 내 동생을 풀어 줄 거냐?"
"네 놈이 진 빛은 많지만 그것으로 네 동참은 집에 간다. "
"341."
"하지만 총기가 한 자루라도 빠져 있으면 협상은 끝이야.무슨 말
인지 알TR지?"
"네 놈들이나 약속 지켜."
배장근은 전화기를 부술 듯이 거칠게 수화기를 고리에 걸었다.
밤 9시. 배장근과 김달수가 해운대의 바닷가에 있는 성도 횟집에
들어서자 구석자리에 앉아 있던 두 사내가 일어섰다.
"어서 오시오, 배 사장 "
그러면서 손을 내미는 3(때 중반의 사내는 부산 밀수 조직의 보스
가운데 하나인 전차섭이다. 그와는 러시아 물품을 들여오면서 안면
을 익혀 두었었다.
"요즘 시끄럽습디다. "
서로 인사를 ,나누고 앉자마자 전차섭이 웃으며 말했다. 콧수염을
기르고 있어서 윗입술은 보이지 않고 횐 이만 드러났다. 머리를 끄덕
인 배장근이 다가온 종업원에게 술과 회를 주문하고는 전차섭을 바
라보았다.
그는 밀수 조직으로 조성표 계열은 아니었다. 그러나 조성표에게
수시로 이익금을 상납하는 관계였다. 그런 그가 이번 사건을 모를 리
야쿠자와 러시아 마피아 79
가 없는 것이다.
"전 사장,조성표의 한 달 수입이 얼마나 됩니까?"
그의 느닷없는 물음에 전차섭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그
는 잠시 눈을 끔벅이다가 입을 때었다.
"글쎄, 한 10억 될라나?"
"지난번에는 10억이 훨씬 넘을 거라고 했지 않습니까?"
"그랬던가?그런데 갑자기 그건 왜 물으시오?"
"전 사장이나 다른 조직한테서 가져가는 상납금은 얼마요?"
"나, 이건 도무지."
그러면서 전차섭이 옆자리의 부하를 돌아보았다.
"영문을 알 수가 없구만 그래 ."
"우선 내 말에 대답을 해주시면 영문을 말씀드리지."
"아마 나나 서동팔이, 김억수한레서 가져가는 돈만 한 달에 3억은
될 거요."
전차섭이 던지듯 말했다.
"다른 뜨내기들은 감히 조 사장한테 직접 상납을 못하고 우리한테
부탁하는데 그 돈까지 합하면 5억은 되겠구만."
"여행사나 건설 회사에서 생기는 이익도 엄청날 것이고,그리고
항도 실업에서 관리하는 파칭코 업체들과 유흥 업소의 지분을 합하
면 한 달 10억은 운습게 올라가겠지."
말을 멈춘 전차섭이 배장근을 찬찬히 바라보았다.
"내가 이렇게 당신하고 만났다는 것을 조 사장이 알게 되는 날이
면 난 끝장이오."
80 밤의 대통령 제수부 - I
'』 # ;7'·'S h
"전 사장이 그렇게 간단히 끝장날 사람이 아털텐태."
"도대 날 보자고 한 이유는 뭐요?조성표의 이익금 물어 보려고
불렀소?"
"나하고 손을 잡읍시다. "
그러자 전차섭이 빙긋 웃었다.
"배 사장은 엉뚱한 데가 있어. 지금 상황에서 배 사장하고 손을 잡
을 사람이 있을 것 같소?"
"야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하루아침에 넘어갈 조성표가 아니오."
"조금씩 파고 들어갈 거요. 그러면서 우리 세력을 늘릴 거요."
"정치권과 관청과의 관계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것을 모르는
군. 이제 조직은 힘만으로는 안된단 말이오."
"돈을 모으면 할 수 있소.그리고 그자들은 믿을 만한 놈들이 아니
오. 특히 정치권 놈들은."
"난 아직 조성표의 그늘이 필요해요. 일을 하려면."
"그래야갰지요. 지금 당장 등을 돌리라는 것이 아니오. 때가 오면
나에게 합류해 주시오."
"도대채 어떻게 하려고?"
그러자 배장근이 옆애 앉은 김달수의 어깨를 손으로 가볍게 쳤다.
"우리 둘이서 해갈 거요.두고 보시오."
골목에서 배장근의 역습을 받아 참담하게 도망쳐 나왔던 오종갑은
며칠 동안 부하들의 장례식과 문병에 눈코를 제대로 가리지 못했다.
그는 스물여템 살에 보스급 서열에 오를 정도로 조성표의 신임을 받
야쿠자와 러시아 마피아 81
고 있었는데 주먹 싸움에는 져본 일이 없는 독종인 데다가 고졸 학력
이었지만 독학으로 글본어를 깨우친 명석한 두뇌의 소유자였다.
병원에서 그가 항도 실업의 사무실로 돌아온 것은 밤 10시가 지났
을 때였다. 항도 실업은 여느 회사와는 달리 밤시간에 더욱 활기있게
움직이는 회사였으므로 사무실은 직원들의 소음으로 가득 차 있었
다.
그가 자리에 앉자 김정구가 다가왔다.
"형님, 12시에 교대니까 11시에는 출발해야 합니다. "
"알고 있어."
"A지역의 정구 형님이 두 명이 모자란다고 핸서 우리 애들 두 명
을 보냈습니다. "
머리를 끄덕인 오종갑은 서랍을 열고 총신이 두꺼운 모제르 권총
을 꺼내어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권총을 며칠 전에 천기석으로부터
보스급 다섯 명에게만 지급되었는데 가지각색이었다. 오늘 밤 B지역
의 경비를 맡은 신재규는 제법 신형인 스미스앤웨슨을 지급받고 입
이 귀밑까지 벌어졌었다. 신재규가 권총을 힐끔거리다가 제자리로
돌아갔다.
의자에 등을 기댄 오종갑은 사무실을 둘러보았다. 오늘따라 사무
실이 붐비는 것은 조성표의 저택을 경비하기 위하여 시내의 업소에
흩어져 있던 부하들을 불러모았기 때문이다.
경비팀은 열 명씩 3교대 근무였는데 경비 지역은 두 곳이었다. 따
라서 하루 60명의 경비 인력이 소요되는 것이다. 12시부터 김정구는
부하 아흡 명을 데리고 A지역인 조성표의 녈가 근무 교대를 해야만
했고 그는 B지역인 조성표의 노호 사모님 댁으로 가기로 되어 있
82 밤의 대통령 제꾸근 - I
었다.
배장근의 동생을 납치해 왔기 때문에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랐다. 배장근은 권총과 기관총므로 무장하고 있었다. 이미 놈은 최
태진을 바닷물에 처박아죽이고 골목에서 총을 쓰아부하 한 명을 더
죽였다. 동생을 납치당한 그가 기관총을 휘두르며 쳐들어 올지도 모
르는 일이었다.
호텔 후문을 나온 주래흥이 내리막길을 걸어 차도로 다가가는데
뒤쪽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어이,주방장.나 좀 봐."
주대흥을 불러 세우며 다가온 것은 세 명의 건장한 사내들이었는
데 그로서는 모두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이봐, 우리하고 같이 좀 갈까?"
앞을 가로막고 선 사내 한 명이 말했다. 밤 11시가 넘어서인지 길
에는 인적이 없었고 분위기로 보아서 그런 것을 꺼릴 무리들이 아니
었다.
"어딜 간다는 거여?"
주대홍이 어리숙한 표정으로 묻자 사내가 어둠 속에서 횐 이를 드
러내며 웃었다.
"쓸데없는 짓 말아라. 당장에 요절을 낼테니까."
아래쪽 차도에서 승용차 두 대가 전조등을 번쩍이며 을라오고 있
었다. 사내 두 명이 다가와 그의 양쪽 팔을 끼었다.
"잠자코 따라와."
승용차에서 다시 대여섯 명의 사내들이 내리자 한적했던 길이 갑
자기 사람들로 메워졌다.
주대홍은 사내들에게 끌려 멈추어 선 승용차 쪽으로 다가갔다. 사
내들이 모두 그에게 시선을 준 채로 입을 다물고 있었으므로 길에는
잠간 동안 발자국 소리만 들렸다.
양팔이 잡힌 채 차 앞에 다다르자 주대홍은 머리를 들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어서 타."
사내 한 명이 그의 목덜미를 잡아 앞쪽으로 밀었다. 그 순간이었
다. 주래흥은 양쪽 팔을 잡은 두 사내의 겨드랑이를 와락 움켜쥐고는
앞쪽에서 박치기를 시켰다. 그리고는 선뜻 몸을 돌려 뒤에 선 사내의
가슴을 주먹으로 쳤다. 그러자 앞쪽이 트였으나 사내들도 만만치가
않았다. 일제히 벌려 서면서 제각기 번득이는 칼과 쇠뭉치를 꺼내어
들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고 쓰러지거나 벌려 선 사내들 모두
가 입을 열지 않았으므로 발자국 소리만 들릴 뿐이다.
사내들을 둘러본 긋대홍은 입술 끝을 비틀어 웃더니 바지에 절러
넣은 회랄을 천천히 뽑아 들었다. 가죽집에 넣어 바지 안쪽에 차고
나온 것이다.
"내가 회를 떠주째."
그의 목소리가 어둠 속으로 퍼져 나갔다.
"사람들한테는 쓰지 않으려고 했지만 오늘은 예외여."
말을 그친 순간 그의 큰 몸이 가볍게 뛰어오르더니 옆에 선 사내
에게 성큼 다가 갔다고 보였을 때 '으악' 하고 처음으로 짧고 높은 비
명 소리가 났다.
"아이고,내 귀."
84 밤의 대통령 제4닦-I
손으로 한쪽 귀를 감싸 젼 사내가 외쳤고 거침없이 앞으로 나아가
면서 회칼을 번득이는 주대흥의 앞애 다른 사래 한 명이 팔목을 움켜
쥐고 주저앉았다. 그러자 사내들이 우르르 한쪽으로 밀려나면서 대
t9 fHISlf13 "808'1 fLfffl 71ft fLr Blf3 f·eaf.
감히 칼날을 들어 그의 회칼을 막으려는 사내는 없었다. 다시 사
내 한 명이 엉덩이를 베였는지 비명 소리와 함께 앞으로 넘어졌다.
그러자 사내 한 명이 등을 돌렸다. 주대홍이 다시 칼바람 소리를 내
며 짓쳐 나가 옆에 있던 사때의 어깨를 찍었다. 이재 서 있는 사람은
두 사람뿐이었다. 등을 돌렸던 사내가 두 다리를 허청이며 아래쪽으
로 뛰어내려가자 남은 사내도 뒤를 따랐다.
주대홍은 피칠을 한 회칼을 들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7, 8명의 사
내들이 길 위에 어지럽게 쓰러져 있었는데 앉아 있는 사람도 있었고
한쪽 팔로 버틴 채 엎드려 있는 사람도 있었파
그러나 신음 소리는 나지 않았고 어둠 속에서 상처 입은 짐승들같
이 두 눈을 번들거리며 그를 바라보았다.
"이제 주방 과장은 끝이고만."
주대홍이 앉아 있는 사내의 양복 어깨에 회칼의 피를 닦으면서 말
했다.
"생선 회칼에 사람 피를 묻혔으니 말이여."
다음날 아침 대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박미정이 문을 열었다. 낮
모르는 사내가 서 있다가 그녀를 보더니 머리를 꾸벅 숙였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대홍 형님의 동생입니다. 고덕균이라고 합니
다. "
야쿠자와 러시아 마피아 85
아직 이른 아침이어서 골목에는 출근하는 사람들도 보이지 않았
다 사내가 한걸음 다가서더니 말소리를 낮추었다.
"형님 심부름 왔습니다. 형님이 오늘부터 주방일을 그만두셨습니
다. 그 말을 전하려고 왔습니다. "
"왜 그만두셨어요? 갑자기."
박미정의 두 눈이 동그래졌다.
"어제만 해도 그런 말 없었는데."
"사고가 생겼어요."
고덕균이 주위를 둘러보고는 조용히 말했다.
"형님은 이제 쫓기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
"그러니까 형님 만나러 호텔에 오시면 안됩니다. 위험합니다. "
"사고 저질렀나요?"
"fl . "
"오빤 지금 어디에 있어요?"
"숨어 있습니다. 시간 나면 곧 연락하겠다고 하더군요."
"숨어 지내려면 돈이 필요할텐데."
"돈은 많습니다. "
고덕균이 반발짝쯤 물러섰다.
"그럼 이만. 혹시나 누가 형럼을 찾거들랑 보지 못했다고 하십시오. "
멍한 표정으로 서 있는 라미정을 뒤로 하고 고덕균은 서둘러 골목
을 빠져 나왔다. 한달음에 찻길로 나온 그는 길가에 주차된 승용차로
다가가 운전석에 올랐다.
"뭐라고 허데?"
원자리에 기대 앉아 있던 주대흥이 묻자 그는 힐끗 백미러를 바라보았다.
"몸조심하라고 합디다. "
"숨어 지내려면 돈이 필요할 것 아니냐고도 하더구만요. 돈을 집어 줄 눈치였어요."
천천히 길을 내려가던 차는 좁은 길을 나와 큰길로 들어섰다.
"괜찮게 생겼던데요, 형님."
"시끄러 . 가자."
도로에는 아직 차량의 통행이 뜸했으므로 차는 전속력으로 달려나갔다.
아침부터 내내 그늘진 얼굴로 방에서 나오지 않던 박미정이 저녁
때가 되어서야 손바닥만한 마당으로 나와 부져에 있는 어머니에게 말했다.
"엄마, 나 잠간 아래 가게에 갔다올게."
"워하러?"
"바람 쐬러."
어머니는 저녁 짓기에 바쁜 모양으로 고개도 들지 않았다.
집을 나온 그녀는 가게에 들러 우선 계산대 앞에 꽃혀 있는 석간신문 하나를 집어 들었다.
값을 치른 그녀는 밖으로 나와 조심스럼게 신문을 펼쳤다.
한장 한장 넘겨 보던 그녀는 이윽고 신문을 모아 쥐고는 길게 숨을 내쉬었다.
주대흥의 사진도, 기사도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신문을 든 채 한동안 가게 앞에서 있던 박미정은 옆쪽의 공중 전화 박스로 다가갔다.
다이얼을 누르자 곧 신호가 떨어졌다.
"서진 호텔입니다 "
"일석당 좀 바러 주세요."
그러자 바로 연결이 되면서 카운터 아가씨의 녹음한 것 같은 목소리가 들려 왔다.
"주 과장님 나오셨어요?"
"실례지만 누구신데요?"
"그냥, 아는 사람인데."
"오늘 안 나오셨어요."
"어디시라고 전할까요?"
"저어, 그냥."
그러면서 수화기를 내려놓은 박미정은 다시 어깨를 늘어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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