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혼돈의 밤
(1)
이동천은 앞에 앉은 강일도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블라디보스토크의 모든 운송 체계를 지배하고 있는 코사크 마피
아가 한국에 진출할 것은 틀림없습니다. 아니, 진출할 곳이 한국밖에
없다고 봐도 됩니다. "
강일도가 잠자코 있자 그가 다시 말을 이었다.
"일본의 야쿠자와 러시아의 마피아가 한국에서 부딪치게 되겠지
요. 한국에는 이미 야마구치조(tUHSa)는 물론이고 스미요시 카이
(숨음), 아이즈 고데츠(출혀J·8)까지 기반을 굳히고 있으니까요."
강일도가 입맛을 다셨다. 그는 서울 지검 특수2부 부장으로 이동
천의 직속 상사이다. 밖은 눈부신 헛살이 비치고 있는 5월의 나른한
오후였다.
"글,그건 나도 알아. 이 검사,하지만 지금은 시기가 아냐."
자리를 고쳐 앉은 그외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흔픈의 밤 15
"지난번에 내가 보고한 서류도 아직 총장 책상 위에 그대로 있어.
서두르지 마."
"정치권에서 보류시키는 겁니까?"
"한일간,또 한러간의 정치적인 문제가 얽혀 있어."
이동천이 입가를 비틀며 씁쓸하게 웃었다.
"말하자면 일본이나 러시아의 정치인들이 야쿠자와 마피아의 조
종을 받는다는 말씀이군요?"
"그리고 놈들은 한국에 합법적인 투자를 하고 있단 말이야. 우리
측애서 보면 그놈들의 범법 사실은 찾기 힘들고."
"그놈들과 연계한 한국인들을 찾으면 됩니다. 그자들을 캐면 분명
히 범법 행위가 나옵니다. "
그러자 강일도가 천천히 머리를 저었다.
"시기가 아니라고 했지 않나, 이 검사?"
"말하자면 한국인들도 정계에 배경이 있다는 말씀이군요."
"너무 깊게 들어가지 말게."
"지금 한국은 조선조 말기의 혼란기와 다름없습니다. 러시아와 일
본의 새력이 침투해 오는데 관리들은 제각기 친일, 친러로 나누어져
서‥‥‥‥
"아직 친러는 없어."
웃으면서 강일도는 소파에 둥을 기대었다.
"이 검사는 논리의 비약이 심하구만. 너무 얘민해."
"한국에 김원국 같은 보스가 없다는 것이 유감입니다. "
"밤의 대통령 말인가?"
강일도가 다시 웃었다.
16 밤의 대통령 제딘부 - I
"그자는 죽었어. 아니 죽지 않았더라도 이제 다시 나타나지는 않
1. "
"그런 사람이 밤의 세계를 확실하게 장악하고 있다면 러시아와 일
본을 경계하지 않아도 될 겁니다. "
"하긴 그렇지. 우리 걱정거리도 덜 것이고."
잠시 방안에 정적이 흘렀고 그걸 견딜 수 없는 듯 이동천이 자리
에서 일어섰다.
"그림 저는 가보겠습니다. "
"그래, 이 검사."
머리를 끄덕인 장일도가 이동천과 시선이 마주치자 웃어 보였다.
"기다려, 나서지 말고. 알아듣겠나?"
서른두 살의 이동천은 검사 경력 5년째였다. 그는 대전과수원의
지방검찰청에서 근무하다가 특수부에 온 지 」개월이 조금 넘었다.
당당한 체격에 사내다운 용모의 그는 성격이 대담했다. 처음 부임
해 간 대전에서 상사의 압력을 거부하는 바람에 수원으로 밀려났즌
데 그곳에서 직속 상관인 강일도를 만나게 되었던 것이다.
강일도는 그의 의기를 높이 평가해 주었고 서울 지검으로 영전해
가자 곧 그를 서울로 끌어 올렸다. 말하자면 강일도는 이동천의 후견
인이나 마찬가지였다.
강일도의 방을 나온 이동천이 자신의 214호 검사실로 들어서자
박인규가 머리를 들었다. 그는 이동천의 서기로 40대 후반의 사래였
다.
"검사님, 김양호 씨가 기다리고 있습니다만."
혼돈의 밤 17
이동천이 시계를 내려다보았다.
"내가 조금 늦었구만, 들어오라고 해요."
강일도와의 이야기가 생각보다 길어졌던 것이다.
박인규가 밖으로 나가더니 곧 50대의 말쑥한 차림새의 사내와 같
이 들어섰다. 사내는 얼굴에 웃음을 띠고 있었는데 조금도 위축된 기
미가 보이지 않았다.
"처음 뵙습니다, 검사님. 저, 김양호올시다. "
"앉으세요."
인사를 마친 그들은 책상을 사이에 두고 마주앉았다.
김양호애게서 풍기는 향수 냄새가 은근했는데 이동천은 그게 기분
나쁘게 여겨지지 않았다. 옷차림이나 용모, 매너가 세련돼 보여서 호
감이 가는 사내였다. 그는 외무부 국장 출신으로 지금은 국제 호텔의
대표이사이다.
이동천이 부드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바쁘실텐데 이렇게 뵙자고 해서 미안합니다. 몇 가지 여쭤 볼 것
이 있어서요."
"예, 말씀하십시오. 뭐든지 제가 알고 있는 것이라면."
"일주일 전에 국제 호텔에 투숙했던 다섯 사람의 일본인에 관해선
데요."
"일본인 말입니까?"
김양호가 눈을 점벅이며 그를 바라보았다.
"그렇게 말씀하시면,하루에도 백여 명씩의 일본인이 체크인하고
그 숫자만큼 나가고 있숩니다. "
"오다, 가레다, 오쿠보 등의 가명을 쓴 다섯 명인데 아래충 카지노
18 밤의 대통령 제』렬 - I
에서 거액을 잃었지요. 그러면 기억 나실 법한데."
"글쌔요, 저는 도무지‥‥‥ 카지노의 지배인에게 물어 보면 혹시
알지도 모르겠군요."
"이미 불러서 물어 보았습니다. "
"오다, 오쿠보 둥의 이름과 인상만 기억할 뿐이지 무엇하는 자들
인가는 모르고 있더군요."
그러자 김양호가 얼굴에 웃음을 띠었다.
"그도 모르고 있는데, 제가 알 리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그자들이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야마구치조의 중간 간부들이지요."
"카지노에서 거액을 잃지 않았다면 모르고 지나칠 뻔했는데, 국제
호텔에 닷새 동안 머물다가 이틀 전에 출국했습니다. "
"글쎄요, 그건."
"혹시 그자들을 만나시지 않았습니까?"
"아니, 내가 왜 그자들을?"
김양호의 얼굴이 비로소 딱딱하게 굳어졌다. 그러자 전혀 다른 사
람으로 보였다.
"검시님, 말씀이 지나치지 않습니까?"
"국제 호텔의 소유주는 양승일 회장이시고, 김 사장꼐서는 그와
친분이 있으시지요?"
그러자 김양호는 굳어진 얼굴로 그를 바라볼 뿐 아무 대라도 하지
않았다.
혼돈의 밤 19
"외무부에 계실 때 일본 대사관의 총영사까지 지내시고, 그때 많
은 일본 사람들과 교우 관계를 맺으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만."
"대답할 가치가 없는 이야기요."
김양호가 딱딱한 목소리로 말했다.
"더 이상 이야기를 비약시키기 전에 내가 일어나는 것이 낫겠소."
"그런 인연으로 양충일 회장께서 김 사장님에게 호텔 경영을 맡기
신 것 아닙니까?"
김양효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내가 잘못 왔군. 이런 대접을 받을 줄 알았으면 오지 않았을 거
요. "
"야쿠자가 활개를 치고 다니게 할 수는 없습니다, 김 사장님."
따라 일어션 이동천이 그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오늘은 그걸 말씀 드리고 싶었습니다. 그것이 뵘자고 한 이유였
습니다. "
드럼통 두 개만한 체격의 주대흥이 번뜩이는 회칼을 들고 다가가
자 앞쪽에 나란히 앉아 있던 한 사장 일행이 일제히 말을 멈추었다.
체격도 그렇지만 얼굴만으로도 가슴이 서늘해지는 용모였다. 울통
불퉁한 얼굴 표면에다 소처럼 큰 눈 밑으로 주먹만한 딸기코가 매달
려 있었고 설상가상으로 꾹 다문 넓고 굵은 입술을 보면 바로 절 문
간에 세워 놓은 사천왕이었다.
그러나 그는 서진 호텔 일식부의 주방 과장이다. 횐 가운에 끝이
부푼 빵처럼 생긴 주방 모자를 쓰고 있는 그가 지금 상대하려는 것은
도마 위에 놓인 광어였다.
20 밤의 대통령 제』럭 -I
그는 한쪽 손바닥을 아직도 살아 펄떡이고 있는 광어 위에 부드럽
게 덮었다. 그리고는 칼날이 놀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움적였
으므로 한 사장 일행은 흘린 듯이 그의 손끝을 바라보았다.
순식간에 껍질ol 깨끗이 벗겨진 광어는 가지런히 샐려 도마 위에
놓였는데 아직도 머리와 꼬리는 꿈틀거리고 있었다-
"기가 막히군, "
일행 한 명이 감탄을 했다. 벗겨낸 껍질은 종잇장처럼 않았고흠
집 하나 없었던 것이다.
"주 과장의 솜씨는 서울에서 제일이라네."
자랑하듯 한 사장이 말했다. 그의 말대로 주대흥의 칼질 송뷔는
서진 호텔 일식부의 명성을 높여 주고 있었다.
작년에 죽은 그의 스승 박 부장도 칼질 솜씨만은 주대홍을 당해내
지 못했던 것이다. 그가 한발 물러서자 보조가 다가와 고기를 접시에
옮겨 담았다.
그매 프런트에 앉아 있던 미스 장이 이쪽으로 다가왔다.
"주 과잠님, 전화예요."
주방에도 전화가 있었지만 벨이 울리지 않는다. 주대흥은 주방 안
쪽의 전화 박스로 다가가 전화기를 들었다.
"여보시오."
자신의 목소리가 워낙 크고 굵은 것을 아는지라 그는 한껏 소리를
낮추어 말했다.
"형텀, 고덕균외오."
저쪽에서 소리치자 주대흥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쪽에 신경을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흔돈의 밤 21
"너, 시방 어디여?"
"세차장이오. 가만, 여기가 삼성동인가?"
"빌어묵을 놈.'
"빌어먹지 않으려고 이럽니다, 형님."
주대홍이 쩍 소리를 내며 입맛을 다셨다.
고덕균은 그의 친동생이나 다름없는 후배였는데 직업이 자동차 절
도였다. 그는 지금 훔친 차를 팔아 넘기기 전에 세차를 하고 있는 것
이다.
"형님,오늘 저녁에 시간 있어요?"
고덕균이 들뜬 목소리로 물었다.
"내가 한잔 살레니까 나오슈. 한번 깨지게 먹어 봅시다. "
그보다 두 살 아재인 고덕균은 스물일곱이었다. 그는 중학교 때
가출을 해서 이곳저곳을 떠돌며 고등학교와 야간대학을 마쳤다.
그의 부친이 조그만 건설 청부업체를 운영했던 덕에 고덕균의 어
린 시절은 그런대로 유복했다. 그러나 그가 중학교 2학년 때 교통 사
고로 어머니가 세상을 뜨자 6개월 후에 아버지는 새어머니를 데려왔
고 그것이 집을 나온 동기가 되었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새어
머니가 데려온 고덕균과 동갑내기인 딸 때문이었다. 중학교 3학년
때 고덕균은 그녀를 강간하려다 실패하자 가출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와 약속을 하고 주방으로 돌아오자 한 사장 일행 옆에 손님 세
명이 늘어앉아 있었다. 처음 보는 사람들이었지만 10년 가깝게 주방
에서 손님을 겪은 주대홍은 그들의 신분을 금방 짐작할 수 있었다.
해결사들이다. 건장한 체격에 단정하게 넘긴 머리칼, 그리고 값비싼
맞춤 양복을 입고 있는 그들은 날카로운 시선과 치켜든 턱, 그리고
22 밤의 대통령 제』력-I
툭툭 던지는 말투를 그대로 드러내며 굳이 자신들의 신분을 감추려
들지 않았다.
"광어 좋은 것으로 한 마리."
가운데에 앉은 사래가 던지듯 말했다. 셋 중의 우두머리로 보였는
데 둥근 어깨 위에 머리만 달락 놓인 것 같은 채격의 사태였다.
"fl "
머리를 숙인 주대홍이 손짓하자 보조가 금방 광어 한 마리를 들고
왔다.
"형씨, 체격이 좋구만."
가운데의 사래가주대홍을 바라보며 말했다.
뱀의 눈처럼 깜박이지도 않고 이쪽을 쏘아보았으므로 주대흥은 머
리를 숙였다.
"고맙습니다, 선생님."
"운동했소?"
"안혔는디요."
그의 시선이 힐끗 주대흥좌 손등을 스치고 지나갔다. 주먹에 흠집
은 없었다. 그들은 이쪽의 반응이 싱겁자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주고
받기 시작했다.
주방에 서 있으면 가지각색의 사람들에게서 다양한 이야기를 듣게
되는 것이다. 오늘도 주대흥은 무심한 얼굴로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
며 칼질을 해나갔다. 이제 불륜을 저지르고 있는 남녀가 아무리 여
보, 당신을 부른다고 해도 그는 한눈에 남남인 것을 구별했고 호기있
게 비싼 회를 시키면서 팁을 뿌려도 사내의 어려운 재정 형편을 맞출
수가 있게 되었다.
(2)
사내들은 이이기에 몰두하고 있어서 횟감이 다 되었는데도 이쪽에
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저녁 1시 제분.부산 영도의 번화가를 벗어난조그만 음식점 앞
매장근이 루델스키와 함께 입구 쪽으로 다가가자 어다서 나타났는
지 사래 두 명이 앞을 가로막고 섰다.
"배 사장이십니까?"
"그렇소."
그들은 힐끗 뒤쪽을 바라보더니 비켜 섰다. 안으로 들어서자 팅
빈 식당의 구석자리에 앉아 있던 최태진이 머리를 들었다.
"배 사장, 늦었소."
"새관 감시가 심해서 이 사람이 늦게 나왔심다. "
그들은 최태진의 앞자리에 앉았다 단정한 옷차림에 준수한 용모
의 배장근은 얼굴에 부드러운 웃음을 띠고 있었다.
칙태진은 조성표의 보스급 간부였는데 그들이 20분이나 늦은 게
언짢은지 이맛살을 찌푸린 채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의 시선이
루벤스키가 옆애 내려놓은 가방으로 옮겨지자 배장즐이 말했다.
"물건은 틀림없습니다. "
"그럼 좀 볼까?"
배장근의 눈짓을 받은 루벤스키가 식탁 위에 묵직한 가방을 올려
tfrt.
그가 알루미늄 가방의 뚜껑을 열자 안의 내용물이 드러났다. 흐린
불빛 아래서도 검개 번들거리고 있는 것은 권총과 기관총, 탄알과 탄
창 등이다.
24 밤의 대통령 쟤4부-I
_._=
"리붙버 다섯 자루에 우저 두 자주입니다.그리고 소음기가 세 개,
탄알이 각각 3oeew "
최태진이 리볼혀 한 자루죠 손얘 쥐더니 총구와 약실을 찬찬히 바
라보았다.
"나쁘지는 않군."
"새것이나 다름없습니다. "
그러자 식당의 입구에서 인기척이 들리더니 4 명의 사태가 들어
섰다.
"우리도 준비한 걸 드려야지."
최태친이 손을 밀자사네 한 명이 그에게 묵직 보이는 봉투를
건네주었다.
"이것, 받으시오."
최태진이 봉투를 받아 식탁 위에 던지며 말다. 그리고는 리볼버
한 정을 들고 탄알이 든 탄창을 철거덕 소리와 함례 끼워 넣었다. 붕
투에 든 달러를 세어 보던 장근이 머리를 들었다.
"이거, 만 달러 밖에 안 되는,파광님,"
리블버에 소음기를 돌려 피우던 최태진이 눈을 둥그렬걔 떴다.
"그럴 리가 있나?다시 세어 보시오."
배장근이 5달러와 10달러, 2☞달러짜리로 어지럼계 묶여 있는 돈
뭉치를 식탁 위에 던졌다.
"세기 어렵게 섞어 묶은 것을 보면 당신이 장난을 치려는 모양인
fl ."
"그게 무슨 딸버룻이야?"
어느덧 소음기를 끼운 최태진이 리볼버를 들어 배장근의 가슴을
혼돈외 밤 25
겨누며 말했다. 사내들이 배장근과루벤스키 등뒤에서 옆쪽으로 비
켜 섰다.
"어차피 너희들 손에 쥐어지지도 않을텐데 만 달러면 어떻고 천
달러면 어때?"
검은 총구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던 배장근의 얼굴이 풀어지더니
얼굴애 웃음이 떠을랐다.
"증거를 남기지 않으려고 우리를 아예 없앨 작정이군."
"총의 성능을 시험도 해볼 겸 말이야."
"개자식."
짧게 욕설을 뱉은 배장근이 한손을 바지 주머니에 집어 넣었다.
그 순간 최태진은 리볼버의 방아쇠를 당겼다.
"철컥!"
공이가 약실을 두드리는 쇳소리가 긴장으로 숨소리도 들리지 않는
식당 안을 울렸다.
"병신. "
배장근이 꺼내 든 수류탄의 안전핀을 이빨로 어 뱉으면서 말했
다.
"공이를 때놓았어, 이 개새끼야. 백번 잡아당겨 보았자 헛것이다. "
그가 수류탄을 쳐든 벌떡 일어서자 Al내들이 한 발좌훽 물러섰
고 최태진은 상체를 뒤로 젖혔다. 루벤스키가 재빨리 가방 안에 달러
를 던져 넣은 후 최태진의 손에서 리볼버를 낚아채었다.
"이 새끼, 같이 폭사하기 싫으면 차를 밖에다 대어라. 어서."
최태진의 멱살을 움켜쥔 배장근이 으르렁대듯 말했다.
"어서 부하 한 놈을 내보내!"
26 밤의 대통령 제샬1- I
"야! 누가 나가서 ,"
최태진이 악문 잇사이로 말을 뱉었다.
"차를 가져 와."
"어서!"
배장근이 소리치자 사래 한 명이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 사이에
리볼버의 노리쇠에 공이를 끼워 넣은 루벤스키가 권총을 손에 쥐었
다.
"이봐,넌 그걸 터뜨리지 뭇해.쇼 하지 마라."
이윽고 최태진이 말했다.
"넌 어디로 도망치지도 못해."
"어디 그러나 볼까?"
수류탄을 껸 주먹으로 배장근이 그의 턱을 쳤다. 입구로 사내들
대여섯 명이 몰려들어 왔으나 주춤거릴 뿐 선뜻 안으로 다가오지 못
했다.
"차를 랄리 대! 이 새끼들아!"
다시 주먹으로 얼굴을 치자 최태진의 입은 금방 피투성이가 되었
다. 루벤스키가 입구의 한쪽을 겨누고는 리볼버의 방아쇠를 당겼다.
"퍽 !"
소음기를 통한 무거운 발사음이 들리더니 사 한 명이 손으로 어
를 감싸 쥐었다. 그러나 입구 좌우로 벌려 선 부하들은 이쪽을 노
려보며 물러나지 않았다. 식당 밖에서 자동차의 앤진 소리가 들리더
니 사래 한 명이 들어섰다.
"차 준비가 되었습니다, 사장님 ."
배장근은 최태진의 목덜미를 잡고 앞으로 밀었다.
흔돈의 밤 27
"자,가자.너는 우리와 함꼐 간다. "
권총을 휘두르며 루벤스키가 뒤를 따랐다.
식당 입구에 주차되어 있는 승용차로 다가간 배장근이 몸을 돌려
뒤에서 좁혀 오는 사내들을 바라보았다.
"꺼져. 훽지기 전에 말이야."
최태진을 조수석으로 밀어넣은 그는 운전석에 올랐고 사내들에게
권총을 가눈 루밴스키는 원자리에 탔다. 차 시동을 걸고 급하게 발진
시키려던 배장근은 문득 손에 윈 수류탄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는
열린 창을 통해 수류란을 사내들이 몰려선 곳으로 던졌다.
Al내들이 고기때 흩어지듯 사방으로 피하는 것을 본 그는 승용차
를 급하게 발진시켰다. 골목을 나와 큰길에 들어섰는데도 수류탄의
폭발음은 들려 오지 않았다.
방 1 1시 정각. 우길만 일행이 조양 실업의 사장실로 들어서자 기
다리고 있던 김대수 사장이 허리를 굽혔다.
"어서 오십시오."
그의 옆에 서 있던 전무는 벌써부터 긴장으로 얼굴이 하얗게 굳어
져 있다.
우길만이 잠fl코 소파에 앉았고 그를 수행해 온 두 사내는 그의
뒤에 어깨를 펴고 섰다.
주춤대며 우길만의 앓에 앉은 컴대수와 전무가 몸을 굳혔다.
"그래, 얼마가 준비되었다구요?"
우길만이 낮은 목소리로 묻자 김대수가 헛기침을 하고 침을 삼켰
다. 전무가 먼저 입을 열었다.
28 밤의 대통령 재삭」 -I
-.. '!".'#'. .
"2억 5천입니다,사장템."
잔뜩 주눅이 든 목소리였다.
"한 달만 더 여유를 주시면 나머지 3억은 꼭."
그러자 우길만은 소파에 둥을 붙이고는 입맛을 다셨다. 40대 후반
으로 다소 비대한 체격에 얼굴의 혈색이 좋은 그는 동원 기획의 사장
이었다.
동원 기획은 동원 그룹의 자회사로서 그를 산하의 백화점과 채인
점에 물품을 공급하는 유통 회사였는데 품목이 많기 매문에 수백 개
의 생산 회사와 거래 관계를 맺고 있었다. 조양 실업도 수산물 남풍
업체의 하나로 연간 20억 원 정도를 롱뭔 그룹에 납품하고 있었다.
"당신들 마음대로 기간을 연장하는구만."
우길반이 입을 열었다. 얼굴예 회미한 운음기가 떠올라 있었다.
"당좌 기일은 아직 빈잔으로 놓아 두었는데 이 따위로 행동한다면
당장 내일이라도 돌릴 수가 있어."
"이것 보시오, 우 사장님."
김대수가 번쪄 머리를 들었다. 깡마른 채격애 검고 주름진 얼굴의
사내였는데 나이는 6e세가 넘어 보였다.
"새상에 이런 법이 어디 있습니까?우리 부채는 2억도 되지 않아
요. 3al 5천은 팅친들이 마음대로 만들어 놓은 금액이오."
김대수의 말투가 거칠어지자 우길만의 뒤에 서 있던 사내들이 긴
장했다.
"갑자기 거래를 정지시키고 담보용 으로 맡긴 백지 당좌에 금액을
적어 돌리다니, 어떻게 그럴 수가 있단 말이오?"
"억울하면 고소하시든가."
흔돈의 밤 29
부드러운 말투로 우길만이 말했다.
"우린 계약서에서 한치도 어긋난 일을 하지 않았어. 당신들은 일
년 반 동안 크레임을 여섯 번 먹었고 불량품 재고가 20퍼센트가 넘
었어.지금까지 우리가 참아 온 것을 고맙게 생각해야 돼."
그러자 전무가 헛기침을 하고 나섰다.
"재고는 그렇다고 하더라도 크레임은, 계약서에 30퍼센트를 제한
다고 써 있기만 해서."
"이제 그쫌 해두고."
우긴만은 손을 저으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2억 5천은 준비되었다니, 어디 좀 볼까."
그러자 한동안 우길만을 쏘아보던 김대수가 긴 숨을 내쉬면서 탁
자 밑에 놓인 가방을 들어 앞에 을려놓았다. 뒤쪽에 서 있던 사내들
이 불쑥 나서더니 가방을 열고 수표와 현금 뭉치를 탁자 위에 쏟아
놓았다. 그들은 익숙한 동작으로 돈을 계산하기 시작했다.
"우린 법적으로 문제가 얼어. 물론 당신들도 말아보았겠지만."
소파의 팔걸이를 손가락으로 가볍게 두드리며 우길만이 말했다.
"그리고 회사가 부도를 내면 어떻게 된다는 것도 알아보셨겠지."
"당좌는 담보용이오."
억눌린 소리로 김대수가 말하자 우길만이 코웃음을 쳤다.
"담보응이라는조항은 없어, 깅 사장, "
"구두 약속이었소. 중인이 ‥‥‥‥
"닥쳐, 이 새끼야."
이재 우길만의 얼굴이 찌푸려졌고 작은 두 눈이 매섭게 치켜 뜨여
졌다.
30 밤의 대통령 쟤4부 -I
____=='-
"내일 저녁까지 잔금 3억을 가져오든가 아니면 회사의 지분으로
계산해서 넘겨 주든가 둘 중의 하나를 택해, "
"회사의 지분이라니?"
김대수가 번쩍 얼굴을 들었다.
"이런 날강:I 같은."
"그렇다면 내일 아룅 당좌를 돌려서 쇠고랑을 차게 만달어 줄까?"
양쪽의 분위기가 금방 칼부림이라도 날 것같이 살벌했지만 두 사
내는 머리를 들지도 않고 수표와 돈을 혜아리고 있었다.
"그렇게 되면 회사는 어떻게 되지? 하루아침에 거덜나게 돼. 7척
의 배와 공장은 모두 은행에 압류당하게 되고. 당신들 부채는 자산보
다 50억이 많아. 당신 집까지 포함해도 말이야."
"이, 이런."
얼굴이 첫뻣하게 굳어진 김대수가 온B을 떨었으나 우길만은 또박
또박 말을 이었다.
"회사가 움직여야 당신이나 회사가 살아. 그러기 위서는 지분을
나누어 줘서 우리를 동업자로 끌어들이는 방법밖에 없어."
"날강도 같은 놈."
김대수가 입술을 떨며 말했다.
"절대로 못해. 네늠들의 속샘을 내가 안다. "
"속셈이고 턴셈이고 너는 다른 방법이 없다니까 그러네."
계산을 끝낸 사내들이 돈을 가방에 넣고 있었다. 우길만은 자러얘
서 일어섰다.
"내일 아침얘 서류를 보낼태니까 계약을 하자군. 지분은 30퍼센트
로 하지."
혼돈의 밤 31
"이, 천하의 도적놈들."
"오늘 밤 잘 생각해, 김 사장."
"못한다, 이 도적 놈들아."
김대수가 악을 썼으나 우길만은 빙긋 웃었다.
"하게 될 거야. 당신이 어떻게 만든 회사인데."
대치동의 아파트에서 차를 내린 우길만은 가방을 든 부하와 함께
아파트 현관으로 다가갔다. 인적이 끊긴 깊은 밤이었고 경비원의 모
습이 보이지 않는 것을 보면 잠든 모양이었다. 그들이 현관 안쪽의
엘리베이터로 다가가 막 멈추어 섰을 몌 뒤쪽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머리를 돌린 우길만은 눈구멍만 두 개가 뚫린 검정색 마스크를 보았
다. 담이 큰 우길만이었지만 그 순간에는 호흡을 멈추고 눈을 치켜
떴고 옆에 선 부하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순간이었다. 우선 부하가 재빠르게 한 손을 허리춤에 넣으
며 사내를 가로막듯이 섰지만 마스크를 쓴 거인의 주먹이 부하의 옆
얼굴을 쳤다. 마치 해머로 내려치는 것 같은 무서운 기세였다.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와 함께 부하가 몸을 엘리베이터에 부딪치며 넘어졌
다.
우길만은 중심을 잡으려는 사내의 빈 틈을 이용해 발을 날렸다.
그의 발끝은 정확히 사내의 옆구리를 찍었지만 사내는 끄떡하지
않고 한걸음 다가왔다.
"누구냐!"
아파트가 떠나갈 듯이 우길만이 고함을 쳤다. 사람을 모으기 위해
서였다. 그러나 다음 순간 사내의 주먹이 날아와 그의 배를 질렀다.
핀 밤의 대통령 제와부-I
무서운 충격이었다.
얼굴이 하딘개 된 우만이 사태의 주먹 한방에 허리를 꺾었고 곧
두 무릎을 꿇었다. 다시 주먹을 치켜 을렸던 사래가 곧 팔을 내리더
니 땅애 떨어진 가방을 주워 들었다.
"다, 당신 누구요!"
그때서야 경비실에서 나이 든 경비가 소리쳤으나 얼굴만 내밀 뿐
밖으로 나오려 하지 않았다.
사내는 가방을 쥐고는 재빠르게 아파트의 현관을 빠져 나갔다.
"도둑이야! 강도야!"
경비가 온 아파트가 울리도륵 소리치고는 밖으로 나랐다. 그리고
는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우길만과 델리베이터 쪽에 널브러저 있는
부하를 번갈아 바라보면서 허둥거렸다.
"이거 신고를, 아니, 병원에."
배를 움켜쥐고 몸을 일으켜 새우던 우길만은 창자가 끊어지는 것
같은 고통에 신음 소리를 내었다.
"이봐요, 그만둬!"
그가 겨우 소리치자 별브러져 있던 부하가 사지를 꿈틀거렸다. 놈
은 단 두 방에 이쪽두 명을 요절냈런 것이다.
새벽 바닷가. 짙은 어둠에 싸인 바닷가는 파도 소리만 들려을 뿐
보이는 것이라고는 부산만 건너편의 불빛 몇 점뿐이다.
백사장으로 최태진을 끌고 온 배장근은 발을 멈추었다. 파도가 발
밑에까지 다가왔다가 밀려 가고 있었다.
"날 어턱하려고 이러는 거야?"
혼돈의 밤 33
마침내 참다못한 최태진이 소리를 쳤다. 목소리가 털려 나왔다.
"이봐, 배 사장. 이럴 것 없이 화해하자구. 내가 약속대로 만 달러
를 더 만들어 을테너까 그때 다시‥‥‥‥
"닥쳐 ."
소리와 함께 배장근이 내지른 발길에 배를 채인 최태진은 털색 무
릎을 꿇었다. 배장근은 권총의 총구를 최래진의 이마에 대었다.
"어차피 너희들하고는 끝장이야. 괜한 수작 부리지 마라. 볼쌩사
납다. "
"배 사장, 이럴 필요는‥‥‥ 제발‥‥‥
최태진의 목소리가 더욱 간절해졌다.
조성표는 시의원으로 여행사와 다섯 개의 파칭코 업체를 경영하는
부산의 신흥 보스였고 최태진은 그의 심복이었다. 그는 이제 조성표
애게서 물려받은 파칭코 업체 한 곳의 사장이었으므로 앞으로의 화
려한 미래에 대한 미련이 플 수밖에 없었다.
"배 사장, 살려 주면 은혜는 잊지 않겠소."
모래사장에 무릎을 꿇은 채로 최태진이 말했다.
"오늘 일을 없었던 걸로 하겠소.정말이오.맹세할 수 있습니다. "
"개소리 집어쳐."
그때 어둠 속애서 루벤스키가 다가왔다
"장·f, 뭘 하고 있는 거이?"
"이놈이 살려 달라는데 "
들은 러시아어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그래서, 살려 줄 생각인가?"
최태진을 내려다보며 루벤스키가 묻자 배장근은 머리를 저었다.
34 밤의 대통령 재실』 -I
"아니. 지금 마음을 정했어. 이놈을 바다로 끌고 가 익사시키자
구."
"좋지. 총소리를 내는 것보다 낫겠군. 이놈한테는 더러운 일이3a
지만."
총을 주머니에 넣은 배장근이 처태진의 한쪽 팔과 목덜미를 쥐자
루벤스키도 따라서 다른 쪽을 쥐었다.
"이, 이거 왜 이러는 거of"
질색을 한 최태진이 소리를 쳤다. 그러나 그는 자신을 바닷속으로
끌고 들어가는 것을 보고는 금방 알아차렸다.
"사람 살려! 사람!"
그의 비명은 두 번 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무릎까지 차오른 바랄
속에 서서 그들은 최태진의 머리를 아래쪽으로 누르고 서 있었다. 어
디선가 뱃고동이 가늘게 울렸다. 그러나 짙은 어둠에 묻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배장근은 스물아흡 나이로 시내에 20평짜리 오퍼상 사무실을 가
지고 있었는데 그의 본업은 블라디보스토크의 마피아보스인 밀로체
프의 부산 대리인이었다.
무역 회사를 그만두고 일본으로 액세서리 수출을 하던 그는 5개월
만에 자본금을 이고 빈털터리가 되었다. 그리고 나서 시작한 것이
부두에서 러시아인의 통역사 및 안내인 노룻이었다. 그는 선원들이
가져오는 모피를 중개해 주다가 마피아 일원인 루벤스키를 만나게
되었던 것이다.
밀로체프는 배장근을 통해 모피와 가죽, 보드카 둥의 수요자를 찾
혼돈의 밤 35
아 물품을 공급하였으며 무기류의 판는 거의 없었다. 당국의 단속
이 신경과민적일 정도로 심하고 집요했을 뿐만 아니라 총기 사건이
발생하면 군까지 동원하는 판국이어서 조직에서도 총기류 취급을 하
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 최태진이 권총 다섯 정과 기관총 두 정을 2만 달러
로 구입하겠다고 제의해 오자 밀로체프로서는 전혀 주저할 것이 없
었다. 즉라 루밴스키를 통해 무기를 보내 주었는데 결과가 이렇게 되
자 배장근은 입맛이 썼다.
"장근,이것은 당신이 당분간 보관하고 있어야겠어."
루벤스키가 옆에 놓인 가방을 눈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그들은 해
운대의 주택가 안애 있는 단층 양옥집 안방에 마주앉아 있었다.
"나는 오늘 오후에 출항하는 배로 블라디보스토크로 간다. 보스에
게 사건을 보고하고 지시를 받을 때까지만이라도."
"이봐, 루벤스키. 저 가방은 내가 갖겠어. 보관이니 뭐니 그 따위
소리는 말어."
배장근의 말에 루벤스키가 늘어진 눈시울을 들어올렸다.
"그게 무슨 말이야?"
"원래 2만 달러 받으면 나에게 5천 달러 주기로 했지 않아?그런
데 너는 이미 만 달러를 갖고 있어. 물건과 함께."
"그렇계 계산한다고 해도 나는 5천 달러가 부족해."
"보스애게 일어난 일을 그대로 전해. 그래서 만 달러밖에 가져오
지 못했고 매장큰이가 물건을 갖는다고 하더라고."
‥‥‥‥‥
"난 이제 놈들에게 쫓기는 몸이 되었of: 경찰이 알게 될지도 몰라,
36 밤의 대통령 제4달 - I
~초
내가 최태전이률 죽인 것을."
"어떡할 작정이야?"
배장근이 방안을 둘러보았다.
"이곳도 위험해. 놈들이 내 은신처를 알고 있을지도 모를단 말이
야. "
"그렇다면 나하고 같이 블라디보스토크로 가자. 거기서 사건이 잠
잠해질 때까지 기다리면 돼."
배장근은 머리를 저었다.
"아니, 남아 있TH어, 그리고 이왕 이렇게 된 이상 철저하게 살아가
3n다. "
"그놈들의 조직을 당내기 힘들텐데. 넌 한 몸이야."
루벤스키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그는 비둘기색 머리카락과
코밑 수염을 기르고 있는 비대한 몸집의 사래로 일년 가까이 배장근
과 거래해 온 터였다.
"상관없어. 그렇다고 러시아로 도망칠 수는 없어. 여기서 부딪쳐
나갈데다. "
배장근이 맺듯이 말했을 때 시계가 새벽 5시를 쳤다. 날을 꼬박 샌
것이다.
"벌써 5시_오, 형님."
오징어를 셉던 고덕균이 시계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조금 전까지
붉게 딸아을랐턴 얼굴이 이제는 회게 변해 있었다.
"잡시다. 여자 없이 자는 건 오랜 만이지만 말요."
"너 먼저 자."
흔폰의 밤 37
술잔에 소주를 채우면서 주대흥이 말하자 고덕균이 입맛을 다셨
다.
"이런 제기,형님. 2억 5천이나벌었으니 기분좀냅시다. 하다못
해 깡소주를 마시더라도 입이라도 껏잔 말이오"
"기분낼 것 율다. "
종이컵에 담긴 소주를 끌컥이며 삼킨 주대흥이 잔을 내려놓고 구
석에 놓인 돈 가방을 바라보았다.
"동원 기획인가 그놈들이 눈에 불을 켜고 찾고 있을 것이다. "
"해결사가 례앗은 돈을 다시 맞았으니 기가 막혔을 겁니다. "
"기가 막히라고 헌 것이 아녀, 이 시키야."
빨개진 주먹코를 쓸며 주대흥이 말했다.
"나는 그런 놈들을 그냥 넘길 수가 없었을 뿐이여.돈 벌라고 그런
것도 아니고."
"형님은 흥길동이오. 이름을 주길 동으로 바꾸시오."
고덕균이 정색을 하고 말했다.
"상을 받어야 할 형님이 숨어 지내야 한다는 것이 비극이오."
"씨발놈아, 닥쳐."
술잔을 내려놓은 주대흥이 턱으로 돈 가방을 가리켰다.
"저그서 돈 꺼내 갖고 빛진 것 갚어라. 그러고 어제 훔친 차는 돌
려줘. 그 짓 그만두란 말이여."
"저기서 돈을_"
잠이 달아난 고덕균이 상체를 세우고는 반짝이는 눈으로 가방을
바라보았다.
"형님, 정말이오?내가 저 돈으로 빛을."
(3)
"아이구, 형님,"
주대홍은 잠자코 소주를 벌혀이며 마셨다. 좀도둑질에, 자동차 절
도, 저보다 약한 놈에게는 폭행도 서슴지 않는 고덕균이었지만 그를
따르는 유일한 사내였다.
주대흥이 세 살 때 그의 부모는 헤어졌는데 어느 한쪽도 그를 책
임지려고 하지 않았다. 결국 그는 광주의 고아원을 전전하며 고등학
교를 마쳤고 상경을 하여 일식집 주방 보조가 되었다. 그리고는 운좋
게 박광선을 만나 주방일을 철저히 배우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아버지이자 스승이었던 박광선이 세상을 떠난 지금은 7, 8
년 전에 같이 주방일을 하다가 형님 동생 사이가 된 고덕굴 외에는
마음을 터놓는 사람이 없다
"아파트에서 우리 차를 본 놈은 없었지만 형님 말대로 돌려주지
요.자동차 등록증도 차 안에 있으니까 연락을 해서."
고덕균이 사근사근하게 말했다.
"그러면 형님, 저 돈으로 일식 집이나 하나 차립시다. 형님이 사장
하고 나는 영업부장이나 지배인을 맡아서."
"난 주방일을 계속 할 거여."
자르듯 말한 주대흥이 큰 몸을 벽에 기대었다. 이곳은 논현동의
17평짜리 원룸 아파트로 작년 말에 그가 전 재산을 덜어 장만한 것이
었다.
"쓸데없는 생각일랑 말고 너도 주방일이나 혀. 내가 소개시켜 줄
데니까 말여 "
"아이고, 그만둡시다. "
혼들의 밤 39
얼굴을 찌푸린 고덕균이 손을 저었다.
"나는 그때 생선 냄새에 질려서 지금도 생선회를 못 먹는단 말이
오. 사람은 적성에 맞는 일을 해야지."
"그렁게로 너는 도적놈 적성이냐?"
"형님 적성은 칼질이 아니오. 어젯밤 같은 일이 진짜 적성에 맞는
일이오."
창밖이 희뿌옇게 밝아 오자 주대홍은 일어나 커튼을 걷었다. 유리
창을 열자 맑고 신선한 공기가 쏟아져 들어왔다. 숨을 가득 들이마신
그는 온몸을 부풀리며 기지개를 켰다.
방안에 한동안 무거운 정적이 덮였다. 벽시계는 아침 8시를 가리
키고 있었다. 벽시계 밑의 커다란 마호가니 책상 위에 자개를 박은
명패가 놓여 있었는데 '동원 기획 대표이사우길만'이라고 씌어 있
었다. 그러나 지금 상좌에 앉은 반백의 사내는 우길만이 아니다. 동
원 그룹의 회장이자 동원 실업의 실제 소유주인 양승일이 금테 안경
알 속의 눈을 번쩍이며 앉아 있었고 그의 좌우에 갈라져 앉은 것은
우길만과 최기대, 그리고 회장의 보좌관인 박철규였다.
이윽고 양승일이 정적을 깨었다.
"운전사와 경호원, 그리고 우 사장을 차례로 치고 가방을 빼앗아
갔다는 건 알겠어. 하지만 너무 싱겁군."
그의 시선이 우길만을 슬쩍 스치고 지나갔다.
"박 상무가 조사해 보았는데 나선 놈은 한 놈이야.모두 한 놈한테
당한 거야."
"예, 하지만‥‥‥‥
40 밤의 대통령 제1-I
우길만이 입을 열었다가 양승일의 얼굴을 살피고는 금방 다물었
다.
"놈은 이쪽의 사정을 알고 있었어."
양승일의 메마른 목소리가 방을 울렸다.
"돈쓸 우 사장이 집으로 나를 줄도 알고 있었던 거야."
우길만이 이마에 배인 땀을 손바닥으로 닦았다. 그러자 박철규가
헛기침을 하고는 상체를 세웠다. 30대 후반의 단정한 용모의 사내였
다.
"아마 조양 실업 앞에서부터 미행해 간 것 같습니다, 회장님. 사건
직후에 아파트를 떠나는 횐색 소나타를 보았다는 사람이 있었습니
다. "
모두 잠자코 있자 그가 다시 말을 이었다.
"조직 내에서 정보가 새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래서 조양 실
업과의 관계를 알고 있는 모든 사원들을 조사하고 있습니다. "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조사해."
양승일의 말에 박철규가 깊게 머리를 숙였다.
"예, 회장님."
"사건이 경찰에 포착되지 않도록 하고."
"경비원에게 단단히 일러 두었습니다. "
머리를 돌린 양승일이 우길만을 바라보았파.
"오늘, 조양 실업 건은 예정대로 진행하도록."
"예, 회』님 , "
우길만이 머리를 숙였다.
"그 일은 차질이 없도록 해야 될 거야."
혼돈의 밤 41
"명심하겠습니다. "
입맛을 다신 양승일이 자리에서 일어서자 7, 』뼘의 사내들이 일제
히 따라 일어섰다.
양승일이 동원 기획을 찾아온 것은 드문 일이다. 그는 혹석동의
저택에 틀어박혀 보고만 받을 뿐 좀처럼 표면에 나타나지 않았다. 주
위의 시선을 피하려는 듯 양승일이 서둘러 떠나자 동원 실업의 사장
실은 찬바람이 할됐고 간 폐허나 다름없어 보였다.
양숭일을 배웅하고 난 우길만이 사장실로 들어가자 박철규는 최기
대와 함께 회의실에 마주앉았다.
"도대체 어느 놈이야?"
박철규가 짜증스럽게 물었는데 그것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현이
었다.
서울의 조직은 수백 개의 군소 조직이 각 지역별로 나누어져 있지
만 이제는 조직이라고 부를 만한 것도 없었다. 수없이 분해되고 재결
집되는 밤의 조직은 뿌리를 갖지 못하고 있었다. 그것은 당국의 강력
한 단속 때문이기도 했지만 명분과 통찰력을 갖춘 뛰어난 지도자가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러나 양승일은 다르다. 그는 무주공산이 되어 버린 서울의 밤
세계를 자금력과 조직렬으로 장악하려는 원한 꿈을 가진 인물이었
다. 남대문의 나짜마로부터 시작한 그의 사업은 이제 매출액 고조 원
의 기업군을 형성하게 피었고 그것을 바탕으로 그는 끊임없이 조직
을 확대해 나가고 있었다.
지금 양승일과 대적할 만한 인물이 있다면 영동의 신용수를 꼽을
42 밤의 대통령 제』턱 -I
근 ..
수 있을 것이다. 그는 부동산 재벌로 조직과 자금면에서 양승일과호
각지세를 이루고 있는 거물이었다.
"신용수 졸개들이 한 짓은 아니TA지?"
최기대가 혼잣소리처럼 말하자락철규가 머리를 저었다.
"아침에 권석출에게 전화를 해보았어, 그냥 떠보았는데도 놈은 길
길이 뛰더구만. 그쪽에서 그럴 리는 없어."
"하긴."
만일 그자들이 저지른 것이라면 조직에서도 경멸하는 강도 노룻을
한 셈이 된다. 최기대도 어젯밤 일은 그들의 소행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조양 실업 일을 알고 있는 놈들을 하나씩 불러 조사할 작정
이야. 그러니까 너도 협조를 해줘야겠어 ."
박철규는 회장의 보좌관으로 이번 사건 조사의 책임을 맡았다. 머
리를 끄덕인 최기대는 부하들을 모으기 위해 방을 나왔다.
사장실의 우길만은 아직 기척이 없었다. 그는 조양 실업에 가서
계약서 문제를 해결해야 될 것이었다. 이번 사건으로 그에 대한 회장
의 신임이 깎일 것이 분명했다. 이것은 사고가 아니다. 조직 사회에
서 당했다는 것은 이유를 불문하고 치명적인 약점이 되는 것이다.
"아니 이게 누구여?"
문을 연 고 여사가 입을 쩍 벌리면서 주대홍을 바라보았다. 부스
스한 머리에 헐렁한 원피스를 입은 그녀의 얼굴은 주름투성이였고
허리는 더 굽어 있었다.
"웬일이여? 이렇게 아침에."
혼돈의 밤 43
그러면서 주대홍의 뒤쪽을 바라보았다.
"그냥, 갑자기 생각이 나서요."
"에이구 고맙기도 해라."
그러면서 그의 옷깃을 잡아 집안으로 끄는 고 여사는 그의 일식집
스승이었던 박광선의 부인이었다. 그는 한 평도 안되는 좁은 마당을
지나 미닫이 문 앞에 섰다.
"얘, 미정아.주 총각 왔다. "
방안을 향해 그렇게 소리친 고 여사가 온 얼굴에 주름을 잡으며
주대홍을 돌아보았다.
"아직 장가 안 들었지?"
그때 미닫이 문이 열리면서 박미정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아버지
를 닳아 둥근 얼굴형에 콧날이 가늘고 입술이 엷은 박미정은 그를 향
해 머리를 꾸벅 숙였다.
"오빠 오셨어요."
"오늘 회사 안 나가?"
"회사가 망해서 그만두었어."
고 여사가 대신 대답하였으므로 박미정은 문에 기대 서서 잠자코
그를 바라보았다.
주대흥은 좁은 툇마루에 엉덩이를 걸치고 앉았다. 봉천동의 산비
탈에 임시로 지은 집이어서 벽과 담이 허술하기 짝이 없었다. 전에
박광선을 따라 방안에 들어가 앉았던 주대흥은 벽에 등을 기대었다
가 질색을 했던 경험이 있다. 그의 무게에 눌린 벽이 무너질 것같이
흔들렸던 것이다.
방 한 칸에 부져과 마당을 합해 열 평이 못 되는 주택이었는데 박
44 밤의 대통령 제라』 -I
벼
.
.
광선이 살아 있을 때는 일주일에 한 번꼴로 찾아왔었다. 박광선이 그
를 데려왔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이사는 언지 잡니까?"
그가 묻자 고 여사가 마당에 쪼그리고 앉아서 그를 올려다보았다.
마당에 박힌 수도꼭지에서 함지박 속으로 가느다란 물줄기가 떨어지
고 있었다.
"보상금을 1,500만 원밖에 안 준다는데, 그걸 가지고 전세를 얻기
도 힘들고, 월세를 내려면‥‥‥‥
"엄마. "
뒤쪽에 서 있던 박미정이 낮게 소리치자고 여사는 하던 말을 멈
추었다. 박미정은 무남독녀로 이제 고 여사와 두 식구가 살고 있는
것이다.
"미정이 너는 어떻게 헐래? 취직혀야지?"
몸을 돌려 그가 묻자 박미정이 머리를 끄덕였다. 긴 머리를 뒤에
서 틀어 올려 묶은 탓에 긴 목이 그대로 드러났다. 화장기가.없는 얼
굴이어서인지 여위어 보였다.
"몇 군데 부탁을 해두었어요. 다음달에는."
"참, 자네. 아침은 먹었어?"
생각난 듯 고 여사가 물으며 일어섰다.
"반찬은 없지만 밥은 있는데, 줄까?"
"예, 주세요."
그러자 고 여사는 만족한 표정이 되어 부엌으로 들어갔다.
"오빠는 일 잘 되세요?"
박미정이 옆으로 다가와 앉으며 물었다.
혼돈의 밤 45
_보조 ~ ‥‥‥‥L'4그그곯표.:_.
"근려. 근데, 너는?"
"예, 뭐가요?"
"작년에 헤어졌어요,"
퍼뜩 머리를 든 주대흥이 그녀를 찬찬히 바라보았다.
박미정에게는 애인이 있었다. 박광선이 주대흥을 은근히 좋아하는
눈치를 보이자 1녀는 심하게 반발하였는데 언젠가는 제약 회사에
다닌다는 그 사태를 주대홍에게 보인 적도 있었다. 아마 주대흥이 집
에 온 날을 맞추어 그를 불렀을 것이다.
"내가 그것 물어 본 것이 아녀."
허리를 굽혀 무릎 위에 팔굽을 놓고 앉은 주대흥이 말했다.
"그런 건 중요한 일이 아니란 말이다. "
"그래요. 중요한 일이 아녜요."
박미정이 머리를 끄덕이며 말했다.
"오빠를 만나게 되어서 기뻐요."
"나두 너를 봐서 좋다. "
부엌에서 도마에 칼이 부딪치는 소리가 들리자 주대흥은 퍼뜩 머
리를 들었다. 저만큼 익숙한 솜씨로 고 여사가 칼질을 하고 있는 것
을 듣기만 해도 알 수 있었다.
늦은 아침을 얻어먹은 주래흥이 상을 물리고 나서 고 여사와 마주
앉았다. 단칸방이 어서 박미정은 위쪽의 경대에 등을 대고 앉아 비스
듬히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실은 시모님한티 드릴 것이 있어서."
46 밤의 대통령 제』렬 -I
주대홍이 들고 왔던 비닐 가방을 방 가운데에 내려놓았다.
"선생님허고 지가 10년쯤 전에 적금을 들었습니다. 그런디 그것이
엊그제 만기가 되어서."
모녀가 눈을 동그랗게 치켜 뜨고는 그를 바라보았다.
"선생님이 돌아가신 후에 지가 계속 적금을 부었지요. 2억짜리였
응게로 여그 반으로 갈라 1억 가져왔습니다. "
이제 모녀의 시선이 비닐 가방에 꽃힌 채 떨어지지 않았다.
"저, 그러면 저는 이만."
"잠간만요."
일어서는 주대흥쩨게 입을 연 것은 박미정이다. 그녀는 그를 따라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오빠, 정말이에요?"
"그럼 저 가방에 종이가 들어 있을라구."
"아니,그 말이 아니라,적금 부었다는 말."
"내가 거짓말허는 사람이냐?"
넋을 잃은 표정으로 가방을 바라보던 고 여사가 머리를 들었다.
"주 총각, 거기 좀 앉게."
"절 바쁩니다. 일하러 가야 하기 때문에.."
"자레, 적금 통장이 있나?보여 주게."
"인자 필요없어서 버렸는디요."
"오빠. "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 박미정이 그를 바라보았다. 아랫입술을
깨물고 있는 그녀는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처럼 보였다.
"도대체 왜들 이러시는지 모르겠구만."
혼돈의 밤 47
주대홍이 혀를 찼다.
"왜 나헌티 이러십니까? 2억을모두 가져와야혔는디 1억은 빚진
것을 갚았어요. 그리서."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간 주대홍은 서둘러 신발을 발에 꿰었다.
"그럼 사모님, 안녕히 계십시오. 그러고 미정이 너도."
"이보게, 이보게."
펄쩍 뛰어 일어난 고 여사가 그를 불렀다.
"오빠, 나 좀 봐요."
박미정도 따라 불렀으나 그는 한걸음에 문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좁은 골목을 뛰어 내려가면서 찌푸린 얼굴로 입맛을 다셨다. 고덕균
이라면 보다 매끄럽게 이해시킬 수 있는 방법을 만들어 냈을지도 몰
랐다. 어쨌든 이것은 그에게는 빼앗을 때보다 열 배는 더 어려운 일
이었던 것이다.
법원 근처의 일식집 안이다.
법관들이 자주 가는 곳으로 조용하고 음식 맛도 괜찮은 집이었는
데 구석방에 강일도와 이동천이 마주앉아 있었다.
"그런데 참, 이 검사가 김양호를 불렀다면서?"
식사를 마친 강일도가 엽차 잔을 들면서 물었다.
"예. 윌 좀 물어 볼 것이 있어서 잠깐 뵙자고 했었습니다. "
이동천이 말을 이었다.
"그쪽에서 부정님께 무슨 연락이라도 해왔습니까?"
"내가 아니야."
엽차를 한 모금 마신 강일도가 씁쓸하게 웃었다.
48 밤의 대통령 제라t - I
-:.
"나보다 몇 계단 위에다 대고 항의해 온 모양이야."
"그자가 야쿠자에 관계가 있습니다. 양승일 회장과 쟈쿠자 사이에
다리를 놓는 역할을 그자가 맡았을 겁니다. "
"야마구치조의 간부 다섯 명이 국제 호텔에 닷새 동안 있었습니
다. 그자들이 카지노만 하러 왔을 리가 없습니다. "
"이봐, 이 검사, 증거가 확실하게 잡히기 전에는 들추시면 안돼.
그리고 내가 기다리라고 했지 않나 말이야."
이맛살을 찌푸린 강일도가 낮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김양호도 거물이야. 관계에 발이 넓다구. 양승일은 말할 것도 없
고."
"저는 경고만 주었을 뿐입니다, 부장님."
"경고라니?"
"우리가 주시하고 있다는 경고지요. 그렇게라도 해야 될 것 같았
습니다. "
"그러면 그자들이 움츠러들 것으로 생각했나?"
"아니면 어떤 방법을 쓰TR지요. 적극적으로 나온다면 부딪쳐 볼
작정 이 었습니다. "
"자넨 생각보다 너무 무모해."
강일도가 머리를 저었다.
"위에서도 앞으로 주의하라는 지시가 내려왔지만 자네는 이미 요
주의 인물이 되었어."
"터뜨리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부장님. 기다리고만 있다가는
나중에는 수습할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
혼돈의 밤 49
3‥‥‥
"한국 사회에서는 피에트로가 있을 수가 없네, 이 검사."
강일도의 목소리는 가라앉아 있었다.
"이탈리아와 여건이 달라.북한과대치하고 있는분단상황에 있
는 데다가 우리는 군사 독재를 30년이나 겪었어."
"급하게 서두르면 무리가 따르는 법이야. 조건이 무르익을 때까지
기다려야 돼."
"다음 정권이 들어설 때까집니까?"
이동천이 묻자 강일도는 찌푸린 얼굴로 대답하지 않았다.
"그때는 이미 늦을 것 같은데요. 정부 관리나 정치인들 대부분이
물이 들어 버려서 지금보다 더 어려워질 겁니다. "
"파악만 해둬. 더 이상 일을 만들면 그땐 나도 어쩔 수가 없어."
자르듯 말한 강일도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알아듣게 나, 이 검사?"
"알30습니다, 부장님 ."
"다른 사람들처럼 여유를 갖고 살아 봐. 당장에 우리나라가 어떻
게 되는 것도 아니니까."
몸을 돌린 강일도는 앞장서서 계산대로 다가갔다.
강일도와 헤어진 이동천이 마리온클럼에 들어선 것은 밤 9시 30
분이었다. 소공동의 타워 빌딩 스카이라운지에 있는 이곳은 그의 단
골 술집으로 아늑한 분위기의 고급 .클럽이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클럽 주인인 문재은의 편안한 접대에 이끌려 찾아오는 손님들이 많
았는데 이동천도 그 중의 하나였다.
50 밤의 대통령 제4부 -I
문재은의 고객 중에는 재계나 관계를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유명 인사들이 많았기 때문이 이동천도 우연히 딘자리에서 그들을
발견할 때가 있었다.
플럽 안은 잔잔한 피아노의 선율만 흘러 나을 뿐 연제나처럼 조용
했고 어두웠다. 창가의 의자에 앉은 이동천 옆으로 웨이터가 소리없
이 다가와 섰다. 그는 이미 이동천이 들어오는 것을 보았던 모양으로
그가 전에 남긴 술병을 쟁반 위에 얹어 들고 있었다.
웨이터가 탁자 위에 술병과 잔을 놓고 물러가자 그는 술병을 들었
다. 그때 옆쪽에서 인기척이 났다.
"요즘 바쁘셨나 보지요?"
부드러운 향수 냄새와 함께 옷자락을 스치며 앞에 앉은 사람은 카
페의 주인 문재은이었다. 짧게 커트한 머리에다 속눈됩이 짙은 눈을
반짝이는 그녀는 나이보다 십 년쯤 젊어 보여 200 ;If91다.
"요즘은 토웅 플하시데. 이 검사님, 어디 다른 곳에 다니시는 거예
요?"
그녀는 손짓을 해서 웨이터를 불렀다.
"제가 오늘 한잔 살게요."
"이거 왜 이래, 갑자기?"
이동천이 의아해하는 시선을 주자 문재은이 이를 드러내며 웃었
다.
"나중에 갚으면 되잖아요?마침 이 검사님에게 소개해 줄사람이
있어서 그래요."
"여자 말이야?"
"하룻밤 같이 자는 여자말고."
혼돈의 밤 51
.=보÷fE -, -
"그렇다면 필요없어."
그러나 문재은은 옆쪽을 바라보며 손을 흔들었다. 곧 그들 앞으로
밝은 색 투피스 차림의 여자가 다가왔다.
우선 날씬한 몸매가 흐린 조명 속에 드러났고 가볍게 머리를 숙이
며 문재은의 옆에 앉는 그녀의 얼굴이 보였다. 긴장한 때문인지 다소
딱딱한 표정이었지만 똑바로 이동천의 시선을 받는 그녀의 눈은 맑
았고 눈매가 고왔다.
"이쪽은 명성이 자자한 서울 지검의 이동천 검사님이시고, 그리고
이쪽은‥‥‥‥
문재은이 이동천을 향해 웃었다.
"제일 대학을 졸업하고 국제 통역사로 일하고 있는 양유경 양. 어
때요, 미인이죠7"
반년 가깝게 마리온을 다녔어도 이런 일은 처음이었으므로 이동천
은 건성으로 머리를 」1덕이며 문재은을 바라보았다.
웨이터가 가져온 술병을 들어 1들의 잔에 술을 채운 문재은이 곧
자리에서 일어섰다.
"자, 그럼 좋은 시간 되시기를."
그녀가 안쪽으로 사라지자 이동천이 술잔을 들고 양유경을 바라보
았다.
"문 마담과도 잘 아시는 사이 같은데."
"잘 알아요."
그녀가 얼굴에 웃음을 띠었다.
"아버지가 이곳 단골이세요. 그런 관계도 있고 해서."
"아버지가 한번 만나 보라고 하셨어요. 괜찮은 남자가 있다고."
"그렇습니까?"
"그래서 호기심이 났지요.좀처럼 그런 말을 안하시는 분이거든요."
양유경은 술잔을 들어 한 모금 삼키고는 내려놓았다.
"지난번에 오셨을 때 이 검사님을 뵈었어요. 문 마담이 가르쳐 주더군요."
술잔을 들어 한 모금 삼킨 이동천이 뜨거운 기운을 뱉어내었다.
긴장이 풀린 탓인지 그녀의 표정은 조금 밝아져 있었다.
도톰한 입술이 마치 붉은 꽃잎처럼 벌어져 있는 것도 보기 좋았다.
남자의 뜻과는 상관없이 저 혼자 골라 만날 만한 여자라는 것도 이해가 갔다.
"아버님이 이곳 단골이시라고?"
"예, 오래되셨어요. 그래서 저도 몇 번 따라와 봤는데, 여기에."
"다른 잘난 사람들도 많을텐데 왜 하필 나를 고르셨을까?"
"아버지요? 아니면 저 말인가요?"
"둘 다. "
"아버지의 기준은 모르TR지만, 전 이 검사님의 첫인상으로 정했어요."
"물론 만나고 나서 달라질 수도 있지만."
"골라 줘서 고맙다고 해야겠군."
양유경이 풀색 웃었다.
"후회하시지는 않을 거예요, 만난 것을."
또」그‥‥‥~_4‥‥‥‥‥그‥‥‥‥‥4토쏘 ‥‥‥‥A고 '그」-그‥‥‥‥‥‥:·
'죠조포브초.교 _1들이 마리온 클럽을 나온 것은 12시가 다 되어서였다.
양주 한 병을 나누어 마신 때문인지 양유경은 얼굴이 달아올라 있었다.
"차 가져 오셨어요?"
현관 앞에 서자 그녀가 물었다.
"아니, 난 택시 타고 가면 됩니다. "
"모셔다 드릴게요."
잠시 후 그들 앞에 검정색 벤츠가 소리없이 다가와 멈추어 섰다.
"청담동은 돌지 않아도 되니까 어서 타세요."
집이 청담동이라고 말했었고 그녀의 집은 삼성동이라니까 돌아가
는 것은 아니다. 머리를 끄덕인 이동천은 차에 올랐다. 차량 왕래가
드문 시간이어서 차는 속력을 내며 달렸다.
"처음부터 너무 신세를 지는데."
차가 남산 3호 터널로 들어서자 이동천이 입을 열었다.
"그런데, 이제 부친 성함을 말해 주어도 되지 않겠소?"
"양승일 씨예요, 동원 그룹의."
앞쪽을 바라본 채 그녀가 말했다.
"놀라셨나요?"
"의도적인 것은 아니예요. 아무리 아버지가 시켰더라도 난 마음에
내키지 않으면 안해요."
양유경이 머리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좋은 남자가 하나 있는데 만나 볼래? 하셨을 뿐예요. 나머지는
문 마담이 알아서 했고."
"문 마담은 아버지의 세컨드예요. 마리온 클럽은 아버지가 차려 주셨고."
"여자 편력이 심하시고 두 번 이상 만나지 않으신다면서요?
그건 문 마담한테 들었는데."
차는 반포대교를 향해 속력을 내며 달려가고 있었다. 단정한 양복
차림의 운전사는 됫좌석을 힐끗거리지도 몸을 크게 움직이지도 않았다.
이동천이 고개를 돌려 그녀를 찬찬히 바라보았다.
"가서 아버지께 전해요. 나에게 관심을 가져 준 이유를 오해할 수도 있다고."
머리를 한쪽으로 기울인 양유경이 잠자코 그의 시선을 받았다.
"난 호락호락 잡히지 않는 놈이라고도 전하시오. 차라리 돈 주고
여자를 사겠다고 말이오."
"무슨 말씀이세요?"
양유경의 눈샙이 치켜 올라갔다.
"우리 아버지가 당신에게 무슨 약점이라도 잡혀 있나요?
그리고 내가 당신에게 ‥‥‥‥
말을 멈춘 그녀가 퍼뜩 앞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소리쳤다.
"차를 세워요!"
벤츠가 길가로 꺾어지며 급제동을 걸었다.
이동천은 손을 뻗쳐 앞좌석을 쥐어야 했다.
양유경이 치켜 뜬 눈으로 이동천을 쏘아보았다.
"여기서 내려요."
"나도 그럴 생각이었소."
"건방진 자식, 제 분수도 모르고."
"분수를 알아서 이러는 거야."
이동천이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자 거칠게 문이 닫히며 벤츠는 금
방 차량의 대열 속으로 끼여들어 그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이동천은 몸을 세우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술에 취한 서너 명의
사내가 몸을 흔들거리며 그를 지나쳐 갔다. 이곳은 강남대로의 길가
였지만 그는 어디쯤인지 언뜻 알아차릴 수 없었다.
'소설방 > 밤의 대통령' 카테고리의 다른 글
3. 세 사나이 (0) | 2015.01.01 |
---|---|
2. 야쿠쟈와 러시아 마피아 (0) | 2015.01.01 |
밤의 대통령 제 4부 (0) | 2015.01.01 |
11. 작가의 말 (0) | 2015.01.01 |
10. 대단원 (0) | 2015.01.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