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대단원
(1)
가토 중장이 연합군 사령부의 상황실에 들어서자 방안은 순식간에조용해졌다.
10여 명의 참모들이 끼리끼리 모여 이야기를 하고 있다가 일제히 말을 멈춘 것이다.
그가 방 가운데에 있는 테이블로 걸어가는 동안에도 그들은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시선이 마주친 한국군 장교들은 서둘러 몸을 돌렸고 그가 들어오면 당연히 다가와야 할
상황실의 당직 참모도 외면을 하고 서 있는 것이다.
그가 테이블에 앉자 연락을 받은 연합사의 참모장 유진영 중장이 반대편 문을 열고 들어섰다.
상황실에 다시 말소리가 시작되었고 참모들의 움직임도 자연스러워진다.
"장군, 밤 늦게 웬일입니까?"
유진영이 앞자리에 앉으며 딱딱한 표정으로 물었다.
가토는 저녁 6시에 사령부에서 퇴근했던 것이다.
"장군을 만나러 온 겁니다. "
"아, 오늘 저녁의 TV성명 발표 건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물었지만 유진영도 긴장하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본국에서 항의를 하겠지만 참으로 악의에 찬 모략입니다. 더구나
깅원국이 같은 인물이 그런 조작된 성명을 발표하리라고는 전혀 뜻밖입니다. "
낮은 목소리로 가도가 말하자 유진영이 똑바로 그를 바라보았다.
"김원국 씨는 압력을 받아 움직일 사람이 아니오, 장군."
"애국심이라는 조건 아래서는 자신을 희생할 수 있는 사람이지요.
"나는 그 사람이 거짓말을 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
마침내 유진영이 어깨를 펴고 말했다.
입술을 굳게 다문 고집스런 그의 얼굴을 바라보던 가토가 이윽고 머리를 끄덕였다.
"장군, 나는 군인이오. 정치적인 계획이나 흥정하고는 거리가 먼 사람이란 말입니다.
하지만 한국인의 반일 감정을 이런 식으로 증폭 시키는 것은 지금 상황에 도움이 안됩니다. "
그러나 유진영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들의 옆을 지나는 참모들이
평시와는 달리 긴장하고 있었지만 상황실은 이제 평상의 분위기로 돌아가 있었다.
"김원국 씨가 서울의 한복판에서 성명서를 발표할 수 있다는 건
정부의 묵인이나 보호 없이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장군."
자리를 고쳐 앉은 가토가 말했다.
"그는 지금 미국, 프랑스, 스위스, 그리고 일렬으로부터도 수배된 범인입니다, 잘 아시겠지만."
"세계 여론이 그의 말을 믿어 줄까요?"
"한국민은 믿을 거요."
"그건 일본에 대한 선입관이 많이 작용한 것입니다. "
"그건 실제 상황이오."
짜증난 듯 유진영이 말하자 가토가 머리를 저었다.
"장군도 미국을 믿습니까? 아직도 그들에게 미련이 있습니까?
"허어, 별소리를."
"우리가 선의로 한굴의 위기에 협조했다고 생각할 수는 없습니까?
당신도 북한의 침공이 닥쳐왔을 때의 미국의 행태를 보았지 않습니까?"
입맛을 다신 유진영이 머리를 돌리자 가토도 한동안 입을 열지 않았다.
그들은 서로가 상대방이 할말을 억제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군인의 입장으로
그것을 길게 말한다는 것이 부질없다는 것도 아는 것이다.
이윽고 가로가 입을 열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김포에 있는 특전사 소속의 제2여단이 출동 준비를 하고 있어요.
야간 이동이 있습니까?"
"자체 비상 출동 훈련으로 연락을 받았습니다.
훈련 계획에 의한 것이오."
머리를 』1덕인 가로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장군, 이렇게라도 이야기를 하고 나니까 시원합니다. 그럼 내일."
"나도 마찬가지요, 장군 "
몸을 돌린 가로의 둥을 바라보던 유진영의 시선이 문의 위에 걸린 시계에 우연히 머물렀다.
새벽 1시였다.
제2여단 1대대는기갑대대로서 1개의 한국형 K-1전차중대, 3
개의 경장갑차 중대로 이루어진 강력한 기동 부대였다.
일명 88전차라고 불리는 K-1 전차는 북한의 T -62형보다 성능
이나 재원이 우수했고,경장잠차 중대 중에서 2개 중대는 12.7밀리
기관포를 갖춘 한국형 K-100장갑차였고 나머지 1개 중대는 미제
M-113 APC였다.
1대대장 방선호 중령이 선두에 세워진 K-200 지휘 장갑차에 을
랐을 때는 25일 새벽 1시 50랄.
시계에서 눈을 텐 방선호는 머리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하늘에
매달린 별들이 흔들리고 있는 것은 바람 때문일 것이다. 차가운 바람
이 드러난 피부를 스치고 있었지만 추위를 느끼지는 않았다. 그는 머
리를 돌려 뒤쪽을 바라보았다.
연병장에 정렬한 기갑 대대는 그야말로 무거운 정적 속에 잠겨 있
었다. K-1, K-200, M-113 APC등 50여 대에는 이미 병력이
승차되어 있어서 그의 명령만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그 순간 대대의 정문으로 전조등을 번쩍이며 지프 한 대가 달려오
더니 곧장 그의 선두 K -200으로 다가와 멈추어 섰다. 뛰어내리는
것은 여단장 장규범과 부관 이근욱 소령이다. 그들은 잠자코 그의
K-200에 오르더니 자리를 잡고 앉았다.
방선호가 다시 시계를 보았다. 1시 55분이었다. 그러자장규범이
대단원 335
짧게 말했다.
"가자. "
50여 대의 전차와 장갑차가 일제히 시동을 걸자 요란한 엔진 소리
가 밤하늘을 가득 메웠으므로 방선호는 숨을 들여 마셨다. 찬 공기가
가득 폐 안에 들어차자 두 눈이 저절로 크게 뜨였다.
선두로 나선 APC 두 대가 속력을 내어 대대의 정문을 빠져 나갔
고 다시 10여 대의 APC가 뒤를 이었다. 그러자 그의 지휘차도 움직
이기 시작하더니 곧 속력을 내었다.
그 시간의 제2여단 상황실.
무전기를 귀에 댄 전영석 대령이 말했다.
"출동했습니다. 그쪽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이쪽도 모두 출동했습니다. "
흥제일의 활기 찬 목소리가 들려 왔다.
"이상 없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
스위치를 끈 전영석이 옆에 선 참모들을 돌아보았다.
"시작됐다. 그리고 곧 끝난다. "
2시 10분 특전 사령부 상황실.
당직 근무자 양성일 중령은 전화기를 귀에 대고 있다가 몸을 바로
세웠다.
"참모장님, 2여단이 기동 훈련을 시작했습니다. "
"알겠다. 박 중령이 따라 나갔지?"
"예, 참모장님."
336 밤의 대통령 제3부 -llf
그러자 한병옥 소장이 부드럽게 말했다.
"추운데 수고들 많이 하는군.수고해."
"편히 쉬십시오, 참모장님."
2시 20분 88올림픽 대로.
선두 APC와의 거리는 백 미터 정도였으나 그사이에는 검게 번
질거리는 아스팔트만 보일 뿐 대로에는 차량의 통행이 끊겨 있었다.
통금 시간인 것이다.
선봉 중대의 K-200장감차 위로 상반신을 드러낸 황만식 대위
는 앞쪽을 노려보았다. 요란한 엔진 소리를 내며 장갑차는 대로를 달
려나가는 중이다.
그는 머리를 돌려 뒤쪽을 바라보았다. 일렬로 늘어서서 전 속력으
로 달려오는 장갑차와 전차대의 대열이 보였다. 그는 알 수 없는 감
동으로 숨을 들여마시며 다시 앞쪽을 노려보았다.
2시 25분, 연합 사령부의 작전 상황실.
당직 사관인 유남준 준장이 전화를 넘겨 받는다.
"유 준장입니다. "
"보안사 상황실의 김인철 중령입니다. "
"그래, 무슨 일이야?"
"의정부의 미 제29연대의 기동 훈련 계획이 잡혀 있습니까?"
유남준이 입맛을 다셨다.
"무슨 말이야?"
"지금 현재 벽제 쪽으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
대단원 337
"잠간 71ff ."
그는 벽에 붙은 전광 상황판을 유심히 바라보고는 컴퓨터의 키보
드를 눌렀다. 미국 제2사단의 기갑 연대의 29연대의 자료에는 이동
표시가 없다.
이맛살을 찌푸린 유남준이 손을 저어 옆쪽의 장교를 부르고는 전
화기를 고쳐 쥐었다.
"나와 있지 않은데."
"저희들 기록에도 없어서 확인한 겁니다. "
"미국 사령부에 내가 확인해 보지."
"알』3습니다. 저희들도."
통화가 끝나자 찌푸린 얼굴의 유남준이 옆에 서 있는 중령을 바라
보았다.
"미 29연대가 벽제 쪽으로 이동중이다. 미군 사령부에 확인해."
"예, 알겠습니다. "
몸을 돌린 유남준이 혼잣소리를 했다.
"개새끼들, 다른 때는 꿈쩍도 못하고 움츠려 있더니 이제 평화 조
약을 맺는다니까 기어 나오는군."
같은 시간, 청와대 북서 방향의 제33경비단의 상황실.
당직 장교 배운석 중령은 상황실의 의자에 앉아 그날의 신문을 보
고 있었다.
각종 첨단 전자 장비가 가득 찬 상황실의 전광판에는 붉고 푸른
조그만 등이 무수히 켜져 있었지만 이상이 있다는 표시는 없다. 그는
이제 신문의 광고란으로 시선을 돌렸다.
338 밤의 대통령 제3부-111
2시 30잔, 연합 시령부 상황실.
유남준 준장이 참모가 건네 주는 전화를 받았다. 상대는 미군 사
령부의 당직 장교 와처슨 대령이다.
"장군, 29연대는 서울을 통과하여 오산까지 기동 훈련을 합니다.
그렇게 아시도록."
"뭐 Of"
유남준이 주먹으로 책상을 쳤다.
"그렇게 아시도록? 당신들 마음대로 이동하는 거야! 당장 멈춰!
"한미 연합사에 제출한 이동 계획서를 보지 못했소, 장군?"
눈을 부릅뜬 유남준이 입을 벌리고는 잠시 움직이지 않았다. 어느
새 참모들이 그의 주위를 둘러싸고 있었다. 지금은 한일 연합 사령부
에 의해서 작전이 수행되고 있지만 그렇다고 한미 연합사가 폐지된
것이 아니다. 주한 미군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2시 35분,88올림픽 대로.
지휘 장갑차에 타고 있던 정규범 준장은 무전병으로부터 무전기를
넘겨 받았다.
"나, 장 준장이오."
"여단장님, 저, 사령부의 양성일 중령입니다. "
"그래, 양 중령 웬일이야?"
"추운데 고생 많으십니다, 여단장림."
"1래,1런데 왜?"
"저, 박정기 중령한테서 상황 보고가 없어서."
"박 중령은 뒤쪽에 있다. "
대단원 339
"네 ?"
"다른 장갑차에 타고 있단 말이다. "
"예.01, 너1."
"이봐, 어련히 알아서 연락하지 않겠나? 안 그래?"
"그렇습니다. 그럼 수고하십시오, 여단장님."
"좋소. 다시 연락하자구."
2시 40랄, 미 제2사단 29연대의 제 1대대.
제1대대는 기갑 대대여서 전차와 장갑차로 이루어진 것이 2여단
의 1대대와 같다. 그러나 탱크는 최신형의 M-lAl이고 장갑차도
그들이 자랑하는 IFY로 보병의 승차 전투뿐만 아니라 25밀리 기관
포와 대전차 토우 미사일을 갖추고 있다.
선두에 서서 도로를 달려가고 있는 것은 두 대의 M -lAl 전차였
다. 1천 5백 마력에 도로 주행 속도가 72킬로미터가되었으므로 땅
을 울리는 진동과 함께 전차는 시속 70킬로미터로 달려가는 중이었
다. 낮고 넓은 몸체에서 길게 뻗어 나온 120밀리 활강포의 위력을 뽐
내듯이 전차는 주위를 압도하고 있었다.
뒤쪽의 IFV의 해치에 서 있던 맥거번 대령은 머리를 들고 뒤쪽을
바라보았다. 헤드 라이트의 긴 줄이 눈에 들어왔고 그것은 끝없이 이
어지고 있었다.
2시 50분, 제2여단의 상황실.
"홍 대위, 과천의 상황은 어떻소?"
전영석이 묻자 수화기에서 홍제일의 차분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340 밤의 대통령 제3부 -및
"3시 정각에 진입합니다. "
"우리가 성산 대교를 지나는 시간하고 같군.그곳에서 목표까지는
이 속도록 가면 4음분이야."
"그때에는 이미 목표 북쪽의 장애물도 장악되어 있을 겁니다. "
무전기를 내려놓은 그에게 참모 한 명이 다가왔다.
"참모장님,박 중령이 변소를 가겠다고 하는데요."
"참으라고 해, 망할 자식. 우리가 성산 대교를 넘을 때까지만이라
도."
말의 끝에 웃음이 배어 나왔으므로 참모도 따라 웃었다.
3시, 성산 대교 입구.
선두를 달리던 장갑차가 좌측길로 붙으면서 속력을 줄이자 곧 차
량들의 주행 속도가 뚝 떨어졌다. 기갑 부대는 대로에서 다리를 향해
좌회전해 들어가는 진입로로 들어서는 중이었다.
"다리 건너편에 전차가 보입니다. "
헤드폰을 통해 중대장의 무전을 받은 방선호가 장규범을 바라보았
다.
"미군이 시간 맞춰 왔는데요."
"통과해."
장규범이 일어서서 해치에 그와 나란히 섰다. 장갑차의 대열은 이
제 느린 속도로 진입로를 지나 다리의 남단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저 자식들 윌 하는 거야?"
적외선 망원경으로 앞쪽을 바라보던 방선호;가 투덜거렸다.
"벌써부터 가로막고 있어. 멍청하긴."
(2)
방선호에게서 망원경을 받아 쥔 장규범이 앞쪽을 바라보았다.
M-lAl탱크 세 대가 나란히 멈춰 서서 이쪽에 포신을 겨누고 있
다.
"정지 ."
저도 모르게 소리친 장규범이 방선호를 돌아보았다.
"앞쪽에 연락을 해라."
무전병이 서둘러 채널을 맞추는 동안 기갑 대대의 선두는 다리 남
단에 멈추어 섰고 본대는 진입로와 88대로에 차례로 멈추어 섰다. 2
대대와 3대대는 보병 대대이므로 수십 대씩 무리를 이룬 트럭의 대
열이 연이어서 다가와서 멈추어 서고 있다.
무전병이 주파수를 맞추는 동안 방선호÷가 장규범을 바라보았다.
"여단장님, 그냥 통과합시다. 가면 비켜 줄 겁니다. "
"아니다 "
그는 머리를 저었다.
"비켜나고 나서 통과한다. "
다리 남단에 멈춰 선 것은 그의 지휘차를 포함한 대여섯 대의 장
갑차였다. 나머지는 진입로와 88대로에 몰려 서 있다.
"젠장. "
짜증이 난 방선호가 혀를 찼을 땐 이미 무전병이 무전기를 넘겨
주었다.
"여보세요, 여긴 제2여단."
무전기를 움켜 쥔 장규범이 소리치듯 영어로 말했다.
"비켜라, 제29연대. 다시 말한다. 비켜라."
그러나 저쪽에서는 대답이 없다. 무전기를 귀에서 뗀 장규범이 그
342 밤의 대통령 제3부 -방
것을 내려다보았을 때 누군가가 '아!' 소리를 쳤다. 장규범이 머리를
들자 이쪽으로 날아오는 횐 빛 줄기들이 보였다.
3시 8분, 제2여단 상황실.
"여단장님은? 여단장님은 어떻게 되었냔 말이다!"
전영석이 소리치자 잡음 속에 제2대대장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1대대장과 함께 전사하셨습니다. "
"다리는 건너지 못했나?"
"예, 참모정림."
포성과 폭발음이 쉴새없이 무전기를 통해 들려 오고 있다. 전영석
은 이를 악물고 앞쪽을 노려보았다.
"철수해라! 즉시 부대로 철수해라."
3시 15분, 연합 시령부 상황실.
전화기를 귀에 댄 채 유남준 준장이 벌떡 일어섰다.
"뭐라구?쿠데타군?그게 무슨 말이야?"
그러자 저쪽에서 짜증난 듯한 목소리로 다시 말했다. 발음이 분명
한 영어다.
"우리가 쿠데타를 일으키려는 한국군을 저지시켰단 말이오."
"당신들,29연대가?"
"그렇소. 김포의 특전사 소속 2여단 병력이었소. 그들은 성산 대
교를 넘으려다가 아군의 포격을 받고 다시 김포 쪽으로 도주했습니
다. "
대단원 343
그 시간의 제2여단 상황실.
7, 8명의 장교들이 침통한 얼굴로 앉아 있었다. 아무도 선뜻 입을
열지를 않는다. 그러자 전영석에게로 장교 한 명이 다가오더니 조심
스럽게 말했다.
"참모장님, 전화를 받지 않습니다. "
전영석이 핏발 선 눈을 들었다. 10분 전부터 홍제일과의 교신이
끊어진 것이다 그의 무전기는 신호는 갔지만 받는 사람이 없다.
"과천의 5사단을 대라."
그가 소리치듯 말하고는 남은 장교들을 돌아보았다.
"책임은 나와 여단장이 진다. 너희들은 모른다고만 해라. 죽은 사
람에게 덮어씌워 주는 것이 살아 남은 동료들을 위하는 것이다. "
전화기를 든 장교가 다시 다가왔다.
"5사단입니다, 참모장님 ."
그는 전화기를 귀에 대었다. 기밀을 유지하기 위해 이제까지 5사
단과의 연락을 홍제일이 맡았지만 지금은 어쩔 수가 없다.
"여보세요."
"예,5사단 상황실의 임태호 중령입니다. "
"난 특전사 2여단 참모장 전 대령이오."
"예, 대령님."
"당신 부대는 어떻게 되었소?"
"무슨 말씀이십니까, 대령님?"
"출동 말이오."
"출동한 적 없는데요, 대령님 "
344 밤의 대통령 제3부 -방
대통령은 전화기를 들면서 시계를 올려다보았다. 새벽 3시 반이었
다. 침대에서 상반신만 일으킨 자세로 그는 전화기를 귀에 대었다.
"여보세요."
"각하, 이영규입니다. "
"응, 웬일이오? 이 시간에."
"각하 특전사 소속 1개 여단 병력이 청와대로 진입하려다가 성산
대교 남단에서 격퇴되었습니다. "
"무엇이? 청와대를?"
"예, 각하. 다행히. "
"어떻게 그런 일이."
"군의 일부 불순분자들이."
대통령이 놀란 듯 잠자코 있었으므로 이영규가 말을 이었다.
"미국 사령부가 다행히 그들의 계획을 포착해서 1개 연대 병력을
출동시켰습니다. 그래서."
"미군이?"
"예, 각하."
대통령은 다시 말을 멈추고 한동안 입을 열지 않았다.
사흘 후, 1996년 2월 28일,
평화 조약이 사흘 늦게 선포되었다. 한국과 북한의 대표단은 공동
성명을 발표했다. 평화 조약의 내용은 남북한 간이 합의한 대로였지
만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맺어진 한·미·일 간의 방위 조약은 조금
수정이 되었다.
남한은 한미 방위 조약을 우선으로 하여 주한 미군을 중심으로 하
대단원 345
는 기존 방위 계획을 고수하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한일 방위 조약
은 폐기되면서 다만 평화 유지군 명목으로 1개 중대의 일본군이 주
둔하는 것으로 변경이 되었다.
그날 밤, 축제의 분위기에 꽂어 있는 영동의 어느 신축 아파트 단
지 앞에 세 대의 승용차가소리 없이 다가와 멈추어 섰다. 그리고는
차의 문들이 일제히 열리면서 10여 명의 사내들이 쏟아져 나왔다.
모두 얼굴을 복면으로 가리고는 눈만을 내어 놓았으므로 밤에 보는
그들은 검은 그림자 덩어리처럼 보였다.
그들은 발자국 소리는커녕 숨소리도 내지 않았다. 먼저 아파트의
입구로 사뿐히 뛰어 들어간 두 명의 사내가 놀라 입을 벌린 경비원의
목덜미를 쥐고 있던 기관총의 손잡이로 내려쳐 기절시켰고 그사이
에 두 패로 나누어진 사내들이 엘리베이터와 층계를 향해 달려갔다.
605호실 앞에 그들이 도착한 것은 그로부터 3분 후였다.
먼저 두 명이 철제 문의 고리 부분에 플라스틱 폭탄을 붙이고 전
선을 꽃더니 뒤쪽으로 물러 나온다. 사내들이 일제히 좌우로 물러서
자 지휘자로 보이는 사내가 들었던 손을 내렸다. 순간 아파트를 울리
는 폭음과 함께 반쪽이 떨어진 문짝 전체가 안쪽으로 내동댕이쳐졌
다. 사내들은 한 덩어리가 되어 안으로 쏟아져 들어갔다.
먼저 뛰쳐 들어간 세 명이 제각기 방위를 잡고는 기관총을 쏘아
제쳤는데 소음기를 긴 총성이라 마치 멀리서 울리는 발동기 소리와
비슷했다. 나머지 사내들이 솎아져 들어가면서 누군가가 집안의 불
을 켰다.
순식간에 수백 발의 총탄이 쏟아진 집안은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
346 밤의 대통령 제3부 -111
지만 빈집이었다.
문을 모두 열어 제치고 난 부하들이 지휘자를 바라보았다. 복면의
지휘자가 손을 들더니 뒤쪽을 가리키면서 돌아싫,다.
사내들은 다시 썰물이 빠져 나가듯이 아파트를 나갔고 집안엔 다
시 정적이 찾아들었다.
다음날 시내에는 김원국이 그의 일행과 함께 습격을 당해 피살되
었다는 소문이 순식간에 퍼져 나갔다.
김원국을 습격한 것은 일본 정 보국이라는 소문도 있었고 미국 쪽
일 것이라는 설도 있었다. 그리고 쉬쉬 했지만 한국에서 암살했다는
이야기도 진지하게 떠돌았다.
그러다가 한 달쯤 지나자 국민들은 그를 잊었다. 그에 대한 이야
기와 함께.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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