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휴전선 돌파
서울, 2월 8일 오후 7시 게분. 파리 시간으로는 오전 11시 셀뿐이다.
이영만 대통령의 집무실에는 대통령을 중심으로 강동진과 임병섭,
박종환에 김형태 국방 장관, 이영규 한미 연합사 부사령관 등이 앉아
있는 외에도 30분 전에 들어선 두 사내가 엄숙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한미 연합사 사령관인 월슨 대장과 주한 미국 대사 마이클 그리피스이다.
대통령의 자리 정면으로 대형 텔레비전이 설치되어 있었는데 아직
화면은 켜지지 않았지만 의자들은 그쪽을 향해 배치되어 있다.
대통령이 헛기침을 했다.
"실무 대표단이 중요해요.군과 정치,금응의 전문가들로 구성되어야 할 거야."
"비서실에서 인선 작업중입니다, 각하."
박종환의 대답이다.
"그리고 해당 부처에도 추천 의뢰를 보내도록 해서 2배수로 모은
다음 최종 인선을 하겠습니다. 오늘 밤 안으로 결정되도록 하겠습니다, 각하."
"각하. "
입을 연 것은 그리피스였다.
그는 똑바로 대통령을 바라보고 있다.
"미국 시민들에 대한 행동 제한을 즉시 철회해 주실 것을 부탁 드립니다. "
"알고 있소, 그리피스 씨."
대통령이 입술 끝만 올리며 웃었다
"당연히 그렇게 되어야겠지."
"미국 시민들의 한국에 대한 감정이 어떻다는 것을 알고 계시지요?"
"악화되었다고 하더군."
"최악입니다, 각하 "
그러자 강동진이 헛기침을 하고는 그리피스를 바라보았다.
눈에 힘이 실려 있는 시선이다.
미국의 대한 여론은 어제 로젠스턴의 폭로가 있은 직후부터 급격
히 악화되고 있었는데 한국이 북한의 제의를 받아들일지도 모른다는
발표가 그 기폭제 역할을 했다. 빈 몰이 폭사하고 고트가 인질로 사
로잡혔을 때 언론은 대서 특필 했지만 여론이 이처럼 나빠지지는 않았었다.
남북 합의는 곧 한국 내의 5만 명 가까운 미국 시민들의 자유를 뜻한다.
남북 합의는 또 한국이 미군에 의해서만 나라의 명맥이 보존
324 밤의 대통령 제3부 -ll
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리고 남북 합의는 한국이 북한에게 철저하
게 굴복당했다는 것을 말해 준 것이다.
강자에게는 타협과 공존을 내세워 미소 지으며 약자에게는 잔인해
지는 것이 인류 역사상의 국가 간의 관계였으며 인간본연의 습성이
다. 미국은 이제 경계와 자제를 풀고 있었다.
대통령이 머리를 들어 월슨을 바라보았다.
"남북 동시 철군의 세부 사항을 결정하려면 아무래도 주한 미군
측에서도 회담fl 참석해 주셔야 할텐데, 월슨 장군 "
월슨이 육중한 몸을 움직여 대통령에게로 몸을 돌렸다.
"글쎄요, 아직 본국의 지시를 받지 않아서."
"그리고 한미 방위 조약도 문제가 있는 것 같고. 이제까지 한국 정
부의 태도를 보면 말입니다. "
"어쨌든 본인은 본국의 지시를 받아야 움직입니다. "
임병섭이 시계를 올려다보는 시능을 하더니 입을 열었다. 의식적
인 행동으로 큰 제스처였다.
"5분 전입니다, 각하. 텔레비전을 켜겠습니다. "
파리의 회담장.
로젠스턴이 손에 들고 있던 서류로 테이블을 가볍게 두드리고 있
었다. 발표문의 문안 작성이 마악 끝나 남북한 양국의 확인을 받고
난 참이다.
"시간이 되었어요. 5분 전입니다. "
그가 벽에 걸린 시계를 쳐다보며 말했다.
"아래층으로 내려가야 할 시간이오, 여러분."
"그렇군. 벌써 그렇게 되었나?"
대답한 것은 김인채이다. 몇 번이고 시계를 훔쳐 보았으면서도 그 시치미를 떼었다.
최광이 머리를 돌려 김원국을 바라보았다. 두꺼운 눈시울에는
가려진 흐린 눈이 =I와 시선이 마주치는 순간 옆으로 들려졌다.
"자, 그러면."
로젠스턴이 엉덩이를 들려고 상체를 기울일 때였다.
"잠간, 조금만 더 기다립시다. "
김원국이다. 그는 앉아 있는 사람들을 둘러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직 시간이 덜 되었소, 여러분."
"하긴 1층의 로비까지는 걸어서 3분도 되지 않아요,서둘 것 없 71. "
로젠스턴이 머리를 끄덕였다.
극적인 분위기의 연출자는 결국 자신이 될 것이다.
기자 회 견장에서 발표는 미국 대표인 자신이 하게
되어 있었고 남북한은 배석만 할 뿐이다.
김원국은 머리를 끄덕이며 그에게로 다가갔다.
"아래층에서 연락이 올 때까지 기다립시다. "
"연락이 오기로 되어 있소? 우린 정각에 내려가기로 했는데."
"연락이 옵니다. "
김원국은 뒷짐을 지고 테이블 주위를 느린 걸음으로 돌았다.
"여러분, 우리는 합의 발표를 하지 않을 작정입니다. "
그러자 방안의 사내들이 모두 머리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선뜻 입을 여는 사람은 없다.
김원국이 말을 이었다.
"우리는 합의를 거부합니다. 따라서 회담 발표도 없습니다. "
"무슨 소리를‥‥‥‥
로젠스턴이 정신 나간 사람처럼 그를 바라보았다.
"그럼 지금까지 당신네 정부와 협의한 것은?"
"무효요,로젠스턴. 그런 개같은 조건에 나는 합의할 수가 없단 말01오. "
김원국은 앞쪽에 등을 보이고 앉아 있는 김인채의 양쪽 어깨에 두손을 올려놓았다.
김인채가 상반신을 흔들었으나 김원국의 두 손은 떨어지지 않았다.
김인채는 일어나려고 상반신을 들었지만 김원국에 의해 다시 눌리어졌다.
앞쪽의 더글러스가 눈을 치켜떴고 옆에 앉은 최광도 눈과 입을 함께 벌리고 있다.
"이런 개같은 놈에게 항복하지 않는다는 증거를 보일테니 자,보시오. "
말을 마치는 순간 김원국은 한쪽 손으로 김인채의 뒤통수를 덮으면서
다른 손으로 턱을 감싸 쥐었다.
김인채가 두 팔을 휘저으며 그의 팔목을 쥐었다.
그 순간 김원국은 김인채의 머리통을 뒤쪽으로 힘껏 돌렸다.
뚜둑, 하는 둔한 소리가 들렸고 얼굴이 등쪽으로 향해진 김인채가 사지를 늘어뜨렸다.
목뼈가 부서진 것이다
바로 그 순간이다.
아래충에서 호텔을 진동시키는 요란한 폭음이울려 퍼졌다.
"연락이 왔군."
몸을 세운 김원국이 방안을 둘러보았다.
"김 선생, 어서 ."
자리를 차고 일어난 고성국이 소리치듯 말했다.
"여기는 나한테 맡기시고, 어서 "
"고 장군, 경솔한 행동은 안됩니다. 아시겠소?"
김원국도 소리쳐 말했다.
그들은 문 쪽으로 서둘러 다가갔는데 아래층에서 다시 폭음이 울려 왔다.
이번에는 서너 번의 폭음이 연속해서 났고 그 사이로 사람들의 아우성 소리도 섞여 들려 왔다.
폭음이 을리자제일 먼저 뛰쳐 일어난 것은 조웅남이다.
그는 육중한 몸을 의자에서 공처럼 가볍게 튕겨 일어났다.
"되얀다. 가자!"
그는 머리를 돌려 의자에 앉아 있는 고트와 홍진무를 재빠르게 훌어 보았다.
"느그덜은 살려 주겄어."
흥진무는 들었으나 고트는 한국말을 모른다.
그는 눈을 점벅이며 조웅남을 바라보았다.
조웅남이 그의 시선을 받으며 말했다.
"형님이 그런 말 안혔으면 그냥 적이고 갈 것인디."
미련이 많은 얼굴이다.
"형님, 갑시다!"
고동규가 방으로 뛰어들며 말했다.
그러자 조웅남은 총알같이 방을 빠져 나왔다.
고동규가 그의 뒤를 따른다. 계단의 입구에 서 있던 김칠성이 그를 보더니 앞장을 섰다.
3충 계단으로 내려가자 횐 연기가 자욱하게 덮여 있다.
폭발의 영향이다.
그러자 앞쪽에서 어른거리는 사람의 그림자가 보였다.
그리고는 얼굴이 나타났다.
동양인이다.
"어서, 연막은 5분 동안입니다. "
한국의 안기부 요원이다.
"제 뒤만 따라오시면 됩니다. "
연막 속을 헤치고 내려가자 로비의 소란이 그들의 귀를 가득 메웠다.
비명과 고함, 욕설이 섞여 아수라장이 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자 다시 폭음이 울렸고 소란은 더욱 심해지고 있었다.
그러나 보이는 건 연막 속에 휘젓는 손과 머리 등 일부분뿐이었고
몸을 부딪쳐야 상대방의 얼굴이 슬쩍 보였다가 연기에 가려진다.
그들은 사내의 안내를 받아 연기 속을 헤치고 나아갔다.
폭음이 일어나자 소스라치듯 놀란 매클레인은 머리를 들었다.
연단 앞의 기 자석에서 자욱한 연기가 뿜어 나오고 있었다.
"빌어먹을!"
폭음이 컸고 연기가 금방 주위를 메우고 있었는데 기자들은 아우성을 치면서
사방으로 흘어지고 있다.
그러자 현관의 옆쪽에서 다시 폭음이 울려 왔고 안쪽의 계단에서도 뒤따라 무엇인가가 폭발한다.
"2층으로!"
매클레인이 고함을 쳤다.
그는 허리춤에 찬 전화기를 꺼내 들면서 사람들과부및치며 계단쪽으로 다가갔다.
이미 연기는 로비에 자욱 하게 깔려 있어서 눈앞에 있는 사람들만 겨우 보이다.
폭발이다.
장관과 사령관을 구해야 된다.
매클레인은 본능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사람들에 부딪치며 겨우 2충의 계단으로 다가간 그는 이마의 땀을 소매로 씻었다
다시 폭발이 있었고 2층의 계단에도 연기가 구름처럼 덮여 있었다.
매클레인은 전화기를 입에 대었다.
아우성 소리와 비명으로 가득찬 로비에서 얼마나 희생자가 났는지 알 수가 없다.
"모두 2층으로!"
그가 전화기에 대고 악을 썼을 때 문득 구름을 헤치고 그의 앞에 나타난 얼굴이 있었다.
얼굴만 나타난 것이다.
매클레인이 놀라 입을 쩌억 벌린 순간
그는 턱에 격심한 충격을 받고는 뒤로 넘어지면서 계단의 난간에 머리를 부딪쳤다.
가물거리며 꺼져가는 의식 속에서 매클레인은 사내의 모습이 낯익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름을 기억해 내기 전에 이미 그는 의식을 잃었다.
우정만은 폭음과 동시에 펄쩍 뛰어 땅바닥에 몸을 엎드렸는데 왜냐하면 폭탄이
그의 바로 옆에서 터졌기 때문이다.
잠시 후에 =1는 자신의 몸 위에 겯쳐 있던 사내들이 태클해 왔던
미식 축구 선수들처럼 떨어져 나가는 것을 느꼈다.
의자 위에 걸쳐진 다리를 내리자 다리는 멀정하게 움직였다.
손과 머리도 괜람고 몸통토 상한 데가 없었다.
자욱한 연기 속에서 무의식중에 자신의 몸을 점검하면서 그는 일어섰다.
폭음은 계속해서 들려 왔고 사람들의 아우성 소리가 로비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운이 좋은 것이다. 재빠르게 엎드린 덕분에 살았다.
가슴을 편 그가 마악 발을 메었을 때 뒤통수에 격심한 충격이 왔고
의식부터 잃은 그는 천천히 무릎을 꿇고 엎어졌다.
호텔의 현관 밖으로 횐 연기가 천천히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열려진 창문으로도 연기가 피어 올랐고 2층의 창문에서도 마찬가지다.
현관에서 쏟아져 나오는 사람들의 숫자는 이제 줄어들고 있었지만
호텔 밖도 수라장이 되어 있었다.
머리가 헝클어진 여자 아나운서가 텔레비전에 다시 나왔다.
연기에 익어 가는 크리용 호텔을 배경으로 선 그녀는 흥분된 목소리로 말했다.
눈을 치켜뜨고 있다.
"방금 들어온 소식입니다.
북한측의 대표 김인채 상장이 목이 부러진 시체로 발견되었습니다.
가해자는 한국 대표인 김원국 씨였다
고 미국 대사관의 허브 공보관이 밝혔습니다. "
대통령이 의자의 팔걸이를 움켜쥐었다.
그러나 텔레비전을 향한 시선은 움직이지 않았고 입도 굳게 닫혀져 있다.
"인질범들은 계획적으로 도주한 것입니다.
로비의 여러 곳에 시한 연막 폭탄을 장치해 놓고 폭발의 소란이 일어난 사이에 도주했습니다.
이것은 프랑스 경찰의 구베르 서장이 말해 주었습니다. "
방문이 열리더니 잠시 밖에 나갔던 임병섭이 돌아와 자리에 앉는다.
아나운서가 다시 말을 이었는데 생기찬 표정에 말소리에도 활력이 넘치고 있다.
"이것은 외부의 도움이 없으면 이루어지지 않을 일입니다.
프랑스 경찰 당국은 한국의 안기부 요원들이 이 일에 적극 가담하였다고 믿고 있습니다. "
임병섭이 턱을 들고는 내리판 시선으로 아나운서를 바라보았다.
"신사 숙녀 여러분,남북한의 회담은 결렬되었습니다.
이제 그들에게 남은 것은 원한과 증오밖에 없습니다. "
대통령이 손을 들자 박종환이 텔리비전의 전원을 껐다.
그것이 신호라도 된 듯이 그리피스 대사와 월슨 대장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모두 굳어진 얼굴이다.
"각하, 저희는 이만 실례할까 합니다. "
대통령이 잠자코 머리를 끄덕이자 그들은 방을 나갔다.
한동안 방안에 침묵이 흘렀는데 아무도 그것을 깨뜨리지 않았다.
낮고 어두운 정적이 왜 오랫동안 흐르고 난 다음에 대통령이 머리를 들었다.
"임부장, 당신의 짓이오?"
"아닙니다, 각하."
임병섭이 머리를 세차게 저었다.
"우리 정부와는 관계없는 일입니다 "
"김원국 씨에게 그 일을 맡긴 것이 잘못이었습니다.
그는 누구에게도 통제받을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잊고 있었습니다. "
"안기부 요원들은 아마 자발적으로 김원국 씨를 도와 준 것 같습니다, 각하."
그러자 강동진이 헛기침을 했다.
"각하, 사태가 급박하게 되었습니다. "
332 밤의 대통령 제3부 -ll
"북한은 가만있지 않을 것입니다. "
"북한은 가만있지 않을 것이오."
강한기가 손바닥으로 탁자를 쳤다.
"하지만 이제 우리가 기선을 잡았어. 놈들은 지금쯤 당황하고 있을 겁니다. "
"사령관을 청와대에서 빨리 돌아오시게 해야 합니다. "
탁자에 몸을 붙인 이케다가 서두르듯 말했다. 그의 옆에 서 있던
가토 중장도 머리를 」1덕였다.
"강 소장, 우리에겐 사령관이 필요하오. 청와대에 잡혀 있으면 안됩니다 "
강한기가 첫발선 눈으로 이제다와 가토를 쏘아보았다.
"참모장은 지금 프랑스 경찰에 의해 억류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김원국 씨와 공모한 혐의로 구속될 것이라고 합니다. "
난데없는 말이었으므로 이케다와 가토가 서로 얼굴을 마주보았다.
"참모장은 나라를 위해 자신을 버리셨습니다.
대통령의 명령을 어겼지만 조국을 배신한 것이 아닙니다. "
"그리고 사령관 각하께서는 지금 청와대에 계시니
상황이 발생하면 당장에 움직이실 수가 없는 형편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텔레비전의 전원을 끈 김정일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얼굴색이 하얗게 되어 있었는데 마치 병든 사람 같았다.
원탁에 둘러앉은 사내들은 북한의 실세들이었고 휴전선 근처에서 온 군 사령관들도 포함되어 있다.
"이영만이가 속임수를 썼어."
김정일의 입에서 낮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합의는 속임수였다. 놈이 우리를 속였어."
"수령 동지."
인민군 부참모 총장 김강환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안기부 요원들까지 합세한 것을 보면 이 일은 남조선 정부의 계락인 것이 틀림없습니다. "
모두 김강환을 바라본 채 움직이지 않았다.
한동안 굳게 입을 다물고 있던 김정일이 머리를 끄덕였다.
"더이상 말할 것이 없어. 남조선은 이제 놈들이 저지른 일에 책임을 져야 돼."
"당연하신 명령입니다, 수령 동지."
공화국의 위대한 승리를 전 인민에게 알려 주기 위하여 파리의 현
장과 생중계 방송을 서둘러 만들어 놓았던 참이다. 다행히 크리용 호
텔이 연막탄에 싸인 장면은 인민에게 방영되지 않았지만 주석궁에
모여 앉은 실세들은 모두 보았다.
방문이 열리더니 주석금에 상주하고 있는 호위총국 소속의 소장이
서둘러 들어왔다. 손에는 전화기가 들려져 있다.
"수령 동지, 파리에서 주석 동지의 전화가 왔습니다. "
퍼뜩 눈을 뜬 김정일이 낚아채듯 전화기를 받았다. 방안의 시선들
이 다시 그에게로 모아졌다. 사건 이후로 최광과 처음 통화가 된 것01다.
"여보시오."
"수령 동지, 최광칩니다. "
"동무, 어떻게 된 일이오?"
"김원국이가 판을 뒤집어 버렸습니다. 놈은 남조선 정부의 명령도
거역한 것입니다. "
김정일이 억눌린 숨을 내쉬었다.
"수령 동지, 저는 지금 대사관으로 돌아왔습니다만
조금 전에 남조선 정부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
서두르듯 최광이 말을 이었다.
"정식 대표단을 파견할 예정이라고, 김원국이는 어쩔 수 없이
남조선 대표로 임명한 자라고 했습니다.
김원국이를 도와 준 자들은 정부와는 관계없는 자라고 하더군요."
"수령님이 허락하신다면 내일까지 남조선 대표단이 이곳으로 온다는 겁니다. "
"개자식들."
"수령 동지, 어떻게 했으면 좋겠습니까?"
"기다리시오, 그곳에서."
전화기를 내려놓은 김정일이 숨을 크게 들여 마셨다가 천천히 뱉어냈다.
얼굴에 조금씩 화색이 돌아오고 있었다. 이윽고 그는 머리를 들었다.
"남조선이 정식으로 대표단을 보낸다는 거요. 내일 다시 시작하자는데 ."
"놈들의 농간입니다, 수령 동지. 시간을 끌어 보자는 이영만의 잔꾀입니다. "
김강환이 다시 나섰다.
김강환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군 실세들은 남조선 군대에 대해 우월 의식이 있었고
그것이 요즘의 회담으로 더욱 증폭된 분위기였다.
"수령 동지, 놈들에게 본때를 보여 주어야 합니다
이젠 미국도 우리 공화국의 우방이나 다름없게 되었습니다. "
그러자 집무실의 문이 열리더니 호위총국의 장군 한 명이 서둘러 들어왔다.
모자도 쓰지 않은 그는 김정일에게로 다가와 허리를 숙이더니 귓속말을 했다.
"이?"
말은 뱉지 않았지만 옆쪽에 앉아 있던 보위 사령관 안용준은
그의 입이 그런 모양으로 벌려지는 것을 보았다.
김정일은 눈을 치켜뜨고 한동안 장군의 얼굴을 올려다보더니 천천히 머리를 돌렸다.
얼굴이 오래된 석고처럼 되어 있었다
그는 안경 알 속의 눈을 깜박여 초점을 잡더니 입을 열었다.
"동무들, 남조선 국방군이 휴전선을 넘어 침공해 오고 있소."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집무실 안에 그의 목소리가 다시 울렸다.
"동부 전선이오. 놈들은 이미 24, 27 미사일 부대를 파괴했다고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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