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밤의 대통령

7. D-3일의 3국 회담

오늘의 쉼터 2015. 1. 1. 10:38

7. D-3일의 3국 회담 

 

 

(1)

 

김칠성이 2충의 회담장에 모습을 나타낸 것은 회의 시작 두 시간 전인 오후 6시였다.

이제까지 김원국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다가 대신 김칠성을 내려보낸 것이다.

희담장에서 기다리고 있던 3국의 경호 책임자와 프랑스측의 구베르 서장이 제각기의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물론 제일 격한 표정을 한 것은 북한측의 경호 책임자인 우정 만이다.

최광을 수행해 온 그는 '원쑤'를 바라보는 익숙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와 대조적인 사람이 한국의 박남호 보좌관이다.

KCIA의 직급으로 차장보였으므로 서열로는 1(혀권에 드는 인물이었는데

그는 이제 대놓고 반가운 표정을 지었다.

매클레인은 무시하는 듯이 두 손을 바지 주머니에 찌른 채 턱을 든 자세였고

구베르는 화난 것과 호기심이 반쉭 섞인 얼굴이었다.


"난 서울에서 온 박남호올시다. 부장 보좌관입니다. "

박남호가 한걸음 나서며 말했는데 손을 내밀지는 않았다.

"회담장예 도청 장치는 없고 외부에서 습격당할 염려도 없습니다, 김 선생 "

"영어로 합시다, 미스터 박."

이맛살을 찌푸린 매끌레인이 쏘아붙이듯 말하자 박남호가 머리를 끄덕였다.

"좋소. 북한 쪽은 알아들었을테니까

지금 내 말은 그에게 나중에 통역해 달라고 하시오,"


"개수작하지 말어."

북한 쪽의 사내가 불쑥 튀어나왔다.

한국말이었으므로 다시 세 사람만 알아듣는다.

"네 놈들이 아무리 수작을 부려도 독안에 든 쥐다. "

40대의 사내였는데 피부가 검고 체격이 컸다.

눈의 횐자위가 많아 눈이 더욱 커 보이는 사내였다.

"이봐요, 영어로 하자니까."

마침내 매클레인이 언성을 높였다.

그는 한걸음 김칠성에게로 다가섰다.

"당신 요청대로 호텔 안에는 대표단 외에 미국과 양쪽 한국의 세 나라에서

세 명씩 차출한 경비 요원만 들여놓겠어.

우리는 당신들의 도주를 돕지 않겠다는 각서를 이 사람한테서 받았으니까

참고로 알고 있도록 해 "


박남호를 가리켜 보인 매클레인이 말을 이었다.

"그리고 당신 보스인 김원국에게 전해.

회담은 회담이고 인질을 잡고 우리 상원 의원을 폭사시킨 책임을 져야 할 거라고."

김칠성이 머리를 끄덕였다.

"우리 보스도 그런 것쯤은 잘 알고 있어, 미스터."

"매클레인이다. "

"그래, 매클레인, 그쯤하고 입을 닥쳐라."

몸을 돌린 김칠성이 회담장을 돌아보았다.

넓은 연회장의 한복판에 원형의 대형 탁자가 놓였고 세 부분으로 나누어진 자리에

두 개씩 의자가 놓여 있다.

그리고 각 의자 앞에는 임시용이지만 종이로 만든 한국과 미국, 북한대표의 명패가 놓여 있었다.

출입문은 두 곳으로 한쪽에 있었고 반대 쪽은 벽면이 대형 유리로 되어 있어서 콩코르드 광장이

훤하게 보였다.

짙은 색 커튼이 걷혀져 있었으므로 필요할 때 커튼을 닫으면 되었다.

유리창 가에는 가죽 소파가 배치되어 있고 오른쪽 벽에는 음료수가 놓인 선반이 있다.

간이탁자에 대여섯 대의 전화가 나란히 놓여 있는 데다가 팩시밀리기가 두 대 있었다.

준비는 거의 완벽하게 되어 있는 것이다.

회당장을 둘러본 김칠성이 발을 떼자 네 명의 사내들은 잠자코 뒤를 따랐다.

그들이 내려간 곳은 1층의 로비였다.

수십 명의 경호 요원이 들끓고 있던 로비는 갑자기 물벼락을 맞은 듯 조용해졌다.

계단을 내려오던 김 칠성에게로 모든 시선이 집중되었고 한동안 움직이는 사람도 없다.

김칠성이 몸을 돌리자 때클레인과 시선이 마주쳤다.


"당장 로비를 비워라. 지금부터 각국의 세 사람씩만 남는다. "

"좋아. "

매클레인이 쓴웃음을 지었다.

"네 순시만 끝나면 바로 시행하지."

"그리고 호텔 안에서는 어떤 무기도 소지할 수 없다.

만일 무기가 발각되면 인질에게 해가 돌아갈 거야."

몸을 돌린 김칠성이 다시 계단을 오르다가 북한의 우정만과 어깨를 부딪쳤다.

"너도 마찬가지야. 허리춤에 찬 권총을 버려 ."

"개지식."

"이젠 미제의 주구라는 소리는 하지 않는군, 태엽 달린 인형 같은 놈이 ."

주고받은 말이 한국말이었으므로 매끌레인과 구베르는 시치미를 몌며 뒤를 따랐고

 얼굴이 달아오른 우정만은 이를 악물었다.

맨 뒤에서 계단을 오르던 박남호는 턱을 들고 잠자코 있었다


"미스터 김, 당신은 착각하고 있어. 지금까지는 계획대로 된 것 같지만 앞으로는 뜻대로 안될 거요."
  
고트가 의자에 편한 자세로 앉아 김원국에게 말했다.

잘 다림질된 바지에 상의로는 연한 색의 스웨터를 입었고

얼굴은 말끔하게 면도를 해서 평시의 그와 다름없어 보였다.
  
"우릴 인질로 한다고 한미 관계나 남북 관계에 변화가 오지는 않아요.

미국 정부는 인질 때문에 정책을 변경시키지는 않아."


그러자 고트의 옆쪽 의자에 앉아 텔레비전을 보고 있던 홍진무가 머리를 들었다.


"당신, 최 대좌를 어떻게 했소?"

"그건 당신이 알 바가 아냐."

"죽였지? 쓸모없다고 생각해서."


김훤국이 고트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내 제의를 북미 양측이 순순히 받아들인 것에 내가 착각하고 있는 줄 아는 모양인데,

고트 씨, 북미 양국은 어쨌든 회담의 마무리를 짓고 싶었기 때문에 온 거야. 인질 때문에 온 것이 아니고."
  
"당신 마음대로 생각해, 미스터 김. 당신 때문에 결렬되었던 북미회담을 다시 이어 준단 말이지?  한국을 끼워 넣어서."

고트가 씁쓸하게 웃었다.
  
"도대체 당신의 의도는 뭐야? 뭘 어떻게 하자는 거야."

머리를 돌린 고트가 흥진무를 바라보았다.

"미스터 흥, 당신은 이 자의 속셈을 알 수 있겠소?"

홍진무가 대꾸하지 않았으므로 고트는 의자에 둥을 기대었다.

방 안에는 세 사람이 서로 마주보고 앉아 있었고 열려진 방문 밖에는

고동규가 벽에 머리를 기대고 앉은 것이 잠이 든 모양이었다.


김원국이 입을 열었다.

"내가 바랐던 것은 3국 회담이야. 남 북 미의 3국 회담을 전쟁 전에 하고 싶었어."

"그러리라고 짐작은 했어, 하지만 너무 무모해. 이건 갱들의 회담이 아냐."

고트의 목소리도 낮았다.

"미스터 김, 당신은 미친 놈 아니면 순진한 사내야. 아니, 도박꾼이라고나 할까."
  
"아마 미친 놈이라고 불려질걸, 고트 씨."

"그래,당신이 참석한 회담에서 북미 간의 솔직한 협상이 이루어 질까?"

"사흘 전이야. 그리고 회담도 비공개로 열릴 것이다. 한국측에서 두 명이 참석하는 것 외에는

달라진 것도 없다. "
  
"내 생각이 맞군, 돈을 벌텐데, 내기를 했다면, 결국 우리는 회담의 인질이 아니라 미끼였어."

"이제 미끼에 고기가 걸렸으니 우릴 버릴 일만 남았군."

"다른 효과도 있었어, 고트 씨. 우리가 당신들의 그늘에서 벗어났다는 사실을 안팔으로 여 주는 것 말이야."

"나는 당신에 대한 적개심은 느끼지 않아. 그리고 저 사람한테도,개인적으로는 말이야."

고트는 두 눈을 껌벅이며 김원국을 바라보았고 홍진무는 머리를 돌렸다.

김원국이 말을 이었다.

"우리는 여러가지에 얽매여 살아 왔지.

미국과의 조약, 협정, 북한과의 동족 의식 등에 너무 얽매여 살아 왔단 말이야.

이제 우리는 그 것을 깨었어. 나는 그 일에 일조를 했고. 난 그것으로 만족한다. "

"너희들이 회담에서 딴소리를 해도 좋고 우리를 속여도 좋아.

우리 대표는 그것을 국민에게 전하고 전쟁을 치를테니까."

김원국이 홍진무를 바라보았다.

"너희들은 한 달의 기간으로 미국을 너희 편으로 끌어들였는지는 모르지만

우리들에게는 기회를 주었어. 뭉치고 결의를 다질 기회를 말이다.

두고 보아라. 너희들은 망한다. "

 

오후 7시 반,

시바다 겐지는 콩코르드 광장 아래쪽의 콩코르드 교 입구에 서 있었다.

센 강을 스치고 불어오는 찬바람이 코트 자락을 날렸으나 며칠 전보다는 바람끝이 무디다.
   
앞쪽의 광장에는 조명을 받은 오벨리스크 탑이 황금색으로 빛났고

 가로등 너머로 크리용 호텔이 뚜렷하게 드러났다.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는 호텔이어서 지금도 주위에는 사람들의 무리가 담장을 이루고 있다.
   
바람끝을 피하려는 듯 몸을 돌리는 시바다 겐지의 옆쪽으로 사내 한 명이 다가오고 있었다.

바쁜 걸음으로 다가오는 사내는 사쿠라이였다.
   
"조장님, GIGN은 수상 명령으로 조금 전에 철수했습니다. "

사쿠라이가 입에서 횐 김을 뿜으며 말했다.

"그리고 로젠스턴은 지금 미국 대사관에 있습니다. 아직 출발하지 않았어요."

"5분이면 올 수 있어. 그런데 최광은?"

"오는 중입니다. "
  
머리를 』I덕인 시바다는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어 다이얼을 눌렀다.

그러자 사쿠라이는 그에게로 등을 돌리고 선다.

"헬로, 난 미스터 리요."

시바다가 전화기에 대고 말했다.

"이쪽은 아직 이상이 없어요.호텔 뒤쪽에 있던 GIGN도 철수했 3:. "

일본어 억양이 조금 섞인 목소리로 그가 말을 이었다.

"이상이 있으면 그쪽에서도 바로 연락을 주시오. 밖은 이쪽에서 맡을테니까."

휴대폰의 스위치를 끈 시바다가 사쿠라이를 바라보았다.


"KCIA의 미스터 박은 당분간 밖으로 나오지 못할 거야.

그 동안은 내가 한일 양국 정보국의 지휘를 맡는다. "

"시간이 거의 되었습니다, 조장님."

머리를 끄덕인 시바다가 도로 가에 세워진 벤으로 다가가자 사쿠라이가 뒤를 따랐다.

벤에 기대 서 있던 부하가 =I들을 보자 문을 열어 주었다.

벤 안은 각종 첨단 장비로 가득 차 있어서 그들은 겨우 구석에 놓인 플라스틱 간이 의자에 앉았다.

두 명의 부하가귀에 리시버를 꽃고 스위치를 조작하고 있었다.

이곳에서는 크리용 호텔 근처의 모든 무선 통신을 기록하고 해독하고 방해하는 작업을 한다.

그리고 사방에 깔려 있는 한일 양국의 요원들에게 작전을 지시하는 사령실인 것이다.

"조장님, 미국 대사관에서 로젠스턴과 더글러스 대장이 출발했습니다. "

귀에 리시버를 낀 부하가 머리를 들고 말했다.

"5분 후에는 호텔에 도착한다고 매클레인에게 연락을 합니다. "

"최광은?"

"거의 같은 시간에 도착할 겁니다. "
  
머리를 』1덕인 시바다는 벽에 등을 기대었다.

벽은 딱딱했지만 오랫동안 이곳에 머물러야 했기 때문에 벽에 등을 맞출 필요가 있었다.

부하 한 명이 리시버에 손을 대고 주의 깊게 듣더니 마이크의 스위치를 켜고는 말했다.

"알았다. 주파수는 255다. 앞으로는 그 번호로 할 것,오바."

스위치를 끈 부하가 시바다를 돌아보았다.

"한국측입니다,조장님. 지금 호텔에 도착했습니다. "

한국은 직접 이쪽으로 연락을 하고 있었다.


저녁 8시,

로젠스턴과 더글러스 대장이 회담장에 들어서자 테이블에 앉아있던

최광 차수와 김인채 상장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모두 처음 만나는 사이였지만 얼굴들은 서로 알고 있어서 악수를 나눈 그들은 자리에 앉았다.
  
의례적인 인사말들이 끝나자 회의장의 네 사람은 입을 열지 않았다.

더글러스가 헛기침을 하고는 담배를 꺼내어 입에 물었고 최광은 의자에 등을 기대고는

눈을 감고 있었다.

로젠스턴이 시계를 들여다 보았다.

한국측 대표 고성국은 4총에 을라가 있었다.

김원국과 같이 내려을 모양히 었다.

"이거, 5분지 지났는데 이 사람들 조금 늦는군,"

혼잣소리처럼 로젠스턴이 말했지만 맞장구를 치는 사람은 없다.

창 밖에서 희미한 자동차의 엔진 소리가 들려 왔고 사람들의 말소리도 섞여 있었다.

파리의 저녁 8시면 시내가 가장 바쁜 시간이었다.
  
로젠스턴이 최광을 바라보았다.

"최 주석, 이번의 사건은 진실로 유감이오.

북미 양국은 실로 위대한 정치 지도자들을 잃었습니다. "

최광이 머리를 8덕였다.

"고맙습니다, 장관."

그러자 방문이 열리더니 김원국과 고성국이 들어섰다.

방안의 사내들이 일제히 그들에게로 시선을 주었으나 일어나는 사람은 없다.

그들은 비어 있는 자리에 다가와 앉았다.

의자가 물려졌다가 좁혀지고 등받이에 등을 대면서 몸의 중심을 잡는 시간은 10초쯤이 되었을 것이다.

고성국은 시선을 흔들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 몸을 안정 시키고 나자 소리 죽인 콧숨을 내쉬었다.
  
"기다리게 해서 미안합니다. "
  
김원국의 말소리가 방안을 울렸다.

그의 시선이 왼쪽의 로젠스턴에서부터 오른쪽의 최광에게까지 천천히 옮겨졌다.

"회의를 시작합시다. "

김원국과 시선이 마주친 로젠스턴이 헛기침을 했다.

"미국 정부는 인질 교환을 조건으로 하는 어떤 회담도 거부합니다.

따라서 오늘의 회담은 현재의 한반도 정세에 대한 문제만 논의될 것이오."
  
"고트 부통령과 빈 몰 상원 총무가 하다 그친 회담이 계속되는 거요.

그것에 대해서는 북한과도 의견의 일치를 보았소."

최광이 늘어진 눈시울을 들어올렸다.

"계속합시다. 남조선측도 이의가 없을테니까. 소원을 달성한 셈이 될테니까 말이오."
  
숨을 들여마신 고성국이 어깨를 부풀렸다가 천천히 숨을 뱉으며 가라앉혔다.

그리고는 입을 열었다.
  
"그럼,지난번에 북한측이 제시했던 합의 각서를 설명해 주시오.

난 불행히도 텔레비전을 통해서 봤을 뿐이어서."
  
"그 각서는 거짓이오."

쨍쨍한 목소리로 나선 것은 김인채였다.

50대 후반의 나이로 알려졌으나 검은 머리에 살결은 윤기가 돌고 날카로운 인상의 사내였다.


"우리는 그런 각서를 만든 일도,본 일도 없습니다.

남조선의 조작이오, 바로 이 자의."

김인채가 둘째손가락으로 김원국을 가리켰다.

"그 일은 무시하고 회담을 진행시킬 것을 제의합니다. "

"무시하다니, 거짓말을 밥먹듯이 하는 이 사기꾼같으니."

마침내 고성국비 어깨를 펴고 김인채를 쏘아보았다.

"그 증인이 이 호텔에 있는데도 뻔뻔스럽게 어딜,증인을 데려와서 대질을 시켜 줄까?"

고성국의 목소리가 방안을 울리자 김인채가 이를 드러내며 소리없이 웃었다.

"세뇌시켰겠지. 협박을 했거나. 인질로 잡혀 있는 사람의 증언은 믿을 수가 없다. "

"그렇다면 어디 미국에게 다른 조건을 제시해 보아라.이것이 마지막 회담이니까, "

"조건은 없다. 우리는 애초부터 그런 조건은 준비하지 않았다.
모두 너희들의 모략이고 선동이었다. "

"김사훈이 여기 있는 로젠스턴 씨한테 했던 말도 꾸며낸 말이란 말이냐?

우린 그 내용도 알고 있단 말이야."

"그 사람은 죽었다, 너희들 손에."

"들은 사람은 여기 살아 앉아 있어."

그러자로젠스턴이 입맛을 다셨고 그의 옆에 앉아 있던 더글러스가 헛기침을 했다.

 

 

(2)


"지난일은 거론하지 말고 다시 이야기를 풀어 가는 것이 나을 것같소."
    "그렇소. 우리는 시간이 없습니다. "
    로젠스턴이 말을 받았다.
    "미국은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를 유지하려는 정책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전쟁은 피해야 되고 무력 침공은 국제 질서를 무너뜨리는 것이오.
 그 행위는 당연히 국제 사회의 제재를 받게 됩니다. "
   그러자 최광이 눈시울을 들어올렸다.
   "우리 공화국은 미국과의 보다 밀접한 유대를 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상호 방위 조약의 체결을 원합니다. "
   "그것은 한국과 북한과의 관계가 정상이 되었을 때,그때 3국이
만나 회담을 해야 합니다. "
   로젠스턴이 대답하자 최광이 머리를 저었다.
   "이제까지 남조선을 대표해 온 것은 미국이었소.이치에 닿지 않는 말입니다. "
   "억지는 당신이 쓰고 있는 거야, 당신이!"
   갑자기 주먹으로 테이블을 내려친 고성국이 최광을 쏘아보았다.
   "엊그제까지만 해도 미국을 원수로 대하던 당신들이 지금은 갖은 아부를 하면서
 꼬리를 치고 있어.동족을 말살시키는 데 눈을 감아 달라고 말이야."
   "닥쳐! 네가 감히 누구 앞이라고."
   김인채가 맞받아 소리치면서 주먹으로 테이블을 두드렸으므로 찻잔이 흔들렸다.
260 밤의 대통령 제3부 -ll
   "싸움이 일어났군."
   매플레인이 입술을 비틀어 웃으면서 곁에 있는 박남호와 우정만을 바라보았다.
   "내가 예상한 대로야. 당신들 두 나라가 모이면 꼭 싸움이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했었어."
   박남호는 회의실에서 등을 돌리고는 3충으로 향하는 계단을 바라 보았다.
 계단 입구에 3국의 경호 요원 세 명이 서 있었고 여기서는 보이지 않았지만
 계단 위쪽에 김칠성이 있을 것이었다.

김칠성은 무장하고 있었으나 이쪽은 모두 비무장이었고 회담장으로 내려온

김원국도 마찬가지였다.

2층 계단의 입구에서 1는 31 _0.원들의 몸수색을 받고 입장했던 것이다.
   "난 몇 번 한국 관리들을 만난 경험이 있는데,

물론 KCIA의 유럽 주재 간부들도 대충 알지."
   매클레인이 박남호를 바라보며 말했다.
    "우리 한미 관계는 좋았어.안 그래?나도 당신들에게 호의를 가진
미국인 중의 하나였다구."
    "한국 속담에 도끼 믿다가 발둥 찍힌다는 말이 있어. 어쨌든 당신들은
이놈들과 타협하려고 했으니까."
    박남호가 턱으로 문에 붙어 서 있는 우정만을 가리키자 그가 눈을 치켜띤다.
  각진 얼굴에 가느다란 눈매가 날카로워 보이는 40대의 사내였다:
    "이봐, 말 함부로 뱉지 말라우."
    한국말이다. 그는 턱을 올리며 닭처럼 양쪽 죽지를 부풀려 보였다.
    "싸움 걸지 말란 말이야."
   "웃기고 있네, 이 새끼가."
   머리를 돌리며 혼랄말처림 뱉었지만 그가 들으라고 한 소리다.

우정만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그러자 매클레인이 발을 어 그들 사이로 들어섰다.

한국말은 알아듣지 못했지만 분위기로 알아챈 것이다.
   "헤이, 싸우려면 사홀 후에 얼마든지 싸우라고. 여기서는 그쳐, "
   어깨를 굳힌 박남호가 머리를 돌리자 계단 쪽에서 다가오는 부하의 모습이 보였다.

1층의 로비를 맡고 있는 부하였다.

그는 발을 어 그에게로 다가갔다.
   "무슨 일이야?"
   "10시경에 보좌관님에게 서울에서 전화가 올 겁니다. "
   그가 소근대듯 말했다.
   "서울의 누가?"
   "대장입니다. "
   박남호가 잠자코 머리를 끄덕이자 부하가 바짝 다가섰다
   "대장이 김원국 씨와 직접 통화하시려는 겁니다. "
   강한기 소장은 탁자 위에 두 팔을 올려놓고는 한동안 작전 지도를
내려다보았다. 새벽 5시가 되어 가고 있었지만 한일 방위 사령부의
지하에 있는 작전 상황실 안은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다.
   그의 옆에 서 있는 사내는 일본 파견군의 참모장 가토 중장이었
고, 탁자 앞쪽에는 강동진 사령관이 팔짱을 끼고 서서 지도를 내려다보고 있다.
   상황실은 지하 50미터에 철근과 시멘트를 삼중으로 입혀 놓은 것
이다. 면적이 백 평 가깜게 되는 종합 상황실의 사면의 벽은 통신 장
치와 첨단 방어 시스템으로 가득 차 있었다. 끊임없이 들려 오는 가
벼운 기계의 울림 소리에 상황실은 긴장감 속에서도 활기는 있다
    이윽고 강동진이 입을 열었다.
    "이젠 이틀이야. 파리에서 회담을 한다고는 하지만 극적인 반전은 없을 것이다. "
    강한기가 머리를 들어 벽에 걸린 대형 시계를 바라보았다. 8일 오
전 4A 40란이다. 회담은 시작된 지 꼰달이 지났을 뿐이다.
   "적의 선제 공격에 얼마나 피해가 나느냐가 전쟁의 승패를 갈라놓을 것 같군."
   "그렇습니다, 사령관 각하."
   가토가 머리를 끄덕였다. 이케다와는 달리 마른 몸매에 주름살이
깊은 얼굴이었다. 한일 양군의 작전 회의 때에 나서는 것은 언제나
이궤다 소장이었고 가로는 말이 없는 편이었다.
   가토가 다시 입을 열었다.
   "전방의 진지, 기갑 부대, 그리고 비행장과 관제탑, 포대와 미사일
부대가 집중적인 공격을 일차로 받을 겁니다. "
   "파괴될 확률은 55퍼센트다. "
   이것은 강한기가 속으로 중얼거린 말이다. 수십 번 반복된 훈련과
연습에서 암기된 확률이었고 요즘의 작전 회의에서도 수없이 뱉는 말이다.
   이쪽이 아리 위장하고 이동해도,그리고 제아무리 빨리 반격을
해도 먼저 기습한 쪽에게 치명상을 입는다.
   확률로 계산하면 처음 30분 동안 저쪽에게 입힐 손실은 25퍼센트 
였다. 항공기, 전차, 포대, 미사일 기지 등이 이쪽은 55퍼센트가 케멸되고 저쪽은 25퍼센트인 것이다.

그것이 저쪽의 첫 포탄이 날아오는 것을 감지하고 즉각 대응했을 때의 시간차 75초 사이에 발생되는

피해 차이였다.
   강동진이 지도의 한 점을 지휘봉으로 짚었다.
   "이런 미사일 기지 한 곳이 우리에게 주는 피해는 2개 사단의 전력이야."
   강한기는 그의 지휘봉이 누르고 있는 지점을 바라보았다. 동부 전
선이었다. 산맥 사이로 붉은 삼각형이 그려진 부분이 인민군의 미사
일 기지였는데 그곳은 심긱헝 두 개가 모여 있었다. 스커트 미사일과
노동 ,그리고 프로그 쪘과 껸을 수십 문씩 보유하고 있는 기지 열다.
   같은 시간 청와대의 지하 벙커 안.
   이영만 대통령은 바지에 스웨터 차림으로 임병섭 안기부 부장과
마주앉아 있었다. 대통령이 눈을 들어 임병섭을 바라보았다.

눈시울치 두텁fl 처져 있었다.
   "국민이 이번 회담에 기대를 갖고 있을까?"
   "기대라면, 각하, 전쟁을 피하게 되리라는."
   "그것밖에 무슨 기대가 있나?"
   그러자 임병섭이 잠깐 시선을 내렸다가 들었다
   "각하, 국민의 자존심을 세워 준 일입니다. 파리의 사건을 저는 그렇게 보고 있습리다. "
   "나도 피가 끓었어. 불타 오르는 그랑팔레 호텔을 보면서 말이야."
   "조 대사,그리고 안 장관,그리고 나서 김원국이가 우리 국민의 자존심을 세워 주었어. 그 말은 맞아."
   "예, 저도 그렇게."
   "인질을 잡고 3국 회담을 요청한 것은 다른 나라 사람들에겐 억지요,

성사될 수 없는 일로 보였겠지만 미국과 북한은 회담에 대표를 보냈어.

특히 북한은 군의 실력자인 최광을."
    대통령이 의자에 둥을 기대고 앉아 길게 숨을 내쉬었다.
   "그래, 국민들이 후련했을 거야. 그리고 나처럼 피가 끓었을 거야. "
   "각하, 최광은 김정일에게 실권을 빼앗기고 무력부에만 머물고 있
다가 이번에 주석이 되어 파리로 간 것입니다. 그는 실권자가 아닙니다. "
    임병섭이 말을 이었다.
   그는 새벽 3시에 대통령의 전화를 받고 심야의 거리를 달려 청와대에 들어왔다.

대통령은 한국 시간으로 새벽 4시에 시작되는 파리 회담에 신경을 쓰고 있었던 것이다.

오늘 하루 종일 국무 회의나 작전 회의 등을 주관하면서도 회담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꺼내지 않던
대통령이 회담 시간이 되자 은밀히 자신만을 부른 것이다.
   임병섭은 아까부터 가슴이 답답해져 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각하, 참고로 해주실 말씀이 있으시면 제가 파리로 연락을 하겠습니다만."
    임병섭은 오는 차 안에서 일본측의 통신 라인을 이용해서 박남호와 연락하도록 했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대통령이 잠자코 임병섭을 바라보았다.

벽시계의 초침 소리가 들려 올 뿐 한동안 지하 집무실 안에는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복도 앞쪽에는 부인 전영숙 여사가 있을 것이다.

대통령은 두 아들과 가족들을 청와대의 지하 거주처에 들여놓지 않았다.

전쟁이 일어나 적의 포탄이 떨어졌을 때 대통령의 가족이라고 해서 안전한

청와대의 지하에 숨어 있브련 안된다는 것이었다.
   "각하, 전군은, 전국민은 이제 일사분란한 임전 태세를 갖추고 있습니다.

저는 지금처럼 국민이 나라를 사랑하고, 조국을 지키려는 의지로 뭉쳐 있는 것을 본 적이 없습니다. "
   "각하, 군은 우리는 이긴다는 신념에 차 있습니다. 공무원은 솔선수범하여 몸을 아끼지 않고,

질서를 어지럽히는 국민은 찾아볼 수도 없습니다. "
   "각하, 우리는 이깁니다. 이대로 가면 북한은 스스로 붕괴될 것이 틀림없습니다 "
   "김원국에게 연락을 해요, 임 탁장."
    "이제 우리에게 요구 조건을 말하라고 말이야.미국을 통하지 말
고 깅원국 씨나 고 중장에게 말하라고 해. 최광이가 실세는 아니라지
만 김정일이에게 연락을 하면 될 거야."
    "=Elfl. "
   "들어줄 수 있는 것은 모두 득어주겠어. 국민을 희생시키지만 않는다면. 전쟁만 일어나지 않는다면."
   "각하, 그것은."
   "항복이 아니야. 놈들에게 마음을 보여 주는 거야, 마지막으로. 그
래. 이것은 자네와 나만 아는 사실로 하고."
   "받아들일 놈들이 아닙니다,각하.

우리가 양보하면 할수록 끝까지 밀어붙였던 잔인한 놈들입니다, 각하."
   임병섭의 말소리는 떨려 나왔다.
   파리 시간 2월 7일 밤 9시 30분.
   회담이 시작된 지 한 시간 반이 지나는 동안 세 번의 정회 시간이
있었으므로 실제로 이야기를 나눈 시간은 30달도 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 30달도 남북한의 격렬한 말다툼으로 소비되었는데 그 내용은 뻔했다.
   남한은 2월 10일의 침공 통보를 비겁한 술책이라고 비난했고 동족임을 포기한 김정일 일당의

행위는 역사에 남을 것이라 성토했다.
   북한은 남한의 군비 증강과 일본괴이 동맹을 극렬히 비난하면서
사대주의에 물든 반역자들의 행태라고 맞받아 소리쳤다.

2월 10일의 침공 통보는 남한과 미국의 압박에 어쩔 수 없이 강구한 자위 수단이 었다는 것이다.
   그들의 다툼은 회의실 밖의 복도에까지 울려 퍼졌는데 50년 분단 역사상 남북한의 대표가

이렇게 격렬하게 다투는 것은 처음이었다.
4,5년 전 판문점에서 북한의 대표 한 명이 서울의 불바다 운운하는
발언으로 한국이 떠들썩하였는데 그때의 대화는 양반이었다.
   물론 양쪽의 상대는 고성국과 김인채이다.

그들은 격렬하게 욕설을 뱉고 주먹으로 테이블을 두드렸으며 상대방의 수령과 대통령에게
 거침없는 쌍소리를 했다.
    그동안 최광과 김원국은 잠자코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거나 가끔씩
욕설을 뱉는 상대방의 얼굴을 스쳐 보면서 입을 다물고 있었고 로친
스턴과 더글러스는 이제 입맛을 다시기도 지친 듯 들끼리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서로 열을 받다 보니 한국말로 소리치고 받기 패문에 그들은 알아듣지도 못한 것이다.
    세 번째의 정회를 마치고 제각기 자리에 앉자 로젠스턴이 지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이제 그만 본론으로 들어갑시다. 우리는 남북한의 전쟁을 막을 방법을 찾기 위해서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그것은 모두 인정하지요?"
   그러자 모두 입을 열지 않았으므로 그는 서두르듯 말을 이었다.
   "이젠 기탄없이 말해 주시오,조건이나 방법을.우리는 시간이 없습니다. "
   최광이 헛기침을 하고는 상체를 세웠다가 머리를 돌려 김인채를 바라보았다.
   "동무가 말하시오."
   "예, 주석 동지."
   김인채가 테이블을 둘러보았다. 어느 틈에 빼냈는지 의 손에는 한 장의 종이가 들려 있었다.
   "이것은 우리 공화국의 당과수령 동지가 결정하신 조건이오.

남조선이 이 조건을 받아들이고 사흘 내에 이대로 시행했을 때

우리 공화국은 남조선의 평화유지 의지를 인정하게 될 것이오."
   영어였으므로 로젠스턴이 머리를 끄덕였다.
   "말하시오, 미스터 김."
    김인채가 커다랗게 헛기침을 했다.
   "첫째,휴전선에 배치된 남조선 군을 즉각후방 백 킬로미터 지점으로 철수시킬 것.

단, 미군 기지는 여기에 포함되지 않습니다. "
   "지랄하고 있는데 ,"
   고성국의 한국말이 컸으므로 로젠스턴이 머리를 들었다.

김인채는 눈을 부릅뜨고는 이를 악물고 있었지만 얼른 말을 뱉지는 않는다.
   로젠스턴이 물었다.
   "미스터 고, 당신 뭐라고 했소?"
   "계속하시오."
   입을 연 것은 김원국이다. 로젠스턴과 더글러스가 눈을 점벅이며
그를 바라보았고 조는 듯 눈을 내리깔고 있던 최광도 힐끗 김원국을 바라보았다.
   숨을 들여마신 김인채가 서류를 다시 펼쳤다.
   "둘째, 일본군은 이틀 내로 철수할 것. 그리고 일본에 대한 우리
공화국의 조처는 추후 조일 회담에서 토의될 것이오."
   "셋째, 남조선 정부는 미국과 함께 우리 공화국을 50년 동안 위협
하여 경제 발전을 막았고 공화국을 전쟁의 공포 속에 몰아넣었소. 보
안법으로 애국지사를 처형, 투옥했고 북남 왕래의 길을 막았소. 이에
대한 공화국의 막대한 물적,정신적 손해에 대한 보상이 있어야 되오."
   "저걸 듣고 있어야만 합니까?"

 

(3)

고성국이 김원국·을 바라보며 물었다. 기가 찬 듯 얼굴에는 웃음기가 떠올라 있었다.
   김인채가 말을 이었다.
   "보상금 150억 달러를 일차로 지급해야 하는데 그 기간은 사흘이오.

그리고 매년 20억 달러씩 10년 간을 공화국에 보상금 명목으로 지급해야 됩니다. "
   김원국이 마침내 입을 벌리고 웃었다. 하회탈처럼 활짝 웃는 웃음이다.

그러자 김인채가 차가운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마지막으로 인질 문제인데, 회담이 끝남과 동시에 북미의 인질은
즉시 풀어 주어야 하고 인질범들은 공화국으로 수송되어야 합니다.
한국 정부는 그 일에 책임을 져야 되는 거요."
    김원국이 잠자코 머리를 끄덕이자 더글러스가 헛기침을 했다.
    "물론 그 문제는 국제법에 따라 처리되어야 합니다.

우리 미국도 강력히 그것을 원하고 있소."
   그 시간, 회양의 인민군 제 1군단 사령부의 지하 벙커 안.
   참모들과 작전 점검을 마친 최상욱 상장이 마악 작전 상황실을 나가는데 이을설 차수가 들어섰다
   "사령관 동지, 주무시지 않으셨습니까?"
   조금 당황한 최상욱이 비껴 서며 묻자 이을설이 머리를 11덕였다.
   "작전 점검 했나?"
   "예, 사령관 동지, 작전에 이상은 없습니다. "
   그들의 좌우로 회의를 마친 참모들이 스쳐 지나갔다.
   "평양에서 연락 온 건 없나?"
.?70 밤의 대통령 제3부 -ll
   "없습니다, 사령관 동지."
   이을설이 머리를 돌려 철근 콘크리트로 지은 상황실을 둘러보았다.

통신 장치 부근에 당직 장교 서너 명이 앉아 있을 뿐 이제 넓은 상황실에 서 있는 건 그들 둘뿐이다.
   "2f닦대의 스커트 발사대는 고쳐졌나?"
   "예, 사령관 동지. 어젯밤에 수리가 되었습니다. "
   벽으로 다가간 이을설이 작전 지도를 올려다보았다.

최상욱이 잠자코 그의 옆애 선다.
   제24부대는 옆에 위치한 제27부대와 함께 미사일 부대였다.

해발 6백 미터의 산악 지대에 암반을 뚫고 진지를 만들어 놓아서

적의 포격과 공습에도 견딜 수 있도록 건설되었는데 공격 개시와 함께 두 미사일 부대는

인근의 한국군 기지는 물론 서울 남쪽의 오산 비행장 까지 초토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계획은 차질없이 진행되고 있었다.
   이을설이 지도에서 눈을 떼었다.
   "파리에서 연락 온 것은 없나?"
    "없습니다, 사령관 동지 ."
    머리를 끄덕인 이을설은 몸을 돌렸다.
    사령관으로 부임한 지 며칠밖에 되지 않았지만 작전 회의에 참석 한 것은 부임한 날

참모들과 인사를 겸한 때 한 번뿐이다.

최상욱은 그를 철저히 따돌리고 있었는데 분위기를 알고 있는 참모들도

사령관 보기를 소가 닭 보듯이 하고 있었다.
    이을설은 최상욱의 경례를 받으며 상황실을 나섰다. 파리에는 최광이 있었고

그가 어떻게 하고 있는지 최상욱은 알고 있을 것이었다.
밤 10시 10찰의 파리.한국시간으로는 다음날인 2월 8일 새벽 6시 10찬이다.
    전화기를 귀에 댄 김원국이 복도 끝의 벽에 기대어 섰고 그의 앞
을 박남호가 가로막듯 서 있다.
    회의실의 문 앞에는 매클레인과 우정만이 못마땅한 얼굴로 서서
1들을 바라보았다. 통신을 하려면 회담장 안의 장비를 사용할 것이
지 밖에 나와서 무슨 짓을 하느냐는 표정이다.
   "말씀하시오."
    김원국이 말하자 임병섭은잠시 말을 멈추었다 일본 위성에서 중
계되는 회선이라 전화의 상태는 바로 옆 동네에서 말하는 것 같다.
   이윽고 임병섭의 말소리가 들려 왔다.
   "대통령 각하께서는 미국측이 조정해 주기를 희망하고 계십니다.
한국군이 백 킬로를 물러가면 북한측도 물러가야 할 것 아니냐고 하
십니다 그리고 사흘의 기간은 너무 짧아요.김 선생,보상금 명목이
아니라 경제 보조금으로 금액을 조정해 볼 수도 있지 않느냐고 말씀
하십니다. "
"일본군은 철수할 수 있어요."
"김 선생, 듣고 있습니까?"
"듣고 있어요."
"난 지금 대통령 각하와 함께 있습니다 "
새벽 6시 15분의 도쿄
272 밤의 대통령 제3부 -H
    정보국의 통신실에 앉아 있던 혼다 다카오 정보국 국장은 머리를
11덕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구로다, 그 녹음 테이프를 이리 내라."
    "예, 국장님 ."
    구로다라는 사내가 서둘러 기계의 스위치를 누르더니 곧 성냥갑만
한 녹음 테이프를 빼내었다. 통신실예 둘러앉아 있던 사내들이 의자
를 덜컹이며 자지에서 일어서고 있었는데 모두들 표정이 어두워 보
였다.
   "국장님, 한국이 항복을 할 작정이군요."
   마침내 옆에 서 있던 요시하라가 입을 열었다. 정보국의 서열 3위
인 제2차장이다.
   "이 대통령은 뒷심이 없습니다. 그 사람, 역사에 남을 사람입니다"
   "국민을 희생시키지 않으려는 거야. 단순하게 생각하지 마라."
   그들은 통신실을 나와 곧장 현관에 대기시켜 놓은 승용차에 올라탔다.
   하시모토 수상은 아직 등청하지 않았을 터이니 곧장 수상 관저로
갈 작정인 것이다. 차가 어둑한 새벽의 거리를 질주하기 시작하자

요시하라가 입을 열었다.
   "미국은 조정 능력이 없습니다. 북한은 숨돌릴 사이 없이 밀어붙
일 것이고 한국은 그들의 요구 조건을 토두 들어주어야 할 겁니다. "
   "아니, 무혈로 남한을 점령할 수도 있습니다. 요구 조건을 들어준
다면 그건 항복의 표시나 마찬가지니까요."
   "어쨌든 남북한의 통일은 되겠지. 몇 사람의 처형이 있을 것이고."
   "그래, 처음에 북한이 제시했던 대로 미국 행정부와 군대, 인권 단체가

나서서 융화와 중화 작용을 해주면 생각보다 심하지도 않을 것01다. "
   "이 대통령이 갑자기 마음이 변한 이유가 뭘까요? 그리고 보수 우
익이 그의 결정을 받아들일 까요? 특히 군이 말입니다. "
   혼다가 입맛을 다시며 머리를 저었다.
   "혼란이 온다. 그러면 분열이 오고. 그 다음은 말할 필요도 없지."
   ‥‥‥‥‥
   "이 대통령은 겉으로는 강경책을 썼지만 그것이 과연 최선인가 자
신할 수 없었던 거야.전쟁으로 수백만을 희생시키느니 자신이 모든
책임을 지려고 했는지도 모른다. "
   "어쨌든 그는 김정일이보다는 국민을 사랑하는 지도자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 그를 평가할 수는 없어. 역사가 평가해 줄 것이다. 언젠
가는 말이야."
   "항복이 아니야, 임 부장 "
   대통령의 목소리가 방안을 울렸다.

그는 충혈된 눈을 부릅떠 임병설을 노려보았다.
   "끝까지 최선을 다해야만 돼 국민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라면
나는 모든 것을 버릴 각오가 되어 있어. 그런 자세로 말한 저야."
274 밤의 대통령 제8부 -B
    "받아들이는 상대방에 문제가 있습니다,각하.그리고 이 시점에
서 각하의 그런 말씀은 국민의 사기를 떨어뜨리고 분열시키게 됩니다. 각하 "
    "그래서 내가 임 부장에게만 말한 거야, 파리에 있는 두 사람하고.
군은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어야 돼. 침공에 대비해야 된단 말이야."
    "각하, 놈들은 미국의 조정도 따르지 않을 겁니다.

기세를 잡았다고 생각해서 밀어붙일 겁니다. "
    "끝까지 전쟁을 막아야 돼. 놈들이 그런 조건을 내놓았다는 것에 대해서

나는 일말의 가능성을 보았는데 임 부장은 비관적으로만 생각하는군."
   "각하, 우리가 받아들일 한계는 어디 까지라고 생각하십니까?"
   갑자기 목이 메어 왔으므로 임병섭이 배에 힘을 주고는 물었다.
과의 목소리가 갈라져 있었다.
   북한이 제시한 조건을 국무 회의나 비상 회의에 내놓는다면 대다
수는 강경 분위기에 핍쓸려 격렬히 반대를 하게 될 것이다. 소수의
온건론자는 그들에게 눌려 입도 열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임병섭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대통령이 북한의 조건을 가지고 타협하려는 의도를 보일
때에 온건론자가 힘을 얻게 되고 국론은 분열된다. 침공 3일 전에 국
가는 혼란 상태에 빠지고 모처럼 단결되었던 군관민의 사기가 일시
에 떨어지게 될 것이다.
   임병섭은 이 비밀을 대통령과 둘이서 안고 있다는 것에 갑자기 비참해졌다.

그러나 대통령에 대한 원망은 일어나지 않았다.
   김인채는 턱을 올린 자세로 김원국과 고성국을 바라보았다.

어깨를 펴고 앉아 있는 그의 몸은 활력이 넘쳐 보였다.
   "미국의 성의를 받아들여 조금 전에 우리의 경애하는 수령 동지께 연락을 올렸소.

셋째 조건부터 얘기하면, 그것은 변경될 수가 없습니
다. 사흘 안에 150억 달러를 배상하고 10년 간매년 20억 달러 배상금을 지불해야만 해요."
   그의 목소리가 방을 울렸다
   "그리고 둘째 조건은 남조선측에서 받아들이겠다니 허용하기로 하고 첫째 조건을 이야기합시다. "
   그러자 더글러스가 입을 열었다.
   "양쪽 군을 시간을 정해서 뒤쪽으로 물리기로 하고, 그것을 미국이 확인해 주면 되지 않을까요?

기지를 옮기는것이 하루 이틀에 되는 일이 아니오."
   "양쪽 군이 아니오, 장군 "
    머리를 저으며 김인채가 말했다.
   "남조선 군만 물러나는 겁니다. 우리는 물러날 이유가 없소. 왜냐
하면 미군 기지는 그대로 두기로 했기 때문이오."
    "그렇다면 당신들은 물러나지 못한다는 이야기군."
    김원국의 말에 김인채가 머리를 11덕였다.
    "그렇소, 김 선생."
    "당신네 수령의 지시요?"
    "수령님의 직접 지시야."
    그러자 고성국이 김원국을 돌아보았다.
    "김 선생님, 잠간만 저하고."
276 밤의 대통령 제3부 -ll
   자리에서 일어선 그들은 회담장의 구석자리로 가서 마주섰다 고
성국이 손바닥으로 이마의 땀을 껏었다.
   "이건 항복이나 다름없습니다 "
   "하는 데까지는 해봅시다. 놈들도 전쟁을 피 하려는지도 모르지 않딘틴"
   "놈들이 물러나지 않는다면 우리는 무방비 상태로 됩니다. 놈들은
무혈 점령 하려는 겁니다. "
   "그건 나도 알고 있어요, 고 장군."
   "미국의 조정 역할을 기대할 수가 없다는 걸 대통령 각하께서 아
셔야 할텐데요."
   고성국이 어깨를 늘어뜨리며 길게 숨을 내쉬었다.
   서울에서 온 전화를 김원국이 받고 나서부터 회담은 겉으로는 회
담답게 진행이 되었지만 고성국은 기가 꺾여 있었다. 군인인 그로서
는 당연한 일이었다. 상대방인 김인채가 기세를 올릴수록 그는 이를
갈면서 땅밑으로 꺼져 들어가고 있었다.
    그들이 다시 자리에 돌아와 앉자 김인채가 다그치듯이 말했다.
   "당신들의 대통령에게 다시 연락을 해보는 것이 어떻소? 남조선의
곽방군 대신으로 미군이 남아 있도록 수령 님께서 배려해 주신 거요.
우리는 그것에 대해서 당신들이 이의를 제기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
습니다. "
   김원국이 머리를 들어 김인채를 바라보다가 시선을 최광에게로 옮겼다.
   그는 두터운 눈시울을 움직여 김원국의 시선을 받았는데 눈을 한
번 껌벅이면서 시선을 다른 곳으로 옮겨 갔다. 표정도 없고 말도 드물다. 
 마치 늙은 거북을 보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서울, 2월 8일 오전 6시 30분 파리 시간으로는 2월 7일 밤 10시 301분이다.
    계엄 사령부의 정문을 들어선 승용차는 헌병이 탄 장값차의 인도
를 받아 벙커의 입구에서 멈추어 섰다.
    아직 어둠이 걷히지 않은 벙커의 입구에는 무장한 병사 두 명이
돌덩이처럼 굳어져 있다가 차에서 내리는 강한기 소장을 향해 경례
를 올려붙였다.
    강한기는 서둘러 벙커로 들어섰다. 두 시간 전에 이곳에서 사령관
과 회의를 마치고는 의정부의 미사일 기지로 가는 도중 되돌아온 것
이다. 강한기가 상황실의 철제 문을 밀치고 들어서자 뒷짐을 지고 서
서 지도를 내려다보고 있던 이케다 소장이 머리를 들었다
   "무슨 일이오?"
   밖에서 묻혀 온 몸의 찬기운을 뿜으며 다가간 강한기가 물었다.
이케다는 시급한 일이라고만 했지 그것의 내용을 말해 주지는 않았
던 것이다.
   그의 앞에 멈춰 선 강한기가 상황실을 둘러보았다. 상황실에는 당
직 장교들만 있을 뿐 고급 장성은 이케다 한 명뿐이다.
   "파리 회담에 문제가 있소."
   이케다가 그를 쏘아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한국의 대통령 각하께선 북한의 요구 조건을 받아들이라고 하고 있소. "
   "북한의 요구 조건이라니?"
278 밤의 대통령 제3부 -ll
    "그것은 항복이나 마찬가지인 조건이오."
    "어떤 조건이란 말이오?"
    이케다가 낮은 목소리로 빠르게 설명해 주자 강한기가 숨을 크게
 들여마셨다가는 한동안 뱉지 않았다.
    "당신은 그것을 어떻게 ‥‥‥‥
    겨우 숨을 뱉으며 그가 물었다.
    "우리 위성을 사용한 통신이오."
    "각하와 안기부장 둘이서 추진하고 있는 겁니까?"
    "지금으로서는 그렇소."
    "파리에서는 뭐라고 합니까? 우리 참모장은?"
    "각하의 명령이오. 북한측 조건을 절충하고 있습니다. "
    "절충이라니?"
    마침내 강한기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우리더러 백 킬로 물러나고 보상금을 내라고?그것을 50킬로로
절충하고 150억 달러는 50억 달러로 줄이는 절충을 하라고?"
    "아직 그런 이야기도 나오지 않았소, 강 장군. 북한은 절충하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
    머리칼이 곤두선 듯한 모습으로 강한기가 이케다를 바라보았다.
   "우리 각하는 지금 실수를 하시는 것 같은데, 이케다 소장."
   "한국에서 이 정보를 전해 줄 사랄른 강 소장 당신밖에 없습니다. "
   "물론 일본의 고위충은 이 사실을 알고 있겠지요?"
   "아마도.그리고 당신네 안기부장도 이 정보가 우리 고위층에게
전달되리라는 것도 예상하고 있을 겁니다. "

 

(4)


"본래 일본의 위성을 이용해서 통신하기로 되어 있었으니까요."
   "그는 이 정보가 우리를 통해 당신에게 전달되리라는 것도 예상하
고 있을 사람입니다. "
   강한기가 머리를 돌려 주위를 둘러보았다.

고급 장교 서너 명이 들어섰다가 그들을 보더니 한쪽으로 몰려갔다.
   이윽고 그가 이케다를 바라보았다.
   "사령관은?"
   "아직 모르고 계시오. 우리 가토 중장은 알고 계시지만."
"보고를 하든 안하든 그것은 당신 소관이오, 강 소장."
   다케다 요시하루 소장이 산기슭에 급조된 벙커에 들어서자 모여
서 있던 단위 대장들이 일제히 부동 자세를 취했다. 벙커는 시멘트가
매끈하게 다듬어지지는 않았으나 철근을 실하게 넣어서 단단하기는 했다.
   다케다 요시하루는 작달막한 체격에 어깨가 넓고 팔이 길어서 일
본 전국시대의 무장과 같은 인상이었는데 실제로 그는 다케다 신겐의

후손이라는 설도 있는 인물이었다.
   "여단장 각하, 전원 집합했습니다. "
   참모장인 곤도 란마루 대좌가 기운차게 보고를 하자 그는 머리를
끄덕이며 주위에 둘러선 장교들을 바라보았다
   일본 육군의 제78 기갑 여단의 작전 회의는 매일 아침 7시에 시작
250 밤의 대통령 제3부 -ll
되었는데 내일부터는 열리지 않을 것이었다. 이틀 후로 닥쳐 온 북한
의 침공에 대비하여 내일부터는 전투 상황으로 변경시켜서 작전 지
시와 보고는 무선으로 대체하기로 한 것이다.
   그의 시선이 왼쪽의 중간 부분에 서 있는 장교에게 머물렀고 시선
을 받은 장교가 턱을 내밀고 가슴을 폈다. 주변의 장교들과는 다른
군복이었고 가슴에는 수류탄 두 개가 매달려 있다. 한국군 보병 지원
대대장인 오진갑 중령이었다.
   "좋아, 시작하지 , "
   다케다가 짧게 말하자 곤도가 벽에 걸린 지도 앞으로 다가갔다.
장교들이 지도 양쪽에 벌려 선 다케다와 곤도의 주위를 둘러쌌다.
   제78 기갑 여단은 최신형 74식 MBT(Main Battle Tank) 180cH
를 주력 전차로 하고 지원 부대로는 대대급으로 기갑 보병 대대, 기
갑 포병 대대, 보병 대대가 있었고 중대 급으로 미사일 중대, 기갑 정
찰 중대, 대전차 중대, 고사포 중대, 병참과 공병, 그리고 대전차 미
사일을 장착한 헬기 14대로 구성된 항공 중대가 있다.
   오진갑은 78여단의 전위 보병 대대 소속이었는데 그의 표현을 빌
면 공격시에는 일본군 탱크의 길을 닦아 주고 후퇴시에는 몸으로 막
아 주는 역할이다.
   곤도는 회의에 참석한 한국군 장교들을 위하여 영어로 브리핑을
해주고 있었다. 너무 들어서 외우고들 있는 작전이었지만 말하는 자
듣는 자 모두 긴장해 있다.
   오진갑의 옆에 서 있던 조명훈이 힐끗 이쪽을 바라보았다.

그의 영어가 짧아서 알아듣지 못한 단어가 있는 눈치였지만

오진갑은 잡자코서 있었다.

이쪽의 중대장회의에서 한국말로 질리도록 되풀이 한 작전이다.
   곤도가 말을 이었다.
   "따라서 A중대의 전방에 있는 인민군 1개 중대는 분계선 감시용
병력에 불과합니다. 북한은 제24, 27 미사일 부대의 포격으로 동부
전선의 침공을 시작할 것이고 그와 동시에 이 지점에 있는 제 15전차
사단이 A중대의 전방으로 우회해 옵니다. "
   그때에는 A중대의 병력 반수 이상이 피해를 입고 있을 것이다. 따
라서 전투력은 50퍼센트 이상이 감퇴된다.
   오진갑은 곤도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본 채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조명훈은 남은 병력으로 78여단이 진군해 올 때까지 버티어야 한
다. 물론 그 뒤쪽의 오진갑이 지휘하는 한국군 B, C중대도 마찬가
지였지만 조명훈이 선봉이었다. 제일 먼저 부딪치는 부대인 것이다.
   파리, 2월 7일 밤 11시 30달.한국시간으로는 8일 오전 7시 30달 이다.
   크리용 호텔 4층 41교1실의 소파에 조웅남이 두 다리를 길게 뻗고
앉아 있었다. 손에는 꼬냑병이 쥐어져 있다.
   "지기미, 웬놈의 회의가 이렇게 길다냐?"
   조웅남이 이맛살을 정그리며 앞쪽에 앉아 있는 고트와 홍진무를
바라보았다. 고트는 알아듣지 못했으므로 시선을 돌렸으나 홍진무가
헛기침을 했다. 그러나 입맛을 다시고는 입을 다문다.
   "어이, 거1."
   조웅남이 흥진무에게로 턱을 들며 불렀다.
   "거그는 얼매쯤 낼 수 있을 거 같혀?"
282 밤의 대통령 제3부 -fl
   "얼마쯤이 라니?"
   흥진무가 깊숙한 눈으로 조웅남을 바라보았다. 금테 안경은 그랑
팔레에서 벗겨졌으므로 지금은 맨눈이다.
   "그게 무슨 말이야?"
   "몸값 말여."
   "몸값?"
   그러자 방문 옆에 기대 서 있던 고동규가 힐끗 그들을 바라보았
다. 그는 아까부터 자주 이쪽을 철끗거렸는데 불안한 모양이었다.
   "그려, 몸값. 느그덜은 돈이 없을틴디, 느그 두목이 돈 낼라고 허까?"
   "건방진 ‥‥‥‥
   홍진무가 잇사이로 으르렁거리듯 말했다. 아까부터 조웅남이 툭툭
건드리는 말에 대꾸를 하지 않았지만 이제는 참을 수 없는 것이다.
   "말을 삼가라."
   "야가 인자 정신이 든 모양인디. 눈깔 똑바로 뜬 걸 봉게로 말여."
   조웅남이 술병을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야, 이 씨발놈아, 이 드러운 공산당 놈아. 아래충에서 회담헝게로
금방이라도 나갈 것 같으냐?"
   "형님 ."
   문 옆에서 고동규가 머리만 이쪽으로 돌리고 그를 불렀다. 그러나
다음 말을 잇지는 않는다.
   "좇같은 소리 말라고 혀. 너는 내 맘여. 확 쥑여 뻔진 담에 송장만
떤져 줄 수도 있단 말여, 이 씨발놈아."
   "허."
                                         D-3일의 3국회담 283
    기가 막히다는 듯이 홍진무가 상체를 뒤쪽으로 눕혔다.
    "이런 몰상식한 자가 있다니, 도무지‥‥‥‥
   "허어, 나보고 몰상식허다네. 야, 동규야, 야가 나보고 을상식허단다. "
   조웅남이 입을 쩍 벌리면서 손을 들어 홍진무를 가리키며 소리쳤
으나 고동규는 목을 움츠리고는 바깥을 바라보았다. 꼬냑 병을 움켜
쥔 조웅남이 커다랗게 세 모금을 마시자 병이 비워졌다.
   "나는 인지까지 느그덜 욕헌 적이 없고, 느그털한티 신세진 일도 을다. "
   술병을 방바닥으로 내던진 조웅남이 조리있게 말했다.

병이 굴러 고트의 발 앞에서 멈추자 고트가 발끝을 움직여 한쪽으로 치워 놓았다.

불안한 표정이다.
조웅남이 말을 이었다.
"먹고 살기 바뻐서 삼팔선 너머에 너처럼 좇같이 생긴 놈이 있다
 것도 몰랐단 말이여, 이 씨발놈아."
말이 격해지면서 가래가 목에 걸렸으므로 조웅남은 헛기침으로 목을 진정시켰다.
   "그런디 이게 웬일이여? 졸지에 쳐 들어온다니, 응?내 가게들은 문을 닫고,

응? 대홍이 같은 놈은‥‥‥‥
   그러다가 조웅남이 말을 멈추고는 커다랗게 숨을 들여 마셨다.

그러자 얼굴이 잔뜩 부풀려졌다.
   "이 씨부랄 놈들, 이놈들, 내가 대흥이 원수를 갚어야지."
   그가 주먹을 들어 탁자의 귀퉁이를 치자 반대쪽 귀퉁이에 놓여 있
던 재떨이가 튀어올랐다가 방바닥으로 떨어졌다.
284 밤의 대통령 제3부 -ll
   "응? 맨맛허니 흥어좇이라고, 씨발놈들아, 우리가 느그델 사는디
훼방놓은 거 있어?쳐들어 갈라은 느그털 북쪽으로 옛날 고구려 땅
이나 쳐들어가서 빼앗지 왜 우리헌티 지랄이여, 이 개새끼들아?"
   "대단하군, 이 자는.그만두자, 너하고는."
   홍진무가 입술 끝을 비틀면서 말하자 조웅남이 눈을 번쩍 치켜했다.

그러자 문 앞에 섰던 고동규가 몸을 완전히 이쪽으로 돌리고 그들을 바라보았다.
   한동안 그 표정으로 눈을 점벅이며 홍진무를 바라보던 조웅남이 턱을 내렸다.
   "봐라, 동규야."
   손을 들어 흥진무를 가리키면서 조웅남이 말했다.
   "이런 놈들한티는 내가 임자여. 무신 말인지 알겄냐?"
   "예, 형님, 알 것 같습니다 "
   "잡어서 주리를 틀어야 되는 거여. 무식헌 놈들한티는 매가 약이니라."
   조웅남이 시계를 내려다보았다.
   "앗따, 12시가 다 되았는디 아직도 안 끝났고만. 허긴 그려 .

즈그덜이 무신 돈이 있겄냐? 입으로나 때울라고 허겄지."
"내일 아침에 다시 하는 게 어떻소? 밤이 늦었습니다. "
로젠스턴이 시계를 내려다보며 말하자 최광이 머리를 끄덕였다.
"남조선도 생각할 시간을 가져야 할테니까 그게 낫겠소."
"우리도 이의가 없습니다. "
김원국이 그들을 향해 말했다.
                                         D-3일의 3국회담 285
   "내일 아침 9시에 이곳에서 다시 만나기로 합시다. "
   "그런데 오늘 회담을 마치기 전에 우리가 제안할 것이 있는데 ."
   로젠스턴이 테이블 위에 두 팔을 얹고는 김원국을 향해 상체를 굽혔다.
   "인질을 풀어 주시오.이제 인질을 잡은 당신의 목적도 달성되었으니

더이상 데리고 있을 의미가 없을 것 같은데."
   고성국이 힐끗 김원국을 바라보고는 헛기침을 했다. 최광과 김인채의 시선이

그에게로 모아졌다.
   이윽고 김원국이 얼굴에 웃음을 띠었다.
   "북한측 조건대로라면 회담이 끝나면 자연히 인질은 풀려나고 난
평양으로 끌려 가게 되어 있는데."
   "그건 알고 있소,미스터 김.하지만 만일 회담이 결렬되었을 때,
그Tfl도."
   로젠스턴이 다그치듯 말했다.
   "인질은 풀어 주어야 합니다. 그것을 약속해 주시오."
   "풀어 주겠소, 회담이 결렬되더라도."
   김원국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인질은 지금이라도 풀어 주고 싶지만 그렇게 되었을 때는 당장
저 문을 차고 프랑스 경찰과 미국과 북한의 요원들이 들이닥칠테니까. "
   "잘 아시는군."
   김인채가 얼굴에 웃음을 띠었다.
   "내일 당신이 그들을 풀어 준다니까 믿어 보겠지만 어쨌든 당신은
어제 일에 대한 책임을 져야 될 거요."
286 밤의 대통령 제3부 -ll
   로젠스턴과 더글러스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럼 내일 아침에 다시 만납시다. "
   "잠간만."
   김원국이 그들을 바라보았다.
   "이 회담은 비밀 회담으로 되어 있습니다.

외부에서는 이것이 인질 석방에 대한 회담으로 알고 있어요."
   "물론이오, 미스터 김."
   로젠스턴이 얼굴에 웃음을 띠었다.
   "회담 내용이 비밀에 부쳐져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모양히군, 당신은."
   "그렇소. 약속을 지켜 주시오."
   "노력하겠소."
   "내용이 알려지면 인질의 생명을 보장할 수 없다는 걸 알아 두시오."
   "이런."
   로젠스턴이 입맛을 다셨다.
   "그렇게 되면 회담도 성사가 안될텐데. 그러면 당신 대통령도 실망할 것이고."
   그러자 더글러스가 나섰다.
   "염려 마시오, 미스터 김. 입을 닫겠소."
   그들이 방을 나가자 잠자코 앉아 있던 최광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테이블 위의 서류를 챙긴 김인채가 서둘러 그를 따라 나가자 방안에
는 두 사람만 남게 되었다.
   고성국이 가늘게 숨을 내쉬었다.
                                        D -3일의 3국 회담 281
   "이 회담 사실이 한국에 알려지면 큰일납니다. 군의 사기는 말할
것도 없고 정부에 대한 국민의 불신감이 폭발할지도 모릅니다. "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매듭을 지어야 합니다 시간을 끌수록

우리가 불리합니다. "
   "내일 만일 합의가 이루어진다면 나는 그 항복 문서에 사인을

하고 이 자리에서 죽겠습니다. "
   고성국이 얼굴에 씁쓸한 웃음을 띠었다.
   "상황이 이렇게 될 줄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놈들이 그런 제의를 하고 대통령 각하가 절충하라고 하실 줄은‥‥‥‥
   "대통령의 입장이 되면 우리와는 다른 생각을 하게 됩니다, 고 장군."
   "사령관께서는 알고 계실까요?"
   김원국이 머리를 저었다.
   "모르겠소."
   "대통령이 실수를 할 수도 있습니다. "
   "우리가 따질 일이 아니오."
   "적어도 충분한 검토를 거쳐야, 여러 사람들이 "
   "늦었어요."
   "놈들이 이틀 후에 쳐내려 온다는 보장도 없습니다.

공갈인지도 모릅니다. "
   "이제 내일이라도 쳐내려을 구실이 충분히 있어요."
   고성국이 어깨를 늘어뜨리며 테이블을 내려다보았다.
   "전쟁을 하면 우리가 이깁니다. "
288 밤의 대통령 제3부 -ll
"수백만 명이 희생될 거요. 그리고 경제는 몇십 년 퇴보할 것이
"어느 놈을 위한 경제 보전입니까?"
   "나는 죽어도 눈을 감지 못할 겁니다. 눈을 뜨고 죽을 거요."
   그러자 회담장 문이 열리더니 김인채가 들어섰다. 빠른 걸음으로
그들에게 다가온 김인채가 테이블에 두 손을 짚고는 그들을 내려다 보았다.
   "남조선이 먼저 군대를 물린다면 우리도 고려해 볼 수 있소.

이것은 내가 선의로 제안한 조건이니까 오늘 밤 검토해 보시오."
   고성국이 쓴웃음을 짓고 김인채를 바라보았다.

놈은 술수를 쓰고 있었는데 이쪽을 어린아이 취급을 한다.

그는 그런 제안을 할 만한 위치가 아니었다.

김정일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없는 것이다.
   김인채가 말을 이었다.
   "당신들은 먼저 우리에게 우리를 침략하지 않는다는 증거를 보여야 되오.

오늘 밤 안으로 그것을 결정해 주시오.

백 킬로를 먼저 후퇴할 것,

그것을 확인한 다음에 우리 공화국의 인민군도 움직일 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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