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충돌기 5
박 과장이 슬그러니 물러갔다.
병달이 곁으로 봉수와 진국이 다가들었다.
애란도 자신의 자리에 앉아 병달이를 바라보았다.
“일어랑 중국어는 언제 그렇게 배웠어?”
“학교 다닐 때요.”
“학벌도 좋고 외국어 실력도 좋은데 왜 우리 회사 같은 델 들어왔냐?”
진국이 병달이를 신기하다는 듯 바라봤다.
“제가 무슨 학벌이 좋습니까? 그리고 외국어야 요즘 두 개쯤은 기본입니다.
안 그러면 취직이 안되지 않습니까?”
병달은 오히려 궁금하다는 듯 두 사람을 올려다보았다.
“나는 영어도 제대로 못하는데.”
진국이 너스레를 떨 듯 말했다.
봉수는 그런 진국의 얼굴을 빤히 바라봤다.
“선배님들 때는 그래도 회사 들어가는 게 어렵지 않았지만 지금은 그야말로 바늘구멍입니다.
그리고 저는 속옷 회사가 좋습니다.”
병달이는 그렇게 말을 해놓고 키득거렸다.
“뭐가 웃겨?”
“과장님요.”
“과장이 뭐?”
“실은 어제 일이 생각나서.”
“그럼 어제 일 다 기억난단 말야?”
“술 취하긴 했어도 필름이 끊어진 건 아니거든요.”
“너 진짜 물건은 물건이다.”
진국이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웃었다.
봉수와 애란도 덩달아 웃었다.
그러다 그 웃음이 딱 멈춰지고 말았다.
사장이 사무실에 나타난 것이다.
비서도 없이 혼자였다.
“새로운 업무에 적응할만합니까?”
사장이 네 사람을 둘러보았다.
“네. 아직 익숙하진 않지만….
사실 너무 갑작스러운 일이 돼 놔서 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
애란이 대표로 나서서 대답했다.
“권병달?”
“네, 제가 권병달입니다.”
박 과장 앞에선 능글맞던 병달이 바짝 긴장한 채 벌떡 일어났다.
“앉으세요. 일은 재미 있습니까?”
“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재미 있을 거 같습니다.”
“그래야죠. 그리고 난 개인적으로 여러분들에 대한 기대가 큽니다.”
사장이 속주머니에서 여러 장의 봉투를 꺼냈다.
“오사카 일을 공개적으로 격려해주어야 하는데 그러질 못했군요.
오사카에서 같이 고생했던 여자 분들도 계시지요.”
봉수와 진국이 서로 바라보았다.
그런 사실까지 사장이 알고 있으리라곤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건 제가 드리는 특별 상여금입니다.
그리고 이건 여러분들 회식빕니다.”
사장은 일일이 봉투를 전하고도 세 장의 봉투를 더 들고 있었다.
“그리고 이건 그때 수고해 주셨던 여자 분들에게 전해 주십시오.
늦어서 미안하군요.”
“저희들은 의당 해야할 일을 했을 뿐인데요.”
“요즘 누가 그렇게 자발적으로 회사를 위해 일하겠습니까.”
사장은 나머지 봉투를 애란에게 건네고 돌아섰다.
“그리고 말입니다.”
사장은 사무실을 나서려다가 멈추었다.
“나는 누가 뭐래도 해외개발2팀을 지지한다는 걸 명심 하십시오.”
사장은 그 말을 남기고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봉수는 사장의 갑작스러운 방문도 이상했고 보너스를 개인적으로 전한 일도 뭔가 석연치 않았다.
게다가 마지막 남긴 말의 의미도 알 수 없었다.
진국은 봉투 안을 들여다보느라 봉수의 눈치를 살피지 못했다.
“진국아, 좀 이상한 기분이 들지 않냐?”
“이상한 기분이 들게 뭐 있냐.”
병달이 멀뚱멀뚱 세 사람을 둘러보았다.
애란은 봉투 속을 확인하곤 자리에 조용히 앉았다.
“다르게 생각할 거 없어. 원래 우린 정리해고 대상이었을 거야.”
진국은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애란도 그러려니 생각했던 모양이었다.
봉수도 처음엔 놀랬다가 차츰 그 말뜻이 이해가 되는 듯했다.
“선배님들 그게 무슨 소립니까? 제가 볼 때는 선배님들 실적이 가장 좋은데요.”
“그거야 병달이 생각이지.”
“그럼 저는 낙동강 오리알입니까?”
병달이 두 손을 들어 보이며 어깨를 들썩였다.
“처음부터 공문 내용에서 중요 항목을 누락시킨 건 고의적이었던 같아요.”
애란이 심각한 어투로 말했다.
“사실 우리 디자인팀이 포화 상태이긴 했거든요.”
애란의 말이 틀리지 않았다.
진국이나 병달이는 몰라도 봉수와 애란인 어디까지나 디자이너였다.
그런 사람들에게 해외개발에 주력하라는 건 창을 주고 땅을 파라는 꼴이었다.
“그래도 우리가 뭐 특별히 잘못한 게 어딨냐? 그리고 우리 입사한지 이제 겨우 2년찬데.”
봉수는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봉수는 우선 고향집으로 부치는 돈 걱정부터 들었다.
“요즘 뭐 신입이고 고참이고 가립니까?
자기 사람이 아니면 자르는 게 다반사죠.”
병달이 의외로 담담하게 말했다.
“그래도 그렇지요.
그럴 거면 신입사원이라도 배치를 하지 말던가 했어야죠.”
애란이 병달의 눈치를 보며 말했다.
“그래도 사장님이 우리 편 아닙니까?”
병달이 단순하게 말했다. 하지만 그 단순함이 가슴에 와 닿았다.
“사장에게 니 편 내 편이 어딨어?
사장이야 말로 직원들 감원하면 누구보다 좋아할 사람인데.”
“선배님 제 말은 그게 아니라 원래 감원될 사람들이 있었다는 거죠.
적어도 선배님들의 비중 정도를 차지하는 인물들 중에 말입니다.”
병달의 말이 그럴싸했다.
하지만 이 생각들은 어디까지나 가정이었고 상상력에 의한 발상이었다.
봉수는 괜히 지레짐작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진국이나 병달인 태평이었다. 해고를 당해도 그만 안 당해도 그만이라는 얼굴이었다.
해고를 걱정하는 건 애란과 봉수 둘 뿐인 듯했다.
“감원은 감원이고 선배님들 입 싹 씻는 거 아니죠?”
병달이 봉투의 돈을 꺼내 세고 있는 진국을 쳐다보며 말했다.
박 과장이 슬그러니 물러갔다.
병달이 곁으로 봉수와 진국이 다가들었다.
애란도 자신의 자리에 앉아 병달이를 바라보았다.
“일어랑 중국어는 언제 그렇게 배웠어?”
“학교 다닐 때요.”
“학벌도 좋고 외국어 실력도 좋은데 왜 우리 회사 같은 델 들어왔냐?”
진국이 병달이를 신기하다는 듯 바라봤다.
“제가 무슨 학벌이 좋습니까?
그리고 외국어야 요즘 두 개쯤은 기본입니다.
안 그러면 취직이 안되지 않습니까?”
병달은 오히려 궁금하다는 듯 두 사람을 올려다보았다.
“나는 영어도 제대로 못하는데.”
진국이 너스레를 떨 듯 말했다.
봉수는 그런 진국의 얼굴을 빤히 바라봤다.
“선배님들 때는 그래도 회사 들어가는 게 어렵지 않았지만 지금은 그야말로 바늘구멍입니다.
그리고 저는 속옷 회사가 좋습니다.”
병달이는 그렇게 말을 해놓고 키득거렸다.
“뭐가 웃겨?”
“과장님요.”
“과장이 뭐?”
“실은 어제 일이 생각나서.”
“그럼 어제 일 다 기억난단 말야?”
“술 취하긴 했어도 필름이 끊어진 건 아니거든요.”
“너 진짜 물건은 물건이다.”
진국이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웃었다. 봉수와 애란도 덩달아 웃었다.
그러다 그 웃음이 딱 멈춰지고 말았다. 사장이 사무실에 나타난 것이다.
비서도 없이 혼자였다.
“새로운 업무에 적응할만합니까?”
사장이 네 사람을 둘러보았다.
“네. 아직 익숙하진 않지만….
사실 너무 갑작스러운 일이 돼 놔서 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
애란이 대표로 나서서 대답했다.
“권병달?”
“네, 제가 권병달입니다.”
박 과장 앞에선 능글맞던 병달이 바짝 긴장한 채 벌떡 일어났다.
“앉으세요. 일은 재미 있습니까?”
“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재미 있을 거 같습니다.”
“그래야죠. 그리고 난 개인적으로 여러분들에 대한 기대가 큽니다.”
사장이 속주머니에서 여러 장의 봉투를 꺼냈다.
“오사카 일을 공개적으로 격려해주어야 하는데 그러질 못했군요.
오사카에서 같이 고생했던 여자 분들도 계시지요.”
봉수와 진국이 서로 바라보았다.
그런 사실까지 사장이 알고 있으리라곤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건 제가 드리는 특별 상여금입니다.
그리고 이건 여러분들 회식빕니다.”
사장은 일일이 봉투를 전하고도 세 장의 봉투를 더 들고 있었다.
“그리고 이건 그때 수고해 주셨던 여자 분들에게 전해 주십시오.
늦어서 미안하군요.”
“저희들은 의당 해야할 일을 했을 뿐인데요.”
“요즘 누가 그렇게 자발적으로 회사를 위해 일하겠습니까.”
사장은 나머지 봉투를 애란에게 건네고 돌아섰다.
“그리고 말입니다.”
사장은 사무실을 나서려다가 멈추었다.
“나는 누가 뭐래도 해외개발2팀을 지지한다는 걸 명심 하십시오.”
사장은 그 말을 남기고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봉수는 사장의 갑작스러운 방문도 이상했고 보너스를 개인적으로 전한 일도 뭔가 석연치 않았다.
게다가 마지막 남긴 말의 의미도 알 수 없었다.
진국은 봉투 안을 들여다보느라 봉수의 눈치를 살피지 못했다.
“진국아, 좀 이상한 기분이 들지 않냐?”
“이상한 기분이 들게 뭐 있냐.”
병달이 멀뚱멀뚱 세 사람을 둘러보았다. 애란은 봉투 속을 확인하곤 자리에 조용히 앉았다.
“다르게 생각할 거 없어. 원래 우린 정리해고 대상이었을 거야.”
진국은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애란도 그러려니 생각했던 모양이었다.
봉수도 처음엔 놀랬다가 차츰 그 말뜻이 이해가 되는 듯했다.
“선배님들 그게 무슨 소립니까? 제가 볼 때는 선배님들 실적이 가장 좋은데요.”
“그거야 병달이 생각이지.”
“그럼 저는 낙동강 오리알입니까?”
병달이 두 손을 들어 보이며 어깨를 들썩였다.
“처음부터 공문 내용에서 중요 항목을 누락시킨 건 고의적이었던 같아요.”
애란이 심각한 어투로 말했다.
“사실 우리 디자인팀이 포화 상태이긴 했거든요.”
애란의 말이 틀리지 않았다.
진국이나 병달이는 몰라도 봉수와 애란인 어디까지나 디자이너였다.
그런 사람들에게 해외개발에 주력하라는 건 창을 주고 땅을 파라는 꼴이었다.
“그래도 우리가 뭐 특별히 잘못한 게 어딨냐? 그리고 우리 입사한지 이제 겨우 2년찬데.”
봉수는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봉수는 우선 고향집으로 부치는 돈 걱정부터 들었다.
“요즘 뭐 신입이고 고참이고 가립니까? 자기 사람이 아니면 자르는 게 다반사죠.”
병달이 의외로 담담하게 말했다.
“그래도 그렇지요. 그럴 거면 신입사원이라도 배치를 하지 말던가 했어야죠.”
애란이 병달의 눈치를 보며 말했다.
“그래도 사장님이 우리 편 아닙니까?”
병달이 단순하게 말했다. 하지만 그 단순함이 가슴에 와 닿았다.
“사장에게 니 편 내 편이 어딨어? 사장이야 말로 직원들 감원하면 누구보다 좋아할 사람인데.”
“선배님 제 말은 그게 아니라 원래 감원될 사람들이 있었다는 거죠.
적어도 선배님들의 비중 정도를 차지하는 인물들 중에 말입니다.”
병달의 말이 그럴싸했다.
하지만 이 생각들은 어디까지나 가정이었고 상상력에 의한 발상이었다.
봉수는 괜히 지레짐작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진국이나 병달인 태평이었다.
해고를 당해도 그만 안 당해도 그만이라는 얼굴이었다.
해고를 걱정하는 건 애란과 봉수 둘 뿐인 듯했다.
“감원은 감원이고 선배님들 입 싹 씻는 거 아니죠?”
병달이 봉투의 돈을 꺼내 세고 있는 진국을 쳐다보며 말했다.
강일환은 해외개발2팀에서 나오는 사장을 보고 얼른 몸을 숨겼다.
‘사장이 2팀엔 무슨 일이지?’
강일환은 고개를 삐죽 내밀고 사장을 나온 복도를 살폈다.
사장은 엘리베이터 홀 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비서도 없이 혼자였다.
‘비서한테 말도 하지 않고 내려왔다? 분명 내가 모르는 뭔가가 있어. 분명…’
강일환은 사장의 모습이 사라진 뒤 해외개발2팀으로 향했다.
해외개발2팀이란 갑자기 만들어진 팀이었다.
얼마 전, 그러니까 오사카 박람회가 시작되기 전,
강일환이 사장의 부름을 받고 사장실로 올라간 적이 있었다.
그때 사장이 오성 그룹에서 온 공문을 보여주었다.
직원의 10%를 정리하라는 공문이었다.
강일환은 그 공문을 보고 적잖이 놀랬다.
강일환이 놀란 것은 말로만 ‘코지’가 오성의 간섭을 받고 있다고 생각했던 때문이었다.
그걸 사장이 확인 시켜준 셈이었다.
‘난 직원들 해고 시킬 생각 없습니다.’
‘그래도 위의 방침인데 그 문제 때문에 괜히 마찰을 빚을 필요가 없지 않겠습니까.’
‘10%면 20명이나 잘라야 하는데 지금 우리 인력에서 누굴 자른단 말입니까?’
‘디자인팀이 포화 상탭니다.
우리 회사는 회사 규모에 비해 디자이너가 필요 이상으로 많은 회삽니다.
사장님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
그때 사장은 해외개발팀이라는 구상하고 있는 듯했다.
그게 인원을 감원하지 않고도 사업을 꾸려 나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그러나 그런 마음으로 회사를 운영할 수는 없는 일이라고 강일환은 생각했다.
정리를 할 때는 과감하게 정리를 해야 옳았다.
‘차 사장이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강일환은 오성 그룹 본사의 송 전무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사장에 대해 매우 부정적인 생각을 지니고 있는 인물이었다.
‘차 사장은 젊은 놈인데도 쿨하질 못해요,
쿨하질…. 그깟 놈들 몇 짤랐다고 걔네들이 굶어 뒤지기라도 한답니까?
적당히 위로금 줘서 내보내는 게 회사 입장에서는 득입니다.
강 실장 그렇게 생각 안 합니까?’
‘저야 송 전무님 말이 백 번 옳다고 생각합니다.’
‘아무튼 안 하겠다는 놈을 외국에서 불러다가 그 자리에 앉힌 것부터 맘에 들지 않아요.
우리도 감원하는 판국에 지가 무슨 통뼈라고 가만히 있습니까?
요즘엔 직원들 짜르는 것만이 능삽니다. 능사라고.’
강일환은 송 전무의 심정을 알고도 남았다.
‘코지’는 원래 송 전무가 오기로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런 자리를 오성 회장의 막내 아들이 차지했으니 심기가 여간 불편하지 않을 터였다.
‘매출이나 혁신적으로 오른다면 또 모를까.’
송 전무의 그런 속내를 알고 있기라도 하듯 해외개발 2팀은 예상하지도 못했던
매출을 박람회에서 올렸다.
결국 간부회의에서 감원은 뒤로 미루어졌고 대신 새로운 부서가 만들어진 것이었다.
다만 새로운 부서엔 1차 감원 대상이었던 인물들로 구축하기로 했던 것이다.
강일환이 그 기회를 놓칠 리 없었다.
강일환은 자신의 사무실로 돌아왔다.
‘어쨌든 누군가를 자르긴 잘라야 할 거야. 차 실장이나 박 과장을 자를 순 없겠지.’
지금 홈 쇼핑을 담당하는 차 실장이나 박 과장은 오성에서 온 사람들이었다.
차 실장은 물론이고 박 과장 역시 오성 회장과 먼 인척 관계의 사람이었다.
‘도대체 이 년은 왜 전화를 안 받는 거야.’
강일환이 신경질적으로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그때 강일환의 휴대폰으로 전화가 걸려왔다.
신수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