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6장 평양으로 10
스스로 사직을 청하여 물러났던 각간 문충이 제 발로 어전을 찾아온 것이었다.
문충은 법민의 앞에 이르자 땅에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려 아뢰었다.
“신 문충은 불초한 몸으로 양대에 걸쳐 과분한 성은을 입었으나
잠깐 생각을 잘못하는 바람에 대왕께 돌이킬 수 없는 죄를 저질렀나이다.
대왕께서는 신의 목을 쳐서 금일 이후 다시는 성지를 거스르는 자가 없도록 하옵소서.”
법민은 문충의 태도가 갑자기 달라진 것이 무척 궁금했으나 곧 안색을 부드럽게 하여 일렀다.
“그 무슨 당치 않은 소리인가? 경은 돌아가신 선왕과 태대각간께서 유독 아끼시던 장수다.
경이 아니면 어찌 저 간악한 백제의 잔적들을 소탕할 수 있었을 것이며,
무슨 재주로 북방의 7백 년 근심을 덜었으랴. 과인은 경을 한 번도 원망한 적이 없으니
다시는 그와 같은 소리를 입 밖에 내지 말라.”
그러자 문충은 눈물을 뚝뚝 떨구며 말했다.
“성은이 망극하와 더욱 몸 둘 바를 모르겠나이다.
듣자오니 당군이 우리의 서해를 침략하여 전하의 근심이 크다 하옵는데 만일 대왕께서
신의 목을 치지 않으시려거든 우리 군사의 뒷전에서 시석이나 나르게 하여 신으로 하여금
성지를 거스른 대죄의 일부나마 갚을 수 있도록 윤허해주옵소서.”
문충의 말에 법민은 크게 기뻐했다.
곧 좌우에 명하여 문충의 예전 벼슬과 관작을 그대로 돌려주고 말하기를,
“지금 과인에게는 군관의 3만 군사가 있을 뿐이니 경은 이들을 데려가서 설인귀를 물리치도록 하라.”
하니 문충이 잠깐 생각에 잠겼다가,
“군관의 3만 군사는 도성과 대궐을 지켜야 할 막중한 소임이 따로 있습니다.”
하고서,
“다만 금성 외곽과 압독주(경산)의 향군들로 약간의 무당(武幢)을 조직하여
나간다면 능히 설인귀의 2만 당군을 막을 자신이 있습니다.”
하고 호언하였다.
그런데 이상한 일은 그것 하나로 그치지 않았다.
문충의 청에 따라 군역을 소집하는 조서를 걸자 도성 근교에서
구름같이 장정들이 모여드는가 하면, 소문을 듣고 지방에서 찾아오는 자도 부지기수였다.
또한 화주(花主)를 통해 각지의 화랑과 낭도들이 다투어 참전할 의사를 알려왔고,
문충이 총관을 지낸 상주의 장정들도 근 3백여 명이나 떼를 지어 나타났다.
거기다 사직한 진왕과 친당파의 좌장 격인 흥원까지 임금을 찾아와 사죄하며 백의종군할 뜻을 밝혔다.
진왕이야 문충의 부장으로 오래 봉직한 터라
그럴 만도 하다지만 흥원이 당나라 군대와 싸우겠다고 나선 것은 실로 뜻밖이었다.
급기야는 백제의 유민들과 새로 벼슬을 얻은 백제인 관리들까지 가세하니
이렇게 모인 인파가 불과 사나흘 동안에만도 근 1만 5천 명을 웃돌았다.
“귀신이 곡을 할 일이다. 대체 무슨 곡절인지 알 수가 없구나.”
법민이 귀신에 홀린 듯이 중얼거리자 강수가 빙긋 웃음을 머금었다.
“민심이 돌아선 때문입니다.”
“민심이 어째 창졸간 돌아섰다는 것이오?”
“창졸간이 아니옵니다.
그간 국론이 분분하고 민심이 흉하였던 것은 당나라에 대한 공포심 탓이었는데,
대왕께서 웅진과 평양을 차례로 쳐서 수중에 넣는 것을 보고 드디어 백성들이
조정에 대한 믿음을 갖기 시작한 것입니다.
신은 백제나 고구려의 유민들보다 오히려 삼한일족의 정책에 반감을 가진
신라 사람들의 마음을 더욱 걱정하였사오나 이제 삼한 백성들은 모조리 한 덩어리로
대왕의 충복이 되었습니다.
이는 지난 수년간 전하께서 성지를 굳건히 세워 한길로 뜻을 밀고 나가신 응분의 결과입니다.
삼한의 억조창생이 모두 대왕의 충직한 신민이 되었사온데 과연 무엇을 더 두려워하오리까?
신 강수, 삼한의 시조 대왕이신 전하께 진심으로 하례 드리옵나이다!”
강수는 만면에 웃음을 띤 채 절하였으나 목소리는 떨리고 눈에는 눈물을 글썽이기까지 했다.
법민은 강수와 논의 끝에 곧 1만 5천의 군사들을 추려 백금무당(白衿武幢)과 구칠당(仇七幢)이란
새로운 군대를 조직하고 이를 문충과 진왕, 개원과 흥원에게 맡겨 매소홀로 급파했다.
천성 동남쪽 15리쯤 되는 매소홀현 경계에 진지를 구축하고 힘겹게 대치전을 벌이던
유공과 당천은 금성의 원군이 도착하자 그 기세가 크게 살아났다.
지리에 밝은 유공이 꾀를 냈다.
“설인귀는 우리 군사의 수가 적은 것을 눈치채고 엊그제부터 싸움을 걸면 마다하는 법이 없습니다.
그런데 천성의 북변에는 두 갈래 길이 있고 그 가운데 곡양(穀壤:시흥)으로 통하는 길은 사방에
숲이 우거져 궁노수를 설치하기 그만입니다.
제가 한산의 군사들을 이끌고 저들을 그곳으로 유인해보겠습니다.”
유공의 말에 따라 문충과 진왕은 백금무당을 이끌고 먼저 매복지로 달려갔다.
나머지 장수들은 당군이 유인책에 말려들었을 때 성을 공략하기 위해 병영에 그대로 머물며
틈을 엿보았다.
“천하잡놈 설인귀야! 너는 어찌하여 번번이 남의 땅을 쥐새끼처럼 넘나들며
삼한의 금수강산을 넘보느냐?
아무래도 네놈은 흉칙한 도적패의 가랑이 새로 불거져 나온 놈이 분명하구나!”
유공이 약을 올려대자 성루에서 이 모습을 지켜보던 설인귀는 홀연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저놈이 아주 환장을 했구나, 환장을 했어!”
설인귀가 분기를 참지 못하고 군사를 내려 할 때 풍훈이 가만히 일렀다.
“천성 북쪽에는 두 갈래 길이 있습니다.
그 중의 좁은 길은 곡양으로 통하는 길인데 예로부터 숲이 우거져 복병을 설치하기 좋은 곳입니다.
만일 그곳으로 유인하는 기미가 보이거든 절대로 우리 군사를 따라가게 해서는 안 됩니다.”
설인귀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했다.
“유공이란 놈이 얼마 되지 않은 군사를 몰고 나와 껍죽대는 것을 보니
틀림없이 우리를 유인하려는 술책이네. 내 어찌 그것을 모르겠는가!”
그는 부장으로 데려온 유가(劉駕)와 조양지(曺養志)를 불러 마군 1천을 내어주며 말했다.
“너희는 어서 가서 저 나불거리는 주둥아리를 베어오되 도망가는 적을 뒤쫓아서는 안 된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명령을 받은 유가와 조양지가 쏜살같이 말을 달려 나갔고 이내 어지러운 교전이 시작되었다.
유공은 두 장수를 상대로 한동안 큰칼을 휘두르며 싸우다가 문득 힘에 부친 듯
말머리를 돌려 달아나니 유가와 조양지가 벼락같이 고함을 지르며 그 뒤를 추격했다.
그렇게 얼마를 쫓겨 가던 유공의 귀에 징소리가 들려왔다.
그래서 돌아보니 두 장수가 추격을 멈추고 군사들을 되돌려 성으로 돌아가는 게 아닌가.
유공은 황급히 말머리를 잡아채고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가 다시 달아나던 군사를 되돌려 싸움을 걸자
유가와 조양지는 흔쾌히 성문으로 달려 나와 맞상대를 했지만 유인하려고만 들면
번번이 말려들지 아니하니 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답답해진 쪽은 유공이었다.
이런 일이 서너 차례 반복되자 멀리서 이 모습을 지켜보던 당천이 말했다.
“설인귀는 우리의 계책을 이미 간파한 듯싶습니다.
그가 매소홀에 배를 대고 이제 유인책마저 눈치 채는 것을 보면 적진에
내지의 사정을 잘 아는 자가 있는 게 분명합니다.”
“자네의 말이 맞네. 당나라에 내지 사람이 많으니 아마도 지리에 밝은 자를
향도로 데려온 게 틀림없지 싶네.”
당천의 말에 흥원도 맞장구를 쳤다.
“만일 그렇다면 저들을 북방으로 유인할 게 아니라
차라리 이곳을 내어주고 소경(국원, 곧 충주)의 완장성까지 깊숙이 끌어들이는 게 어떨는지요?
완장성은 본래 민가의 초가에 비유할 만큼 볼품없는 성이었으나 작년에 대왕께서
공역을 일으켜 지금은 주위가 2천 6백 보에 달하는 견고한 웅성이 되었습니다.
옛날에 고구려의 을지문덕은 하루에 일곱 번을 패하며 양광의 군사 30만을 압록수에서
평양성까지 유인하였다가 마침내 모조리 물고기 밥을 만들었다는데,
바로 그 방법을 이용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이는 적지로 깊숙이 들어오면 올수록
불안해지는 적의 심리를 거꾸로 이용한 계책입니다.”
당천이 꾀를 내자 병법에 밝은 개원의 표정이 금세 밝아졌다.
“본래 수로로 침략한 적은 내지로 유인하고 육로로 온 적은 물가로 모는 것이 상책일세.
총관의 말대로 해보세나!”
그날 밤 신라군은 진채를 거두어 소리 없이 천성에서 철수했다.
뒷날 날이 밝아 당군이 망루에 올라가서 적진을 살피니
펄럭이던 깃발과 군막은 오간 데 없고 적진에는 쥐새끼 한 마리보이지 않았다.
보고를 받은 설인귀는 그것이 신라군의 또 다른 계책인 줄 알고,
“신경 쓸 거 없다. 우리는 이근행만 기다리면 된다.”
하고 말하였는데,
그럭저럭 천성에 이른 지도 열흘이 넘어서자 은근히 불안감도 일고 조바심도 났다.
“어째서 이근행은 아직까지 나타나지 않는단 말이냐?”
“설마 이 빌어먹을 말갈놈이 황제의 영을 어기려 드는 것은 아니겠지?”
“세상이 너무도 조용하구나.
혹시 평양에 주둔한 신라군이 모조리 매소홀로 모여드는 것은 아닐까?”
하루에도 몇 차례씩 엉덩이를 들썩거리던 설인귀는
마침내 더 참지 못하고 휘하의 장수들을 불렀다.
“하는 수 없다.
노회한 말갈놈이 아직 나타나지 않는 것을 보면 필시 딴 속셈이 있는 게 뻔하다.
전에 고간 장군은 2만의 군사로 금성 인근까지 진격하여 법민과 그 졸개들을
물에 빠진 개처럼 떨게 하였는데 우리라고 그러지 못하란 법이 있겠느냐?
얼마 전에 우리와 싸운 오합지졸들도 혼비백산하여 달아나서는
그 뒤로 아무 기척이 없으니 지금쯤 어느 성에 의지하여 사시나무처럼 떨어대고 있을 게 분명하다.”
그렇게 판단한 설인귀는 곧 장수들에게 군령을 내렸다.
“유가는 향도 풍훈과 함께 당보군을 인솔하여 길을 안내하되 10리를 갈 때마다
백기(白旗)와 청기(靑旗)를 번갈아 꽂아 척후의 소임을 게을리 하지 말라.
맹부(孟夫)와 위사원(衛士元)은 병거와 궁노 부대를 앞세우고 도검 부대를 양옆에 배치하여
선군이 꽂아놓은 백기를 따라가되 길이 나뉘는 곳과 합쳐지는 곳에서는 반드시 대오를 점검하여
흐트러짐이 없이 하고, 선군과는 항상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여 복병에게 당하는 일을 미연에 방지하라. 예서 금성까지가 7백 리 길이라지만 향읍에는 죄 늙은이와 아녀자들뿐이라고 하니
하루에 1백 리는 거뜬히 진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은 충복 조양지와 더불어 후군을 맡아 천성을 빠져나갔다.
향도 풍훈은 유가와 말머리를 나란히 한 채 눈에 익은 당은 포로를 따라 앞장서서 길을 열어나갔다.
처음에는 10리를 가는 데도 조심스러워서 길이 꺾이고 언덕이 나타나는 곳에서는
반드시 척후병을 내어 동향을 살폈다.
그러나 매홀군(買忽:수원, 화성)을 지나고 이천현의 남쪽으로 접어들어 소경 경계까지 이르는
1백 수십 리를 가는 동안에 아무런 저항이나 징후도 나타나지 않자
급기야는 긴장감과 경계심이 풀어져서 방심하는 마음들이 되었다.
그는 유가를 향해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소리쳤다.
“계림의 군사가 죄 북방으로 올라간 줄은 짐작하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남쪽이 이토록 텅텅 비었을 줄은 차마 몰랐소.
이거야말로 무인지경에 적막강산이 아니고 뭐란 말이오!”
하지만 길을 아는 풍훈과는 달리 유가를 비롯한 당군들의 느낌은 이와는 약간 달랐다.
그들은 며칠이 지나도록 개미 새끼 한 마리보이지 않자 갈수록 까닭 없는
초조함과 불안감이 엄습해왔다.
마치 알 수 없는 미궁 속으로 끝없이 빨려 들어가는 듯한 느낌이었다.
배를 정박해둔 매소홀에서 멀어질수록 자연히 퇴로를 걱정하지 않을 수도 없었다.
“아무리 그렇기로 너무 지나치지 않소? 나는 자꾸 이상한 예감이 드오.”
“이상한 예감이 들 게 무어요?”
“내가 듣기로 신라에는 뛰어난 장수가 석산에 자갈처럼 많다고 하던데
어찌하여 그런 자가 하나도 뵈지 않는단 말이오?
하다못해 지난번에 천성 앞에서 달아난 자들만이라도 어디선가 나타나야 할 게 아니겠소?”
“계림에 출중한 장수가 더러 있는 건 사실이나 대부분은 나이가 들어 죽을 때가 가까운 사람들이오.
오죽하면 유공이나 당천 따위가 장수 노릇을 하고 있겠소?
그 중에서도 제법 쓸 만한 자들은 모두 평양으로 가고 향군들이라고 해봐야 맥 빠진 늙은이들이
고작일 테니 2만이나 되는 우리 군사의 위세를 보고 어느 주군(州郡)에서 감히 대적할 엄두를 내겠소?
공연히 쓸데없는 걱정일랑 마시오.”
풍훈은 불안해하는 유가에게 웃으며 말했다.
“유공이나 당천은 필경 금성으로 달아났을 게요.
그러니 금성에서 한판 싸움다운 싸움이 벌어질 수는 있겠지만 예서는 아무것도 걱정할 게 없소.
조금만 더 가면 소경이 나오는데, 소경의 완장성은 우리 군사들의 고함소리 한 번에도
폭삭 무너질 만큼 낡고 부실한 성곽이오.
소경을 장악하고 나면 장군도 더 이상 불안한 생각을 아니할 것이니 어서 서두릅시다.”
풍훈이 하도 자신만만해하자 유가도 어느 정도 안심이 되었지만 밤이 되고
사방이 정적에 빠져들면 다시 불안감이 일었고, 신경이 별처럼 반짝거려 좀체 잠을 이루지 못했다.
이런 증상은 장졸(將卒)이 마찬가지요,
중군의 장수들과 후군을 맡은 설인귀조차 예외가 아니었다.
설인귀는 사흘간이나 어떤 저항도 받지 않자 급히 풍훈과 유가에게 사람을 보내
별다른 징후가 없느냐고 확인까지 했을 정도였다.
그러나 어찌 알았으랴,
이 모두가 실은 당군의 의심을 유발하여 극도로 피곤하게 만들려는 고도의 심리전이었음을.
'소설방 > 삼한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36장 평양으로 12 (0) | 2014.12.05 |
---|---|
제36장 평양으로 11 (0) | 2014.12.05 |
제36장 평양으로 9 (0) | 2014.12.05 |
제36장 평양으로 8 (0) | 2014.12.04 |
제36장 평양으로 7 (0) | 2014.12.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