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삼한지

제36장 평양으로 3

오늘의 쉼터 2014. 12. 4. 16:04

제36장 평양으로 3

 

 

그 소리를 듣는 순간 인문의 안색이 홀연 백변하였다.

“아, 본국의 내홍이 그 지경에까지 이르렀더란 말인가!”

인문은 허공을 바라보고 크게 탄식하였다.

“그렇다면 이거야말로 정말 큰일이구나!

어떻게든 황제의 뜻을 막고 대왕께 내분을 평정할 시간을 주어야겠다!

그렇지 않으면 실로 계림의 사직이 위태롭겠다!”

그는 부리나케 대궐로 들어가 황제를 알현하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신이 알아본 바에 따르면 계림의 정세가 어지러운 것은 백제와 고구려의 유민들 때문이지

신라왕에게 불충한 뜻이 있어 그런 것이 아닙니다.

유민들은 시도 때도 없이 경계를 넘나들고 우리 백성들의 마을을 약탈하므로 할 수 없이

성곽을 수리하고 군사를 훈련시켜 접경과 해안을 엄중 수비한다고 합니다.

또한 신라왕은 신이 보낸 사신에게 말하기를 이제 요동의 반란군들이 황제 폐하의 대군에게

패하여 배를 타고 뿔뿔이 남하할 것이 분명하니

해상에서 그들을 사로잡아 당으로 보내기 위해서도 나름대로 준비를 아니 할 수 없다고 하더이다.

이런 것이 어찌 책망을 받을 일이겠나이까?

부디 통촉하시어 군사를 거두시고 요동부터 평정하심이 옳은 줄 아옵니다.”

인문의 간하는 말을 듣고 이치는 약간 기분이 풀린 기색이었다.

“그렇다면 충신들을 내치고 불충한 무리들과 조석으로 어울린다는 소문은 어찌된 일이오?”

“대토라는 자는 본래 아무런 공이 없으나 김유신의 뒤를 쫓아다니며 출세한 인물입니다.

계림에는 대토와 같이 김유신의 막하에 있다가 허명을 얻고 마침내는

나라의 중책을 맡은 자들이 적지 않은데 이들이 유신의 사후에 불안감을 느껴

일제히 사직을 청한 것일 뿐,

임금이 특별한 저의를 가지고 행한 일은 아니 올 습니다.

다만 오직 대토 하나가 복주된 것은 그가 가솔들을 이끌고 다른 나라로 도망가려 했기 때문이라

하옵니다.”

인문은 두어 달간 골똘히 궁리한 대로 둘러대고서 이렇게 덧붙였다.

“계림과 같은 작은 나라에서 유신과 같은 큰 인물이 죽었으니

약간의 소동과 잡음이 일어나는 것은 당연지사가 아니겠나이까?

폐하께서 마음 쓰시는 일련의 일들은 대개 유신의 죽음으로 빚어진 소동입니다.

가만히 두고 보시면 곧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게 될 것이옵니다.”

참으로 다행스럽게도 이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김유신과 같은 인물이 어디 쉬운가.

그는 계림이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백 년에 한 사람 나올까 말까한 명장이니

소국이 대인을 잃고 방황하는 것은 그다지 수상한 일이 아니다.”

당주 이치는 두어 달 전의 성성하던 기세와는 달리 생각보다 쉽게 누그러졌는데,

이는 그사이에 요동의 전황이 당에 불리한 쪽으로 전개된 탓도 있었다.

이때 요동에서는 대두산성과 안시성을 정점으로 다물군들이 해가 갈수록 맹위를 떨쳤고,

동모산 일대에서는 대중상이 눈에 띄게 세력을 얻어가고 있었다.

특히 대중상은 당의 세력이 완전히 미치지 못하던 거란과 말갈 사이에서

송화강과 홀한수(忽汗水)의 넓고 비옥한 평원을 근거로 새로운 세력을 형성한 터라

당에게는 더욱 근심이었다.

이치는 대중상이 후고구려를 세우고 홀한성에 도읍을 정한 뒤 스스로 황제라 칭한다는 소문을 듣자

신라를 치려고 준비해둔 대부분의 군사들을 이미 요동으로 급파한 뒤였다.

신라의 일이 제아무리 급하더라도 국경을 접한 요동보다 우선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요동의 위급한 전황 덕택에 갑술년 한 해는 무사히 넘어간 나당의 관계가 다시 표면에 불거진 것은

그로부터 1년 뒤인 을해년(675년) 정월이었다.

갑술년에 당군은 내주와 등주에서 수군을 내어 장성(천리장성)의 남변인

비사성(大蓮) 일대를 들이치고 일패는 육로를 따라 탁군에서 조양을 거쳐

통정진으로 들어가 양쪽에서 모두 전례 없는 큰 승리를 거두었다.

장성변에서 쫓긴 다물군들은 바다를 통해 각지로 흩어졌는데,

그 중의 한 패가 신라로 달아났다.

당주는 즉시 법민왕에게 고구려 반중을 사로잡아 평양으로 압송할 것을 명하였지만

법민은 이를 듣지 않고 안승을 내세워 대부분 신라 백성으로 거둬들이니

이를 알아차린 당으로선 황제의 영을 거역한 법민의 죄를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이치는 다시금 조서로써 법민을 폐하고

인문에게 계림주대도독개부의동삼사신라왕(鷄林州大都督開府義同三司新羅王)에 책봉하여

귀국 명령을 내리는 한편 요동에서 돌아온 우상 유인궤와 위위경 이필(李弼),

우령군대장군 이근행 등에게 4만의 군사를 주고 말하기를,

“너희는 인문을 호위하여 신라로 가되,

법민과 반역의 무리들을 모조리 붙잡아 낙양으로 압송하고 인문이 형을 대신해

무사히 신라왕에 등극하는 것을 보고 돌아오라!”

하였다. 신라의 내분이 심상찮음을 간파하고 그것을 부추겨

자중지란을 유도하려는 당의 이간책이었다.

사태가 여기에 이르자

인문도 말로는 더 이상 당주의 뜻을 되돌릴 수 없음을 깨달았다.


그는 유인궤가 군사와 물자를 점검하는 사이에 당주에게 말했다.

“이제 신이 떠나면 언제 다시 폐하의 존안을 우러러 뵈오리까?

신은 그간 오랜 세월에 걸쳐 폐하의 그늘에서 안돈하게 지내기를 마치

뱃속의 아이가 모태에서 지내듯 하였사온데, 돌연 계림으로 떠나라 하시니

비록 그곳이 신의 본향이기는 하나 고기가 물을 떠나 뭍으로 가는 것처럼 두렵고 또한 두렵나이다.

가을 수목은 해의 빛과 온기를 듬뿍 머금어 겨울을 준비하는 법입니다.

청컨대 신으로 하여금 며칠만 더 폐하의 곁에 머물도록 은전을 베푸시옵고,

아울러 낙양에서 사귄 수많은 벗들과도 아름답게 헤어질 수 있도록 윤허해주옵소서.”

이치는 인문의 간곡한 청을 물리칠 수 없었다.

“하긴 이렇게 경과 헤어지면 또 언제 볼 수 있겠는가.

대저 군사를 내는 것은 번갯불과 같이 서둘러야 할 일이나 경의 소청 또한 까닭이 없지 않으므로

열흘 말미를 주겠노라.”

“황은이 태산과 같사옵니다.”

인문은 대궐을 물러나오자 즉시 한림을 불러 말했다.

“이제 일은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으니

신하가 임금을 치고 사사롭게는 아우가 형을 위난에 빠뜨리는 전대미문의 추한 일이

바로 우리 계림에서 일어나게 되었네.

그러나 어찌 한탄만 하고 있겠는가.

나는 이런 날이 닥칠 것을 알고 여러 가지 방책을 마련해두었는데,

우선 군사를 내기 전에 본국에 상주하여 대왕으로 하여금 대책을 세우도록 하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하네.

나는 여기서 출병의 시기를 최대한 연기해보겠으니

자네는 곧장 본국으로 달려가 사태의 긴박함을 대왕께 고하게나.

자고로 궁벽한 곳에 호처(好處)가 있고, 크게 번성하자면 반드시 앞에 액운을 겪는다고 하였네.

어쩌면 이번 기회에 자네와 내가 계림에 대공을 세우고

우리 대왕의 해묵은 근심을 덜어줄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

한림이 약간 심드렁해서 인문에게 물었다.

“대의멸친이라 하였습니다.

나리께서는 차라리 황제의 명을 받들어 위태로운 계림의 사직을 튼튼히 하시는 게 옳지 않겠습니까?”

“형우제공(兄友弟恭)은 일가의 근본일세. 작은 것을 지키지 않는 대의란 없네.”

“하오나 만인이 이구동성으로 나리의 등극을 바라고 있습니다.”

“천만에. 그렇게 말하는 자들은 나라의 근본을 망치려는 무리일세.

자네는 이 일이 우리나라의 자중지란을 바라는 당나라의 이간술책임을 정녕코 모른단 말인가?”

인문의 음성은 가늘게 떨렸다.

“형님은 어려서부터 기개가 출중하고 생각하시는 바가 남과 달라 영웅과 호걸의 풍모를

두루 갖추신 분이네.

나는 백 번을 죽었다가 깨어나도 형님과 같을 수는 없으이.

선왕께서 일으키신 삼한일통의 대업을 완수하실 분은 천하에 오직 형님이 있을 뿐일세.”

그리고 인문은 한림을 유심히 바라보더니

그에게 다른 마음이 있는 것을 알고 온화한 말투로 이렇게 설득했다.

“일전에 자네가 본국을 다녀와 말하기를 선왕이 돌아가시기 직전에

부자(父子)가 한자리에 모여 정담을 나눈 일을 대왕께서 특별히 거론하셨다고 했는데,

그때 선왕께서는 우리 형제들의 손을 일일이 붙잡으시며 어떤 고난이 있더라도

삼한의 만호중생을 다 모아야 한다고 말씀하셨네.

그리고 내 어머니의 형제분들과 천존 장군의 형제가 모두 가락국의 후손임을 말씀하시면서,

1백 년 전에는 계림과 가야제국이 서로 지경을 다투던 다른 나라였으나

장차 1백 년 뒤에는 백제와 고구려의 후손으로 훌륭한 재상과 뛰어난 장수를 얻어야 한다는

말씀도 남기셨다네.

지금 돌아보면 그것이 유언이었던 셈이지. 선왕께서는 기회 있을 때마다

땅보다 사람이 중하다는 말씀도 여러 번 하셨네.

만일 지난 1백 년 사이에 계림이 가야제국 망민들을 끝까지 배척하고 거두지 않았더라면

어찌 오늘의 신라가 있을 것이며, 나와 자네가 무슨 재주로 이처럼 무릎을 맞대고 서회할 수 있겠는가?”

천존이 가락국의 후예였으니 한림 또한 당연히 그러했지만 원체 문벌이 높다 보니

평소에는 미처 깨닫지 못하던 일이었다.

“백제의 관리들에게 벼슬길을 열어주고 고구려의 유민들을 거둬들이는 일은

선왕의 유업을 받들어 나라의 바탕을 다시 짜는 웅대한 대역사일세.

5호(흉노, 선비, 강, 저, 한족)가 발호하고 16국이 창궐하던 전날 중국의 일을

지금 누가 기억이나 하는가?

오늘날 당이 천하를 호령할 수 있음은 남북조를 아우른 수나라의 공이요,

수나라의 강성함은 5호의 이민족과 그들이 세운 16국을 제압한 남제(南齊)와

북위(北魏)의 공이 아니던가?

이제 삼한이 모이고 흩어지는 것은 모다 형님 손에 달렸고,

형님께서는 벌써 이를 간파하고 삼한의 백성들을 차등 없이 기용하려는 것이니,

내가 형님을 넘어설 수 없음은 이것 하나로도 증명이 되네.

자네가 나를 따르는 마음이야 어찌 낸들 모르겠는가?

하나 나는 형님에 비하면 한낱 용 앞의 미꾸라지에 불과할 따름일세.”

한림도 그제야 느끼는 바가 있었다.

하지만 당과 싸워 과연 승산이 있을까 하는 의구심은 끝까지 버릴 수 없었다.

“나리께서는 당의 강성함을 몸소 느끼시고도 본국이 사직을 지켜낼 수 있을 거라고 보십니까?”

그러자 인문은 조심스럽게 예언했다.

“형님과 내가 마음을 합하고 힘을 모은다면 아주 불가능한 일도 아님세.”

당나라 사정에 달통한 인문이 그렇게 대답하자 한림으로서는 더 말할 것이 없었다.

곧 자세를 고쳐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물었다.

인문이 그런 한림에게 목소리를 죽여 몇 가지 계획을 일러주었다.

한림이 낙양을 떠나자 인문은 지니고 있던 재물을 싸들고 황노학(黃老學:도학)을 하는

어느 도인의 집을 찾아갔다.

소백(蘇帛)이라 불리던 그 도인은 무후의 사가와 오랜 교분이 있던 인물이었다.

그는 황노학을 하는 사람들이 대개 그러하듯 남다른 신통술을 지녀 무후가

일개 궁녀로 있을 때 이미 나라의 권세가 무후에게 이를 것을 내다보았으며,

연전에는 장안의 기운이 무후에게 해롭다 하여 낙양으로 천도할 것을 권유한 장본인이기도 했다.

인문이 도인을 만나 재물을 들이밀고 무언가 은밀히 청탁을 넣으니

그가 귀밑에까지 입이 찢어져서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라며 몇 차례나 입찬소리를 하였다.

 

'소설방 > 삼한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36장 평양으로 5  (0) 2014.12.04
제36장 평양으로 4  (0) 2014.12.04
제36장 평양으로 2  (0) 2014.12.04
제36장 평양으로 1  (0) 2014.12.04
제35장 선전포고 8  (0) 2014.12.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