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밤의 대통령

10. 납치

오늘의 쉼터 2014. 12. 1. 14:15

◐ 납치

 

 

 

한세라는 세관원 앞에 짐을내려놓고 우두커니 서 있었다.

세관원은 비행기 상자를 들어 보더니 서슴없이 안에 든 비행기를 꺼냈다.

한세라의 가슴이 내려앉았다.

그는 비행기의 무게를 재 보았다.
"어이구, 제수씨. 이 거 웬일이시오?"
뒤에서 반가운 듯한 말소리가 들렸다.

백찬세 세관원이었다.
"안녕하셨어요?"
한세라가 인사를 하자 그는 이맛살을 찌푸렸다.
"이젠 날 찾지도 않고? 나한테 술 안 사줄려고 그러는 모양인데, "
"아녜요."
검사하던 세관원이 그들을 보면서 비행기를 상자 속에 담았다.
"오늘은 비행기 사러 가셨소?"
한세라의 짐은 옷가방 하나와.비행기 상자뿐이었다.

마약 소동에 다른 일은 집어치운 것이다.
"네, 누가 갑자기 부탁을 해서요."
"자, 줬습니다. "
검사하던 세관원이 말했다.
"칠성이한테 안부 전해 주시오."
백찬세가 몇 걸음 따라나오며 말했다.

그에게 머리를 숙여 보이고 한세라는 수레를 끌고 대합실로 나왔다.

아무에게도 연락을 하지 않았으므로 집안식구들도 모르고 있을 것이다.
택시 정류장으로 나와 한세라는 늘어선 사람들 틈에 끼였다.

여름밤의 끈적끈적한 습기가 피부에 내려앉아 기분이 언짢아졌다.

한참을 기다려서야 그녀의 찬례가 되었다.

한세라는 트렁크에 비행기를 싣고 됫 좌석에 올라 앉았다.
"잠실요."
그러고는 됫좌석에 등을 기대고 눈을 감았다.

온몸이 바닥으로 내려 앉는 것 같았다.

집앞에 도착하자 시계는 새벽 2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한세라는 요금을 치르고 택시에서 내렸다.

인적이 없는 아파트를 바라보자 겁이 덜컥 났다.

 예전에는 한번도 이런 적이 없었다. 어두운 화
단과 놀이터를 지나면서 다리를 떨었다.

앞쪽에 경비실의 등불이 보였다.

대부분의 아파트는 불을 끈 상태라 주변은 어두웠다.
"여보세요."
"어머나!"
뒤에서 부르는 소리에 한세라는 저도 모르게 놀라 소리쳤다.

겨우 머리를 돌리자 두 남자가 다가서는 게 보였다.

한세라는 온몸을 굳히고 그들을 바라보았다.
수고하셨습니다, 미스 한."
앞장 선 사내가 다가서며 말했다.

횐 이가 어둠 속에서 보였다.

배 사장이었다.
"아들놈이 하도 조르길래‥‥‥‥

오늘 도착하신다는 연락을 받구 마악 일을 마치고 보니까 공항 나갈 시간이 넘었지 윌니까?

그래서 댁 앞에서 기다리는 게 나을 것 같아서요."
그의 시선은 줄곧 한세라가 끈으로 묶어 들고 있는 비행기 상자에 머물러 있었다.

한세라는 비행기를 내밀었다.
"수고하셨습니다. "
최정호가 조심스럽게 비행기를 건네받았다.

그는 비행기를 뒤쪽에서 있는 사내에게 넘겨 주었다.
"이거 피곤하실 텐데, 인사는 나중에 하고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
"네, 그럼 안녕히 ."
한세라가 겨우 입을 열어 말했다.

최정호는 사내와 함께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한세라는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다가 다시 겁이 덜컥 났다.

비행기의 몸통 속은 비어 있는 것이다.

그들은 그것을 바로 알아낼 것이다.

한세라는 서둘러 주차장을 지나 아파트의 현관으로 들어섰다.
임영철 수사관은 앞을 응시한 채 차를 몰았다.
"도대체 저 자식은 어디로 가는 거야? 빙빙 돌고 있는 것 아냐?"
옆자리의 현종일 수사관이 이맛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50미터쯤 앞의 차는 잠실에서 테혜란로로 나왔다가 거기서 우회전해서

논현동으로 빠지는 것 같다가 다시 좌회전해서 강남대로로 들어서더니

곧장 한남대교 쪽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저 새끼가 눈치챈 거 아냐?"
현종일이 다시 투덜거렸고 됫좌석에 탄 다른 2명의 수사관도 머리를
앞쪽으로 내밀고 앞차를 바라보았다.

앞에서 달리던 차는 한남대교를 곧장 건너더니 고가도로의 우측길로 들어섰다.

고가도로 밑에서 좌측 깜박이를 켜고 서행하고 있었다.

한남동으로 들어갈 모양이었다.
임영철은 서서히 차를 몰아 그쪽으로 다가섰다.

고가 밑에서 좌회전을 하므로 고가도로의 끝부분에서 밑길로 들어오면

잠시 좌측이 보이지 않는다.

임영철은 눈을 깜박이며 얼굴을 핸들 위로 내밀어 앞을 바라보았다.
앞에 택시 두어 대와 승용차만 한 대가 보일 뿐 검정색 프린스는 보이지 않았다.
"어어!"
현종일이 앞을 바라보며 소리쳤다.
"샜다!"
현종일이 소리쳤다.
"유턴! 유턴!"
됫자리의 수사관이 임영철의 어깨를 치면서 외쳤다.

임영철은 고가의 기둥을 들이받을 듯하면서 차를 유턴시켰다.
잔뜩 액셀러레이터를 밟아 한남대교 쪽으로 달려 올라갔으나 프린스는 보이지 않았다.
새벽 4시였다.
전화벨이 울리고 있었다.

한세라는 방안에서 벨소리를 들으면서 움직이지 않았다.

건넌방 문이 열리더니 어머니가나오는 기척이 들렸다.
"여보세요?"
어머니가 전화를 받았다.

한세라는 침대 위에 걸터앉아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세라야, 자니?"
어머니가 방문을 두드렸다.

한세라는 방문을 열고 나갔다.
"웬 남자가 급하다는구나."
어머니의 말소리를 들으면서 한세라는 떨리는 손으로 수화기를 들어다 친. M
"여보세요."
"한세라 씨?"
배 사장의 목소리였다.
"예."
"약은 어디다 두었어?"
그가 가볍게 물었다.

감기약을 어디다 치웠냐고 묻는 것 같았다.
"f1?"
"약을 어디다 숨겼냔 말이야."
그의 목소리가 굵게 울려 나왔다.
' "난 몰라요. 무슨 약인데요?"
한세라가 안간힘을 쓰듯이 말했다.

김칠성이 가르쳐 준 대로 하는 것이다.
"시치미 텔 거야?

네가 수사관들에게 정보를 주고 우리를 미행시킨 것을 모르고 있는 줄 알아?"
한세라는 무서워서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래, 우리가 호락호락 놈들에게 잡힐 것 같나?

너는 무사할 것 같아?

네 가족이 살아남을 것 같으냐?

 어디다 숨겼어? 이야기해."
"난 몰라요, 정말‥‥‥‥
"오냐, 좋다. 네 어미와 동생들이 죽어 자빠진 꼴을 보게 될 거다.

하나씩 하나씩 토막을 내서 죽여 주마."
한세라는 덜덜 떨며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전화의 코드를 잡아H다.
"무슨 일이냐?"
어머니가 잠이 잰 얼굴로 한세라를 바라보았다.

한세라는 온몸을 떨면서 소파에 앉아 있었다.

멍한 시선을 들어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세라야, 어디 아프냐?"
당황한 어머니가 다가와 그녀의 이마에 손을 가져다 댔다.

어머니의 손을 뿌리치고 한세라는 물러 앉았다.

김칠성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가 죽이고 싶도록 미웠다.
한숨도 자지 못한 채 한세라는 침대 위에서 뒤척거렸다.

김칠성의 말로는 그의 부하들이 식구들을 보호할 것이니까 걱정할 것 없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이렇게 전화가 올 것이라고는 이야기해 주지 않았다.
전화기의 코드는 빼놓았으나 이제 다시 걱정이 생겼다.
김칠성이 전화할지도 모르는 것이다.

한세라는 응접실로 나가 전화기를 바라보았다.

코드를 손에 쥐고 망설였다.
시간은 아침 7시가 되어 있었다.

그러자초인종이 울렸다.

한세라는 질겁을 하면서 현관문을 바라보았다.

다시 초인종이 울렸다.
"누구세요?"
한세라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문 좀 여쇼."
굵은 목소리가 났다.

아파트의 복도가 울리는 것 같았다.
"누구신데요?"
어머니가 방에서 나왔고 세영이와 세희가 잠옷바람으로 저희들 방에서 나왔다.
"나, 칠성이 형님요."
목소리가 다시 울렸다.

한세라는 문 앞으로 다가갔다.

김칠성에게 어제 들었다.

조웅남이라고 하는 형님이 보호해 줄 것이라고 했던 것이다.
"저, 성함이 어떻게 되시는데요?"
"아따! 지기미."
사내가 버럭 화를 냈다.

아파트가 쩌렁 울리는 것 같아서 한세라의 가슴이 내려앉았다.

어머니와 동생들은 불안한 듯 그녀를 바라보았다.
"나 조웅남여!"
그가 다시 소리를 지르자 한세라는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었다.

그리고 형님이 맞긴 맞는 것 같았다.

이중 자물쇠를 풀고 한세라는 문을 열었다.
"악!"
한세라가 한손으로 입을 막고 한걸음 뒤로 물러섰다.

현관문을 가득 메우고 선 무시무시한 사내가 그녀를 노려보았다.

한세라가 놀라자 뒤쪽에 앉았던 두 동생들도 숨을 들이켰다.
"도대치 전화가 어뜨케 된 거여?"
그러면서 사내는 서슴없이 신발을 벗고 집안으로 들어섰고

그의 뒤를 따라 대여섯 명의 사내들이 따라 들어왔다.
"아이고, 어머니시구먼요."
조웅남이 어머니를 보더니 말했다.

어머니는 입을 벌린 채 응접실 구석에 서 있었다.
"어머니, 지가 칠성이 형님되는 사람이오, 절 할팅게 절 받으쇼."
"아이고, 아니."
어머니가 선 채로 한손을 저었으나 얼굴은 아직 정신을 수습하지 못한 것 같았다.

조웅남은 응접실 바닥에 쿵 하면서 무릎을 꿇고는 이마를 바닥에 부딪혔다.

어머니가 허리를 굽히려다가 두 손을 휘저으며 한세라를 바라보았다.

 어쩔 줄 모르는 얼굴이었다.
"야들은 모두 지 동생들입니다. 칠성이 동생도 됩니다. "
"저, 앉으세요."
한세라가소파를 가리키며 말했다.

세영이와세희는 어느틈에 방으로 도망쳐 들어갔다.

 모두들 자리에 앉았다.

소파에 앉은 것은 조웅남과 한세라,

그리고 어머니였고 나머지 사내들을 응접실 바닥에 앉거나 서 있저냐 했다.
"내가 한 시간 전에 칠성이한티 전화를 받었는디."
조웅남이 입을 열었다.
"홍콩간 이야기는 다 들었응게 말헐 필요없고,

전화가 안 된게로 칠성이가 애간장이 타는 모양이여."
"제가 코드를 빼놓았어요."
"왜 1렁 거여?"
"그 사람한데서 전화가 왔었어요. 그래서 무서워서‥‥‥‥
"허허, 참 답답허고만. 이해를 헐 수 없당게. 전화는 소리여 소리 .

라지오 듣는 것허고 똑같단 말여 라지오에서 누가 칼들고 튀어나오는 것 봤어?

내, 참. 전화로 머라고 허먼 노래나 한곡조 뽑아주는 거여 "
그러다가 말을 멈추고 눈을 껌벅거렸다.

본론을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그러다가 주변에 몰려 있는 사래들을 바라보았다.
"그리서 여그 식구가 몇이요?"
"저까지 넷이에요."
"누가 핵교 댕기는가?"
"네, 고3이에요. 막내동생이."
"그러고?"
"제 밑에 동생은 직장에 다니구요."
"그러고 제수씨하고 어머니는 집에 있는 거여?"
"fl ."
"그러먼 둘씩 둘씩 여섯이면 되겄다. 안 그러냐?"
조웅남이 서 있는 사내에게 말했다.
"예, 그렇게 나누겠습니다. "
사내는 다른 사내들을 모아놓고 둘씩 패를 가르기 시작했다.
"동생들 보디 가드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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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웅남이 한세라에게 말하며 히죽 웃었다.
"인자 그런 전화오먼 노래나 한곡조 쁩아 주란 말여."
툭툭 말을 뱉는 조웅남의 이야기를 듣고 그의 얼굴을 보면서

한세라의 가슴은 차분히 가라앉았다.

이보다 더 무서운 사내를 보지 못했는데 그 사내가 우리 편인 것이다.
"근디, 어머니. 제수씨가 참말로 미인인디요. 내 거시기도 이쁘기는 허지만."
조웅남의 말에 한세라가 얼굴을 붉혔다.

이젠 그런 말에 얼굴을 붉힐 여유가 생긴 것이다.

 아직도 어머니는 눈을 깜박이며 앉아 있었다.
최정호는 이를 부드득 갈았다.

공장장이 방으로 들어왔으나 최정호가 손을 내젓자 밖으로 나갔다.

그는 전화기를 집어 들었다. 다이얼을 누르자 신호가 갔다.
"여보세요?"
"아, 위 선생입니까? 나, 최정호요."
"어떻게 되었습니까?"
위천산이 다급하게 물었다.
"뭐가 어털게 된단 말입니까? 다 끝났습니다. "
"아니, 어떻게?"
"그년은 김원국 조직과 한통속이었어요.

그년이 사는 아파트엔 김원국이 부하들이 좌악 깔렸습니다.

조웅남이나 오함마 같은 보스들도 아파트를 들락거리고 있어요.

그년을 습격할 바에는 차라리 경찰서 유치장으로 쳐들어 가는 게 낫33!소."
"아니 뭐요?"
위천산이 놀란 듯 말소리를 높였다.
"그 여자가, 그년이, 김원국 조직원이라구요?
10. Bf rl 221
"아, 그렇다니까요."
최정호가 짜증스럽게 말했다.
"도대체 홍콩에서 어떻게 했길래‥‥‥‥
"여보쇼, 최 사장."
위천산이 소리쳤다.
"지금 눈이 뒤집힌 건 나요. 최 사장은 손해 본 것이 없지 않소.

그리고 그 여자를 소개한 것도 당신 아니었소?"
"마약은 홍콩에서 돌렸단 말입니다.

그리고 나도 이번에 마약이 도착하지 않으면 신용이 크게 떨어져요."
위천산의 씨근거리는 숨소리가 전화기를 타고 흘러 나왔다.
"분명 합니 까?"
"내 참. 내 눈으로 보았습니다. "
최정호가 딱하다는 듯 말했다.
"알았소."
위천산은 전화를 끊었다.

최정호는 괄꿍치를 책상 위에 세우고 주먹을 쥐었다.

주먹에 얼굴을 가져다 댔다. 분통이 터졌으나 김원국의 조직에 도전할 수는 없었다.

한두 사람 가지고 될 일도 아니었다.

그리고 그들은 지금 경찰과 손을 잡고 있는 것이다.
아침을 먹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어머니가 전화를 받더니 장민애를 돌아보았다.
"민애야 전화 받아라. 김 사장 심부름이랜다. "
수저를 놓고 장민애가 달려가다가 어머니와 부딪쳤다.
"에이구 저 런."
어머니가 혀를 찼으나 곧 웃는 얼굴이 되었다.
"장민애 씨신가요?"
젊은 사내의 목소리가 들렸다.
"네, 그런데 누구세요?"
처음 듣는 목소리였으므로 장민애가 물었다.
"네, 저는 이동균이라고 김원국 사장님의 심부름을 온 사람입니다. "
"fl fl ‥‥‥‥
"제가 그쪽으로 갈까 하는데 잠간 나오실 수 있겠습니까?"
"이쪽으로요?"
"네, 전해 드릴 것이 있어서요."
"그럼 제가 나갈게요. 언제 오시는데요?"
"지금이 8시 30랄이니까 9시까지 가TE습니단."
"그럼 9시에 아파트 앞에서 기다리겠어요. 우리 아파트 아세요?"
"그게, 자세히 ‥‥‥‥
장민애는 그에게 위치를 가르쳐 주고는 수화기를 내려놓찼다.
"누구냐?"
어머니가 반찬을 집으면서 물었다.
"그이 심부름왔대요. 뭘 가져왔다구요,"
"어제 전화 왔었잖니,"
"응. "
장민애는 밥을 떠 입에 넣었다.
"요즘은 예식장 예약하기도 힘들어."
어머니가 문득 말했다.
"그런 걱정 안 해도 돼, 엄마."
"왜?"
"우리 아저씨 하나가 그러는데,

아침에 결흔하려고 맘만 먹으면 점심때 예식장을 통째로 빌려 주겠대."
조웅남의 말이었다. 무슨 수단을 쓸지는 알 수 없었으나

그의 말은 믿음성치 있어 보였던 것이다.
"에이구 쯧쯧."
어머니는 장민애에겐지 점심때 예식장 빌려 준다는 사람에겐지 모르지만 혀를 찼다.
아파트 앞에 서 있는 장민애 앞에 승용차 한 대가 와서 멈췄다.

운전사는 장민애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고 됫좌석에서 사내 한 명이 내렸다.
"장민애 씨세요?"
모두 처음 보는 사내들이었다.

웃는 얼굴로 사내가 다가와 머리를 숙였디·.
"네. 제가 그런데요."
"홍콩에서 피아노를 싣고 왔습니다.

짐이 어찌나 무거운지 가서 확인을 해주셔야겠습니다. 타시죠."
"어디에 있는데요?"
갑자기 웬 피아노일까 머리를 갸웃하였으나 김원국의 성격으로 뭘 보낸다고

생색을 낼 사람도 아니었다.
"바로 길건너에 있는데 받는 분이 서명을 하셔야, 짐이 많아서요."
장민애는 문을 열고 기다리는 사내를 힐끗 보고는 차에 올랐다
12시가 되자 어머니는 불안해졌다.

나간 지 3시간이 지나도록 장민애는 연락이 없었다

외출 차림도 아니었고바지에 티셔츠차림이었다.
그러다가 밖에서 친구나 만나는가 보다 하고 애써 마음을 가라앉혔다.
오후 3시가 되자 어머니는 전화기를 집어 들었다.

전화번호를 찾아냈다.

요즘 며칠간 쟝민애가 찾아간 제일상사에 걸어 보려고 생각한 것이다.

신호가 가자 곧 교환이 나왔다.
"제일상사입니다. "
어머니는 당황했다.

그러고 보니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었다.
"저어‥‥‥ 사장님 좀 바러 주세요."
사장이 누군지도 몰랐으나 사장실에 들르는 것 같았다.

교환이 혹시 누구냐고 물으면 어쩌나 조마조마했다.
"잠간만 기다리세요."
그러더니 곧 굵은 사내의 목소리가 나왔다.
"여보시오."
"저, 사장님이세요?"
"예, 그런디요. 아줌니는 누구쇼?"
정나미가 떨어지는 말소리였다.
"저, 제가 장민애 에미 되는데요‥‥‥‥
"아이고, 어머니."
어머니는 깜짝 놀라 수화기를 귀에서 몌었다.

혹시 잘못 알아들었는 가 싶었다.
"아이고 어머니께서 이게 웬일이시당가요?

형수씨, 아니 미스 장은 지금 집에 있는가요?"
어머니는 조웅남의 수선에서 정신을 차렸다.
"저어, 우리 민애가 아침 9시에 나갔는데요,

웬 전화를 받구요.

지금까지 아무 연락이 없어서요. 흑시나 하고‥‥‥‥
"예? 무슨 전환디요?"
저쪽에서 다시 버럭 소리를 질렀다.

어머니가 자초지종을 말해 주자 조웅남은 바로 연락드리」3다면서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다시 수화기를 집어 들었다.

신호가 가고 있어도 전화를 받지 않자조웅남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여보세요."
오함마가 전화를 받았다.
"야, 이 씨발놈아, 빨리 좀 받어."
"웬일이오, 형님?"
오함마가 졸지에 욕을 먹고는 짜증스레 물었다.
"너 혹시 형수씨헌티 물건 보냈냐? 아니먼 형님이 보냈능가?

형수씨가 9시에 물건 보낸 것 받는다고 나갔다는디, 전화가 왔다는디 말여,
어머니한티서 전화가 왔는디, 어떤 남자놈한티서‥‥‥‥
"가만, 가만, 형님, 천천히 말해 보쇼."
"씨발놈아, 어뜨케 천천히 허란 말여? 긍게 너도 몰르능구먼. 어허!"
"형님, 다시 말해 보란 말요!"
오함마가 고함을 쳤다. 조웅남이 침을 삼켰다.
"어떤 놈한티서 전화가 왔디야.물건을 형님이 보냈는디 갖고 왔다고 말여.

그리서 나갔는디 소식이 없디야."
"언제요?"
"아침 9시여."
"큰형님한테는 연락해 봤어요?"
"안 혔어."
"내가 해볼게요."
그러고서 전화가 끊어졌다.

수화기를 내려놓은 조웅남이 그렇다면 나도 해보겠다고 전화기를 끌어당겼다.

수화기를 들고 번호를 눌렀다.
직통전화였으므로 신호가 가고 나자 강만철이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만철이냐? 나다. "
"어, 웅남이. 웬일이냐?"
"야, 형님이 형수씨한티 물건 보냈냐?"
강만철은 어리둥절한 채 물었다.
"물건을 보내다니? 무슨 물건?"
"그걸 씨발놈아, 내가 알먼 머허러 전화허겄어? 보냈디야, 안 보냈디야?"
"이 자식은 정말, 잠깐 기다려라. 형님이 지금 함마 전화받고 계시니까."
잠시 후에 김원국이 전화를 받았다.
"웅남이냐?"
오함마의 이야기를 들었는지 그의 목소리가 가라앉아 있었다.
"형님, 거시 기 ."
"함마한테 들었다. 나는 물건'보낸 일 없다. 어떤 놈들의 소행이다. "
"누군디요?"
조웅남의 목소리가 떨렸다. 깅원국은 대답하지 않았다.
새벽 2시가 넘었으나 오함마는 집에 들어오지 알았다. 민회정은 시
계가2시를 치자조바심이 나서 견딜 수가 없었다. 전화기를 뚫어지게
바라보다가 건넌방으로 들어갔다.
"엄마."
자고 있던 어머니가 놀라 눈을 떴다.

시골에 있는 아버지에게 다녀 온 어머니는 피곤해 보였다.
"왜 그러냐?"
"나, 밖에 나가 있을게. 그이한테서 전화오면 나 밖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말해 줘요."
"지금?"
어머니는 벽에 걸린 시계를 보았다.
"이 시간에?"
"응. "
민회정은 얇은 잠바만을 걸치고 밖으로 나섰다.

어머니는 아무 소리하지 않고 따라나오던니 안에서 문을 잠갔다.

알던 짓을 하는 민회정이 놀라운 모양이었다.
민희정은 계단을 걸어 내려와 아파트의 현관에 나와 섰다.

현관 앞의 경비등에 안개처럼 하루살이들이 부옇게 몰려 있었다.

벌레들이 부딪쳐 왔으므로 민희정은 주차장 앞의 돌받침대에 걸터앉았다.
오함마와 같이 생활한 지 열흘이 되어가고 있었다.

두 번이나 살림을 차리고 살아 보았지만 민희정은 이렇게 행복한 적이 없었다.

첫째로 집안이 평화로웠다.

그리고 든든한 것이다 어머니와 미 란이가 그렇게 좋아할 수가 없었다.
될 수 있는 한 오함마는 일찍 퇴근하여 미란이와 놀아 주었다.

12시가 다 되어서 민회정이 가게에서 퇴근해 오면 미란이는

오함마의 품에 안겨 잠이 들어 있었다.

며칠 전에는 둘의 자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눈물을 흘렸었다.

10년 동안이나 자신을 기다려 준 남자였다.

그동안 그의 가슴을 그토록 아프게 해준 보상을 하고 싶었으나 지금도 그에게서
모든 것을 받고 있는 것이다.
아파트의 입구에 차가 들어서고 있었다.

차는 곧장 민희정 앞으로 다가왔다.

민희정이 자리에서 일어서자차는그녀의 앞에서 멈췄다.

라이트가 꺼지고 엔진 소리가 멈추더니 오함마가 내렸다.

민희정이 웃으며 다가갔으나 오함마의 얼굴은 굳어 있었다.
"왜요? 무슨 일 있어요?"
예민한 민희정이 그의 팔을 끼면서 물었다.

오함마는 머리를 저었다.
"여보, 무슨 일이에요?"
그의 팔에 매달리듯 걸으면서 민희정이 다시 물었다.
"걱정 있으면 저한테 얘기해요."
오함마는 대답하지 않았다.

아파트의 현관으로 들어가자 오함마는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집은 3층이었으므로 계단으로 올라가도 되었으나 그는 엘리베이터 앞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아이, 여보."
민회정이 그의 팔을 흔들었다.

그녀의 얼굴도 긴장되어 있었다.
"내 책임이야."
오함마가 문득 말했다.

그는 이를 힘주어 물고 있었다.
"내가 책임져야 돼."
"뭘요?"
민희정이 문득 두려움을 느끼며 물었다.

엘리베이터가 멈추고 문이 열렸다.

그들이 들어가자 문이 닫혔다.
"그놈의 마약 때문에."
단추를 누르려던 민희정이 힐끗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그녀는 힘주어 단추를 눌렀다.
"그놈의 자식들."
"그놈의 마약쟁이들이 형수씨를 납치했어."
엘리베이터가 멈췄다.

집으로 들어온 오함마는 소파에 앉았다.

옷을 벗을 생각도 하지 않았다.
"여보, 저에게 얘기해 줘요. 제가 도움이 될지도 몰라요."
민희정이 그의 옆에·다가와 앉으며 말했다.

그녀의 머릿속에 그날밤의 잔인한 장면이 떠올랐다.

지옥에 떨어진 듯한 고통과 쾌락의 순간들이었다.

박태운이 혁대를 휘두르고 자신이 매달리는 모습이 보였다.
민희정은 얼굴을 붉히며 이를 악물었다.

이제까지 오함마와 잠자지를 같이하면서 그에게 몸을 보이지 알았다.

아직도 그녀의 몸에는 박태운에게 얻어맞은 상처자국이 가시지 않았다.

그놈은 마약쟁이였고 자신에게도 마약을 먹인 것이다.
"여보, 내가 알 것 같아요."
민희정이 오함마의 팔을 잡고 흔들었다.

오함마가 마약쟁이를 처벌한다면 이 계제에 그놈을 없애야 했다.

오함마의 일과는 상관없을지라도

그놈을 오함마의 손아귀에 자연스럽게 쥐어 주고 싶었던 것이다.
다음날 아침 박태운이 회사에 출근하자 회사의 현관 앞에서

그를 기다리는 사내들이 있었다.
"좀 갑시다. "
한 사내가 박태운의 신원을 확인하자 어깨를 떠밀며 말했다.
"이봐요, 왜 이러는 거요?"
박태운이 눈을 부릅뜨며 소리쳤다.

그에겐 든든한 배경이 있었다.
"당신들 영장 내놔봐."
그러자 갑자기 창자가 토막토막 끊어지는 듯한 고통에

그는 허리를 숙이고 아침에 먹은 것을 현관에 게웠다.
"한번만 주둥이를 더 놀렸다가는 아예 창자를 꺼내 버릴 테다. "
머리 위에서 사내의 소리가 들렸다.

출근하던 직원들이 서너 명 주변에 멈춰 서 있었으나 그들은 감히 다가오지도 못했다.
"우린 이놈을 연행해 가는 거요."
사내가 주변 사람들에게 말했다.

그들은 현관 앞으로 다가온 승용차안에 박태운을 던지듯 밀어 넣었다.
빈 타오는 차오와 함께 차에서 내렸다.

현관 앞에서 위천산이 기다리고 있었다.

아직 새벽 6시밖에 되지 않았으므로 아침 안개가주변을 자욱하게 뒤덮고 있었다.
"빈 선생, 새벽부터 귀찮게 해서 죄송합니다. "
위천산이 정중히 허리를 숙였다.
"아니, 괜찮소. 중요한 일이라길래‥‥‥‥
위천산이 안내하는 대로 응접실로 따라가면서 빈 타오는 내심 불쾌 했다.

아무리 급하더라도 새벽부터 집에 와달라고 하는 것은 아랫사람에게나 하는 일이다.
빈 타오는 소파에 털쌕 주저앉았다.

차오가 그의 옆에 앉아 눈살을 찌푸리고 위천산을 바라보았다.
"그래, 무슨 일이오?"
빈 타오가 물었다.
"어제 한국에서 김원국의 약혼자를 납치했습니다. "
위천산의 말에 빈 타오가 상체를 바로 세웠다.
"이틀 전에 한국으로 마약 5킬로그램을 보냈는데 중간에서 김원국 일당이 가로채 어렸습니다. "
"허어."
빈 타오와 차오는 서로 얼굴을 마주 보았다.
"한국여자를 운반책으로 고용했는데 알고 보니까 그년이 김원국 일당이 었습니다. "
빈 타오는 놀란 듯 머리를 들었으나 입을 열지는 않았다.
"그년의 집은 김원국 일당들이 밤낮으로 지키고 있어서 가까이 갈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난 부하를 보내서 김훤국이의 여자를 납치했습니다.
흥정을 해야지요."
"그래, 그 여자는 지금 어디에 있소?"
"배에 실려서 황해바다 위에 있습니다. 홍콩으로 초고 있어요."
위천산은 빈 타오의 얼굴을 찬찬히 바라보았다.

어쨌든 이것은 자신의 실책이었다.

운반책을 잘못 쓴 것이다.
빈 타오로서는 마약 대금을 받았으므로 손해볼 것은 없었다.

그러나 자신의 능력을 의심하면 마약 공급을 주저하게 될지도 모른다.

위천산은 털어 놓고 협력을 구할 생각이었다.

빈 타오도 김원국을 눈의 가시로 생각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었다.

더욱이 탐 람이 살해된 원한도 있는 것이다.

김원국측은 홍성철이 중독되고 리첸을 이용하여 정보를 래 내간 원한도 있다.
겉으로 나타난 것은 거대한 2개의 조직탄 빈 타오와 김원국의 갈둥이었다.

위천산은 김뭔국과 대항하면서 빈 타오의 지원을 받고 싶었다.
"그래서, 어떡할 작정이오?"
한동안 말이 없던 빈 타오가 물었다.
"여자를 맡아 주십시오. 홍콩은 바닥이 너무 좁습러다.

 빈 선생이 여자를 맡아 주시면 제가 마음놓고 그놈과 협상할 수 있겠습니다. "
빈 타오는 차오를 돌아보았다.

차오는 그의 시선을 받았으나 표정을 움직이지 않았다.
"좋소. 맡아 드리겠소, 그렇지만 어디에서 그 여자를 나에게 인도할 작정이오?"
"그 배는 홍콩 국적선입니다.

나흘 후면 홍콩 앞바다에 도착하니까 공해상 아무곳에서라도 상관없습니다. "
"그럼 우리도 배를 준비해야겠군."
차오를 바라보면서 빈 타오가 말했다.

호텔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빈 타오는 한동안 입을 열지 않았다.

차가 시내로 들어서자 아침 출근 길의 차량에 막혀 주춤거렸다.
"차오, 서둘러서 빠른 배를 출항시켜라."
빈 타오가 입을 열었다.
"그리고 배끼리 연락을 해서 타이완 해협에서라도 인수받아 바로 태국으로 싣고 오도록 해라."
차오가 머리를 』1덕였다.
"그리고 우리는 오늘 모두 태국으로 돌아간다. "
"그래야 됩니다. "
차오가 입을 열었다.
"여기는 불안합니다. "
빈 타오는 차창 밖으로 시선을 주었다.
"김원국이 위천산의 짓입즈즐 알 텐데 가만 있을 리가 없다.

위천산한테는 미안하지만 하는 수 없지."
"저는 아까 보스가 홍콩에 남아 위천산을 돕겠다고 하실 것 같아서 조마조마했었습니다. "
빈 타오는 싱긋 웃었다.
"3건 위천산이 홍정을 잘못한 것이다.

처음에 같이 김원국과싸우자고 말을 꺼냈으면 내가 곤란했을 거다.

그런데 위천산은 여자를 맡아달라는 부탁을 먼저 꺼낸 거야.

난 그 부탁을 얼른 들어주고 홍콩을 떠나면 되는 거다.

여긴 마음이 놓이지가 않아."
빈 타오는 호주머니에서 마약이 든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아까 위천산의 손을 잡으면서 이게 이 사람손을 마지막으로 잡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더군."
"위험할 겁니다. "
차오의 말에 빈 타오는 잠자코 있었다.

차는 길이 뚫렸는지 다시 속력을 냈다.
"위천산은 위험한 짓을 했어."
빈 타오가 혼잣소리처럼 말했다.
"여자를 인질로 잡고 흥정을 한다고 하지만 이미 엎질렀진 물이야.
김원국에게서 당장에 무엇인가는 얻어 내』f지만 얼마 지나고 나서는 보복을 당하게 된다. "
"여자를 살려보내도 나중에 보복을 당할 것이 틀림없고 죽여도 마찬가지야.

어차피 둘 중 하나는 없어질 거야."
"어떻게 될지 재미 있군."
"우리는 여자를 데리고 태국에 들어가 있으면 됩니다. 김원국은 제
약흔자를 우리가 데리고 간 줄 알면 절망하겠군요."
빈 타오가 싱긋 웃었다.
천장에 달린 하얀 전등이 흔들리고 있었다.

장민애는 잠시 전둥을 바라보고 누워 있다가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낯선 방이었다. 방은 끊임없이 흔들렸고 엔진 소리가 귀에 들렸다.
방안에는 나무침대가 하나 놓여 있을 뿐이었고 앞쪽에 어린아이 머리 만한 둥근 유리창이 보였다.

 머리가 어지러웠으나 그녀는 침대에서 마 룻바닥에 두 발을 내려놓았다.

비틀거리며 창문으로 다가가 창밖을 내다보았다.

바다가 보였다.

장민애의 가슴이 내려앉았다.

집앞에서 차에 탔을 때 사내들이 얼굴에 덮어씌웠던 마취제의 냄새가 아직도 얼굴에 배어 있었다.
납치되어 배를 타고 실려가는 것이다.

장민애는 와락 옆쪽에 붙은 문으로 달려들었다

문의 손잡이를 움켜잡고 돌려 보았으나 문은 움직이지 않았다.

주먹을 쥐고 문을 두드렸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소리를 치면서 다시 두드렸다.

10번쯤 두드렸으나 밖에서는 아무런 기척이 없었다.

그러자 장민애는 공포감에 사로잡혔다.

몸을 돌려 구석에 놓인 침대로 돌아가 문을 바라보고 앉았다.

이제는 누군가가 문을 열고 들어올까봐 겁이 났다.

가슴이 세차게 두근거려 장민애는 두 손크3와을 가슴 위에 얹고 문을 바라보았다.

배는 끊임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인신매매단 생각이 났다.

배를 타고 처디로 팔려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자 눈물이 흘러 내렸다.

장민애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김원국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가 홍롱에 있다고 생각하자 다시 가슴이 아득하게 깊은 곳으로 떨어져 내리는 것 같았다.

그는 너무 멀리 있었다.

그와 곧 새로운 생활을 시작할 참이었다.

장민애는 죽는다는 것보다도 그것이 깨어질까 무서웠다.
그녀는 침대가에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얼마쯤 시간이 지났을 때 문쪽에서 절그럭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문이 열렸다.

사내가 들어섰다.

그녀를 납치한 사내였다.

장민애는 눈을 크게 뜨고 몸을 굳혔다.

그는 무표정한 얼굴로 주위를 훌어보았다.

30대의 혈색이 좋은 얼굴이었다.

그러고는 장민애의 얼굴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여보세요, 도대체 왜 이러는 거예요?"
안간힘을 쓰면서 장민애가 입을 열었다.

목소리가 떨렸다.
"시키는 대로만 해."
사내가 냉담하게 말했다.
"제발 절 보내 주세요. 그러면 은혜는 잊지 않을게요.전 곧 결혼을할‥‥‥‥
사내가 갑자기 얼굴에 웃음을 띠었으므로 장민애는 말을 멈췄다.
"넌 인질이야. 잠자코 있어."
장민애는 입을 벌렸다.
"넌 김원국의 여자니자 잡혀온 거야."
"그러니까 시키는 대로만 해.

그렇지 않으면 당장 선원들을 한놈씩이 방에 집어 넣을 테니까."
그는 장민에 위아래를 훌어보았다.

장민애는 온몸을 움츠렸다.
"괜찮군. 미인이야. 우선 나부터 하고 싶군."
"당신을 가만두지 않을 거야."
장민애가 그를 쏘아보며 말했다.
"당신, 그렇게 했다간 혼날 거야."
사내가 입술을 찌그려뜨렸다.
"더 매력적이군, 화난 얼굴이."
그가 한걸음 다가서자 장민애는 이를 악물고 벽에 등을 붙였다.
"여보세요! 사람 살려요!"
갑자기 장민애는 목청껏 소리쳤다.

사내는 우두커니 서서 그녀를 바라보았다.

헐떡이며 장민애는 소리치는 것을 멈췄다.

갑자기 목이 막혀 기침을 했다.
"그 모습이 보기 좋군."
사내가 말했다.
"이제 알73지? 소리쳐도 소용없다는 것을 말이야."
장민애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이 배에 네 편은 없어."
"얌전히 있도록 해."
그는 몸을 돌려 방을 나갔다.

문밖에서 열쇠를 채우는 소리가 들렸다.
"잠간만요!"
장민애가 마룻바닥을 달려나가 문고리를 잡아 돌렸으나 문은 열리지 않았다.

장민애는 주먹으로 문을 두드렸다.
"잠간만요! 여보세요!"
"왜 그러는 거야?"
문 밖에서 짜증난 듯 사내가 물었다.
"날 어디로 데려가는 거예요?u
"홍콩. "
장민애는 문앞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홍콩에는 김원국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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