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혼 ◑
사무실을 나오던 김원국은 입구에서 차영화와 마주쳤다.
직원과 함께 들어오던 그녀는 그를 보자 주춤거리며 발을 멈췄다.
그녀에게 머리를 』1덕여 보인 김원국은 그녀의 꾼을 지났다.
계단을 내려가는데 뒤에서 따라오는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차영화였다
그를 바라보면서 다가오고 있었다.
김원국은 멈춰 서서 그녀를 기다렸다.
"원 사장이 사무실에서 기다리는 것 같던데."
그가 말하자 그녀는 머리를 저었다.
"직원하고 이야기하면 돼요."
"난가시는 거죠? 같이 가요."
"어딜?"
차영화는 그를 올려다보았다.
말없이 바라보는 그녀의 눈동자에 자신의 얼굴이 박혀 있었다.
"이것봐, 무슨 일이 있는 거야?"
계단을 내려오면서 김원국이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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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어요."
"그럼 돌아가. 난 일이 있어."
차영화가 멈춰 섰다. 그는 잠시 그녀를 바라보았다.
"사반나 호텔에서 6시에 만나."
김원국은 몸을 돌렸다.
현관 앞에서 이형구가 팔짱을 끼고 서 있다가 차 쪽으로 달려갔다.
김원국이 머리를 돌려 뒤를 바라보았으나 차영화는 보이지 알았다.
만난 것도 뜻밖이었지만 그녀가 그런 식의 태도를 보이는 것도 의외였다.
그녀를 호텔로 나오라고 언뜻 이야기를 하였으나 그녀가 나올지도
그리고 자신이 나갈지도 알 수 없었다.
김원국은 다가온 차에 올랐다
6시 정각에 김원국은 사반나 호텔 현관에 도착했다.
따라 내린 이형구에게 말했다.
"9시에 이리 오너라."
이형구는 머리를 끄덕였다.
현관문을 밀고 로비로 들어서서 좌우를 둘러보았다.
지배인이 달려왔다.
"형님, 어서 오십시오."
그는 허리를 굽혔다. 차영화는 보이지 않았다.
로비에도 안쪽의 커피숍에도 없었다.
김원국이 몸을 돌리자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위에 서 있는 차영화가 눈에 띄었다.
꼼짝않고 서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횐색 바탕에 어지러운 나염무의가 있는 헐렁한 치마에 재킷 차림이었다.
김원국이 다가가자 말없이 계단을 내려와 그의 앞에 섰다.
김원국은 손을 들어 지배인을 불렀다.
지배인이 재빨리 다가왔다.
"방 열쇠를 가져와."
"네, 형님."
차영화는 표정없는 얼굴로 그의 가슴에 시선을 주다가 현관을 바라보곤 했다.
지배인이 열쇠를 가져와 김원국의 포켓에 살짝 넣었다.
"910호입니다, 형님, "
그가 속삭이듯 말했다.
방으로 들어오자 김원국은 윗도리를 벗어 소파위에 던졌다.
그러고는냉장고 위의 선반에서 양주 한병을 꺼내 잔에 따르고 얼음을 넣었다.
"어때? 얼음을 탈까, 아니면 그냥 마실래."
"그냥 주세요."
소파에 앉은 차영화가 말했다.
김원국은 진흥색 액체가 3분의 1쯤 든 유리잔을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그녀는 잔을 받자 단숨에 들이켰다.
그리고 잠시 가슴에 손을 얹고 움직이지 않았다.
"한잔 더?"
그녀가 머리를 끄덕였다.
병을 들고 간 김원국은 그녀가 내민 잔에 다시 3분의 1쯤 위스키를 따랐다.
그녀는 이제 잔을 들고 술을들여다 보았다.
김원국은 잔에 든 얼음을 흔들어 녹이면서 냉장고에 기대고 선 채 그녀를 바라보았다.
욕정이 일었으나 충분히 절제할 수도 있었다.
그렇다고 차영화를 괴릅히려는 의도도 없었다.
그녀가 계단에 서서 바라보고 있는 것을 본 순간 필요없는 절차와
시간 때우는 것 같은 말을 생략해 버리기로 마음먹었던 것이다.
욕정을 발산하는 데 말과 예의는 필요없었다.
짐승처럼 부딪치고 혜어지면 되는 것이다.
김원국은 잔을 들어 위스키를 조금씩 마셨다.
차영화가 다시 한번에 술을 삼켰다.
드러난 목의 곡선이 고왔다.
그녀는 입을 벌리고 알코을의 독한 기운을 뱉어 내려는 듯 헐떡 거렸다.
"이제 그만 마셔."
김원국이 말했다.
차영화가 얼굴를 번쩍 들어 그를 바라보았으나 입을 열지는 않았다.
"기름칠은 그만하면 줬어."
김원국은 와이셔츠를 벗어 소파 위에 걸쳤다.
러닝 셔츠 바람이 되었으나 다시 그것도 벗어 던졌다.
차영화가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김원국은 그녀 앞으로 다가가 두 팔을 잡아 일으켜 세웠다.
차영화는 힘이 빠진 듯 겨우 따라 일어섰다.
입에서 방금 마신 달롱한 술냄새가 났다.
차영화는 재킷을 벗었다.
치마를 끌어 내리고 브래지어를 풀었다.
김원국은 그녀 앞에 서서 드러나는 그녀의 몸을 바라보았다.
브래지어가 발 밑으로 떨어지고 풍만한 가슴이 드러났다.
펀티를 끄집어 내리자 짙은 숲이 보였다.
김원국근 그녀의 상반신을 끌어안았다.
차영화는 하쳬를 거세게 밀착시키면서 두 팔로 그의 목을 감았다.
벌린 입에서 가쁜 숨소리가 들렸다.
김원국은 그녀를 번쩍 안아 침대 위에 던져 놓았다.
침대가 출렁이고 그녀의 팔다리가 같이 흔들리다가 멈췄다.
김원국은 그녀를 거칠게 몰아붙였다.
그가 거칠게 부딪칠수록 차영화는 순종하는 고양이가 되었다가
잠시 멈추면 표범처렁 앙칼지게 대들었다.
이윽고 그녀의 팔과 다리에 힘이 풀리면서 그의 몸에서 떨어져 나갔다.
그녀는 온몸을 내던진 채로 눈을 감고 가뱉 숨을 몰아 쉬었다.
김원국은 그녀의 몸 위에서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차영화가 눈을 떴다.
김원국의 시선과 마주치자 그녀는 웃어 보였다.
따라 운으며 김원국은 몸을 돌려 욕실로 향했다.
가운을 걸친 김원국은 소파에 앉아 수화기를 집어 들었다.
다이얼을 누르자 곧 신호가 갔다.
"여보세요."
강만철이 전화를 받았다.
"응, 나다. 어떠냐?"
"성철이가 심각합니다. "
8.청 혼 167
김원국은 침대에 누워 있는 차영화를 힐끗 바라보았다.
"어느 정도야?"
"지금 방에 가둬 놓고 있습니다. "
"칠성이를 만났습니다.
칠성이는 곽도위하고 같이 용궁 호텔에 있습니다. "
"알고 있다. "
"말씀하신 대로 칠성이하고 공식적으로는 접촉하지 않고 있어요.
그리고 빈 타오가 태국에서 차오 중령이라는 자기 경호대장을 불러왔습니다. "
"탐 람이 살해되고 나서 빈 타오나 위천산이 긴장하고 있어요.
칠성이 말을 들으니까 자주 만나는 모양입니다. "
"성철이는 어느 정도야?"
강만철은 잠시 입을 열지 않았다.
"얼마나 심각해?"
김원국이 다그치듯 물었다. 차영화가·눈을 뜨고 그를 바라보았다.
"성철이는 방에 묶어 왔습니다. 제가 묶어 달라고 해서요."
"지금 당장 병원에 입원시켜라."
"네. 그링게 해야 할 것 같아요."
"성철이가 그렇게 된 것 누가 알고 있어?"
"몇 명밖에 모릅니다만, 그건 모르지요. 소문이 어떻게 퍼졌는지."
김원국은 이맛살을 찌푸렸다.
"그리고 리첸도 병원에 수용시켜."
"f1?"
강만철이 의외라는 듯 물었다.
168
"리첸도 말입니까?"
"그래, 같이 입원시켜라."
"형님, 그년은 빈 타오의 첩자였습니다. 그리고 성철이를‥‥‥‥
"여러 소리 말고, 지금 당장."
"알았습니다. "
"조만간 내가 가겠다. 다시 연락하겠다. "
수화기를 내려놓은 김원국은 잠시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어떻게 해서 홍성철이 리첸과 깊은 관계에 빠지고 마약 중독이 되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그녀가 홍성철을 중독시키고 정보를 내 빈 타오에게 넘긴 것은 사실이었다.
"여기서 주무실 거예묘?"
차영화가 물었다.
시트로 벗은 몸을 가린 채 그를 바라보고 누워 있었다.
김원국은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화장이 지워진 얼굴은 나른한 피로와 포만감에 젖어 평온해 보였다.
"아아, 좋았어요."
차영화가 두 다리를 시트 밑으로 쭈욱 뻗으면서 말했다.
시트 밖으로 두 발이 빠져 나왔고 발가락끝이 잔뜩 안쪽으로 굽혀졌다.
"이젠 당신의 얼굴만 봐도 온몸이 짜릿해요."
"닥쳐 ."
김원국의 나직한 말에 차영화가 얼굴을 굳혔다.
"쓸데없는 말 하지 마라."
"난 하지도 않았어."
차영화는 눈을 깜박였다.
그러고는 곧 얼굴이 붉게 상기되었다.
김원국은 자리에서 일어나 옷장문을 열었다.
가운을 벗고 셔츠를 꺼내 걸쳤다.
"오늘은 네가 나한테 지고 있는 부담을 털어 주는 자리였다.
안 그래?"
"그래서 넌 나에게 주었고 나는 받았어. 그럼 줬어."
그는 바지를 입었다.
"그러니까 그런 소린 필요없어."
김원국은 저고리를 집어 들고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빨개졌던 얼굴이 하앙게 굳어진 채 그녀는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흐트러진 시트 사이로 헝클어진 머리와 개성 있는 얼굴이 묘한 조화를 이루었고 아름다웠다.
김원국은 몸을 돌렸다.
"돈은 가져왔지?"
박태운이 묻자 고상배가 머리를 끄덕였다.
"이봐, 쪼갤 때 조심해야 되는 것 알고 있지?
절대로 얼굴 드러내지 말란 말이야."
고상배가 혀를 찼다.
"누굴 어린애로 보슈?
그러다가 신세 조진 놈이 한둘이 아닌데.
내가 드러내 놓고 이짓 할 것 같소?"
30대 후반으로 보이는 고상배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인기가수인 이훈의 매니저인 그는 박태운의 중간 공급책이었다.
"나는 형님밖에 모르지만 나에게서 가져가는 놈들은 날 알지도 못해.
형님이 누구에게 받는지도 모르고 말이오."
"알 필요도 없지. 너하고 나 사이는 특별한 관계지만 말이야‥‥‥‥
고상배는 호주머니에서 봉투를 꺼내 박태운에게 내밀었다.
"결국 잡히게 되면 형님선에서 끝나게 되겠군요."
봉투에서 꺼낸 수표를 세어보던 박태운이 코웃음을 쳤다.
"네가 나를 분다는 이야긴데, 그땐 내가 잡히더라도 네 가족이 위험 할 거다. "
박태운은 서람에서 조그만 가방을 꺼내 탁자 위에 놓았다.
"이번에 우리 조직이 철저하게 보강된 것을 알고 있』R지?
나도 내 윗선이 누군지 몰라.
또 그 위는 말할 것도 얼고. 그건 알 필요도 없는11야."
"그럼 형님은 물건 어떻게 받소?"
"전화 연락이 와서 바러치기 하는 거지."
"형님이 물건 주는 건 나 하나밖에 멈소?"
박태운은 인상을 썼다.
그와는 연예인 사업 관계로 10년이 넘게 형님 동생하는 사이로 지내왔기 때문에
그를 못 믿는다면 세상에 믿을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그런 말 못하는 줄 알고 있잖아?
내가 네 공급자들을 물어 보지 않고 알려고 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야."
"알았소. 난 갑니다. "
고상배가 가방을 집어 들고 일어섰다.
"어쩠든 한밑천 잡으면 되니까. 안 그렇소?"
고상배가 방을 나가자 박태운은 수표를 호주머니에 집어 넣었다.
시계를 들여다련 그는 수화기를 들고 다이얼을 눌렀다.
신호가 가자 기다렸다는 듯이 여자가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아, 김 여사세요? 난 강 사장입니다. "
"네, 강 사장님."
"준비되셨지요?"
"fl . "
"그럼 저녁 7시 정각에 다시 연락을 드리지요."
8.청 혼 171
"fl . "
박태운은 그녀가 30대의 여자라는 것밖에 알지 못했다.
그녀가 받는 전화도 집의 전화가 아닌 것은 분명했다.
그녀가 일주일에 한 번씩 연락처를 바러 미리 알려 주므로
어느 펀 다방이 되었다가 어느 뻔 식당에서 전화를 기다리기도 했던 것이다.
그녀가 박태운의 신원을 모르고 있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오직 고상배와 서로 알고 있을 뿐이었다.
박태운은 책상에 앉아 길게 기지개를 켰다.
바깥사무실에서 전화벨이 울리는 소리와 직원들의 말소리가들렸다.
여자들의 웃음소리도 들렸다.
디자인 학원을 운영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방송국에 출연하려는 가수나 신인배우들을 위한 로비사업도 겸하고 있었으므로
그의 회사는 여자들이 득실거렸다.
박태운은 문득 민희정 생각이 났다.
그날 새벽에 호텔에서 집으로 데려다 준 이후로 소식을 끊었었다.
박태운의 얼굴에 웃음이 떠올랐고 눈빛이 번쩍였다.
40이 넘은 나이로 이제까지 수많은 여자들을 겪어 왔지만
그날 밤처럼 강렬한 쾌락을 맛본 적도 드물었다.
물론 마약을 서로 먹은 탓도 있었을 것이다.
그녀는 얻어맞으면서도 절정에 올라 울부짖었다.
가슴속에서 거부감이 치밀어올라 본능과 싸우고,
본능에 허물어져가는 그런 모습을 보면 말할 수 없는 쾌감을 느끼는 것이다.
박태운은 벽에 걸린 달력을 바라보았다.
그날 밤 이후로 벌써 일주일이 지났으니 이제 민희정의 상처도 아물었을 것이다.
그는 극녀가 수치심 때문에 입을 열지 못하리라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일을 두어 번만 더 계속하면 이제 그녀가 먼저 그렇게 해주기를 원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민희정은 거울을 들여다보았다. 화장하지 않은 얼굴을 손바닥으로 쓸었다.
눈밑에 약간 거뭇한 자국이 있었으나 상처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입술은 딱지가 떨어져 새 살이 돋아나 있었다.
일주일이 넘는 동안 그녀는 방안에만 들어앉아 있었다.
텔레비전도 보지 않고 그저 우두커니 벽을 바라보다가 침대에 웅크리고 눕고는 했다.
가게에서 종업원들이 문병을 왔어도 얼굴을 내보이지 않았다.
어머니가 울면서 푸념을 하는'통에 하루에 한끼 정도 밥을 먹는 시능을 했다.
입을 꼭 닫고 말도 하지 않고 전화도 받지 않았다.
미란이가 방에 들어와 조잘대면 할 수 없이 몇 마디 말상대는 해주었다.
무기력해지고 만사가 귀찮았다.
하는 일이라고는 하루에 서너 번씩 문을 콜어 주는 일밖에 없었다.
벨소리가 들리자 응접실에서 어머니가 나서는 기척이 들렸다.
그러고는 미란이의 자은 목소리가 아파트를 가득 채웠다.
"저런, 또 넘어졌어? 저 옷 좀 봐."
어머니가 수선을 부렸다.
"안 넘어졌어. 꽃밭으로 들어가서 그런 거야."
미란이는 요즘 신바람이 나 있었다.
학교에서 돌아오기만 하면 자전거를 끌고 나갔다.
노란색의 예쁜 자전거였다.
처음엔 걱정이 된 어머니가 쫓아나갔므나 따라다니는 것에 지쳤는지 혼자 올라와 버렸다.
어제부터 미란이는 보조바퀴를 몌고 달리게 되었다.
방문이 올리고 미란이가 들어왔다.
"엄마, 나 학교 운동장에서 자전거 탈게."
빨강색 바지의 무릎과 엉덩이에 흙이 잔뜩 묻어 있었다.
"저런, 저 흙 좀 봐."
민회정이 얼굴을 정그렸다.
"엄마, 친구들이 밖에서 기다린단 말이야. 운동장에 갈 테야."
미란이의 몸과 옷에서 싱싱한 바깥 냄새가 풍겼다.
체스터에 출근한 민희정은 일주일 동안 자기가 나오지 않았는데도
종업원들이 나름대로 가게를 꾸려간 것에 안심이 되었다.
주방장까지 포함해서 7명의 단촐한 식구였다.
저녁 8시가되어 손님들이 들어서기 시작하자민희정의 가슴이 갑자기 두근거렸다.
알 수 없는 설레임이었다.
자신도 모르게 손님이 들어서는 기척이 나면 문쪽에 시선을 주었다.
9시가 넘자 흘에는 여러 팀의 손님들이 모여 소란스러웠다.
이쪽 저쪽으로 바쁘게 움직이던 민희정은 화장실로 들어섰다.
화장실에는 아무도 없었으므로 그녀는 벽에 걸린 거울을 우두커니 바라보았다.
그리고 오함마를 떠올렸다.
이제까지 한사코 지우려고 했던 그 희미했던 것이 오함마의 영상인 것을 알았다.
자신도 모르게 출입구를 바라본 것도, 기를 쓰고 체스터에 나온 것도 그럴 것이다.
그녀는 오랫동안 화장실 벽에 등을 기댄 채 서 있었다.
"어마, 언니."
화장실에 들어온 미스 현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언니, 전화가 왔었어요. 한참 찾아다녔는데. 두 번이나 왔어요."
민희정은 침을 삼켰다.
흘로 돌아간 그녀는 손님들의 시중을 들면서 카운터를 돌아보았다.
30달쯤 지났을 때 카운터의 미스 리가 그녀를 바라보았다.
한손에 수화기를 들고 있었다. 민희정은 테이블 사이를 지나 그녀에게 다가갔다.
"여보세요?"
"여어, 민 마담? 나야. 박태운이야."
민희정은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두근거리던 가슴의 고동이 갑자기 멈추고는 숨이 막혔다.
다시 벨이 울리자 미스 리가 수화기를 들었다.
그러고는 민희정을 바라보았다.
민희정은 테이블 사이로 걸어 들어갔다.
손님들에게 웃음을 지어보이면서 다시 화장실로 들어섰다.
제일유통 사무실에 앉아 있던 오함마는 시계를 보았다.
밤 10시가 넘어 있었다.
홍성철과 강만철이 모두 홍콩에 있었으므로유통의 본부일을 대신 맡고 있는 것이다.
오함마는 자리에서 일어나 저고리를 집어 들었다.
사무실에는 두어 명의 직원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밖으로 나오자후텁지근한 밤공기가 그의 몸을 감쌌다.
곧 비가 내릴 것 같은 날씨였다.
어둑한 주차장에 그의 검정색 차가 세워져 있는 것이 보였다.
오함마가 다가가자 차 앞쪽의 어두운 그늘에서 사람의 그림자가 보였다.
민희정이었다.
그녀는 다가오는 오함마를 바라보고 서 있었다.
"웬일이야?"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왜? 가게에 건달들이 들락거려?"
오함마는 열쇠를 돌려 문을 열었다.
차에 시동을 걸자 민회정이 옆 좌석의 문을 열고 올라앉았다.
"이젠 네가 해결해, 내려."
갑자기 민희정은 오함마의 한쪽 팔을 부둥괴안고 울음을 터뜨렸다.
얼굴을 그의 어깨에 묻고는 서럽게 흐느껴 울었다.
놀란 오함마는 앞을 바라본 채로 움직이지 않았다.
그리고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라는 생각을 떠올렸다.
아마 열 번도 넘을 것이다.
미란이 애비되는 놈이 전세금까지 빼내어 도망쳤을 때도 이랬고,
미란이가 아팠을 때도 이랬다.
다른 놈하고 살 적에 얻어맞았다면서 이렇게 붙들고 울었고,
또 그놈하고 헤어졌을 때도 이러었다.
오함마는 이를 악물었다.
이젠 이런 진절머리나고 병신같은 짓은 그만 두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왜 그래?"
오함마의 입에서 불쑥 그렇게 말이 나왔다.
그러자 울화통이 터졌다.
"왜 그러냔 말야!"
그가 버럭 고함을 지르자 민희정은 딸꾹질을 하면서 겨우 울음을 멈췄다.
"우리집에 가.9.."
그녀는 휴지를 찾는 듯 두리번거렸다.
오합마가 손수건을 건네주자 눈물을 닦고는 코를 풀었다.
"뭐 하러?"
민회정이 다시 딸꾹질을 했다.
"나하구 살어 ."
오함마는 이맛살을 찌푸렸다.
실감도 나지 않았고 집으로 밥먹으러 가자는 소리처럼 들렸다.
"당신이 없다고 생각하니까 난 못살 것 같았어요."
민회정이 다시 딸꾹질을 했다.
"집에 가요."
"응?"
오함마는 브레이크를 풀었다.
"아니 웬일이냐?"
어머니가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그녀는 민희정이 일주일만에 가게에 나가자 조금 마음이 놓였다가 오함마를 데리고 들어서자
놀라는 것 같았다.
"자넨 안 온다고 하구선‥‥‥‥
어머니가 오함마를 바라보았다.
소파에 앉은 오함마는 머리를 긁었다.
"어쩠거나 자네 덕분에 우리 미란이가 얼마나 좋아하는지.
맨날 옷 을 버리고 온다네."
"미란이는 잡니까?"
"응. 12시가 넘었으니 자야지, 이젠 제 엄마 기다리지도 랴아."
방에서 옷을 갈아입고 나온 민회정이 오함마 옆애 앉았다.
"엄마, 나 함마 씨하고 살겠어요."
"살어?"
어머니의 눈이 휘둥그래졌다.
그녀는 민희정과오함마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살림차리는 것은 몇 번 려어 봤기 때문에 신기할 것도 없으나
오함마와 함께 산다는 것이 놀라운 모양이었다.
"자네, 그게 정말인가?"
"예, 살림이 아니라 결혼을 할랍니다. "
"결혼?"
어머니가 입을 벌렸다.
"그럼 식을 올린단 말인가?"
"그래야죠."
민희정은 잠자코 있었다.
결혼식 이야기는 아직 오함마와 하지도 않았던 것이다.
민희정의 가슴이 뛰었다.
그러고는 얼굴이 달아올랐다.
이제까지 그녀는 결흔식을 올려본 적이 없었다.
"암, 당연히 식을 올려야지. 그래야 쓰는 거야."
어머니가 만족한 듯 머리를 끄덕였다.
"앞으로 어머니 잘 모실랍너다. "
오함마의 말에 어머니의 눈에 금방 눈물이 고였다.
"에이고, 둘이 잘살면 고만이지.
나야 늙은 것이 얼른 죽으면 잊어 먹을 것이고,
우리 미란이가 첫째로 좋아하겠구먼.
자네를 그렇게 따르니까 말이네, "
어머니가 손끝으로 눈가를 닦았다.
8.청 혼 177
"저년이 역마살이 끼었는지,
얼굴값을 하려고 그러는지 남자들을 노리개로 삼듯이 하더니만."
그러다가 잠시 말을 멈춘 그녀는 오함마가 속속들이 사정을 알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우쳤다.
"이제야 자네하고 살게 되었구먼. 내가 몇 년 전에도 몇 번 이야기를 했더니만 들은 척도 안 하던 년이."
"엄마, 이제 그만."
민희정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고는 주춤거렸다.
"전 이제 가볼람니다. "
오함마가 일어섰다.
"이 사람아, 자고 가게.희정이가 나하고 같이 자면 되지.늦었으니 자고 가게."
"아뇨, 차타면 금방입니다. "
"자고 가요."
민희정이 말했다.
"당신이 우리 집에서 처음 잠을 자는 남자예요."
오함마가 머리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몸을 돌려 방으로 들어갔다.
이부자리를 펼 모양이었다.
"저년이 일주일 동안 말두 않고 있었다네,
나는 죽을려고 작정을 했들는가 하고 겁이 났었어."
어머니가 말했다.
소파에 엉거주춤 다시 앉은 오함마는 그녀를 바라 보앗다.
"그러더니 자네를 만날라고 옷입고 나간 모양이구먼. 작심한 모양여."
"그래도 자네가 오지랄이 넓은 사내여.내가 사람을 잘 보지.
인제 저년도 임자를 만난 거네, 암."
어머니는 흥이 난 것처럼 보였다.
"이부자리 다 폈어요."
민회정이 다가와 그의 어깨를 흔들었다.
"자리끼도 가져다 놓거라."
어머니가 말했다.
전화벨이 울리고 있었타.
최정호는 책상으로 다가가 서둘러 수화기를 집어 들었다.
"여보세요."
"아, 최 사장입니까?"
위천산이었다.
"예, 접니다. 위 사장이시죠?"
"그곳 어떻습니까? 공급은 잘 됩니까?"
위천산이 대뜸 물었다.
"문제 없어요. 그리고 돈은 받으셨지요?"
"예, 받았습니다. "
마약 대금으로 200만 달러를 보탰다.
한국에서 현금을 보내거나 가지고 나갈 수가 없으므로 스위스에 예금된 돈을 보낸 것이다.
3년 전부터 최정호는 마약 대금을 스위스 은행의 구좌에서 지급하고 있었다.
그것이 안전했다.
그는 외국인 거래선과 100만 달러의 제품 수출계약을 맺으면 그들에게 50만 달러로
신용장을 열고 나머지 50만 달러는 스위스은행에 입금시켜 주도록 요청했다.
그들은 100만 달러 값어치의 물품이 들어오고 돈을 지불하는 것은 마찬가지므로
그렇게 해 주었다.
그들에게 꺼림칙한 것은 없었다.
다만 한국의 생산업자인 최정호의 공장이 반값에 물품을 수출하는 것이 되어서
지독한 적자에 허덕였지만 그것은 생색을 내듯 최정호가 자금을 대면 되었다.
"난 최 사장만 믿습니다. "
위천산이 웃음띤 목소리로 말했다.
"우린 크게 기대를 걸고 있어요."
"공급만 제대로 되면 문제가 없어요."
"내가 그것 때문에 전화를 했는데."-
위천산이 말했다
"최 사장이 그 여자의 스케줄을 조정해 주시오.
다음 주면 어떻습니까? 우린 이번 주말까지 준비가 끝납니다. "
"다음 주요?"
최정호는 달력을 보고 나서 말했다.
"그럼 다음주 월요일.그러니까 29일에 다음달 물량을 받기로 합시다. "
"좋아요. 그럼 대금 지급은 이번과 같습니까?"
"네.그런데 여자의 스케줄에 차질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내가 곧 만나겠지만 만나고 나서 다시 정확한 스케줄과 계획을 이야기하도록 하시다. "
최정호의 말에 위천산이 긴장한 듯 목소리가 딱딱해졌다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아니, 아직은. 다만 날짜가 어떨지 몰라서 말이오."
최정호는 시계를 들여다보았다.
지금 당장 한세라에게 전화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럼 기다리겠소."
위천산은 전화를 끊었다.
최정호는 다시 달력을 바라보았다.
오늘이 26일이니까 29일이면 사흘밖에 남지 않았다.
그동안 한세라와 한번도 접촉해 보지 않았으므로 미리 준비를 시켜야 했다.
최정호는 수첩을 꺼내 전화번호를 확인한 다음 수화기를 들었다.
그의 얼굴에 웃음이 떠올랐다:그녀를 만난 것은 우연이었다.
그녀는 대담했고 요령이 좋았다. 경험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것은 그녀가 자신이 무엇을 운반하고 있다는 것을 모른다는 것이었다.
그녀의 당당한 얼굴 표정을 보면 아무리 사냥개 같은 마약 단속반도 입맛을 다시고 돌아서는 것이다. 신호가 가자 여자가 수화기를 들었다.
"한세라 씨 계십니까?"
최정호가 정중하게 물었다.
한세라가 커피숍에 들어서자 기다리고 있던 최정호가손을 들어 보였다.
"여어, 미스 한. 그동안 더 아름다워지셨습니다. "
최정호가 온 얼굴에 웃음을 띠면서 말했다. 한세라가 생긋 웃었다.
하얀 치아가 드러났고 최정호는 이 여자는 공치사가 아니라
실제로도 매력이 있다고 느꼈다.
탄력 있는 피부와 늘씬한 몸매가 돋보였고 그를 바라보는 시선이 당당했다.
"요즘 바쁘십니까?"
최정호가 지나가는 말처럼 물었다.
그는 지난번에 그녀가 개인적인 일로 바쁘다고 했던 것이 내내 마음에 걸렸다.
그리고 다음 스궤줄은 언제가 될지 알 수 엄다고 말했었다.
그는 이번에는 사례금을 두 배라도 올려줄 작정이었다.
그녀같은 보따리 밀수꾼은 한두 사람이 아니었지만 세관원들과도 서로 안면이 있었다.
큰돈이 없어서 자질구레한 화장품이나옷가지들,소형 전자제품들을 들여와 차액을 남기는
장사를 하므로 세관원들은 가끔씩 그냥 내보내 주기도 했다.
그리고 검사도 대충 넘어가는 형편이었다.
8.청 혼 181
"네, 그저 그래요. 그런데 무슨 일이세요?"
한세라는 아직 앞에 앉은 배 사장이란 사람이 무엇을 하는 사랑인지도 몰랐다.
그의 전화번호도, 이름도 알지 못하는 것이다.
지난번 홍콩을 가기 전에 전자상가에 있는 김씨가 그를 소개시켜 주었고,
그의 부탁으로 홍콩에서 전해 주는 장난감을 가져와 사례금을 받은 것뿐이었다.
"저, 이번에 홍콩에서 뭘 가져을 것이 있어서 그러는데,
가실 계획이 있다면 그때 가져오셨으면 해서요."
"또 장난감이에요f"
한세라가 웃으며 물었다.
"아니, 이번엔 친구가 저에게 주는 선물입니다.
그놈이 보낸다길래 언뜻 미스 한 생각이 나서 아예 미스 한에게 부탁할까 해서요."
"전 아직 준비가 덜 됐는데‥‥‥‥
"준비라니오?"
최정호가 상체를 기울이며 물었다.
준비가 덜 뤘다면 갈 준비는 하고 있는 것이다.
"아직 돈 준비가 덜 됐어요."
"이번엔 제가 사례금을 두 배 드리지요.
내가 갔으면 좋겠는데 내가 한 시간도 자지를 비울 수 없는 몸이라."
"두 배요?"
한세라가 눈을 크게 떴다. 지난번에 50만 원을 받은 것이다.
그저 물건을 가져다 주기만 하는데 100만 원이면
그 돈으로 비행기.값하고 호텔 비용에 관광요금까지 해도 되었다.
"무슨 물건인데요?"
한세라가 얼굴을 긴장시키며 물었다.
"하하, 긴장하신는데, 내 아들에게 줄 모터 비행기예요.
거,보셨잖습니까?
모형 비행기가 날아다니는 것 말입니다.
지상에서 운전을 하구 말예요."
한세라가 머리를 끄덕였다.
"한국에선 그걸 만들지 못해요.
그거 독일젠데 아들놈이 어찌나 성화를 대는지 제 친구가 겨우 준비했답니다. "
"그럼 다녀올게요."
최정호는 만족한 듯 머리를 』1덕였다.
"그럼 제가 돈을 미리 드리죠. 아까 돈이 부족하시다고 들』서 그냥 넘꺼갈 수가 없군요."
최정호는 지갑에서 수표를 꺼내 한세라에게 내밀었다.
"다음 주 월요일에 출발하시면 됩니다.
어느 호텔에 묵으실 예정이죠f"
한세라는 눈을 깜박이며 그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이제 김칠성의 말
대로 보따리사업은 그만둘 생각이었다.
김칠성은 지금 홍콩에 있었다.
그녀는 최정호의 제의를 듣자 불현듯 그에게 달려가고 싶었다.
갑자기 그의 앞에 나타나 그가 놀라는 것을 보고 그리고 함께 있고 싶었던 것이다.
최정호는 적절한 시기를 잡은 셈이었다.
"용궁 호텔에 묵을 거예요."
한세라는 탁자 위에 놓인 수표를 집어 ·들고 일어섰다.
용궁 호텔에는 지금 김칠성이 묵고 있었다.
장민애가 환하게 웃으며 사무실로 들어섰다.
손에는 활짝 핀 꽃이 든 바구니가 들려 있었다.
"지나다가 들렀어요."
"일부러 와도 돼 그 꽃 예쁘구나."
"예쁘죠? 사무실이 삭막한 것 같아서요."
8.청 혼 183
장민애는 탁자 위에 꽃바구니를 올려놓았다.
김원국은 바구니에 담 긴 꽃을 이리저리 옮겨 놓으면서 모양을 내는
장민애를 물끄러미 바라 보았다.
그녀의 손가락과 열중한 옆모습이 머릿속에 사진처럼 박혀 나갔다.
"췄어요?"
장민애가 머리를 들었다.
"응?응, 됐다. "
처음과 별로 다른 것도 없어 보였다.
"무슨 생각해요?"
김원국은 눈을 깜박이며 생각을 만들어 보려다가 시계를 보았다.
오후 6시가 넘어 있었다.
"나가서 저녁 먹자."
"바쁘지 않아요?"
김원국은 웃으면서 자리에서 일어섰다.
차는 강남대로를 달리다가 오른쪽으로 려어져 올림픽 대로로 들어섰다.
좌측에서 달려오는 차를 백 미러로 살펴보던 김원국은 2차선으로 들어서자 속력을 냈다.
장민애는 라디오의 스러치를 켰다가 잠시 후에 눌러 꺼버렸다.
엔진의 소음도 들리지 않았으므로 차 안은 정적에 싸였다.
김원국은 장민애의 시선이 얼굴에 와 닿는 것을 느꼈으나 잠자코 앞을 바라보았다.
빨강색 스포츠카가 3차선에서 맹렬히 달려 앞으로 나가다가 앞차에 막혀 속력을 줄였다.
그들은 스포츠카를 스쳐 지났다.
"난 아버지의 얼굴도 모른다. "
장민애가 퍼뜩 얼굴을 돌려 그를 바라보았으나
김원국은 담담한 표정으로 앞을 향해 앉아 있었다.
"기억도 없고 사진도 얼어.
내가 한 살 때라니까 낳자마자 돌아가신 모양이야.
바쁘셨던 모양이지?"
그러면서 싱긋 웃었다.
"어머니는 내가 5살 때 도망친 것 같아.
할머니 말로는 일본으로 돈 벌러 갔다는데 편지 한장 없고,
돈 벌어서 보내준 것도 없으니까 도망친 것이지 뭐 , "
"괜히 신파쪼로 이야기하는 게 아냐. 장민애 씨 잘 들어."
앞을 바라본 채 김원국의 말투가 차가워졌다.
"잘 들어요."
놀란 장민애가 대답했다.
"할머니도 내가 어렸을 때 돌아가신 것 알고 있지?"
"응. "
"중학교 때 돌아가셨는데 그뻔 좀 울었던 것 같아.
잠자기 흔자 있게 되니까 무섭고, 쓸쓸하고, 그러더라니까,
혼자 빈집에 앉아 며칠 동안 있다 보니까 선생님이 찾아왔더군."
"그래서 난 다시 학교에 다녔고, 이렇게 되었는데."
김원국은 앞을 가로막고 천천히 달리는 차를 향해 클랙슨을 울렸다.
"온전한 가정환경에서 자라지를 못했지.
따뜻한 것을 언제나 꿈꾸고 있지만 그런 경험이 없다 보니까,
그리고 그것이 올 것 같지도 않으니까 난 저항하게 되었어."
"기다리다가 주어지지 않았을 때 느낄 배신감이나 절망감이 두려웠던 게야.
그래서 처음부터 잘랐어. 거부하고, 저항한 거야."
"알아요."
"아는 체하지 마,"
김원국이 입맛을 다셨으나 기분 나쁜 것 같지는 않았다.
"그것이 문제야."
김원국이 앞을 바라보며 말했다.
"나는 거부하고, 반발하다가 나중에는 절재와 자기단련을 하게 되었어.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단련을 통해 나를 단단하게 만들어 갔어."
"너를 행복하게 해주고 싶어."
"난 행복해요."
장민애는 그의 손 위에 자신의 손을 올려놓았다.
"내가 풀어 드릴게요. 따뜻하게 해줄게요."
김원국이 머리를 돌려 그녀를 향해 웃어 보였다.
"넌 아름다운 여자야."
"알아요."
"영리하고 매력도 있어."
"들었어요."
"내 아내가 될 자격이 있어."
장민애가 그를 바라보았다.
"나하고 결혼해 주TR니?"
"응. "
"내 마누라가 될 거냐?"
"fl . "
"내가 겪어 보지 못한 가정을 네가 한번 만들어 줄래? 나하고?"
"응. "
"내 자식들의 어머니가 될래?"
"예."
"도망치지도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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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그럼 나도 오래 살 테다. "
차는 어느덧 톨 게이트에 들어섰다.
장민애는 어디 가느냐고 묻지 않았고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김원국 또한 수십 곳의 목적지가 있었으나 망설이지 않았다.
그저 가는 곳이 목적지였다.
둘이 함께 가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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