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밤의 대통령

9. 실마리를 잡다

오늘의 쉼터 2014. 12. 1. 14:13

◐ 실마리를 잡다

 

 공항에는 강만철이 나와 있었다.

이형구만을 데리고 홍롱에 도착한 김원국은 곧장 호텔로 향했다.
"성철이는 차도가 있니?"
창밖을 내다보던 김원국이 물었다.
"아직 시간이 좀 걸린다고 합니다. "
강만철의 표정엔 그늘이 끼어 있밌다.
"리첸은?"
"마찬가집니다. "
"같은 수용소에 있는 거냐?"
"수용소는 같지만 남자, 여자를 따로 수용하고 있어서요."
김원국은 강만철을 돌아보았다
"수용소로 가자."
"형님, 거긴 면회 금지로 되어 있어요."
"만나 보겠다. "
김원국의 말은 낮았으나 단호했다.
차는 방향을 바러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으로 가는 동안 김원국은 입을 열지 않았다.
수용소는 감옥과 같은 구조였다.

무장한 경비원들이 현관을 지키고 있었다.

복도 좌우에 병실이 늘어서 있었으나 엄중한 잠금장치가 채워져 있어서 병실이 아니라감옥이었다. 강만철은 수용소 원장을 어떻게 설득하였는지 2명의 경비원이 앞장을 서서 그들을 안내했다.

경비원은 복도 끝쪽에 있는 방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여깁니다. "
경비원이 열쇠로 자물쇠를 열었다. 문이 열리자 방에서 퀴퀴한냄새가 풍겼다.

침대 위에 홍성철이 누워 있었다. 침대옆 공간에는 변기와 세면대가 놓여져 있을 뿐이었다.

방안은 어두웠고 누워 있는홍성철의 머리쪽 벽에는 자은 그리스도의 초상화가 붙어 있었다.

김원국은 흥성철에게 다가가 섰다.

강만철이 따라와 옆에 섰고 이형구는 따라 들어 오지 않았다.
"성철아."
김원국이 불렀으나 홍성철은 눈을 감은 채 뜨지 않았다.

머리는 흐트러졌고 얼굴엔 텁수룩한 수염이 자라 있었다.

두 팔과 다리가 두꺼운 밴드로 침대에 묶여 있어서 몸을 움직일 수도 없을 것이다.
"성철아."
김원국이 그의 손을 더듬어 쥐면서 다시 불렀다.

강만철도 이곳엔 처음 들어와 본 모양으로 홍성철의 초췌한 모습을 보고는

눈을 껌벅이고 있었다.
"성철아, 내가 왔다. "
그의 손을 흔들어 보면서 김원국이 불렀으나 홍성철은 눈을 뜨지도 움직이지도 쟈았다.
"형님, 자는가 봅니다. "
강만철이 말했다.
"형님, 가시죠. 다음에 다시 옵시다. "
그러자 홍성철이 김원국의 손을 움켜쥐었다.

눈은 그대로 감은 채였다.

그의 얼굴을 바라보던 김원국이 강만철에게 말했다.
"너는 밖에 나가 있거라."
강만철이 의아한 듯 그를 바라보다가 몸을 돌려 방을 나갔다.
"성철아,"
홍성철의 감긴 눈에서 눈물이 흘러 내렸다. 그는 눈을 떴다.
"형님."
"이놈아."
김원국이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형님."
홍성철이 혹흑거리며 울음을 삼켰다.
"형님, 면목없습니다. "
온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그가 말했다.
"어서 낫기나 해라."
"정말 형님께 부끄럽습니다. "
김원국은 수건을 꺼내 그의 얼굴을 닦아 주었다.
"형님."
홍성철이 커다랗게 뚫린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불렀다.
"형님께 부탁이 있습니다. "
"말해라."
"리헨을 구해 주십시오."
그의 눈에 핏발이 서 있는 것이 보였다.
"리첸은 아무 잘못이 없습니다. 시키는 대로 했을 뿐입니다. "
"빈 타오가 탐 람을 시켜서 럽박을 했을 겁니다. "
홍성철은 이를 악물었다.

얼굴에 경련이 일어났고 이를 가는 소리가 섬뜩하게 들렸다.
"형님."
그는 온몸을 떨면서 김원국을 불렀다.

눈동자는 이제 김원국을 떠나 천장을 노려보고 있었다.
"저는, 저는 나중에 처벌하시더라도 제발 리첸은,

리첸은 구해 주십시오‥‥‥‥ 낫게 해주세요.

그리고, 그리고, 방송국에 출연을 시켜 주세요‥‥‥‥

방송국에, 제가 약속했숱니다. 형님, 형님."
"알았다. 낫게 해주고 방송국에 출연시켜 주도륵 하겠다. "
홍성철은 이를 악물고 얼굴에 웃음을 띠는 것처럼 보였다.

경비원이 들어왔다.
"발작이 시작됩니다. 나가세요."
그는 김원국의 둥을 밀었다.

김원국은 방을 나왔다.

강만철과 이형구는 깅원국의 얼굴을 보고는 입을 열지 않았다.
녹음 테이프는 이재 공회전을 하고 있었다.

김칠성이 녹음기의 스위치를 눌러 껐다.

한동안 방안은 침묵에 싸여 있었다.
"빈 타오는 우리가 탐 람을 처치한 걸 알고 있을 것이다. "
김원국이 입을 열었다.
"차오라는 빈 타오의 경호대장이 태국에서 와 있습니다. "
김칠성이 말했다.
"인원도 30명 정도 데리고 왔습니다.

겉으로는 관광객같이 꾸몄지만 군인 냄새가 나는 놈들입니다. "
"빈 타오의 농장은 태국 북부에 있고, 거기엔 정규군대보다

장비가 좋은 500명 정도의 부대가 상주하고 있습니다.

태국 군부와 정계에 끈이 많아서 함부로 하지를 못한다고 합니다. "
"감시는 계속 하고 있지?"
"fl ."
"그쪽도 우리를 감시하고 있을 거다. "
"여기을 때 조심은 했습니다. "
김원국은 강만철을 돌아보았다.
"지금 겉으로는 모두 보이는 것 같다. 탐 람, 위천산, 빈 타오,

그리고 성철이와 리첸, 그렇지만 물속은 알 수가 없어.

어떤 놈이 어떻게 엉켜 있는지 모른다. "
"모두 마약 때문입니다. "
김원국은 피곤한 듯 의자에 등을 기대고 앉았다.
"내일부터 사업체를 돌아보겠다. 지금은 혹자를 내고 있지만 그것 가지고는 안 된다. "
"형님, 아까 테이프를 들으셨다시피 "
김칠성이 김원국을 바라보았다.
"빈 타오는 우리측 정보를 얼마나 냈는지 모릅니다.

성철 형님에게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물어 보면 안 될까요?"
탐 람의 호주머니에서 나온 테이프였다.

리첸이 묻고 홍성철이 대답하는 내용이었는데,

리첸은 빈 타오의 지시를 받았는지 요점만을 묻고 있었다.

김칠성은 김원국이 테이프에 대해서 이야기를 꺼내지 않자 초조했다.
"안 된다. "
김원국이 차갑게 말했다.
"필요없다. "
강만철이 머리를 숙였다.

이윽고 김칠성도 시선을 돌렸다.
위천산은 창밖의 바다를 내려다보았다.

남색의 바다 위에 수백 척의 배가 떠 있었다.

거대한 유조선 사이로 횐 항적을 그으면서 조그만 여객선과 화물선이 지나갔다.

하늘에는 구름 한점 떠 있지 않았다.
"김원국은 지금 오리엔트에 묵·고 있습니다. 오늘도 사업체들을 돌아볼 것 같숱니다. "
여귀철이 말했다. 위천산은 몸을 돌렸다.
"그럼 사업체를 돌아보려고 온 것이군."
"물론이죠."
여귀철이 얼굴에 웃음을 띠었다.
"그놈이 그럼 다른 볼일이 있TR습니까? 강만철과 함께 어제도 백화점에 가 있었습니다. "
"꺼쩠든 신경이 쓰이는 놈이야."
위천산은 다시 바다로 시선을 돌렸다.

응접실의 바다 쪽으로 향한 부분은 유리벽으로 만들어 놓아서 구룡섬 끝부분에 자리잡은

위천산의 집 응접실에 앉으면 발 아래의 바다가 한눈에 보솎다.

밖에는 뜨거운 헛살이 쏟아져 내리고 있었으나 방안은 에어컨 바람으로 서늘했다.
"서울에서 여자가 오늘 저녁에 도착합니다. "
여귀철이 위천산의 등에 대고 말했다.
"알고 있어. 그 장난감 비행기는 준비했Tf지?"
"네. 보스가 한번 보십시오. 감쪽같습니다.

비행기의 몸체를 모두 다시 만들었숱니다. "
위천산은 회끗희끗한 머리를 한손으로 쓸어 올렸다.
"이봐, 탐 람은 김원국 일당이 처치한 거야. 알고 있지?"
여귀철은 잠자코 그의 등을 바라보았다.
"빈 타오는 그런 이야기를 우리에게 하지 않았지만 홍성철을 중독시킨 보복을 한 거야."

 "그놈들이 작년에 해리슨과 전쟁을 벌였을 때를 생각해봐.

그놈들에게는 정면승부를 걸면 안 돼, "
"약점을 쑤셔야 돼. 김원국이나 강만철, 보스들의 약점을 잡아 부숴야 된단 말이야."
"보스, 그놈들하고 우리는 아직 부딪치지 않았습니다. "
위천산은 다시 몸을 돌렸다.
"오리엔트에 곽도위가 보이지 않는다면서? 그놈이 도대체 어디 있는 거야?"
"눈에 띄지 않을 뿐이지요. 재까짓 게 어디 가겠습니까?"
위천산이 혀를 찼다.
"김원국이가 그놈을 쥐고 있다는 건 우리 약점을 쥐고 있는 것이나 같아. 그놈을 빨리 없애 버려."
"애들에게 지시했습니다. "
위천산은 여귀철을 바라보던 시선을 돌렸다.

형주량이나 조진량 둥은 마약거래를 하므로 이젠 상부상조하는 입장이 되었다.

그러나 김원국의 조직은 그의 눈에 가시였다.

그것은 빈 타오에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빌, 빈 타오가 신변경호를 강화하고 있습니다. "
제임스 맥클레인이 사무실에 들어서면서 말했다.

그러는 그의 표정은 밝았다.

그는 이마의 땀을 손수건으로 닦으며 자리에 앉았다.
"김원국이 홍콩에 왔기 때문인가?"
"그령겠죠. 긴장할 수밖에요. 홍성철을 저 지경으로 만들었으니

혹시나 보복하지 않을까 경계하는 겁니다. "
"그놈이 요즘은 홍콩에 자주 오는군, 이번 달에도 두 번이나 왔잖아. "
제임스가 머리를 끄덕였다.
"약을 가지고 오는 겁니다. 흥롱뿐만이 아니라 다른 곳으로도 내는 것 같아요."
빌은 책상 위에 팔꿈치를 올려놓았다.

한쪽에 쌓인 텔렉스 뭉치를 잡아당겨 몇 장을 훌어보다가 짜증난 듯 밀어 놓았다.
"방록에선 뭘 하는 거야? 조지 그 녀석은 마사지 하우스에서 그짓이나 하고 있는 거야 뭐야?

빈 타오가 떠났다고 전문이나 한장 보낼 바에야 다시 돌아오라고 해."
제임스가 힐끗 빌을 바라보았다.
"빌, 잘 아시지 않습니까? 빈 타오는 세관을 거치지도 않습니다.

출국이나 입국할 땐 WP 전용 출구로 군장교들의 호위를 받고 나갑니다. "
"차라리 마침 빈 타오하고 김원국이 홍콩에서 마주친 지금 둘이 서로 치도록

공작을 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빌이 제임스를 바라보았다. 회색 눈동자가 생각에 잠긴 듯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그리고 저희들은 배후에서 김원국을 응원하고 말입니다. "
"좋은 생각이야."
빌의 말에 제임스가 의자를 당겨 앉았다.
"만들어 볼까요?"
빌은 머리를 저었다.
"김원국이 불리해."
"아니, 왜요?"
"아까 경찰에 다녀온 리 이야기를 들었는데 경찰이 김원국을 잔뜩 경계하고 있어. "
"작년의 사건들 때문이야.

해리슨은 부하에게 사살되어서 조직이 형주량에게로 넘어갔지만

김원국은 기반을 단단히 굳혀 버렸거든.

아니 꼽게 생각하는 친구들이 있는모양이야.

만일 싸움이 일어난다면 경찰 측에서는 김원국측부터 봉쇄할 것이 뻔해."
"우리가 경찰에 압력을 넣으면 안 될까요?"
빌은 머리를 저었다.
"위에서야 끄덕여 주겠지만 실무급 간부놈들이 말을 들어줄까?"
제임스도 사정을 훤히 알고 있었다.
"어쨌든 조금 더 기다려 보자구 "
빌이 넥티끼를 아래로 잡아당겨 와이셔츠 칼라를 느슨하게 하면서 말했다.
"양쪽을 관찰해 가면 기회가 올지도 모르니까."
제임스는 잠자코 그를 바라보았다.
"우리 손을 더럽히지 않고 더러운 놈들을 없앨 기회가 올지도 모르지. "
"누구요?"
문알에 다가간 김칠성이 물었다.
"룸 서비스입니다. "
여자 목소리였다. 문을 열자 한세라가 서 있었다.
"아니?"
깜짝 놀란 김칠성이 입을 벌렀다.

재빨리 방에 들어온 그녀는 방안을 살펴보더니 껑충 뛰어 김칠성의 목에 매달렸다.
"이것 봐, 어떻게 된 거야?"
그녀를 목에 매달고 소파로 다가가면서 김칠성이 물었다.

한세라는 대꾸하지 않고 입술을 뽀족하게 내밀었다.

도장을 젝듯 쩍 하고 입을 맞춘 김칠성은 그녀를 소파에 내려놓았다.
"어떻게 왔어?"
"비행기 타구,"
"까불지 말고."
김칠성이 눈을 부라렸다.
"혼자 와서 딴 여자하고 같이 있는가 했는데 마음이 놓이는데."
방안을 둘러보며 한세라가 흔잣말을 했다.
"말 안 해?"
이제는 김칠성이 얼굴을 굳혔다.

 한세라가 그애게 눈을 흘기면서 마지못찬 듯 입을 열었다.
"·라업 . "
"보따리 사업?"
"응. "
"이제 안 한다고 했잖아?"
"안 해."
"그럼 뭐야?"
"보고 싶어서."
머리가 혼란스러워진 김칠성이 다시 눈살을 찌푸렸다.

한세라는 김칠성의 무릎 위에 올라 앉아 그의 목을 두 팔로 안았다.
"내가 와서 싫어요?"
뚫어져라 쳐다보는 그녀의 시선을 배겨 내지 못한 김칠성이 그녀의 허리를 안았다.
"갑자기 와서 놀라서 그래.

그리고 우리 일이 조금 심각해.

지금은너하고 한가하게 보낼 시간이 없어서 그러는 거야."
"걱정 마요. 나두 방 따로 잡아 왔으니까."
"그럼 보따리 사업인가?"
"응. 잠자기 누가 윌 가져다 달라고 부탁을 해서요.

사례비도 많이 준다고 하길래 당신도 볼 겸 온 거예요."
"그래? 어쨌든 반갑구먼."
"이제사?"
한세라는 이맛살을 모았다.
"내가 귀찮은 모양이죠? 속 들여다보여."
"아니, 그게 아니라."
"나는 조금 더 멋있는 장면을 생각했는데. 이를테면 말이죠."
한세라는 눈을 깜박였다.
"그래, 세라의 목소리를 듣고 내가 활짝 문을 열고‥‥‥‥

응, 그렇지. 세라가 달려 들어오고 내가 껴안고, 입을 맞추고,

사랑한다는말이 왔다갔다하고."
언젠가 본 비디오에서 나온 장면이었다.
"그것도 생각해 봤고‥‥‥‥
한세라가 머리를 끄덕이고 다시 시선을 건너편 벽에 주었다.
"또 있어?"
"응. "
"그렇지,문이 활짝 열리고,둘이 말없이 와락 껴안고, 여자가 울고,
남자는 안 울고, 말은 한마디도 안 하고 그런 것."
"응. "
그러나 한세라의 표정은 그것도 양에 차지 않는 것 같았다.

김칠성의 목을 껴안은 채 그의 얼굴을 들여다보면서 눈을 깜박거렸다.
"좋다 해보자."
김칠성은 한세라를 번쩍 들어 일으켜 세웠다.
"네가 벨을 누르고, 내가 누구요 할 테니까,

룸서비스요 하지 말고 저예요 하라구.

그럼 내가 오! 세라! 하고 문을 활짝 열 테니까 넌 두 팔 을 벌리고 달려 들어와.

그럼 내가 안을 테니까. 알았지?"
"응. "
김칠성은 한세라의 등을 밀어 문밖으로 내보내고 문을 닫았다.

벨이 울렸다.
"누구요?"
김칠성이 물었다.
"저예요."
한세라가 다소곳이 대답했다.
"오! fll라!"
김칠성이 소리치면서 문을 열고는 문앞에 엎드렸다.

두 팔을 벌리고 뛰어들던 한세라가 김칠성에게 걸려 방바닥 위에 나자빠졌다.

김칠성이 몸을 일으키고는 엎어져 있는 한세라를 내려다보았다.
"만나자마자 엎어지는 것은 동서고금에도 없고 비디오에도 없어."
정색을 하고 김칠성이 말하자 한세라는 누운 채 눈을 깜박이며 그를 올려다보았다.

그러고는 두 팔을 벌렸다.
한세라는시계를 보았다. 아침 10시가되어 있었다.
그녀는 슬리퍼를 벗고 구두로 바러 신었다.

배 사장의 친구가 올 시간이었다.

일어나 옷매무새를 살폈다.

온몸이 나른하고 아랫부분에 기분좋은 통증이 남아 있었다.

얼굴이 달아오른 한세라는 두 손으로 볼을 감쌌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이 보였다.

 행복한 여자의 얼굴 같이 보였다.

벨소리가 울렸다.
"누구세요?"
문 앞으로 다가간 한세라가 물었다.
"배 사장 친구입니다. "
9시에 전화가 왔었으므로 그녀는 문을 열었다.

 커다란 모형 비행기 상자를 들고 있는 사내가 보였다.

40대 초반의 사내였다.

길게 자란 머리를 뒤로 넘겼고 검붉은 얼굴에는 기름기가 흘렀다.

검은 눈샙 밑의 큰 눈을 껌벅이며 그녀에게 웃어 보였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동이라고 합니다. "
중국인이었다.
"들어오세요."
그는 서슴없이 방안으로 들어섰다.
비행기를 탁자 위에 내려놓고 소파에 앉았다.
"이건가요?"
한세라가 기다란 상자를 들어 보면서 물었다.

비행기의 그림과 영어와 독일어로 된 설명서가 앞됫면에'인쇄되어 있었다.

무거웠다.

10킬로그램은 되어 보였다.
"무겁네요."
"예.기계 부속이 들어 있어서 그럽니다.

모형 비행기지만 진짜 비행기 못지 않게 날아가는 겁니다. "
넓이와 높이는 20센티미터 정도였으나 길이는 1미터가 넘어 보였다.
"알았어요."
한세라는 끄덕이며 사내를 바라보았다.

왜 무겁겠지만 비행기에 싣고 가면 되는 것이다.
"그럼 몇 시에 출발하십니까? 내가배 사장에게 연락을 해주려고 합니다. "
"오늘 저녁이나 될 것 같아요. 늦으면 내일 아침이든지. 제가 여기서 일이 좀 있거든요."
사내가 머리를 」1덕였다.
"비행기표는 예약하셨습니까?"
"아뇨, 아직 , "
"요즘은 한국행 비행기표 구하기가 힘듭니다. 관광객들이 많아서."
"네, 알고 있어요."
"제 친구가 여행사에 있는데 오늘 저녁 비행기로 예약해 드리지요."
잠시 생각하던 한세라는 머리를 』1덕였다.

이번에는 화장품 3, 40세트와 카메라 몇 대로 끝내야 할 것 같았다.
"그럼 그렇게 해주시면 고맙Tf어요."
사내가 사람좋은 얼굴에 웃음을 띠었다.
"원 천만에요. 제가 12시쯤 전화를 드리겠습니다. "
사내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럼 안녕히 계십시오."
그는 웃어 보이면서 방을 나갔다.
한세라는 방안으로 들어와 수첩을 펴들고 전화기를 끌어당겼다.

그 녀의 거래선에게 전화를 해야 했다 서로 이런 일에 익숙해 있어서

한세라가 품목과 수량을 알려 주면 보기좋게 포장해서 가져다 주었다.
옷가지 같은 것이야 직접 가서 골라야 하지만 화장품이나 전자제품은 전화로 말해 줘도 되었다.
곽도위와 백장용이 들어섰다.

곽도위가 눈을 부릅뜨고 그를 바라보는 바람에 김칠성이 긴장하며 물었다.
"무슨 일이 있는 거냐?"
그들은 앞자리에 앉았다.
"두목님, 여귀철이를 보.았습니다. "
곽도위가 말했다.
"여귀철이?"
"네. 위천산의 심복인 여귀철이 말입니다. "
"그놈이 이 호텔에 다녀갔답니다. "
백장용아 말을 거들었다.
"이 호텔에? 언제?"
김칠성의 얼굴이 긴장으로 굳어졌다.
"조금 전에 떠났습니다. 커다란 상자를 들고 와서 308호실에 두고 갔습니다. "
"뭐 라구? 308호실?"
"네. 제가 보스 방으로 올라가다가 그놈을 보고는 뒤를 따라7'S 확인을 했습니다. "
"지금도 밖에는 세 놈이 건너편 길가의 차 안에 앉아 있습니다.

그놈들이 이쪽을 감시하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발각된지도 모르겠습니다. "
"308호실이 분명해?"
김칠성의 말소리는 가라앉아 있었으나 두 눈이 번들거렸다.
"네. 분명합니다.

거기에다 커다란 상자를 두고 갔는데 아무래도 일행이 방안에 있는 것 같습니다.

투숙자 명단은 여자로 되어 있었습니다만. "
"곽도위 말로는 상자에 총기류가 들어 있는 것 같다고 하더군요."
백장용이 말했다.
"호텔 안에는 이상이 없나?"
"네. 안에는 그놈들이 보이지 않는답니다. "
김칠성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308호실의 벨을 누르자 안에서 인기척이 났다.

곽도위와 백장용이 재빨리 문 양쪽에 붙어서는 것을 그는 멀거니 바라보았다.
"누구세요?"
"나야. "
김칠성의 대답에 백장용이 눈을 치켜 떴다.

한세라가 문을 열고 활짝 웃다가 김칠성의 표정을 보고는 웃음이 사그라졌다.

김칠성은 그녀를 밀치고 들어섰다.
두 사람이 방으로 따라 들어왔다.
"웬일이에요?"
그녀가 놀라며 물었으나 김칠성은 탁자 위에 놓인 커다란 상자를 바라보고 서 있었다.

곽도위가 문을 닫고 문가에 지켜 섰다.
"너 이거 들고 온 놈하고는 어떤 관계야?"
김칠성이 선 채로 물었다.

그의 목소리는 나지막했으나 두 눈이 그녀를 무섭게 쏘아보핀 있었다.
"아이, 정말 왜 이러시는 거예요?"
놀라움이 조금 가시자 한세라가 짜증스럽게 물었다.

백장용이 김칠성을 바라보았다.

그는 김칠성과 여자가 아는 사이인 것에 놀라 어리둥절해 하고 있었다.
"말 안 해? 이거 들고 온 놈하고 어떤 사이냔 말이야."
김칠성이 물으며 그녀에게 다가섰다.
"어떤 사이라뇨? 참, 기가 막혀 "
김칠성의 손바닥이 날아가 한세라의 뺨을 쳤다.

한세라는 넘어지면서 침대에 몸을 부딪히고 주저앉았다.

두 손으로 볼을 감싸고는 커다랗게 치켜뜬 눈으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이 더러운 년, 나를 속였겠다. "
김칠성의 얼굴이 충혈되었다.

이를 악물고 그는 한세라의 멱살을 잡아 일으켜 세웠다.

놀란 한세라가 가늘게 비명을 지르더니 얼굴을 정그리고 울음을 터뜨렸다.

겁에 질린 울음소리가 났다.
"말 안 해?"
김칠성이 주먹을 쳐들었다.

한세라가 그것을 보더니 흐느껴 우는 소리를 높였다.
"형님."
백장용이 부르는 소리에 김칠성이 머리를 돌렸다.

백장용은 상자에서 기다란 비행기 몸체를 꺼내는 중이었다.
"이거, 모형 비행기인데요. 왜 무겁군요."
곽도위가 다가와 비행기를 들여다보았을. 한세라는 김칠성의 팔에
멱살이 잡혀 있었으나 그들의 행동을 볼 수 있었다.

숨이 막혔으므로 김칠성의 손을 두 손으로 쥐었다.

김칠성이 그것을 느꼈는지 머리를 돌려 그녀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그는 한세라를 침대 위로 밀어 던졌다.

엉덩방아를 찧고 침대 위에 주저앉은 한세라는 눈물에 범벅이 된 얼굴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곽도위는 비행기를 두 손으로 들어 보더니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미끈한 몸체가 놓였고 날개와 부속은 따로 접혀져 있었다.

곽도위는 손 끝으로 몸통의 알미늄판을 두드려 보았다.

그러고는 머리를 들어 김칠성을 바라보았다.
"마약입니다. 마약을 운반하는 겁니다. "
백장용이 머리를 」1덕였다.

김칠성은 팔짱을 긴 채 비행기를 내려다 보고 서 있었다.
"아녜 .3_!"
한세 라가 소리 쳤다.
"그럴 리가 없어요. 저는 단지 심부름을 하는 거예요. 이 비행기를 서울에다 가져다 주면 돼요."
김칠성이 머리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한세라는 온몸에 차디찬 바람이 부딪혀 오는 것 같았다.
"칠성 씨, 저는 아무것도 몰랐어요."
한세라는 목이 메었다. 다시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 내렸다.
"이년을 감시해라."
김칠성이 백장용에게 말했다.

곽도위는 방바닥에 주저앉아 비행기의 나사를 주머니칼로 비틀어 풀고 있었다.
"두목님, 틀림없습니다. 아마 5킬로그램은 될 것 같습니다. "
김칠성은 몸을 돌려 문 쪽으로 걸었다.
"칠성 씨."
한세라의 울먹이는 목소리에 김칠성이 몸을돌렸다.

움켜쥔 두 주먹을 입술에 가져다 댄 한세라가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김칠성은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김원국과 통화를 마치고 난 김칠성은 308호실에 들어섰다

탁자 위에는 펼쳐 놓은 신문지 위에 백색 가루가 가득 쌓여 있었다.

곽도위가 비행기 몸체를 거꾸로 세우고 흔들었다.

남아 있던 가루가 신문지 위에 쏟아져 내렸다.
한세라는 침대 위에 그대로 앉아 있었다.

넋을 잃은 듯이 탁자위의 마약을 바라보면서 시선을 들지 않았다.
"형님, 이분은 전연 모르시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
백장용이 한세라 앓에 앉아 있다가 일어서며 말했다.
"서울의 배 사장인가 하는 놈의 부탁을 받고 오신 것 같습니다. "
그는 김칠성과 한세라의 관계를 짐작했는지 말투에 신경을 쓰고 있었다.
"지난번에도 배 사장이라는 놈에게 물건을 전달해 주었답니다. "
김칠성은 소파에 앉았다.
"곽도위, 마약만 고 원상태로 다시 조림해 놓아라."
곽도위에게 말했다.
"그리고 형님, 12시에 전화가 오기로 돼 있답니다.

오늘 저녁 비행기 예약을 해주기로 했다는데요."
백장용이 말을 이었다.
"집에 돌아가면 배 사장이 전화를 해와서 만난답니다.

이쪽에서는 그놈의 연락처를 모른다는군요."
김칠성이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 소리에 곽도위가 머리를 들고 그를 바라보다가 다시 비행기 재조립에 몰두했다.

한세라가 부석부석 해진 얼굴로 김칠성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전화벨이 울렸다.

모두 머리를 돌려 전화기를 바라보만다.
"받어. 눈치채지 않도록 해 "
김칠성이 그녀에게 말했다.

한세라가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수화기를 집어 들었다.
"fl ."
그녀는 눈을 깜박이며 김칠성을 바라보았다.
"알았습니다. "
그녀는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저녁 6시 출발 싱가포르 에어라인이래요. 좌석예약되었다구요."
백장용을 바라보며 말했다.

백장용이 난처한 듯 김칠성을 바라보았다.

그는 그녀의 시선을 굴절시켜 김칠성에게로 옮기려고 하는 것 같았다.

그녀의 시선은 옳겨오지 않았고 김칠성도 마찬가지였다.

한동안 방안에서는 곽도위가 부스럭거리는 소리만 들렸다.

모두들 입을 열지 않았다.
이윽고 곽도위가 비행기를 원상태로 해놓고 일어섰다.

백장용은 탁자 위에 쌓인 마약을 조심스럽게 신문지로 감싸고 비닐가방에 넣었다.
그들은 가방을 들고 방을 나갔다.
김칠성은 머리를 돌려 한세라를 바라보았다.

침대 머리맡에 놓인 조그만 전자시계에 시선을 준 채 한세라는 움직이지 않았다.

뺨의 한쪽이 빨갛게 물들어 있는 것은 아까 김칠성에게 얻어맞은 자국이었다.
"넌 혼이 더 나야 돼."
김칠성이 입을 열었다.
"겁도 없이 부탁을 받고 덜렁덜렁 마약을 들고 다녀?그게 얼마나 무서운 일인 줄 알아?"
"너, 우리가 여기 들어온 놈을 발견하지 못했으면 어떻게 되는 줄 알아?"
"너는 마약 운반책으로 걸려들써 10년쯤 형무소 생활을 해야 돼."
한세라가 얼굴을 들어 김칠성을 바라보았다.

김칠성이 기대한 겁이 난 표정이 아니었다.

입술을 삐죽 내밀고 눈에서는 다시 눈물이 떨어져 내릴 것처럼 보였다.
"지금 홍콩이 마약 때문에 얼마나 시끄러운 줄 알아?

사람이 죽어가고 칼부림이 일어나고 있단 말이야."
"그런데 왜 때려 "
그러고는 한세라가 눈물을 떨어뜨렸다.

시트를 잡아당겨 얼굴을 닦으려다가 시트가 엉덩이에 깔려

당겨나오지 않았으므로 베개를 들어 얼굴을 가렸다.
"왜 때려 날, 왜 무섭게‥‥‥‥
베개에 얼굴을 파묻고는 울음섞인 목소리로 소리쳤다.

어깨가 들먹거렸다.
"이게 정 말 어떻게 된 기집애야?"
9. 실마리를 잡다 207
김칠성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지금 온통 난리 속에서 마약을 운반하려다가 우리가 미리 막어 주었으니 망정이지‥‥‥‥
"말루 할 수도 있었잖아!"
"이런 쌍년이."
김칠성이 벌떡 일어서자 한세라의 울음소리가뚝 그쳤다.

한세라가 베개 속에서 슬그머니 얼굴을 들었다.

이제는 겁이 난 표정으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네가 실제 마약 운반쳐이었다면 널 죽였을 거야."
김칠성의 말이 잇사이로 흘러 나왔다.

한세라는 저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그리고 나도 죽었을 거다. "
"너는 내가 아까 얼마나 놀라고 분했는지 몰라, 이년아."
"그런데도 한대 맞았다고, 어이구 내가 어쩌다가."
김칠성은 주먹으로 가슴을 쿵 소리가 나게 쳤다.

김칠성이 몸을 돌리자 한세라가 베개를 내던지고 달려와 그의 등을 껴안았다.
"잘못했어 "
김칠성은 입맛을 마셨다.

이제는 이런 일이 여러 번 있었기 때문에 놀라지도 않았다.

뒤에서 잡는 것이 처음이 아니었다.
전화기를 내려놓은 김원국은 몸을 돌려 앉았다.
"함마에게 연락해서 미스 한이라는 아가씨를 철저히 경호하게 해라. "
강만철이 머리를 」1덕였다.
"형님도 안면이 있는 아가씨라면서요?"
H응. 내가 칠성이에게 중매를 섰던 여자다. "
"f1?"
·그건 알 것 없다.

 어쩠든 그 장난감에 마약이 없는 것을 알면 놈들이 미스 한을 가만두지 않을 거다.

위헝하탄 말이야."
4허지만 수사기관에 알려 주기로 했잖습니까.

 놈들을 현장에서 잡아 버리면 안 될까요?"
강만철의 말에 김원국이 머리를 저었다.
4임 수사관 이야기로는 미스 한하고 같이 있는 놈을 덮쳐서 잡는다고 하더라도

 현장에 마약이 없으니까 헛일이라는 거야.

그렇다고 그 장난감에 마약을 넣어 보낼 수도 얼잖아.

그래서 그외 말로는 미스 한이 만나는 놈을 미행해서 뿌리를 잡겠다는 거야."
"그동안이 위험하군요."
#그래 놈들이 어떻게 깔려 있는지도 모르고 그동안놈들이 미스 한을 잡아챌 시간은 있는 셈이다. "
#함마하고 웅남이한테까지 연락해 놓겠습니다. "
"마약이 한국으로 들어오고 있다. "
김원국이 흔잣소리로 말했다.
H그저 흥수에 물이 넘쳐 흐르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 "
e형님, 우리는 나라에서 상을 주어야 됩니다. "
강만철이 불쑥 말했다.
"나라에서 할일을 우리가 다하고 있어요."
"상받으려고 하는 일이 아냐."
김원국이 씁쓸하게 웃었다.
"정의나 명분이 없는 조직은 죽는다. "
 "제아무리 강하고 단단하게 보이는조직이라도 그것들이 없으면 하루 아침에 무너진다.

해리슨도 그렇고, 조진량도 그랬다. 가네무라, 이철주, 모두 마찬가지야."
강만철은 잠자코 그를 바라보았다.
u우리 조직끈 내가 없어도 너나 웅남이 등이 얼마든지 꾸려 나간다.
동생들도 따르고 말이다.

 왜냐하면 애들의 가슴속에는 정의나 명예에 대한 자부심이 배어 있기 때문이다.

꾸리가 하는 일은 옳은 일이라는 믿음이 있을 거야.

그러면 우리 조직은 든든해."
"보스는 자기 희생이 필요해.조직을 위해서 자신을 희생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아직도 부족하다. "
"참, 형님도‥‥‥‥
강만철이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어디까지 하실려구요? 어지간히 해두십시오.

자꾸 그러면 저희들이 거북합니다. "
김원국을 보일듯 말듯 머리를 끄덕여 보였다.
"형넘, 비행기가 출발했습니다. "
수화기를 통해서 여귀철의 목소리가흘러 나왔다.

공항에서 하는 전화였다.
"여기서는 일 끝냈습터다. "
그의 말소리는 흘가분했다.
"알았다. "
위천산은 전화기를 내려놓고 시계를 바라보았다.

최정호에게 알려 주어야 하는 것이다.

그는 다시 전화기를 들고 다이얼을 눌렀다.

신호가 가자 기다리고 있던 최정호가 바로 전화를 받았다.
"최 사장이오?"
" fl . "
"지금 출발했습니다. "
"알았습니다. "
"그런데 최 사장."
위천산이 그를 불렀다.
" fl . "
"그쪽 김원국이의 조직에 중국인이 있는가를 알아보시오.

뭐, 별일은 아니지만 내가 데리고 있던 놈인데 이름은 곽도위라고 합니다.

그놈은 눈쌥이 일자로 되어 있어서 찾아 내기는 쉬울 겁니다. "
"왜요?도대체 무슨 말입니까?"
최정호의 목소리에 긴장감이 배어 있었다.
"별일은 아니지만 혹시 그놈이 한국으로 가지 않았나 해서요.

나를 배신한 놈입니다.

 내가 그놈 사진을 팩시밀리로 보낼 테니까 찾거든 없애 주시오.

 최 사장이나 나한테 이로운 짓 할 놈이 아닙니다. "
"알았습니다. "
꺼림칙한 듯 최 사장이 대답을 흐렸다.
"그리고 물건 받으시면 바로 스위스에 연락주시는 걸 잊자 마시고."
"아, 그거야."
위천산은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물건이 떠났으니 이제 한숨은 덜었으나 당장에 부딪혀 올 것이 김포세관이었다.

그러나 그곳도 그 한국 여자가 문제없이 빠져나가리라고 믿었다.

최정호의 이야기를 들으니 그 여자는 미모인데다가,

전과도 없고 보따리 장사를 하면서 두 동생의 학비와 생활비를 버는 성실한 가장이었다.

위천산은 문득 김원국이가 홍콩에 와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놈은 홍성철이 중독에 걸리자불안한 김에 달려와 사업체를 점검했다.

그렇지만 그놈이 한국에 있었다면 꺼림칙했을 것이다.
위천산은 의자에 깊숙이 몸을 파묻고 앉아 어두워진 바다를 바라보았다.

바다위에 떠 있는배에는벌써 등불들이 켜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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