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밤의 대통령

1. 복 수

오늘의 쉼터 2014. 12. 1. 08:32

◐  복 수 

 

 

태양은 산마루에 걸려 있었다.

산그림자가 마당 위에 덮여 있어서 땅바닥에 놓인 못이 잘 보이지 않았다.

차가운 바람이 호수를 훌고 불어왔다.

마른 나뭇잎이 김원국의 몸에 부딪치고 지나갔다.


"거기, 못 큰 걸로. 아니, 그보다는 작은 것. 그래, 이리줘."


장민애에게서 못을 받아 쥔 김원국은 탁자의 다리를 몸체에 맞췄다.
김원국의 파카를 둘러쓰고 쪼그리고 앉았던 장민애가 몸을 일으켜 탁자의 받침을 잡았다.
쌀쌀한 날씨였으나 김원국은 땀을 흘렸다.

못질에 익숙한 그는 딱 세 번에 못을 두드려 박았다.

 이제 다리 4개를 다 맞추어 박은 것이다.
김원국은 쭈그리고 앉아 다리를 흔들어 보았다.

장민애도 탁자의 다리를 잡고 밑쪽을 기웃거렸다.


"흔들리지 쟈아요. 그리고 다리가 4개니까 하나쯤 짧아도 균형은 잡혀요."


"그런데 기둥이 너무 굵은 것 같아요.

안정감은 있지만 너무 위가 허전해 보이는 것 같은데?"


장민애는 눈썹을 모으고 기둥을 만져 보았다.

그러다가 그녀는 문득 옆을 돌아보았다.
김원국과 시선이 마주쳤다.

 꼼짝 하지 않고 앉아 김원국은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숨을 쉬는 것 같지도 않았다.


"왜요?"


눈을 크게 뜬 장민애가 놀란 듯 물었다.

그녀의 말소리에 김원국이 턱을 조금 치켜올렸다.


"응? 아냐, 그냥."


두어 번 눈을 깜박인 김원국은 몸을 일으켰다.

장민애의 겨드랑이를 잡아 일으켜 세웠다.

장민애의 가슴이 가볍게 뛰었고 따스해졌다.
해는 이미 기울어서 아래쪽 곽씨집의 부져에는 불이 켜져 있었다.
그것을 본 장민애가 집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집안에 환하게 불이 켜졌다.

응접실이 환해지고 마당과 가까운 안방의 불도 켜졌다.

장민애가 바쁜 듯 움직이는 것이 마당에서 환하게 보였다.

김원국은 마당가에 서서 그녀의 모습을 눈으로 좇았다.
아래쪽에서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저녁 준비가 다 된 모양이었다.
연장을 챙기고 마당을 치우고 있는데'음악이 흘러 나왔다.

글리를 세운 김원국의 얼굴에 웃음이 떠올랐다.

하도 많이 들어서 이제 처음에 울리는 피아노 소리만 들어도 알 수 있었다.

 잉글버트 험퍼딩크의 달콤하지만 애타는 목소리가 들렸다.

김원국은 연장이 든 가방을 구석에다 치우고 집안으로 들어섰다.


'Don't leave me alone‥‥‥‥


노랫소리가 집안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김원국은 장민애를 바라보았다.

전축의 다이얼을 잡고 선 장민애가 그와 시선이 마주치자 볼륨을 낮췄다.
새벽 4시였다.

거리는 차량의 왕래가 끊어져 샐렁했다.

빌딩들은 몇개의 광고탑에서 비치는 불빛만을 받고 검은 덩어리를 희미하게 내보이고 있었다.

 상점들은 모두 문을 닫았고, 인도에 어지럽게 흩어진 휴지와 종이 상자들은 지난밤에 도시가

게워 놓은 환락의 찌꺼기였다.
텅빈 테헤란로를 달리던 우유 배달 트럭 운전사는 커다랗게 입을 벌리고 하품을 했다.

눈물이 찔끔 나왔으므로 한 손을 들어 눈을 닦았다.
순간 그는 두 손으로 핸들을 움켜쥐었다.

검정색 중형 자가용이 쏜살 같이 그의 트럭을 스치고 지났기 때문이다.

빈 거리기는 하나 엄청난 속도였다.

아마 150킬로미터는 되어 보였다.
그는 둥그래진 눈으로 승용차를 쫓았다.

승용차는 사거리에 다가서더니

좌측 깜박이를 켰다.

그러고는 휘익 우측으로 꺾어져 들어가 버렸다.
그는 입을 쩍 벌렸다.

헛웃음이 나왔다. 좌측과 우측의 깜박이 사용법을 모르는 녀석이었다.
조웅남은 다시 액셀러레이터를.힘주어 밟았다.

차가불끈 튀더니 다시 속력을 냈다.

남부 순환도로가 다가오고 있었다.

오른쪽으로 틀면 김포공항으로 가게 될 것이고 왼쪽으로 가면

종합운동장이 나오게 될 것이다.

순환도로가 다가왔다.

조웅남은 오른쪽으로 깜박이를 켰다가
이맛살을 찌푸리고 왼쪽으로 핸들을 꺾었다.
강만철은 자리에서 일어나 시계를 보았다.

새벽 4시 30분이었다.


"어디 가세요?"


잠이 던 깬 목소리로 안미혜가 물었다.


"아니, 냉수 한잔 마시고 싶어서."


"제가 가지고 올게요."


그녀는 부스럭거리며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누워 있어."


강만철은 냉장고에서 냉수를 꺼내 컵에 따랐다.

물을 마시고 응접실로 돌아온 그는 소파에 앉았다.

어둠에 눈이 익숙해지자 의자와 탁자들,그리고 벽에 걸린 그림의 윤곽까지 보였다.

안방문이 열리더니 안미혜가 나왔다.

그녀는 더듬거리듯 다가오다가 강만철을 발견하고 놀란 듯 우뚝 섰다.


"여기서 뭘 하세요?"


강만철은 그녀의 손을 끌어 소파에 앉혔다.


"잠이 안 와서 그래. 당신은 들어가 자."


"무슨 일 있어요?"


안미혜의 목소리가 팽팽해졌다.


"없어."


"1럼 왜?"


"그냥 잠이 안 오는군그래."


안미혜는 그의 손을 끌어 그녀의 아랫배에 가져다 대었다.

불룩한 부분이 만져졌다.

임신 6개월째였다.


"무슨 일 있으면 안 돼요."


강만철은 손을 빼냈다.


"당신도 이제 곧 아버지가 돼요."


어둠 속에서 그녀의 눈동자가 그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 보였다.


"가서 자, "


안미혜는 그에게 다가앉았다.
이젠 잠이 깨어 버린 것 같았다.


"어제 오후에 대치동 삼촌이 왔다 가셨써요."


"응? 웅남이가? 무슨 일로?"


어젯밤엔 늦게 들어오기도 했지만 안미혜도 잊어먹은 것 같았다.

"그놈이 갑자기 왜 왔지?"


"지나다가 들르셨다면서 사과 한 상자 놓고 가셨어요."


"어머니하고 한동안 이야기하고 가셨어요."


어머니야 누구든 붙잡기 좋아하니까 이상할 건 없었다.


"대치동 삼촌, 요즘 무슨 일 있는 거예요?"


"왜?"


"별로 말도 없고 예전처럼 떠들지도 않아요.

어머니도 달라지신 것 같다고 말씀하세요."


"나이들었으니까 이젠 점잖아질 때도 되었지."


"점잖아진 게 아니에요. 걱정이 있는 것 같았어요.

저녁이나 먹고 가시라고 해도 그냥 웃으면서 나가는 것이 안돼 보였어요."


"대치동 삼촌은 왜 장가를 안 가는가 몰라, "


강만철은 잠자코 그녀를 바라보았다.
판은 짓고땡에서 버티기로 옳겨가고 있었다.

5장을 가지고 3장으로 짓고 2장을 가지고 끝수 싸움을 하면

이미 바닥에 깔린 3장으로 상대방의 패를 알 수가 있다.

그렇게 되면 머리싸움이 되어서 판돈이 굵지 못했다.

그러나 버티기는 20장의 화투를 2장씩 나눠 줘서 끝수로 승부를 하는 것이기 때문에

단칼로 승부를 하는 것처럼 배짱과 밑천이 필요한 것이다.

판돈도 부쩍 굵어지기 시작했다.
천재용은 안쪽의 벽에 기대앉아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가끔씩 머리를 숙이고는 조는 것처럼도 보였다.
시간은 새벽 4시가 넘어 있었다.

그러나노름판은 점점 열기를 띠어 가고 있었다.

"이봐, 받을 거야, 안 받을 거야?"


김 전무의 목소리였다. 초저녁에 고스톱으로 시작했을 때

그는 200만 원 정도를 가볍게 잃었다.

그러다가 짓고땡으로 판을 바꾸자 500만원 정도를 땄다가 버티기에 들어가서는

내리깨지고 있는 것이다.

그가 소리친 상대는 허 사장이었다.

40대 후반으로 대머리인 그는 김 전무와 소리를 들은 척도 하지 않고 패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아, 젠장. 백 낼 거야, 안 낼 거이?"


버티기는 끝까지 버텨 가는 것이어서 중도에서 패를 깔 수는 없다.
그들의 규칙은 선을 잡았다 하더라도 세 번까지는

상대방의 버팀에 응 하지 않으려면 포기해야 했다.
김 전무는 선을 잡았고 네 번째 판돈을 걸고 있었다.

40대 초반의 그는 재벌그룹의 차남이어서인지 통이 컸다.

가구회사를 경영하는 허 사장과 맞상대가 되어 있었다.

허 사장이 한숨을 쉬는가 했더니 100만 원 짜리 수표를 던져 놓았다.


"허."


첫번째부터 죽어서 판돈 10만 원을 버 린 조 원장이 눈을 크게 떴다.


"뭔가 쥐고 있는 거 아냐?"


그러면서 옆에 놓인 맥주잔을 집어 들었다.

그는 강남의 제법 큰 병원 원장이었다.

40대 후반으로 몸집이 비대한 탓인지 얼굴에 번들거리는 땀이 보였다.


"좋아, 그럼 200이야."


김 전무가 서슴없이 수표 2장을 던져 놓았다.


"끝짜지 가보자구."


이번에는 허 사장이 망설이지 않고 따랐다.

김 전무가 힐끗 허 사장을 보았다.


"거 괜히 오기부리지 말어. 내가 다 아니까."


"흥. "


허 사장이 웃었다.

이제는 얼굴의 긴장이 풀려 있었다.


"댈 거야 안 댈 거이?"


"좋아. 500이다. "


비스듬히 누꿔 있던 강 사장이 일어나 앉았다.

김 전무는 500만 원을 던져 놓았다.

그러고는 어지럽게 널려 있는 판돈을 차곡차곡 쌓아 놓았다.


"그래, 나도 500이다. "


허 사장이 1천만 원짜리 수표를 꺼내 놓고 판돈에서 500만 원을 빼 내어 갔다.

김 전무의 이맛살이 좁혀졌다.


"이봐, 당신 왜 그러는 거야? 노름 한두 번 했나. 왜 이렇게 성질을 내고 그래?"


"내 걱정은 말어. "


"당신 생각해서 까겠어. 당신 회사 부도나면 안 되니까."


김 전무가 패를 바닥에 깔았다.

7땡이었다.

멧돼지가 호기롭게 달리고 있었다.

허 사장이 바닥에 패를 던졌다.

 2정이었다.

조 원장이 혀를 찼다.

강 사장이 다시 비스듬히 누웠다.


"사람이 싱겁기는, 아 그래 2펑 가지고 그렇겐 엉기면 어떻게 해?"


강 사장이 누운 채 말했다.

그는 제법 알려진 부동산업자였다.
지금은 그의 땅에 백화점을 세워 백화점 사장이 되었다.


"아, 그럼 2땡 가지고 죽으란 말이야?"


허 사장이 언짢은 듯 말했다.
김 전무가 웃으며 판돈을 긁어 앞에다 쌓았다.


"당연하지. 나 같아도 2정 가지고는 끝까지 버틸 거야."


천재용은 다시 눈을 감았다.

오늘 고리는 1천 500은 될 것 같았다.
윤용근이 들어오자 그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방에서 나오자 주방에서 김 마담이 해장국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이봐, 오늘은 길어질 것 같으니까 아침 식사 준비도 해야 돼."


"알았어_e.."


"그런데 애들은 어디 있어?"


"방에서 자요."


천재용은 시계를 보았다.


"깨워. 슬슬 생각날 때가 되었어."


"지금이 몇 신데.4시 30랄이에요."


"그러니까 하는 소리야."

김 마담은 잠시 천재용을 바라보더니 건너편 방으로 들어갔다.

30대 후반의 무르익은 몸이 원피스 안에서 윤곽을 드러내고 있었다.
천재용은 응접실 소파에 앉아 머리를 둥받이에 대었다.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호화로운 샹들리에가 보였다.
이 집은 비밀요정을 하는 김 마담이 쓰고 있는 집이었다.

방 5개에 각 방마다 목욕탕과 화장실을 설치해 놓았다.

응접실에서 파티가 끝나면 파트너와 옆방으로 옮기면 되었다.

파트너들도 수준이 높아 배우와 탤런트 뺨치는 미인들이었다.

김 마담은 모델학원이나 배우학원, 연기 학원에 줄을 대고 있어서

물좋고 싱싱한 여자들을 얼마든지 공급할 수 있었다.

말이 배우고 탤런트지 연기학원에 다니는 반반한 애를 치장시켜 놓고

얘가 이번에 천대일의 경쟁을 뚫고 방송국의 주연 모집에 당선된 애라면

안 속아 넘어가는 작자가 없었다.
김 마담은 철저하게 회원 위주로 영업을 하고 있어서 뜨내기가 소문을 듣고

찾아오면 쫓아보랬다.

하루에 한 팀으로 하되 5명 이상은 받지 않았다.

김 마담과는 7, 8년 전부터 아는 사이였던 천재용은 이철주가 피습당한 후로

그녀의 기둥서방 노룻을 하고 있었다.

이곳은 경찰은 물론 김원국의 조직도 알지 못하는 곳이었다.

이를테면 김원국 둥이 관리하는 업체들과는 하늘과 땅만큼의 수준 차가 있었고

그것이 당분간 안전했던 것이다.
김 마담이 방에서 나왔다.

그녀는 천재용 앞에 와 앉았다.


"오늘밤에 박 전무가 오기로 했는데 어떡하죠? 취소시킬까요?"


술먹고 오입할 손님이었다.

천재용이 머리를 끄덕였다.


"아이 참, 당신이 노름꾼들을 불러들이는 바람에 손해가 많아요."


"손해? 네가 왜 손해o 내가 끝나면 한몫씩 줬잖아?"


"그렇다고 그게 매일 있나요? 이러다간 손님 떨어지겠어요."


천재용은 노름꾼들을 끌어들였고 그들은 김 마담의 집에 홀딱 빠져 들었다.

껄질까지 벗고 나와도 술과 오입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러나 천재용은 판돈의 15퍼센트는 어김없이 받아냈다.

10퍼센트는 자신이 챙기고 5퍼센트는 김 마담 몫이었다.
천재용도 망보기나 경호원으로 형무소에서부터 알고 지내던

윤용근 등 3명을 부리고 있었으므로 경비가 들었던 것이다.

하품을 하면서 아가씨 한 명이 방문을 열고 나왔다.

반바지 차림에 맨발이었다.

날씬하게 뻗은 다리의 선이 고왔다.

처음보는 얼굴이었다. 어디에서 데려오는지는 모르지만

매일 새 얼굴이었고 모두가 미인이었다.
그녀의 됫모숱을 바라보면서 천재용은 과연 돈이란 좋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돈이면 언제나 최고의 대접을 받는다.

저렇게 젊고 예쁜 애를 자는 걸 깨워서라도 기다리게 하는 힘이 있다.

다시 2명의 아가씨가방에서 나왔다.

천재용은 우루커니 그들을 바라보았다.
"두당 100만 원이자니다. "
백장용이 말했다.


"나도 그 얘긴 들었어. 그렇지만 도무지 어디에 있는지를 몰랐는데 잘됐다. "

김칠성이 웃어 보였다.


"걔는 오늘도 나간다는데 가볼까요?"


"임마, 너 돈 있어?"


"아니, 그게 아니라‥‥‥‥


"가서 엎잔 말이냐?"


"어차피 그것들은 영업허가도 없이 불법으로 장사하니까요."


"그런 얘기 큰형님한데 해봐라, 네가 무슨 법 집행관이냐고 작살나게 깨질 거다. "


"그럼 경찰에 신고를 해요?"


백장용이 볼멘소리로 말했다.
군에서 제대한 후에 간부사원으로 특채된 그는 모처럼 한건 올렸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김칠성 밑에서 업소에 출연하는 연예인들과의 계약을 담당하던 백장용은 우연히

비밀요정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던 것이다.

두어 번 신곡을 내놓았으나 빛을 못 보고 밤무대를 뛰던 이정란은 몸매도 미끈했고

얼굴도 제법 귀여웠다.

백장용과 계약을 하다가 이 정도가 한달 계약금이면

그곳에 나가 사흘만 일하면 되겠다는 이정란의 말을 듣고 캐물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곳은 회원이 아니면 들어갈 수도 없답니다.

그러니까 우리 같은서민들은돈이 있어도 안돼요."


김칠성이 웃었다.


"요즘 세상에 돈 있으면 누가 서민이냐? 양반이지."


"그렇구먼요."


"어쨌든 생각해 보자. 이건 형님한테 보고를 해야 할 것 같으니까."


이틀후에 백장용은주택가에 있는 김 마담의 집에 들어섰다.


"어서 오세요, 백 사장님."


현관에서 김 마담이 기다리고 섰다가 허리를 굽혔다.

"아, 김 마담이시오?"


백장용이 웃으며 그녀에게 물었다.

턱이 약간 빠졌으나 눈매와 입술이 남자깨나 밝힐 여자 같아 보였다.


"네. 오 사장님한테서 말씀 많이 들었어요,"


김 마담은 그를 안방으로 안내했다.

백장용은 2명의 부하외· 함께 그녀의 뒤를 따랐다.
"오 사장이 좋은 데를 소개시켜 주겠다고 해서 말이야. 궁금해서 못 참겠더군."
오 사장은 강남에서 수입품 판매장을 가지고 있는 사내였다.

김칠성은 그가 김 마담의 회원인 것을 이정란을 통해 알아냈고 안면이 있었

그를 설득하여 전화를 하게 했던 것이다.

오 사장은 발을 끊은 지 오래 되었다면서 선선히 전화를 해주었다.

그들은 보료 위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준비할 동안 화투라도 치시겠어요?"


김 마담이 자리를 만들어 줄 듯이 물었다.


"아니 우린 세 가지 중에서 그것 하나는 흥미없어.
백장용이 손을 젓자 김 마담이 운으며 몸을 돌렸다.
"햐아, 형님, 대단하네요."


부하가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그의 눈에도 방안의 장식이 화려하게 보였던 모양이다.

양쪽 벽이 유리로 된 수족관이었다.

커다란 황금색 열대어가 눈을 꿈벅이며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푸른 해초가 어물거리는 바닥엔·횐 모래가 깔려 있었다.

수백 마리의 조그만 고기가 한꺼번에 몰려다녔다.

 수족관 안에서 밝은 불빛이 비치고 있었으므로
그들은 물속에 들어와 있는 것 같았다.
잠시 후에 여자들이 들어왔다.

그녀들은 인사를 하더니 잠자코 안쪽에 앉았다.

부하 한 명이 침을 꿀꺽 삼켰다. 매일 여자들을 관리해 온 그들이었지만

이렇듯 싱싱하고 물좋은 것들은 처음 보는 것이다.
김 마담이 들어왔다.

조그만 상을 들고 있었다.

그녀는 상을 그들 앞에 내려놓고 은주전자를 들어 올렸다.

아가씨가 다가와 그들에게 조그만 유리잔을 쥐어 주었다.


"뭐야 이건?"


"녹혈이에요. 농장에서 아침에 가져왔으니까 싱싱할 거예요."


백장용은 잠자코 잔을 내밀었다.

잔에 붉은 피가 담겨졌다.

사슴의 뿔을 자를 때 뿔에서 나오는 피였다.

이것을 마시려고 뿔이 자랄 때부터 예약한다는 것이다.

어떤 여자는 뿔을 자르고 나서 솜으로 피를 닦아 주면

그 솜을 례앗아 빨아먹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정력에 좋다는데는 다들 악착같은 세태였다.

백장용은 문득 형님들에게 미안한 감정이 들었다.

부하들은 더 그런 느낌이 드는 모양인지 찌푸린 얼굴이었다.
음식상이 들어왔다. 갖가지의 진미가 놓여져 있었다.

여자들은 어느새 그들 옆에 와서 시중을 들었다.

모두들 벌컥이며 술을 마셨다.

급하게 마셨으므로 얼른 취기가 올랐다.
천재용은 문틈으로 백장용들이 안방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젊고 단단하게 보이는 사내들이었다.

그는 방에서 나오는 김 마담을 불렀다.


"이봐, 저놈이 인천에서 배 사업을 한다는 놈이야?"


"제가 하겠어요? 제 애비가 하겠지."


"처음 오는 놈이지?"


"네. 그렇지만 오 사장이 소개해 됐어요."


천재용은 입을 다물었다.

며칠 동안 김 전무 일행이 자기집인 양 뭉개고 간 후로 손님이 들쑥날쑥했던 것이다.

예전에는 하루도 쉬는 날이 없었다.

"이봐, 내일 김 전무가 온다는데, 괜찮겠지?"
김 마담은 퍼뜩 머리를 들었으나 얼른 대답하지 쟈았다.

재료값 없이 4, 5일간 500만 원 수입이라면 괜찮았으나

한 달에 두 번이 있을까 말까 했고 고정손님들에게 지장이 많았다.
"좋아요. 그렇지만 다음부터는 다른 곳을 찾아봐 줘요.

당신이니까 자릴 내줬지만 영업에 지장이 많아요."


"알았어, "


천재용이 잘라 말했다.

그도 이곳에서 더 이상 기둥서방 노룻을 하기에도 질려 있었라.

역마살이 다시 발동한 것이다.
판돈이 커쳔근가고 있었으나 김 전무는 시큰둥한 얼굴이었다.

걱정거리가 있는 듯 말이 없었다.

방안은 담배 연기와사내들이 발산하는 후끈한 열기로 가득 차 있었다.

오늘은 조 원장이 열을 받고 있었다.

전무는 패를 바닥에 던졌다.


"이거야 원. 갑오를 가지고 덤벼들다니. 눈치가 있어야지, 눈치가."


4,7,9짓고 3땡을 잡은 조 원장이 판돈을 긁으며 흐뭇한 표정으로 말했다.

조원장이 2천만 원쯤을 따고 있었다.


"젠장, 버티기로 하지."


허 사장이 짜증난다는 듯 말했다.

멤버는 전에 모인 사람들이었다.
이의가 없었으므로 그들은 새 화투를 천재용에게서 건네받고 패를 나누었다.

비와 똥은 버리고 나머지 40장 중에서 껍질을 다시 버려 20장을 만드는 것이다. -
천재용은 시계를 보았다.

새벽 3시였다.


"오늘은 빨리 끝내야TE어."


김 전무가 바짝 다가앉았다.


"왜?"


허 사장이 물었다.


"아침에 영감님 집으로가서 식구들이 같이 아침을먹기로 했거든."


"흥, 아직도 유산이 남았어?"


"어쨌든 5시에는 가야 돼."


천재용은 벽에서 등을 례고 앉았다.

윤용근이 그를 바라보았다.

두 팔을 벌리고 하품을 하면서 천재용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응접실의 소파에 김 마담이 앉아 있었다.

과일을 깎다가 힐끗 그에게 시선을 주었다.


"이봐, 시원한 식혜나 준비해 둬 . 해장국 끓일 필요는 없어."


김 마담이 얼굴을 들었다.


"왜요?"


그녀는 기분이 좋지 않았다.

여자들을 보면 재수가 없다고 하는 바람에 어젯밤은 애들을 부르지 않았다.

그러나그녀들에게 예약을 해두었기 때문에 돈을 주어야 될 것이다.

밤새도록 흔자 잔심부름을 하다 보니 짜증도 났다.

그녀는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마음먹고 있었다.


"김 전무가 5시에 나가야 된다니까, 그때 끝날 것 같아."


"잘됐군요."


김 마담의 얼굴이 풀어졌다.


"오늘 판돈은 얼마나 돼요?"


판돈의 5퍼센트를 받겐,되어 있늘 것이다.

천재_을은피식 웃었다.


"오늘은 4, 5억 될 거를."
;
"오늘은 크네요."


"그래 ."


김 마담을 바라보는 그의 얼굴에는표정이 없었다.

4시 30분이 되자 김 전무는 자주 41계를 들여다보았다.

김 전무가 엉덩이를 들썩이자

나머지 사람들도 불안한지 끈질기게 배팅하는 사람이 없었다.

각자의 앞에는 판돈이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오늘은 초저녁부터 열을 올린 조 원장이 3천쯤 딴 것이 전부였다.
윤용근이 들어왔다.

상 위에 시원하게 보이는 식혜 네 그룻이 올려져 있었다.


"자, 시원하게 한잔씩 드십시오. 해장국 대신 드셔야 할 겁니다. "


김 전무가서둘러 식혜그릇을 들었다.

모두들 식혜그룻을 깨끗이 비웠다.

조 원장은 더 먹고 싶은 듯 바닥에 깔린 밥알까지 먹었다.
천재용은 시계를 보았다. 4시 50분이었다.
백장용은 시트 젖히고 잠이 들었다가 옆의 부하가 어깨를 흔드는 바람에 잠에서 깨어났다.

아침 8시였다.


"아니, 이런."


시계를 본 그는 당황했다.


"야, 이거 어떻게 된 거야? 8시 아냐?"

어젯밤 12시부터 기다렸다가 새벽녘에 깜빡 잠든 모양이었다.


"아, 그놈들이 나오지 않는 걸 어떡합니까? 아예 저기서 자는 모양 이었다.. "


부하는 김 마담의 집을 턱으로가리키며 말했다.


"그 새끼들 오지게 노는군."


백장용이 눈을 부비며 혀를 찼다.

그들은1증님들이 돌아가고 나서 김 마담집의 수족관과 밀실들을 때려부술 작정으로 있었다.

김칠성의 지시였다.

백장용은 차라리 경찰에 신고하자고 했으나 김칠성은 머리를 저었다.

비겁하다는 것이다.

그가 강만철이나 김원국에게 보고를 하고 지시를 받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어쨌든 그 일을 못하게 따끔한 맛을 보여 주라니 그 길밖에 없었다.
김 마담의 집에서 사내 한 명이 나왔다.
2층 양옥집이었고 옆집과는 분명하게 담으로 나누어져 있어서 옆집 사내는 아니었다.

 30대 초반의 젊은 사내는 잠간 주위를 둘러보더니 골목길을 걸어나왔다.

백장용의 차는 길가에 주차되어 있는 차 사이에 끼여 있어서 눈에 될 염려는 없었다.


"저게 웬놈이야? 어젯밤 저놈이 들어간 건 못 보았는데?"


"저두 그래요."


"저 새끼 잡아와봐."


이젠 가릴 것이 없었다.

심부름하는 녀석이면 안쪽 사정을 물어볼 작정이었다.

운전석에 있던 부하가 뛰쳐 나가면서 앞에 주차하고 있던 차를 두드리자

부하 둘이 문을 열고 나왔다.

 백장용은 차 안에서 그들을 바라보았다.

길에는 아침 출근을 서두르는 사람들이 제법 많았다.

3명의 부하는 앞뒤로 나란히 서서 그 사내에게 다가갔다.
앞장섰던 부하가 사내의 앞을 가로막고 섰다.

무엇인가 이야기를 하자 그 사내는 부하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순간 사내의 이마가 부하의 얼굴을 들이받는 것이 보였다.

재빠른 동작이었다.

그러고는 발을 들어 뒤에 선 부하의 배를 차올렸다.

부하들이 얼굴과 배를 움켜쥐고 주춤거렸다.

뒤쪽에 섰던 부하가 두 팔을 벌리고 달려들었으나 사내는
벌써 몸을 빼 이쪽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백장용의 가슴이 뛰었다. 사내와의 거리가가까워졌다.

10미터쯤다 가왔을 때 백장용은 차의 문을 열고 나왔다.

사내는 달려오면서 백장용을 보았다.

속도를 늦췄으나 그때는 이미 백장용이 달려가고 있었다.
백장용의 발길이 휘익 공중으로 떠올랐다.

오른쪽 발끝을 앞으로 하고 온몸이 수평이 된 듯 그를 향해 날아갔다.

사내는 멈추면서 그의 발길은 오른팔목으로 때렸으나

그때는 이미 백장용의 주먹이 그의 턱을 치고 난 후였다.
사내는 휘청거렸다. 백장용은 땅바닥에 두 발과 한 손을 짚으면서 떨어졌다.

그리고 번쩍 상체를 세우면서 양손으로 그의 배를 연타하고는 발을 뻗어 다리를 걸었다.

사내는 땅바닥에 엉덩이를 부딪치며 주저앉았다.

머리가 건들거렸다.

부하들이 달려왔다.


"이놈을 차에다 실어라."


길을 걷던 사람들이 놀라 그들을 바라보면서 멈춰 서 있었다.

그들이 있는 곳은 주택가를 자져나오는 길이어서 차도는 100미터쯤 아래였다.
그들은 재빨리 차에 시동을 걸고 골목을 빠져나왔다.

뒤를 돌아보았으나 바쁠 때여서인지 아무도 신경쓰는 것 같지 않았다.

모두들 갈 길을.가고 가게의 문을 열던 사람은 다시 열고 있었다.

사내의 주머니에서 수표로만 4억 원이 나왔다.

모두 고액권 수표였다.
김칠성은 무심코 뒤진 사내의 몸에서 나온 수표에 어안이 벙벙 한 모양인지 그를 바라보았다.


"이거 어디서 H어?"


"난 심부름하는 거요."


사내가 억울하다는 듯 말했다.


"누구 심부름이야?"


"사장님들요."


"누구?"


"사장님들 말입니다. "


"그래서? 이걸 가지고 어쩔려고 그랬어?"


"너, 김 마담한테 전화 걸어 볼까? 아니면 경찰에 그냥 넘겨줄까?

바른대로 이야기하지 못해?"


사내는 불안한 듯 눈동자가 흔들렸다.


9시 30분이었다.

은행은 10시나 되어야실제 업무를 시작할 것이다.
그리고 고액권 수표를 현금으로 바꾸려면 시간이 걸릴 것이다.

천재용은 소파에 앉아 신문을 펼쳐 들었다.

김 마담에게는 조금 미안했지만 귀찮은 일은 없을 것으로 믿었다.
김 전무나 조 원장 등이 돈을 털렸다고 경찰에 고발하지도 못할 것을 알고 있었다.

안방에는 4명의 사내들과 김 마담이 손발이 묶인 채 눕혀져 있었으나

그들은 오후 늦게서나 잠에서 깨어날 것이다.

식혜에 타넣은 수면제를 맛있게 마신 때문인데 윤용근은 확실하게 하려고

그랬던지 계획했던 양보다 많이 먹인 것 같았다.
천재용은 시장기가 느껴져 냉장고를 열었다.

깔끔한 김 마담의 성격 대로 음식이 차곡차곡 쌓여져 있었다.

그는 소시지 한 조각과 과일 통조림 한 개를 꺼냈다.

소파로 가지고 돌아와 우적이며 소시지를 씹었다.

복숭아 통조림을 기울여 시원한 즙을 마셨다. 벨소리가 울렸다.


"누구요?"


"형럼, 접니다. "


생각했던 대로 윤용근이었다.

천재용은 문고리를 풀었다.

윤용근의 몸 들어오고 나서 천재용은 선뜻 얼굴을 들었다.

그리고 한발짝 뒤로 물러섰다.

웬 사내가 불쑥 들어섰던 것이다.


"당신 누구요?"


천재용이 윤용근과 사내를 번갈아 보면서 거칠게 물었다.

윤용근은 비틀거리며 응접실 구석으로 밀려났다.

사내는 훌쩍 응접실로 올라섰다.

구두를 신은 채였다.
낮이 익었다.

다시 사내 한 명이 열린 문으로 들어섰다.

장신에 이목구비가 뚜렷했다.

천재용은 다시 한걸음 물러섰다.


"이봐, 당신들 누구야?"


직감으로 그들이 경찰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문쪽을 바라보았으나 더 이상 들어오는 기척은 없었다.

"난 유철이 친구다, 이 새끼야."


늦게 들어온 사내가 말했다.

김칠성이었다.

백장용을 데리고 달려온 것이다.

조웅남에게도 연락은 해주었지만 조급한 김에 달려온 것이다.


"이?"


천재용은 씨익 웃었다.

백장용과 김칠성 둘뿐인 것을 알자 저도 모르게 운음이 나온 것이다.

 

"야, 용근아. 어떻게 된 거야?"


시선은 김칠성에게 향한 채로 소리쳐 물었다.

구석자리에 붙어선 윤용근은 대답하지 않았다.


"어떻게 된 거야, 이 새끼야!"


다시 소리질러 물었다.


"잡혔 어_e.."


"그래서? 몰려온 거냐?"

 

"우리 둘이다. "


김칠성이 다가섰다.


"이 새끼, 칼을 잘 쓴다면서? 그 칼로 내 친구의 등을 쑤셨겠다. "

 

천재용은 두 손바닥을 마주 쳤다.


"두 놈쯤은 맨손으로 죽여 주마."


천재용은 조급해졌다.

둘이 왔다지만 불안했고 돈도 궁금했지만 윤용근에게 돈을 어떻게 했는지 물어볼 경황이 없었다.
천재용은 한걸음 다가섰다.

김칠성이 선뜻 상체를 굽히면서 한걸음을 내딛는가 했더니

그의 발이 휘익 천재용의 머리를 향해 날았다.


"흥. "


코웃음을 치면서 천재용은 왼팔을 들어 발을 막고는 바짝 붙어섰다.
그의 무릎이 김칠성의 사타구니를 차올리면서 오른쪽 주먹이 옆구리를 쳤다.

김칠성은 옆구리를 얻어맞으면서 왼손을 뻗어 천재용의 머리칼을 움켜쥐었다.

머리가 가까이 있었고 후려치기에는 각도가 어중간 했기 때문이었다.
천재용의 눈이 크게 떠졌다.

의외인 모양이었다.

그 순간에도 그의 주먹이 두 번이나 김칠성의 가슴과 배를 쳤다.

김칠성은 왼팔을 밑으로 힘엇 당겼다.

머리가 흔들린 천재용의 자세가 따라서 흔들렸다.

머리를 따라 상체가 왼쪽으로 굽혀지자 김칠성의 무릎이 그의 얼굴을 바라고 쳐올랐다.

천재용이 팔목으로 무릎을 막았으나 무릎은 천재용의 입술을 쳤다.

천재용은 이를 악물고 김칠성의 하반신을 양팔로 껴안았다.

김칠성이 뒤로 넘어졌다.

그 바람에 천재용의 머리를 놓친 김칠성이 몸을 굴려 일어나자

천재용의 발길이 날아왔다.

몸을 돌려 어깨로 그의 발을 받고는 성큼 다가섰다.
툭탁거리면서 부딪치고 맞는 소리만 들릴·뿐 서로 입을 열지 않았다.

김칠성은 눈을 부릅뜨고 입으로 가쁜 숨을 내쉬었다.

천재용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피투성이가 된 입을 벌려 웃었다.

 백장용은 양쪽이 막상막하라고 보았다.

김칠성은 기골이 뛰어난 데다가주먹이 강했다.
통뼈였으므로 한방으로 끝낼 수도 있었다.

그러나 천재용은 잔재주에 능한 것 같았다.

체격도 컸고 몸동작이 부드러워 보였다.

윤용근은 구석에 주저앉아서 넋을 잃고 그들을 바라보고 있는 중이었다.

다시 김 칠성이 휘익 발을 뻗었다.

천재용이 팔을 들어 막았다가 워낙 발길이 세었던 관계로 얼굴을 얻어맞지는 않았으나

몸이 휘청거리면서 한걸음 옆으로 밀려났다.

김칠성은 그때를 놓치지 않았다.

왼쪽주먹이 곧장 뻗어나가 천재용의 가슴을 쳤다.

퍽 소리가 들리더니 천재용은 두 발자국·을 물러섰다.

백장용이 빙긋 웃었다.

숨이 막히는지 천재용은 입을 쩍 벌렸다.

그리고 두 팔로 주방의 싱크대를 짚었다.

벌린 입이 시뻘갰고 눈을 부릅 뜨고 있어서 아주 섬뜩한 얼굴이었다.

천재용이 주방의 싱크대 앞을 한바퀴 획 도는가 했더니

그의 손에는 커다란 식칼이 쥐어져 있었다.
김칠성이 이를 악물고 한걸음 다가갔다.

백장용이 문에서 몸을 례었다.

천재용이 한발짝 다가서면서 식칼을 곧장 내뻗었다.

김칠성이 흠칫하고 상체를 비틀자 천재용의 발길이 날아와 그의 옆구리를 찼다.

옆구리를 얻어맞은 김칠성은 부드득 이를 갈았다.

한걸음 앞으로 내딛자 천재용의 칼이 좌우로 휘익 그어졌다.

다시 상체를 눕혀 피하면서 발을 들어 그띄 배를 차올렸다.

허점이 있었으나 칼 때문에 거리가 너무 멀었다.
발길이 허공을 찼다.

비틀거리던 김칠성이 탁자를 한손으로 짚었다.
손끝에 무엇이 닿았고 그것이 꽃병인 줄을 깨닫자마자 집어들어 천재용에게 던졌다.

마악 달려들려던 천재용은 꽃병을 보았으나 피하지는 못했다.

가슴에 꽃병이 맞았고 어지럽게 물이 튀었다.
그 사이에 김칠성은 자세를 가다듬고 달려들었다.

천재용이 칼을 뿌리자 아예 팔을 방패삼아 쳐들고 다가갔다.

옆으로 휘두른 식칼이 김칠성의 팔에 맞아 걸리고

그 순간에 김칠성의 주먹이 천재용의 턱을 쳤다.

천재용은 한바퀴 돌더니 싱크대에 의지하고 다시 섰다.

그는 김칠성을 노려로면서 이를 갈았다.

김칠성은 왼팔의 주먹을 쥘 수가 없었다.

식칼에 깊숙이 베인 것이다.

백장용이 그것을 준시하고 있었다.
이때 그의 둥 뒤의 문이 쿵쿵 울렸다.

누가 두드리는 모양이었다.

천재용과 김칠성도 그 소리를 들었다.


"누구요?"


백장용이 물었고, 그 순간에 천재용이 칼을 겨누고 달려들었다.

김칠성은 몸을 비켰으나천재용의 칼이 그의 저고리를 옆으로 길게 어 놓았다.


"야, 칠성아, 비켜라!"


잠자기 뒤쪽에서 응접실이 떠나갈 듯한 소리가 났다.

이마에 땀이 배어 있던 김칠성이 저도 모르게 빙긋 웃었다.

그는 껑충 뛰어 옆으로 비켜섰다.
천재용은 응접실 안쪽에 서 있는 거한을 보았다.

그의 몸과 얼굴만 보아도 누군지 알았다.

말로만 듣던 조웅남이었다.

천재용은 눈을 부릅 뜨고 다시 이를 갈았다.

식칼을 고쳐 쥐었다.

김칠성은 조웅남에게 천재용을 양보하고 벽 쪽으로 물러났다.


"니가 천가 놈이냐?"


조웅남이 물었다.

 

 

 


"그 칼로 유철이를 죽였냐?"


김칠성이 입을 열려다가 말았다.

백장용은 다시 침을 삼켰다.

조웅남과 천재용과의 거리는 3미터 정도였다.

그들 사이에는 기다란 탁자가 하나 놓여 있을 뿐이었다.
조웅남의 얼굴이 셀룩거렸다 김칠성은 조웅남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이 새끼야, 칼 써봐라."


갑자기 조웅남이 소리치면서 앞에 놓인 탁자를 두 손으로 번쩍 치켜 들었다.

넓이가 1미터 정도에 길이가 1미터 50은 되는 육중한 탁자가 조웅남의 머리위로 치켜 올려졌다.

김칠성과 백장용의 입이 딱 벌어졌다.

천재용이 눈을 홉떠 탁자를 올려다보자 자신도 모르게 턱이 내밀 어졌다.


"fl fl 01-."


조웅남이 탁자를 치켜들고 달려갔다.


"어, 어."


천재용의 입에서 저도 딘르 소리가 터져 나왔다.

반사적으로 한 팔을 머리 위로 올려 막을 듯한 몸짓을 했다.

좌우로 껑충거리고 피한 다고 해도 탁자는 너무 넓고 컸다.

탁자는 그의 머리 위로 가득 펼쳐져 있었다.


"쾅!"


육중한 탁자가 천재용의 머리와, 어깨와 등을 한꺼번에 내리치고는 그를 삼켰다.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 조웅남도, 김칠성도, 백장용도 입을 열지 않았다.

훌쩍거리는 소리에 백장용이 머리를 돌렸다.

윤용근이 벽에 바짝 붙어 앉아 조웅남을 바라보며 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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