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약의 유혹 ◑
차영화는 짧게 숨을 들이마시고는 이내 숨을 멈춘 듯 움직이지 않고 서 있었다.
그녀에게 판매 이야기를 하던 매장 직원이 말을 멈추고.
그녀가 바라보고 있는 쪽으로 머리를 돌렸다.
김원국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의 뒤로는 오함마의 험상궂은 얼굴이 보였다.
차영화는 저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차 사장, 바쁘신가?"
그녀 앞에 선 김원국이 웃으며 물었다.
"아, 아녜요. 전, 그냥." '
차영화는 당황해처 말을 더듬었다.
그리고 그것을 스스로 의식하자 금방 얼굴이 새빨개졌다.
매장 직원은 몸을 돌렸다.
"그럼 나하고 얘기 좀 할까?"
차영화는 오함마를 힐끗 바라보았다.
무표정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 보고 서 있는 그가 신경에 걸렸다.
잠간 그의 뒤쪽에 시선을 주었으나 아무도 없었다.
"네,1럼."
차영화는 앞장을 서서 3층으로 향했다.
김원국은 말없이 그녀의 뒤를 따랐다.
머리를 올려 가볍게 밴드로 묶었으므로 목덜미가 드러나보였다.
솜털이 나 있었다. 조그만 점이 있었고, 그것은 처음 보는 것이었다.
사장실에 들어가 자리를 잡고 앉을 때까지 둘이는 말이 없었다.
차영화는 한사코 그의 시선과 부딪치지 않으려고 했다.
오함마는 따라 들어오지 않았다.
"장사는 여전히 잘 되는가 보지?"
잔잔한 얼굴로 김원국이 물었다.
그는 새삼스러운 듯 방안을 둘러보았다.
그러다가 시선을 돌려 차영화를 바라보았다.
"왜? 갑자긴 찾아와서 놀랐나?
아니면 내가 너무 떠들색하게 되어서 부끄러운가? 같이 있기가."
"아녜요,"
차영화는 머리를 저었다.
"놀랐어요. 너무 갑작스러워서‥‥‥‥
그녀는 김원국이 무혐의로 석방되었다는 소식을 뒤늦게 들었다.
뜻 밖이었다.
그리고 조금은 화가 났었다.
그는 형을 언도받고 얼마쯤 살아야 되는 것이다.
그래야 자신의 처신도 맞아들어간 것이 될 것이고 상황으로 봐도 형을 사는 것이 당연했다.
그러나 몇 달이 지나도록 그에게서는 연락이 없었다.
처음에는제일 섬유 등에게 냉정하게 처리한 일을 로투리로 잡고 보복을 하면
어쩌나 하고 무척 불안했었다.
그러다가 시간이 흐르고 아무 일이 없자 차츰 잊게 된 것이었다.
"여전히 매력이 있군."
김원국이 웃는 얼굴로 그녀에게 말했다.
차영화는 무릎을 붙였다.
"이것봐, 영화."
김원국이 그녀를 불렀다
시선을 돌려 그를 바라본 차영화의 가슴이 서늘해졌다.
그녀를 바라보는 그의 시선은 처음 보았을 때처럼 싸늘했다.
"난 실망하지 않았어. 왜냐하면 난 너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야.
오히려 너답다고 생각하고 있어. 그러니까 긴장하지 않아도 돼."
"지나다가 들렀지만 예전처럼 우리와 거래를 해도 이상할 건 하나도 없어.
그리고 내가 다시 구속되면 거래를 끊어도 돼.아때 계약조건에 그것을 명기해 두기로 하지."
김원국이 싱그레 웃었다.
차영화는 이재 시선을 피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를 바라보는 그녀의 시선은 조금씩 흔들렸다.
"내가 영화한테 무엇인가를 기대할 만큼 어리숙한 사람은 아냐.
우린 서로 이용하고 싶었던 거야.
난 네 사업적 재능을 넌 나의 힘과보호를 필요로 했지.
그중 하나가 가지고 있던 것이 없어진다면 둘이의 관계는 자연히 소멸되는 것이지.
네 육체는 덤이지.비록 네 몸이지만 너하고 나하고 서로 즐기는 간식 같은 것이었어.
그렇지 않아?"
"그런데 그 몸뚱이를 근거로 해서 여러 사건들이 많이 생기더군.
우린 그걸 초월한 사람들이지, 아마?"
김원국이 다시 싱긋 웃었다.
"손해보지 않도록 해줄 테니까 다시 거래를 하지.
어때? 원 사장하고 이야기를 해보겠어?"
차영화는 잠자코 그를 바라보며 앉아 있었다.
그의 말에 틀린 점은 없었다.
그러나 화가 났다.
두려움이 가시자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그녀의 자쫀심을 건드렸다.
아까는 자존심을 생각할 경황이 없었다.
거절할까 하고 문득 생각해 보았다.
그러자 문신을 넣겠다던 괴물이 생각났다.
차영화는 입술을 깨물었다.
"시간이 지나면 사람들은 뒤늦게 후회들을 하지."
김원국이 다시 말했다.
"뒤를 돌아다볼 시간도 없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건 거짓말이야. 지난 일을 얼렁뚱땅 넘겨 버리려는 핑계지.
어때? 다시 시작하겠어?"
차영화는 이윽고 손해볼 건 없다고 마음먹었다.
그녀는 머리를 끄덕였다.
제일섬유는 시설도 좋았지만 직원들의 복지도 훌릉해서 일류급 공장이 되어 있었다.
더욱이 지금은 제대로 돌아가는 공장이 드문 때이다.
"그럼 그렇게 전하지."
김원굴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그는 차영화의 머리에서 발까지를 순간적으로 훌어 내렸다.
"오늘밤에 같이 있을까?"
"싫어요."
김원국은 머리를 끄덕이고 돌아섰다.
문을 열자 지척에 서 있는 오함마의 등이 보였다.
그령지. 이 녀석도 짜증을 낼 것이다.
앞장서 내려가던 김원국이 저도 모르게 입가에 운음을 띠었다.
그리고 나름대로 차영화도 기분을 풀었을 것이다.
상처받았다고 느긴 자존심이 그걸로 위안은 되었을 것이다.
"야, 술병 이리 내놔."
조웅남이 손을 내밀며 말했다.
김세덕이 소주병을들어 그에게 건네자 종이첨에 가득 소주를 따랐다.
"너도 거그 앉어."
턱으로 옆을 가리켜 보였다.
김세덕은 잠자코 크의 옆에 앉았다.
"야, 세덕아."
조웅남이 제법 친근하게 그를 부르자 김세덕은 시선을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경계하는 시선이었다.
"나는 말이여, 이 새끼가 부러워 죽겄다. "
그는 종이컵에 든 소주를 오유철의 묘에 획 뿌렸다.
그러고는 다시 종이컵에 술을 채웠다.
"지 각시허고 언지나 같이 있잖여. 안 그러냐?"
"fl . "
조웅남은 벌컥이며 술을 마셨다.
마시고 난 조웅남이 얼굴을 정그렸다.
"이건 됫맛이 좀 달어야 허는디, 그러먼 더 잘 팔릴 틴디."
조웅남이 말없이 손을 내밀자 김세덕이 다시 소주 한병을 집어 마개를 뜯었다.
조웅남이 가로채듯 병을 받아들고는 콜라 마시듯이 단숨에 병을 비웠다.
"옛날에 밥맛이 없을 뻔 막걸리에다 밥을 말어 먹었는디,구수허고 좋더랑게. 너, 그려봤냐?"
"아뇨. "
"먹어봐. 배불르고, 취허고, 밥먹고 물마실 필요도 없고, 좋은 거여."
"근디 소주에다는 밥을 못 말어 먹겄고만. 한번 그리봤으면 좋겄는디. 설탕가루를 타야능가?"
조웅남이 다시 손을 내밀어 소주병을 쥐었다.
"내가 옛날에 동수란 놈이 죽었을 때는 안 그런 것 같은디. 너, 동수 알쟈?"
"네, 그 형님을 왜 몰라요? 잘 알죠."
"그 씨발놈은 레슬링을 혔니라. 그놈헌테 잽히기만 허먼 끝났지, 끝 ff ."
조웅남은 다시 병나발을 불고 빈병을 던졌다.
"갸가 일본놈 모가지를 물어뜯어 쥑였다는 얘기혔냐?"
"fl , "
아마 20번도 더했을 것이다.
조응남은 입을 다물었다.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 오유철의 묘를 노려보았다.
바짝 다가앉았기 때문에 허리만 숙이면 묘에 코가 닿을 정도였다.
"근디 이 자식은 아주 드러운 자식여."
조웅남이 불쑥 말했다.
김세덕이 긴장하여 근를 바라보았다.
"나헌티 유세헐라고 작정을 헌 거여. 야, 세덕아, 생각혀 봐라.
지가 말을 안 허는디 내가 지 각시가 죽어가는 것을 어뜨케 알겄냐? 안 그러 은"
"그렬죠."
조웅남은 끄덕이고 다시 손을 내밀었다.
술병이 쥐어졌다.
"나한티는 입도 뻥긋 안 혔어. 씨발놈이 오리발만 내밀었당게.
그리서 제수씨가 죽은 거여. 안 그러냐?"
조웅남은 술병을 거꾸로 세우고 꿀꺽이며 술을 마셨다.
"잘 죽었지. 씨발놈, 안 그러먼 나한티 맞아 죽었을 팅게."
조웅남은 술병을 내던졌다.
"지 각시하고 편안허게 잘 누워 있고만."
그의 말은 공중에 떠 있는 듯했다.
조웅남은 부스럭거리더니 호주머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들었다.
종이는 겹겹이 싸여 있었다.
조웅남은 거칠게 뭉치를 헤쳤다.
피가 말라붙은 귀 한쪽이 나왔다.
김세덕이 잠자코 그것을 바라보았다.
조웅남은 손으로 묘의 앞부분을 혜쳤다.
조그만 구덩이가 만들어졌다.
"유철아,니 원수를 찾었는디 못 쥑였다.
근디 쥑인 것이나 같여.그리서 귀 한 개 비어 왔응게 니 술안주나 혀라."
묘에 대고 중얼거렸다.
"나를 원망허지 말어, 이 씨발놈아. 너는 그리도 나보다 행복헌 놈여."
김세덕이 입술을 깨물었다.
"인자 명절 때나 올 꺼여, 긍게 제수씨허고 재미 많이 봐."
조웅남은 힘들게 몸을 일으켰다.
해가 저물어 가고 있었다
방으로 들어선 홍성철은 주춤 멈춰 섰다.
방 안에 형주량 혼자 있는 것이 아니었다.
화사한 차림새의 펀은 아가씨와 함께 나란히 앉아 있었던 것이다.
형주량이 얼굴을 들어 그를 바라보았으나표정이 이상했다.
난처한 얼굴이었다.
아가씨의 얼굴도 굳어져 있었다.
홍성철은 잘못 들어왔다고 생각했다.
버룻이 되어서 스스럼없이 형주량의 방으로 들어온 것이 잘못이었다.
"이것 참. 형형, 실례했군. 밖에 나가서 기다리지."
그는 몸을 돌렸다.
"아냐, 이것 봐, 홍형 . 아무것도 아냐. 이리 와 앉아."
그제야 형주량이 일어서더니 손을 저으며 그에게 말했다
"아니, 그래두‥‥‥‥
"아, 글쎄, 아니라니간 그러네, 이리 와 앉으라니간."
그는 막무가내였다.
이제는 다가와 붙잡을 것 같았다.
홍성철은 형주량의 앞에 가 앉았다.
아가씨의 정면에 앉은 셈이었다.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아마도 중국 선녀는 이런 모습인가 싶도록 품위가 있는 자태였다.
눈을 내리깔고 탁자를 내려다보고 있었으므로 긴 속눈쌥이 비오는 날의 처마처럼
어둡고 촉촉하게 드리워져 있었다.
콧날이 상큼 솟아 있었고 그 밑에 도톰한 입술을 록 다물고 있는 것이 화난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낮이 익었다.
"아, 저, 소개하지. 우리 형수님이셔."
형주량이 목청을 높여 말했다.
일부러 밝은 분위기로 이끌려고 애를 쓰는 것이 역력했다.
"어? 형수님이라니?"
홍성철이 어리둥절해 하다가 이내 기억을 되살렸다.
해리슨이 죽기 전날 그의 정부집에 쳐들어갔을 때 본 여자였다.
리첸이라든가 하는 이름의 여자였으나
그때는 긴장해 있어서 여자에게 신경쓸 여유가 없었다.
"아아, 기억이 납니다. "
홍성철이 말하자 리첸은 눈을 을려뜨고 그를 바라보알다.
창문이 활짝 열리고 헛이 들어오는 것 같았다.
그녀는 다시 눈을 내리깔았다.
그저 눈만 올려뜨다 내렸으므로 그녀도 알아봤다는 표시인지 무엇인지
알 수가 없어진 홍성철이 형주량을 바라보았다.
형주량이 두툼한 눈시울을 움직여 열심히 몇 번을 깜짝여 보였다.
그것이 잠자코 있으라는 뜻인지 아니면 그냥 얼렁뚱땅 말을
걸어 보라는 표시인지 알 수 없었다.
홍성철은 입을 다물어 버렸다.
"어흠."
형주량이 헛기침을 했으나 누구 하나 상관하지 않았다.
"어쨌든 제가 노력해 보겠습니다. 최선을 다하지요. 네, 믿어 주십시오."
홍성철이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몸을 그녀 쪽으로 숙이고는 열심히 말을 이었다.
해리슨 형님만큼은 아무래도 못하」3지만, 제가 어썼든간에‥‥‥‥
"이분이 알아요."
리첸이 홍성철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녀의 옆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홍성철은 그녀가 자신을 가리키자 깜짝 놀랐다.
리첸의 표정은 화난 것 같이 보였다.
형주량이 우뚝 말을 멈추고 홍성철과 리첸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윌, 윌 말입니까?"
홍성철이 긴장한 얼굴로 물었다.
"우리 그이가 이 사람의 보스인 김원국 씨에게 말했어요.그때 당신도 있었어요."
"그이는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 즐거움이라고 말했어요.
내가 해달라는 것은 뭐든지 해준다고 했어요."
홍성철도 들었었다.
해리슨온 취했었고 홍성철은 김원국이 웃으며 끄덕이던 것을 기억했다.
리첸은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홍성철의 가슴이 답답해졌다.
손가락 사이로 말이 흘러 나왔다.
"그이가 죽고 나자 아무도 찾아오지 않고 방송국에서는 출연도 시켜 주지 않아요.
생활비만 사람 시켜서 겨우 보내 주면서‥‥‥‥
그건 약값도 안 돼요."
홍성철이 상체를 세웠다.
"어디가 아프십니까?"
담배 한 개비가 날아와 홍성철의 얼굴을 때리고 떨어졌다.
머리를 돌리자 형주량이 눈을 분릅떠 보였다.
리첸은 대답하지 않았다.
영문을 알 수 없는 홍성철은 입을 다물었다.
리첸은 얼굴을 들고는 핸드백을 열어 하얀색 손수건을 꺼내 눈밑을 눌렀틱.
"저, 제가 도와드릴 일이라도 있으면, 말씀해 주시면 합니다만 "
홍성철이 말하자 리첸은 잠시 그를 바라보다가 시선을 돌렸다.
잠자코 탁자 위에 놓인 커피잔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홍성철은 초조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리첸을 겨우 달래어 돌려보내고 난 형주량은 길게 한숨을 내쉬고
손수건을 꺼내 이마와 콧잔등을 훔쳤다.
"이봐, 형형, 형수씨를 그렇게 대접하면 어떻게 해?"
홍성철은 그녀에게 동정적이었다.
"모르는 소리 하지 마!"
형주량이 뜻밖에도 화를 벌컥 냈다.
홍성철이 놀라 눈을 크게 떴다.
"생활비는 충분하단 말이야. 씀씀이가 혜퍼서 그렇지.
장성한 자식 3명이 있는 우리집 생활비하고 똑같이 보내고 있어.
한 사람 사는데 말이야."
"그놈의 마약을 처먹기 때문이야."
"마약? 그럼 아까 약값이라는 게‥‥‥‥
"그렇다니 까."
해리슨이 죽고 나자 리첸은 고독감과 소외감을 견뎌 내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녀를 여왕처럼 받들던 주변의 사람들은 하루아침에 등을 돌렸다.
당연한 일이었으나 너무 갑작스러운 변화였으므로 리첸은 당황 했고
가까운 곳에 있던 마약을 찾았을 것이다.
"이것 참, 큰일이군."
홍성철이 말했다.
그는 리첸의 얼굴을 떠올려보았다.
"그러면 안 되는데."
"내가 어떻게 하란 말이of"
형주량의 얼굴에 쓸쓸한 표정이 서렸다.
"어서 형님의 추억을 벗어 던져야지. 그때 생각만 하면 돼?
그때처럼 화려하고, 받들어 모시는 분위기를 못 잊어 하니까 약을 먹게 되는 거야. "
홍성철은 형주량의 얼굴을 바라보며 대답하지 않았다.
빈 타오는 광장을 지나가는 병사들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지휘자의 인솔하에 2열종대로 질서있게 행진해가고 있었다.
임무교대 시간이 된 것 같았다.
그는 몸을 돌렸다. 책상 앞에 서 있던 깡마른 사내를 바라보았다.
검은 얼굴에 눈동자만 하얗게 보였다.
"그래, 네 생각엔 조진량이란 말이냐?"
"그렇습니 다. "
"어째서?"
탐 람은 빈 타오를 바라보았다.
조금 전에 홍콩에서 돌아온 그는 흥콩의 조직들을 알아보고 무는 길이었다.
"그쪽이 우릴 제일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배후에는 중국 세력이 있습니다.
해리슨 하고 줄이 닿았던 중국이 이제는조진량 하고 연결된 것 같습니다. "
"이봐, 그래도 위천산이나 원량이 등은 형주량이한테 공급받기를 원하고 있어.
왜냐하면 그의 구역이 크기 때문이야."
탐 람은 대답하지 않았다.
"형주량이 가만 있겠나?조진량이 공급한 마약을 위천산이가 자신의 구역에서
팔게 놔두겠냔 말이야. 내버려 두지 않을 거다. "
"그건 조진량이가 형주량의 세력권 안에 들어가 지분을 빼앗아 가는 것이나 같다.
지금 조진량이는 다급하니까 매달리지만 일단 나에게 마약을 받아 위천산에게 넘기고는
난 몰라라 할 것이 틀림없다. "
"그렇다면 위천산이나 원량은 형주량의 방해로 장사를 하지 못한다.
그럼 손해보는 건 누구냐? 중간 도매상인 위천산이하고 우리 아닌가."
"형주량은 마약거래에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습니다. "
"그의 구역이 크다. "
"우리에게 거래를 제의해 오지 않고 있습니다. "
"자존심 때문이야. 그놈은 해리슨과 동등한 대우를 바라고 있다.
나 한테서 말이야,"
"김원국의 조직은 어떠냐? 지금 홍콩에 있는 보스는 홍성철인가?"
"Ifl ."
"그놈들은 어때?"
탐 람은 힐끗 빈 타오를 바라보았다.
"잘 아시다시피 우리하고는 거래할 뜻이 없습니다.
그쪽 조직은 헤로인에는 손을 대지 않습니다. "
"그리고 형주량하고는 서로 밀접한 관계입니다.
홍성철과 형주량이 무척 친한 것 같았습니다. "
빈 타오는 이맛살을 찌푸렸다.
"조진량이 잔뜩 위축되어 있겠군,
그래,그러니까 얼른 헤로인을 받아 목돈을 만들고 싶겠지.
세력을 키우려면 돈이 있어야될 테니까 말이 야."
"알았다. 그럼 내일 나하고 홍콩에 가서 만나 보기로 하자.
내 눈으로 보고 거기서 결정하겠다. "
탐 람이 절을 하고 방을 나갔다.
빈 타오는 다시 몸을 돌려 광장을 바라보았다.
이제 홍콩은 각 조직간의 분쟁이 어느 정도 수습이 되고 있었다.
그동안 어떤 조직이 주도권을 잡는가를 빈 타오는 촉각을 세우고 기다렸다.
결국 해리슨의 조직을 이어받은 것은 김원국의 지원을 받은 형주량이었다.
조진량은 파라마운트에서 쫓겨나 다시 세력을 규합하여 반격했으나
홍성철과 형주량의 세력에 밀려 국경지대로 쫓겨났던 것이다.
원삼기는 몰락했고 진상주는 더욱 침체되어 겨우 명맥만을 잇고 있었다.
빈 타오는 다시 혀를 찼다.
형주량이 홍성철과 밀접한 관계가 된 것이 어쩐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해리슨 같으면 이용할 패는 이용하고 차버렸을 것이다.
어쩌면 김원국의 조직이 강했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빈 타오는 머리를 끄덕였다.
형주량의 자존심이 강한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마약거래를 안 할 수가 없다.
해리슨 시절부터 마약으로 벌어들인 자금을 조직 운영비로 써왔다.
형주량은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의 자존심을 약간 긁어 주고 초조하게 만들어 줄 필요가 있다.
그를 우쭐대게 만들면 이익될 게 없는 것이다.
벨 소리에 리첸은 잠이 깨었다.
얼굴을 찌푸린 그녀는 벨 소리가 그 치고 사람이 돌아가 주기를 간절히 바랐다.
어젯밤 마신 마약의 기운이 떨어져 나가 온몸에 기운이 없다.
손가락 하나들어올릴 수가 없을 것 같았다.
그리고 세수도 하지 않았고 머리칼도 엉망으로 헝클어져 있었다.
그러나 벨은 다시 울렸다.
눈을 들어 벽에 걸린 시계를 보았다.
오전 1 1시가 되어가고 있었다.
해리슨이 죽고 나자 모든 것이 일순간에 무너져 버렸다.
그녀의 곁에서 아부하던 방송국 직원과 텔레비전 방송국의 PD들,
클럽의 지배인들,호텔의 주인들, 카지노의 지배인들,
그들은 하루아침에 얼굴 표정을 바꾸었다.
그녀가 들르면 겉으로는 웃어 보이나 대하는 태도가 란이해진 것이다.
이제는 의상실에서까지 제때에 옷을끝내 주지 않았다.
돈도 떨어졌다.
형주량이 매월 보내 주는 돈은 5일분 마약값밖에 되지 않았다.
리첸은 해리슨이 죽은 이후 소외감을 견뎌 내지 못했다.
여왕처럼 떠받들어지던 옛날과 비교가 되었고
그것이 마약을 상습으로 복용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예전에는 이렇지 않았다.
마약이 집에 가득 있었지만 일이 바빴고 해리슨이 통제를 해주었기 때문이다.
벨이 다시 울리자리첸은 마지못해 몸을 일으켰다.
다리가 휘청거렸다.
거울을 들여다볼까 하다가 몸을 돌리고 비틀거리며 문에 다가섰다.
"누구예요?"
짜증난 목청으로 물었다.
"접니다. "
처음 듣는 목소리였다.
"도대체 누구예요?"
"해리슨의 친구 빈 타오입니다. "
리첸은 깜짝 놀랐다.
그녀는 빈 타오를 여러 번 보아왔다.
해리슨이 집으로도 초대했던 것이다.
그녀는 당황해서 잠시 말을 잊었다.
"부인, 빈 타오입니다. 폐가 안 되면 들어가 뵙고 싶습니다만."
"잠간 기다리세요."
리첸은 서둘러 옷매무새와 머리를 만졌다.
옷장으로 달려가 가운을 걸치고 얼굴을 다듬었다.
그래도 10분이나 걸렸다.
리첸은 문을 열었다.
"여전히 아름다우시군요."
빈 타오가 웃으며 들어섰다.
이어서 낮익은 탐 람과 경호원 한 명이 그녀에게 목례를 하고는 뒤를 따라 들어왔다.
그들은 거실의 소파에 앉았다.
빈 타오는 한눈에 리첸이 마약에 중독된 것을 알아차렸다.
그는 표시나지 않게 집안을 둘러보았다.
꽃병 위의 론은 시들어 늘어졌고 커튼의 한쪽 귀퉁이가 떨어져 나가 축 처진 것이 보였다.
주방에서는 치우지 않은 음식물 냉새가 났다.
"전번 장례식 때 참석하지 못한 인사를 하고 싶었습니다. "
빈 타오가 말했다.
불안한듯 그를 바라보던 그녀가 머리를 끄덕였다.
.
"그땐 저도 정신이 없었어요."
"요즘 어떠십닌까? 해리슨 형이 그렇게 되고 나서 변화가 있는 것 같군요."
빈 타오가 노골적인 시선을 던지며 물었다.
리첸은 입술을 깨물고 대답하지 않았다
그의 쏘아보는 눈은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듯 보였다.
그리고 그는 마약생산업자였다.
"부인,필요하신 것이 있으면 말씀하세요.
내가 해리슨 형과의 의리를 생각해서 최선을 다해 드리겠습니다. "
리첸은 침을 삼켰다.
메말라 갈라진 입술이 보였고, 맑았던 눈이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약 기운이 떨어져 초조해지고정신이 불안해지는 증제인 것이다.
빈 타오는 그녀에게 빙그레 웃어 보였다.
"어서 오십시오. 이거 오랜만에 뵙게 됩니다. "
조진량의 얼굴이 활짝 펴져 있었다 빈 타오는 웃으며 그가 내민 손을 잡았다.
"전번에는 실례가 많았습니다. 사람들의 눈을 피해야 할 입장이다 보니까요,"
"원 천만의 말씀을. 우리도 이해하고 있습니다. "
그들은 밀실에 자리잡고 앉았다. 변두리에 있는 조그만 호텔이었다.
이곳은 조진량의 지역이었고 밖은 고청해의 부하들이 철저히 경비하고 있어서 안전했다.
조진량은 빈 타오에게 고청해와 협진을 인사시켰다.
빈 타오도 탐 람과 경호원인 구엔을 그들에게 소개했다.
늦은 밤이었고 그들은 술을 따라 마셨다.
"마약값이 폭둥하였더군."
빈 타오가 흔잣소리처럼 말했다.
조진량이 힐끗 그를 보았으나 입을 열지는 않았다.
그는 빈 타오가 값을 올리든가 아니면 질질 끌어가면서 애를 먹일 것으로 생각하는 눈치였다.
"형주량 씨는 홍성철 씨하고 사이가 좋은 모양이더군요."
"당연하지요. 홍성철이 덕분에 파라마운트 빌딩을 되찾게 되었으니까. "
조진량이 뱉듯이 말했다.
"김원국이는 서울에 있습니까?"
조진량은 빈 타오를 바라보았다.
자꾸만 그쪽 이야기를 꺼내는 그에게 기분이 언짢은 모양이었다.
"그렇습니 다. "
빈 타오는 술잔을 내려놓았다.
"조 선생, 마약을 나에게서 가져가면 누구한테 넘기십니까?"
"그야 위천산과 원량입니다. "
"미리 말씀은 해보셨습니까?"
"아직 하지 않았습니다. 확실히 빈 선생과 합의련 것도 아니어서요. "
조진량은 불안해졌다.
위천산 등이 거절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들도 목을 빼고 기다리고 있틱.
그들이 실력만 있다면야 당장 빈 타오와 접촉해서 마약을 가져을 것이다.
그것이 가격도 훨씬 싸고 편리하기도 하다.
그러나 그들은 지역을 장악하지 못했다.
각 지역에서 마약장사를 하려면 지역 보스의 허락을 받고 수수료를 몌어 주든지
아니면 지금처림 지역 보스가 나눠 주는 마약으로 장사를 해야 한다.
만일 위천산 등이 빈 타오를 직접 만나려는 눈치가 보이기라도 한다면
지역 보스들의 공격을 받아 이틀을 살아남기 힘들 것이다.
"이번에 3킬로그램을 드리75!소."
빈 타오가 말했다.
"3킬로그램?"
조진량이 상체를 식탁에 바짝 붙이고 물었다.
마약을 넘긴다는 것에 기분은 풀렸으나 수량이 흡족하지 않은 듯 보였다.
"그렇소."
"본래 매월 10킬로그램이 아니었습니까?"
"그렇소. 그렇지만 조 선생이 직접 처음 시작하는 것이니만큼
서로 신중을 기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
"이번에 잘 되면 조금씩 물량을 늘려 가기로 합시다. "
조진량은 혹시 빗 타오가 형주량이나 원삼기에게 마약을 나눠 주지 않았나 하는
의심이 들었다.
"선생, 참고삼아 말씀드리지만 공급창구가 일원화되어야지 여펀이 어서는
가격문제라든가 판매에 극심한 혼란이 옵니다. "
"알고 있어요. 염려하지 마시오."
빈 타오는 무슨 말인지 알겠다는 듯 빙긋 웃었다.
조진량은 그의 뱀같은 눈이 번쩍이는 것을 보고는 시선을 돌렸다.
그러나 어차피 마약은 손에 쥐었다.
3킬로그램을 위천산과 원량에게 넘길 때 최소한의 이익금이 150만 달러는 될 것이다.
이놈 말대로 이번이 시작이니까.
조진량은 머리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돈을 준비하지요. 시간과 장소를 정합시다. "
분위기가 조금씩 풀려가고 있었다.
곽도위는 32살로 광동성 출신의 사내였다.
두 눈샙 사이에도 털이 나 있어서 멀리서 보면
이마 밑에 먹으로 한일자를 그려 놓은 것 같이 보였다.
주먹질에 능했고 봉을 잘 썼다.
그러나 봉이 싸움질을 할 때 모양만 그럴듯하지 별 효과가 없다는 것을
깨닫고는 쇠뭉치로 바긴다.
짧은 쇠몽둥이에 사슬을 매어 던지거나 내리치면 상대방은 당장에 머리통이나
팔다리가 박살이 났다.
그는 또한 주색잡기에도 능했으므로 알려진 건달이었다.
그는 저녁 9시가 넘어서 파라마운트 빌딩에서 두 블록 떨어진 식당가 골목에 서 있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기름 냄새가 풍기는 식당 벽애 등을 기댄 채 누군가를
기다리는 태도였다. 저녁식사 시간이어서 식당골목은 혼잡했다.
30대의 사내가 다가오자 곽도위는 등을 돌리고 천천히 걸어 식당의 후문끌 열고 들어섰다.
문 안쪽에 기대고 서자 사내가 들어왔다.
바짝 마른 몸에 양복을 걸친 모습이었다.
"있습니까?"
"응, 돈은?"
곽도위는 의심스러운 듯 그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여기."
사내는 주머니에서 한뭉치의 지폐를 꺼Lt보였다.
곽도위는 머리를 끄덕이고 주머니에서 종이봉투를 저냈다.
그에게 건네주고는 돈을 가로챘다.
그러고는 손가락에 침을 묻혀가면서 돈을 세었다.
사내는 봉투를 열고 하얀 분말이 들어 있는 조그만 비닐봉지 개수를 세었다.
사내는 그중 한 봉지를 이빨로 더니 혀를 가져다 댔다.
이윽고 그는 머리를 끄덕였다.
곽도위도 지폐를 호주머니에 집어 넣었다.
"이봐, 서담에게 이야기해. 다른 사람에게는 절대로 발설하면 안 돼. 갈겠지?"
끄덕이며 사내는 문을 열고 나갔다.
잠시 후에 곽도위도 밖으로 나왔다.
그는 위천산의 심복으로 마약 소매상이었다.
위천산이 어제 조진량으로부터 2킬로그램의 마약을 받고는
부하인 소매상 조직을 동원하여 판매를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이곳은 형주량의 지역이므로 조심해야 했다.
아직 형주량은 마약이 빈타오로부터 조진량에게 넘어간 사실을 모르는 것 같았다.
그러나 며칠 후면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패는 마약이 모두 뿌려지고 난 다음일 것이다.
곽도위는 다시 벽에 둥을 기대고 서 있었다.
골목 입구에서는 새우 튀김을 팔고 있었다.
40대의 여자가 손수레 위에 가스 곤로를 얹어놓고 끓는 기름에 새우를 튀기고 있고
그 앞에 3명의 사내가 새우를 집어 먹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들은 곽도위의 부하였다.
곽도위는 팔짱을 끼고 콧노래를 불렀다.
그는 위천산으로부터 200그램을 받았다.
그러나 그가 거래하는 양은 300그램이었다.
밀가루와 우윷가루를 적당히 섞어 넣은 것이다.
이것으로 한밑천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하자 기분이 날아갈 듯 상쾌했다.
단숨에 5만 달러가 손에 떨어지는 것이다.
허름한 양복차림의 사내 둘이 골목으로 들어섰다.
부하 하나가 새우튀김 가게를 빠져나와 그들 앞에 와 섰다.
"무슨 일이오?"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 나, 이야기를 들었는데, 약을 좀 한 사내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누구한테?"
곽도위는 혀를 찼다.
곽도위는 끄덕이며 식당의 후문을 밀고 들어섰다.
"ft?"
곽도위가 물었다.
"헉."
곽도위가 숨을 짧게 내쉬면서 허리를 굽혔다.
잠시 후 부하 한 명이 식당 후문을 열고 들어왔다.
"아니?"
그는 엎어져 의식을 잃고 있는 곽도위를 보았다.
빈 타오는 머리를 」1덕였다.
"그럼 자네는 농장으로 돌아가 봐. 나도 곧 돌아갈 테니까,"
그의 앞에 앉았던 짧은 머리의 사내가 일어섰다.
"그럼 돌아가 보겠습니다. 마침 저녁 비행기가 있습니다. "
그는 빈 타오의 마약농장과 저택을 경호하는 차오 중령이었다.
차오 중령은 자신의 부대에 대해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차오가 돌아간 후 탐 람이 들어왔다.
빈 타오는 그가 웃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보스, 이번에 차오 중령이 가져온 마약은 누구에게 주실 겁니까?"
그는 탁자 위에 놓인 가방을 바라보면서 물었다.
"며칠 기다려 보자."
빈 타오가 생각에 잠긴 얼굴로 말했다.
"내가던진 미끼에 물고기들이 어떻게 뛰노는지 본 다음에 결정하겠다. "
어제 조진량에게 준 3킬로그램의 마약은 오늘쯤이면 두 배쯤 가격이 올라
소매상은 또 저희들 대초 가격을 두어 배 올리고,
오늘 내일중으로 홍콩에는 마약 가루가 뒤덮인다.
마약은 먹으면 황흘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