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밤의 대통령

1. 대전환

오늘의 쉼터 2014. 11. 30. 13:51

◐ 대 전 환 


 

 
오유철은 신장이 1미터 70센티미터에 체중이 65.6킬로그램밖에 나가지 않는다.

얼굴도 해사하게 생겨서 얼핏보면 고생없이 자란 부잡집 둘째아들 쯤으로 보인다.

다만 눈이 길게 째겼고 언제나 물기를 머금은 듯해서 색다르게 보이긴 했다.

조웅남의 표현을 빌면 발정난 살정이 눈깔이었다.
그러나 생긴 것과는 달리 고생이라면 안 해본 고생이 없었다.

고아원 출신으로,제 말마따나 어떤 년놈들이 나를 까놓았는지 모르게 태어나서 자랐다.

고등학교까지 겨우 마치고 마침내 고아원을 뛰쳐나와 중국집 배달부에서 슈퍼마켓 점원,

웨이터 보조 둥을 했다가 집어치우고 이발소에서 머리 감겨 주는 일을 했다.

뜻한 바 있어 고등학교 때부터 태권도를 익혀 4단이 되었다.

머리 감겨 주기도 싫증이 난 오유철은 해병대에 지원했다.

공짜로 밥 먹여 주고 재워 주고 또 멋진 군복이 보기 좋았던 것이다. ,
24살에 제대를 했다.

도장의 선배 소개로 웨이터가 되었는데 어느날 지배인이 자리를 비운 사이에 금고를 열어

20여만 원을 들고 튀었다.
이틀 후에 잡혀 형무소에서 6개월을 보띤다.

그것도 견딜 만했다.

걱정해 주는 사람도 없었고 나간다 해도 기다리고 있을 년놈도 없었다. 

리고 도무지 계획이나 미래 같은 것은 애시당초 그가 생각해 보지 않은 것이었다.

언제나 오늘 먹고 잘 일이 걱정이었다.

그러나 신세는 분명히 갚는 성격이었다.

남한테 해를 입었다고 생각하면 참지 못했다.
금고를 턴 것은 지배인이 약속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가 끌고온 손님의 술값.중 10퍼센트는 그의 몫이었으나 지배인은 차일피일 하떤서

주지 않았던 것이다.
출감한 다음날 오유철은 지배인을 찾아갔다.

그리고 이빨 4개와 갈비 2개를 부러뜨렸다.

지배인과 함께 덤벼드는 웨이터 2명의 코배와 팔을 각각 부러뜨리고

금고를 열어 300만원 정도의 현금을 들고 튀었다.

도망치는 방법은 교도소에서 귀에 못이 박히도록 강의를 들었다.
벌리 원 것이다.
그가 김원국을 만난 것은 우연이었다.

김원국과 조웅남은 대전 번화가에 있는 '한밭'살롱에 앉아 있었다.

제일상사의 초창기였고 한밭 살롱은 김원국이 인수한 지 2달째였다.
초저녁이었다.

해사한 얼굴의 사내가 같은 또래 서너 명과 함께 거침없이 들어서는 것을

김원국은 무심히 바라보았다.

아직 손넘이 한 팀도 없었다.

그들은 김원국의 건너편 소파에 떠들씩하게 않았다.

지배인인 미스터 고가 그들에게 다가갔다.

못마땅한 표정이었다.

김원국이나 조웅남 앞에서 떠들썩한 그들을 혼내 주고 싶은 듯 보였다.


"월 드실까요?"


무뚝쪽하게 물었다. 양주만 팔고 있었고 미스터 고쯤 되면 얼핏봐도
주머니 사정이라든가 무얼해서 먹고 사는지는 대충 알게 된다.

김원국의 눈에도 그들은 건달로 보였다.


"어, 양주. 안주는 있는 대로 다 가져와."


해사한 사내가 불쑥 말했다.

조웅남이 슬그머니 얼굴을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양주는 어떤 걸로 할까요?"


국산양주 외에 외국산도 팔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손님들은 대개가 40대의 주머니가 든든한 단골들이었다.


"이 거 뭐 이걸로 해."


그가 베뉴판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미스터 고보다 대여섯 살은 아래로 보였다.

많이 친다고 해도 27, 8살 정도였다.

대놓고 반말 이었다.

미스터 고는 참느라 고통스러운 모양이었다.

김원국이나 조웅 남이 없었다면 벌써 일이 벌어졌을 것이다.

"이건 나폴레옹 코약입니다. 한병에 20만 원입니다. "


"1래서?"


사내가 째진 눈을 흡떠 미스터 고를 올려다보았다.

눈에 물기가 번책였다.

조웅남이 흐웃한 표정으로 그것을 바라보았다.


"그래서 어했단 말이야"


미스터 고는 잠자코 돌아졌다.


"야, 이새끼들아 걱정마. 오늘은 내가 산단 말이야. 맘놓고 마셔."


사내가 친구들에게 큰 소리로 말했다.
김원끈과 조웅남은 저녁식사를 하러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두어 시간 후에 돌아와 보자 사내들은 그때까지 주저않아 있었다.

얼핏 보아도 양주가 대여섯 병에 안주가 탁자에 가득했다.

모두들 취해 있어서 어수선한분위기였다.

손님들이 서너 팀 있었으나그들 때문에 불안한 듯 그쪽을 힐끗거렸다.

떠들석했기 때문이다.

김원국과 조웅남은 건너편 자리에 앉았다.
차출 술병이 바닥이 보이고 일어설 분위기가 되어갔다.

해사한 사내는 요지부동이었으나 친구들이 불안한 듯 엉덩이를 들썩였다.


"야, 너희들 먼저 가. 내가 계산하고 나갈 테니까,"


사내가 멀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험도 줄 필요없어. 다 내가 낼 테니까."


옆에 앉은 아가씨들이 그를 바라보더니 남자들을 일으켜세웠다.

들도 더 이상 지매인이나 손님들의 눈총을 받기 싫은 모양이었다.

구들이 주춤대며 일어쳤다.

같이 나가자는 녀석도 있었으나 그가 않아손을 내젓자 마침내 그도 나갔다.

사내는 혼자가 되었다.


"아저씨, 계산하셔야죠."


아가씨 하나가 대표로 말했다.

나머지는 그를 바라보고 서 있었다.
미스터 고가 다가왔다.

그는 단단히 벼르고 있는 듯 얼굴이 굳어져 있었다.

그는 사내에게 계산서를 내밀었다.


"필요없어."


사내가 계산서를 탁자 위에 던졌다.


"나 돈 없어."


조웅남이 다시 흐웃한 표정으로 웃었다.


"뭐 야?"


미스터 고가 한걸음 다가서고 웨이터 2명이 눈치를 채고 빠른 걸음 으로 다가갔다.

"워 이런 자식이 있어?"


아가씨 하나가 새된 소리를 냈다.


"너회들은 들어가 있어, "


미스터 고가 그녀들에게 말했다.

흘 안이 조용해졌다.


"경찰 오라고 해."


사내가 또랑또랑한 음성으로 말했다.


"나한테 손대지 마. 죽일 테니까."


"아니 이 새끼가."


미스터 고가 그의 멱살을 잡았는가 했는데 어느 사이에 사내가

벌떡 일어서면서 머리로 그의 얼굴을 받았다.


"어우. "


미스터 고가 얼굴을 싸쥐고 취청거리며 한걸음 물러섰다.

"of AWfl!"


웨이터들이 달려들었다.

"야, 멈춰."


김원국이 소리치자 그들은 주춤 자리에 셨다.

손넘들이 모두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는 음악소리만 울릴 뿐 기침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다.

"느그들은 가서 일봐. 여그는 내가 알어서 헐팅 게."


조웅남이 부스럭대며 일어섰다.

사내가 싱긋 웃었다.

젖은 눈이 번책였다.

김원국은 자신도 모르게 입가에 웃음을 띠었다.

"아가, 여그는 시끄러먼 안 된게 저그 안으로 들어가자."


조웅남이 웃으며 말했다


"거그는 숭악헌 전라도네잉?"


사내가 말하며 일어싫다.


"좋아, 따라가지. 아까 초저녁부터 눈여겨보고 있었어.쳐다보는 게 귀엽더구먼."

그는 조웅남의 반밖에 되지 않았다. 조웅남이 한숨을 내쉬었다.

제는 그가 열이 받치고 있다는 표시였다.

"일대인가?"


사내가 김원국을 돌아보며 물었다.

김원국은 잠자코 일어서서 흘의 안쪽으로 앞장서 들어갔다.

안은 술과 안주를 쌓아놓은 창고였다.

제법 널젝한 곳이어서 웨이터들이 운동을 하려고 가져다 놓은 역기와 아령들이 흩어져 있었다.

김원국은 나무 벤치에 앉았다.

사내는 좌우를 살피더니 모통이에 가서 셨다.

좋은 위치였다.


"아가, 너는 어디서 왔냐? 떠돌아댕기는 모양인디 ."


조웅남이 성를 다가서며 말했다.

김원국은 조웅남의 얼굴을 보았다.


"웅남아, 잠판."

 

그는 벤치에서 일어셨다.

조웅남은 창고에 들어서자 마음이 바편 모양이었다.

요절을 내려고 하는 것이다.


"이봐, 어서 와봐."


사내가 두 다리를 벌린 채 조웅남을 보고 웃었다.

김원국이 다시 움직이려는 조웅남의 어깨를 잡았다.


"너, 빠움에 자신있니?"


그의 앞에 다가가서 김원국이 물었다.


"왜? 당신이 해볼 거 붙어 봐?"


사내가 눈을 번책이며 말했다.


"에이 저런 씨발놈을."


조웅남이 김원국을 밀치고 나서려 하자 김원국이 정색을 했다.

조웅 남이 멈춰 셨다.
"일부러 시비걸러 온 거냐욕 "


김원국이 물었다.


"시비? 일부러? 이봐, 난 그렇게 한가한 사람 아냐. 경찰을 불러.

그리고 날 잡아 넣으란 말이야."


조웅남이 눈을 부릅했다. 그러나 입을 열지는 않았다.


"난 살아가는 게 귀찰아.도망다니는 것도 귀찰고. 이봐,

이젠 교도소에서 다시 좀 쉬어야겠어. 그러니까 경찰을 旱르란 말야."


"도망다닌다고 했니?"


김원국이 그의 눈을 들여다보면서 팔장을 끼었다.


"그래, 난 강도치상으로 수배돼 있어."


"강도치상?"


"그래. 너 같은 놈들 서너 놈을 때려눕히고 금고를 들고 튀었단 말야. "


김원국이 웃었다.


"그럼 지금도 한번 해볼래? 네가 만일 날 한 대라도 때릴 수 있다면 널 그냥 나가게 해주마,"


"형님, 무슨 짓거리요? 저런 애들허고."


조웅남이 혀를 참다.

김원국은 그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어디 한번 해보거라. 너 싸움 잘하는가 보구나?"


"이봐, 사람 가지고 놀지 마."


그의 얼굴이 붉게 상기되었다.


"그럼 내가 칠 테니까 막아보거라. "


김원국이 한발짝 다가싫다.


"이 매끼, 내 몸에 손대면 죽여."


사내가 눈을 부릅했다. 조웅남이 한숨을 쉬더니 벤치에 않았다.

"그럼 그렇게 해봐라."


김원국은 사내의 독기가 마음에 들었다.

모처럼 그에게 정면으로 대드는 사내를 본 것이다.

그가 누구인가를 알고 나면 대개의 사내들은 기가 죽는다.

그러고는 사지가 굳어져 버리는 것이다.

사내가 아무것도 모르고 눈을 부릅뜨고 있는 것을 보자 오랜만에 피가 끓었다.

그리고 조금은 버롯을 고쳐 줘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자, 간다. "


2미터쯤의 거리를 두고 김원국이 말했다.

그는 다리를 벌리고 긴장을 푸는 것처럼 보였다.
사내는 눈을 부룹뜨고 신경을 곤두세웠다.

김원국은 성큼 그의 앞에 다가싫다.

사내의 주먹이 뻗어나와 그를 칠 수 있는 거리였다.

사내는 영문을 알 수 없다는 듯 그를 바라보았다.

그의 온몸에 꿈틀거리는 긴장이 흐르는 것을 김원국은 느줬다.

그러나 사내는 공격해 오지 않았다.

 일부러 온몸을 허점투성이로 맞들어 두었는데도 치고들어오지 않았다.

만일 그했다면 김원국이 실망했을 것이기도 했다.

그때에는 단숨에 승부가 났을 것이다.

가깝게 붙어 있을수록 김원국은 자신이 있었다.


사내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렇다면 이쪽에서 공격해 가는 방법밖에 없다.

김원국은 다시 오른발을 내디였다.

순간 사내가 불쑥 쳐들어 왔다.

전혀 예기치 못했던 김원국은 왼발을 틀어 그의 주먹과 발길질을 피했다.

매서줬다.

짧은 순간 두 번의 공격에 머리를 돌리지 않았으면 고의 머리에도 받칠 뻔한 것이다.

이것은 정식 태권도의 동작이 아니었다.

살정이가 험한 산에서 나무와 바위를 피해 사냥감을 찾아 달려드는 처럼 상황에 적응하여

주먹과 발길과 머리와무릎 등이 모두 순간적으로 응용되는 것이다.
김원국은 왼쪽으로 한걸음 물러서며 싱긋 웃었다.

그리고 왼발로 중심을 잡자마자 오른발을 길게 휘둘러 그와의 공간을 만들어 보았다.
발을 팔목으로 막으면서 공격하는 것이 정상적인 방법이었으나 사내는 그것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주춤 반걸음 물러싫다. 아까도 그했지만 전혀 예측할 수 없었다.

김원국의 피가 끓었다.

조웅남이 입맛을 다시며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자아, 그러면 막아 봐라."


김원국이 정색을 하며 말했다.
그러고는 성큼성큼 그에게 다가갔다.

두 걸음 만에 그의 앞에 와 서자 당황한 사내가 몸을 틀며 주먹으로 그의 가슴을 쳤다.

왼팔은 단단히 굽어져 있었는데 김원국의 공격을 방어하려는 자세였다.

김원국은 가습에 정권으로 날아온 주먹을 팔목으로 벗겨쳐 옆구리로 흘려 보냈다.

사내는 머리로 그의 턱을 받아올렸다. 그것도 얼굴을 돌려 피했다.
무릎으로 그의 옆구리를 찍어 올리는 것을 몸을 틀어 헛발질을 하게 하면서 중심을 잡고선

왼쪽발을 가볍게 참다.

사내가 시멘트 바닥에 엉덩이를 놓는가 했는데 템글 몸을 돌려 바닥에서 ◎굴어 벽 쪽으로 굴렀다.
김원국은 이쯤 해서 끝내기로 마음먹었다.

휘익 몸을 솟구쳐 ◎구는 사내의 두 다리 사이에 편발을 집어 넣었다.

발에 걸려 사내는 굴러가는 것을 멈추고는 앉은 채로 벌떡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김원국의 오른발이 그의 턱을 차올렸다.

덜컥 소리가 나면서 그의 얼굴이 뒤로 젖혀졌다.

그러자 상체가 무너져 내렸다.

사내는 기를 쓰고 일어나려고 하였으나 머리만 건들거릴 뿐이었다.

두 팔이 땅바닥을 버티고 상체를 일으켜 세우려고 안간힘을 썼다.

그러나 땅바닥에 닿은 머리는 떼어지지 않았다.


"조금 있어야 일어나게 될 거다. 무리하지 마라."


김원국이 사내를 내려다본면서 말했다.

갑자기 드러누운 사내가 소리내어 울었다.

눈물이 볼을 타고 흘렀다.

엉엉거리며 그는 한참을 울었다.


"그렁게 이 씨발놈아, 죄판헌 것이 까불면 못쓰는 거여."


조웅남이 땅바닥에 않아 있는 오유철을 타이르고 있었다.
그는 오유철이라고 이름을 했고 지내온 과거지사를 말하고 있는 중이었다.


"다 임자가 있는 거여. 너는 그려도 운이 좋은 놈여. 나나 우리 형님이 너를 이쁘게 왔응게."


오유철은 땅바닥을 내려다본 채 대답이 없었다.


"그래, 할일이 없어서 다시 교도소로 돌아가겠다고 마음먹었니?"


김원국이 부드럽게 물었다.

그가 머리를 들었다.


"제가 할일이 뭐가 있습니식"


그러고는 다시 입을 다물었다.

특별한 기술도 없고, 학력도 없다.

거기에다 전과자인데다가 보증을 서줄 부모형제 일가친척도 없는 것이다.

이제까지 정붙여서 살던 곳도 없었다.

고아원에서도 그렇고 이곳저곳 떠돌아다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정든 사람도 없다.

아니 어쩌면 정이란 것을 모르고 살아왔을 것이다.
김원국은 잠자코 그를 내려다보았다.

할머니 손에서 자란 그였다.
그렇지만 일찍 할머니가 돌아가셔서 외로움 속에서 자랐다.

그러나 오유철처럼 철저하게 소외당하지는 않았다.

그는 외로움이라는 단어가 생소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것에 익숙해서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오히려 이상할 것이다.

 

"어맥 할래?"


김원국이 조웅남을 바라보며 물었다.


"뭘 말요?"


조웅남이 어리둥절했다.


"얘 네가 데리고 있을래?"


조웅남은 오유철을 내려다보았다. 그도 오유철이 마음에 들었다.

기질이 예했고 노는 것이 귀여웠던 것이다.


"야, 너, 내 동생헐래?"


오유철이 머리를 들었다. 그는 조웅남을 노려보았다.


"덩치만 크다고 형님인 거요?"


"뭐 여?"


김원국이 풀석 웃었다.


"아니, 요 쥐새끼 같은 놈이."


조웅남은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이 씨발놈을 그냥, 어디 하나를 뿐지러 字"


"친형님처럼 생각하거라. 웅남이도 친동생이 없다. 알아들었니?"


김원국이 정색을 하고 말했다. 오유철은 머친를 숙였으나 대답하지 않았다.


"아 관두쇼, 이런 새끼는 필요 없응게로. 지기미 ."


조웅남은 무안을 당해 기분이 편치 않았다.
"알았으면 형님이라고 불러보거라."
김원국이 재촉하듯 말했다. 조웅남이 그를 노려보았다.
오유철은 머리를 들었다.


"형님 ."


오유철은 괜히 목이 데었다.

조웅남은 머리를 돌리고 딴전을 피웠다.


"뭐하니?"


김원국이 그를 돌아보았다.


"월말요?"


"대답 안 해?"


조웅남은 오유철을 내려다보았다.


"야, 너, 술 더 먹을래?"


이렇게 해서 오유철이 한식구가 되었다.

8년 전이었다.
차영화는 유리문을 열고 빌딩을 나왔다.

주차장에는 그녀의 청색 볼보가 세워져 있었다.

그녀는 또각이며 승용차 쪽으로 걸었다 .

32살의 차영화는 아직 미혼이었다.

길게 웨이브한 머릿결이 저녁 바람에 날렸다.

1미터 68센티미터의 쪽 뻗은 몸매는 우아한 감색 울 원피스에 짜여 있었다.
그녀는 차의 키를 꽃으면서 빌딩을 올려다보았다.


'움베르토 알베르.


영어와 한글로 커다랄게 장식된 간판이 보였다.

내부가 들여다보이게끔 빌딩의 앞면은 1인치 유리판으로 덮여 있었다.

3층의 내부가 환히 바라보였다.

마네킹이 입고 있는 화려한 옷과 내부의 고급스런 분위기는

여자들의 꿈과 욕심을 채워 주고 있는 것이다.
그녀는 잠시 그것을 바라보다가 보일듯 말듯하게 입술을 올렸다.

검은 눈법 밑의 혹갈색 눈동자는 움직이지 않았으나 입술 끝이 약간 을라가는 듯한 미소였다.

약간 큰 코와 육감적인 입술이 갸름한 얼굴에서 이국적인 분위기를 자아냈다.

그녀가 이태리에서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4년을 지내는 동안

그녀를 이태리 여자로 생각했던 사람도 있을 정도였다.
차영화는 압구정동의 골목길을 천천히 차를 물고 빠져나갔다.

초저녁 손넘들이 몰려들 것이다.

이곳은 약속과 아이 쇼핑의 장소로도 젊은이들에겐 최적의 장소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들에게 꿈을 갖게 하고 언젠가는 그것들을 소유하겠다는 의지를 함게 될 것이다.

문득 차영화는 카폰의 다이얼을 눌렀다.

신호음이 가고 장영길의 굵은 목소리가 들렸다.


"네, 장영길입니다. "


"난데요."


"네, 사장템."


그는 움베르토 알베르 상표의 수입 판매대리인인 영화상사의 상무 였다.


"내가 전화를 못했는데 이태리에 전화를 해서 추가분 독촉을해주세요.

일주일안으로 비행기에 실어야 한다구요."


"알았습니다. "


차영화는 카폰의 스위치를 줬다.
무역회사 출신의 장영길은 제품의 수입관해를 총괄하고 있었다.

차영화는 그에게 내부 관리도 맡겨놓고 있었는데

장영길이 그녀를 좋아 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38살의 그는 웬일인지 미흔이었고 그녀를 보는 눈빛이 다른 사람들과 달랐다.

차영화는 그녀의 고용원인 그에게 어떤 이성으로서의 감정을 느끼지는 않았다.

그려나 그것을 적절하게 이용하는 것이 편리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볼보는 영동의 호텔 앞에 멈펄다.

제복의 도어맨이 다가왔다.


"2시간쯤 후에 나을 거예요."


키를 넘겨주며 말했다.
차영화는 로비를 가로질러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사람들이 그녀를 힐끗거렸으나 그런 시선에 익숙한 차영화는 엘리베이터에 올라 단추 를 눌렀다.

1015호실의 벨을 누르자 곧 문이 열렀다. 김중오가 그녀를 보더니 싱긋 웃었다.

여전히 혈색이 좋아 보였다. 와이셔츠 차림에 맥주잔을 손에 들고 있었다.


"이여, 차 사장, 볼수록 이매진단 말이야. 나 말고 또 좋은 사람 있어?"


문을 잠그며 그가 말했다.

그는 서울지검 부장검사였다.
1년쯤 전에 수입업체들의 회의 때 김중오가 참석하여 외제품의 수입 가격에 대한

고의적인 가격조작에 대해서 주의를 준 일이 있었다.

차영화는 다음날 그와 저적식사를 함꼐 할 수 있었다.


"김 부장넘은 그게 나뿐 버릇이에요.무조건 사람을 의심부터 하는 것."


차영화가 눈을 흘기며 소파에 앉았다.


"어때?술 한잔 하겠어?"


그가 맥주병을 들어보였다.


"아뇨. 피곤하니까 샤워나 할래요."


"샤워? 응, 좋겠지."


그의 눈이 번들거리는 것처럼 보였다.

차정화는 원피스의 단추를 풀면서 소파에서 일어셨다.


"단추 즘 끌러 주세요."


그에게 등을 보이면서 말했다.


"1러 지 ."


그의 뜨거운손이 어깨에 닿고는잠시 주춤거리다가등의 단추를 풀었다.

원피스가 흘러내리고 그녀의 브래지어와 팬티 차림의 알몸이 드러났다.

김중오의 손이 그녀의 브래지어를 서둘러 풀고 젖가슴을 움켜잡았다.

목과 어깨에 그의 뜨거운 숨결이 쓸아지고 있었다.


"아이, 샤워부터 하구요."


그녀의 팬터를 서둘러 내리는 그의 손목을 잡으며 차영화는 몸을 비틀었다.


"나중에, 우선 이리로 와."

김중오는 그녀의 허리를 번책 들고는 침대 위에 내려놓았다.

김중오는 서둘러 와이셔츠와 바지를 벗어 던졌다.

셔츠와 팬티를 벗고는 침대 위에 누워 있는 그녀 위에 몸을 덮쳐 왔다.
차영화는 입을 열어 그의 혀를 받아들였다

그의 뜨거운 손길이 전신을 애무하고 입술이 그녀의 짜릿한 부분을 헤집자

차영화는 나직하게 신음소리를 냈다.

이윽고 김중오는 서둘러 그녀에게 들어갔다.

차영화의 잔뜩 구부러진 다리가 조금 더 깊게 그를 받아들이도록 허공으로 치솟아 올랐다.

김중오는 거칠게 부딪치고 있었다.

그것이 처음에는 아픔이 되었다가 차층 패락의 도가니로 빠져들어가는 것을

차영화는 느끼고 있었다.

그의 등을 힘차게 꺼안고 손톱으로 그의 허리와 엉덩이를 쥐어 뜯었다.

엉덩이의 살점을 잔뜩 쥐었다가 그의 동작에 맞춰 힘을 주어 내려주었다.


"아아아,"


그녀가 길게 비명을 지르자 김중오가 몸을 떨면서 내려꽃히고는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땀에 범덕이 된 김중오는 몸을 굴려 그녀에게서 떨어졌다.

않는 소리를 내며 차영화는 그 모양 그대로 누워 있었다.


"이봐, 좋았어?"


김중오가 그녀의 젖가승을 만지며 물었다.


"응. "


"자네도 대단해. 아주 멋진 여자야."


차영화는 입술 끝으로 미소를 지었다.

김중오는 부스럭대며 담배를 찾아 입에 물었다.

그는 항상 쪽같다고 차영화는 생각했다.

그의 숨소리, 그의 행위, 그리고 그의 절정의 순간까지 언제나 쪽같았다.

1년이 가깝도록 만나지만 끝나고 엎드려 담배 피우는 것까지 변하지 않은 것이다.

"이봐, 요즘 수입품 가격책정 문제로 문제가 좀 있어. 특히 그쪽 말이야."


김중오가 생각딘 듯 말했다.


차영화는 잠자코 눈을 감고 누워 있었다.

그가 할 이야기는 이것일 것이다.

그는 무엇인가 대가를 주고 싶어하는 것이다.

이것도 차영화는 잘 알고 있었다.


"판매가격이 수입가격보다 두 배 이상인 업체는조사를 받게 돼.

다음달부터 조사니까 준비해 뒤. 작년 것부터 조사야."


"작년 것부터떤 어떻게 해요?"


천장을 바라보며 차영화가 나직하게 물었다.


"난 못해요. 당신이 알아서 해주세요."


"허, 이런, 이런 억지가 시긴 기껏 얘기해 주니까

명색이 회사 사장이 그렇게 얘기하면 돼?"


"알았어. 내가 손을 좀 써보지. 허지만 준비는 해.

아예 작년 서류 중 문제가 될 것은 없애든지."


"알았어요."


"왜 이렇게 맥이 없어?이봐,패 그래?"


"아이참, 내가 폐 맥이 없는데요?"


차영화가 짜증난 듯 말하자 김중오가 히죽 웃었다.
차영화는 호텔을 나왔다. 김중오는 잠시 후에 나을 것이다.
도어맨이 재빠르게 볼보를 끌고와 그녀 앞에 세웠다.

사람들이 다시 힐끗거렸다.


"고마워요."


차영화는 차에 올라 호텔을 빠져나가면서 시계를 보았다.

10시가 되어가고 있었다.

집에 가서 다시 샤워를 하고 쉬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백광남은 오유철의 얼굴을 보자 애써 태연하려고 하였으나 잘 되지 않았다.

그에게 얻어맞은 적도 있었고 그가 정재희와의 정사장면을 찍은 사진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후로 그에게서는 연락이 없었다.

그리고 조금씩 긴장이 풀려가는 참이었다.

오유철은 응접실에 들어오자 주위를 둘러보았다.


"야, 집 좋습니다. "


감탄하듯 오유철이 말하고는 소파에 털썩 앉았다.

일요일이어서 식구들이 집안에 있었으나 백광남은

차를 가져온 아줌마를 내보내고 사람들을 얼씬대지 못하도록 일렀다.


"갑자기 웬일이오?"


백광남이 차갑게 물었다.

틀림없이 사진을 가지고 돈을 뜯으려고 온 것으로 믿었으므로 불쾌했다.

그러나 듣기는 해야 할 것이다.


"이야, 저 거 진판인 가요?"


오유철이 구석의 탁자 위에 세워진 하얀 백자 항아리를 가리키며 물었다.

백광남은 가승이 뜨끔했다.

2억 5천만 원짜리 이조백자인 것이다.

고맙게도 오유철이 시선을 돌렸다.


"사장넘 돈 많으쇼?"


"왜 그러는 거야?"


백광남이 그를 基아보맞다.


"이것 보게, 용건이 뭔지 이야기를 해. 쓸데없는 소리 말구."


"허, 쓸데없는 소리요?"


오유철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백광남과 정재희의 사진을 들고 강만철에게 가져가자 강만철도 신기한 듯 들여다보며 웃었다.

강만철은 그 것을 보관하였다가 김원국에게 보여 주었다.

오유철은 거기까지밖에 알지 못했다.

그렇다고 김원국에게 물어 볼 수토 없었던 것이다.


"내가 할일이 없어서 쓸데없는 소릴 하러 여기 온 줄 아슈?이거 왜 이 래?"


오유철이 언성을 높이자 백광남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내가 공갈이나 치는 깡패로 보이신 여보쇼,

난 한달에 92만 원 받는 월급쟁이요. 아 씨발, 더러워서 그냥."


"거시기, 원명구 씨 아쇼?"


백광남이 눈을 크게 였다.

그는 오유철을 바라본 채 잠자코 있었다.


"알아요? 몰라요?"


"아는데, 그 사람이 왜?"


"왜는 패요? 우리더러 공장서류를 찾아달라니까

그렇지. 서류를 이철주가 가지고 있다면서요?"


"아, 그거야, 그런 모양이던데‥‥‥‥


"3억만 주면 서류를 찾을 수 없다던데 맞습니까?"


백광남은 입을 다물었다.

그는 이철주가 어디로 행방을 감천는지 알지 못했다.

설령 안다고 해도 정재희와 짜고 '귀빈'과 '금성'을 싸게 營다고

그가 오해하고 있을 것이니만치 만날 수도 없었다.

더욱이 정채희와 밀통한 것을 안다면 목숨이 성할지도 알 수 없는 것이다.


"이철주가 원 사장한데 3억을 빌려 줬다던데,

그러면 이철주한데 돈을 갚으면 됩니까?"

 

"그게, 그것이‥‥‥‥


"이철주를 찾아서 돈을 주고 서류를 찾아야됐군 그럼.


"돈은 준비되었소?"


백광남이 물었다.


"아, 돈이 준비되었으니까 하는 소리 아닙니까?"


"원 사장이? 그 사람 그럴 능력이‥‥‥‥


"아, 누구건 돈만 주면 될 거 아님니까?"


"이 사장이 어디 있는가 아시오?"

백광남이 정중해졌다.

다급해핀 맞일 것이다.


"그거야 찾아내면 되는 거지 월. 정재희 같은 년도 하루아침에 찾아 내는데 ‥‥‥‥


백광남은 시선을 돌렸다.


"이철주한테 돈을 주면 안 되는데‥‥‥‥


백광남이 주저하며 말했다.

그는 돈에 대한 미련을 버릴 수 없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그 돈은 내가 받아야 되는데


"패요?"


백광남은 잠시 주저하다가 입을 열었다.

원명구한테 돈을 빌려 주고 당좌수표를 받은 일부터 이야기했다.


"이 사장이 자기가 받아 주겠다고 당좌수표를 가져갔고 나중엔

원 사장에게 공장을 명의 이전을 받은 모양이요.

난 자세한 것은 몰라요.
어됐든 그 돈은 내가 받아야 돼요."


"그럼 이철주하고 대질하면 되겠군. 그 사람을 잡아서 말요.

 무슨 증거라토 있습니까? 이철주한테 그 일을 맡겼다는 증거말요."


"그때야 서로 믿는 사이여서 그런 것은 안 받았는데‥‥‥‥


"그럼 안 되겠군 그래. 이철주가 오리발 내밀면 끝장이오."


백광남의 얼굴이 崙어져 갔다.


"그런 순도둑놈이 있나? 그 돈을 주지 말고 서류를 찾아야 돼."


"허어, 좌우간 이철주나 찾아봐야겠구먼."


오유철은 대충 알 만큼 알았으므로 엉덩이를 들었다.

백광남은 상기된 얼굴로 잠자코 있었다.
오유철이 나간 후 백광남은 잠시동안 자리에 앉아 움직이지 않았다.
벽에 걸린 그림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던 그는 인터폰을 눌렀다.

응접실 한쪽의 문이 열리고 깡마른 사내가들어와 그의 앞에 했다.

훌책 큰 키에 머리에 편 머리가 드물게 섞여 있었다.

검은 얼굴에 주름살이 많았다.

세모꼴 눈으로 백광남을 내려다보았다.

백광남이 2달 전부터 고용한 사내였다.

전직 경찰 출신이었으므로 그의 신변 보호와 정보수집에 요긴하게 쓰고 있었다.


"이봐, 지금 나간 녀석 누군지 알고 있지?"


백광남이 묻자 바내는 머리를 끄덕였다.


"제일상사에 있는 오유철이란 농이죠. 그놈도 간부급입니다. "


"이철주의 행방은 아직도 못 찾았나?"


그에게 이철주를 찾아보라고 한 달 전부터 일렀었다.


"서울에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좀 힘이 드는군요."


"아까 그놈도 이철주를 찾아나설 거야. 그전에 우리가 그 작자를 찾아냈으면 좋겠는데."


"제가 해보겠습니다. "


사내는 휘청거리며 문을 열고 나갔다.

 그의 이름은 박채동이었다.
잘 아는 경찰간부의 추천을 받았으은로 신원은 확실하였으나

도무지 생기도 표정도 없는 사내였다.

그러나 시킨 일은 착실하게 해오고 있었다.

백광남은 시계를 올려다보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대치동으로 갈 시간이었다.

기분이 조금 나아진 그는 저고리를 집어 들고 응접실을 나졌다.
切평형의 아파트는 내부 장식이 모두 분홍색과 횐색으로 되어 있었다.

서혜란이 직접 장식한 것이다.

백광남은 그것을 보면 언제나 어지러웠으나 말을 하지는 않았다.
귀빈에 나온 지 며칠 안 되는 서혜란을 백광남이 들어앉혔다.

23살의 회사원이었던 그녀는 순순히 백광남의 제의를 받아들였다.

그리고 아주 행복해 했다.


"아빠, 오늘은 여기서 자고 가실 거죠?"


그의 무릎에 앉으면서 서혜란이 물었다.

분흥빛 雲은 잠옷 사이로 그녀의 속살이 들여다보였다. -

"응? 글매 ‥‥‥‥


백광남이 그녀의 팽평한 젖가습을 어루만지며 말끝을 흐렸다.


"자고 가요, 네? 비디오를 봤더니 좋은 것이 있어요. 그렇게 해봐요,응


그피 목을 껴안고 서혜란이 졸랐다.


"비디오? 이놈이 또 그런 것을 보았구먼?"


백광남이 나무라듯 말했다.

그녀가 포르노를 즐겨보는 것을 백광남은 알고 있었다.


"피, 자기도 좋아하면서."


백광남은 속옷 사이로 손을 집어넣었다.

그녀는 팬티도 걸치고 있지 않았다.

백광남은 템긋 웃었다.

젊고 머리에서 발톱 끝까지 아름다운 여인이 그를 위해 정성들여 준비하고 있는 것이 기했다.

당연한 것이었다.

그리고 가끝씩 그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힘을 새롭게 느끼는 것이다.

특히 서혜란과 같이 있을 때는 더욱 그했다.

그에겐 모든 것이 가능한 일이다.

죽는 일만 빼놓고 그렇다.

아니 죽음도 연장할 수가 있을 것이다.
김원국은 움베르토 알베르의 유리문을 밀고 들어섯다.

저녁 7시가 되었으나 매장 안에는 손님들이 많았다.


"어서 오세요."


여종업원이 다가왔다.


"월 보시게요?"


"우선 둘러보고 나서."


김원국이 주위를 살피며 말했다.

내부 장식도 고급이었다.

소파나 천장의 샹들리에, 통로의 사기받침대도 수입제품이었다.

 1층 매장만 해도 80평은 되어 보였다.

숙녀복 매장이었으므로 여자들이 몰려 있었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2층으로 올랐다. 2층은 남성복 매장이었다.
오함마는 김원국의 뒤를 따르면서 그가 않던 것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김원국은 한가하게 이런·곳을 구경할 사람이 아니었다.

더욱이 이런 곳에 걸려 있는 옷은 백화점 기성복보다 5배는 더 비쌌다.

그의 눈앞에 걸린 저고리 하나의 값도 자그만치 150만원이었다.
김원국은 안쪽에 걸린 체크무늬 양복을 바라보았다.

그가 좋아하는 색깔이었다.

회색 바탕에 검정과 얼은 진흥빛의 체크 무늬 재킷이었다.
다가가 가격표를 보았다. 2訓만 원이었다. 그는 빙그레 웃었다.
3층의 사무실에서 내려오던 차영화는 매장 가운데에서 웃음을 짓고 선 한 사내를 보았다.

37, 띤 건장한 남자였다.

그는 체크 무늬 재킷을 보고 있었다.

그녀는 그에게로 다가갔다.

사내는 시선을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웃음이 가신 얼굴은 차갑게 보였다.

그의 시선은 위압적이었다.

때리는 듯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본 채 잠자코 있었다.


"그 옷, 마음에 드세요?"


차영화가 웃으며 물었다.

그리고 재빠르게 그의 차림새를 살펴보았다.

 중급품의 기성복을 입었으나 몸에 잘 맞았다.

체격이 좋기 패문이었다.

끄덕이며 김원국은 그녀를 를어보았다.

육감적인 여자였다.

멋진 몸매와 서구적인 얼굴이었다.


"그런데 가격이 비싸게 보이세요?"


그녀는 양복을 및겨 내었다.


"수입품 중 제일 고급이에요. 

안감도 실크로 되어 있어요.

저희 회사는 최고급품만을 취급합니다.

그것이 제 경영원칙이에요."


"당신의 말입니까?"


김원국이 놀란 듯 물었다.


"네, 제가 이 회사 사장입니다. 차영화라고 합니다. "


"대 단하군요."


김원국이 머리를 끄덕이며 말했다.

경영철학이 대단한지 여자가 사장이라 대단하다고 했는지 아리송했다.

그러나 차영화는 기분이 좋지 않았다.


"사실 건가요?"


그녀가 굳은 얼굴로 물었다.


"이런 옷, 잘 팔립니까?"


차영화는 애써 얼굴에 웃음을 띠었다.


"옷이 좋으니까요."


그녀는 몸을 돌렸다.

해장 담당자에게 맡겨둘 걸 괜히 나싫다고 후회하고 있었다.

"잠깐만 "


그가 불렀을 때 차영화는 이맛살을 찌푸렸으나 몸을 돌렸을 때는

평온한 얼굴이 되었다.


"이런 옷은 한국에서 만들지 못합니까?내가 보기엔 시장이나 백화
점에서 비슷한 옷을 본 것도 같은데‥‥‥‥


"옷감이 다릅니까?"


무식한 놈. 차영화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겉은 멀정한 놈이 대가리
에 든 것이 없다. 이런 놈에게 수입관세가 어떻고 로얄티가 어떤 것이
라는 걸 알려 줘도 알아듣지 못할 것이다.


"그럼 시 장에서 사 입으시죠."


웃는 얼굴로 차영화가 말했다.


"이봐. "


갑자기 사내의 뒤에 서 있던 입술이 두들하고 험상궂게 생긴 사내가 불쑥 나섯다.


"어따 대고 주둥이를 놀려? 워? 시장에 가서 사라긴 이런 량‥‥


차영화의 얼굴이 새파래졌다.


"뭐라구?"


그녀의 날카로운 소리에 매장의 종업원 몇 명이 몰려왔다.

그녀는 기운을 얻었다.

거지 같은 녀석들이 뭘 모른다 싶었다.
"능력없으면 시장에 가서 2만 원짜리 사 입으란 말야. 당장 나가! 내 좋기 전에."
김원국은 오함마의 어깨를 가볍게 쳤다.

오함마가 어처구니없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남자 종업원들이 그들에 게 다가왔다.


"나가 주세요."


건장한 종업원들은 그들의 위아래를 臺어보며 말했다.


"안 나가면 경찰을 불러. 웬 거지 같은‥‥‥‥


그러면서 차영화는 둥을 돌렸다.


"저런 쌍년이‥‥‥‥


오함마가 번럭 소리를 지르다가 김원국의 얼굴을 보고는 입을 다물었다.

김원국은 앞장서서 아래층으로 내려왔다. 유통업의 구조와 판매 현황을 알고 싶었다.

그러나 수입품의 엄청난 가격에 우선 놀라 버린 것이 그들에게 무시당한 것이다.

 오함마는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으나
그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한국산 졔품을 다른 나라에 가져가 팔 생각이었다.

"회사를 만든다는 겁니까?"


홍성철은 어안이 벙벙한 모양이었다.


"말하자면 백화점입니까?"


"그래, 이왕이면 제조회사도 만들자.

제조회사는 원 사장이 섬유류를 했으니까 그 사람을 시키면 되됐다.

그것을 파는 판매장도 만들어서 관리하도록 해봐라."


강만철이 김원국을 바라로았다.


"말하자면 유통회사군요."


"그래, 이제는 우리도 생산적인 기업으로 탈바꿈을 한다.

성철이가 유통회사를 설립하고 책임자가 되어서 제조와 판매를 관리해라.

여기서부터 시작하자."


조웅남은 제일상사를 맡고 있었고 강만철이 제일실업을 관리했다.
최충식은 부산에서 국제실업을 운영하고 있었으므로 홍성철의

유통까지 합하면 주식회사만 해도 4개가 되었다.


"그리고 유통업으로 세계로 뻗어 나가야지.

지금까지 우리가 해온 일로는 국내에서 템돌 뿐이야."


"세계로 뻗어 나가다니오?"


조웅남이 궁금한 듯 물었다.


"이젠 우리도 밖으로 나갈 때가 되었다. "


"왜 그려요?"


조웅남이 끝까지 물었다.


"여기서는 한계가 왔다. 너희들의 힘을 얼마든지 밖에서 내보일 수 있어 ."


강만철과 홍성철은 잠자코 있었으나 조웅남은 머리를 갸웃거렸다.


"왜 여그서 헐일이 없다는 건지 모르겼네.째고줬는디.

술집도 자꾸 만 생기는디 말여, "


"of, 이제는 생산적인 회사로 탈바꿈해야 한다고 말했잖아."


강만철이 답답한 듯 말하고 혀를 참다.


"너는 가끔 멍청한 척하면서 사람 약올리는 버룻 즘 고쳐."


홍성철이 흥흥거리며 웃었다.

오늘따라 강만철이 조웅남의 말을 자르는 것을 보자 시원한 모양이었다.

강만철은 신중한 성격이어서 조웅남이 빈정대거나 레방을 놓아도 그냥 놔두는 편이었다.

그러다가 폭발하면 물불을 안 가렸다.

그럴 때면 조웅남은 줄행랑을 놓았다.

그러나 홍성철은 예민한 기질이었다.

회의 때나 무슨 일에 특탁거리떤서 조웅남과 싸우는 것은 언제나 홍성철이었던 것이다.

조웅남은 강만철을 힐끗 보고는 입을 다물었다.

그도 조직의 사업이 대전환을 하려고 하는 오늘의 회의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계삼재사 확인을 받고 설명을 듣고 싶었던 것이다.


"나는 오야마 씨하고도 상의할 것이 있다. "


김원국이 다시 말했다.


"오야마 씨 조직이 홍콩에서 여러 개의 기업체를 운영하고 있는데
얼마 전에 협조요청이 있었다. "


모두들 긴장하여 그를 바라보았다.


"홍콩의 중국 세력이 그들을 몰아내려고 하는 모양이야. 우리에게
지분을 나눠 줄 테니까 연합하자고 제의해 왔어."


"그 시키들이 우릴 총알받이루 쓸라고 허는 거 아뇨?"


김원국은 조웅남을 바라보다가 싱긋 웃었다.


"네가 그렇게 생각할 정도면 우린 그렇게 안 된다. "


조웅남은 잠시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홍성철을 돌아보고 그의 얼굴이 이상하게 일그러져 있자 그것이 칭찬이 아닌 줄 깨달았다.


 "형님, 퇴근 안 하세요?"
강만철의 방에 들어온 오유철이 물었다.


"난조금 더 있다가 간다. 너 먼저 가거라."


오유철은 조웅남의 직속으로 조웅남이 사장으로 있는 제일상사의 관리부장이었다.

전에는 한강상사였다가 반도실업으로 바뀌고

다시 제일실업이 된 회사에 업무차 들렀다가 강만철의 방으로 찾아온 것이다.
실제 업무는 관리부장인 김칠성이 하는 것이므로 오유철이 한동안
김칠성과 이야기하는 것을 보았다.


"칠성이는 갔니?"


"예, 누구 만날 약속이 있다고 먼저 나갔어요."


오유철은 소파에 앉아 잠자코 벽에 걸린 그림을 바라보았다.

강만철은 책상 위에 펴놓은 장부를 및고 일어났다.

소파로 다가와그의 앞에 않았다.
태연한 척하고 있으나 그의 얼굴에 그늘이 드리워 있는 것을 날카로

강만철이 놓치지 않은 것이다.


"무슨 일이 있니?"


"네? 아뇨, 없어요."


해사한 얼굴로 씨익 웃었다.

강만철은 담및감을 열고 담배를 꺼내어 입에 물었다.


"웅남이는 어제 만났다. 바쁘다 보니까

사흘에 한 번 만나기도 어려워, 1년 전만 해도 매일 붙어 다딘는데 말이야."


"큰형님이 일본 가시기 전에 말이죠?"


"그렇군 "


강만철이 머리를 』1덕였다.


"그 일 이후로 우리 조직이 그룹 형태로 되어갔군 그래 ."


"그때 형님하고 저하고는 빠졌지요."


오유철은 일본원정에 직접 참가하지 못한 것을 내내 아쉬워하고 있었다.


"그래도 형님 대신 한국에서 마무리했지 않니?"


"그렇지만 실제로 뛴 것과 같습니까?"


강만철은 을어 보였다.


"워, 나한테 할 이야기 있냐?"


그는 오유철이 용건이 있다고 생각했다.

이유없이 이렇게 미적거릴 애가 아니었다.


"아뇨, 없어요."


오유철은 자리에서 일어싫다.


"형님은 내가 그냥 놀러와도 꼭 용건이 있는 줄 안다니까요.

어디 삭막해서 살했습니까? 나 그냥 갈랍니다. "


"야, 나하고 술 한잔 먹 자."


오유철이 싱긋 웃었다.


"저 오늘 일이 있어요. 그래서 그냥 가야 합니다. "


"일이 있어?"


"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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