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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장 장수 3

오늘의 쉼터 2014. 11. 23. 16:08

32장 장수 3 

 

 

복신은 스스로 상잠 장군(霜岑將軍)이라 칭하고 도침도 스스로를 영거 장군(領車將軍)이라 칭하며

신유년(661년) 한 해 동안 더욱 많은 무리를 끌어 모았다.

도성의 유진군 들은 복신과 도침의 군사들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다.

유인궤는 장안과 낙양에 있을 때부터 복신과 익히 잘 알던 사이였다.

그는 복신에게 사자를 파견해 은근한 말로 항복할 것을 권유했다.

그러자 하루는 복신의 사자가 와서,

“듣건대 당나라는 신라와 서약하기를 백제 사람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모조리 죽인 연후에

나라를 신라에 넘겨주기로 했다 하니 그렇게 죽음을 당하는 것이 어찌 싸워서 죽는 것만 같겠소?

이것이 우리가 서로 모여 굳게 지키는 까닭이오.”

하고 말했다.

유인궤는 다시 사자를 보내 대항하면 화가 오고 항복하면 복이 온다는 말로 복신을 설득하려 했다.

그런데 복신은 서찰을 들고 간 유인궤의 사자를 외관에 가두어버리고 말았다.

“사신의 관위가 낮다.

나는 일국의 대장인데 그대가 직접 오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답서하지 않겠다.”

이것이 유인궤의 설득에 대한 복신의 회보였다.

유인궤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

하지만 복신의 세력은 이미 3, 4만을 헤아리고 있었다.

기껏 1만 7천에 달하는 양국의 유진군 으로선 대적하기 벅찬 형편이었다.

그렇다고 도독부까지 설치한 마당에 신라에 원군을 청할 수도 없었다.

그는 유인원과 의논해 군사를 쉬게 하고 본국으로 글을 보내 신라군과 합세하게

해달라고 황제에게 요청했다.

이치는 신라에 사신을 보내 춘추왕 으로 하여금 사비성 근교의 잔적들을 토벌해달라고 부탁했다.

도독부는 자신들이 설치해놓고 군사는 오히려 신라에서 동원하라니

앞뒤가 맞지 않는 일이긴 했지만 고구려 정벌에 전력을 기울이던 당나라로선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신라왕 춘추는 백제로부터 돌아온 뒤 공을 세운 장수와 신하들을 포상하면서

백제인 에게도 벼슬을 주는 발 빠른 포용책을 쓰기 시작했다.

말로만 부르짖던 삼한일가의 정신을 비로소 실천으로 옮긴 것이었다.

이에 따라 좌평 충상과 상영, 달솔 자간 등은 아찬과 일길찬 벼슬을 제수 받고 총관이 되었으며,

은솔 무수(武守)는 대내마 벼슬과 대감, 무수의 아우 인수(仁守)는 대내마에 제감이 되고

그 밖의 백제인 들도 대거 신라의 제도와 문물에 편입되었다.

당나라가 5도독부를 설치해 행정적인 백제 장악을 꾀하고 나섰다면

신라는 유민들에게 문호를 개방해 망국의 민심을 얻으려고 노력한 셈이었다.

이치의 협조 요청을 받은 춘추왕은 이찬 품일을 대당(大幢) 장군으로 삼고,

자신의 아들인 문왕, 양도, 백제에서 귀화한 충상 등을 부장으로 삼고,

잡찬 문충을 상주(上州) 장군에, 기타 진왕(眞王), 의복(義服), 무훌(武?), 욱천(旭川), 문품(文品),

의광(義光) 등을 장수로 삼아 사비성을 구원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신라의 원군들에게도 사비성 구원은 그리 호락호락한 일이 아니었다.

신라군 선발대는 두릉윤성(豆陵尹城:두량윤성 이라고도 함. 錦山)에 당도해

아직 병영을 설치할 장소도 물색하지 않았는데 갑자기 복신의 군대가 나타나

맹렬한 공격을 퍼붓는 바람에 여지없이 패주하고 말았다.

며칠 뒤 품일은 대군을 이끌고 고사비성(古沙比城:임피) 밖에 진을 쳤다가

다시 두릉윤성 으로 쳐들어갔지만 한 달이 지나도록 성을 빼앗지 못하고 고전했다.

결국 품일은 일이 어려운 것을 알고 군사를 돌렸다.

대군 가운데 대당(大幢)과 서당(誓幢)이 먼저 철군하고 아찬 의복이 이끄는

하주(下州) 군사를 뒤에서 막게 하여 빈골양(賓骨壤:정읍으로 비정)이란 곳에 다다랐을 때였다.

그때 돌연 사방에서 흙먼지가 일어나고 미리 매복했던 백제 복병들이 습격을 가해와

손도 써보지 못하고 달아났다. 희생자는 비록 적었지만 태산같이 싣고 갔던 군량과 병기구는 모조리 적에게 빼앗기고 말았다.

다만 문충이 이끌던 상주(上州)의 군사와 의광 휘하의 낭당(郎幢) 군사들만이 각산(角山)에서 만난

정무의 군대를 쳐서 보루를 격파하고 2천여 잔병들을 참획했을 뿐이었다.

춘추는 품일의 군대가 패했다는 말을 듣자 크게 놀랐다.

그는 곧 흠순과 진흠, 천존과 죽지 등을 파견해 품일의 군대를 구원하게 했다.

그런데 이들이 원군을 이끌고 가시혜진(加尸兮津:합천)에 이르렀을 때는

이미 신라군을 추격하던 백제군이 가소천(加召川:거창)을 건너 물러간 뒤였다.

춘추는 품일을 비롯한 제장들이 돌아오자 패배한 죄를 물어 벌을 주고 다시 군사를 내려 했다.

그러나 이번엔 고구려 장수 뇌음신이 말갈 장수 생해(生偕)와 함께 술천성(述川城:여주)과

북한산성으로 쳐들어왔다는 급보가 날아들었다.

백제가 망한 뒤 삼한의 사정은 이처럼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대란과 급변의 연속이었다.

북한산의 전역은 스무 날쯤 계속되다가 끝났다.

포차를 앞세운 고구려군의 공격에 맞서 성주 동타천은 철질려를 성벽 밖으로 던져 인마가

범접하지 못하도록 한 뒤 돌에 맞아 허물어진 성벽을 재빨리 수리하는 한편

가죽과 무명옷으로 노포(弩砲)를 가려 숨겼다가 적이 접근하면 사정없이 화살을 날려댔다.

동타천의 활약에 힘입어 뇌음신과 생해는 별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그대로 물러갔다.

이 소식을 들은 춘추는 크게 기뻐하며 대사(大舍)에 불과하던 동타천의 벼슬을 하루아침에

대내마로 올려주었다.

6두품 진주를 일거에 병부령에 발탁하듯이 파격과 특진은 진골 임금 춘추가 즐겨 쓰던 인사(人事)였다.

고구려 군사가 물러간 직후 춘추는 사비성의 유진군을 구원하기 위해 장수와 군사들을 거느리고

친히 금마군(金馬郡:익산)으로 행차했다. 때는 바야흐로 6월,

폭염이 기승을 부리는 찌는 듯한 한여름이었다.

춘추는 더위에 지친 군사들을 금마저의 못 가에서 쉬게 한 뒤 어딘지 익숙한 듯한 금마의 풍경에

눈길을 돌렸다.

용화산의 수려한 산세에 잠시 넋이 팔렸던 그에게 채색과 단청이 화려한 절 한 채가 눈에 들어왔다.

그는 시종들을 불러 손으로 절을 가리키며 물었다.

“저것이 우리가 백공을 파견해 지었다는 그 미륵사냐?”

“아닙니다. 저 절은 전대의 서동 임금이 지었다는 대관사(大官寺)라 하옵니다.”

“그래? 절이 제법 크고 아름답구나……”

춘추는 시종들을 거느리고 절을 둘러보러 대관사로 향했다.

금마저의 용화산에는 서동 대왕이 아직 마동 왕자 시절에 신라 공주 선화를 데려와

신접살림을 차렸던 화적촌이 있었다.

그곳 산채에서 의자가 태어났고, 은상이 태어났으며,

길지와 연문진 같은 장수가 마동 왕자와 군신의 인연을 맺은 곳이기도 했다.

강국 백제를 꿈꾸던 서동 대왕에겐 초발심의 장소였다.

뒷날 서동 대왕은 그곳의 산세와 지기가 영험한 것을 깨닫고 왕궁과 도성을

금마저로 옮기려 했다가 팔족 들의 맹렬한 반대에 부닥쳐 포기한 일도 있었다.

그토록 애착을 가졌던 곳이기에 금마저엔 서동 대왕의 흔적이 도처에 가득했다.

그가 죽기 2년 전 금마저에 가궁을 짓고 창건한 대관사도 그 가운데 하나였다.

그 절은 본래 가궁 안에서 소원을 빌던 내원당(內願堂)이었다.

상부대관에 있는 절이라 그런 이름이 붙었는데 일부에선 임금이 행유 하는

궁사(宮寺)로 창건했기 때문에 관궁사(官宮寺)라 부르기도 했다.

 

춘추는 대관사 앞에서 절이 앉은 지세를 살펴보고 난 뒤,

“내가 옛날에 눌최의 시신을 거두러 왔을 때 언뜻 이 앞을 스쳐지나간 듯하다.”

하며 지난 일을 회고했다.

그는 금마저에 들어온 뒤부터 줄곧 옛 생각에 젖어 있었다.

생전에 만난 서동 임금과 자신을 쌀쌀맞게 대하던 이모 선화비의 모습도 떠올랐다.

그때만 하더라도 이런 날이 오리라고 누군들 짐작이나 했을 것인가.

“서동 임금이 실은 천하를 집어삼킬 만한 영걸이었다.

돌아보니 백제도 그때가 제일 성기였구나.”

옛일을 회상하던 춘추의 표정엔 사뭇 감개무량한 기색이 감돌았다.

바로 그때 신라 임금이 행차했다는 소식을 들은 대관사의 중들이 일제히 절 마당으로 달려 나왔다.

춘추는 중들로부터 인사를 받고 절을 지은 내력에 관해 이야기를 들었다.

그가 주지를 앞세우고 경내를 둘러본 뒤 본당 앞에 이르렀을 때였다.

“저희가 해마다 이곳에서 돌아가신 임금의 제사를 모시고 있나이다.”

주지의 설명과 함께 본당 문이 열리는 순간이었다.

춘추는 갑자기 소스라치게 놀라며 움찔 뒷걸음질을 쳤다.

불전 한복판에 거대한 황금 주불(主佛)이 무섭게 두 눈을 부릅뜬 채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 저것은 무엇인가……?”

시종들이 화들짝 놀라 임금을 에워싸려고 하자

춘추는 그들을 밀치고 주불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아뢰옵기 송구하오나 서동 임금이십니다.”

주지가 대답했다.

춘추가 보니 과연 불상의 이목구비는 살아생전 무왕의 모습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아직도 가슴이 벌렁거리던 춘추에게 주지가 조심스럽게 설명을 덧붙였다.

“서동 임금께서 돌아가신 뒤 절에 모셔둔 본존불이 자꾸만 스스로 돌아앉았는데

그런 일이 있고 나면 우물물이 피처럼 붉게 변하고 그것을 마신 자는 복통을 앓아

심지어 목숨을 잃는 경우마저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소승의 꿈에 한 노인이 나타나 서동 임금께서 이 절을 잊지 못하니

임금의 형상으로 불상을 만들라고 하기에 대궐의 백공들을 초청해 형상을 빚고

금물을 입혀 모셨더니 이후로는 그런 기변이 일어나지 않았나이다.”

주지가 말하는 동안 춘추의 시선은 줄곧 불상에 박혀 움직이지 않았다.

머리엔 오라관을 쓰고 몸엔 용포를 걸친 채 근엄하고 무서운 눈빛으로 가부좌를 틀고

앉은 그는 자신이 젊어서 만난 서동 대왕의 모습 그대로였다.

형상뿐 아니라 상체를 잔뜩 세우고 무릎에 팔을 짚은 채 누가 무슨 말을 하면

금방이라도 벌떡 일어나 좌대를 저벅저벅 걸어 내려올 것만 같은 자세까지,

보면 볼수록 영락없는 서동 대왕이었다.

춘추는 자신도 모르게 혀를 내두르며 탄복했다.

“어쩌면 저리도 닮았는가.

마치 살아 있는 사람을 보는 듯하니 장인들의 솜씨가 대단 하구나……”

“대왕께서 마음에 걸리신다면 당장이라도 내리겠나이다.”

늙은 주지의 말에 춘추는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그럴 것까지야 있겠는가. 오랜만에 보았으니 저이도 반가울 것이다.”

백제를 멸한 감회가 컸던 탓일까.

놀란 가슴이 진정되고 나자 춘추는 은근히 장난기가 발동했다.

그는 신을 벗고 법당에 올라가 불상과 정면으로 눈을 맞추었다.

“오랜만이외다, 대왕! 그간 무양하시었소?”

춘추가 불상을 향해 말을 건넸다.

“대왕의 나라를 내가 빼앗고 말았구려.

대왕이 그토록 애지중지하던 의자는 중국으로 끌려갔고 그렇게 원하던 남역 평정은 내가 이뤘소.

보시구려, 대왕이 애호하던 백성들은 이제 모두 나의 백성이 되지 않았소?”

“……”

비록 무서운 얼굴로 앉아 있었지만 불상은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불상이 무슨 대꾸를 할 것인가.

“돌이켜보면 대왕의 공이 작지 않소.

대왕이 허황된 소문을 퍼뜨려 신라 왕실의 공주를 훔쳐간 신묘한 계책이 아니었다면

내가 의자로부터 백제 사직을 송두리째 훔쳐내지는 못했을 것이오.

과연 어리석은 게 백성이고 민심입디다.

우리가 소문을 처음 퍼뜨렸을 땐 의자의 궁녀가 1천이었는데 사비에 와서 보니

어느새 3천으로 불어나 있었지요.

허허, 그러니 내 어찌 공을 세운 대왕에게 벼슬과 작위를 드리지 않겠소?”

장난기가 발동한 춘추는 서동 임금 무왕의 형상을 한껏 조롱했다.

“거기 그렇게 앉아 있지 말고 어서 이리로 내려와 관작을 받으시오.

망국의 선군 주제로 나보다 높은 곳에 거한대서야 말이 아니지 않소?”

그렇게 말하고 춘추가 불상과 다시 눈을 맞췄을 때였다.

갑자기 불상의 미간이 살아 있는 사람처럼 꿈틀거리더니 이어 눈동자가 움직였다.

그때까지 웃고 있던 춘추가 기겁을 하며 뒤로 물러났다.

“여봐라, 게 아무도 없느냐?”

그는 법당 문 밖에 시립한 주지와 종관들을 불렀다.

“저 불상이 방금 눈살을 찌푸리며 움직인 듯하니 자세히 보라! 달라진 바가 없느냐?”

그러자 주지가 불상을 쳐다본 뒤 허리를 굽혀 대답했다.

“불상이 움직일 리가 있겠나이까. 달라진 바가 없나이다.”

“더 자세히 보라! 눈동자가 분명히 움직였느니라!”

춘추의 고함소리에 주지와 시종들은 일제히 어리둥절한 표정들이 되었다.

“날이 무덥고 행군이 오래되어 대왕께서 헛것을 보신 듯하니 편히 쉬시는 것이 좋겠나이다.”

종관들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아뢰자

춘추도 그제야 정신이 드는 듯했다.

그는 께름칙한 시선으로 다시 한 번 불상을 쳐다보았다.

“……그래, 내가 헛것을 본 게지. 아무려면 불상이 움직일 리 있는가.”

그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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