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감성기 3
강일환은 마땅한 곳을 찾지 못했다.
“어디로 가세요?”
신수정의 목소리가 떨고 있었다.
하지만 강일환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신수정을 데리고 아파트 주차장으로 향했다.
지금 신수정과 같이 있을 만한 곳으로 최적의 장소는 차안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강일환이 주머니에서 자동차 리모컨을 꺼내 누르자 은색의 렉서스가 비상등을 반짝였다.
강일환은 신수정을 조수석으로 들여보냈다.
멀리 가로등 불빛이 있었지만 밖에서 안을 들여다볼 수 없을 정도로 썬팅을 짙게 한 터라
다른 사람들에게 보일 염려가 없었다.
“실장님……”
신수정이 어둠 속의 강일환을 보고 낮게 중얼거렸다.
강일환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녀를 끌어안았다.
신수정은 그를 손으로 밀어냈다.
그러다 서서히 힘을 풀고 그의 품에 안겼다.
“우, 우리 이래도 괜찮아요?”
신수정의 몸이 떨었다.
강일환은 자신이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논리적으로 이해하지 못했다.
처음 보는 여자를 품에 안아 보기도 처음이었다.
그녀가 사별을 했다는 말을 듣곤 자신도 이해할 수 없는 분위기에 이끌려
신수정을 차안까지 끌고 온 것이었다.
“나도 내가 왜 이러는 지 모르겠습니다.”
강일환의 입에서 뜨거운 입김이 흘러나왔다.
차안은 금방 훈훈한 열기로 채워졌다.
적당히 오른 술기운 때문인지도 몰랐다.
“다른 사람들이 보면 어쩌죠?”
강일환은 이미 자신의 몸에 가득찬 열정을 어쩌지 못해 신수정의 목을 핥았다.
신수정은 몸을 비틀면서도 그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썬팅이 짙어서 잘 안 보입니다.”
“그래도 사람들이 보면……”
강일환이 옷섶으로 손을 밀어 넣으려 하자 신수정이 그의 손을 잡았다.
“우리 정말 이래도 되는 건가요?”
“나는 지금 내 기분에 충실하고 싶어요.”
신수정이 어둠 속에서도 이글거리는 강일환의 눈을 바라보았다.
강일환은 신수정의 손을 뿌리치고 그녀의 브라우스 속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부드럽고 말랑말랑한 가슴이 만져졌다.
터질 것 같이 탱탱하지는 않았으나 와닿는 촉감은 짜릿했다.
오랫동안 남자의 손길이 닿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녀는 부들부들 몸을 떨고 있었다.
‘왠 내숭이지?’
강일환은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다.
덩달아 확인하고픈 욕망이 뒤따랐다.
나머지 한 손으로 치마를 들추고 허벅지 안쪽으로 비집고 들어갔다.
그러자 신수정의 손이 강하게 제지했다.
“저를 미망인이라고 너무 쉽게 보시는 거 아니에요?”
그녀의 목소리는 그녀의 손만큼 힘이 담겨 있지는 않았다.
하지만 강일환은 맥이 빠졌다.
그가 떨어져 나가자 그녀는 옷매무새를 고쳤다.
“죄, 죄송해요. 너무 갑작스러운 일이라.
사실 저 남편 죽고 남자와 이렇게 가깝게 있어본 게 처음이에요.”
그녀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죄송합니다.
나도 모르게 그만. 수정씨를 안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어요.
그게 잘못된 거라는 걸 알면서도 그런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어요.
그렇다고 수정씨를 쉽게 봐서 이런 건 아닙니다.
그냥 나도 모르게 끌려간 거예요.”
신수정이 조용히 강일환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강일환은 몸이 후끈거려 도저히 잠을 이룰 수 없었다.
한번 발기한 물건도 꺼질 줄 몰랐다.
강일환은 아내의 어깨를 잡아 그녀의 몸을 자신 쪽으로 돌렸다.
아내는 브래지어나 팬티도 걸치지 않은 채 부드러운 슬립만 입고 있었다.
“여보 나 피곤해.”
강일환이 손을 그녀의 사타구니로 밀어 넣자 아내가 눈을 뜨지도 않은 채 말했다.
“오늘 무슨 일 있었어?”
“오늘 우리 미술관에 그림이 새로 들어왔잖아.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니까.
단체전이라 사람도 사람이지만 이렇게 걸어달라,
저렇게 조명을 배치해 달라. 아무튼 오늘 나 너무 피곤해.”
아내가 다시 돌아누웠다.
잠시 후 아내는 가볍게 코를 골며 잠이 들었다.
무척 피곤했던 모양이었다.
대부분 강일환보다 먼저 달려드는 그녀였기 때문이었다.
강일환은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화장실로 향했다.
옷을 벗어 던지고 찬물을 뒤집어 썼다.
그래도 신수정에게서 받은 자극으로 솟구친 욕망과 그에 따른 발기는 좀체 식지 않았다.
이렇게 강렬하게 성욕을 느낀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처음 송림과 관계를 맺을 때에도 이토록 강렬하지 않았다.
하지만 신수정에게 느끼는 성욕은 아내나 송림에게서 느꼈던 것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뼈저리게 사무치는 외로움에서 비롯된 성욕. 그렇게 표현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외로웠었나?’
강일환은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나신을 바라보았다.
‘이대론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겠다.’
그는 벗은 상태로 밖으로 나와 휴대폰을 찾아 들고 다시 욕실로 들어갔다.
그리곤 신수정에게 전화를 걸었다.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습니다.”
“저도 그래요.”
강일환은 남은 한 손으로 물건을 잡았다.
“저는 그냥 잘 수 없는 게 아닙니다.”
“그럼 어떡하죠?”
“지금 뭘 입고 있습니까?”
물건을 잡은 강일환의 손이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네?”
“부탁입니다. 지금 입고 계신 게 뭔지 말 좀 해주세요.”
한동안 저편에서 말이 없었다.
변태라고 생각한다고 해도 어쩔 수 없는 기분이었다.
“헐렁한 라운드 티에 팬티만 입고 있어요.”
신수정의 목소리가 전파를 타고 건너와 강일환의 귀에 담겼다.
멀지 않은 곳에 신수정이 있다는 생각이 들자 강일환은 더욱 흥분이 됐다.
“브래지어는 안 했나요?”
“네.”
“팬티 색깔은요?”
“검정색.”
“디자인이 어때요?”
“코지의 섹시 스타일이에요. V5 시리즈.”
강일환의 손이 멈추었다.
밤꽃 냄새가 욕조 속으로 몇차례 떨어졌다.
“고, 고마워요.”
강일환은 그 말을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나를 잠 못 들게 한 여자는 당신이 처음입니다.”
강일환은 다시 찬물을 뒤집어쓰며 혼자 중얼거렸다.
내장저수지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동네라고 했는데…”
진국은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차창 밖을 내다봤다.
언덕진 커브 길을 돌자마자 올망졸망한 산을 머금은 넓은 저수지가 나타났다.
“저기 보이는 동넨가 송죽린가?”
진국의 눈앞에 오십 호 남짓한 집들이 나타났다.
그때 휴대폰이 울렸다.
진국은 내장저수지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공터에 차를 세웠다.
“혼자 드라이브 나왔지.”
전화를 건 사람은 봉수였다.
“오늘 저녁에는 시간 있어.”
봉수는 맥주 한잔 하자며 전화를 걸어온 것이었다.
그와 통화가 끝나기도 전에 누군가 전화를 걸어왔다.
“봉수야, 잠깐만 내가 다시 전화할게. 여보세요?”
“오빠!”
수영이었다.
“오랜만이네.”
진국은 반가운 속내를 숨기고 짐짓 무심한 척 말했다.
“오빠 내가 연락 안 했다고 삐졌구나.”
“용건이 뭐야?”
“오빠도 참, 오늘 실은 안전한 날이거든. 그래서 오빠한테 전화를 건 건데.”
진국은 저수지 길을 따라 펼쳐진 마을을 바라보았다.
“오늘 봉수 오빠랑 만나기로 하지 않았어?”
“응, 저녁에.”
“언제?”
“8시에.”
“그럼 그때 송화랑 같이 보면 되겠네.”
“그, 그러자.”
전화를 끊었다.
수영을 감당할 수가 없어 매달리지 않으려고 했는데
그녀가 먼저 아무렇지도 않게 전화를 걸어왔다.
아직은 여린 나이지만 세상일에 닳고닳은 듯 당차고 겁이 없었다.
섹스를 할 때에도 주저하지 않고 별난 자세를 요구하고 어떻게 해달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렇다고 사랑하는 거 같지도 않았다.
진국은 여자를 좋아했다. 가능한 많은 여자를 만난다는 게 그의 작은 신조이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격렬한 사랑의 감정을 느낀 여자는 한번도 없었다.
한때의 호기심과 하루 정도 식지 않을 열정으로 여자를 만나곤 했다.
그런데 수영은 달랐다.
감당할 수 없이 빠져들었다.
그래서 경계를 하는데 그럴수록 더 빨려들었다.
‘나도 참, 어린애한테…… 조금 색다른 거야. 아주 조금.’
진국은 마음속으로 자신을 위로했다.
차를 몰아 마을 입구로 들어섰다.
도로변으로 번듯한 상가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었다.
진국은 차를 슈퍼 앞에 세우고 내렸다.
담배도 살 겸 채연의 집도 물을 겸 슈퍼로 들어갔다.
“말씀 좀 묻겠습니다.”
슈퍼의 주인 여자가 진국을 바라보았다.
통통한 얼굴이어서 마음씨 좋아 보였다.
“김채연이라는 여자네 집을 찾고 있는데요.”
“채연이?”
슈퍼 여자가 되물었을 때 채연이 슈퍼 안으로 들어왔다.
“채연아, 누가 찾아 왔다.”
진국이 뒤를 돌아보았다.
거기에 창백한 얼굴로 서 있는 채연이 있었다.
“뭐하러 말을 해요.”
“아무리 1년 계약직이라고 해도 우리 회사 직원은 직원이잖습니까?”
채연과 진국은 저수지 둘레의 산책길을 걷고 있었다.
“계약직이라서 회사에서 보장해 주는 거 아무 것도 없어요.”
“그러니까 더더욱 찾아 챙겨야 한다는 거 아닙니까.”
“제가 말했으면 뭐가 달라졌을까요?
총무과에 가서 아버지가 죽었으니까 경조비라도 좀 보태달라고 말할까요?”
채연의 목소리가 격앙되어 있었다.
진국이 멈춰 서서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속옷을 입고 있을 땐 육감적이지만 편하게 입은 차림에선 수수한 분위기가 풍겼다.
내장산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그녀의 머리칼을 날렸다.
“죄송해요. 제가 그만 흥분해서.”
채연이 뒤돌아서며 고개를 떨구었다.
진국은 그런 그녀를 위로할 수 없다는 게 우울했다.
“오셨으니까 내장산 구경이나 하고 가세요.”
채연이 내장산 매표소 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집을 비워도 되는 겁니까?”
“아버지 장례는 다 끝났어요.”
그녀는 진국보다 앞서 걸었다.
진국은 바지주머니에 들어있는 돈봉투를 만지작거렸다.
디자인 팀에서 걷은 경조비라고 말할 수도 없었다.
금방 들통이 날 것이었다.
“아버진 뭘 하시던 분이셨습니까?”
진국의 말에 채연이 걸음을 멈추었다.
“전에도 느낀 점이지만 진국씬 좀 독특한 사람이네요.”
“뭐가요?”
진국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보통 사람들은 그런 거 묻지 않잖아요.”
진국의 얼굴이 삽시간에 붉어졌다.
“오해하지 마세요. 고맙다는 뜻이니까.”
멀리 내장산 입구 매표소가 보였다.
길 양옆으로 늘어선 단풍나무와 은행나무 등이 가을을 재촉하듯 서서히 물들고 있었다.
“아버지요?
공원 관리원으로 지내셨어요.
말이 관리원이지, 뭐 청소하시고 시설물 수리하러 다니시고
군데군데 있는 화장실 청소도 하시고 그러셨죠.
서울 구경 한번 시켜드린다고 약속을 했었는데 한번도 그러지 못했어요.”
채연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진국은 괜히 마음이 뒤숭숭해졌다.
“제가 괜한 소리를 했네요.”
채연이 얼른 눈가를 훔쳤다.
“두 분 모두 살아 계시죠?”
이번엔 채연이 물었다.
“네. 사실 전 복 받은 놈이죠.
고생 한번 해 본 적이 없어요.
그냥 평범한 부모 밑에서 대학까지 졸업하고 한 3년 백수 생활하다가 코지에 입사한 거죠.”
진국은 지갑에서 돈을 꺼내 매표소 창구에 내밀었다.
“채연이 아니냐?”
매표소 직원이 채연에게 알은체했다.
그녀 덕에 입장료는 굳어버렸다.
“내장사까지 가려면 멀어요. 여기서 버스를 타야 되요.”
“차를 가져올 걸 그랬죠.”
“그냥 버스 타고 가요.
오셨다고 특별하게 해드릴 것도 없고 제가 살아온 동네 구경이나 시켜드려야죠.”
경내 버스 안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역시 주말이라 외지에서 온 사람들과 바람이나 쏘이려 나온 인근 주민들이 뒤섞여 있는 듯했다.
“지금은 이렇게 앉을 자리라도 있는데 단풍이 본격적으로 들면 사람들에 치여서
제대로 서 있지도 못해요.”
진국은 채연과 나란히 앉았다.
진국은 버스 안의 젊은 여자들을 둘러보았다.
채연의 미모가 단연 뛰어났다.
서거나 앉아 있는 남자들이 채연을 힐끔힐끔 쳐다봤다.
“그나저나 저 때문에 여기까지 오신 거예요?”
채연은 뒤늦게 물었다.
“사실은 부탁도 있고 경조비도 전달해 드려야할 거 같고.”
진국이 바지 주머니에서 돈 봉투를 꺼냈다.
뒤야 어떻게 되든 그녀에게 도움을 주고 싶은 마음만 굴뚝 같았다.
“뭐 하러 이런 걸…”
채연은 진국의 손에 들린 봉투를 바라보았다.
“적습니다. 디자인 팀만 걷은 거니까.”
후에 거짓말을 어떻게 수습할 지 계산도 없으며 진국은 그렇게 말하고 말았다.
“너무 고맙네요. 하지만 받아도 되는 건가요?”
진국은 그녀의 손을 잡아끈뒤 손위에 봉투를 올려놓았다.
채연의 손은 부드러웠지만 차가왔다.
그에 비해 수영은 손 뿐만 아니라 몸 전체가 뜨거운 여자였다.
진국에게 두 여자는 매우 상반된 느낌을 주었다.
곁에 서 있는 사람들이 채연과 진국의 손을 바라보았다.
채연이 진국의 손바닥에서 슬그머니 손을 빼냈다.
그녀는 손을 말아쥔 채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부탁하실 게 있으시다구요?”
“네.”
“말씀해 보세요. 제가 들어 드릴 수 있는 거면 들어 드릴게요.”
“여기선 말씀 드리기가 곤란한 이야기라…”
진국은 곁을 둘러보았다.
“곤란한 부탁인가요?”
“그런 건 아니지만 여기서 말씀 드리기는 좀 그렇네요.”
“뭐, 어때요? 말씀 해보세요.”
채연은 어색한 순간을 빨리 모면하고 싶은 듯했다.
“귀, 귀 좀 빌릴까요?”
채연이 머뭇거리며 다가들었다.
“제가 실은 아이디어를 내서 개발한 브래지어가 있는데 실은 모델로 삼은 분이 채연씹니다.
그래서 한번 입어 주실 수 있는가 해서 말입니다.”
채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진국이 그녀에게서 멀어졌다.
“어려운 것도 아니네요. 그리고 저야 전속이니 그쯤이야 어렵겠습니까?
뭐 새로운 상품을 개발하신 모양이시죠?”
“새로운 상품이라기보다 획기적인 상품이라고 말하는 게 더 어울릴 듯하네요.”
경내 버스가 종점에 도착했다.
두 사람은 버스에서 내려 내장사 쪽으로 향했다.
“요즘 어렵죠?”
“어렵죠.
신입들 중에서도 벌써 정리 대상자들이 있다는 소문이더라구요.
고급 인력은 남아돌지, 일자리는 없지.
그러니 회사 입장에서는 사실 고급인력을 싸게 얻을 수 있는 좋은 기회죠.”
“그래, 진국씨가 개발한 브래지어가 뭐예요?
저도 뭔가 도움을 드리고 싶네요.”
진국은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실은 유두 브라입니다.”
“유두 브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