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1장 황산벌 9
그것이 백제의 마지막 날이었다.
임금이 머리를 풀고 땅에 무릎을 꿇는 순간 영화롭던 7백 년 백제 사직도 함께 무릎을 꿇었고,
그가 술병을 쥐고 색주가의 천한 계집처럼 술을 따르면서 25만 날 찬란하고 휘황했던
백제의 일력도 막을 내렸다.
그날은 백제가 땅에 묻히고 세월에 갇혀버린 날이었다.
동편으로 떠오른 해는 여전히 빛나고 빛났지만 이미 백제의 해가 아니었다.
산천도 그대로요 백성도 그대로였으나 그 또한 더 이상은 백제의 것이 아니었다.
백강 푸른 물살을 따라 끝없이 흐를 것만 같던 역사는 그것으로 끝이 났다.
승리의 북소리를 울리며 개선하던 용사도, 화려했던 영광의 날도 더는 오지 않을 것이었고,
임금이 망국의 연회에 끌려 나가 술시중을 드는 것을 끝으로 필경은 더한 치욕의 날도 없을 것이었다.
잔치는 오후를 지나 저녁까지 계속되었다.
땅 위의 일을 아는지 서편에 지는 저녁놀은 그날따라 유난히 피처럼 붉었고,
밤이 되자 달은 나오지도 않았다. 백제의 해와 달도 그렇게 졌다.
잔치가 벌어지는 동안 대야성에서 배반한 검일(黔日)과 모척(毛尺)의 처형식이 있었다.
신라 태자 법민은 사비성에 입성한 날부터 휘하의 모든 군사를 풀어 그 두 사람을 찾아냈다.
공을 세우고 귀순한 그들은 사비성에서 다시 처를 얻고 자식들을 낳아 제법 호사스럽게 살고 있었다.
법민은 이들을 결박해 왕궁 앞뜰로 끌고 나와 큰 소리로 꾸짖었다.
“너희는 대야성에서 함께 공모하여 백제 군사를 끌어들이고 식량을 불태워 성을 망하게 한 것이
첫 번째 죄요,
성주 부처를 죽인 것이 둘째 죄며,
백제와 내통해 제 나라를 공격한 것이 세 번째 죄다!
나는 도저히 이를 용서할 수 없다!”
누이 고타소에 대한 법민의 그리움은 실로 크고 깊었다.
장성하여 혼인을 한 뒤에도 법민은 누가 대야성 얘기만 하면 그윽한 눈빛에 젖어 한숨을 쉬곤 했다.
그런 그에게 검일과 모척은 산 채로 갈아 마셔도 시원치 않을 자들이었다.
“여봐라, 저 두 놈을 줄에 묶어 사지를 찢어 죽이고 그 시체를 강물에 던져버려라!”
논고를 마친 법민이 무서운 얼굴로 명령했다.
검일과 모척은 스스로 지은 죄를 알기 때문에 아무 변명도 하지 못하고 형장으로 끌려 나갔다.
태자의 노여움을 본 신라 장수들이,
“마마, 저들의 죄를 살피건대 그 위중함으로 말하면 구족(九族)을 멸해도 시원치 않을 것입니다.
마땅히 처자식도 죽여 버립시다!”
하고 건의했다.
그러나 잠시 대답이 없던 법민은 시퍼렇게 설쳐대던 기세와는 달리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이곳에서 얻은 처자식이야 무슨 죄가 있을 것인가.
나는 죄를 벌하는 것이지 사람을 잡는 것은 아니다.”
춘추는 능지처참한 검일과 모척의 시체를 강물에 던지고 나서야 이 소식을 들었다.
“그래, 태자는 그럴 것이다.
제 누이를 섬기는 마음이 오히려 나보다도 훨씬 깊을 것이다.”
그런 다음 흡족한 얼굴로 이렇게 덧붙였다.
“일을 처리하는 태자의 분별 또한 가히 칭찬할 만하다.
그를 보면 내 뒤는 걱정하지 않아도 되지 싶구나.”
한편 잔치가 끝난 뒤 소정방은 김유신에게 따로 만날 것을 청했다.
백제를 치고 나면 곧바로 군사를 돌려 신라까지 정벌하라는 밀명을 받은 그로선
사비성에 입성한 직후부터 김인문의 눈을 피해 장수들과 잦은 회합을 가졌다.
그런데 아무래도 마음에 걸리는 인물이 김유신이었다.
게다가 전역에 동원된 신라군의 숫자가 얼마 되지 않는 것도 께름칙했다.
저쪽에서 이미 실상을 간파하고 무슨 대책을 세워놓았다면 차라리 일을 벌이지 않는 편이 나을 터였다.
“김유신이 있는 한 신라를 치기란 어렵습니다.
총관께서도 그가 어떤 인물인가는 이미 겪지 않았습니까?”
풍사귀의 말에 방효공도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사비성에 나타난 신라군의 숫자가 기껏해야 4만이 조금 넘을 뿐입니다.
따로 무슨 방책을 세워놓은 게 틀림없습니다.”
그러자 좌위장군 유백영이 말했다.
“뒤로 무슨 방책을 세워놓았다면 이를 명분으로 신라를 칠 수도 있지요.
전군을 동원하지 않았다면 우리를 의심하는 것인데,
혈맹을 운운하는 자들이 의심을 한다면 마땅히 군사를 돌릴 명분이 됩니다.”
유백영의 말이 끝나자 유수 유인원(劉仁願)이 거들었다.
“김유신이 비록 용장이요 명장이라곤 하지만 그 역시 사람입니다.
하물며 그와 같이 뜻이 높고 그릇이 큰 사람이라면 어찌 손바닥만한 신라에서
일생을 마치고 싶겠습니까?
낙양으로 데려가 우리나라의 높은 벼슬을 내린다면 마음을 돌릴지도 모르는 일이올시다.”
소정방은 특히 유인원의 말에 솔깃했다.
“그렇지. 꺾기 힘든 자는 내 편으로 삼는 것이 상책이라고 했네.
그의 마음을 돌리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는가?”
이 질문에 대답한 이는 우장 동보량 이었다.
“먼저 김유신의 마음을 돌릴 만한 선물이 있어야 합니다.
후일을 기약하는 황제 폐하의 친서를 얻어낼 수 있다면 다행 이옵고,
백제 땅을 갈라 그에게 식읍으로 주겠다고 제의하는 것도 써볼 만한 계책입니다.”
소정방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우장의 말이 옳다.”
그는 부랴부랴 전첩을 알리는 사신 편에 김유신의 공을 자세히 일러 보내고
황제의 친서가 당도하기를 기다렸다.
낙양에 간 사신이 황제를 배알하고 다시 사비로 돌아온 것은 8월 중순,
이치는 당군 장수들의 노고를 글로써 치하하는 말미에 특별히 김유신의 무공을 높이 말하고
온갖 미사여구를 동원해 그를 칭찬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일은 자연스럽게 김인문 에게 알려졌다.
인문은 비록 신라의 왕자였지만 명목상으론 당나라 장수요 부총관이었고,
황제의 친서가 오가는 공식적인 행사에 인문이 참여하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소정방이 이 일로 고민하자 처음 꾀를 낸 동보량이 말했다.
“꺾기 어려운 자는 내 편으로 삼는 것이 상책이라고 이미 총관께서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속이기 힘든 경우에도 마찬가집니다.
부총관은 신라의 왕자이긴 하나 태자가 아닙니다.
하물며 그는 신라에서보다 우리 당나라에서 더 출세한 사람입니다.
어찌 그 마음에 파고들만 한 틈이 없겠습니까?”
“그럴까?”
소정방이 쉽게 결심하지 못하고 머뭇거리자 동보량은 이렇게 덧붙였다.
“김유신의 처지를 고려한다면 차라리 잘된 일입니다.
혼자만 불러 회유하면 아무리 뜻이 있어도 우리의 제안을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부총관뿐 아니라 신라사로 우리나라와 인연이 깊은 김양도(金良圖)도 함께 구슬려 보십시오.
그 역시 신라에서보다는 장안에서 더 출세한 사람이니 말이 통할 것입니다.
그렇게 세 사람쯤이면 말을 꺼내기도 그렇지만 받아들이기도 한결 자연스럽지 않겠습니까?”
소정방은 동보량의 제의를 받아들여 김인문을 통해 유신과 양도를 같이 초대했다.
전쟁이 끝났으니 마음 편히 술잔이나 나누자는 것이 이유였다.
하긴 양도는 장안에서 면을 익힌 구연으로, 김유신은 양국 군사를 지휘한 책임자로
각별한 자리를 만드는 것이 수상한 일은 아니었다.
소정방은 당군 병영을 설치한 사비성 별궁에 주안상을 차려놓고 김유신 에게 상석을 권했다.
유신이 몇 번 사양하자 그는 거의 우격다짐으로 등을 떠밀며 말했다.
“언제 어디서든 장군을 깍듯하게 모시라는 황제 폐하의 전언이 있었습니다.
장군께서 이곳에 계셔서 그렇지 만일 우리나라에 가신다면 영국공(이적)이나 이위공(이정)에 견주어
조금도 뒤지지 않을 불세출의 명성을 천하 만방에 크게 떨치셨을 것입니다.
이를 아는 제가 비단 황제 폐하의 전언이 아니더라도 어찌 장군을 높이 뫼시지 않겠습니까?
사양치 말고 상석에 앉으십시오.”
소정방은 은근히 속셈을 드러내고 유신의 의중을 떠보려고 한 말이었으나
이를 받아치는 김유신의 응대도 만만찮았다.
“보잘것없는 이 몸을 그토록 추켜세우시니 낯이 다 붉어지는구려.
과연 황제 폐하께서는 변방의 늙고 이름 없는 장수조차도 충정에 사로잡히게 할 만큼
큰 덕을 갖추신 분이외다.
그러나 총관이 늙은이를 예우한다면 나는 감히 계림의 법도에 따를까 합니다.
이 자리에 우리나라 왕자께서 와 계시니 마땅히 그분께 상석을 양보하겠소.”
상석에 인문을 앉히겠다는 뜻이었다.
일순 소정방의 얼굴엔 실망의 기운이 스쳤다.
하지만 김인문인들 하늘같은 외숙을 두고 상석에 앉을 수는 없는 법이었다.
“그냥 앉으시지요.
이 자리는 총관께서 마련하신 사사로운 자리입니다.
본래 사석에선 연배를 따지는 것이 만국의 공통된 상규가 아닙니까?”
인문이 거듭 사양을 한 뒤에야 김유신은 하는 수 없다는 듯 소정방이 권한 자리로 가 앉았다.
상석 싸움으로 한 차례 풀이 꺾인 소정방은 어떻게든 달콤한 말로 유신의 마음을 돌려보려고 결심했다.
그는 술잔이 돌고 주연이 시작되자 황제가 보낸 서신을 화제로 김유신의 무공을 칭찬하는 일에
침이 말랐다.
유신을 극찬하며 그렇게도 만나고 싶어 했던 선제 이세민의 얘기에서부터,
낙양에서 식읍을 하사받는 장수가 되면 얼마나 호강하고 영화를 누리는지,
그리고 지금의 황제가 신장(神將)을 기다리는 심정으로 김유신이 입조하기를 바란다는 말까지
장황하게 늘어놓았다.
하기 좋은 말은 듣기에도 좋은 법이었다.
자신을 칭찬하는 말에 김유신도 줄곧 호방한 웃음을 터뜨렸고,
두 사람 사이에 합석한 인문과 양도도 간혹 유신이 잘 알아듣지 못하는 말은
통역을 해주며 함께 즐거워하였다.
화기애애한 분위기는 밤이 깊도록 이어졌다.
몇 동이의 술을 비우고 네 사람이 모두 거나하게 취했을 때였다.
소정방은 갑자기 사뭇 음성을 낮춰 이렇게 말했다.
“백제의 일은 이제 저에게 모든 권한이 있습니다.
여기 부총관도 이미 알고 있겠지만 엊그제 사신으로부터 만사를 편의에 따라
처리하라는 폐하의 명령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사실이었다.
백제를 토벌했다는 낭보를 받고 크게 기뻐한 이치는 의자왕을 살리고 죽이는
일부터 고구려와 신라를 치는 문제까지 모든 것을 책임자인 대총관이 알아서 하라며
소정방에게 재량권을 주었다.
소정방은 더욱 낮은 음성으로 말을 이었다.
“그래서 말입니다만,
지금 공취한 백제 강역을 3등분하여 공들에게 식읍으로 주려는 게 내 생각입니다.
어떻습니까?
그만하면 유신 장군의 공적에도 보상이 될 것이고,
숙위사와 입조사로 양국에 두루 공을 세운 부총관과 양도공 에게도 훌륭한 선물이 되지 않겠소?”
소정방의 제안에 세 사람은 크게 놀랐다.
인문과 양도가 입을 벌리고 유신을 바라보자 유신이 돌연 껄껄 웃음을 터뜨렸다.
“총관께서 많이 취하신 모양이오!”
유신은 자신이 비운 잔을 소정방 에게 내밀고 술 한 잔을 더 권하며 점잖게 말했다.
“총관께서 황제의 군사를 거느리고 와 우리 임금의 소망에 부응하고 나라의 깊은 원한을 풀어주었으니
대왕은 물론 온 나라의 신하와 백성들이 기뻐하는 것은 말로 다할 수가 없소.
그런데 유독 우리 세 사람만 상을 받는다면 그 의리가 어떻겠소?
총관의 마음만 고맙게 받아들이리다.”
유신의 말이 끝나자 양도 역시 웃으며 말했다.
“제 생각도 우리 대장군의 말씀과 다를 바 없습니다.
장수와 신하가 공을 다투는 것은 오직 대왕의 성지를 받들기 위함이지 어찌 사사롭게
상을 바라고 하는 일이겠습니까?
총관의 말씀은 매우 고마우나 따를 수 없습니다.”
자신의 말이 먹혀들지 않자
소정방은 취기를 핑계 삼아 너털웃음으로 속셈을 얼버무렸다.
“신라는 작지만 과연 대국이오!
허허, 내 어찌 신하된 도리를 모르겠소.
세 분의 공이 높은 것을 말하다 보니 본의 아니게 말이 헛 나와 버렸소.”
아무래도 어렵겠다는 느낌은 들었다.
하지만 그날 이후로도 소정방은 틈틈이 김유신을 만나면 황제의 뜻임을 내세워
함께 당나라로 가서 대국의 벼슬살이를 하자고 꼬드겼다.
그럴 때마다 유신은 웃으며,
“말씀은 고마우나 나는 금관의 후예이며 계림의 신하요.
우리 대왕의 곁을 떠나선 단 하루도 살 수가 없소.”
하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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