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개와 늑대의 시간

제1장 발정기 12

오늘의 쉼터 2014. 11. 20. 15:41

제1장 발정기 12

 

 

 

장 과장의 손은 송림의 어깨에 올라가 있고 최 부장은 손은 자연스럽게 송림의 무릎 위에 올라가 있었다.

 

두 사람은 송림이 권하는 대로 연거푸 술을 마신 터라 어느 정도 취해 있었다.

 

호걸에 여자를 좋아하는 단점을 지닌 남자라.

 

해수의 말 그대로였다.

 

하지만 송림은 싫은 내색을 전혀 보이지 않았다.


‘무서운 여자다.’

 

중경은 송림을 보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평소 다소곳하고 순진하게만 생각을 했었는데 의외의 구석이 있었다.

 

성공을 위해서라면 언제든지 몸을 무기로 사용할 줄 아는 여자라는 말이었다.

 

“나 팀장, 우리 2차 어때?”

 

“부장님도 참, 2차 당연히 가야죠.”

 

송림은 매우 즐거운 듯 깔깔거렸다.

 

“하, 이거 우리가 나 팀장한테 잘못하다간 코가 꿰이겠는데.”

 

장 과장이 너스레를 떨었다.

 

“과장님 좀 꿰이시면 어때요?

 

만약에 우리 제품이 품질로써 뒤떨어진다면 이런 말씀도 못 드리죠.”

 

두 남자는 술기운을 빌어 금방이라도 송림의 치마 속으로 손이라도 집어넣을 태세였다.

 

“2차는 제가 좋은 곳으로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중경이 나섰다.

 

“미스터 김, 우리 그런 사람들 아냐. 그러니까 이쯤에서…”

 

최 부장이 말머리를 돌리자 장 과장도 정색을 하고 앉았다.

 

“혹시 우리를 성희롱범으로 보면 안됩니다.”

 

최 부장이 잠깐 송림의 옆얼굴을 바라보았다.

 

“무슨 말씀을 그렇게 섭섭하게 하세요. 오히려 제가 즐거웠는데요.”

 

송림의 말에 두 사람이 호탕하게 웃었다.

 

그들이 기분 좋게 취하고 웃었다고 해서 암암리에 코지와 계약이 이루어진다는 건 오산이었다.

 

그래도 그들은 일류 백화점의 주요 간부들이었다.

 

다른 사람은 모르겠지만 최 부장은 뒷거래를 끔찍하게 싫어하는 사람이라고 정평이 나 있었다.

 

“오늘은 즐겁게 놀았습니다.

 

조금 지나쳤다면 나 팀장이 너무 미인이셔서 술 한잔 마신 터라 실수를 했다고 생각해 주십시오.”

 

최 부장이 다시 한번 정색을 하고 말했다.

 

최 부장이 여자를 좋아하는 건 사실이지만 넘지 말아야 할 선은 결코 넘지 않았다.

 

아주 자연스럽게 송림의 어깨나 무릎에 손을 올려놓았다가 내려놓곤 했던 것이다.

 

“저 역시 좋은 인연이 되었으면 합니다.”

 

그때 장 과장이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두 사람은 그가 화장실을 다녀오는 줄로만 생각했다.

 

“잘 아시겠지만 우린 여느 백화점들처럼 폭리를 취하진 않습니다.

 

대신 품질에 있어서나 가격에 있어서나 그만큼 까다롭다는 말입니다.

 

그게 곧 우리의 생명이기도 하구요.”

 

장 과장이 들어왔다.

 

“한 가지 다른 업체들에게 주지 않았던 힌트를 드릴 수 있습니다.”

 

송림과 중경의 눈이 번득였다.

 

“우리는 메인 자리에 2만원에서 3만원 미만의 속옷으로 채울 생각입니다.”

 

해수의 말이 사실이었다.

 

“어머, 저희도 이번 신제품 컨셉이 바로 그건데요.

 

 저렴하면서도 품질은 고급으로.”

 

“쉽지 않은 일일텐데….”

 

최 부장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중경은 장 과장이 택시를 타고 사라지자 긴장이 풀렸다.

 

멀쩡했던 취기도 올라왔다.


“우리 둘이 한잔 더 할까요?”

 

중경은 뒤에 서있던 송림을 돌아다보았다.

 

노래방에서 술에 취한 듯 애교를 부리며 비틀거리기도 하고

 

발랄하게 노래를 하던 모습이 아니었다.

 

그녀는 말짱해 보였다.

 

시계를 들여다보니 딱 자정이었다.

 

“오늘 나 선배한테 감동했어요.”

 

“감동은요? 성사가 잘 되면 저 역시 좋은 거니까 그렇죠.”

 

“사실 나 선배는 이 일에 접대를 안 해도 되는 거였다구요.

 

나 역시 내 군번으로 할 일이 아니었죠.

 

다른 선배들도 많이 있으니까.

 

더군다나 선배는 디자이너지 술 상무나 그런 게 아니잖아요.”

 

“그건 그래요. 하지만 우리가 개발한 ‘쟌느’를 꼭 ‘가이아’에 깔고 싶었어요.

 

‘쟌느’는 중경씨랑 저의 작품이잖아요.

 

제가 지금 입고 있는데 정말 편하고 아름다웠어요.

 

게다가 가격까지 누구나 부담 없이 살 수 있는 그야말로 획기적인 작품이잖아요.”

 

송림은 자부심이 대단했다.

 

“중경 씨가 아니었다면 그런 가격대를 형성할 수 없었던 일이잖아요.”

 

중경은 잠깐 봉수의 얼굴이 떠올랐다.

 

반면 송림은 ‘변강쇠’라는 아이디의 남자가 떠올랐다.

 

두 사람은 눈에 보이는 포장마차로 들어갔다.

 

“그런데 실은 뭔가 찝찝해요.”

 

송림이 소주 잔에 술을 따르며 먼저 입을 열었다.

 

“뭐가요?”

 

“제 아이디어는 어쨌든 보강하긴 했지만 다른 사람의 생각이었잖아요.”

 

“찝찝할 게 뭐 있습니까? 우린 훌륭하게 재창조를 한 것 뿐입니다.”

 

“중경 씨의 그 아이디어도 누군가 한테 들은 거예요?”

 

“아, 아닙니다.”

 

중경은 가슴이 뜨끔했다.

 

“두 능구렁이가 어떤 결정을 내리더라도 오늘 우리는 최선을 다했습니다.”

 

중경은 서둘러서 술잔을 들며 그녀에게 건배하기를 재촉했다.

 

“이제 우린 준비만 철저하게 하면 되는 거겠죠.”

 

송림도 잔을 들었다.

 

두 사람은 장 과장과 최 부장이 사라지자 빠르게 취해 갔다.

 

포장마차에서 나올 땐 서로 어깨동무를 하고 ‘말 달리자’라는 노래를 목청껏 부를 정도였다.

 

“내일은 내일이고…. 중경씨 우리 한잔 더 해요.

 

지난번 스토커 일 고맙다는 말도 제대로 못했어요.”

 

“그건 고마워할 필요 없습니다.

 

하지만 술은 한잔 더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나 선배 이렇게 술이 센 줄 몰랐습니다.”

 

“잘 맞는 사람하고 마시면 강해져요.”

 

송림이 자신의 팔을 들어 알통을 만들어 보이는 시늉을 했다.

 

“중경씨 집으로 가요.”

 

송림이 느닷없이 제안했다.

 

중경이 망설였다.

 

“우리 회사 여직원들이 가장 미스테릭한 남자로 중경씨를 꼽았어요.

 

그 학벌에 그만한 외모에 수석인데 안 그러겠어요.

 

게다가 차가운 줄 알았는데 따뜻한 구석까지 있지.

 

저한테 가장 먼저 집 구경 시켜줄 영광을 주지 않겠어요?”

 

중경은 순간 그녀의 옷차림이 ‘가이아’ 사람들보다

 

자신을 위한 유혹이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송림은 중경의 오피스텔을 둘러보며 벌어진 입을 다물 줄 몰랐다.


오피스텔로 들어서자 창의 블라인드가 자동으로 열리며 한강의 야경이 내려다 보였다.

 

원룸임에도 침실과 응접실, 그리고 주방과 식당이 고대 로마 건축풍의 기둥이

 

칸막이 역할을 해 각각 나뉘어져 있었다.

 

벽걸이형 에어컨에 벽걸이형 텔레비전, 월풀 냉장고에 한강을 내다보는 자리엔

 

미니 홈바까지 있었다.

 

중경은 응접실 소파에 앉아 창 밖을 내다보았다.

 

‘혹시 김중경이 회장의 아들?’

 

코지는 표면적으로 의류와 액세서리, 속옷 전문의 독립된 회사로 알려져 있지만

 

한때는 오성그룹의 계열사였다.

 

계열 분리가 되며 독립법인체로 출발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오성그룹의 영향을 받는 회사였다.

 

중경이 코지에 입사할 때 오성 그룹 회장의 둘째 넷째 아들이 입사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괜한 오해하지 마세요.

 

이건 원래 형이 쓰던 건데 형이 외국의 교수로 초빙되어 가면서 제게 맡긴 겁니다.”

 

송림이 소파에 앉자 중경이 술을 가져왔다.

 

그는 양주와 육포를 들고 왔다.

 

“제 형수가 버스터미널 여러 개를 운영하는 유지 집안입니다.

 

형 보고 그 쪽 사람들이 마련해 준 거죠.

 

나는 그 덕에 이렇게 호화스럽게 사는 거고.”

 

중경은 담담하게 말했다.

 

그래도 송림은 그 말이 선뜻 믿어지지 않았다.

 

“우리 집도 예전엔 똥구멍 찢어지게 가난했습니다.

 

형이 일으켜 세우긴 했지만 그렇다고 뭐 갑부가 됐다거나 그런 건 아니고

 

그냥 먹고 살만큼 된 정도죠.”

 

송림이 집안을 다시 둘러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사는 오피스텔에 한 다섯 배는 되겠어요.”

 

“저도 얼른 돈 벌어서 이런 오피스텔 하나 장만하는 게 꿈입니다.

 

그런데 월급 받아서 언제 이런 걸 장만할 수 있을 지 모르겠습니다.

 

저도 형처럼 돈 많은 여자를 만나는 게 더 빠를 지도 모르죠.

 

어디 그런 여자 없습니까?”

 

중경이 한탄하듯 말했다. 송림이 깔깔거렸다.

 

‘정말인가?’

 

송림은 잠시 헷갈렸다.

 

오성 그룹 회장의 아들이라면 이름이 차중경이라야 맞았다.

 

“그래도 이런 형이 있다는 게 부럽네요.”

 

“자, 자, 우리 신세 한탄은 그만하고 술이나 마시죠.

 

이것도 죄 형이 사다 놓은 것들인데 그 덕에 우리가 호강합니다.”

 

중경이 잔을 들어 송림에게 권했다.

 

송림도 이미 적당히 취기가 오른 터라 그가 이끄는 대로 넘어갔다.

 

중경 역시 적당히 취해 있었다.

 

“중경씨도 첫 사랑 있었죠?”

 

송림이 사랑으로 말머리를 잡아 입을 열었다.

 

“먼저 말하시면 저도 말 하겠습니다.”

 

중경이 되받아쳤다.

 

“흔한 첫 사랑이죠,

 

뭐. 고등학교 다닐 때 미술 선생님을 좋아했죠.

 

같이 놀러 다니기도 하고… 그 선생님이 제 첫 번째 남자이기도 하고….”

 

중경은 ‘첫번째 남자’라는 말에 술을 들이키다가 멈칫했다.

 

송림이 다리를 꼬고 앉았다.

 

소파가 폭신한 덕에 그녀의 치마 속이 보였다.

 

그녀는 원피스와 어울리는 자주색 팬티를 입고 있었다.

 

자신의 다리 사이를 훔쳐보는 중경의 눈을 송림이 빤히 바라보았다.

 

두 사람의 눈이 짧은 순간 부딪혔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두 사람은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서로에게 달려들었다.

 

두 사람은 입술이 뭉개지도록 격렬하게 입을 맞추었다.

 

중경의 손이 자연스럽게 송림의 치마를 들추었고 송림의 손은 중경의 바지 지퍼로 향했다.

 

한강 위에 뜬 달이 은은하게 스며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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