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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장 신라 10

오늘의 쉼터 2014. 11. 16. 22:07

제30장 신라 10 

 

 

 

꿈에 나타난 성충은 대체로 말없이 눈물만 흘렸다.

하지만 한 번은 생시처럼 또렷한 목소리로,

“아직 할 일이 남았으니 물러나지 말게. 자네라도 있어야지,

안 그럼 누구에게 사직을 맡길 것인가.”

하고 하룻밤에 무려 아홉 번이나 나타나 똑같은 말을 반복한 적도 있었다.

그런 흥수도 임금이 서자 41명을 좌평으로 삼고 식읍까지 내린 데는 더 이상 침묵할 수가 없었다.

“마마, 이제 신은 그만 물러나 고향 곰나루에서 아이들이나 가르칠까 하옵니다. 윤허해주사이다.”

하지만 그것은 흥수의 실수였다.

며칠만 사이를 두었다가 사직을 청했다면 임금은 흥수의 불만을 눈치채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서자 논의가 막 끝난 직후 흥수가 사의를 표하자 임금으로선 자연히

그 두 가지를 결부해 판단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의 처사에 불만이 있는 게로구나?”

임금은 안색이 굳어져서 반문했다.

“불만이 아니오라 좌평이 그토록 많아지면 신이 더 이상 할 일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언제는 네가 무슨 일을 해서 좌평이더냐?”

이미 심기가 뒤틀리기 시작한 의자가 눈을 살천스럽게 치뜨고 흥수를 모욕했다.

“그렇습니다. 그렇기에 드리는 말씀이옵니다.”

흥수 또한 화가 치밀어 임금이 빈정거리는 말을 정면으로 되받았다.

“저런 무엄한 것을 보았나?”

의자는 자리를 박차고 벌떡 일어났다.

“하면 지난 수십 년간 네가 아무것도 한 일이 없으니 받아갔던 녹봉을 모두 가져오라.

일은 하나도 하지 않고 녹봉만 축냈으니 너야말로 빈틈없는 도적놈이 아닌가?”

“신에게는 경사에 달랑 5칸짜리 집이 하나 있을 뿐이옵고,

곰나루에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낡은 초가가 있을 따름입니다.

전하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니 신이 가진 것을 모두 헌납하겠나이다.”

흥수가 조금도 굽히지 않자 의자는 더욱 분노했다.

“네가 가져간 녹봉이 얼마인데 그것으로 셈이 된단 말인가?

재물이 모자라면 목이라도 내어놓아라.”

“그렇게 하겠나이다.”

흥수도 미련 같은 것이 있을 리 만무했다.

사태는 점점 험악하게 치달았다.

“여봐라!”

격노한 의자가 목에 핏대를 세우며 소리쳤다.

“저 흥수란 놈을 끌어내어 당장 목을 치고 그 재산을 몰수하되

가솔들은 전부 노비로 삼아 흥수가 못 갚은 녹봉을 평생 갚도록 하라!”

편전 밖에 시립한 호위군사가 달려들기 전에 흥수는 스스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악에 받친 흥수의 행동은 임금을 더욱 진노하게 만들었다.

그가 군사들에게 끌려나가자 병관좌평 임자가 간언했다.

“마마, 흥수의 죄는 비록 죽어 마땅하오나 병법에 해박하고 용병에 정통한 재주로는

본조에 그를 따를 자가 없나이다.

목숨만은 살려두시는 것이 나라에 도움이 될까 합니다.”

임자는 병관좌평을 살면서 수시로 성충과 흥수의 도움을 받았다.

그런데 성충은 죽어 없고 흥수마저 죽게 생겼으니

병사(兵事)를 잘 헤아리지 못하던 그로선 돌연 눈앞이 캄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임자의 뒤를 이어 좌평 의직도 말했다.

“흥수에게 장공속죄할 기회를 주십시오.

이렇게 죽이기엔 실로 아까운 인물입니다.”

동료 좌평들에게 흥수는 맏형 같은 존재였다.

정작 그가 없어진다면 소임을 다하지 못할 좌평이 한둘이 아니었다.

의직의 뒤로도 충상(忠常)과 각가(覺伽), 정무(正武) 등의 좌평들이 일제히 바닥에

엎드려 목숨만은 살려줄 것을 간청하자 의자도 비로소 화를 삭이고 왕명을 고쳐 내렸다.

“흥수의 불경스러운 꼴을 눈으로 직접 본 대신들의 뜻이 그렇다면 짐은 언짢지만 대의를 좇겠노라.

흥수가 스스로 지은 죄를 깨달을 때까지 고마미지현(古馬彌知縣:장흥)에 부처하고

관할 장리로 하여금 의식을 보살펴주도록 하되 호의호식만은 금하도록 다짐을 박으라.

불경한 마음은 모두 잘 먹고 잘 입는 데서 나오는 것이다.

먹고 입을 것이 없어 고생을 해보면 누구나 성은의 따사로움을 뼈저리게 느끼지 않겠는가?”

이리하여 흥수는 생사의 경계에서 용케 살아나 귀양을 가게 되었다.

지적이나 성충과는 끝까지 다른 길을 걸어간 셈이었다.

흥수가 귀양을 떠난 그해 봄, 백제에서는 4년 만에 다시 큰 가뭄이 찾아들어

국토가 죄 적지(赤地)가 되었다. 도인들은 망국의 징후를 입에 담으며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고,

짐을 꾸려 등주나 왜로 떠나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아둔한 이들은 남의 재물을 훔쳐 사치를 일삼았고,

아예 산채를 꾸며 화적패로 나서는 이들도 생겨났다.

백성들은 셋만 모이면 임금을 흉보고 조정을 욕했다.

궁에는 이미 3천 궁녀가 있고, 임금은 주색에 빠져 정사를 돌보지 않는다더라.

왕비가 젊은 대신과 놀아났는데 임금이 이를 알고도 묵인해준다더라.

왕의 서자 40명이 식읍에서 가져가는 양식과 재물이면 나라 살림을 몇 번 살고도 남는다더라.

백성들은 마치 자신이 눈으로 직접 본 듯이 말에서 말을 물어내고 퍼뜨렸다.

흉흉한 민심이 만들어낸 조화였을까.

기미년(659년) 2월에는 많은 여우들이 궁중으로 들어갔는데

그 가운데 흰 여우 한 마리가 상좌평의 책상 위에 올라가 앉았다고 했다.

4월에는 태자궁의 암탉이 작은 참새와 교미했다는 말도 돌았다.

태자비의 난잡한 행실을 빗댄 추문일지도 몰랐다.

5월엔 도성 서남쪽 사비하(泗?河:금강) 강가에 큰 물고기가 나와서 죽었는데

그 길이가 세 길이나 되었고,

8월에는 한 여자의 시체가 생초진(生草津) 나루터에 떠올랐는데 길이가 무려 18척이라고 했다.

9월에 궁중의 괴목(槐木)이 마치 사람의 곡성처럼 울어댔고,

밤에는 궁성 남쪽 길에서 귀신의 곡하는 소리가 들려오기도 했다.

 
괴변은 끝도 없이 이어졌다.

이듬해인 경신년(660년) 2월엔 왕경의 우물이 핏빛으로 변했고,

서해 해변에선 작은 물고기 떼가 물 밖으로 나와 죽었는데 백성들이 다 먹어내지 못할 정도였다.

사비하 물빛 또한 핏빛과 같았다.

4월엔 두꺼비 수만 마리가 나무 위로 모여들었고, 왕경의 백성들이 아무 까닭도 없이

갑자기 놀라서 달아나는데 마치 잡으러 오는 사람이라도 있는 것 같았다.

그렇게 도망가다가 엎어져 죽는 사람이 1백 명이나 되었고,

재물을 잃은 자는 수도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5월엔 폭풍우가 미친 듯이 불어대고

천왕사(天王寺)와 도양사(道讓寺), 두 이름 있는 절 탑에 벼락이 떨어졌다.

또 백석사(白石寺) 강당에도 벼락이 떨어지고 공중에선 검은 구름이 마치

두 마리 용처럼 동서로 나뉘어 서로 싸우는 형세를 취하기도 했다.

6월, 왕흥사(王興寺)의 승려들은 거대한 배가 돛을 펄럭이며 큰 물길을 따라

절 안으로 들어오는 환영을 보고 크게 놀랐다.

들사슴인지 개인지 모를 이상한 짐승 한 마리가 사비하 서쪽 언덕에서

궁성의 왕실을 향해 맹렬하게 짖어대다가 홀연히 사라졌는데,

그 뒤로 왕경의 개들이 일제히 거리로 뛰쳐나와 혹은 짖고 혹은 울다가 헤어지곤 했다.

정체와 까닭을 알 길 없는 기변과 괴변은 민간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6월 어느 날에는 머리를 산발한 귀신 하나가 갑자기 궁중으로 뛰어들어와,

“백제는 망한다, 백제는 망한다.”

하고 크게 울부짖더니 곧 땅속으로 사라졌다.

의자왕이 괴이하게 여기고 신하들을 시켜 땅을 파보았더니

깊이가 3자쯤 되는 곳에서 거북이 한 마리가 나왔다.

사람들이 거북이를 꺼내어 자세히 살펴보니 등 껍질에 다음과 같은 글자가 적혀 있었다.

백제는 둥근 달이요 신라는 초승달이다
百濟同月輪 新羅如月新

의자는 곧 무당을 불러 자세한 뜻을 물었다. 불려온 무당은 정직한 사람이었다.

“백제가 월륜과 같다는 것은 이미 가득 찼다는 것이니 차면 기울게 마련이요,

신월과 같다 함은 아직 차지 않았다는 뜻이니 앞으로 점점 차게 됨을 의미하는 듯합니다.”

무당의 풀이가 끝나자 임금의 안색이 갑자기 벌겋게 달아올랐다.

그러잖아도 온갖 괴상한 소문에 마음이 심란하던 그였다.

“근년에 괴담이 나돌고 민심이 부쩍 흉흉한 까닭은 모두 저런 자들 때문이다! 여봐라,

저놈을 당장 끌고 가서 죽여버려라!”

의자는 첫번째 무당을 참형한 뒤 다른 사람을 불러오도록 지시했다.

두번째로 온 무당이 바른말을 할 리 없었다.

“달 바퀴는 둥근 것이니 둥글다는 것은 왕성하다는 뜻이옵고,

초승달은 쇠잔한 것이므로 소인이 보건대 우리나라는 점점 성해지고

신라는 점점 미약해진다는 뜻인가 합니다.”

그 말에 의자는 비로소 호쾌한 웃음을 터뜨렸다.

“아무렴. 여부가 있겠느냐? 글자는 바로 저렇게 푸는 것이다.”

한편 이럴 무렵, 신라왕 김춘추는 대강의 전쟁 준비를 끝마쳤다.

그는 우선 하슬라(何瑟羅:강릉) 땅이 말갈에 연접해 백성들이 편안하지 못하므로

도독을 두어 국경을 다시 진수(鎭守)하고 실직(悉直:삼척)을 북진(北鎭)으로

삼아 대대적으로 북쪽 국경을 정비했다.

백제를 칠 경우 있을지도 모를 고구려의 남침을 미리 막자는 계획이었다.

그런 다음 젊은 장수 진주를 일거에 병부령에 발탁하는 기묘한 용병술을 선보였다.

진주는 냉혹하고 무서운 검객이었다.

하지만 그는 벼슬이 아찬에 불과했고 진골 출신도 아니었다.

춘추는 바로 이 점을 노렸다.

자신이 진골로서 임금이 됐듯이 모든 관직에 파격을 적용한 것이었다.

그는 진주를 병부령에 발탁하며 신하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과인은 오직 그 사람이 지닌 재주와 기량만을 볼 뿐 골품을 보지 않을 것이오.

아찬 진주는 비록 6두품이지만 그가 습득한 비상한 검술은 이미 화랑과 군문에 정평이 났고,

전조에 김유신 장군을 따라다니며 세운 공도 만인의 찬탄과 칭송을 사기에 부족함이 없소.

이제 군사를 일으켜 백제를 토벌하려는 마당에 진주와 같이 용맹하고 젊은 장수가

병부를 맡아준다면 과인으로선 무엇을 더 근심하겠소?

천년 대업을 이루는 것은 과인의 소명이오.

저 간악하고 잔혹한 백제의 사직을 멸할 수만 있다면 범골, 무골의 장수에게라도

기꺼이 대임을 맡길 것이오.”

임금의 뜻에 반대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7백 년 역사를 돌아보건대 6두품으로 6부(六府)의 수장이 된 이도 진주가 처음이요,

아찬으로서 병부령에 오른 이도 진주말고는 없었다. 감격한 진주는 눈물을 흘리며

목숨을 바쳐 차질 없이 대임을 완수하리라 맹세하고 또 맹세했다.

아찬에 6두품이 병부령이 된 마당이니

그 아래 군문의 장수들인들 중언부언할 것이 없었다.

날쌔고 용감한 이는 비록 범골이나 심지어 노비라도 상급자가 되고,

겁이 많고 용렬한 이는 아무리 골품이 높아도 그 아래에 처했다.

만일 아래에 처한 자가 군문 밖의 위세로 상급자를 꾸짖거나 불복하는 것은

군율로 엄하게 다스려 기강을 잡으니 천한 백성일수록 기를 쓰고 무예를 익혀

군역에 나가려고 몸부림을 쳤다.

즉위 이후 6년에 걸쳐 거사 준비를 끝마친 춘추는 기미년(659년) 여름에 둘째아들

인문과 사신 김양도를 다시 장안으로 파견해 본격적인 거병 논의를 하라고 시켰다.

아울러 그는 이치에게 서신을 보내 옛날 선주와 맺은 맹약을 거론하는 한편

서로 피까지 찍은 맹약문을 동봉하여 간곡한 말로 구원병을 청했다.

그러는 사이에도 백제는 수시로 신라의 국경을 침범해 약탈을 일삼았으나

춘추는 의자가 걸어오는 작은 싸움에는 일절 응대하지 않았다.

그가 노리는 것은 단 한 번의 전쟁일 뿐이었다.

당나라로 떠난 인문과 양도에게서는 오랫동안 소식이 없었다.

10월이 되자 춘추는 편전에 나와서 멍하게 서북쪽 하늘을 바라보며 앉아 있을 때가 많았다.

구원병을 청하러 간 사신으로부터 회보가 없는 것을 근심하는 빛이 얼굴에 역력했다.

그러는 사이에 잠깐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대왕께서는 저희를 알아보시겠는지요?”

홀연히 춘추 앞에 나타난 두 사람이 허리를 굽혀 예를 표하며 물었다.

춘추가 보니 알 수 없는 얼굴들이었다.

“뉘시온지요?”

춘추가 공손히 반문하자 두 사람은 선대의 신하인 장춘(長春)과 파랑(罷郞)이라고 스스로를 밝혔다.

장춘과 파랑이라면 과거에 부여장이 늑노현과 살매현을 침공했을 때 백제 장수 은상의 손에

죽은 장수들로 그 가운데 파랑은 자신의 아버지 용춘공의 낭도이기도 했다.

춘추가 이름을 듣고 반가운 기색을 감추지 못하자 양인이 재차 국궁 재배한 뒤 입을 열었다.

“신 등은 비록 죽어 백골이 되었사오나 보국(報國)의 뜻만은 생전과 하나도 다를 바가 없나이다.

저희가 어제 당나라 장안에 들어가서 살펴보니

당주가 소정방 등에게 명하여 대군을 이끌고 내년 5월에 백제로 쳐들어온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지금 대왕께서 근심하시며 기다리는 것이 바로 그 일이 아닙니까?

하니 너무 조급해하지 마시고 내년을 기다리소서.”

말을 마친 두 사람은 나타날 때와 마찬가지로 순식간에 연기처럼 사라졌다.

춘추가 양팔을 허우적거리며 두 사람의 이름을 번갈아 부르다가 눈을 떠보니 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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