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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장 도살성 22

오늘의 쉼터 2014. 11. 15. 07:24

제29장 도살성 22 

 

 

 

“당치 않습니다!

만인의 뜻이 이미 왕재를 알아보고 한마음으로 공을 천거했는데 어찌하여 난데없이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이는 숙부께서 이 춘추를 희롱하시는 것입니다!

부디 말씀을 거두시고 보위에 오르십시오!”

알천에게 춘추는 7촌 조카뻘이었으니 두 사람 역시 혈족으로 맺어진 사이였다.

춘추가 정색하고 나서자 알천이 다시 입을 열었다.

“보위란 탐을 낸다고 오를 수 있는 자리도 아니요,

세를 과시해 취하고자 해서도 안 되는 것일세.

일국의 임금이 되는 것은 오로지 천명에 따라야 하고,

천명을 받들려면 천리를 순행하는 이치를 알아야 하는데,

이는 사리사욕을 비우고 고요히 생각하고 또 생각하면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는 것이라네.

사람들은 내가 상신으로 세운 공을 들어 나를 천거하지만 나의 적공(積功)은

조정에 가만히 앉아서 세운 공이고, 그대의 적공은 험하디험한 만리 뱃길을

수십 번씩 오가며 세운 공일세.

또한 내 공은 금방 빛이 드러나는 공이요,

그대의 공은 비록 하루아침에 드러나지는 않으나 불땐 구들장의 온기처럼 은근하고도 깊은 공일세.

게다가 내가 상신의 자리에 있었다고 해봐야 겨우 몇 해에 불과하지만

그대는 스무 살 청년 시절부터 일구월심 국사를 보필하고 왕업을 보좌하여

그 햇수만도 나의 몇 갑절에 달하니 이를 아는 내가 어찌 스스로 임금이 되겠다고 나설 것인가?

나라가 위급할 때마다 그대가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고 적선(敵船)과 풍랑을 헤치고

장안으로 달려가 당태종의 원조를 요청하지 않았던들 어찌 오늘과 같은 나라가 있을 것이며,

그 수십 번 노고 가운데 단 한 번이라도 일이 잘못되었던들 무슨 수로 사직을 보전할 수 있었겠나?

계림이 아직 망하지 않은 것은 절반 이상이 그대의 공일세.”

알천의 치사를 들으며 춘추는 잠시 회상에 잠겼다.

젊어서는 보위를 탐내어 무력한 임금과 사악한 중신들을 몰아내고 시급히 국사를 정비해

백제와 고구려를 토벌하려는 욕심으로 밤잠을 설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당나라가 서고 이세민이 형제를 죽이면서까지 권좌에 오르는 것을 가까운 거리에서 지켜본 뒤로

그런 욕심은 더욱 커졌다.

이세민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능히 자신도 할 수 있을 것 같았고,

번성하는 당조를 바라볼 때마다 부러움과 함께 신라를 구할 인물은 자신밖에 없다는

치기 어린 상념에 빠져든 적도 있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생각이 변했다.

그런 것은 모두 한때의 방장한 혈기가 빚어낸 공상과 과욕일 뿐이었다.

세상을 알고 국사의 어려움을 겪으면 겪을수록 임금 노릇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절감한 그였다.

자신보다 명석하고 학식이 높은 수많은 신하들이 나타나 온갖 재주를 동원하고 지략을 짜내어도

걸핏하면 역모가 일어나고 위급함에 처하는 것이 나랏일이었다.

특히 알천이나 김유신을 볼 때면 그런 느낌은 더욱 커졌다.

춘추는 40고개를 넘기면서 임금이 되려는 생각 따위는 깨끗이 단념했다.

그저 평생을 사직과 왕업을 보필하여 후세의 누군가가 양신의 반열에라도 올려주면

그것으로 만족하리라 여겼다.

사람이 자신의 본분을 안다는 것은 바로 그런 것이었다.

세상의 이치가 본래 그렇듯이 버리고 나면 얻고, 비우고 나면 비로소 차는 것인지도 몰랐다.

간절히 원하는 것은 원하는 그 순간에는 얻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원하고, 원하고, 또 원하다가 마침내 그 원하던 것과 결별하여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일 때가 오면,

그제야 별로 기쁘지도 감격적이지도 않은 덤덤한 감흥으로 거짓말처럼 수월하게 다가오는 것이

아니던가.

“받들 수 없습니다!”

춘추는 또 한 번 단호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천리의 순행까지는 가지 않더라도 인정의 도리로써 살피건대 숙부께서 보위에 오르고

조카가 그 아래에 처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춘추는 아직 나라를 짊어질 만한 힘이 없습니다.

상신께서는 제발 만인의 요청을 거절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위선이 아니라 춘추의 솔직한 마음이었다.

알천이 여러 모로 자신보다 낫다고 그는 믿었다.

춘추가 거듭 사양하자 알천은 자리를 같이한 다른 대신들을 향해 말했다.

“저와 춘추공을 비교하면 이렇습니다.

제가 임금이 되면 백성들이 잘 먹고 잘 입는 세상은 만들 수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당조를 움직여 서적과 북적을 멸하려면 반드시 춘추공이 보위에 올라야 합니다.

지금 가장 시급한 일이 무엇입니까?

호의호식보다 중한 것은 백제를 치고 고구려를 토벌하여 전란 없는 삼한을 만드는 일입니다.

저를 임금으로 뽑으면 1백 년쯤 뒤에나 좋은 세상을 기대할 수 있지만

춘추공이 보위에 오르면 머지않아 그런 날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저기 앉은 유신공과 저는 오래전부터 우리 당대에 기필코 병장기를 녹여 농기구를 만드는

평화로운 세월을 보자고 결의를 다져왔습니다.

대신들께서는 지금 이 자리가 단순히 계림의 왕을 뽑는 자리가 아니라는 점을 명심해주십시오.

제가 임금이 되면 신라왕이 될 뿐이지만 춘추공은 삼한을 아울러 일가(一家)로 만들 사람입니다.

저는 신라 사람의 지지를 받을 뿐이나 춘추공은 가야 사람의 지지까지도 함께 얻어낼 인물입니다.

신라인 가야인의 결심육력(結心戮力)을 도모해 국론을 광범하게 아우를 인물은 춘추공밖에 없습니다.

대신들께서 오늘 내릴 결정은 삼한의 장래를 좌우할 중대한 결정입니다.

춘추공이 신라의 임금이 되면 삼한의 오랜 숙원이 틀림없이 우리 당대에 이뤄질 수 있습니다.

이것이 곧 천명입니다.

부디 밝은 눈으로 삼한의 정세를 헤아려주십시오.”

 

처음엔 이구동성 알천을 천거했던 대신들도 대부분 침묵을 지키거나 눈을 감은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천이 혼자 고군분투하자 김유신이 나서서 거들었다.

“춘추공은 상신의 아름다운 뜻을 받아들이시오.

지나친 사양은 도리가 아니외다.”

김유신까지 춘추가 보위에 오를 것을 권하니 동석한 대신들도 한 사람씩 말을 보탰다.

 

“상신이나 춘추공이나 제왕으로선 모두 손색이 없는 분들이오.”

“상신의 뜻이 우정 그렇다면 춘추공이 받아들이는 게 도리인 듯합니다.”

“어느 분이 용좌에 오르시든 우리 계림에 서기가 비치는 건 틀림없지 싶습니다.

지난번까지만 해도 창칼을 들고 다투던 보위가 아닙니까?”

 

화백의 분위기가 춘추 쪽으로 기울자

춘추는 다시 한 번 정색하며 세번째로 사양했다.

 

“상신께선 지난번에도 대임을 양보하셨습니다.

이번엔 누가 뭐래도 등극하셔야 합니다.

다음에 또 기회가 온다면 그땐 이 춘추가 거절하지 않을 테니

제발 이번만은 알천 숙부께서 크게 마음을 잡수십시오.”

그러자 알천은 사뭇 근엄한 표정을 지으며 춘추를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이보시오, 춘추공!”

“네.”

“공은 내가 양보하는 뜻을 정녕코 모르시겠소?”

 

알천은 책망하듯 말을 이었다.

 

“지금 계림의 임금 노릇이 어디 호강을 하는 자리인 줄 아시오?

대임을 물려받으면 그날부터 먹고 자는 시간을 줄여가며 국사를 돌보고

백성들을 보살펴야 할뿐더러 궁극에는 나라 밖의 구적들과 목숨을 걸고 싸울 준비를 해야 합니다.

신라인, 가야인으로 나뉜 국론을 시급히 하나로 통일하는 건 무엇보다 중대한 급선무요.

전쟁을 치르려면 조세도 많이 거둬야 하고, 군량과 마초도 비축해야 하며,

역사(役事)를 일으켜 요지의 성곽들도 보수해야 하오.

또한 당을 설득시켜 원병을 일으켜야 하고, 군기에 맞춰 장수들을 보내야 하며,

정작 싸움이 일어나면 반드시 이긴다는 보장이 없으니

시운이 불우하면 우리가 망할 수도 있고, 적과 싸우다가 임금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일이오.

그런 위태롭고 험난한 자리에 나를 대신해 한 살이라도 더 젊은 공이 나가라는 것이오.”

알천의 목소리엔 조카를 대하는 집안 어른으로서의 위엄 같은 것이 서려 있었다.

거기까지 말한 알천은 비로소 목소리를 낮추고 온화한 안색으로 돌아와 몇 마디를 더 보탰다.

“나는 공이 젊어서부터 삼한을 병탄할 큰 뜻이 있는 줄 이미 잘 알고 있소.

이제 때를 얻었으니 그 뜻을 한번 활짝 펴보시라는 게요.

만인의 윗자리에서 제왕의 영광을 누리는 것은 그 다음 일이외다.

나 또한 공을 도와 마소의 도리를 다할 것이니 이제 그만 사양하고 대임을 받아들이시오.”

알천을 바라보던 춘추의 고개가 조금씩 아래로 꺾였다.

 

“……저 같은 견양지질(犬羊之質)로 그와 같은 대임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을지 두렵습니다.”

그것이 마지못해 대임을 수락하는 춘추의 첫마디였다.

“자, 이제 춘추공의 결심이 섰으니 대신들의 의견을 묻겠소.

반대하는 대신들이 있거든 말씀을 하시오.”

알천이 좌중을 둘러보며 물었다.

오랜 공론과 두 사람의 치열한 양보 끝에 내린 결정이었다.

반대하는 이가 있을 턱이 없었다.

삼한의 운명을 가르는 이날의 화백회의는 이찬 김춘추를 만장일치로 새 임금에 추대한 뒤 끝이 났다.

우지암에 따라온 예부의 관리들은 김춘추를 호위해 대궐로 돌아가 신왕의 즉위식 준비를 서둘렀고,

나이 많은 대신들은 수레를 타고 산을 내려갔다.

사람들이 다 떠나고 나자 김유신은 알천에게 다가가서 가만히 손을 붙잡았다.

“어려운 결정을 하셨습니다.”

“괘념치 마시게. 그대 마음이 곧 내 마음일세.”

알천이 웃으며 대답했다.

두 사람은 손을 붙잡은 채로 나란히 산을 내려왔다.

알천이 산을 내려오며 이렇게 말했다.

“돌아가신 용춘 형님이 지하에서 누구보다 기뻐할 게야.

그 형님이 스스로 진골이 되지 않았더라면 춘추는 진작에 임금이 되었을 사람일세.

만시지탄이지. 당태종이 살아서 천하를 호령할 때 춘추가 임금이 되었더라면

지금쯤 백제는 세상에 없는 나라가 됐을 텐데……

그러나 지금도 늦지 않았네.

될 사람이 되었으니 마음 쓸 일이 무언가?

나는 임금이 되려는 뜻은 추호도 없었던 사람이라네.”

과연 알천의 처신은 빛났다.

어떻게든 임금이 되려고 군사까지 동원했던 전대의 내란들을 돌아보면 더욱 그러했다.

그가 임금의 자리를 양보하고, 춘추가 세 번씩이나 이를 사양했다는 미담이 알려지자

신라의 백성들은 감동의 눈물을 흘렸고, 왕실과 조정의 권위는 일시에 되살아나 전국을 복종시켰다.

의롭고 아름다운 권력 앞에는 스스로 머리를 숙이는 게 백성이요 민심이었다.

김춘추가 임금이 되자 조정 안팎에선 사필귀정(事必歸正)을 말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하긴 춘추로선 실로 멀고 험한 길을 돌고 돌아온 셈이었다.

조부 진지 대왕이 왕가의 권력 다툼으로 폐위되지만 않았더라도

그 가계가 진골로 내려앉는 수모는 겪지 않았을 것이며,

성골의 신분을 유지했더라면 진덕 여왕의 시대는 없었을지도 몰랐다.

가계의 파란만장한 역경뿐 아니라 춘추 당대의 인생만 놓고도 그랬다.

젊었을 때 만난 어떤 도인이 춘추의 관상을 보고 물길 구만 리 산길 구만리를 지나야

존귀하게 될 상이라더니 과연 수만 리 고행 끝에 그 덕으로 임금이 되었으니

계림의 스물아홉 임금 가운데 진골 임금도 처음이지만 그토록 다리품을 팔아

임금이 된 경우도 춘추말고는 없었다.

성대한 즉위식을 마치고 보위에 오른 김춘추는 곧 아버지 용춘을 문흥 대왕(文興大王)으로,

어머니 천명 공주를 문정 태후(文貞太后)로 추봉(追封)하고 원자 법민을 병부령으로 삼은 뒤

전국 옥사에 갇힌 죄수들을 대사(大赦)했다.

편전에서 집무를 보기 시작한 춘추는 역대 어느 임금보다 의욕적으로 정사를 살폈다.

그는 우선 가야인을 차별한 관례를 뜯어고쳤고,

재주가 뛰어나도 골품에 얽매여 중책을 맡지 못했던 법령을 손질했다.

5월 한 달간 그가 이방부령(理方府令:법무장관) 양수(良首) 등에게 명해 상세히 살피고

수정한 종래의 율령이 무려 60여 조(條)에 달했다.

춘추는 어전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본래 우리나라 백성들은 성정이 맑고 의협심이 강해 한번 신명이 나면

태산도 하루아침에 옮겨놓을 만큼 불가사의한 힘을 발휘합니다.

대신들은 우리 백성들의 이같은 특성을 잘 헤아려 제도와 법률로써 백성들을

신명나게 만들어야 할 것이며, 각간에서부터 변방의 현령에 이르기까지

정사를 바로 살펴서 나라와 조정을 원망하는 이가 한 사람도 없게 해야 합니다.

나라는 과인과 대신들의 나라가 아니라 백성들의 나라요,

사직 또한 백성들을 지키기 위해 있는 것인데,

지금까지 우리 계림은 임금과 조정을 위해 백성들이 있고,

백성들이 노역을 팔고 피를 흘려 사직을 지켜왔습니다.

이것을 바꾸지 않는 한 신라가 강국이 되기는 어렵소.

오늘이라도 구적이 쳐들어오면 당장 창칼을 들고 달려나가 싸우는 것은 백성들이외다.

백성들의 힘에 의지하지 않고 어찌 하룬들 나라가 유지될 것이며,

백성들을 무시하고 번창하는 사직이란 있을 수 없소.

과인의 힘도 대신들의 녹봉도 모두가 백성들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오?

그러니 상신의 말씀처럼 과인과 대신들은 불철주야 꾀를 모으고 힘을 합쳐 어떻게든 백성들이

스스로 지킬 가치가 있다고 느끼는 나라를 만들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중대하고 시급한 일이 바로 그것이오.”

신왕 춘추가 생각하는 바른 정사의 개념은 그러했다.

백성들이 신명이 나야 조정도 신이 나고,

그래야 군사들도 힘이 나서 강군이 된다는 게 젊은 시절부터 외지를 떠돌며

저자의 밑바닥에서부터 만사를 체득하고 드디어는 임금의 지위에까지 오른

그의 이념이자 철학이었다.

 


그는 스스로도 밤낮 구분 없이 정무를 살폈지만 일을 하다가 궁금한 것이 있으면

한밤중에도 대신들을 불러 물어대니 대부분의 중신들이 퇴청해서 집에 돌아갔다가

다시 입궐하는 경우를 두루 다 한번씩 경험했다.

이에 하루는 이방부령 양수가 안을 내어 대궐 한편에 따로 잠자리를 마련해

파진찬 이상의 중신들은 아예 퇴궐하지 않았는데,

나중에 임금이 이 사실을 알고는 별궁 한 채를 개방하여 자신의 이부자리를 갖다주고

밤이 깊어지면 궁중 찬모를 시켜 야참까지 만들어 들이니 시초만 해도 잠을 자던 중신들이

언제부턴가는 일을 하느라 밤새 별궁의 등촉을 끄지 않았다.

불이 훤한 별궁에 임금이 걸핏하면 찾아와 신하들과 토론하며 함께 야참도 먹고,

또 일이 고되면 소찬에 술을 내어 격려하며 격의 없이 어울려 한담을 나누기도 했다.

일이야 열심히 하는 것이 좋지만 밤 지새는 날이 부쩍 많으니

제일 걱정이 되는 사람은 왕비가 된 문희, 문명 왕후(文明王后)였다.

“임금이 괜히 되었나봐요.”

하루는 밤새 신하들과 정사를 살피고 새벽녘에야 침전으로 든 춘추를 보고

문희가 생전 안하던 투정을 부렸다.

“그게 무슨 말씀이오? 임금이 괜히 되었다니?”

“전에 신첩의 작은 오라버니 흠순이 이 세상에 제일 어려운 일이 옆구리에 장검 차고

뒷간 가는 일이랬는데, 제가 겪어보니 그보다 더 못할 짓이 임금 노릇입니다.

그렇게 밤낮 없이 사시다가 덜컥 병이라도 얻으면 어쩌려고 그러세요?

쉰이 넘었으니 적은 나이도 아닙니다.

마냥 젊으실 때 같은 줄 아십니까?”

그제야 문희의 걱정하는 뜻을 알아차린 춘추가 껄껄거리고 웃었다.

“걱정 마오. 내야 남들보다 두 갑절, 세 갑절은 먹는 사람이니

당연히 일도 두세 갑절은 해야 하지 않소?

억지로 하는 일에 병이 생기지 하고 싶어하는 일은 병도 나지 않는 법이오.

더군다나 옆구리에 장검 차고 뒷간 가는 일엔 댈 바가 아닙니다.”

걱정하는 이는 문희만이 아니었다.

왕자들도 아버지만 눈에 띄면 수시로 쉬라는 충언을 아끼지 않았고,

조정 대신 가운데도 임금의 건강을 염려하는 이들이 갈수록 늘어났다.

그래도 임금은 막무가내였다.

가을이 되자 춘추는 세법(稅法)을 손질하느라 조부(租府) 대신들과 늦게까지 어울렸다.

그러던 어느 날 3경이 지난 시각에 별궁을 나서다가 돌연 비틀거리며 쓰러지니

내관과 신하들이 일제히 달려들어 왕을 부축해 별궁에 뉘어 놓고

황급히 어의를 데리러 사람을 보냈다.

그런데 어의가 당도하기도 전에 왕의 정신이 먼저 돌아와서,

“내가 갑자기 졸음이 와서 그리 됐으니 경들은 너무 염려하지 마시오.

한숨 자고 일어나면 말짱해질 것이오.”

하고는 제 기운으로 일어나 성큼성큼 침전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이튿날 아침이 되어도 늦게까지 기침하지 않으니

밤새 침전 앞에 대기하던 어의가 임금의 맥을 짚어보고서,

“과로하지 마십시오.

특별한 질환은 없사오나 옥체의 기운이 많이 허하나이다.”

하고는 곧 탕제를 지어 대령했다.

조금 뒤에 왕의 장남 법민이 직접 어의가 지어 올린 약을 달여 들고 와서,

 

“며칠만 푹 쉬십시오. 아바마마께서는 너무 무리를 하셨나이다.”

 

하니 춘추가 사방을 둘러본 뒤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갈 길이 멀어 쉴 틈이 없다.

너는 대야성에서 죽은 네 누이의 일을 벌써 잊었느냐?

내정을 바로잡아 총화를 이룬 뒤엔 군사를 길러 반드시 백제의 사직을 땅에 묻을 것이다.

나는 요즘도 고타소의 꿈을 자주 꾼다.

그 일을 마치지 않고는 촌각도 쉴 수가 없다.”

하고 처음으로 마음속의 깊은 소회를 털어놓았다.

 

이듬해인 을묘년(655년) 정월에 상대등 알천이 스스로 사직을 청했다.

춘추에게 임금 자리를 양보한 알천은 각간 벼슬로 승차해 여전히 상신의 일을 맡아보았는데,

춘추가 알천을 예우하며 그 앞에서는 시종 옷깃을 여미고 몸가짐조차 함부로 하지 않으니

알천이 갈수록 임금에게 부담을 주는 것 같아 신병을 핑계로 물러났다.

춘추가 처음에는 안색이 백변하여,

“상신께서는 우지암의 약조를 저버리지 마십시오.

과인의 식견과 경륜은 아직 상신께 미치지 못합니다.

부디 뜻을 거두고 중신들을 이끌어주십시오.”

 

옷자락을 붙잡으며 만류했으나 알천이 고집을 꺾지 않고 대답하기를,

 

“대왕께서 이미 만사에 형통하여 하루가 다르게 정사가 밝아지고 있으니

신과 같은 것이 더 조정에 남아 있을 까닭이 없나이다.

더구나 신은 개와 양의 자질로 오랫동안 과분한 성총을 입어 정신이 쇠락하고

몸에 무리가 많았으므로 지금 물러나 쉬지 않으면 오래 살기 어렵습니다.

병들고 지친 몸을 다스려 다시 원기를 회복하면 대왕이 찾으실 때 언제라도 달려와

견마의 도리를 다하겠나이다. 윤허하여주십시오.”

 

하고 여러 차례 간청하였다.

반나절이나 알천을 설득하던 춘추가 신병을 다스린 뒤에는 반드시 출각(出脚)할 것을

누차 확인한 연후에 마지못해 사직을 허락했다.

알천에 이어 상대등으로 삼은 이는 이찬 금강이었다.

알천이 사직을 청해 물러나자 집사중시 죽지도 덩달아 사직을 청했다.

죽만랑 죽지는 젊어서 한때 춘추와 얼굴을 붉히며 언쟁한 것이 줄곧 마음에 걸렸다.

그 뒤로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죽지는 춘추를 마주칠 때마다 스스로 서먹하고 데면데면해져서

버성긴 사이로 지내왔는데, 자신에게 기밀사무를 맡긴 알천마저 물러나자

눈치가 보이고 심기가 영 편치 못했다.

알천에 이어 죽지마저 돌연 사직을 청하자 옛일을 까맣게 잊고 있던 춘추는 버럭 화를 냈다.

“지금은 만조가 합심하여 제도를 정비하고 백성들의 단합을 도모할 때다!

죽만랑은 어찌 까닭 없는 사직으로 대계(大計)를 망치려 하는가?

나는 그대가 믿을 만한 충신이요 양신인 줄 알았더니 이제 보니 형편없는 위인이 아닌가?

여러 말 하지 말라.

다시 한번 그따위 소리를 입에 담는다면 그땐 용서치 않으리라!”

만일 춘추가 옛일을 조금이라도 염두에 두었다면 그토록 가혹하게 꾸짖지는 않았을 것이었다.

그러나 이를 받아들이는 죽지로선 자신의 곡해를 더욱 확신하게 되었다.

그런 처지로는 임금을 조석으로 면대해야 할 중시 자리가 빈틈없는 가시방석이 아닐 수 없었다.

“하오면 대왕 전하, 신을 외주로 보내주십시오.

중시의 책무는 신의 천성에 맞지 않습니다.

신은 창칼을 들고 군사를 부리는 것이 타고난 천직입니다.

통촉해주사이다!”

 

제아무리 만인이 따르는 성인군자라도 모든 사람과 상득(相得)할 수는 없는 법인가 보았다.

한동안의 설전 끝에 춘추는 결국 죽지를 일선주 군주로 보내고 그 자리에 김유신을 따라다니며

공을 세운 파진찬 문충을 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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