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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장 여제(麗濟)동맹 8

오늘의 쉼터 2014. 10. 31. 16:44

제25장 여제(麗濟)동맹 8

 

 

 

신라와 고구려의 공수 동맹이 실패로 돌아가자

이 소식은 고구려에서 활동하던 첩자들을 통해 곧 사비성 의자왕의 귀에 이르렀다.

의자왕은 박수를 치며 좋아했다.

“고구려는 예로부터 우리와 뿌리가 같고 부여씨는 본래 고씨에서 나왔다.

우리가 사직의 원조로 귀히 모시는 동명묘(東明廟:동명성왕 고주몽의 위패를 모신 사당)의 주인은

 바로 고구려의 시조 대왕이다.

근본도 알 길 없는 동쪽 변방의 오랑캐들이 감히 어디를 찾아가 동맹을 논하고 청병을 한단 말인가?

하하, 그것 참 고소하다!”

그는 김춘추가 죽을 고생을 하며 객관에 갇혀 지내다가 간신히 몸을 빼내 도망갔다는 말에

더욱 통쾌한 듯 웃음소리를 높였다.

“불쌍하도다. 당나라로, 고구려로 고의춤에서 워낭소리가 나도록 뛰어다니는 꼴이라니!

김춘추는 다리가 열이라도 모자랄 판이구나.”

의자왕의 관심은 김춘추에서 다시 연개소문으로 옮아갔다.

“과인은 임금을 시해하고 중신들을 대거 참수한 연개소문이 끔찍한 자인 줄만 알았더니

이번에 김춘추를 욕보인 것을 보니 제법 근본을 알고 주관이 뚜렷한 자인 듯하오.

 전에 듣자니 우리 상좌평과 교분이 두텁다고 하던데 차제에 상좌평이 예맥으로 가서

신라가 실패한 동맹을 우리가 맺어보면 어떠하오?”

그러자 상좌평 성충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대답했다.

“신이 고구려로 가서 동맹을 맺는 일은 어렵지 않으나 만일 동맹을 맺고 나면 당이 가만있을지

의문입니다.

그러잖아도 신라는 기회만 있으면 당으로 쪼르르 달려가서 시시콜콜 고자질을 하는 것이

마치 어린아이가 보채듯이 하였는데, 우리와 고구려가 동맹을 맺는다면 당주는

더욱 우리를 고깝게 여길 게 뻔합니다.

우리가 고구려와 동맹을 맺어 얻을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얻는 것은 없고 잃는 것이 크다면 굳이 동맹을 맺을 이유가 있겠는지요?

하물며 위협을 느낀 신라가 당과 결탁이라도 한다면

이는 화를 자초하는 위험한 일로 번지기 십상입니다.”

성충의 말에 의자왕은 불쾌한 기색을 드러냈다.

“가만 보니 공은 사사건건 내 말에 딴죽을 걸고 나오는구나.

신라가 실패한 일을 우리가 성공하면 이는 밖으로 외교의 위엄을 드러내는 일이며,

안으로 국세의 창성함을 알려 백성들에게 자부심을 갖게 하는 일이다.

 어찌 얻는 것이 없단 말인가?

또한 당이 비록 강국이라고 하나 고구려 역시 수나라를 쓰러뜨린 북방의 맹국이다.

우리와 고구려가 동맹을 맺으면 제아무리 당이라도 우리를 얕잡아보지 못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더욱이 신라 따위가 바다 건너 당과 결탁을 해본들 그것이 우리에게 무슨 위협이 될 것인가?”

그리고 왕은 성충을 비웃듯이 말했다.

“이제 보니 그대는 김춘추가 실패했다는 말을 듣고 겁이 난 게로구나.

겁이 난다면 어찌 국경을 넘겠는가?

나 또한 겁쟁이 상좌평을 고구려에 보내 나라 꼴을 우습게 만들고 싶지 않다.”

의자는 한껏 성충을 모욕한 뒤 장군 의직을 바라보았다.

“그대는 과인의 명을 받들어 평양을 다녀오겠는가?”

왕이 좀 전과는 달리 부드러운 어조로 묻자 의직은 쾌히 머리를 숙여 대답했다.

“신이 어찌 지엄한 왕명을 거역하오리까? 곧 채비를 차려 떠나겠나이다.”

의직의 씩씩한 대답을 듣고 왕은 다시 기분이 좋아졌다.

“연개소문은 이제 막 정변을 일으켜 경황이 없을 것이므로 과인이 여러 가지 선물을 준비해

그의 환심을 산다면 크게 낭패 보는 일은 없을 것이다.

우리는 신라와는 달리 청병을 할 일도 없고, 다만 서로 사정이 어려울 때

군사를 내어 돕기로 약정만 해두면 된다.

동맹이란 화급을 다투는 전시에는 맺기 어려워도 평시에 맺기는 쉬운 법이니

의직은 과히 걱정하지 말라.

김춘추와 같은 꼴은 당하지 않도록 알아서 준비를 해주리라.”

성충과 뜻이 같았던 흥수와 지적, 상영 같은 이들은 걱정이 되어 임금을 만류하고 싶었으나

감히 나서지 못했다.

이때 백제의 사정은 과연 태평성세였다.

물자는 넉넉하고 살림살이는 풍요로웠으며 곡식과 과일이 흘러 넘치고

봄에도 끼니를 걱정하는 사람이 없었다.

항만과 포구에는 사해를 오가는 만국의 상선들이 줄을 섰고,

열리는 시장마다 팔방의 특산품을 사려는 사람들이 장사진을 쳤다.

부녀자들은 만리 밖에서 나는 베를 사다 옷을 지어 입었으며,

보석과 노리개가 불티 나게 팔리고 치장이 점점 화려해졌다.

고을마다 술 빚는 냄새가 진동하고, 풍류와 기예가 민속을 파고들며,

남녀가 어울려 밤을 새워 놀아도 아무도 탓하는 사람이 없었다.

백성들은 사람이 죽으면 이승의 정토(淨土)를 버린 것을 슬퍼하며 울었다.

산곡간에 웅장하고 미려한 대찰이 잇달아 들어서고 아름다운 불상과 높은 탑이 민심을 사로잡았다.

백성들은 왕이 곧 부처요,

이승이야말로 불국 정토라고 생각했다.

선왕 부여장이 그토록 열망하던 왕즉불(王則佛) 사상이 그 아들 의자왕 세대에 이르러 만개한 셈이었다.

만월(滿月)이라고들 했다.

이보다 더 넉넉하고 풍요로울 수 없으니 꽉 찬 만월에 비유하는 것도 틀린 말은 아니었다.

젊었을 때 혹독한 가난과 끔찍한 전란을 경험했던 노인들은 더러 세상을 걱정하고

자식들을 나무라며 지나친 태평세를 경계하기도 했지만 젊은 사람들은

대부분 이를 옛사람의 공연한 잔소리로 여겼다.

그도 그럴 것이 춘궁기에 허기를 못 이겨 사람을 잡아먹기도 했던 노인들의 눈에 밥을 버리는

 며느리와 곡식을 팔아 노리개를 사는 딸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의자왕이 전국에 조명을 내려 향읍의 특산물을 구하는 방을 써 붙이자

각방에서 싣고 온 물자가 수레로 1천 대 분량이나 되었다.

왕은 한 달간이나 방물을 모았다가 그 가운데 진귀한 것들만을 추려 관선에 실었는데

배가 기울 정도였다.

장군 의직이 그 배를 타고 고구려로 들어가서 동맹하기를 청하자 연개소문은 크게 기뻐했다.

도무지 손해볼 것이 없는 제의였다.

게다가 김춘추가 거짓말로 몸을 빼내어 달아난 뒤로 늘 이를 께름칙하게 여겼던 연개소문은

백제의 동맹 제의가 더욱 반가웠다.

보장왕과 연개소문은 의직 일행을 맞이하고 말하기를,

“일전에 신라가 와서 10만 군사를 청하며 동맹할 것을 제안했지만

우리가 단호히 거절한 것은 귀국과 우리가 근본이 같고, 한시조를 섬기는 형제국이기 때문이오.

그런데 이제 서남쪽의 형제국이 와서 동맹을 말하니 어찌 이를 거절할 수 있겠소?

마땅히 합의문을 짓고 하늘과 신께 맹세하여 만천하에 혈맹의 위용을 과시합시다!”

연개소문은 의직 일행을 융숭히 대접한 뒤 합의문을 지어 서명하고 함께 시조묘를 찾아가 절하며

짐승의 피를 이마에 발라 동맹의 결의를 다졌다.

이 소식은 다시 신라에 전해졌다.

백제 하나도 상대하기 벅찼던 신라는 이제 북쪽의 고구려까지 가세해 그야말로 사면초가 신세였다.

여주는 황급히 군신들을 불러 대책을 논의했다.

하지만 특별한 대책이 있을 리 없었다.

방법은 단 하나, 당나라에 가서 구원을 요청하는 것뿐이었다.

조정 공론도 이번엔 쉽게 하나로 모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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