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지/풍우연귀래

48. 生과 死

오늘의 쉼터 2014. 10. 29. 02:42

48. 生과 死

 

 

주약란을 안고 들어간 지광대사의 뒤를 따라 조소접이 안으로 들어가고 문은 다시 닫혔다.
이때, 집안 마당 가운데에 주저 앉은 등인대사와 양몽환을 내려다보던 도옥은 무엇이 못마땅한지

잔뜩 얼굴을 찌푸리며 양몽환을 불렀다.
[양형! 이렇게 기다리라고 해서 그렇게 주저 앉아 기다리고만 있을 거요?]

<이 자가 또 무슨 꿍꿍이 속으로 그럼 자기가 들어가서 주소저의 치료를 방해하겠단 말인가?

안되지...... 기필코 막아야지 ...>

하고 결심한 양몽환은 약간 긴장하며 엉거주춤 몸을 일으켰다.
[그럼 들어가겠단 말이오? 조소저가 들어갔는데 또 들어가 무얼 한단 말이오?]
[그러나 이 도옥은 여기서 기다리고 있을 수는 없소. 누가 막더라도 들어가야겠소.]
하고는 즉시 몸을 돌려 방문을 향하는 순간!

암암리에 진기를 돋우었던 양몽환은 번개같이 몸을 날리며 도옥의 앞을 가로막았다.
[도형! 왜 들어가겠다는 거요?]
그러자 도옥은 운기하며 싸늘한 표정으로 돌변하는 것이었다.
[양형! 앞을 막지 마시오. 지광대사가 겁나서 못들어가는 양형은 이 도옥의 상대가 못되오.]
하고 말을 마치자마자 양몽환의 가슴을 후려 갈기고 말았다.

그러나 이미 최악의 사태를 예상한 양몽환은 옆으로 비켜서면서 진기를 돋우었던 주먹을

휘둘러 갈겨오는 도옥의 일격을 맞받아 쳤다.
귀원비급을 터득했기 때문에 한 수 위라고 생각되는 도옥이 양몽환과 맞붙은 지금

막상막하의 실력으로 서로 일장씩 교환하고 똑같이 네걸음을 뒤로 물러서는 것이었다.
그러나 며칠 동안을 기독에 중독되어 있다가 바로 한시간 전에야 해독된 도옥으로서는

양몽환과의 싸움이 결코 유리할리 없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도옥 자기의 앞길을 이처럼 강경하게 막을줄 몰랐던 양몽환의 행동에

예전의 내공만 생각하고 선수로 공격을 퍼부었지만 도저히 승산이 없는 싸움이었다.
더구나 지금 교환한 일격이 도옥에게는 너무나 큰 충격이었다.

<......음......지금 이 도옥은 아직 내공이 회복되지 않았다. 조금 더 기다려서......>

행동하리라 결심을 변경하고는 씨익 웃으며 운집했던 진기를 풀었다.
[양형! 생각해 보시오. 비록 지광대사가 주소저를 치료하겠다고 방으로 데리고 들어갔지만

혹시 다른 마음을 품고 죽일지도 모르는 일 아니오?

그렇다면 우리가 여기서 주소저의 죽음을 기다릴 것이 아니라 먼저 지광대사를 죽여야 하지 않겠소?]

<이 간사한 도옥! 아무리 계략을 쓴대도 너에게 속을 양몽환이 아니다......>

하며 양몽환은 차갑게 냉소를 터뜨렸다.
[그따위 간교한 말에 속을 이 양몽환이 아니오.

더 고집을 부린다면 단단히 쓴 맛을 보여주겠소.]
하는 양몽환의 부릅뜬 눈에서는 살기가? 등등한 것이 지금까지 보아오던 양몽환이 아님을

즉시 눈치챌 수 있었다.

그런 지금 분통을 터뜨리고 달려들던 자기가 불리하다는 것도 아울러 알 수 있었다.

<......음......두고 보자. 이 도옥이 몸만 회복된다면 너는 그날로 마지막이다......>

어금니를 딱딱 깨물면서 도옥은 느릿하게 말했다.
[양형, 지금 우리들은 같은 역경에 처해 있는 몸들이오.

이 도옥을 못마땅히 여긴다면 이후 이곳을 빠져나가서 싸우기로 합시다.]
[좋소. 그러나 지금은 이 양모인이 하라는대로 하시오. 그렇지 않으면 신상이 좋지 않을 거요.]
맞는 말이었다.

중독이 완전히 회복되었다면 모르지만 겨우 한시간의 조식으로서 양몽환과 대결한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렇지. 참아볼 수밖에 ......>

마음을 느긋하게 잡은 도옥은 당장 밸이 뒤집히도록 아니꼬웠지만 별도리가 없었다.
[도대체 어떻게 하라는 거요?]
[가볍게 입을 놀리거나 방 안으로 들어갈? 생각은 하지 마시오.

혹시 도형이 무공을? 회복해서 이 양모인을 제압할 수 있다면 별문제지만

그렇지 못한 이상 조용히 앉아 있는 것이 좋을 거요.]
[헛......허......그렇다면 이 도옥은 별 수 없이 양형의 부하가 되는 셈이군...... 할 수 없지......]
하고는 무안한 것을 얼버무리려는 듯 소리없이 웃기만 했다.
얼마를 그렇게 웃기만 하던 도옥은 서서히 웃음을 거두며 그때까지 노려보고 있는 양몽환에게

두어걸음 다가갔다.
[양형, 잘 생각해 보시오. 비록 지광대사가 조소저를 데리고 들어갔다 해도

그것은 일시적으로 우리들의 눈을 속이는 것이오.

조소저를 해치고 나면 지광대사가 주소저에게 무슨 짓을 할는지 모르는 일이 아니겠소?
더구나 천축국의 승려들을 믿고 여기서 기다리고 있기만 한다면 그것도 우스운 일이 아니오?

그래도 양형은 기다리고만 있겠소?]
옳은 말이었다. 언제부터 지광대사를 안다고 그의 말을 믿는단 말인가?
도옥의 말대로 조소접을 해치우고 주약란을 마음대로 주무를지도 모르는데

그런 지광대사의 말을 믿기만 하는 양몽환 자신이 어리석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무공이 강한 조소접이 그렇게 쉽게 지광대사의 일격에

쓰러질리도 만무하다고 생각했다.
[그건 지나친 염려요. 사태가 위급하면 조소저가 우리를 부를 것이오.]
하는 순간, 방문이 소리없이 열리며 조소접이 나타났다.

그리고는 손짓해서 부르는 것이었다.

그러자 양몽환이 달려가고 그 뒤를 도옥이 급히 따랐다.
그러나 사태가 위급해서 부른 것이 아니라 방에 들어와서 함께 보라는 것이었다.
조소접의 뒤를 따라 방으로 들어간 양몽환과 도옥은 숨을 죽이고 조소접 옆에 조용히 붙어 섰다.
이때, 주약란은 나무로 만든 침대 위에 반듯이 누워 있고 그녀의 가슴을 짚고 있는 지광대사도 보였다.

그것은 상상하지도 못한 해괴한 짓이었다.

가사 상태에 빠진 주약란의 가슴을 어루만지듯 짚고 있는 지광대사를 발견한 도옥은

옆에 서 있는 양몽환을 싸늘히 노려보았다.
[양형! 이래도 이 도옥의 말이 틀렸단 말이오? 보시오, 지금 저 꼴을!]
양몽환 역시 얼굴이 붉어질 형편이었다.

도옥의 말이 맞는 것같았다.
그러자 조소접이 먼저 눈썹을 치켜올리며 차갑게 소리쳤다.
[지광대사! 그게 무슨 짓이에요? 처녀의 몸을!]
그러나 지광대사는 가볍게 웃을 뿐 가슴에서 손을 떼지는 않았다.
[어서 손을 비켜요!]
다시 소리치는 조소접을 보고서야 천천히 주약란의 가슴에서부터 손을 떼는 지광대사였다.

그리고 하는 말은 의외였다.
[소승이 세 분을 부른 것은 한가지 의논할 것이 있기 때문이오.]
[무엇을 의논하잔 말이에요? 어서 약속대로 언니의 상처를 치료하세요.]
[그건 염려마시오. 지금 주소저의 상처는 거의 치료해 놓았소.

그러나 주소저를 치료하려면 며칠의 시일이 필요하오.

그래야만 생명을 구할 수 있단 말이오.

그런데 불행히도 천축국에서 소승을 빨리 돌아오라는 명령이 왔습니다.

명령이라 가지 않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주소저를 이곳에 남겨둔 채

치료도 마저 하지 못하고 갈 수도 없는 일이 아니겠소?]
그야말로 청천벽력같은 말을 하는 것이었다.

지광대사는 치료를 마저 다하지 못하고 돌아갈 일이 생겼으니
주약란을 죽이기 싫으면 함께 천축국으로 보내라는 암시였다.
그 소리에 화들짝 놀란 조소접은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그럼, 언니를 데리고 가겠단 말인가요?]
[그렇소. 그래야만 마저 치료를 할 수 있소.

그렇지 않으면 애석하게도 주소저는 목숨을 잃게 되오.]
그러자 조소접보다 먼저 양몽환이 주먹에 진기를 운집시키며 한걸음 나섰다.
[여보시오. 대사, 그런 법이 어디 있소?

애초에 약속은 당신이 소생하는대로 주소저의 상처를 치료하겠다고 하지 않았소?

그런데 지금 구실을 붙여서 천축국으로 데려갈 흉계를 쓴단 말이오?]
그러자 지광대사는 가볍게 탄식했다.
[옳은 말이오. 소승도 본래 언약을 지키려 하였소.

그러나 속히 돌아오라는 명령이 내린 이상 소승도 도리가 없소이다.]
[도대체 왜 돌아오라는 거요?]
[자세히는 모르겠소만,

소승이 데리고 온 천축국의 고수들이 이곳 중원 땅의 간악한 자들에게 거의 피살되었소.

그런데 만일 소승이 여기서 지체한다면 남은 고수들도 피살될까 염려해서이오.]
하며 사실 너희들이 내 부하들을 많이 죽이지 않았느냐는 듯이 휘둘러 보는 것이었다.
그러자 도옥이 가슴을 탁 펴며 차갑게 소리쳤다.
[그런건 우리가 알 바 아니오.

그러나 당신이 이곳을 빠져나간다 해도 무사히 빠져나가지는 못할 것이오.]
[그런 위협은 두렵지 않소.

더구나 지금 소승의 손에는 주소저가 인질로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시오.

주소저의 생명을 아낀다면 망령된 행동은 삼가하는 것이 좋을 것이오.]
[흥! 마찬가지요.

당신도 생명을 아까워 한다면 망령된 행동을 안하는 것이 좋을 것이오.

이 도옥이 경고하는 바요.]
[흐......흐......제법이오.

지금 여기 있는 세 분이 중원 무술계의 대표적인 인물이라는 것을 모르는 바 아니오.
그러한 당신들과 이 소승이 겨루지 않으면 어느 누가 상대하겠소?]
[그러면 기어이 싸우겠다는 거요?]
[사태가 그렇다면!]
만만치 않게 나오는 지광대사의 당당한 태도다.

그러나 주약란을 남겨두고 떠나겠다면 굳이 싸울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조소접이었다.
[란이 언니만 두고 가겠다면 고이 보내드릴 수도 있어요.]
하며 조소접이 주춤 누그러지자

지광대사의 얼굴빛이 갑자기 달라지는 것이었다.
[그래서 세 분을 부른 것이오.

이 소승은 주소저를 데리고 가야겠고 여러분들은 당연히 반대할 것이고,

그렇지 않소?)
[물론이죠. 더 말할 것 없어요.]
[하여튼 담판이나 해봅시다.]
[무슨 담판을 하자는 거요?]
역시 도옥이 차갑게 외치는 소리였다.
[주소저와 소승 그리고 세 분과의 관계를 의논하자는 것이지요.]
[흥! 주소저의 생명을 핑계로 우리들을 위협하겠다 그거요?]
[천만에, 그런 것은 절대 아니오.]
[그럼, 뭐요?]
[소승이 주소저를 데리고 가도 간섭하지 말라는 것이오.]
[뭐라고요? 지금까지 우리들이 한 말을 듣지 못했소? 목숨이 아깝지 않으면 데리고 가보시오.]
[좋소. 뜻이 그렇다면 이 소승도 양보할 수 없소.]
점점 분위기가 살벌해져갔다.
[기어이 싸우겠다면 우리도 얼마든지 응하겠소.]
[승부로 결론을 짓자는 것이면 이 소승이 먼저 할 말이 있소이다.]
[속히 하시오.]
[싸우는 것은 좋지만 어떻게 싸우느냐 하는 것이오.

우선 세 분중에서 어느 한 분만이 소승과 싸워 결판을 낼 것인지,

아니면 세분이 일제히 상대할 것인지 결정하시오.]
[당신이 말해 보시오.]
[소승은 세 분 중에서 어느 한 분과 승부를 겨루고 싶소.

그래서 소승이 패한다면 여러분들 마음대로 해도 좋소.]
하는 것이었다.
지광대사의 말을 듣고 있는 도옥과 양몽환 그리고 조소접도

다같이 지광대사가 제의하는 결투방법이 좋을 것같았다.
그래도 명색이 중원 무림계의 대표급인데 천축국의 승려 하나를 상대로 세 명이

일제히 달려든다는 것은 위신에 관한 문제였다.
그래서 남달리 자부심이 강한 도옥은 지광대사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좋소. 우리들 중에서 한 사람만 선택해서 겨루는 것에 찬성이오.]
그러자 지광대사는 잠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일동을 휘둘러 보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러나 그것이 나쁘다면 여러분들이 일제히 달려들어 번갈아 가며 상대해도 좋소.]
하고 여유있게 자신의 웅후한 무공을 과시라도 하려는 듯 번쩍 고개를 치켜드는 것이었다.
[흥! 그러면 당신이 불리할 것이오.

그러나 우리들은 그따위 비겁한 싸움은 하지? 않겠소.

당신의 무공이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지만 우리들은 중원 무술계를 대표하는 무술인들이오.]
그러나 지광대사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자신에 넘치는 표정이었다.
[소승이 당신들을 무시하는 것같아서 안되었소만 세 분이 일시에 달려들어도
겁낼 소승은 아니오.

 더구나 소승이 지니고 있는 기독(奇毒)은 한 번 먹기만 하면 과거를 모두 잊어버리고

정신이 혼미해지는 신약이어서 여러분들을 없애는 것은 순식간이오.]
[흥! 그따위 약을 두려워 해서 우리들이 일시에 달려들지 못한다는 것은 아니오.

우리 중원 땅에는 일대 일로 싸우는 것이 정도(正道)요.

더구나? 당신같은 천축국의 승려 하나를 우리 셋이 덤렸다면 무술계의 수치요.]
[좋소. 그럼 한사람만 상대하겠소. 그러나 조건이 있소.]
[또 무슨 조건이란 말이오?]
[만일 여러분 중에서 나온 한 사람이 소승에게 패한다면 소승은

신약(神藥)을 먹여 과거를 잊게 한 다음 우리 천축국으로 데려가

이 소승의 몸종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오.]
[그 반대로 우리가 이긴다면?]
[당신들이 이긴다고 아직 생각해 보지도 않았고 또 소승을 이기지도 못하오.

무예계의 제일 고수라는 주소저도 이렇게 상처를입었는데 당신들이 주소저보다

더 강하지는 못할 것이오.]
[주소저는 사전에 준비가 없었기 때문이오. 그러나 우리는 다르오.]
[흠......다르다? 그럴지도 모르지......그렇다면,

소승이 패한다면 주소저를 데려가지 않을 뿐 아니라 다시는 이곳 중원 땅에 나오지 않을 것이오.

그러나 만일 계략를 쓴다거나 세 분이 일제히 달려든다면 문제는 다르오.]
[그러면? 어떻게 하겠다는 거요?]
[이 주소저의 생사는 아직 소승 손에 달려 있소.

그런 만큼 주소저를 희생시킬 그런 무모한 짓은 안하는 것이 좋다는 것이오.]
그러자 도옥은 길게 목을 뽑으며 냉소를 터뜨리다 뚝 그치며 지광대사를 노려보았다.
[대사...... 주소저의 생명을 미끼로 우리들을 위협하지 마시오.

위협한다고 해서 두려워할 우리가 아니오.]
내뱉듯이 말한 도옥은 고개를 돌려 조소접과 양몽환을 눈짓으로 불러 가까이 오게 한 다음

전음지술로 속삭였다.
[조소저, 그리고 양형, 우선 이렇게 합시다.

즉, 지금 우리들 무공으로 보아 이 도옥이 가장 높지만 중독에서 아직 회복되지 않은 만큼

이길 승산이 없습니다.

그러한즉 조소저가 우선 싸우기로 하고 양형과 이 도옥은 기회를 보아 주소저를

그의 손에서 뺏도록 하는 것이 좋을 것같소. 어떠시오?]
그러자 조소접이 쾌히 대답했다.
[좋아요. 그렇게 해요.]
하는 한편, 양몽환도 고개를 끄덕여 도옥의 재안에 합의했다.
일단 합의를 본 조소접은 한 걸음 나서며 지광대사를 똑바로 노려보았다.
[여보세요. 대사, 내가 천축국의 기술(奇術)을 먼저 구경하겠어요.]
하며 암암리에 진기를 운집했다.
그러자 지광대사는 조소접의 출현에 은근히 놀랐다는 듯 도옥과 양몽환을 훑어보며

매우 마땅치 못한 듯 이마를 찌푸리는 것이었다.
[사내 대장부가 응당 나서야 할 일이라 생각되는데 어찌 연약한 여자를 내세운단 말이오.]
제법 도리까지 내세우며 훈계하듯 하는 말에 조소접은 칵! 비위가 상했다.
[그건 우리들의 일이에요. 당신이 이래라 저래라 할 것이 못돼요.]
하며 싸늘하게 노려보자 지광대사는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었다.
[옳은 말씀......]
하고는 품 속에서 작은 병을 꺼내 침대 위에 올려놓으며 다시 말을 계속했다.
[이 병 속의 약이 바로 당신들에게 먹일 약이오.]
하며 호탕하게 웃어댔다.
그러나 조소접은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노혀보기만 했다.
이때, 다시 지광대사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럼, 소저가 먼저 공격하시오. 그리고 저 필요없는 두 사내는 밖으로 내보내시오!]
하며 턱을 들어 도옥과 양몽환을 가리켰다.
그러자 벌컥 화통이 터진 도옥은 퉤! 방바닥에 침을 뱉았다.
[염려마시오. 그렇지 않아도 나가려던 중이오!]
하고는 양몽환에게 고개를 돌렸다.
[양형! 나갑시다.]
앞장서서 성큼성큼 문 밖으로 나가고 그 뒤를 양몽환이 따랐다.
그들이 완전히 문 밖으로 사라지고서야 침대 앞에서 나선 지광대사는

두 손으로 합장하며 조소접에게 일 읍 하는 것이었다.
[그럼, 소저가 먼저 공격하시오!]

<흥! 건방진 놈. 무공이 얼마나 강한지는 모르지만

노는 꼴이 안하무인이군! 단단히 쓴맛을 보여야지......>

하고는 오른쪽 팔을 휘둘러 크게 원을 그린 다음 왼쪽 팔마저 내밀어 강렬한 장풍을 몰아붙이고 말았다.
그러자 그때까지 합장하고 서 있던 지광대사는 여전히 합장한 채 떼지도 않고 발굽만 들썩 들었다

놓으면서 조소접의 일장을 정말 가볍게 막아버리고 마는 것이 아닌가!
그 순간, 엔간히 놀란 조소접은 입술을 깨물며 재차 두 팔에 힘을 주었다.

그리고는 지광대사의 팔굽을 스치고 후려 갈겼다고 생각하는 순간!

돌연, 지광대사는 합장했던 두 팔을 쓰윽 아래로 내려뜨리면서 훌쩍 옆으로 비켜서며

빙그르르 몸을 돌리는 것이었다.
그러나 비잉 돌리던 몸을 바로 세운 지광대사는 즉시 반격할 태세를 취하는 듯하다가

또 합장을 하며 속공으로 공격해오는 조소접의 공격을 가볍게 되받아 쳐버렸다.
그리하여 조소접의 맹공은 어느덧 십여 수,

시종여일 합장을 한채 팔굽으로 막아내기만 하던 지광대사는

서서히 팔을 올리며 반격할 태세를 취했다.
그리고 마악 팔을 들어올리던 지광대사는 와락 눈썹을 추켜 세웠다.
[거기 서라!]순간!
어느 사이에 들어왔는지 그리고 어느 사이에 눈치를 챘는지

조소접의 뒤로 달려들던 도옥을 노려보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도옥은 당황하지 않고 씨익 웃기부터 했다.
[대사! 한마디 말할 것이 있어 들어왔소!]
[무슨 말을 하겠단 말이오?]
[무슨 일이 있어도 싸우는 동안에는 주소저의 몸에 손을 대지말라는 것이오.]
[그러면 당신이 어떻게 하겠다는 말이오?

지금 주소저는 치료중에 있는 몸이오.

더구나 소승이 주소저의 몇곳 요혈을 짚어 놓았소.

만일 잘못 건드리면 평생 병신이 되는 것은 물론 생명까지 위험하게 되오.]
[뭐라구요? 협박하는 거요?]
[어찌 협박을 하겠소? 사실대로 말할 뿐이오.?

그러나 만일 주소저가 소승에게 마음만 준다면 무술계는 큰 변화가 생길 거요.]
하고 엉뚱한 말을 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도옥이 무릎을 치며 엉뚱한 행동을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무엇 때문에 애석한지 조소접을 보며 또 한번 무릎을 치는 것이었다.
[애석하군! 애석해!]
그러자 눈이 둥그래진 조소접이 의아해하자 도옥이 곧이어 말하는 것이었다.
[조소저, 지금 이 도옥이 지광대사와 말하는 사이에 일격을 가했더라면 지금쯤

지광대사는 쓰러졌을텐데......
애석한 일이오.]
그제야 조소접도 도옥의 의중을 짐작하고는 깊이 후회했다.

<...... 그렇지. 도옥이와 말하는 사이에 천강지력으로 쓰러뜨릴 수도 있었는데......>

그러나 좋은 기회는 이미 지나가버린 후였다.
이때 다시 도옥은 혼잣소리처럼 중얼거렸다.
[천하 무예계에서는 이 도옥이 지략이 많고 간계를 잘 쓴다고 하는데 헛 이름만 남기는군......]
하는 사이 지금이라도 늦지 않다고 결심을 새로이 한 조소접은

 날가롭게 한 소리 외치며 지광대사를 덮치고 들어갔다.
두 팔을 앞으로 재빨리 펼치면서 공격 수법을 회용삼식(廻龍三式)으로 돌변시킨

조소접의 속공은 지광대사를 석자나 뒤로 물러서게 하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다음 순간,

뒤로 물러나는 지광대사를 쫓아가며 회용삼식의 수법을 돌변시켜 강력한 내공력으로

천강지 수법을 병용해서 번개처럼 팔을 휘둘렀다.
일찍이 임, 독(任, 督)을 유통시킨 조소접의 내공은 신속하고도 날카로워 마치 태풍이

파도를 몰아치는 것같았다.
순간, 뜻밖의 날카로운 공격에 깜짝 놀란 지광대사는 여자의 내공이

강하면 얼마나 강하겠는가 하고 가볍게 여기면서 몸을 돌려 피하면서

넌지시 팔을 휘둘러 역습을 감행했다.
순간, 번개같이 몸을 날린 조소접은 자기 스스로도 나에게 이런 재간이 있었든가 싶도록

스스로의 행동에 놀라며 쭉 두 팔을 들어 올렸다고 생각했을 때 허공에서 맞부딪친

강력한 잠력에 서로 세 걸음씩 물러나야 했다.
그 바람에 조소접이 연약한 여인이라는 관념이 싹 가신 지광대사는

<아무래도 심상치 않군......>

하며 숨을 헐떡이며 주약란이 누워 있는 침대를 훌쩍 뛰어넘어 침대 뒤로 몸을 피했다.
그 순간, 재차 공격을 퍼부우려던 조소접은 황망히 팔을? 거두어 들여야 했다.

그것은 지광대사를 명중시키지 못하면 주약란의 몸이 천장으로 뛰어오를 위험이 있기 때문이었다.
여자라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다가 단단히 혼땜을 당한 지광대사는 다른 사람이 봐도

창피할 만큼 주약란을 방패로 삼고 단단히 주먹을 쥐는 것이 절호의 기회를 노리는 눈치였다.

그러나 긴박한? 순간이 얼마를 지나도 침대 뒤에서 나오지 않는 지광대사를 계속 노려보고 있을

수만은 없는 조소접이었다.
[비겁하게, 어서 나와요. 안나오면 승부가 난 것으로 알겠어요.]
그제서야 어디 그럴 수가 있느냐는 듯이 팔을 휘둘러 장풍을 날려 조소접이

피하는 몸짓을 하는 그 기회를 틈타 훌쩍 침대를 뛰어넘는 지광대사였다.

자기가 졌다는 것은 천부당 만부당하다는 눈치였다.
[소승이 졌다고?]
하고 되묻는 지광대사를 뒤에 있는 주약란때문에 공격을 가하지 못하고 조소접은 슬슬? 뒷걸음질쳤다. 그러면 지광대사가 몇걸음 더 나을 것같아서였다.
그러나 지광대사는 나을 생각도 안했다. 만만하게 조소접의 유인전술에 말려들지 않는 지광대사는?

다시 한 번 반문하는 것이었다.
[천만에, 소승이 졌다고?]
[그럼 왜 피하기만 하는 거죠? 비겁하게!]
[천만에, 지금까지 피한 것은 소저의 무공이 어느 정도인가를 알아보려고 한 것이오.]
하고 말을 마치는 순간! 왼 손을 앞으로 쑥 내미는 것과 동시에 다섯손가락을 일시에 펴며 몸을 날렸다. 그 순간! 다섯가락의 지풍이 바로 조소접의 아랫배를 노리고 허공을 가르고 말았다.
그러자 위기를 직감한 조소접은 급히 허리를 굽히며 두 팔을 한데 모아 아랫배를 보호하는 한편,

옆으로 번개같이 스치고 지나가는 지광대사의 뒷덜미를 움켜쥐려고 방바닥을 걷어차는 바로 그때,
갑자기 아랫배가 서늘해지며 차가운 바람이 마치 배에 구멍을 뚫은 것처럼 지나감을 느끼고 아차!

했을? 때는 이미 지광대사의 지풍에 살이 찢어지는 고통을 받아야 했다.
지광대사의 날카로운 다섯 줄기의 지풍이 노린 곳은? 말하기도 거북한 조소접의 치부(恥部 바로

위인 배꼽 밑이었다.

그리고 이지풍은 극히 음독(陰毒)한 수법으로서 아랫배에 힘이 빠지는 것을 시초로 창자가

꼿꼿해지고 숨이 콱 막히는 고통이 사정없이 조소접을 비틀거리게 했다.


<앗......기어이 당했구나!>


한 것도 잠시 더 지탱할 수 없는 고통에 뒷걸음질치다 그대로 몸을 떨며 쓰러지고 말았다.
그 순간, 문 밖에서 초조히 승부를 기다리고 있던 양몽환과 도옥은 문이 열리며?

쓰러지듯 굴러나오는 조소접을 겨우 받아 일으켜 세웠다.
걷잡을 수 없이 쓰러지다 간신히 양몽환과 도옥의 부축으로 몸을? 일으켜 세운 조소접은

그때 마침 방안으로 후다닥 뛰어드는 양몽환을 말리지도 않았다.

조소접 대신 이번에는 양몽환이 지광대사와 겨루게 되었다.
한편, 부상을 당하고 쓰러지듯 문 밖으로 나온 조소접을 부축해 세운 도옥은 방안을? 노려보며

조소접을 불렀다.
[조소저, 어디를 다쳤소?]
그러나 조소접은 아픔도 아픔이지만 상처가 바로 치부 위여서 대답하기가 매우 부끄러웠다.

그러나 상처 부위를 바로 가르쳐 주면 도옥이 혹시 치료법이라도 알고 있을까 해서

잠시 망설이다 고개를 들었다.
[아랫배예요.]
[증세는?]
[아랫배가 차고 기운이 빠지는 군요.]
[음......그럼 허리를 구부리고 잠시 조식하시오.

이 도옥이 귀원비급의 요상편을 좀 생각해 보겠소.]
하고 눈을 지그시 감았다.
한편, 방안으로 쏜살같이 뛰어든 양몽환은 조소접에게서 받은 바있는

한 자루의 비수를 뽑아쥐고 지광대사와 마주 섰다.
[대사! 이 양모인이 상대하겠소!]
그러자 지광대사는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애초의 약속과 틀리오!]
약속대로 대표인 조소접과 싸워 조소접이 패한 이상 더 싸울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자 양몽환은 얼굴에 분노가 꿈틀거렸다.
[대사! 당신은 정정당당히 싸우지 않고 암암리에 기술(奇術)을 써서 상대방을 해쳤소.

그것도? 애초 약속에 없던 것이 아니오?

그리고 조소저가 아직 패했다고 하지 않은 이상 얼마든지 싸울 수 있소.]
[그럼 소저가 나설 것이지 어찌 당신이 나서는 것이오! 싸울 힘이 있다면 어서 나오라고 하시오.]
[여보시오, 대사! 당신은 우리 세 명이 일시에? 달려들어도 이길 수 있다고 하지 않았소.

그런데? 지금은 이 양모인이 두렵단 말이오?]
[그것은 당신들이 반대한 것이오. 약속은 약속대로 지키시오.

그렇지 않으면 소승도 약속을 지키지 않겠소!]
그러나 울분이 뻗칠대로 뻗친 양몽환은 더 참고 있을 겨를도 없었다.
즉시 비수를 휘두르며 달려들고 말았다.
아무리 싸움을 하고 싶지 않다 해도 비수를 든 양몽환이 달려드는데는 가만히 서 있을 수도

그렇다고 뒤로 피할 수도 없는 지광대사는 장풍을 몰아붙이며 몸을 날렸다.

그러나 조소접과 일대 격전을 치룬 이후이고 더구나? 비수를 든 양
몽환의 일거수 일투족이 정확하고 또 신중을 기해 공격하기 때문애 지광대사는

조소접보다 약간 불리한 싸움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다 양몽환의 비수는 극히 급소인 요혈만 노리고 들어와 민첩하게 휘두르는 비수여서

섣불리 공격하다가는 도리어 비수에 가슴이 구멍날 것을 경계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어느덧 삼십여 수의 공방전 끝에 양몽환이 휘두르는 비수로 도포자락이 갈기갈기 찢어진

지광대사는 점차 숨이 가빴다.
이때, 열린 문을 통해 양몽환과 지광대사의 결투를 보고 있던 도옥은 눈에 띄게 지광대사가

불리해졌다는 것을 눈치채자 언뜻 지나가는 생각이 있었다.

 

<옳다. 지금 지광대사는 극히 지친 눈치다.

이 기회에 뛰어들어 지광대사를 쓰러뜨리기만 하면 조소접 앞에

이 도옥의 무공을 자랑할 수도 있고 더구나 천축국으로 끌려갈

주약란과 조소접을 일시에 구할 수 있겠다.
그러면 이 도옥을 고맙게 생각하겠지 ......>


여기까지 생각한 도옥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방안으로 뛰어들었다.
그러나 이때 갑자기 뛰어드는 도옥을 바라본 조소접은 계략이 많은 도옥이

혹시 지광대사를 쓰러뜨릴 꾀라
도 있는줄 알고 아무 말도 않고 버려두었다.
방안으로 뛰어든 도옥은 마침 비수를 휘두르며 한걸음? 한걸음

지광대사에게 육박해 들어가는 양몽환과 뒤
로 밀리며 두 손을 옆으로 편 지광대사를 휘둘러 보며 크게 소리쳤다.
[잠깐! 멈추시오.]
하고 소리치자 일제히 도옥을 돌아보는 순간을 택해 도옥은 주먹을 쥐며 지광대사에게 일읍했다.
[대사! 이번에는 이 도옥이 한 수 가르침을 받겠소.]
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양몽환은 무슨 일인가 했으나 역시 계략이 많은 도옥임을 생각하고

좋은 묘책이라도 있을지 모른다
는 생각에서 지광대사를 도옥에게 맡기고 몇 걸음 물러섰다.
그러나 지광대사는 눈 하나 깜짝이지 않고 도옥과 양몽환을 휘둘러 보는 것이

얼마든지 덤벼라! 하는 태도였다.
[당신이 핫......하......그러지 말고 이왕 약속을 어긴 이상 두분이 다함께 달려드는 것이 어떻겠소?

그것이 오히려 승부가 빠를 것이오!]
하고 말을 마치자마자 합장했던 두 손을 딱! 떼며 원을 그리는 것이었다.


죽음이냐 인질이냐
일장을 가해오는 지광대사의 공격을 날쌔게 피한 도옥은 일단 주춤하고

그 자리에 섰다가 넌지시 지광대사의 왼쪽으로 돌았다.  

 

그러나 지광대사가 덮쳐오면 올 수록 빙글빙글 몸을 돌리며 피하기만 할 뿐

처음 기세가 등등하던 태도와는 정반대로 반격할 생각조차 안하는 것같았다.
이때 양몽환과 도옥을 방안으로 들여보내고 뒤가 궁금해 방안으로 허리를 굽힌채 들어온

조소접은 피하기만 하는 도옥을 보고 눈이 둥그레졌다.
그때 역시 도옥의 행동을 궁금하게 여기며 뒤로 물러섰던 양몽환은 다가오는

조소접을 기다려 음성을 낮추었다.
[어떠시오. 상처는?]
[진기를 돋우어 상처의 악화를 막고 있지만 대단치는 않아요.]
[그만하길 다행입니다. 조심하시오.]
[네. 그런데 도옥은 웬일이죠?]
하며 턱으로 도옥을 가리켰다.
[글쎄요......! 무슨 계획이 있어서 저러겠죠.]
[워낙 계략이 많은 도옥이니까...... 그래도 속전속결(速戰速決)이 아니면 우리가 불리해요.]
[무슨 일이 있습니까?]
[시간을 오래 끌면 그의 함정에 빠져들아갈 우려가 있지 않겠어요?]
[옳은 말이오. 만일 사태가 위급하면 암수(暗手)라도 써야겠습니다.]
하는 동안 도옥과 지광대사는 한창 불을 뿜는 공방전을 벌리기 시작하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지광대사의 두 팔이 머리? 위로 치켜 올라간다고 느끼는 순간

펑! 소리와 함께 마침 팔을 휘두르던 도옥은 비틀 뒤로 세걸음이나 물러서고 말았다.

그렇게 물러나는 도옥의 얼굴에 극히 짧은 순간이지만 핏기없는 창백한 빛이 떠돌았다가

천천히 사라지는 것이었다.
그러한 도옥을 보고 있던 양몽환은 이미 대세가 기울어졌다고 느꼈다.

처음에는 궁지에 몰린 듯하던 지광대사가 오히려 용기백배한 듯 등등해진 기세에 반해

도옥은 몸가짐부터 흔들리고 공격하는 수법이 어지러워지는 것이었다.

<......아직 중독에서 완전히 회복되지 못한 몸......>

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면서 다시 뛰어나가려고 하는 바로 그때, 지광대사의 냉소가 터지고 말았다.
[훗......후......도옥, 당신은 이미 중상을 입었소. 생명이 아깝거든 뒤로 물러서시오!]
그러자 도옥은 패배를 자인이나 하듯 두 팔을 힘없이 늘어뜨리며 쓰디쓰게 입맛을 다셨다.
[대사의 말이 옳소. 그러나 암암리에 기술(奇術)을 쓰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오?]
[핫......하......그럴 것이오.

그러나 지금 공격한 수법은 바로 우리 천축국의 다라신공(多羅神功)이라는 수법이오.

그것은 부끄러운 무공이 아니오.]
하고는 자,
이번에는 또 누가 상대하겠느냐는 듯이 둘러보다가 양몽환에게 시선을 멈추었다.
[자, 나오시오. 우리 천축국의 무공이 어떤가를 당신만 맛보지 않을 수 있소?]
[좋소. 그러나 잠시 기다려 주시오.]
쾌히 한 걸음 나선 양몽환도 손을 들어 잠시 기다리라는 표시를 하고는 도옥에게로 다가갔다.

그러자 도옥이 먼저 음성을 낮추었다.
[양형! 특히 조심해서 싸우시오. 그리고 그의 손바닥과 마주 부딪치지 마시오.]
[그래요? 어떻게 된 상처인지 이 양모인도 알아야만 그와 겨룰 수 있을 것같소.]
[순식간에 한 줄기의 서늘한 바람이 들이닥친다고 생각했는데... 그만 경맥이 짚힌 모양이오.

도저히 팔을 쓸 힘이 없구려.]

<......음, 도대체 무슨 무공인데 그토록 무시무시하단 말인가? ......>

 

 

 

 

자신만만하게 열전을 벌리고 있는 양몽환을 밀치고 달려들었다가?

무참히 패배를 당한 도옥은 조소접과 양몽환을 볼 면목이 없었다.
그리고 조소접에게 보이려던 자기의 오만함이 얼마나 경솔했던가를 재삼 뉘우쳤다.
그러나 자만심이 강한 도옥으로서는 조소접과 도옥 자기처럼 무공이 강한 사람도
무참히 패배했는데

양몽환의 실력으로는 더더욱 상대도 되지 못하리라 단정하자

승부는 이미 끝난 것이나 다름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팔을 내저으며 머리까지 흔들었다.
[양형! 도저히 안되겠소. 그만둡시다. 그것이 좋겠소.]
조소접과 도옥 내가 패배를 당했는데 양몽환 너는 말해 무엇하랴는 태도로 상대도 안된다는 듯이

팔과 머리를 동시에 흔들며 말하는 도옥의 오만한 태도에 슬며시 울화가 치민 양몽환은

정신을 가다듬고 냉정해졌다.
[도형! 염려마시고 도형이나 몸조심하시오. 아직 승부가 나지 않았는데 어찌 그만둔단 말이오?]
[이 도옥은 양형을 생각해서 하는 말이오. 그러나 양형 생각이 그렇다면 해보시오.]

<네까짓 것이 무슨 상대가 되느냐. 그래도 생각해서 하는 말인데......흥! 해볼테면 해봐라.

이 도옥은 원망하지 말고......>


라고 말과 생각을 달리하는 도옥이었다.
그러나 양몽환은 불끈한 성질을 가라앉히며 담담히 말했다.
[도형의 의중(意中)을 모르는 바 아니오.

그리고 이 양모인이 지광대사의 적수가 못된다는 것도 잘 알고 있소.

그러나 사나이대장부로서 어찌 피한단 말이오?]
하고는 진기와 내공을 운집시키며 서서히 도옥 앞을 지나 지광대사와 마주섰다.
한 손에 비수를, 그리고 한 손에는 웅후한 내공을 몰아넣고 추호도 두려움없이 당당히 걸어나와

마주서는 양몽환을 은근히 바라보고 있던 지광대사는 마른 기침을 하며 합장했다.
[과연 당신은 사나이 대장부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당신에게 소승이 감탄하는 바요.]
하고 일읍하는 것을 양몽환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오히려 싸늘하게 소리쳤다.
[대사께서나 몸조심하시오!]
말을 마치는 것과 동시에 오른 손의 비수를 휘두르며 발을 굴렀다.
그 순간, 지광대사는 재빨리 몸을 돌려 양몽환의 비수를 피한다음 두 팔을 옆으로 크게 벌려

이 팔 흔들고 저 팔 흔들고 그러면서 번갈아 흔들어 좌우에서 협공해 들어오는 것이었다.
그때 양몽환은 자기의 왼쪽 손으로? 지광대사의 왼쪽 손목의 맥혈을 짚으려고 오른 손의 비수로

위협하며 들어갔으나 마침 두 팔을 번걀아 흔들며 손바닥을 뒤집고 덤비는 지광대사를 보자,

손바닥을 부딪치지 말라는 도옥의 말이 생각나 재빨리 뒤로 물러서면서 비수를 휘둘러

지광대사의 가슴을 후려쳤다.
그바람에 황망히 옆으로 피해 비수를 피하는데 성공한 지광대사는 아무리 그와 공력이 강하다 해도

비수와 직접 부딪치는 것을 두려워하는지 선뜻 달려들지 못하고 비잉 몸을 돌리며 기회를 노리는

것이었다.
이로해서 약간 전세를 휘어잡은 양몽환은 바싹 따라붙으며 비수를 쥔 손을 번개같이 휘둘러

영풍격랑(迎風擊浪)의 수로 돌변시키면서 지광대사의 가슴을 재차 노리고 몸을 날렸다.
비록 양몽환의 무공이 조소접보다 못하고 도옥에게 뒤떨어진다 해도

그의 성격이 선천적으로 청렴하고 어떠한 일에도 서두르지 않는데다 매사에 극히 조심하고 신중하며

지금과 같은 위급한 사태하에서는 더더욱 신중을 기해 대적하고 있었기 때문에 지광대사의 공격을

여유있게 막을 뿐 아니라 날카로운 공격을 하므로 지광대사도 좀처럼 양몽환을 격퇴시킬 수는 없는

듯했다.
이렇게 선전(善戰)하고 있는 양몽환을 증오하고 원수로 여겨왔지만 지금은 도리어 마음속으로?

경탄하고 양몽환이 이겨주기를 비는 것이기도 했다.

더욱 이상한 것은 고의인지 아니면 실력이? 딸려서인지는 모르지만 차차 시간이 흐를 수록

반격하던 지광대사의 수법이 누그러지며 악랄한 수법을 쓰기는 고사하고 거의 삼십 여합을 교환해도

반격조차 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렇게 행동을 돌변시키던 지광대사가 드디어 손을 들어 흔들며 냉랭히 소리치는 것이었다.
[잠깐, 멈추시오!]
하는 소리에 양몽환도 즉시 손을 멈추며 두어 걸음 뒤로 물러섰다.
[왜 그러시오?]
[지금 당신들은 독 안에 든 쥐와 다를 바 없이 완전히 포위되어 있소.

그런 만큼 더 난동을 부리지 말고 소승이 제기하는 두 길 중에 하나를 택하시오!]
하는 것이었다.
그 말에 급히 문 밖을 바라본 양몽환은 가슴이 철렁했다.
과연 얼핏 보기에도 문 밖으로 떼를 지어 왔다갔다 하는 승려들의 무리가 보였기 때문이었다.

<음......기어이 함정에 빠지고 마는가?>

하고 생각하는데 도옥이 먼저 냉소를 터뜨리며 한 걸음 나섰다.
[흥! 두 길?]
[그렇소. 한 길은 죽음의 길이오, 나머지 한 길은 우리를 따라 천축국으로 가는 길이오.]
그러자 도옥은 침대 위에 누워 있는 주약란을 한번 보고는 냉랭하게 되물었다.
[우리를 데려간다고? 그 목적이 무엇이오?]
[핫......하.....이곳 중원 땅은 아름다운 여인도 많고 풍경도 좋아 천축국으로 돌아갈 마음이 없어지오.? 그러나 금번 소승이 이 중원 땅에 올 때 쟁쟁한 고수들을 데리고 오지 못해 매우 섭섭히 생각하던

중이었소.]

<이 자가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밑도 끝도 없이 하는 말에 의아해진 도옥은 씨익 웃으며 재차 소리를 질렀다.
[대사! 그것이 어떻다는 말이오? 이 도옥은 우리들을 왜 천축국으로 데려가겠느냐를 물었소.]
그러자 지광대사는 도옥의 말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계속 하는 것이었다.
[소승은 천축국에서 국사(局師)라는 직위에 올라 부귀와 권세는 말할 것도 없소.

그리고 이곳 중원 땅의 많은 인물들이 소승밑에서 충성을 다하고 또 이곳 중원 땅의 좋은 일들을

많이 들려주었소.

그래서 소승이 이곳을 흠모하던 차에 직접 중원 땅에 오게? 되었소.

과연 듣던 바대로 풍경이 아름답고 훌륭한? 인재가 많은 것에 거듭 경탄을 금치 못하는 바요.

그런데 이번에 이 중원 땅을 떠나게 되어 섭섭함을 이루 말할 수 없고
이후 다시 소승이 이 중원 땅에 오더라도 거칠 것 없이 당당히 돌아오려고 하는 것이오.?

그렇게 하려면 중원 땅의 고수들이라는 당신들을 우리 천축국으로 데리고 가 소승의 부하로

 만들어야만 소승이 마음을 놓을 수 있을 것같소.]
[흥! 건방진 소리는 안하는 것이 좋을 거요. 만일 그따위 계략을 쓴다면?

당신은 영원히 햇빛을 보지 못할 것이오.]
[당신, 참 용감했소. 그러나 소승이 보기에는 별 것이 아닌 것같소!]
내뱉듯이 말한 지광대사는 침대 옆으로 다가가 누워 있는 주약란을 번쩍 들어 안았다.

그리고는 문을 향해 걸음을 옮기다 말고 서서히 돌아섰다.
이 세상에서 소승이 아니면 주소저를 구할 사람은 없소.

그리고 죽음을 택할 것인지 아니면 천축국으로 소
승을 따라갈 것인지 하는 문제는 잘 의논해서 오늘 해지기전에 알려주시오. 그때 다시 돌아오겠소!]
하고는 문 밖으로 서서히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지광대사가 주약란을 안고 나가도 석불(石佛)처럼 서서 아무 소리도 못한 도옥과 양몽환

그리고 조소접은 멍하니 서 있기만 했다.
그러나 조소접은 애초에 이 중원 땅으로 대국사를 불러들여 자기의 계략을 성취하려다

결국 주약란은 물론 양몽환과 자기 그리고 도옥 자신마저 비참한 결과가 된 데에는

조소접의 성미로서 참고 있을 도리는 없었다.

<......모두 이 도옥 한 사람 때문에 풍파가 일어나는구나......>

생각하면 할 수록 분통이 터진 조소접은 싸늘한 표정으로 도옥을 노려보다

기어이 눈썹을 치켜올리고 말았다.
[도옥! 란이 언니를 희생시켜 계략을 쓰려다가 그 계략에 빠진 기분이 어때요?]
그러자 도옥도 가슴이 아픈지 씁쓸히 웃었다.
[지금 이 도옥을 원망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소?

이런 사태에서 서로 원망을 할 것이 아니라 이곳을 빠져나갈 방도를 강구하는 것이 더 급합니다.]
옳은 말이었다.
함께 물에 빠진 처지로서 누구를 원망할 것도 없다는 것을 알고있는 조소접은 약간 태도를 바꾸었다.
[그럼 사죄하는 의미에서 대책을 강구하세요.]
그러자 도옥은 양몽환을 한번 보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음......지금 우리 세 사람 가운데 상처를 입지 않은 사람은 양형 한 사람뿐이오.]
[그래서?]
[만일 사태가 위급해지면 이곳을 빠져나갈 수 있는 사람은 양형 한 사람밖에 없다 이런 말이오.]
[그래서?]
[다시 말하면 양형 한 사람에게 조소저와 이 도옥이 의지해서 이곳을 빠져나갈 수밖에

 별도리가 없는 것이 아닙니까?]
[어떻게?]
[그것은 이렇게 하면 될 거요. 즉 우리가 거짓으로 항복해서 지광대사의 마음을 안정시킨 다음

기회를 노려 도망하는 것이오.]
[그것이 용이한 일은 아니오.]
[그럴 것이오. 그러나 우리가 천축국으로 사로잡혀 간다면 다시는 이 중원 땅으로 돌아올

기회가 없을 뿐 아니라 차후 무술계에 예측하기 어려운 사태가 벌어질 것이라 이런 말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겠다는 말이오?]
[이 도옥이 몇번 생각해 봤지만 지금 사태에서는 양형이 이 사태를 수습해야 할 것같다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이 도옥이 지니고 또 터득한 무공도 이제 쓸모가 없어진 이때 이 도옥이 알고 있는

모든 무공을 양형에게 가르쳐 주겠다는 것입니다.]
[뭐라고? 그게 정말이에요?]
굉장히 놀랍다는 듯 눈을 둥그렇게 뜨는 조소접을 한 눈으로 바라보며 도옥은 다시 말을 이었다.
[어찌 이 사태에서 거짓말을 하리라고 생각하십니까?

이 도옥도 모든 것을 새로 결심한 이상 추호도 의심을 품지 마시오.]
그러나 양몽환은 도옥이 어떤 계략으로서 하는 말인지는 모르지만

지금 무공을 배울 시간도 없거니와 도옥에게서 무공을 배우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서 정중히 거절했다.
[도형, 호의는 고맙소만 지금 무공을 배울 시간도 없습니다.

그것보다 먼저 지광대사가 돌아오기 전에 우리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 거취를 정해야 할 것이오.]
하고 화제를 돌렸다.

그러자 도옥은 지금까지 이 도옥이 한 말을 무엇으로 들었느냐는 듯이 이마를 찌푸리며

머리를 흔들었다.
[양형! 지금까지 이 도옥이 한 말을 듣지 못했소?

이 도옥이 알고 있는 무공을? 양형에게 가르쳐 드려서 지광대사를 사로잡던가 쓰러뜨려

우리가 일시에 이곳을 빠져나가자는 것이 이 도옥의 장황한 설명이 아니었
느냐 말이오.]
[그러나 도형! 도형이 어떤 무공을 터득하고 있어서 이 양모인에게

가르쳐 주겠다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가르쳐 줄 것 없이 도형이 직접 나서면 되지 않소?]
[그게 무슨 말이오? 지금까지 누누이 말한 것은 다 잊어버렸단 말이오?]
[무슨 말을 잊었다고 하오?]
[지금 주소저나 조소저 그리고 이 도옥이 중상을 입어 몸을 움직일 형편이 못되는 만큼

양형이 이 사태를 수습해야 한다는 말이오.]
[그러나 도형, 애석하게도 이 양모인에게는 그럴 만한 능력이 없소이다.]
[없으니까 이 도옥이 무공을 가르쳐 주겠다는 것이 아니오?]
[가르쳐 준다는 것은 고맙지만 시간이 없지 않소?]
[그럼 어떻게 하겠다는 거요?]
[어떻게 하겠다는 방책은 없소. 다만 힘껏 겨루어 볼 뿐이오.]
[그렇게 무책임한 말이 어디 있소 하면 한다,

못하면 못한다 명명백백히 말해야 사나이가 아니오?]
[그래서 도형은 천축국에서 승려를 불러들인 거요?]
그러자 도옥은 얼굴이 시뻘개지며 입술만 움직일 뿐 말을 하지 못하다가 한참만에야 고개를 들었다.
[양형, 그것은 일단 지나간 일이 아니오 그래서 이 도옥이 사죄도 하고......

그런 것을 다시 말한다는 것은 이 어려운 상태에서도 이곳을 빠져나갈 생각은 않고

이 도옥을 궁지에 몰아넣으려는 것밖에 안되는 것이오.]
그러자 양몽환도 너무했구나 싶었다.
[알겠소. 그럼 그 문제는 덮어두기로 하고 대책을 강구합시다.]
하고 태도를 누그러뜨렸다.
그동안 깊은 생각에 잠겼던 조소접은 양몽환의 말이나 도옥의 말이 모두 일리가 있다고

머리를 끄덕였다.
그러나 도옥의 말대로 가만히 앉아 있다가 천축국으로 끌려가는 것보다 성한 양몽환에게

한가지 무공이라도 더 가르쳐서 지광대사를 사로잡아 인질로 삼고 이곳을 빠져나가는 방법이

제일 좋겠다는 결론을 얻었다.
그리고 중원 땅의 제일 고수급들이라 하는 주약란이나 조소접이 지광대사의 일격에 중상을 입고

지략이 많은 도옥마저 중상을 입은 지금 양몽환만이 지광대사와 당당히 겨루어

조그만 상처도 입지 않았다는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
또한 지광대사와 겨루는 양몽환의 날카롭고 예리한 공격과 방어에 새삼 놀라던 조소접은

양몽환이 중원 무술계의 제일인자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조소접이 느끼기에 양몽환도 마음 속으로는 지광대사와 겨룰 방도가 다 준비되어 있을 것같았다.

그리고 다시 싸움을 벌려도 양몽환이 패하지 않는다는 것을 은연중 확인하게 되었다.
그러한 양몽환이 이제 때늦게 지광대사에게 패한 도옥으로부터 새로운 무공을 전수받을 마음도

없겠거니와 필요를 느끼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양몽환과 도옥의 대화 속으로 끼어들지 않고 담담히 듣고 있긴 했지만

지략이 많은 도옥의 무공 한가지쯤 배워둔다고 해서 양몽환이 해를 입을리도 만무했고

또 배워둔다면 언제 어느때고 쓸모가 있지 않을까? ......

그래서 오랜 침묵끝에 대화 속으로 끼어들며 도옥이 눈치채지 않게 양몽환에게 가만히 있으라는

눈짓을 하고는 도옥을 불렀다.
[도옥! 도대체 어떤 무공을 가지고 그러죠?]
하는 것은 어디 들어보기라도 하자는 뜻이었다.

그제서야 얼굴이 시뻘개지고 양몽환에게 무안을 당해 맥이 빠졌던 도옥은 구원이나 받은 것처럼

반색하며 고개를 돌렸다.
[바로 매화술(梅花術)이라는 것이죠.]
[매화술?]
[그렇습니다. 이 매화술은 귀원비급의 책장 두겹 속에 기재되어 있는 무공으로서 주소저나

조소처럼 아름다운 여인의 미색을 이용한 술법입니다.]
[그럼, 미인계(美人計)나 매인계(魅人計)와 갈은 것인가요?]
[네 바로 맞혔습니다.]
하는 도옥의 말을 건성으로 듣고 있던 양몽환은 조소접의 눈짓만 아니었으면

벌써 말하지 못하게 제지했을 것이었다.
그러나 조소접의 눈짓으로 가만히 듣고 있긴 했지만 예상했던대로 조소접의 미색을 이용해서

도옥이 이곳을 빠져나가겠다는 간계가 드러나는 데는 더 이상 듣고 있을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절로 찌푸려지는 양미간을 간신히 태연한 척하면서도 언성은 조금 높여 말했다.
[도형! 결국 조소저를 미끼로 또 간계를 쓰려는 거요?]
그러자 도옥은 목을 움츠리며 어디 그럴 수가 있느냐는 듯 몸을 흔들었다.

[천만에, 천만에. 양형은 이 도옥의 말을 다 듣지 않고 오해부터 하지는 마시오.

이 도옥은 그래도 귀원비급을 다 터득한 사람이오.

어찌 간계를 쓴다고 하시오? 귀원비급에 기재된 무공을 한번 실험해 보자는 거요.]
[흥! 그만두시오. 지금 주소저나 조소저는 중상을 입은 몸이오.

그리고 이 양모인이 남자라는 것을 잊었소?]
[물론 잊지는 않고 있소. 그러나 이 무공은 배워두어도 손해는 없을 거요.]
하고 조소접에게 고개를 돌렸다. 한번 배워보겠느냐는 표정이었다.
그러자 조소접은 배워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 한번 매화술의 무공을 말해 보세요.]
[그럼......]
하고 생각을 모으는 듯하는 도옥을 흘깃 바라보며 양몽환은 눈을 감고 말았다.
그리고 얼마를 지났을까?
갑자기 밖이 술렁거리며 발자국 소리가 들리면서 방문이 열렸다.
그리고 들어온 사람은 처음 대청에 나타났던 선비차림의 청의인(靑衣人)이었다.
방 안으로 들어와 일동을 휘둘러본 청의의 선비는 마른 기침부터하며 서서히 입을 열었다.
[우리 대국사께서는 여러분들이 어떤 길을 택하기로 결정했는지 알아오라는? 분부십니다. 어떻게 하기로 결
정을 지었습니까?]
그러자 지그시 눈을 감고 있던 양몽환은 귀찮은 듯 눈을 뜨며 선비를 노려보았다.
[무슨 결정을 하란 말이오?]
[대국사님을 따라 우리 천축국으로 가겠다는 결정 말이오!]
[아직 결정하지 않았소!]
[그럼 서둘러 결정하시오. 우리 대국사께서는 회답을 기다리고 있소이다.]
하는 말을 귓등으로 흘리며 조소접을 바라보던 양몽환은 가슴이 철렁했다.
그것도 그럴 것이 지금 조소접은 이마와 하얀 목덜미에 땀을 흘리며 고통을 참느라고

괴로워하고 있었다.
지광대사에게 입은 아랫배의 내상이 차차 고통을 일으키는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도옥도? 조소접 못지않게 얼굴을 찌푸리고 가쁜 숨을 내쉬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러한 조소접과 도옥을 바라보고 있는 양몽환은 마음이 무거웠다.

<이 양모인이 정신을 차리고 사태를 수습하지 않으면 주약란은 물론?

조소접과 도옥의 생명도 풍전등화(風前燈火)구나......>

쇳덩이로 머리를 얻어 맞은 듯한 머리를 흔들어 정신을 차렸다.

그래도 마음은 천근만근 무거웠다.
[조금만 더 기다리라고 하시오. 곧 결정하겠소.]
[흥! 그렇게 무작정 기다릴 수는 없소.?

이 자리에서 속히 결정하시오.

나는 대국사님을? 대신해서 당신들의 생명을 마음대로 할수 있소.]
[생명을 마음대로... 대단한 권세구려. 그러나 이 양모인은 아직 죽을 때가 아니오.]
도도하게 대꾸하는 양몽분의 태도에 비위가 상한 청의 선비는 당장 달려들어

박살을 내고 실은 눈치였다.
그러나 꾹 참으며 싸늘하게 쏘아보았다.
[좋소. 내 기억해 두겠소. 그러나 앞으로 한 시간이 지나면 우리들은 천축국으로

돌아갈 준비가 끝난다는 것을 잊지마시오.]
하고는 휭! 방문을 나서고 말았다.
그 순간, 양몽환의 뇌리에는 퍼뜩 지나가는 생각이 있었다.
<우선 조소저와 도옥의 내상부터 치료하고 보자!>
그러면 무슨 방도가 있을 것같아 문 밖으로 나가는 선비를 급히 불러 세웠다.
[잠깐! 할 말이 있소.]
그러자 마악 방문을 닫으려던 선비는 천천히 되돌아서며 양몽환에게 고개를 돌렸다.
[무슨 말이오?]
[지금 여기 있는 두 사람의 상처가 중하오. 치료할 약이라도 있는가 대국사에게 물어보시오.]
했다. 그 말에 청의의 선비는 뜻밖의 말을 하는 것이었다.
[약? 약은 나에게 있소!]
[그럼 주시오!]
그러나 선비는 천천히 고개를 흔들었다.
[줄 수 없소. 우리 대국사께서는 먼저 당신들의 결정을 들은후에 주라는 명령을 하였소.]
[결정?]
[그렇소. 속히 거취를 정하시오. 그러면 이 약을 드리겠소!]
[도대체 그게 무슨 약인데?]
[이 약으로 말하면 상처를 치료할 수는 있으나 상처를 치료하는 대신 중독이 된다는 것이오!]
[중독?]
[그렇소.]
하고는 품 속에서 작은 병을 하나 꺼내 보이며 다시 말을 이었다.
[이 병 안에 든 약을 먹으면 어떠한 상처라도 즉시 고통이 사라지긴 하지만

약을 하루도 먹지 않으면 상처가 재발할 뿐 아니라 고통도 더하오. 그래서 결국 중독되고 마는 것이오.]
[그럼 치료약이 아니라 중독약이군......]
[그렇소. 본인도 결국 이 약에 중독되어 천축국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는 것이오.]
하면서 후르륵 한숨을 토하는 것이 좀전과는 정반대의 유연한 태도였다.
<......그럼 이 자도 중원땅 사람인 모양인데......그건 그렇고 묻지도 않는 말까지 할 필요가 없지 않은가?>
하고 고개를 갸웃했던 양몽환은 역시 음성을 부드럽게 했다.
[무슨 까닭에 자세한 설명을 하는 겁니까?]
[아! 그것은 여러분들도 나처럼 중독되어 고통을 받을까 염려해서 하는 말이오.]
[음......고맙소. 그런데 얼마나 먹으면 중독되오?]
[여섯번! 그렇소. 여섯번만 먹으면 중독되고 말지요.]
[여섯번?]
[그렇소. 그러나 우리들은 하루에 한 알씩을 먹지 못하면 정신이 혼미해지고

지루한 고통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고통을 없애려고 대국사 밑에서 일하는 것이오.?

그런데 하루에 꼭 한 알씩만 주기 때문에 중원 땅의 많은 사람들이 대국사 밑에서

한 알의 약을 얻어 먹고 고통을 잊기 위해 충성을 다하는 것이오.

한 알 정도는 별 영향이 없겠지만 두 알 이상은 극히 위험하오.]
[음......]
[그런즉 상처의 고통을 잊으려고 한알 두알 먹다가는 나처럼 중독이 되는 것이지요.]
하고는 길게 한숨을 물아쉬는 것이었다.
[그럼, 한 알은 상관없겠소?]
[그렇지요. 한 알 정도는 상관없습니다.]
하면서 들고 있던 약병을 양몽환에게 건네주었다.

<......여하간 청의 선비의 행동이 이상하군......

대국사를 따라 천축국으로 간다는 결정이 없으면 주지 말라고 했다면서......>

여러가지 생각으로 머리가 복잡했지만 우선 건네주는 병을 안받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한 알 정도는 인체에 해가 되거나 중독되지는 않고 고통을 잊게 해준다는 말에

조소접과 도옥을 생각하고 병마개를 뽑았다.


 

'무협지 > 풍우연귀래' 카테고리의 다른 글

50. 피비린내 나는 무술계  (0) 2014.10.29
49. 절절한 여인의 한  (0) 2014.10.29
47.순결 빼앗긴 여인  (0) 2014.10.27
46. 인과응보  (0) 2014.10.27
45. 카멜레온의 실상  (0) 2014.10.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