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지/풍우연귀래

44. 경혼대진법

오늘의 쉼터 2014. 10. 27. 12:15

44. 경혼대진법

 

조소접이 독가루의 명수를 더듬고 있는 동안 도옥은 도옥대로 어떤 결심을 하고 조소접을 불렀다.
[조소저! 어쨌든 우리가 진(陣) 속으로 들어가 봅시다.]
조소접도 주저하지 않고 즉각 호응했다.
[그래요. 양상공은 여기 남아서 후원하도록 하세요.]
[좋습니다. 그런데 조소저. 우리 둘이서 들어가기 전에 한가지 약속할 일이 있습니다.]
[무슨 약속을 또 해요?]
[별것은 아닙니다만 우리가 진 속에 들어가서 피차 역경에 처하면 서로 도와주기로

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다시 말하면 서로 위기를 구해주자는 것입니다.]
[좋아요.]
[그럼 이 도옥은 그렇게 믿고 앞장을 서겠습니다.]
하고는 달려나가는 것이었다.
이때 조소접은 절로 웃음이 터졌다.

<흥.... 죽기는 싫은 모양이지. 도옥, 네가 죽는 것을 바라는 나인데 뭐 구원해주기로 약속?......>

어림도 없다고 고개를 저으며 조소접은 급히 도옥의 뒤를 따랐다.
질풍같이 승려에게로 달려들던 도옥은 그때까지 눈을 감고 조는 듯 앉아 있는

 승려의 가슴을 겨누고 발길질을 했다.

그러자 눈을 감고 자는 듯이 앉아 있던 승려의 가슴에서 퍽! 하는 둔탁한 소리가 나더니

뒤로 석자나 뒹굴다 다리를 쭉! 펴며 쓰러지는 것이었다.
일격으로 맨 앞에 앉아 있는 승려를 쓰러뜨린 도옥은 잔뜩 진기를 돋우며

다음 승려들이 어떻게 행동하는가 그 반응을 살피는 것이었다.

그 옆에 바싹 붙어선 조소접은 두 자루의 비수를 각기 양손에 단단히 거머쥐고

역시 승려들의 반응을 기다렸다.
그러나 승려들의 반응은 너무나 냉담했다.

그 자리에 있는 승려가 다 죽고 마지막 자기가 죽을 차례가 된다해도 나는 모른다는 듯이

아니, 나 아닌 다른 동료가 죽든 말든 관계없다는 듯이 바위처럼 앉아 있기만 하는 것에

오히려 도옥과 조소접의 눈이 돌아버릴 정도였다.

그것은 꿈쩍하고 움직이기만 하면 죽을까 두려워서 죽은 척하고 앉아 있는 것같기도 하고

아니면 어떤 계략을 쓰기 위해서 시간을 기다리는 것같기도 한 것이다.

그래서 오히려 불안하기까지 한 조소접은 주위를 날카롭게 살피며 도옥에게 속삭였다.
[한 사람만 더 쓰러뜨려봐요.]
그러자 도옥은 서슴치 않고 주먹을 쥔? 오른 손을 높이 들었다가 그대로 한 승려의

머리를 겨누고 호되게 내려쳤다.
그 순간, 눈에서 불이 번쩍하도록 무지무지하게 머리를 얻어맞은 승려는 앉았던 자리에서

한 길이나 껑충 뛰어 오르며 두 팔을 마주 휘두르는 것이었다.
그러나 도옥은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고 휘두르는 승려의 손목을 움켜쥐며 앞으로 낚아챘다.

그 바람에 손목은 도옥에 잡힌 채한바퀴 재주를 넘고 정신이 쭈욱 나간 듯 흰자위를

걷어붙이는 것이었다.

도옥은 그러한 승려를 마구 흔들어댔다.
[이놈아! 죽는 것이 두렵지 않아!]
소리치는 도옥이 눈을 호랑이 눈처럼 부릅떴지만 중원땅의 말을 알아 듣지 못하는지

승려는 잔뜩 얼굴을 찌푸린채 노려보기만 하는 것이었다.
그때, 도옥은 노려보는 승려의 시선이 싫은지 주먹으로 승려의 면상을 쥐어박고는

손목을 쥔 손에 입이 일그러지도록 힘을 주었다.

그러자 우두둑 소리를 내며 승려의 손목뼈가 뒤틀리며 꺾어지는 소리가 요란히 들렸다.

듣기만 해도 소름이 끼치고 얼굴이 찌푸려지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런데다 지금 도옥이 손목을 비트는 수법은 삼음신니의 권보에 기록된 무공으로서

그 수법이 잔인한 것은 물론 아무리 강한 무공을 지닌 고수라도 짐승의 을음처럼

신음소리를 내며 쓰러지지 않을 수 없는 지독한 수법이었다.

그래서 지금 승려도 눈을 허옇게 까뒤집고 거품을 뿜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어찌된 일인가!
비명은 고사하고 아픈 표정도 짓지 않는 것이었다.

지금 비틀어진 팔이 어디 내 팔이냐는 듯이 잠잠히 앉아 있기만 하는 승려였다.
이에 그만 분통이 터진 도옥은 자기의 무공이 고작 이것밖에 안되는가 싶은 생각이 들어

씰룩거리며 입에 힘을 더 주어 다시 비틀었다.
그러나 마찬가지였다.

팔에 있는 뼈라는 뼈가 모두 꺾어지는 소리를 냈으나 승려의 얼굴에서는

눈꼽만치도 고통스러워 하는 기색이 없었다.
오히려 옆에서 보고 있는 조소접이 손으로 눈을 가리며 경악할 정도였다.
아무리 힘을 주어 관절이며 뼈를 다 비틀어 꺾어봐도 참을성이 많은지

아니면 초인간적인 웅후한 힘이 있는지 꼼짝도 없이 신음소리, 땀 한방울을 흘리지 않는

승려에게는 지독히 악랄한 도옥도 혀를 내두르며 물러서고 말았다.
[야하! 그놈들 지독한 놈들인데, 조소저 지금 봤죠? 안 되겠습니다.

물러섰다가 다시 계획을 세웁시다.]
하며 연신 놀랬다는 듯이 둘러앉은 승려와 쓰러진 승려를 번갈아 보는 것이었다.

그러나 조소접은 도옥처럼 물러서지 않았다.
[왜 물러서요? 항거할 능력이 없는 승려들이라면 이대로 들어가 지광대사의

시체를 취해 올 수 있지 않아요?]
그러나 도옥은 머리를 설레설레 내저었다.
[도대체 저놈들이 어떻게 된 것인지 고통이라곤 요만큼도 느끼지 않는 것이 아무래도 이상합니다.

그처럼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면 죽음인들 두려워하겠습니까?]
[흥! 그래서 겁이 난단 말이죠? 죽음을 두려워 않고 달려들까봐?]
[천만에. 상태가 이상할 따름이지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까짓 죽음쯤 두려워할 도옥이 아닙니다.

그러나 때가 때인 만큼 저놈들의 거동을 세밀히 관찰하고 행동을 해야만 실수가 없다 그런 말입니다.]
하는 말에 조소접도 어느 정도 수긍이 갔다.

그리고 얼핏 느껴지는 것도 없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런 것이 아닐까요?

일부러 우리들을 놀라게 하려고 어떤 기술(奇術)을 부리는 것이 아닐까요?]
[글쎄요...... 그러나 그렇게 단순하지는 않을 겁니다.]
하고 무엇인가 골똘히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성질이 차분하지 못한 조소접은 더 기다리고 있을 여유가 없었다.
[좋아요. 그럼 내가 한번 가서 보겠어요.]
하고는 진을 치고 둘러앉은 승려에게로 한 걸음 다가서는 것이었다.
그러한 조소접을 보며 도옥은 급히 생각했다.

<지금은 저 승려들이 죽은 듯이 앉아 있지만 조소저나 이 도옥이 지광대사의 시체 옆에?

가기만 하면 성난 파도같이 달려들지도 모른다......그러면......우선 조소저부터 구해야지......>

도옥답지 않게 조소접의 안위를 염려하며 도옥은 급히 조소접의 뒤를 따랐다.
이때 조소접은 죽은 듯이 앉아 있는 승려들을 헤치고 지광대사의 시체가 들어 있는

관(棺) 가까이 다가가고 있었다.
그 관 옆에는 파아란 등불이 세개나 밝혀져 있었고 마침 조소접은 그 등불 옆을 지나가고 있었다.
그러나 그때까지도 관 주위 승려들은 그대로 정좌(正座)한 채 다른 사람이 자기를 건드리지?

않으면 자기도 역시 남을 건드리지 않겠다는 듯 오불관언의 좌세로

지그시 눈을 감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러한 승려들을 휘둘러보는 도옥은 앞서가는 조소접을 불러 세웠다.
[조소저. 저 관속에 있는 시체가 정말 지광대사의 시체일까요?]
그러나 조소접도 알 길이 없었다.

속에 시체가 들어 있기나 한지,

또 들어 있다면 틀림없는 지광대사의 시체인지조차 모르는 조소접은

역시 도옥 이상으로 궁금하기 그지없었다.
[관 뚜껑을 열어봐야 알겠군요.]
하고 말한 조소접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멍하니 서 있기만 했다.
진 밖에서 이곳까지 들어올 때는 당장 달려들어 관 뚜껑을 열 듯 서두르던 조소접이

어찌된 셈인지 경황없이 서 있기만 하는 것이 도옥은 못마땅했다.
[아니, 왜 이러고 있습니까? 속히 관 뚜껑을 열어봐야 되지 않습니까?]
그러나 조소접은 서두르지 않고 다른 말을 했다.
[죽은 사람도 움직일 수 있나요?]
하고 묻는 것이었다. 이 너무나 허황된 질문에 도옥은 잠시 아연해졌다.
[뭐라구요? 죽은 사람이 어떻게 움직인단 말입니까?]
[그럼 참 이상하군요.]
종내 이상한 듯이 눈을 가늘게 뜨는 조소접이 아무래도 무엇인가 괴이한 일을 발견한 모양이었다.
[무엇이 이상하단 말입니까?]
[조금 전 내가 여기까지 왔을 때 관 뚜껑이 조금 움직이는 것을 봤어요.]
머리가 쭈뼛할 지경이었다.
[뭐요? 그게 정말이오?]
[왜 거짓말을 하겠어요?]
[흠...... 그렇다면 실로 괴이한 일이군요. 아무리 천축국에 괴이한 무공이? 있기로

시체가 들어 있는 관이 움직인다는 것은 이건 보통 문제가 아닙니다.]
[그럼 지광대사라는 자가 진짜로 죽은 것이 아닐 거에요.]
[그럴지도 모릅니다. 사람이 무슨 수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날 수 있단 말입니까?]
도옥은 점차 지광대사의 죽음을 의심하는 눈치였다.

그렇게 얼마를 섰던 도옥은 드디어 용기를 냈다.
[그럼 이렇게 합시다. 내가 관 뚜껑을 열어 보겠소.

그리고 조소저는 만일을 대비해서 주위의 승려들을 지키시오.]
그러면서 도옥은 등에 메고 있던 금환검을 뽑아 쥐며 고개를 끄덕였다.
[조심하시오!]
하고 조소접에게 격려한 도옥은 칼날이 싸늘한 금환검을 들어 관을 곧장 내려 찌르는 것이었다.
순간, 조소접은 잔뜩 진기를 모아 만약에 승려들이 달려들면 악랄한 독수를 퍼부어

닥치는대로 죽여버릴 각오였다.
그리고 주위를 날카롭게 휘둘러 보았다.
그러나 모든 사태는 의외로 벌어지고 있었다.

달려들리라고 생각했던 승려들은 도옥이 금환검으로 관을 찌르는지 어쩌는지 조차 모르는양

그대로 정좌한 채 앉아 있었다.

그리고 더 놀라운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그것은 도옥이 금환검을 날카롭게 휘둘러 곧장 관 뚜껑을 겨누고 힘껏 내려꽂자

관에서는 퍽! 하는 소리와 함께 금환검이 반이나 쭈욱 들어갔다.

이제 금환검에 힘을 주어 뽑아 내기만 하면 금환검이 빠져나오는 힘에 따라

관 뚜껑이 열려야 했다.?

그러나 이 어찌된 일인가.

아무리 힘을? 주어도 관 뚜껑이 열리기는 커녕 금환검조차 끄덕도 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리고 더 놀라운 건 관 속에 박힌 금환검이 슬금술금 더 박혀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꼭 관 속에서 금환검을 잡아 당기는 것같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위로 뽑는 금환검이 안으로 들어갈리가 없었다.
아무리 힘을 주어 빼고 흔들어도 끄덕도 하지 않고 더 안으로 들어가기만 하는데는

담이 큰 도옥도 눈이 홱 돌아갈 지경이었다.

다급하기로 말하면 이러한 경우보다 더 당황하고 다급한 일이 또 어디 있겠는가.

이마에서 땀이 날 지경으로 속으로 끌려 들어가는 금환검의 칼 자루를 힘껏 움켜 잡은

도옥은 얼마만에야 제 정신을 찾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러한 것을 알리 없는 조소접은 죽은 듯이 앉아 있는 승려와 도옥을 번갈아 보면서

눈에 불을 켰다.

이때 도옥이 음성을 낮추어 조소접을 불렀다.
[조소저! 지광대사는 죽지 않았을 뿐 아니라 똑똑한 정신으로 지금 관 속에 누워 있소.]
순간, 조소접은
<그러면 그렇지 무슨 수로 정말 죽은 사람이 살아난다고?>
하면서 자기의 육감이 적중하는 것에 은근히 기분이 좋았다.
그러나 관 뚜껑도 열어 보지 않은 도옥이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의아하게 여기며 눈을 크게 떴다.
[어떻게 알죠?]
[이 금환검을 안에서 움켜 쥐고 놓아주지 않소.]
[그래요? 내가 도와줄께요.]
[아니, 혼자 뽑을 수 있습니다.]
하고 대답한 도옥은 오른 손으로 금환검을 단단히 움켜 쥐고 위로 힘을 줌과 동시에

번개같이 왼 팔을 휘둘러 관 뚜껑을 내리쳤다.
순간, 관 위에 놓여있던 세개의 등불이 굴러 떨어져 꺼지고

그와 동시에 금환검이 꽂힌 관 뚜껑에 금이 가며 그렇게 요지부동이던 금환검이

쭈욱 뽑아져 나오는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뽑아든 금환검으로 도옥은 다시 관을 내려칠 태세였다.
이때 조소접은 번개같은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저러다 도옥이 정말 지광대사를 죽이기라도 한다면 란이 언니의 상처는 누가 고치지?>
하는 생각에 급히 도옥을 불렀다.
[도옥. 잠깐만!]
이때 도옥은 금환검을 들어 올린 채 고개를 돌렸다.
[?............]
[관 속에 있는 자가 틀림없는 지광대사에요?]
[아직 모르겠습니다.]
[한번 보세요.]
도옥은 금이 갈라진 사이로 고개를 숙이고 안을 내려다 보았다.
그 찰나!
금이 난 관 뚜껑이 쩍! 열어지면서 그 사이로부터? 시커먼 손이 불쑥 튀어나오며

도옥의 몸을 와락 껴안는 것이었다.

실로 눈깜박할 사이에 일어난 일이라 끽 소리도 못하고 다리만 버둥거렸다.
이때 다른 하나의 시커먼 손이 또 튀어나오면서 도옥의 맥혈을 쥐려고 하는 바로 그 순간!
조소접은 머리가 어지러웠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냥 두면 도옥은 저 시커먼 손에 맥혈이 짚혀 죽는다.

그리고 지금 바로 이 시각에 비수를 날리면 도옥과 지광대사를 일시에 죽일 수 있다...

그러나 언니, 언니는 심한 내상을 입은 몸. 지광대사가 아니면 치료할 수 없는 내상이 아닌가......

그렇다면 도옥은? 아니다. 애초에 약속하기도 했고...... 조금 더 살려 두어서 이용한 다음......>

죽여버리자 생각하는 조소접은 너무나 다급한 마음에 앞 뒤도 가리지 않고

도옥의 맥혈을 쥐려는 시커먼 손을 겨누고 비수를 날리고 말았다.
그 순간! 새파란 검광이 번쩍하고 사라지는 것과 동시에 선혈이 사방으로 튀기며

시커먼 손은 손목이 끊어져 땅에 떨어지고 두어번 펄떡펄떡 뛰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머지 시커먼 손도 스르르 관 속으로 들어가 버리고 말았다.
그래서 위기를 모면한 도옥은 황망히 자세를 바로 잡으며 조소접에게 인사를 했다.
[구해줘서 고맙소.]
그러나 너무나도 순식간에 생각하고 던져버린 비수여서 조소접도 정신이 얼떨떨했다.

그리고 시커먼 손목이 떨어져 나가는 것을 보고서야 조소접도 경악했다.

그러나 한번 엎어버린 물은 다시 담을 수 없는 법,

순간적으로 손목을 자른 것이나 도옥을 구해준 것이나 이미 쏟아져 버린 그릇의 물과 같음을 아는

조소접은 후회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다.
이왕지사 도옥을 구해준 결과가 된 지금, 이 기회에 도옥의 마음을 사로잡아 유효적절히 이용하리라

결심한 조소접은 도옥에게 대단한 관심을 가지는 듯 걱정까지 해주는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다친데는 없어요?]
[다행히......소저의 구원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하는 바로 그때였다.
그때까지 죽은 듯이 정좌하고 있어서 언제까지나 움직여 볼 것같지 않던 승려들이 차례대로

일어나면서 그 많은 등불도 순번대로 하나 둘...... 저절로 꺼지는 것이 아닌가!
그리하여 마흔 아홉개의 등불은 삽시간에 모두 꺼지고 주위는 금새 어둠으로 휩쓸려들고 말았다.
그러자 내심 당황한 도옥은 낭패라는 듯이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과연 이 도옥의 짐작이 들어 맞는군......우리는 이제 알 수 없는 기이한 진 속에 갇히고 말았소......]
비록 조소접과 도옥의 무공이 강하다 해도 상대가 워낙 괴이한 기술을 구사하는 천축국의 승려들이고

더구나 그들이 이제 어떠한 수법으로 나오는지 예측할 수 없는 일이라 당황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도옥은 정신을 바싹 차리고 조소접을 눈으로 찾았다.
[조소저. 이제 무슨 괴이한 일이 일어날 것같습니다. 우리가 협력해서 위협을 막아내도록 합시다.]
하는데 조소접의 대답보다 먼저 승려들의 무리 중에서 싸늘한 웃음소리가 터지다 뚝 그치며

카랑카랑한 고함이 터져나왔다.
[너희들은 이제 우리 경혼대진(驚魂大陣)에 빠지고 말았다.

목숨이 아깝고 이 세상을 하직하고 싶지 않으면
저 관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너희가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하는 것이 아닌가!
순간, 도옥은 급히 주위를 살펴 보았다.

그러나 그 많은 승려들이 모두 일어나 어둠 속에서 희끗희끗 움직이는 것이 보일 뿐

싸늘한 밤 바람이 목덜미를 스치고 스산한 야기(夜氣) 속에 살기(殺氣) 만이

은은히 넘치고 있었다.
그러는 한편 조소접은 밖에 남기고 온 양몽환의 안위가 염려되었다.

<......아직도 밖에 있는지, 아니면 이 진 속으로 휩쓸려 들었는지, 어두워서 보이지도 않고......>

그렇다고 소리내어 양몽환을 불러볼 수는 더더구나 없는 일이었다.

<......양상공도 무공이 강한 만큼 무슨 도리를 취했겠지......>

생각하며 애써 양몽환의 걱정을 떨쳐 버리려고 머리를 흔들며 도옥을 가만히 불렀다.
[도옥! 우리들 보고 저 관 속에 들어가라는데 그게 무슨 이유일까요?]
그러자 도옥은 조소접에게 바싹 다가서며 은근히 접근해 오다 뜻밖의 엉뚱한 말을 하는 것이었다.
[조소저! 오늘밤 우리가 저 관 속에 함께 들어가면 한 쌍의 원앙이 신방을 차린 것같을 겁니다.]

<뭐라고? 이 짐승같은 놈아! 지금 때가 어느 때라고 죽음을 앞에 놓고서도 뭐 한 쌍의 원앙?......>

얼굴에 침이라도 뱉아주고 싶었지만 꼭 참고 못들은 척했다.
그러자 도옥은 자기가 한 말이 너무 지나치다고 생각했는지 곧 다시 말했다.
[조소저는 아무 염려마십시오. 이까짓 놈들에게 우리들이 죽다니 말이나 됩니까?]
그제야 조소접도 부드러운 말을 할 마음이 생겼다.
[그래요. 죽을 수는 없어요.

그런데 아까 승려들이 우리와 함께 싸우지 않은 것은 우리들을 관 가까이

유인하려는 계획이었던 모양이죠?]
[그런 것같습니다.]
[그런데 자꾸만 이상한 생각이 드는군요.]
[또 무엇이 이상합니까?]
[아까 관 속에서 나온 시커먼 손을 비수로 잘라 버렸는데도 신음소리 하나 내지 않으니 말이에요.]
[글쎄요. 그것도 일종의 기술(奇術)일 겁니다.

다시 말하면 요가술의 무공을 터득한 사람이라면 어떠한 상처의 고통도 느끼지 않는다는 것이죠.]
[그래서 이 진 안으로 들어올 때 두 명의 승려에게 상처를 입혀도 신음소리 하나 내지 않았군요.]
[그렇습니다. 그런데 지금 상태로서는 이 정도의 괴이한 변화보다 더 괴상하고도 악독한 변화가

있을 겁니다.]
그러자 조소접은 지금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 양몽환을 찾아 힘을 합해야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그렇다면 우리 둘만의 힘만으로는 어렵지 않겠어요? 양상공을 불러 함께 대척하는 것이 어떨까요?]
그러나 도옥은 그럴 필요가 없다는 말을 했다.
[지금으로서는 진의 형세가 이미 이루어진 것인 만큼 움직이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아직 진을 변동시켜 공격을 가해오지는 않지만 우리들이 밖으로 나가려고 한다면

필시 그들이 선수(先手)로 공격해 올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럼 양상공이 어떠한 위험이 닥친다 해도 상관없다는 말인가요?]
[조소저와 양형은 어디까지나 다릅니다.]
[물론 다르죠. 나는 여자이고 양상공은 남자이고.]
[그런 뜻이 아닙니다.

만일 이 도옥이 양형을 구한다면 즉 원수를 구해주는 것과 같습니다.

더구나 여자 관계에서나 싸움에서나 양형과 이 도옥은 도저히 양립(兩立)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양상공이 어떻게 되든 내버려 두라는 말이군요.]
[조소저가 꼭 대답을 듣겠다면 그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 좋아요. 나는 진을 빠져나가겠어요. 혼자 여기서 싸울테면 싸워봐요.]
그러나 도옥은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오히려 냉소를 터뜨리는 것이었다.
[흥! 조소저 혼자서 이 진을 뚫고 나가지 못할 겁니다.]
하는 말에 조소접은 상큼 눈꼬리를 치켜 올렸다.
사실 조소접은 될 수록 도옥에게 요염한 미태를 보여서 그의 마음을 사로잡아 이용하려고 했다.

그러나 곧 그 마음이 변해지고 말았다.

그뿐 아니라 지금의 형편으로서는 양몽환이 조소접의 마음속에 가득히 들어 있어

우선 양몽환의 안위가 염려되어 조바심까지? 나는 것이었다.

그래서 조소접도 도옥의 말을? 냉정히 받아 넘겼다.
[염려말아요!]
하고는 몇 걸음 옮기며 목청을 돋우었다.
[양상공! 어디 있어요?]
그러자 양몽환의 대답보다 도옥이 다급히 소리쳐 조소접을 불러 세웠다.
[잠깐!]
순간, 조소접은 혹시 도옥이 암암리에 뒤에서부터 공격하지 않을까 바싹 경계하며 후딱 몸을 돌렸다.
[무슨 일이죠?]
[양몽환은 지금쯤 죽었는지도 모르오. 지금 이 상황에서는 이 도옥과 힘을 합치는 것이 좋을 거요.]
[그러면 나더러 당신 명령에 따르란 말인가요?]
[그야 물론입니다.

무공이나 지략에 있어서도 결코 이 도옥은 조소저에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자부합니다.

그런데 이 도옥이 조소저의 명령을 따를 것이라고 생각합니까?]
[흥! 대단한 허세군요.]
[허세? 천만에, 사실이 그런걸 어쩝니까?

더구나 조소저와 이 도옥이 여기까지 온 것은 주소저의 내상을 치료하자는 것이

목적이라는 것을 잊지 마시오.]
하는 조소접과 도옥의 사이에는 차가운 기운이 돌았다.
만일 조금만 더 이와같이 대화가 진전되었다면 승려보다 먼저 도옥과 조소접이 맞붙었을 것이다.

그러나 바로 이때 다행히 승려들의 무리 가운데서 좀전의 음성이 다시 차갑게 터져나왔다.
[이제 경혼대진은 곧 움직이게 될 것이다.

그래도 관 속으로 들어가지 않는다면 오늘 이 시각이 마지막이라는 것을 명심하라!]
그러자 조소접은 발칵 언성을 높여 고함을 쳤다.
[여보세요! 적으로 싸운다면 그만이지 무엇 때문에 관 속으로 들어가라는 거요?]
하고 내뱉듯 하는 말에 승려의 음성은 즉각 대답해왔다.
[우리 대국사께서는 일찍이 우리들에게 분부한 바가 있소.

그것은 주소저의? 부하들을 해치지 말 것이며 더구나 당신 조소저를 해치면 안된다는 분부를 내렸소.

만일 그대가 조소저가 아니었더라면 벌써 죽어 살이 석었을 거요.]
그러자 도옥은 씨익 웃으며 조소저를 바라보았다.
[조소저! 당신 때문에 이 도옥이 또 한번 목숨을 건진셈이군......흥!]
그러나 조소접은 도옥의 비꼬는 듯한 말에는 대꾸도 하지 않고 양몽환의 안위부터 물었다.
[그럼 우리와 같이 온 사람은 어떻게 됐어요?]
[모두 상처를 입고 사로잡혔소. 남은 사람은 당신들 두 사람뿐이오.

만일 나의 말을 듣지 않고 어물거리다가 경혼대진이 움직이면 죽거나 심한 상처를 입을 것이오.

물론 우리 대국사의 특별한 분부가 있었지만 부득이한 일로서 할 수 없는 일이오.]
하고 위협을 주는 것이었다.
그러자 도옥은 약간 두려움이 생기는 모양이었다.
[조소저. 할 수 없습니다. 저 관? 옆으로 가 봅시다.

그의 말을 전적으로? 믿기는 곤란하지만 사태가 위중한 만큼 그의 말을 따릅시다.]
하고 나직이 속삭이는 것이었다.
이때 조소접은 그렇게 안위를 걱정하던 양몽환이 사로잡혔다는 말에 당황하고 또 기운이 빠졌다.

그래서 우선 도옥의 말대로 따르는 것이 현명하리라 생각하고는 도옥이 이끄는대로 걸음을 옮겼다.
도옥과 조소접이 관 옆으로 다가갔을 때 다시 승려의 음성이 어둠 속에서 들려왔다.
[관 속으로 들어가시오!]
그제야 도옥도 참지 못하겠다는 듯이 목에 핏대를 세우며 크게 외쳤다.
[도대체 당신은 어떤 사람인데 몸을 나타내지 않고 소리만 치는거요?]
그러나 승려 쪽에서는 일언반구 대답이 없었다.
그러자 도옥은 씨익 웃었다.
[흥! 남자하고는 말하지 않겠다 이 말이군......]
하고 고소를 금치 못하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컴컴한 관 속을? 들여다 보았다.

그러나 관 속에는 아무 것도 들어있지 않은 듯 보이는 것이 없었다.
[도옥! 이 관 속에 분명히 사람이 들어 있었고 더구나 손목까지 잘린 사람이 있을텐데

아무 것도 없는 것이 이상하군요.]
그러나 도옥은 놀라워하지도 않고 여전히 실실 웃기만 했다.
[이상할 것 없소. 지금 우리는 저들의 계략에 빠진 거요.

우리들을 이 관 옆에까지 오도록 위장한 것이오.]
하는 말에 조소접도 같은 생각이 들었다.

<...... 수 십명의 승려가 관을 에워싸고 있으면서도 우리를 막지 않는 것은?

도옥의 말대로 우리를 이곳까지 유인하기 위함인 것을......

결국 호랑이 굴에 제 발로 찾아온 격이군......>

하고 생각할 때 도옥은 무슨 결심을 했는지 먼저 입을 열었다.
[조소저. 지금의 사태로서는 싫거나 좋거나 조소저와 이 도옥이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살아야 할 형편입니다.

그러니만큼 우리들이 힘을 합하면 살아날 기회가 있겠지만 그렇지 않고 서로 흩어지면

그만큼 죽음이 가까워질 것입니다.]
조소접은 옳은 말이라 생각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양상공의 생사도 모르고 더구나 언니의 중상은 곧 치료를 요하는 위급한 시기가 아닌가.

그런데다 내가 도옥과 이 경혼대진을 뚫고 빠져나가지 못한다면 우리들은 그야말로 완전 참패요,

풍지박산이 아닌가.
그러니만큼 어떤 애로가 있더라도 우선 도옥과 협력해서 이 위기를 수습해야겠다......>

하고 생각을 모은 조소접은 쾌히 대답했다.
[좋아요. 이 진을 돌파하기 위해서는 서로 협력하도록 해요.]
[그럼 됐습니다. 그런데 조소저는 지금 이 사태를 어떻게 뚫고 나가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까?]
[글쎄요. 별로 신통한 방법이 없군요. 당신은?]
[저로서는 이렇습니다. 아까 승려의 말을 모두 믿는 것은 아니지만 함부로 살상(殺傷)하지는

않는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런 만큼 이 경혼대진이 어떤 위력을 가지고 있나 구경이나 했으면 합니다.]
[그럼 어떻게 싸우면 되겠어요?]
그러나 도옥은 곧 대답하지 않고 어둠이 싸인 주위를 휘둘러볼 뿐이었다.
모든 삼라만상은 깊은 밤 어둠에 싸여 그 형체를 알아볼 수 없고 다만 주위는 고요한

정적만이 감돌고 싸늘한 냉기만이 서리는 것이었다.
얼마 동안 살벌한 주위를 휘둘러 보던 도옥은 천천히 입을 열어 화제를 바꾸었다.
[조소저. 이 도옥의 생각으로는 이 관 속에 들어 있던 자가 바로 경혼대진의 지휘자인 것같습니다.]
[그래요?]
[그런 것같습니다.

그런 만큼 우선 지휘자부터 쓰러뜨리고 그 다음 경혼대진과 맞서 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고는 무슨 생각이 났는지 진기를 돋우어 옆에 있는 관을 와락 밀어버리는 것이었다.?

그러자 관은 한바퀴
돌면서 제대로 서고 관이 서 있던 곳이 나타났다. 그러나 다른 곳과 같은 흙바닥이었다.
이때 도옥은 한동안 그 흙바닥을 주시하다 말고 황망히 조소접을 이끌고 뒤로 물러서는 것이 아닌가!
[조소저! 틀렸소. 우리는 지금 적의 지연전술(遲延戰術)에 넘어 갔소. 속히 도망갑시다.]
그러나 도옥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난데없는 불빛이 번쩍이면서 순식간에 수 십개의 파아란 불빛이

밝혀지는 것이 아닌가!
그와 함께 사방 팔방에서 수 많은? 그림자가 어른거리며 한 걸음 한 걸음? 도옥과 조소저를 향하여

육박해 들어오고 있었다.

아마 그들이 위협하는 경혼대진이 드디어 행동을 개시한 모양이었다.
그런데 승려들은 하나같이 모두 왼쪽 손에는 파아란 등불을 들었고 역시 오른 손에도

무슨 물건을 쥐고 있는데 잘 보이지는 않았다.

그리고? 오색금포(五色金袍)에 장발(長髮)을 내려뜨리고 엄숙한 표정으로 육박해 오는 것이었다.
이렇듯 괴이하고 해괴한 차림에다가 파아란 불빛까지 번쩍이는? 승려들의 모습은 흡사 무덤 속에서

되살아나는 유령과 같아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다.
그런데다 더구나 여자인 조소접은 입술이 마르고 가슴이 서늘해져 견딜 수가 없었다.

옆에? 있는 사람이 도옥이 아닌 양몽환이라면 품 속을 파고 안겼을 것이지만 도옥 앞에서는?

차마 할 수가 없어 겨우 음성을 낮추었을 뿐이었다.
[도대체 어쩌자고 저 모양으로 오는 거죠?]
그러나 도옥 역시 두려운 마음이 없을리 없었다. 애써 마음을 진정시키며 헛기침을 했다.
[머리를 내려뜨리고 더구나 파아란 등불까지 든 것은 우리들을 놀라게 하려고 하는 것일 거요.

그러나 오른 손에는 혹시 기독(奇毒)의 암기(暗器)가 있는지 모르니까 조심해야 합니다.]
그러는 동안 승려들과의 거리는 겨우 일장(一丈) 정도로 가까워졌다.

이때 도옥이 느닷없이 맨앞에 서서 오는 승려를 향하여 몸을 날렸다.
도옥이 먼저 달려드는 바람에 용기가 솟은 조소접도 휙! 오른 팔을 휘둘렀다.
그 순간! 조소접의 팔에서 튀어나간 섬광은 일직선을 그으면서 승려의 가슴팍을 노리고 들어갔다.
순간, 탁! 하는 둔한 소리와 함께 한 자루의 비수는 승려의 가슴을 정통으로 파고 들어갔다.

그러나 다음 순간, 승려의 가슴 깊숙이 묻힌 듯 들어가던 단검이 뜻밖에 바위에 맞은 듯이 튕기며

툭 튀어 나오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승려들의 가슴에는 어떠한 암기도 막아낼 수 있는 호심경(護心鏡)을 차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한편, 승려의 손목 맥혈을 노리고 달려든 도옥도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것은 승려가 먼저 등불을 자기에게로 던지며 무엇인가 쥐고 있던 오른 손을 펼치는 것이 아닌가.

그러자 돌연 파아란 불꽃이 사방 팔방으로 불꽃을 튀기며 떨어지는 것이었다.
순간, 자지러지게 놀란 도옥은 뻗쳤던 손을 거두었으나 이미 도옥의 소매 끝에는 파아란 불똥이

떨어져 마구 타들어오고 있었다.
이때 이 파아란 불이 독불(毒火)이란 것을 직감한 도옥은 급히 소매를 흙바닥에 비벼댔다.
그러나 이미 팔에 시커먼 자국을 낸 화상(火傷)은 조금씩 쭈셔오는 것이었다.

<...... 굉장한 독불이군......그렇게 진기를 모았는데도 화상을 입다니......>

혀를 내둘렀으나 그렇다고 화상입은 부위를 도려낼 수는 없는 일이었다.
이때, 수 십개의 등불은 여기 저기서 어지럽게 날고 오색금포를 입은 승려들은

허깨비같이 휘청휘청 걸어오며 조소접과 도옥을 겹겹으로 에워싸고 말았다.
그러나 승려들은 더 다가오지 않고 어느 정도의 간격을 벌리고 멈추어 서는 것이었고

그와 함께 먼저 외치던 음성이 다시 터져나오는 것이었다.
[우리 대국사님께서는 수 차에 걸쳐 그대 조소저를 다치지 말라는 분부가 있었소마는

그래도 망령되이 이 진을 뚫고 나가려 한다면 아무리 국사님의 분부가 엄중하다 해도

우리는 그냥 두지 않을 것이오.]
그러자 조소접은 도옥을 돌아보며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물었다.
[도옥! 그렇다고 저들이 하는대로 기다릴 수 만은 없잖아요.]
그러나 도옥은 조급해 할 것이 못된다는 듯 여유있게 태세를 취했다.
[하여간 그들의 말로는 이 진을 뚫고 나가지만 않으면 죽이지는 않을 모양이오.

어디 어떻게 하는가 구경이나 합시다.]
하고는 도망가기를 단념한 듯 그 자리에 털썩 주저 앉는 것이었다.
도옥이 먼저 여유있게 주저 앉는 것을 본 조소접도 엉거주줌 따라 앉았다.

도옥을 따라 엉거주춤 앉기는 했으나 불안하고 초조하기는 매일반이었다.
[도옥. 도대체 어떻게 하려는 거에요. 이렇게 앉아서 죽기만 기다리겠다는 것인가요?]
[죽기를 기다려? 천만에.]
[그럼?]
[이까짓 진쯤 뚫고 나가지 못하는 도옥이라면 어찌 무술계를 제패하겠다는

야망인들 품을 수가 있었으며 무슨 면목으로 무술인들을 대할 것이오?]
[그러면 뚫고 나갈 자신이 있다는 말인가요?]
[물론입니다. 이 도옥은 미리 준비를 시켜 놓았습니다.

조금만 기다린다면 이 도옥의 부하 수 십명이 올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도 이까짓 진쯤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런 만큼 조소저는 그동안 조식이나 해 두시오.]
하고는 먼저 눈을 지그시 감으며 조식을 취하는 것이었다.

수 십명의 승려와 대치한 가운데서 눈 하나 까딱
않고 호기있게 말한 도옥이 조식을 취하는 것을 보고서야 조서접도

돌아앉아 눈을 감고 조식을 취할 수 있었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급히 달려오다 우뚝 멈추어 서는 듯한 발자국 소리에 조소접은 황망히 눈을 떴다.
그리고 눈을 크게 뜨는 조소접의 시선에는 회색승의(灰色僧衣)를 입은 한 명의 승려가

조소접 앞에 우뚝 서서 눈을 부라리고 있는 것이 들어오는 것이었다.
그 바람에 소스라치게 놀란 조소접은 다급히 소리를 질렀다.
[도옥! 누가 왔어요.]
하고 옆을 보자 분명히 있어야 할 도옥이 어디로 갔는지 자취도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그야말로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져버린 도옥을 두리번거리며 찾는 조소접은

가슴이 일시에 탁 막히는 것같고 놀라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어디로 갔을까?......>

그러나 또 언제 그 많던 블빛이? 꺼졌는지 주위는 어둠뿐이고 눈앞에는 도옥 대신?

회색 승려가 버티고 서 있을 뿐이었다.

아무리 마음을 굳세게 가지려 해도 오금이 저리는 듯 입안에 침까지 마르는 조소접이었다.
이때 드디어 회색 승려의 차가운 음성이 터졌다.
[지금 당신은 기독(奇毒)에 중독되어 있소. 이미 저항의 기력도 빠진 몸이오.

그러니 명령대로 따르시오!]
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조소접은 급히 그러나 암암리에 운기해 보았다.

그러나 가슴이 답답하고 전신에 진기가 통하지 않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음......큰일났구나......>

그러는데 다시 승려의 음성이 터졌다.
[그래도 믿지 못한다면 나의 일장을 받아 보시오.]
하는 말과 함께 오른 팔을 번쩍 들었다.
그 순간, 조소접은 전신의 기력을 다해 승려의 일장을 막으려고 팔을 올렸다.

그러나 그것은 너무나 어이없는 행동이었다.

마치 거의 죽어가는 사람이? 그래도 마지막 기운을 다해 허우적거리는 것에?

지나지 않았고 그러한 그녀의 손목은 쉽게 승려의 손아귀에 움켜 쥐어졌다.]
[이만하면 믿겠소? 당신은 도옥보다 총명하지 못하군......]
하고 코웃음을 터뜨리는 승려의 비웃음을 들으며 조소접은 입술을 깨물었다.

<......이렇게 맥없이 승려의 손에 죽어갈 수는!>

없다고 결심한 조소접은 벌떡 몸을 일으키면서 승려의 손아귀에서부터 손목을 빼려고 했다.
그러나 힘을 쓰려는 그 순간,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을 느끼며 그대로 풀썩 주저앉고 말았다.

마음대로 일어날 기력도 없을 뿐 아니라 기운을 쓰려고 조금만 움직여도 가슴이 조여지며

숨이 막히는 것에 모든 것을 체념한 조소접은 흙바닥을 내려다 보며 울분조차 토하지 못했다.
그제야 승려는 조소접이 항거할 기력이 없음을 알고는 약간 음성을 낮추는 것이었다.
[공연히 반항할 생각은 안하는 것이 좋을 거요. 고통을 받고 싶다면 모르지만.]
하고는 움켜 쥐었던 조소접의 손목을 몇 번 만지작거리고는 아까운? 물건이라도 놓는 듯

천천히 손을 놓았다.

그리고는 은근한 목소리로 유호하듯이 말하는 것이었다.
[고통을 받고 싶지 않으면 소승을 따라 이곳을 떠나도록 하는 것이 좋을 거요.]
[?......어디로 가자는 거죠?]
[우리 대국사님이 계신 곳으로 가서 증인이 되어 주시오.]
[증인?]
[그렇소. 앞으로 오일 후에는 우리 대국사님이 다시 소생합니다.

그때 옆에 지켜 섰다가 확실히 소생한 것을 주약란소저에게 말해 주십시오.]
[뭐라고요? 그럼 우리 란이 언니도 이곳에 왔단 말인가요?]
[아니, 아직 오지는 않았습니다만 곧 도착할 거요.]
하고는 곧이어 다시 말했다.
[소저. 이곳에 오래 있으면 안 됩니다. 어서 소승을 따라 오시오.]
[도대체 어디를 가자는 거죠?]
[바람과 비를 피할 수 있는 곳으로 가자는 것이오. 그곳에는 양몽환과 도옥이 기다리고 있소.]
<......양상공!......그럼 가야지!>
[좋아요. 안내해요.]
승려는 더 말하지 않고 조소접을 안내하며 걸음을 옮겼다.
그때 앞서 가는 승려는 지척을 분간할 수 없는 어두운 밤길을 마치 대낮에 대로를 활보하듯

거침없이 걸어가 굽어진 길을 돌고 돌아 이윽고 어느 큰 저택 앞까지 안내하는 것이었다.
눈을 크게 뜨고 둘러봐야 병풍처럼 둘러싸인 높은 산일 뿐 도저히 이렇듯

큰 저택이 있을 만한 곳이 못되었다.

그러나 눈 앞에 우뚝 서 있는 저택은 어느 궁궐못지 않을 만큼 웅장하고 또 호화스러웠다.
앞서 걸음을 멈춘 승려는 육중한 대문? 앞에서 잠시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문고리를 쥐고? 탕! 탕!

정확히 두번을 두들기자 꼭 닫혔던 대문이 저절로 스르르 열리는 것이었다.

그러자 승려는 조소접에게 들어오라는
손짓을 하고 따라 들어오는 조소접을 대청 앞에서 멈추어 서게 했다.
대청의 중앙에는 관(棺)이 하나 놓여있고 그 관 위에 피워놓은 향로(香爐)에서는

향긋하고도 어쩌면 곰팡이 비슷한 냄새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조소접을 대청 안까지 안내한 승려는 여봐란 듯이 주위를 휘둘러? 보고는

몸을 한바퀴 돌리다 조소접 앞에서 멈추어 섰다.
[여기서 잠깐 기다리시오. 무슨 급한 일이 있으면? 손뼉을 두 번치시오.

그리고 관을 만지거나 대청? 밖으로 나가는 것은 아예 생각도 하지 마시오.]
조소접은 얌전히 한쪽 구석에 앉았다.

그러나 관 속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궁금했다.
[저 관 속에 무엇이 들어 있죠?]
[무엇이 들어 있느냐구요? 말을 그렇게 함부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저 관 속에는 우리 대국사님이 누워 계십니다.]
하고 잠시 말을 끓었다가 다시 이었다.
[만일 관을 조금이라도 건드리면 용서치 않을 것이오.]
위협조로 말한 승려는 휭! 하니 대청을 나가는 것이었다.
승려가 나가고 아무도 없는 대청을 휘둘러 보던 조소접은 그제야 역시 한쪽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있는 양몽환과 도옥을 발견하고는 깜짝 놀랐다.
[도옥! 어떻게 이곳까지 오게 됐죠?]
그러자 도옥은 무릎 위에 파묻었던 고개를 천천히 들어 올리며 쓸쓸히 웃는 것이었다.
[미안하오. 너무 갑자기 벌어진 일이어서 알릴 사이도 없었소.]

<흥......저만 살려고 했을 놈이 알리기는 뭘 알려? 그러다 사로잡히고......흥!>

하고는 더 말하지 않고 그 옆에 앉아 있는 양몽환에게 고개를 돌렸다.
[양상공. 상처는 입지 않았어요?]
그러나 양몽환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조소접의 말을 들은 척도 하지 않다가? 옆에 앉은

도옥을 흘깃 바라보고는 천천히 고개를 가로 저었다.
[다행히 상처는 입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안위를 염려했던 양몽환이 건강하고 상처도 없다는 것에 조소접은 안도의 숨을 몰아 쉬었다.
이와같이 해서 지독히 원수지간인 도옥을 상대로 양몽환과 조소접은 각기 한 구석씩 차지하고

앉아 침묵에 잠겼다.
양몽환이나 조소접은 그들대로 또 도옥은 도옥대로 각기 착잡한 심경에 잠겨 오직

이곳을 빠져나가야 한다
는 그 한가지만을 생각하기에 여념이 없는 듯했다. 그리하여 오랜 침묵이 흘렀다.
이윽고 긴 침묵을 깨며 도옥이 헛기침을 했다.
[양형. 그리고 조소저. 지나간 과거는 우선 일소에 붙이고 우리 세 명이 이곳을 빠져나가는

방법을 함께 강구하는 것이 어떻겠소?]
그러자 양몽환도 동감이라는 듯이 숙였던 머리를 들었다.
[좋은 생각이오. 그러나 지금 우리는 기독(奇毒)에 중독된 몸들이오.

피차 조심해서 행동하지 않으면 더 큰 위협이 닥칠 것이오.]
[양형 말이 옳소. 우리가 중에게 속은 만큼 더 속지 말고 조심해서 행동하는 것이 최선이오.

그런데 우리가 이곳을 빠져나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찌 그냥 몸만 나갈 수 있소?]
[그럼?]
[그럼이 뭐요? 우리의 목적이 지광대사의? 시체를 훔치는 것이 아니오??

그러니만큼 저기 놓여있는 관부터 열어봐서 지광대사인가 아닌가를 확인해야 하지 않겠소?]
[그렇소, 우리들이 지광대사의 시체만 가지고 간다면 천축국의 승려들도 난동을 부리지는 못할 거요.]
[그럼. 지광대사의 시체를 갖고 어떻게 이곳을 빠져나가야 할지 좋은 의견이라도 있소?]
[예. 그것도 중요하긴 하오만 우선 우리들이 중독된 기독부터 제거해야 하지 않겠소이까?

이 상태로는 걸음도 재대로 못걸을 것이오. 우선 해독부터 하고 그 다음에 계획하는 것이 좋겠소.]
[그럼 어떻게 하면 해독이 되겠소?]
[이 양모의 생각은 이렇습니다. 즉 저 관 속에 들어 있는 사람이? 틀림없는 지광대사라면

그를 사로잡아 승려들 앞으로 데리고 가는 겁니다.]
[그래서?]
[그리고는 죽인다고 위협하여 해독약을 내놓게 하면 거절하지는 못할 겁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들이 기독에서 풀려나고 그 다음 다시 계획을 세울 수도 있을 것같소.]
그러나 도옥은 선뜻 호응하지 않았다.
[양형은 승려가 남기고 간 말을 잊었소? 만일 관을 건드리면 용서치 않는다는 것 말이오.]
[물론 기억하고 있소. 그러나 이대로 앉아 기다릴 수는 없는 일이 아니오?]
[그렇긴 하오. 그러나 이 관 속에 들어 있는 사람이 우리들이 바라는 지광대사가 아니면?]
하고 말을 마치자마자였다.
대청의 문이 드르륵! 열리는 것과 함께 청색장삼(靑色長衫)을 걸친 승려가 역시 같은 승려이지만

장대한 체구에 백의가사(白衣袈裟)를 입은 승려를 데리고 들어오는 것이었다.
순간! 양몽환은 승려의 얼굴에서 황망히 시선을 돌리며 흠칫했다.
그것은 지금 들어오는 승려의 얼굴이 하도 기괴했기 때문이었다.

두 가지 색으로 얼굴이? 같라진 승려의 얼굴빛은 한쪽은 시커멓고 다른 한쪽은 새빨간 얼굴이었다.
그러한 괴이한 모양의 승려는 한쪽 구석씩 차지하고 앉아 있는?

조소접과 도옥 그리고 양몽환을 번같아 보는 도옥에게로 시선을 멈추는 것이었다.

[어느 분이 양몽환이오?]
상당히 유창한 중원땅의 말이었고 발음이었다.
[바로 내가 양모인이오.]
하며 양몽환은 앉은 채 고개를 번쩍 들었다.
[음......그러면......]
하던 승려는 조소접에게 시선을 돌리며 다시 물었다.
[바로 그대가 주약란 주소저요?]
하며 저렇듯 아름다운 여자는 처음 본다는 듯이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시선을 움직이지 않는 것이었다. 그러자 조소접은 약간 얼굴을 숙이며 고개만 가로 흔들었다.
[그럼 아니란 말이오? 음......모를 일이군. 당신보다 더 아름다운 여자가 있을까

?......음......그러면 당신보다 주소저가 더 아름답다 이런 말이라?......]
하며 고개를 이리기웃 저리기웃 하며 혼잣소리로 중얼거리는? 모양이 조소접의

아름다운 요염한 자태에 정신이 흐려지는 모양이었다.
그러자 조소접은 은근히 밸이 틀려 눈꼬리가 올라갔다.
[도대체 당신은 누구죠?]
[호! 누구냐고? 그렇지 내가 말하지 않았으니 묻는 것이 당연하지!

나는 지심(智心)이라는 대사(大師)요.]
[그럼 지광대사와 형제인가요?]
[그렇소. 사형(師兄)이오.]
그러자 조소접은 가볍게 코웃음을 터뜨렸다.
[똑같은 사람끼리 잘 만나셨군요.]
[뭐라구? 그것은 무슨 말이오?]
[못알아 들으셔도 좋아요.]
[아니 무슨 말인지 자세히 말해. 보시오.]
[대사면 대사답게 그리고 무술인이면 무술인답게 무공으로 겨루지

비겁하게 독을 뿌려 사람을 해친다는 것은 비겁하다는 뜻이에요.

이제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러자 지심대사는 도대체 무슨 말인지 금시초문이라는 듯

그 괴이한 얼굴을 연신 씰룩거렸다.
[뭐라구? 어떤 독에 중독되었단 말이오?]

<알면서도 시치밀 떼는지 아니면 정말 모른다는 건지?......

어쨌든 해독약을 내놓도록 구슬러야지......>

라고 생각한 조소접은 즉각 대답했다.
[그럼 지심대사는 모른단 말씀이군요.

우리 중원 무예계에서는 신의(信義)를 중히 여기고 정정당당히 겨루는 것을 자랑으로 알고 있어요.

그런데 천축국의 고수들이란 사람들 신의와 도의도 없는 것같던데요?]
[호! 소저는 잘 몰라서 하는 말이오. 무슨 독에? 중독이 된지는 모르지만

그것은 부득이한 경우여서 그렇게 했을 것이오.

우리 천죽국인들 왜 신의와 도의가 없겠소?]
그러자 눈살을 찌푸리고 못마땅하게 노려보던 도옥이 불쑥 볼멘소리를 했다.
[흥! 신의와 도의가 겨우 기독(奇毒)을 뿌리는 것이오?]
하고 내뱉았다. 그 순간 안색이 홱 변한? 지심대사는 얼마 동안

도옥을 노려보다 말고 차갑게? 웃음을 흘렸다.
[?...... 당신은 또 누구요?]
[나는 금환이랑 도옥이란 사람이오. 왜 알만하오?]
[호! 도옥? 어디서 많이 듣던 이름인데?......]
하고 고개를 갸웃거리던 지심대사는 옆에 서 있는 승려에게 고개를 돌렸다.
[저 이름을 기억하시오?]
그러자 청의의 승려는 황공한 듯이 두 손을 맞잡으며 공손히 대답하는 것이었다.
[예. 기억하고 있소이다. 바로 대국사님깨서 이 중원땅에 오게 된 연유도

저 도옥이란 사람 때문이 아니오이까? 주소저의 초상을 그려보낸 그 장본인인 줄 알고 있소이다.]
그제야 지심은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도옥을 다시 한번 차근히 바라보는 것이었다.
[음......사형이 이 중원에 들어설 때 나 지심은 좌선기간(座禪期間)이어서? 동행하지 못하고

늦게나마 총총히 나서서 익히 아는 바가 없었소.

그러나 당신이 주소저의 초상화를 보내고 서찰까지 보내?

사형을 이 중원땅에 초청했다면 가히 동지(同志)라 할 수 있는데 어찌하여 적이 되어

사로잡힌 몸이 되었단 말이오?]
폐부를 찌르는 듯한 말에 그렇게 교활하고 간사한 도옥도 입이 벌어지지 않는지

눈을 내려뜨고 얼굴만 붉힐 뿐 아무 소리도 못하고 있었다.

잠시 어색한 분위기가 감돌고 살벌한 침묵이 감도는 동안 조소접은

<만일 지심대사의 말에 도옥이 충격을 받고 그가 한 패가 된다면?>

큰 일이다 싶어 즉시 화제를 돌렸다.
[그대가 지광대사(智光大師)의 사제(師弟)라면 무공도 강하겠군요.]
그러자 지심대사는 통쾌하게 웃어젖혔다.
[핫......하......별로 강하지도 못하오만 소저께서 한 수 겨루시겠다는 말이오?]
[그래요. 한 수 가르침을 받고 싶은 마음은 간절하지만 당신들이 사용한 기독에 중독되어

몸도 움직일 수가 없군요.]
[그럼! 소승이 해독약을 준다면 어떻게 하겠소?]

<.......계획대로 일이 되어가는군......더 구슬려서 해독약을 내놓도록 해야지......>

생각하며 요염한 웃음까지 살짝 띄웠다.
[그야 물을 것도 없는 일이죠. 당신과 한 수 겨루어 보겠어요.]
[감히 나에게 도전을 하겠다고? 핫......하...... 만일 소저가 진다면?]
[천만에. 질리도 없지만 지지도 않아요. 그러나 만일 진다면 어떻게 하면 좋겠어요?]
[만일 소저가 진다면 소승을 따라 천축국에? 가야 할 것이오.

이 조건을 수락하면? 즉시 해독약을 드리겠소 어떠시오?]
하고 어마어마한 조건을 내놓는데는 조소접도 잠시 난처해지고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심히 진퇴양난에 빠지게 되고 말았다.

<만일 조건에 응낙하고 일전에서 패한다면 천국으로 따라갈 수도 없고

그렇다고 한번 응낙한 약속은 어길 수도 없다......>

아무리 생각해도 묘안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머뭇거리며 망설일 수는 더욱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더 대화를 끌며 생각하기로 했다.

[그보다 만일 당신이 나에게 진다면 어쩌시겠어요? 그것부터 말해 보세요.]
그러자 지심대사는 빙긋이 웃으며 대답하는 것이었다.
[아직 생각해 보지 않았소. 어떻게 했으면 좋은가 소저가 말해보시오.]
하고는 또 빙긋이 웃었다.

그러나 얼굴 한쪽은 붉고 한쪽은 검은 얼굴이 제 딴에는 호의를 가지고 웃는 것이었지만

조소접에게는 소름이 끼칠 정도로 무섭고 으악! 소리라도 지를 것같아

얼굴을 외면해 버리고 말았다.

될 수 있는대로 그의 얼굴을 보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그리고는 외면한 채 침착히 대답했다.
[만일 나에게 진다면 지광대사의 시체를 내 주는 것이에요.]
그러자 지심대사는 아연히 놀라는 표정이었다.
[사형의 시체를?]
[그래요.]
[그건 무슨 이유로 달라는 거죠?]
[그것까지 알 필요는 없어요.]
[호! 그러나 소승을 이기지는 못할 거요.]
[아직 서두르지 말아요. 또 있어요.]
[조건이?]
[그래요. 만일 당신이 진다면 여기 있는 두 사람도 역시 해독약을 주세요.]
하며 양몽환과 도옥을 가리켰다.
그러자 지심대사는 쾌히 응낙했다.
[좋소. 그거야 쉬운 일이오.]
[그리고 또 만일 내가 이기면 이곳에서 우리들을 고이 안전한 곳까지 보내줄 것을 요구하겠어요.]
[소승이 소저를 이기지 못한다면 그대들의 앞길을 막을 사람은 몇 사람 없을 것이오.]
그러자 이때까지 가만히 듣고 있던 도옥이 황망히 조소접을 불렀다.
[조소저. 지심대사와 싸운다는 것을 서두르지 마시오.]
하는 것이었다.
그 말에 조소접은 무슨 말인가 해서 눈을 돌리자 도옥은 눈짓을 하며 계속 말했다.
[천축국에는 괴상한 기술이 많습니다.

그러니 어떤 기술이나 기독으로 소저를 이기려고 계략을 꾸밀 것입니다.]
하고 앞을 내다보듯 걱정해 주었으나 이미 조소접은 결심이 끝나 있었다.
[염려말아요.]
하고 잘라 말했다.

그러자 실눈을 뜨고 있던 지심대사는 빙긋이 웃으며 은근히 위협을 가하는 것이었다.
[소승이 연마한 무공은 그야말로 기상천외(奇想天外)한 무공이오.

이 괴이한 소승의 얼굴도 결국 그 무공으로 인한 것이라는 것을 알아 두시오.

그리고 어느 누구나 소승의 얼굴만 보아도 두려워 도망친단 말이오.]
하고는 잠시 말을 끊었다가 다시 이었다.
[만일 소승이 이긴다 해도 소저도 천축국으로 소승을 따라가려고는 하지 않을 것이오.]
그러나 조소접은 속으로 흥! 소리를 연발했다.
[그건 두고봐야 아는 거에요. 당신이 이긴 다음에? 할 말이지 지금부터 할 말은 아니에요.

속히? 해독약이나 주세요.]
[그럼 좋소.]
간단히 대답한 지심대사는 옆에 서 있는 청의의 승려에게 명령을 내렸다.
[속히 해독약을 가져 오시오!]
지심대사의 명령을 받은 청의의 승려는 잠시 망설이는 눈치였다.
그러나 거역할 수 없는 명령임을 아는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품속에 간직해 두었던 해독약을 꺼내 지심대사에게 건네 주는 것이었다.
관을 방패삼고청의의 승려에게서 해독약을 받아 쥔 지심대사는

즉시 조소접에게 건네어 주었다.
[여기 있소.]
조소접은 거침없이 내미는 해독약을 받아 주저하지 않고 입 안에 털어넣었다.

그리고 잠시 후.
과연, 그렇게 가슴이 답답하고 기운이 없던 몸에 점점 열이 나며 진기가 창통하고

운기하면 할 수록 기력이 소생하여 얼굴까지 발같게 달아올랐다.
그러한 조소접을 바라보고 있는 도옥이나 양몽환은 그녀가? 기독에서 완전히 해독되어

지금 암암리에 운기하고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이때 역시 조소접의 붉어지는 얼굴을 바라보고 있던? 지심대사는 헛기침을 하며

조소접의 시선을 자기에게로 돌리게 한 다음 냉랭히 소리치는 것이었다.
[소저, 그럼 시작하겠소!]
하고는 천천히 오른 팔을 들어 올리는 듯하다가 번개같이 휘두르며

조소접에게 달려들었다가 뒤로 물러서는 그 순간,

지심대사의 손아귀에는 가늘고 하얀 조소접의? 손목이 잡혀져 있었다.

손목을 쥐었다면 그것은 바로 맥혈이었다.

그러나 조소접은 당황하지 않고? 깊은 잠에서 깨어나는 듯 천천히 눈을 뜨며

지심대사가 끄는대로 몇걸음 쫓아 나오다가 우뚝 섰다.
그러자 이건 또 어떻게 된 일인가.?

자신만만히 조소접의 손목을 쥐고 잡아끌던 지십대사가 괴상한 소리를 지르면서

쥐고 있던 손목을 흡사 불에 덴 것처럼 황망히 놓으며 여섯 걸음이나 뒤로 물러서는 것이었다.
그러는 바로 그때, 조소접은 제비같이 몸을 날리며 이번에는 지심대사의 오른쪽 손목

맥혈을 움켜쥐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그것도 잠시, 지심대사가 조소접의 손목을 놓고 뒤로 물러서는 것과 똑같이

조소접도 갑자기 지심대사의 손목을 놓으며 뒤로 물러서고 말았다.
그러자 지심대사의 붉고 검은 흉악한 얼굴은 더더욱 일그러지고 개기름이 번들번들,

보기만 해도 기절해 쓰러질 만큼 흉악하게 변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괴이하고도 무시무시하게 변해버린 지심대사의 얼굴을 노려보던

도옥은 급히 그러나 낮은 음성으로 양몽환을 불렀다.
[양형, 주의하시오. 얼굴이 괴이하게 변하는 것이 심상치 않소.]
이때 역시 양몽환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다 도옥이 호의를 보이자 양몽환은 약간 웃어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소, 도형!]
한편, 조소접이 쥐었던 손목을 놓으므로서 서로? 몇 걸음씩 뒤로 물러서 대치하고 있던?

지심대사는 상대가 만만치 않은 것에 은근히 놀라며 불끈 주먹을 쥐었다.

그리고는 마룻바닥을 한바퀴 구르면서? 몸을 날려 조
소접의 머리를 겨누고 달려들었다. 그 순간, 급히 몸을 돌린 조소접은 옆으로 재빨리 피하면서

지심대사의 공격을 아슬아슬하게 피했다.
그러나 지심대사가 공격의 속도를 늦추지 않고 계속해서 기세등등하게 반격을 가해오는 것이

여자에게 손목의 맥혈을 잡혔던 것이 철천지한인 모양이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저토록 가쁜 숨을 몰아쉬며 눈알이 툭 튀어나올 수는 없을 것같았다.

한 번 헛친 지심대사가 앞으로 달리는 몸을 갑자기 세우면서 한 바퀴 빙글 재주를 넘고는

그 여세를 물아 뒤돌아서면서 달려들었다.
그러자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그것은 응당 마주 나서서 반격해야 할 조소접이?

공격해 오는 지심대사와 마주 싸울 생각은 않고 요리조리 피하기만 하는 것이었다.

조소접은 발을 구르며 지심대사에게로 달려들 듯 동작을 취하다가 지심대사가 멈칫하는

그 순간을 이용해서 훌쩍 몸을 날려 도옥이 앉아 있는 등 뒤로 숨는 것이 아닌가!
그 바람에 후다닥 놀란 도옥은 급히 조소접을 향해 몸을 돌리며 다급히 외치는 것이었다.
[조소저, 이 도옥은 아직 해독도 못한 몸인데 어쩌자고 이러시오?]
하면서 조소접을 자기 앞으로 밀어내려고 끙끙거렸다.
그렇듯 이상한 행동을 취하는 조소접과? 도옥을 노려보던 지심대사는 팔을? 휘둘러

조소접을 손가락질하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것이었다.
[어서 썩 나오지 못하겠소? 이 대청에서 숨으면 얼마나 숨겠다고!]
하면서 손가락질하던 팔을 거두어 들여 두 손바닥을 마구 비벼대는 것이었다.

그리고 비벼대던 손바닥을 짝 펴고는 한줄기의 날카로운 섬광을 조소접에게

화살같이 날려 보내고 말았다.
무시무시한 소리를 내며 덮쳐나간 한줄기의 장풍은 뜨거운 열기를 뿜으며 회오리 바람처럼

육박해 오는 것이 아닌가!
그러자 위기를 직감한 조소접은 그? 자리에 납작 엎드리듯 하면서 대구루루?

몸을 굴려 지광대사의 시체가 들어 있는 관 뒤로 몸을 말아붙이며 피했다.
한편, 엉겁결에 조소접 대신 장풍을 맞게 된 도옥은 눈알이 홱!? 돌도록 질겁을 하며

역시 마룻바닥에 납작 엎드리고 말았다.
그렇게 조소접과 도옥이 피하는 바람에 도옥의 머리 위를 휩쓸고 지나간 지심대사의 장풍은

애꿎게 맞은편 바람벽만 펑! 구멍을뚫어 놓고 말았다.
마룻장이 들썩하고 기둥이 휘청거리면서 뽀얗게 날린 먼지는 숨도 쉬지 못하게 콧구멍으로 파고 들었다. 와르르 무너져 내리는 바람벽에 마룻바닥이 온통 흙더미가 되고 조소접을 놓쳐버린 지심대사는

이미 눈이 돌대로 돌고 말았다.

도대체 보이는 것이 없는 듯 이리저리 날뛰며 닥치는대로 발길질을? 하고

주먹과 팔굽을 풍차처럼 요란하게 돌려댔다.
그리고 요리조리 피하는 조소접을 붙잡아 일격에 쓰러뜨리지? 못하고 돌아가며

아무데나 울분을 토하던 지심대사는 그때 관 뒤에서 상큼 머리를 들어올렸다가

재빨리 숙이는 조소접을 발견하고는 으흐흥!

소리를 지르며 관을 훌쩍 뛰어넘었다.

그러자 지심대사가 관을 훌쩍 뛰어넘는 그 순간

조소접 역시 지심대사와 반대 방향으로 훌쩍 몸을 날려 관 뒤에 차악 몸을 숨기는 바람에

잡을 수가 없었다.
이쪽으로 뛰어넘으면 저쪽으로 홀짝! 저쪽으로 껑충 뛰어넘으면 역시 이쪽으로 홀짝!

마치 어린아이 장난처럼 지심대사를 놀리며 홀짝홀짝 뛰어넘는 조소접을

그 둔한 몸집으로 잡는다는 것은 엄두도 못낼 형편이었다.

그렇다고 관 뒤에 숨어 있는 조소접을 향해 장풍을 날렸다간 지광대사가 들어 있는 관이

어느만큼 굴러가 박살이 날지 모르는 일,

그래도! 하고 장풍을 날리면 결국 쥐를 잡다 장독을 깨뜨리는 꼴이 되는 것이었다.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지심대사는 어깨로 가쁜 숨을 헐떡거리며 발을 구르는 것이었으나

어찌해 볼 도리가 있을리 없었다.
지심대사가 그렇게 헐떡거리는 것에 비해 조소접은 무슨 영문인지

그 민첩하고 빠른 동작으로 지심대사의 허를 겨누고 공격할 법도 한데 반격은 고사하고

표정하나 굳어지지 않는 것이 양몽환이나 도옥의 눈에는 의아하고 이상하기만 했다.

그리고 역시 지심대사도 조소접의 행동을 한 번 생각해 볼만도? 한데 지금 장독
뒤로 들어간 쥐를 노리는 고양이처럼? 눈을 곤두세우고 분통을 터뜨리지? 못해 씩씩거리는

지심대사로서는 이것저것 생각해 볼 여유조차 없었다.
이처럼 피하기만 하는 조소접의 행동을 냉정히 살펴보던 도옥은 스스로 조소접의 의중을? 결정지었다. 그것은 싸움을 오래 끌어가면서 지심대사의? 기력이 쇠퇴해지기를 기다려 반격하려는 것이 분명하다고.

그러는 한편, 양몽환은 양몽환대로 작전을 세우고 있었다.
그것은 만일 조소접이 지심대사의 손아귀에 잡혀 위험을 겪게 되면 즉각 조소접을 구원해 주리라고

결심했다.
사실 양뭉환은 진(陣) 밖에서 사로잡혔기 때문에 기독의 중독은 아주 극소의 미량(微量) 밖에

중독되지 않았다.

그런데다 대청에 들어와서 오랜 시간을? 조식하는 동안 자신의 운기가 조금도 예전과 다름이 없다는
것을 암암리에 확인하고는 조소접과 지심대사만을 지켜보며 여차하면 뛰어나갈 자세였다.
그러는 동안!
관 뒤에 숨어 있는 조소접을 잔뜩 노려보며 어떻게 해야 관? 뒤에서 나오게 할 수 있을까

궁리하던 지심대사는 더 이상 못참겠다
는 듯이 버럭 고함을 터뜨렸다.
[관 뒤에서 나오지도 못하는 주제에 뭐 승부를 겨루겠다고? 속히 나오지 못하오?]
하는 것이었다.
이때, 조소접은 퍼뜩 지나가는 생각이 있었다.

<......저 지심대사가 나를 공격하지 못하는 것은 이 관을 다칠까 두려워하는 것이 틀림없어.

그렇지 않은 다음에야 장풍을 날리지 않을리 없지......분명히 지광대사의 시체가 들어 있어서......>

관 뒤에 숨어 있기 때문에 자기를 공격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생각한 조소접은

이 관만 의지하고 있으면 지심대사가 공격치 못하리라 여기며 굽혔던 허리를 폈다.

그리고 지심대사에게 차갑게 소리쳤다.
[이 관 속엔 누가 있죠?]
그러는 순간, 관 뒤에 나타나는 조소접에게 장풍을 날리려고 팔을 치켜들던? 지심대사는

아직까지 조소접이 관을 방패로 삼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고 들어 올렸던 팔을 내렸다.

그리고는 흥! 코웃음을 터뜨렸다.
[그것은 알 필요가 없지!]
[흥! 알 필요가 없다고요? 말하지 않아도 좋아요. 내 손으로 열어 보면 되죠.]
[마음대로! 그러나 그 관 속에는 어떤 장치가 되어 있소. 목숨이 아깝지 않으면 열어 보시지!]
하고는 음흉스럽게 웃는 것이었다.

 

<......어떤 장치? 흥! 열어 볼까봐 위협하는 것이지....

그러나 지금은 지광대사의 시체가 급하지? 않다.

어떻게 해서든지 지심대사를 처치하고 이곳을 무사히 빠져나가야 한다......>

지심대사의 위협보다 사실은 이곳을 빠져나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 조소접은

관의 뚜껑을 열어 보는 것을 단념했다.
그때, 갑자기 대청밖이 술렁거리며 발자국소리가 어지럽게 들렸다.
그리고 창틈으로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것이 수많은 승려들이 대청을 포위하는 것임을 직감할 수 있었다.
이렇듯 사태가 긴박해짐을 느낀 도옥은 덜컥 겁이 났다.

<......여기서 죽을 수는 없지......조소접, 그렇다. 조소접을 미끼로 해서 살아날 궁리를 해야지......>

위급을 느낀 도옥은 급히 조소접을 불러들였다.
[조소저, 이리 좀 오시오.]
[? ......]
[속히 오시오.]

서두르는 바람에 무슨 뾰족한 수가 있는가 해서 다가간 조소접의 귀에 입을 댄 도옥은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조소저, 오늘 저 지심대사가 소저에게만 해독약을 준 것은 당신의 미색(美色)에 반해 준 것이오.

그런 만큼 조소저가 조금 수단을 쓰면 이곳을 빠져나가기는 수월한 것이오.

자, 보시오. 지금 우리 주위를 승려들이 에워싸지 않았소?]
조소접을 희생시켜서라도 자기 혼자만은 이곳을 빠져나가야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런 꾀임에 호락호락 넘어갈 조소접도 아니었다.
[그래서, 나를 천축국에 보내고 당신은 살겠다는 말인가요?]
[천만에. 우리 셋이 다 살자고 하는 말이오. 어찌 이 도옥만 살겠다고 그런 말을 하겠소.]
금방 얼굴이 벌개지며 변명하는 도옥을 노려보던 조소접은 그 얼굴에 탁! 침이라도 뱉아주고 싶었지만

간신히 참았다.
그때, 관 뒤에서 나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지심대사가 도옥과 이야기를 나누는

조소접을 그냥 둘리가 만무했다.
이때다 하고 주먹을 불끈 쥔 지심대사는 두 팔을 번쩍 들어 동시에 휘둘렀다.
그와 함께 웅후한 소리를 내며 밀어닥치는 장풍을 후딱 돌아서면서?

막으려고 하던 조소접은 주춤 팔을 내리고 말았다.
그것은 지심대사의 장풍이 매우 날카롭고 심후할 줄? 알았는데 천천히 밀어닥쳐오는 장풍이

너무나 의외로 미약하고 속도도 느렸기 때문이었다.
서서히 밀려오는 장풍을 넌지시 기다렸다가? 지심대사에게 되돌려 보내려고 여유있게?

팔을 들어 막으려고 하는 바로 그 순간!
꽝! 하는 소리가 들렸다고 생각했을 때는 이미 산같은 파도가 바위를 부셔버리듯 돌변했고

조소접의 어깨는 떨어져 나가는 고통에 얼굴이 찌푸려지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그 순간을 이용해 다시 덮치는 지심대사의 가사 자락을? 보고서야

정신을 바싹 차린 조소접은 급히 세 걸음이나 물러서면서 내공력을 운집시키고 두 팔을 한데 붙였다.
비록 여자의 몸이지만 일찍이 임 . 독(任.督)을 창통한 조소접인만큼 일단 몸을 날려 반격을?

개시하면 웬만한 장풍쯤은 눈에 보이지도 않았다.
그만큼 조소접은 내공력으로 몸을 단단히 보호한 것이다.

그러나 지심대사의 무공도 조소접에 못지 않는 무공이어서 조소접은

상당한 경계와 계략이 필요했다.

<......무공으로 싸운다면 끝이 없겠는데.......계략을.......>

계략으로 아니 꾀를 써서 지심대사를 상대하려고 공격수법을? 돌변시킨 조소접은

앞으로 내밀었던 팔을 더 쑤욱 뻗치는 것과 함께 손바닥을 발딱 뒤집으면서 천장으로 힘껏 들어올렸다.
그 순간, 아무렇지도 않던 관의 뚜껑이 튕기듯 떨어지며? 천장으로 둥실 떠올라가는 것이었다.

그러자 그때까지 팔을 거두지 않고 있던 조소접은? 자기의 손짓에 따라 천장으로 등실 떠오르는?

관 뚜껑을 향해 팔을 휘둘렀다.

그리고는 지심대사의 가슴을 겨누며 손바닥을 쫙 폈다.
그러자 천장으로 둥실 떠올랐던 관 뚜껑이 수평으로 꼿꼿이 서면서 맞바로 지심대사의 가슴을

겨누고 벼락같이 떨어졌다.
그바람에 눈이 홱 돌아버린 지심대사는? 엉겁결에 옆에 서 있던 청의인을?

힘껏 들이받고 앞으로 엎어졌다
재주를 넘으며 일어나는것으로서 관 뚜껑을 피하기는 했다. 그러나 쓰러질 때 얼마나 호되게

청의인을 들이받았는지 어이쿠......하면서 옆구리를 거머쥐며 한참 동안이나 쩔쩔매다?

간신히 일어나는 청의인은 금새 울상이 되었고 지심대사를 헛치고 그대로 날은 관 뚜껑은 맞은면?

바람벽에 푹 묻히며 비수처럼 비스듬히 꽂히고 말았다.
어처구니 없이 관 뚜껑에 놀라 쓰러졌다 일어난 지심대사는 눈에?

쌍심지를 켜고 호랑이 눈처럼 눈을 치켜뜨고는 으흐흥!

분통을터뜨리다 말고 마룻바닥을 꽝 밟았다.

그러자 지심대사는 부웅! 천장으로?

올라가다 슬쩍 몸을 돌려 바람벽에 꽂혀 있는 관 뚜껑을 쓰윽 뽑아들고는 곧장 내려서면서?

그대로 집어던지는 것이 또 묘하게도 양몽환을 정통으로 겨누고 날으는 것이 아닌가.
순간! 날아오는 뚜껑을 여유있게 받아 쥔 양몽환은 눈썹을 치켜올리며 앞뒤 돌아볼 겨를도 없이

지심대사에게 다시 후려갈겨 보냈다.
그러자 역시 날아오는 관 뚜껑을 받아든 지심대사는 즉시 양몽환에게,

양몽환은 다시 지심대사에게, 이렇게 해서 싸움의 판도가 갑자기 바뀌어진 대청 안에는

양몽환과 지심대사가? 던지고 받고 또 던지는 관 뚜껑으로 하여 눈이 돌아갈 정도였다.
이처럼 사태가 이상하게 급변해 버리자? 순간적으로 도옥을 생각한 조소접은?

잠시 지심대사를 양몽환에게 맡기고는 곧장 청의인을 덮치고 들어갔다.
그때, 옆구리를 거머쥐고 끙끙거리던 청의인은? 때아닌 관 뚜껑의 교환으로 눈이?

 휘둥그래졌다가 의외에도 비호같이 덤벼드는

조소접의 손에 팔 한번 휘둘러 보지 못하고 맥혈을 잡히고 말았다.?

설사 옆구리를 거머쥐지 않고 있었다 하더라도

그래서 조소접의 돌진을 미리 알았다 해도 반격해볼 여유조차 없었던

청의인이기도 했다.
청의인의 왼 손 맥혈을 회수견용(回手見龍)의 수법으로 단단히 거머쥔 조소접은

고통에 얼굴을 찌푸리는 청의인을 내려다보며 싸늘하게 소리쳤다.
[목숨이 아깝거든 해독약을 내놔요!]
그러자 손목이 떨어져 나가는 듯한 아픔을 참느라고 이를 악물며?

얼굴을 찌푸리던 청의인은 땀을 뻘뻘 흘리며 다급히 말하는 것이었다.
[왼쪽 주머니에 있소......]
하고 순순히 말하는 것이 아무래도 천축국의 승려같지는 않았다.

그리고 순순히 해독약이 있는 곳을 가르쳐주는 그의 태도가 약간 이상함을 느꼈다.
조소접은 즉각 청의인의 옷깃을 아무렇게나 찢고 해독약을 꺼내 들었다.
그러자 그때까지 죽는 시늉으로 신음하며 말도 제대로? 못하던 청의인은 애원하듯

조소접을 바라보며 급히 그러나 음성을 낮추는 것이었다.
[아가씨, 나도 중원 사람이오. 당신들을 돕고 싶소. 나를 한번 때려주시오.]
아니나 다를까, 청의인의 말을 조소접이 약간 이상히 생각했던 바와 같이 중원 사람이었고?

또 한번 때려달라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 것같은 생각이 번개처럼 지나갔다.
육감적으로 생각하는 바가 있는 조소접은 즉각 청의인의 등을 갈기면서 쥐고 있던 손목을 놓아주었다.
그러자 청의인은 아그그.... 죽는 소리를? 내면서 엉거주춤 허리를 굽히며 쓰러지듯?

대청 문을 차고 밖으로 달아나는 것이었다.
사실 조소접이 갈긴 한 대는 소리만 컸지 조금도 아픔을 느끼지 않는 한 대였다.

그러나? 청의인은 죽는 소리를 내면서 마치 조소접의 장풍에 몸이 날리는 것처럼 꾸미며

달려나가는 것이 아닌가.
청의인이 사라지고 해독약을 품 속에 넣은 조소접이 돌아섰을 때는 양몽환과 지심대사는

관 뚜껑을 날리기에 한창 열이 올라 있었다.
서로 받고 던지기를 얼마나 했을까,

이윽고 계획을 돌변시킨 지심대사는 양몽환이 되던진 관 뚜껑을 지체없이 받아 날카롭게 던졌다.

그리고 두 팔을 벌려 날아오는 관 뚜껑을 잡으려고 하는 틈을 타서 몸을 날려 양몽환의 코앞까지

바싹 접근한 지심대사는 두 손바닥을? 포겠다가 펴면서

무시무시한 장풍을 몰아붙이는 것이 아닌가!
순간, 두 팔을 벌려 관 뚜껑을 잡으려던 양몽환은 껑충 몸을 날리면서 장풍을 피하는 동시?

마침 머리 위로 내려꽂히는 관 뚜껑을 휘어잡아 이를 악물면서 뒤로 물러서는

지심대사의 머리를 정통으로 후려 갈겼다.
그러나 지심대사는 순간적으로 몸을 뒤채면서 발랑 뒤로? 넘어지듯 하며 재주를 넘고 일어나면서

양몽환의 손에서 떨어져 내리는관 뚜껑의 한 끝을 거머잡고 발을 버둥거리며 밀어젖혔다.

그러자 양몽환도 한쪽 끝을 우악스럽게 움켜쥐고는 뒤로 밀리지 않으려고 발에 힘을 주며 되밀었다.
그리하여 각기 관 뚜껑의 한쪽 끝을 맞잡고 밀고 미는 그래서 결국 힘과 힘

그리고 내공과 내공의 대결이 되고 말았다.
어느 편이든지 힘이 없고 내공이 먼저 소모되는 사람이 관? 뚜껑에 밀려

마침내 바람벽에 부딪치고 창자를 쏟아내며 죽어갈 그야말로 생사기로의 일대 승부가 아닐 수 없었다.

누가 먼저 힘이? 빠지느냐에 승부가 달린 관 뚜껑의 버팀은 옆에서 보고 있는

도옥이나 조소접의 손에 땀을 쥐게 했다.
얼마 동안 버티어도 서로 한 걸음도 물러섬이 없이 버티고 있는 것을 보고 있는 조소접은

초조해 하지 않았다.

그것은 양몽환의 심후한 내공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자기가 알고 있는 내공만으로도 절대로 뒤로 물러서지 않을 양몽환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조금 더 두고보자는 심사였다.
그러나 도옥은 그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청의인을 해치고 틀림없이 해독약을 뺏은 조소접이

무슨 생각에서인지 자기에게 해독약을 주지 않는 것이 못마땅했다.

그렇다고 염치없이 달랄 수는 없고 조소접의 선처만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조소접에게서는 이렇다 할 말도 없고 해독약을 줄 눈치도 아니어서?

이 기회에 양몽환을 돕겠다고 나서서 해독약을 달라면 줄 것같아 머뭇머뭇 말을 꺼내려고 했다.
사실 처음에 조소접이 청의인을 덮칠? 때는 도옥을 해독시켜 주려고 해서 덮쳤고

결국 해독약을 빼앗기는 했지만 이 간사한 도옥이 해독되면 또 어떤 수단을 써서

지심대사의 편이 될지 의문이었다.
그래서 중독 상태인 도옥을 조금 더 두고 보면서 결정하리라 마음먹고 말을 꺼내지 않고

있었던 것이었다.
이런 조소접의 마음 속을 알리 없는 도옥은 마음이 점점 급해 견딜 수가 없었다.

결국 조소접에게 다가가고 말았다.

[조소저, 이 도옥이 해독만 된다면 양형을 도와 당장 지심대사를 죽일 수 있겠습니다.]
하는 말에 벌써 눈치를 챈 조소접은 딱 잡아땠다.

<흥......꾀를 쓰려고? 어림도 없지......>

했으나 내색하지도 않고 쓸쓸히 웃었다.
[그런데 애석하게도 해독약이 없군요.]
그러자 도옥은 펄쩍 뛰었다. 내가 지금? 청의인의 주머니에서 꺼내는 해독약을 틀림없이 봤는데?

그게 무슨 소리냐고 눈을 휘둥그렇게 뜬 도옥은 입에 침이 마르는지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아니, 그럼 청의인을 해친 것은 해독약을 뺏으려는 것이 아니었나요?]

<내가 봤는데 그 무슨 소리요?>

하지는 못하고 슬쩍 말을 돌려서 하는 말에 조소접은

<음...... 이놈이 어느새 봤구나...... 그러나 쉽게 줄 수는 없지 누구 좋으라고?......흥......>

하면서도 정색을 했다.
[애석한 일이지만 헛수고였어요.]
도옥은 잔뜩 양미간을 찌푸리며

<......이 교활한 년, 어디 두고 보자......>

하면서도 입 안이 쓰고 분통이 터져 견딜 수가 없었다.

그러나 지금 중독된 몸으로서 발하나 제대로 움직여볼 재간이 없는 다음에야

눈알이 뒤집어지는 분통이라도 별도리 없었다.

씁쓸한 침을 탁? 뱉으며 돌아선 도옥은

<이년! 어디 두고 보자......>

백번도 더 다짐하며 눈을 흘겼다.
그러나 그런 감정을 오래 가지고 있으면 있을 수록 자기 자신이? 불리하다는 것을 잘 아는 도옥은

금방 표정을 바꾸고는 그때까지 서로 관 뚜껑을 잡고 버티는 양몽환과 지심대사를 눈으로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조소저, 저것도 싸움이라고 하는 거요? 내참......]
하며 코웃음을 터뜨리는 것이 양몽환의 행동이 대협답지 않다는 표정이었다.
[그럼 어떻게 싸워야 하죠?]
[지금 사태는 힘으로 싸울 것이? 못됩니다. 지략(智略)으로 싸워야 합니다.

저렇게? 힘으로 한없이 싸우다간 끝이 없죠. 속전속결(速戰速決)이어야 합니다.]
<......이 간사한 자가 어떤 묘책이라도 있다는 말인가? 어디 은근히 알아봐야지......>
생각하며 조소접은 의미심장하게 도옥의 말을 듣는 척했다.
[그럼 방책은?]
[방책이랄 것도 없습니다. 적은 수가 많고 우리의 수는 적습니다.

그러니만큼? 꾀를 써야 될 것이오.

그렇지 않고 우유부단하게 시간만 끌면 패배를 초래하게 된단 말입니다.]
[그러니까 어떤 방책이 있느냐고 묻지? 않아요? 더구나 지심대사와 무공을?

겨룸에 있어서 어떻게 하면 될 것같아요?]
[지심대사의 무공은 강한 것같습니다.

그러나 도옥이 나선다면 십합 이내에 그의 맥혈을 짚을 수 있지만......
불행히도 이 도옥은 지금 중독되어 할 수가 없습니다.]
할 뿐 어떻게 해서 지심대사의 맥혈을 짚을 수 있는지 그 요점은 말하지 않고 조소접의 눈치만

살피는 것이었다.

그만하면 해독약을 내줄 만도 한데......하는 표정으로.
그러나 조소접은 모르는 척했다. 그리고 도옥이 생각하는 꾀라면 그것이 귀원비급에서

터득했을? 것이라 생각하고 귀원비급의 글자 하나하나 모두를 암송하고 있는 조소접 자기가

도옥만 못할리 없다고 생각했다.

<......꾀? 말하지 않아도 좋아. 귀원비급 어느 장애 있다는? 것만 알아내면

나도 너에게 지지않는 꾀를 강구할 수 있지......>

하고는 슬쩍 말을 돌렸다.
[그 꾀라는 것도 결국 귀원비급에서 터득한 거겠죠?]
[그렇죠.]
[그럼 말해 보세요. 어느 장에 있는지.]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가만히 기다려 보시오. 좀 생각해 보겠습니다.]
하고 입을 다무는 것이었다.
이때, 양몽환과 관 뚜껑을 마주잡고 힘을? 겨루던 지심대사는 계속 이렇게 버티기만 하다가는?

싸움이 언제 끝날지 모른다고 생각했는지

관 뚜껑을 쥐고 있던 두? 손 중에서 왼쪽 손만 순간적으로 떼면서?

 양몽환의 얼굴에 일장을 뿌리는 것이었다.
순간, 양몽환도 재빨리 오른 손으로 관 뚜껑을 밀어붙이면서 왼손을 들어 날아오는

지심대사의 일장을 맞받아쳤다.
그 순간, 꽝! 소리를 내며 두? 손바닥에서 마주친 장풍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천장으로 치솟았다가 좌우로 먼지를 날리며 퍼져나가는 것이었다.
양몽환이 맞받아 치는 장풍에 자신의 일격이 무위로 끝난 지심대사는

조소접이나 지금 상대하고 있는 양몽환의 무공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직감하고는 한층 내공을 북돋았다.
한편, 양몽환도 지심대사를 가볍게 볼 수는 없다고 생각을 고쳤다.?

그리고는 관 뚜껑 밑으로 왼 발을 밀어넣고는 힘껏 내찼다.

그리고 눈썹을 치켜 올리면서 다시 오른 손에 힘을 주며 관 뚜껑을 미는 것과 함께

왼 손을 번개같이 휘둘렀다.
그러나 지심대사도 양몽환 못지않게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반격을 가해오는 것이었다.

관 뚜껑? 밑으로 힘껏 걷어차는 양몽환의 발길과 왼 팔의 장풍을?

가볍게 막아내는 것과 동시에 오른 손으로?

밀던 관 뚜껑을 왼 손에 바꾸어 쥐면서

유사천리(流砂千里)의 수법으로 오른 팔을 맹렬히 휘둘러 파도같은 장풍을 밑어불였다.
그리고 다음 순간, 허리를 굽히며 양몽환이? 장풍을 피하는 그사이,

이번에는 몸을? 돌리며 멍청히 서 있는
도옥의 가슴을 겨누고 정확한 일장을 내뿜는 것이 아닌가!
그 순간, 그때까지 양몽환과 지심대사의 대결장면을 보면서도 조소접에게

해독약을 얻어 먹기에만 전전긍긍하던 도옥은 뜻밖의 일격에 소스라치듯 놀라며

엉덩방아를 찧듯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머리 위로 장풍을 피하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독약에 중독된 도옥으로서는 대적한다는 것은 엄두도 못내고

엎드린채 석 자나 엉금엉금 기어 구석으로 피하고서야 지심대사의 공격권에서 벗어났다.

눈이 홱 돌 지경으로 놀랐다.
그리고 엉거주춤 일어나는 도옥은 죽어라 하고 조소접을 저주했다.

 

<이년! 네가 해독약을 주었으면 지금쯤 지심대사를 박살내고 말았을텐데?

이 도옥이 엉금엉금 기도록 만들어?......두고 봐라!>

하며 눈을 흘겼을 때는 지심대사와 한창 어울려 몸을 날리는 조소접이었다.
똑같은 순간에 일제히 쥐고 있던 관 뚜껑을 집어 던진? 양몽환과 지심대사는

서로 일장씩 맹공을 가하고는 각기 세 걸음씩 뒤로 물러섰다.
사실 도옥과 말을 주고 받던? 조소접은 돌변한 지심대사의 공격에 바싹? 화통이 터져 달려들려는

양몽환을 밀어젖히며 지심대사를 가로막고 나섰던 것이다.
한참 어울려진 쌍방의 결투는 피차 막상막하, 실로 용호상박의 격전이었다.

손, 팔을? 휘두르는가 하면 팔굽으로 내려치고 무릎으로 상대방의 가슴을 후려치는가 하면

어느 사이에? 물러서면서 두 팔을 벌려 크게 원을 그리는 것이었다.
조소접은 중독된 몸도 완전히 회복하고 더구나 지심대사의 체력이 현저히 눈에 띄게 지친 듯

가쁜 숨을 몰아쉬는 것을 발견하고는 용기백배로 몸을 제비같이 가볍게 놀리며

이리저리 공격하고 장풍을 날리고 정신못차리게 돌아갔다.
이때, 한쪽 구석에서 엉거주춤 일어나 해독약을 주지 않는 조소접을

노려보고 있던 도옥은 주위를 돌아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것은 대청 안에서 그렇게 소란을 피우며 상호간에 필살의 일격을 벌리고 있는데도

대청을 밖으로 에워싸듯한 그 많은 승려들은 뛰어들어 지심대사를 도우려 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러한 승려들을 휘둘러 보다 역시 지심대사를 조소접에게 맡기고 한쪽 옆에서

악투를 관전하고 있는 양몽환에게 다급히 달려왔다.
[양형, 급히 해야 할 말이 있소.]

<......이 자가 왜 이렇게 서두를까?......>

[?......무슨 말이오?......]
[이 도옥은 아직 중독된 몸이어서 역시 양형이 해야겠소.]
[도대체 무슨 일인데 그러오?]
[우선 저 관을 살펴보고 그 안에 있는 사람이 지광대사라면 시체를 빼앗도록 하시오.]
무슨 계략이 있어서인지는 모르지만 도옥이 서두르는 태도로 보아

어떤 간사한 꾀를 생각해낸 모양이었다.
그러나 양몽환은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그리고 도옥의 심중을 떠보려고 담담히 물었다.
[만일 지광대사의 시체가 아니라면?]
[그렇다면 더 큰일이오. 우리는 그들의 함정에 빠진 것이오.]
[어떤 함정?]
[그것은 이 도옥도 모르오. 상상도 못할 괴이한 술법에 걸려들꺼요.]
[............]
[그리고 양형!]
[?............]
[조소저에게 지금 지심대사를 해치지 말라고 양형이 좀 말하시오.]
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양몽환은 내심 놀랐다.
[그건 무슨 말이오?]

[만일 사태가 불리한 지금 지심대사가 지는 날이면 우리한테 분풀이를 할거요.

그러면 우리만 골탕먹소.]
[흠......]
그럴 듯도 하고 그렇지 않은 것같기도 해서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모르는

양몽환은 잠시 사이를 두었다가 말을 바꾸었다.
[우선 관부터 살펴보겠소.]
하고는 급히 관으로 다가갔다.
이때, 조소접과 지심대사는 점점 기세를 더하고 있었다.
그러나 관 옆으로 다가가는 양몽환을 싸우는 중에서 흘깃 바라본 조소접은

양몽환의 의도를 짐작하고는 지심대사가 양몽환을 공격하지 못하게 더 바싹 공격권을 좁혀 들어갔다.
그러자 지심대사는 약간 피로한 듯 조소접이 모는대로 구석으로 밀릴 뿐

관 옆으로 다가가는 양몽환에게는 손을 써볼 생각조차 못하는 눈치였다.
관 옆에까지 다가간 양몽환은 조소접에게 몰리는 지심대사를 바라보고는 안심하고

관 속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과연 관 속에는 황색가사(黃色袈裟)를 입은 승려 하나가 누워 있었다.

그러나 누구인지 알아보지 못하게 백사(白紗)로 얼굴이 가리워져 있었다.
그래서 얼굴을 덮은 백사를 벗겨내야만 누구의 시체인지 확인할 수 있었다.
그때, 구석으로 몰리고 있던 지심대사는 버럭 소리를 지르며 오른 팔과 왼 팔을

일시에 내뻗으며 조소접에게 공격을 가했다.
그 순간, 조소접이 뒤로 멈칫 물러서는 그 틈을 노려서 벽력같이 고함을 지르는

지심대사 역시 관을 먼 빛으로 주시하고 있었음이 확실했다.
[손을 멈춰라! 만일 망령되이 그 시체를 건드린다면 죽음이 온다는 것을 명심해라!]
하고 말을 마치는 것과 동시,

한가닥의 매섭고 날카로운 잠력이 뻗쳐오는가 했는데 불현듯 손바닥이 찢어지는 아픔도 순식간,

뒤로 휘청 넘어지려는 몸을 바로 세웠을 때는 날카로운 조소접의 비명과 같은 절규가 대청을 울렸다.
[주의해요!]
그러나 그 목소리가 채 끝나기도 전에 손바닥을 칼날처럼 곧추세운 지심대사가

그야말로 전광석화와 같이 덤벼들면서 양몽환의왼쪽 어깨를 후려 갈기며 휙! 지나가는 것이 아닌가!
눈깜짝할 사이에 지심대사를 피할 겨를도 없이 호되게 얻어맞은 양몽환은 몸이 일쪽으로 쓰러질 듯했다. 그러나 양몽환 역시 무술인으로 자처하는 무협계의 대협(大俠)이 아닌가.

그만한 일격에 쓰러진대서야 대협의 체통이 말이 아니다.

즉각 운기하여 쓰러지려는 몸을 바로 세우면서 오른 팔을 휘둘러 마침 돌아서서 달려가려는

지심대사의 등덜미를 이를 악물면서 우악스럽게 잡아 낚아채고 말았다.
그러자 할 일없이 뒤뚱뒤뚱 뒷걸음질치며 뒤로 자빠질 듯이 밀리다

마침 뒤에서 기다리고 있던 조소접의 주먹에 눈알이 튀어나오도록 뒤통수를 얻어맞고는

눈을 딱! 올려뜨며 그 자리에 서는 지심대사였다.

그러나 지심대사는 조금도 굴하거나 두려워하지 않고 몸을 후딱? 돌리면서

양몽환과 조소접을 동시에 노려보는 것이었다.
앞에는 조소접이 눈썹을 치켜 올리고 있고 뒤에는 주먹을 쥔 양몽환이 이를 악물고 있는,

그래서 전후에서 협공을 받게 된 지심대사는 부지런히 동공을 굴렸다.

만만치 않은 상대를 일시에 두 명씩이나 맞아 싸우게 된 지심대사로서는

잠시 작전을 세울 필요가 있었다.
다음 순간, 민첩하게 몸을 날린 양몽환은 가운데 우뚝 선 지심대사를 덮치듯

몸을 날리면서 일장을 가해 헐레벌떡 지심대사를 옆으로 피하게 한 다음

몸을 뒤채듯 하면서 관 속에 얼굴을 덮은 백사를 젖혀버리고 말았다.
그 순간,

양몽환으로 하여금 관 속을 들여다 볼 기회를 주려고 결심한 조소접은 양몽환이

공격하도록 옆으로 비켜섰다가 다시 뛰어나가면서 오른 팔을 휘둘러 양몽환을

움켜쥐려는 지심대사의 어깨를 겨누고 손가락을 발딱 세웠다.
그러자 조소접이 날린 한 줄기의 날카로운 천강지풍(天 指風)에 어깨를 공격당하고

다시 연이어 날리는 천강지풍에 가슴이 쪼개지듯 뻐근한 고통을 당하고 주춤 허리를 굽히는

지심대사였다.
갑자기 달려온 한 줄기의 지풍에 어깨와 가슴을 호되게 얻어터진 지심대사는

관 옆에 있는 양몽환보다 또 공격해올지 모르는 조소접에게 나는 듯이 덮쳐 들어가는 것이었다.
그제야 숨을 돌린 양몽환은 재빨리 관 속을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다음 순간, 관 속에 누워 있는 사람이 틀림없는 지광대사라는 것을 확인하기는 했지만

상상밖으로 시체를 쉽게 볼 수 있다는데 약간 어리둥절해지는 양몽환이었다.
이때, 한쪽 구석에서 이리 날고 저리 날으며 장풍을 피해 서 있던 도옥은 양몽환이

관 속에서 고개를 돌리자 다급히 소리쳐 물었다.
[양형! 틀림없는 지광대사의 시체요?]
[그렇소. 그러나 어째 이상한 것같소!]
[뭐가 이상하단 말이오?]
[지광대사의 시체를 이렇게 쉽게 볼 수 있으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단 말이오!]
그러자 도옥은 자기가 직접 확인하려는 듯이 지심대사를 살피며 살금살금 다가갔다.
그러나 역시 틀림없는 지광대사가 아닌가!
이때 살기를 뚝뚝 흘리며 정신없이 조소접과 어울려 싸우고 있던 지심대사는

무슨 속셈에서인지는 모르지만 얼핏 보기에 맹렬한공세를 취하는 것같기는 한데

실제로는 느릿한 행동으로 일장을 갈기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조소접 역시 지심대사와 똑같이 느릿느릿 가해오는 공격을 막고 넌지시 반격하는 것이

아무래도 이상했다.
그러한 조소접과 지심대사를 보고 있는 양몽환은 하도 괴이한 행동에 눈이 둥그래졌다.


<......이상한 일이군. 갑자기 싸울 힘이 빠졌단 말인가......>

하는데 다급히 양몽환을 부르는 조소접의 음성이 들려왔다.
[양상공! 속히 등불을 끄세요.]
하는 것이 아닌가!
어째 좀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있던 양몽환은 불을 끄라는

조소접의 말에 더더욱 심상치 않음을 느끼면서도
시키는대로 우선 장풍을 일으켜 등불을 껐다.
그러자 대청 안은 캄캄절벽이 되고 말았다.

앞에 누가 있으며 자기는 지금 어디에서 있는지조차 분간할 수 없을 만큼

칠흑같은 어둠이 대청을 삼키고 맡았다.

그때 쿵! 하며 무엇인가 쓰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 순간, 휙! 바람소리가 나며 누군가가 양몽환에게 다가오는 인기척이 났다.
[양상공! 속히 지광대사의 시체를 갖고 이곳을 빠져나가요.]
조소접이었다. 그러는 말에 양몽환은 어둠 속에서도 조소접이 보이는 듯 번쩍 고개를 들었다.
[지심대사는?]
[지금 쓰러졌어요.]
[죽었어요?]
[죽지는 않았을 거에요. 천강지로 몇번 갈겨주었어요.]
[그럼, 지광대사의 시체는 내가 메고 가겠습니다. 조소저는 도옥을 데리고 오십시오.]
하고 관을 더듬어 짚었다.
이때, 조소접은 급히 생각에 잠겼다.

<......만일 저 지광대사가 란이 언니를 구할 수 있다면 구태여 도옥을 데리고 갈 필요는 없지 않은가.

여기서 아주 깨끗이 없애 화근을 뽑아야지......>

하고 결심한 조소접은 캄캄한 어둠 속을 두리번거리며 도옥을 불렀다.
[도옥! 어디 있어요?]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분명히 대답해야 할 도옥의 대답이 들리지 않았다.

계속 몇번 거듭 불러도 어느 구석에서도 대답소리는 없었다.

하며 또 불러보았으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도리어 도옥을 부르는 조소접의 목소리만 대청을 웽웽 울릴 뿐이었다.

그제서야 조소접은 간사한 도옥이 이미 어둠을 틈타 이 대청을 빠져나갔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중독된 도옥이 이 포위망을 뚫고 나갔단 말인가......>

하며 어디서 바스락 소리라도 나는가 귀를 기울였다.
그러나 관에서 지광대사를 들어 어깨에 메는 양몽환의 숨소리만이

어둠 속에서 들릴 뿐 그 어디에서도 도옥의 대답은 나오지 않았다.
그때 갑자기 이 구석 저 구석에서 불빛이 반짝거리면서 대청 안이 희미하게 밝아지더니

양몽환과 조소접의 눈 앞에는 언제 들어왔는지 수 십 명의 승려들이 겹겹으로 에워싸고 있었다.

그리고 그뿐이 아니었다.

눈을 돌리는 곳마다 허깨비같이 머리칼을 늘어뜨린 승려들이 눈을 치켜뜨고

한 걸음 한 걸음 거리를 좁혀오는 것이 아닌가.
순간, 조소접은 양쪽 두 손 열 손가락에 각기 지독한 진기를 불어넣어 천강지의 지풍을

단단히 채워넣고 우선 앞에서 다가오는 승려부터 한 줄기씩 날려보낼 결심으로

이를 바드득 갈았고 양몽환은 양몽환대로 어깨에 둘러메었던 지광대사의 시체를 내려놓고

잠시 주위를 뚫어본 다음 지광대사의 두 발목을 두 손으로 단단히 움켜쥐었다.

여차하면 지광대사의 발목을 잡고 시체를 휘둘러 장검으로 삼으려는 계획이었다.
그것은 만일 지광대사의 몸뚱이를 장검 대용으로 휘두르면 그의 부하들인 승려들이

대국사가 다칠까 염려해서 감히 접근하지 못하리라는 이중(二重)의 효과를 노렸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다음 순간!
조소접의 천강지나 양몽환의 지광대사 시체나 모두 써볼 기회도 없이 승려들 스스로가

두 갈래로 갈라지면서 길을 내주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눈 앞을 가로 막았다가 길을 내주는 승려들은 하나같이 지심대사처럼

얼굴의 한쪽은 붉고 한쪽은 검었다.

그리고 그들 가운데서 담황색(淡黃色)으로 길게 옷을 늘여입고 몸매가 호리호리한 여인

하나가 천천히 다가오는 것이었다.

그제서야 양몽환과 조소접은 승려들이 두 갈래로 길을 비켜준 것은

조소접과 양몽환이 나가도록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바로 이 요염한 자태의 여인이 걸어 올 수 있도록 길을 비켜준 것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고는 날카롭게 다가오는 여인을 노려보았다.
한 손을 가슴에 대고 한 손은 끌리는 옷자락을 살짝 잡은 채 걸어나오는 여인을

노려보던 양몽환과 조소접은 그녀가 거의 지척지간에 이르렀을때

그 여인의 뒤를 바싹 따라오는 또 한 사람의 승려를 발견하고는 깜짝 놀랐다.
그것은 지금 미태(美態)의 여인 뒤를 따라오는 승려의 손에는

날카로운 비수가 들리워져 있고 그 비수는 바로 걸어나오는

여인의 등을 겨누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기절하듯 놀라고 말았다.
그것도 그럴 것이, 지금 소리없이 걸어나오는 여인은 다름 아닌 바로 주약란이었기 때문이었다 .
그제야 조소접과 양몽환은 무슨 일이 잘못되어 간다는 것을 직감함과 동시,

승려들을 공격하려던 기운이 일시에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그뿐 아니라 다리까지 후들후들 떨리는 것이었다.

<어떻게 된 일인가. 이 어찌된 일인가......>

생각하면 억장이 무너지듯 기막히고 또 통탄할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더구나 아무? 것도 생각하지도 보지도 않는 듯 고요히 눈을내려뜬 주약란을 볼 때,

그리고 여차하면 주약란의 등에 대고 있는? 비수가 푹! 들어갈 것만 같아 양몽환과
조소접은 넋을 잃고 얼이 빠진 사람처럼 서 있었다.
그러자 주약란의 등에 비수를 겨눈 승려가 차갑게 노려보며 냉정히 소리치는 것이었다.
[즉시 대국사님을 관에 모시고 그 자리에 꿇어 앉아라!]
그 소리에 조소접은 뒤로 한 걸음 물러서며 꿇어 앉았다.

그러나 어떤 생각이, 아니? 계획이 있는지,

지광대사의 발목을 움켜쥔 양몽환은 손을 뗄 생각도 않고 꼼짝하지 않은 채

승려를 노려보는 것이었다.
그러한 양몽환을 비웃는 듯 내려다 보던 승려는 더 한층 음성을 차갑게 했다.
[흥! 못놓겠다 이런 말인가!

좋아 못놓겠다면 내 손에 쥐어진 비수가 이 여인의 가슴을 뚫고 말 것이다!]
하고 위협하듯 섬광이 번쩍이는 비수를 흔들어 보이는 것이었다.

그러나 양몽환도 지지않고 눈을 부라렸다.
[마음대로! 그러나 만일 소저의 몸에 조금이라도 상처를 입힌다면

이 대국사라는 자의 머리통을 두 조각으로 빠개겠소!]
하면서 움켜쥔 대국사의 두 발목을 약간 들었다 놓았다.
역시 만만치 않은 양몽환이었다.

대범하고 어질기만 하던 양몽환이 언제 저렇듯 대담한 용기가 났을까 하며
조소접은 속으로 쾌재를 외쳤다.
지지않고 눈을 부라리는 양몽환의 말에 역시 대국사는 하늘같은 존재인지

주약란에게나 양몽환에게 대들지 못하고 발을 구르며 으름장을 놓는 승려였다.
[뭣이? 목숨이 귀하지 않다면 좋도록 하라!]
[흥! 목숨이 아깝기는 당신도 마찬가지지!]
추호도 두려운 빛 없이 맞서는 양몽환의 당당한 태도에 약간 멈칫한 승려는

어깨로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아무래도 상대가 속인(俗人)같지는 않았는지,
아니면 약간 두려움을 느꼈는지

양몽환을 노려보다가 잠시 사이를 두고 다시 내뱉았다.

말은 조금 누그러졌다.
[음......당신이 양몽환이오?]
[그렇소. 그건 왜 묻소?]
[오! 그러신가. 고명(高名)은 들은지 오래오마는......]
하며 말을 끝맺지 못하던 승려는 금방 음성이 부드러워지면서 주약란에게 고개를 돌렸다.
[과연 듣던 바대로 영웅 호걸인 모양이오.

 주소저, 당신이 잘 말해서 대국사님의 시신(屍身)을 놓게 하시오.]
하고 주약란에게 말하는 것이었다.
그제야 고개를 숙인채 눈을 내려뜨고 있던 주약란은 조소접과 양몽환에게

눈으로 인사하며 고개를 들었다.
그러한 그녀의 눈인사는

<나때문에 당신들이 고생하는군요......미안해요......>

하는 것같았다.
그러나 일단 고개를 들어올린 주약란은 시선이 승려에게 가자 역시 냉정해지는 것이었다.
[그보다 먼저 나의 요구를 들어주세요.]
[무슨 요구입니까?]
[대국사가 살아날 때까지 우리 세 명을 조금도 해치지 않겠다면 응하겠소.]
[그야 주소저께서 도망만 가지 않는다면 간단한 일입니다.]
[만일 응낙치 않는다면 대국사의 목숨과 나의 목숨을 바꾸면 그만이에요.]
[좋습니다. 이 대청 안에만 있겠다면 응낙하겠습니다.]
[그럼, 당신이 책임질 수 있어요? 우리를 해치지 않는다고?]
[물론 책임질 수 있습니다.]
[좋아요!]
간단히 대답한 주약란은 즉시 양몽환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양상공, 시체를 놓고 일어나세요.]
그제야 양몽환도 움켜 쥐었던 지광대사의 발목을 마룻장이 울리도록 탕! 놓으며 일어섰다.
그러자 주약란은 역시 꿇어앉아 있는 조소접에게도 일어나라고 하고는 승려에게 다시 고개를 돌렸다.
[그럼 물러가세요. 모두 데리고!]
[좋습니다.]
승려는 손바닥을 탁, 탁, 탁, 세 번 쳐서

그것을 신호로 삼아 에워쌌던 승려들이 대청 밖까지 뒷걸음으로 물러가는 것이었다.
그제서야 조소접은 숨을 몰아쉬며 조용히 주약란을 불렀다.
[언니,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에요? 언니도 사로잡혀 왔어요?]
그러자 주약란은 천천히 고개를 가로 흔드는 것이었다.
[아니, 스스로 찾아왔어요.]
하는 말에 양몽환과 조소접은 서로 똑같이 마주 보며 크게 눈을 떴으나

주약란은 그들의 표정은 개의치 않고 누구를 찾는지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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