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지/풍우연귀래

42. 끊임없는 계략

오늘의 쉼터 2014. 10. 27. 00:22

42. 끊임없는 계략

 

 

주약란의 차가운 시선에 왕한상은 어색한 웃음을 흘렸다.
[이 왕모는 다만 심부름으로 왔을 뿐입니다.?

주소저께서 우리 방주의 도움을 받아 주신다면 곧 이 사실을 전하겠습니다.]
하고 주약란의 대답을기다리는 것이었다.
이때 바위 뒤에 숨어 있던 양몽환이 천천히 모습을 나타냈다.
[왕선배님 !]
하고 두 주먹을 쥐어 흔들었다.
그러자 왕한상도 급히 반례하며 주먹을 흔들었다.
[양대협, 오랜만이오.]
[오랜만입니다. 그턴데 할 말이 한가지 있습니다.]
[무슨 말인지......하십시오.]
[왕선배님은 일찍이 무예계의 이름을 날리고 더구나 저의 장인께서

천용방을 이끄실 때는 오기단주의 한 분으로서 그 신임이두터워

천용방의 부방주로 삼으려고 했습니다.

그러던 왕선배님이 그때 향주(香主)에 불과 했던 도옥의 부하가 되어

충성을 다하고 있다는 것은 실로 부끄러운 일이 아니겠습니까?]
순간, 어리둥절했던 왕한상은 무슨 말을 하는가 하고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가

담담히 웃는 것이었다.
[한 사람의 천부는 각기 다른 것이오.

수년전 우리 방주님이 일개 향주에 불과했었지만 지금은 무엇으로 비교해도

이 왕모를능가하기 때문에 기꺼이 방주로 모시는 것이오.

일단 방주로 모시면 충성을 다해야 하는 것은 도리(道理)가 아니겠소?]
[그래서 왕선배님은 도옥을 방주로 모신다는 말씀입니까?]
[그렇소. 우리 방주님도 이 왕모를 매우 신임하고 있으니만큼 그를 따르지 않을 수 없는 것이오.]
하고는 양몽환이 더 이상 말하지 못하게 하려고 곧이어 주약란을 돌아보며 화제를 돌렸다.
[우리 방주께서 주소저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속히 결정을 내려주시오.]
그러나 주약란은 왕한상이 기다리는 대답은 하지 않았다.
[도옥을 이곳으로 오라고 하세요. 그러면 의논하겠다고. 그렇게 전해 주세요.]
[그럼, 그렇게 전하겠습니다.]
주약란은 머리를 끄덕이며 조소접을 돌아보았다.
[짚은 혈도를 풀어 주세요.]
그러자 조소접은 왕한상의 세 곳 혈도를 풀어 주었다.
혈도가 풀린 왕한상은 두 주먹을 마주 쥐고 허리를 굽혔다.
[그럼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하고는 몸을 돌려 질풍같이 계곡을 빠져나갔다.
왕한상이 사라지기를 기다려 조소접은 무엇인가 개운치 않은 표정을 지으며 주약란을 불렀다.
[언니, 무엇때문에 도옥이 우리를 도와 준다는 거죠?]
그러나 주약란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짚은 생각에 잠기는지 눈을 스르르 감는 것이었다.
그러자 주약란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조소접과 양몽환은 계곡을 조금 빠져나와

다른 바위 위에 걸터 앉았다.
그리고는 조소접이 먼저 물었다.
[양상공, 란이 언니가 도옥과 손을 잡을 것같아요?]
그러자 양몽환도 혼자 생각에 잠겼다.

<음.......다른 때 같으면 모르지만 지금 내상을 입은 주소저가 도옥의 도움을 받겠다고 할 것인가?

......모를 일인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주약란의 마음을 알 길이 없는 양몽환은 모호한 대답을 할 수밖에 없었다.
[글쎄요. 잘 모르겠습니다. 조소저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저도 역시 .....그러나 만일 언니가 도옥과 손을 잡고 천축국의 승려들과 싸운다면

그것은 일시적인 방면에 지나지 않을 거에요.

그러나 만일 도옥이 란이 언니를 도우러 오면 그때 우리 둘이서 처치하도록 해요.]
[좋은 의견입니다. 기회를 봐서 도옥을 죽이도록 하죠.

물론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오겠지만.]
그때 다시 한 사람의 장정이 협곡을 질풍같이 달려오다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는

사방을 살피는 것이었다.
흑의를 입고 키가 짤막한 장정이었다.
그렇게 수상한 행동을 하고 있는 사람을 먼 빛으로 보고 있던 양몽환이

진기를 돋우며 급히 달려나갔다.
그러자 그 흑의인은 달려오는 양몽환을 발견하고는 반색을 하며 마주 달려오는 것이 아닌가!
[양사제 ! ]
순간, 이 흑의인이 바로 동숙정이라는 것을 직감한 양몽환은 황망히 두 주먹을 쥐었다.

틀림없는 동숙정 사매였다.
[동사매 ! ]
수인사를 끝낸 동숙정은 음성을 낮추며 황망히 되물었다.
[주소저가 상처를 입었다는 것이 사실이에요?]
[그렇습니다만, 어떻게 아셨습니까?]
[양사제는 모르고 있었지만 그동안 나는 도옥의 부하들 틈에 숨어 있었어요. 거기서 들었어요.]
사실 그동안 동숙정은 변장을 하고 도옥의 부하들 틈에 끼어 그들에게서 정보를 수집하고 있다가

지금 이 계곡에 나타난 것이었다.

그러한 것을 처음으로 듣는 양몽환은 내심 놀랐다.
[도옥에게 발각되지 않고 용케 숨어 있었군요.]
[네. 다행히. 그런데 중대한 소식이 있어요.]
그러자 뒤미처 달려온 조소접이 눈을 크게 떴다.
[무슨?]
[지금 왕한상이 다녀갔죠?]
[네. 금방 돌아갔어요.]
[바로 그거에요.

주소저가 지금 상처를 입은 것을 알고 왕한상을 보내 허실을 탐지케 한 다음

고수들을 이끌고 와서 주소저를 사로잡으려고 음모를 꾸미고 있어요.]
[음.......바로 그거였군......저도 눈치는 챘어요.

그? 사악한 도옥이 우리를 도울 리가......그래서? 왕한상을 미리 보냈었군요.]
[알고 있었다니 다행이군요. 그럼 조소저께서 잘 처리하세요. 저는 또 가보겠어요.]
하고 돌아서는 동숙정을 양몽환이 다시 불러 세웠다.
[?.............]
[지금 조소저는 매우 바쁩니다. 그리고 도옥 일당을 맞아 싸우기에는 수가 부족한 형편입니다.]
[그럼, 나도 여기 남을까요?]
[아니 그런 것이 아니라 수고스럽지만 급히 수월산장에 다녀와 주었으면 합니다.]
[수월산장?]
[네, 그곳에는 저의 장인어른이 계십니다. 그 어른만 오시면 아무 걱정이 없을 겁니다.]
[이노영웅 말씀인가요?]
[그렇습니다. 아무래도 무술계에 견문이 넓은 장인어른이 옆에 있어 주면 대적하기도

수월할 것같습니다.]
[알겠어요. 또 수월산장에는 누가 있어요?]
[심소저가 있습니다.]
[그럼 다녀오겠어요.]
[고맙습니다.

그리고 혹시 천기석부에서 온 사람들이 있으면 주소저가 이곳에 있다고 전해 주십시오.]
[알겠어요.]
하고는 급히 몸을 돌려 달려갔다.
동숙정이 떠난 다옴 양몽환은 조소접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조소저, 동사매의 앞 길에 위험이 없겠습니까?]
[글쎄요.......없기를 바랄 뿐이에요.]
양몽환과 조소접은 거의 동시에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다시 양몽환이 먼저 입을 열었다.
[도옥이 또 잔꾀를 부릴 모양인데 우리도 만반의 준비를 해야하지 않겠습니까?]
[물론 준비를 해야죠. 그런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제 의견같야너는 주소저를 지키고 있다가 접근해 오는 도옥을 맞아 싸우는 것이 좋을 것같습니다.]
[그것도 좋지만 우유부단한 행동이에요.]
[그럼 어떻게 했으면 좋겠습니까?]
[먼저 손을 써야 해요.

하염없이 기다릴 것 없이 먼저 손을 써서 도옥으로 하여금 접근할 엄두도 내지 못하
게 하는 것이 상책이에요.]
[좋은 의견입니다.

나 역시 이 수 년간 도옥에게 여러가지 해를 입은 사람입니다.

어떠한 수단을 써서라도 그를 처치해야 할것입니다.]
[그럼 우선 언니에게 물어보고 대책을 강구하도록 해요.]
하고는 주약란이 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때, 조소접의 뒤를 따라 역시 걸음을 옮기는 양몽환은 앞길이 암담했다.
<......오년 전 강호에 재난이 있은 후, 얼마 동안이나마 평정을 바랬는테

뜻밖에 도옥의 출현으로 다시 풍파가 일어나는군......

천기진인과 삼음신니가 남긴 귀원비급이 이 강혹의 평화에 도움이 될줄 알았는데

오히려 재난을 일으키는 근본 원인이 아닌가.

그리고? 그 귀원비급 때문에 강호에 평화가 한시도? 깃들지 못한다면
귀원비급을 없애는 것만이 재난을 극복하는 최선의? 길이 아니겠는가......

음......어떻게 해서든지 그 귀원비급을 불에 태워 없애야지.......>
하고 은연중에 주먹을 쥔 양몽환은 친천히 주약란과 조소접이 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때, 주약란과 조소접은 천천히 다가오는 양몽환을 지켜보다 먼저 주약란이 입을 열었다.
[양상공, 어떻게 하면 도옥의 일당을 처치할 수 있을 것같아요?]
그러나 양몽환 역시 뾰족한 수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겨우 똑같은 말을 되풀이할 수밖에 없었다.
[주소저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지금의 정세로 봐서는 도옥 일당에게 불리하겠지만 내? 생각같아서는

능히 위험을 물리칠 수 있을 것같은 자신이 있어요.]
하고는 곧이어 다시 말했다.
[사태가 위급할 때는 할 수 없어요. 나도 악랄한 수를 쓸 수밖에.......]
라고 말하는 주약란은 고통이 심한 듯 이마를 찌푸리는 것이었다.
그러자 조소접이 근심스럽게 물었다.
[상처가 심한데 어떻게 도옥과 상대하겠어요?]
[염려없어요.]
하는 바로 그때였다.
갑자기 하늘에서 은은한 학의 울음소리가 들려오더니

옥소선자를 태운 현옥이 조용히 날개를 접으며 내려앉는 것이었다.
현옥의 등 위에서 가볍게 내려선 옥소선자는 주약란 앞에서 허리를 굽히며 안부를 물었다.
[주소저께서는 건강이 어떠신지요?]
그러자 주약란은 생긋이 웃으며 답례했다.
[이렇게 건강하지 않아요? ]
[조금 전 동소저를 만났는데 그때 주소저께서 상처를 입었다는 말을 들었어요.]
[염려할 정도는 아니에요.]
[다행이군요.]
그러자 주약란은 자기의 상처에 대해서 더 말하고 싶지 않은지 화제를 돌렸다.
[수월산장에도 다녀오는 길인가요?]
[네. 이노선배님과 심소저를 만나고 오는 길입니다.]
[잘했어요. 그리고 또 누가 천기석부를 떠나왔죠?]
[팽소저가 몇 명의 시녀를 데리고 떠났습니다. 수월산장에서 만나기로 하고요.]
주약란도 고개를 끄덕이며 만족해 했다.
[됐어요. 그럼 곧 수월산장으로 돌아가세요.]
그러자 옥소선자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중상을 입은 소저를 도우려고 왔는데 돌아가도 되겠어요?]
그러나 주약란은 완강히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 괜찮아요. 여기는 양상공과 조소저가 있어서 충분해요.

만일 수월산장에 천축국의 고수들이라도 들이닥치면 큰일이에요.]
라고 말하자 옥소선자도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수월산장으로 돌아가려고 하였다.
이때, 다시 주약란은 옥소선자를 불렀다.
[그리고 만일 백독옹(百毒翁)이 수월산장에 오거든 대접을 잘하세요. 혹시 도움이 될지도 몰라요.]
[분부대로 하겠어요.]
허리를 굽혀 대답하고 조소접과 양몽환에게 작별인사를 한 옥소선자는 현옥의 등에 올라탔다.?

그러자 현옥은 그 긴 날개를 두어번 퍼덕이며 산 위로 쏜살같이 날아가는 것이었다.
옥소선자가 떠나자 주약란은 약간 피로한 듯 이마를 짚으며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그러한 주약란을 바라보고 있는 양몽환은 그녀에 대한 미안함과 안스러움이 우러나는 것이었다.

<......나약한 여자의 몸으로 더구나 공주의 신분으로 강호 무술계에 뛰어들어

이 양모를 도와 주는 주소저에게 나는 무엇으로 그 은혜를 보답할 것인가.?

또 지금은 위중한 상처까지 입은 그녀에게 어떻게? 도와 주면 좋을 것인가.......>

생각하면 할 수록 저절로 머리가 숙여지는 양몽황이었다.
그때 만일 조소접이 다가오지 않았다면 양몽환은 더 비참한 마음에 빠져들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나 조소접이 나직이 부르는 소리에 양몽환은 황망히 여러가지 생각을 떨쳐버릴 수 있었다.
[양상공! 일이 아무래도 이상하게 변해가는 것같지 않아요?]
[왜요? 일이 잘못되었습니까?]
[생각해 보세요. 언니가 도옥과 담판을 내겠다고 하지 않아요?

더구나 언니는? 도옥과 같은 인간을 제일 싫어하는데 만나서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모르겠군요.]
[글쎄요.......무슨 계획이 있겠죠.]
그러나 조소접은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음성을 낮추었다.
[양상공, 당신도 알고 있죠?]
[?.......]
[도옥이 언니를 사모하고 있다는 것 말이에요.]
그제야 양몽환은 조소접의 진지한 표정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알고는 잠잠히 웃었다.
[도옥은 어느 여자에게나 호감을 가지지 않습니까?]
별로 대수로운 것이 못된다는 표정이었다.

그러나? 조소접은 그리 쉽게 웃어넘길 일이 아니란 듯이 표정을 굳혔다.
[그러나 도옥이 란이 언니를 사모하는 것은 다른 여자에게 호감갖는 것과는 달라요.]
[저는 모르겠는데요. 어떻게 다릅니까?]
[뭐라고 꼭 짚을 수는 없지만 인물이나 그 신분에 상당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같아요.]
[글쎄요......그러나 주소저는 지혜가 많은 사람입니다.

그러한 주소저가 도옥의 심증을 모르고 대하지는 않을 겁니다.]
[저도 그런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에요.

그러나 사람의 일이라는 것은 모르는 일이에요.

만일 도옥의 간계에 언니가 넘어가 도옥과 손을 잡으면 큰 일이 아니겠어요?]
[그러나 조소저. 그건 주소저를 잘 모르고 하는 말입니다.

주소저는 절대로 도옥의 간계에 넘어가지 않습니다.]
[그랬으면 좋겠어요.

그러나 남녀간의 일은 확정지을 수도 속단할 수도 없는 일이 아니겠어요.]
하는 말을 마치자 마자 계곡 아래서부터 일진의 장정들이 우르르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아득히 일어나는 먼지와 함께 달려오는 한 무리의 사람들은 얼핏 보기에 누가 누구인지

구별이 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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