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지/풍우연귀래

43. 시체를 훔쳐라!

오늘의 쉼터 2014. 10. 27. 01:03

제6권

 

43. 시체를 훔쳐라!

 

 

 

그 순간, 무슨 예감이 들었는지 조소접은 황망히 소리쳤다.
[도옥일 거에요. 틀림없이 도옥이 달려오고 있을 거에요.]
[그럼, 왕한상이 벌써 말한 모양이죠?]
[그럴 거에요. 저는 피하겠어요.]
[피해도 소용없습니다. 이미 왕한상이 우리가 같이 있다는 것을 다 말해서 도옥이 알고 있을텐데요!]
[그래도 좋아요. 나는 이 세상에서 도옥이 제일 보기 싫어요.?

보기 싫은 사람은 보지 않는 것이 마음 편해요.]
전에 없이 조소접은 허둥거리며 바위 뒤로 숨는 것이었다.

양몽환은 약간 이상한 생각이? 들긴 했으나 굳이 보기 싫다고 하는 것을 보라고 할 수도 없어

그냥 달려오는 장정들을 노려보았다.
과연 달려온 사람들은 조소접 말대로 도옥과 부하들이었다.
앞장서서 달려오던 도옥은 양몽환을 발견하고는 급히 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 주먹을 쥐고 흔들며 먼저 인사를 하는 것이었다.
[양형! 오랜만이오!]
양몽환 역시 주먹을 쥐고 반례했다.

아무리 적이라? 해도 먼저 인사를 하는 데는 거절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오랜만이오. 그런데 당신이 진짜 도형이오?]
그러자 도옥은 실처럼 가눌게 눈을 뜨며 씨익 웃었다.
[틀림없는 도옥이오. 이 세상에 도옥은 하나뿐이 아니오?]
하고 대답하는 음성은 틀림없는 도옥의 목소리였다.

양몽환은 도옥과 도옥의 화신을 구별하는 데는 그의 음성으로 알아내고 있었다.
[알겠소. 그런데 무슨 일로 왔소?]

[양형은 모르고 있소?]
[무엇을?]
[주소저가 이 도옥을 이곳으로 오라고 한 사실을 말이오.]
[이 양모가 알기로는 도형이 먼저 사람을 보내 주소저를 만나자고 청을 하지 않았는가 하는데......]
[결국 마찬가지 아니오. 주소저가 이 도옥을 만나겠다는 거나 이 도옥이 주소저를 만나겠다는 거나!]
더이상 말하고 싶지 않은 양몽환은 차갑게 도옥을 노려보며 턱을 치켜 올렸다.
[주소저는 지금 저쪽에 있을 것이오. 만나보시오.]
그러나 도옥은 사방을 휘둘러 보며 여전히 웃음을 흘렸다.
[그런데 양형. 주소저가 어디 있다는 거요?]
[글쎄 어디 있는지 모르겠소. 만나고 싶으면 찾아보시오.]
그러자 도옥은 씨익 웃고는 데리고 온 십여 명의 부하들에게 분부를 내렸다.
[여러분들은 여기서 기다리시오. 그리고 이 도옥의 허락없이는 조금도 자리를 옮기지 마시오.]
그러자 십여 명의 장정들은 일제히 입을 모아 똑같이 대답하고는

그 자리에 한 줄로 나란히 서서 대기하는 것이었다.
그들이 앉기를 기다려 도옥은 양몽환에게 고개를 돌렸다.
[양형, 이 도옥이 혼자 들어가는 것을 막지 않겠소?]
[주소저가 만나자고 한 이상 막을 필요는 없소.]
하며 양몽환도 막아섰던 길을 비켜주었다.
그러자 도옥은 거만하게 어깨를 펴며 씨익 웃었다.
[양형이 꽃과 같이 아름다운 두 아가씨들과 이처럼 아늑한 곳에서 함께 지내고 있는 것을 보니

양형만 이 세상의 행복을 독차지 하고 있는 것같소. 이 도옥은 진심으로 부러워하는 바요.]
비꼬는 듯 아니면 정말 부러운 듯 어깨를 흔들며 떠벌린 도옥은 거침없이 양몽환의 앞을 지나갔다.
그러자 도옥의 위인됨을 잘 아는 양몽환은 도옥과 상대해서 말할 필요를 느끼지 않았다.

아예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묵살해버렸다.
이때, 가볍게 헛기침을 한 도옥은 곁눈으로 양몽환의 표정을 살피며 걸음을 옮겨 놓았지만

더 이상 말을 하지는 않았다.
그렇게 걸음을 옮겨 놓은 도옥은 분명히 함께 있다고 한 조소접이 보이지 않는 데에

경계심을 일으키며 주위를 살폈다.

<......틀림없이 왕한상은 조소접도 이곳에 있다고 했는데 눈에 보이지 않는군......

혹시 어디 숨어 있다가 뒤에서부터 공격하지 않을까......>

조심하고 두려워하며 주위를 살폈으나 주약란이 앉아 있는 바위앞까지 와도 조소접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제야 도옥은 안도의 숨을 쉬었다.
주약란은 커다란 바위를 등지고 잔디 위에 앉아 있었다.
항상 음흉하고 독설(毒舌)을 퍼부어야만 속이 시원한 도옥이지만 무엇 때문인지 주약란 앞에서는

독이 서린 혀가 움직이지 않고 더구나 독설을 뿜을 마음은 고사하고 오히려 사모의 정이

솟아나는 것을 억제할 수가 없었다.
주약란을 보는 순간, 두 손이 절로 맞잡아졌다.
[주소저, 이처럼 만나주심에 이 도옥은 영광으로 알고 감사를 드리는 바이오.]
그러나 주약란의 표정은 너무나 차고 또 엄숙했다. 아무 인사없이 용건부터 물었다.
[무슨 일로 만나자고 했죠?]
헤픈 웃음을 흘리던 도옥은 싸늘한 주약란의 표정에 머쓱해지고 말았다.
[눈 앞에 닥친 무예계의 일을 주소저와 의논하고자 하는 것이오.]
[의논?]
[그렇습니다. 지금 천하 무술계를 둘러 보아도 어려움을 헤쳐 나갈 인물은

도옥과 주소저 단 두 사람뿐입니다.]
[흥! 대단하시군요.]
하고 냉소한 주약란은 혼자 생각해도 우스웠던지 살짝 낯을 붉히며 웃었다.
그러자 마치 꽃이 활짝 핀 것을 본 듯 도옥은 정신이 아찔하도록 황홀해 했다.
그리고는 다시 엄숙해지는 주약란의 얼굴을 살피며 도옥은 가볍게 헛기침을 했다.
[그런데 우리 두 영웅이 서로 싸운다면 필유일상(必有一傷)이라 주소저가 다치든

이 도옥이 다치든 두 사람 중의 한 사람은 꼭 다치게 될 것이오.

그리고 무예계에서는 시체로 산을 이루게 되고 피로 강을 만들 것이오.]
[대단한 자부심이시군요.]
[천만에, 자부심이 아닙니다. 주소저도 친히 천하를 살펴보시오.

그러면 내 말이 사실인가 아닌가를 알게 될 것입니다.]
하고는 주약란의 표정을 살피며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러나 이 중원땅에는 천축국의 고수들이 몰려와 기세를 높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기세는 두려울 만큼 살기등등합니다.

이러한 지금 이 도옥과 주소저가 힘을 합해 물리치지 않으면 가공할 사태가 벌어질 것입니다.]
[뭐라고요? 그럼 그 천축국의 고수들이라는 승려들을 누가 이 중원땅에 불러들였죠?]
[그건 이미 지나간 일입니다. 누가 불러들였던 그것을 따질 형편이 아닙니다.]
하며 말도 못하게 손을 내저었다. 그러나 주약란은 눈썹을 치켜 올리며 싸늘하게 말했다.
[왜 두려운가요? 바로 도옥 당신이 불러들인 것이 아닌가요?]
핵심을 찌르는 말에 도옥은 할 수 없다는 듯이 거북하게 웃었다.
[이미 지나간 일입니다. 비록 이 도옥이 불러들이긴 했지만 그것은 모두 주소저를 위해서 한 것입니다.]
[뭐라구? 날 위해서? 흥! 실로 가소로운 일이군요.]
[이 도옥의 말은 진정입니다. 이 도옥의 말을 들어보면 모두 이해가 갈 것입니다.]
[이해가 갈 것이다?......어디 들어보기나 할까요?]
[그럼, 말하겠습니다. 이 도옥의 왼쪽 무릎을 비틀어 꺾은 사람이 바로 주소저 당신입니다.

그러나 결코 주소저 당신을 원망해 본적이 없습니다.]
[그럼 고맙다고 치하라도 하라는 말인가요?]
[뭐 감사표시를 할 것까지는 없습니다.

그러나 이 도옥은 천하의 인물을 저버리면 저버리지,

주소저에? 대해서만은 눈꼽만치도 증오심이나 원망을 품고 있지 않는다는 것이

이 도옥의 솔직한 고백입니다.]
[그래요? 놀라운 이야기군요. 그런데 왜 그렇죠?]
라고 말하는 도옥이 어디까지나 진지한 태도인데 반해 주약란은 시종 비웃는 태도였다.
[그건 메우 미묘한 일이죠. 이야기를 하자면 간단하지만 말입니다.]
[어디 말이나 해보시죠.]
도옥의 불타는 듯 충혈된 눈동자는 주약란에게 못박힌 듯 주시하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왜냐하면 이 도옥은 주소저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호......호......그래서 천축국의 승려들을 매수해서 나에게 상처를 입혔단 말인가요?]
그러자 어디 그럴 수가 있느냐는 듯이 도옥은 고개를 완강히 흔들었다.
[어찌 그런 일을......천만에......그건 주소저의 오해입니다.]
[오해라고요? 도대체 무엇이 오해란 말예요?]
[이 도옥은 주소저로 하여금 어떻게도 할 수 없게 하여 이 도옥과 손을 잡도록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천축국의 승려들이 주소저에게 상처를 입힌 것입니다.

정말 그것은 이 도옥이 생각조차 못했던 뜻밖의 일입니다.]
하고 황망히 변명을 늘어놓았으나 주약란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외면해 버렸다.
그렇다고 간사하기로 유명한 도옥을 상대로 해서 자기의 속마음을 겉으로 표현할 수 없다고

생각한 주약란

<이 간사하고 비열한 놈......>

이라는 말만 속으로 하고 있었다.
주약란이 속으로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모르고 도옥은 계속해서 장황한 변명을 늘어 놓았다.
[지금 주소저가 이 도옥의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면 문제는 다릅니다.

그러나 지금의 사태로서는 이 도옥과 손을 잡지 않을 수 없는 사태입니다.

그래야만 천축국의 승려들을 몰아내고 그들의? 괴이한 무공과 술법을 격파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만큼 주소저는 이 도옥을 오해하지 마시고 고려해 주시기 바랍니다.]
도옥의 말을 차분히 듣고 있던 주약란은 잠시 생각에 빠진 듯하다가 무슨 결심이나 한 것처럼

고개를 들었다.

손해가 없는 한, 결탁해 봐도 무방하다는 결심인지도 몰랐다.
[하늘에는 두 개의 해가 있을 수 없고? 나라에는 두 사람의 임금이 있을 수 없어요.?

그와같이 당신과 내가 손을 잡게 되면 누가 통솔하는 것이죠?]
그러나 도옥은 그까짓 것은 아무래도 좋다는 듯 거침없이 대답했다.
[그야 물론 주소저가 맡아 주셔야죠.]
[그럼 당신이 나의 말에 복종하겠다는 건가요?]
[물론 복종해야죠. 그러나 그보다 먼저 한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무슨 조건이죠?]
[새삼 말하기는 좀...... 이 도옥은 주소저를 상당히 사모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주약란은 드디어 도옥이 옴흉한 수작을 부리려고? 하는구나 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겉으로는 태연하게 말을 받았다.
[그것이 무슨 조건이에요?]
[아니 이를테면 이 도옥같이 냉정한 사람에게도 따스한 정이 있다는 것이죠.]
[그래요? 거 참 이상하군요. 나는 조금도 그런 것을 느끼지 못하는데......]
별로 불쾌해 하지 않고 주약란이 잠잠히 받아 넘기자 도옥은 약간 자신과 용기가 나는 모양인지

얼굴이 불그래지며 열변을 토했다.
[천생연분이라고 할 수 있다면 바로 이 도옥과 주소저를 두고 하는 말일지 모르는 것입니다.

주소저가 그것을 느끼지 못한다면 그건 당연한 일이죠.

왜냐하면 아직 이 도옥의 참된 인간성을? 모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도옥이 비록 무술계의 명성을 얻었다 하지만 주소저 당신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닌 명성이죠. 더구나 주소저처럼 명성이 자자한 사람에게 어찌? 함부로 사모한다고 말을 할 수 있습니까?

그래서? 이 도옥은 그 사모의 정을 가슴 깊이 간직하고만 있었습니다.]
[호......호......알겠어요. 굉장한 사모의 정이군요.

그러나 당신이 아무리 그렇게 말해도 의도는 딴 데? 있을 것같은데, 그렇지 않은지요?]
[천만에 그럴리가 있겠습니까? 이 도옥이 아무리 말해도 믿어 주시리라고는 생각지 않았습니다.]
하는데 그때까지 바위 뒤에 숨어서 도옥과 주약란의 대화를 듣고 있던 조소접이 듣다 듣다

참지 못하고 그만 발칵 성을 내며 튀어나왔다.
[이 간사한 도옥! 감언이설로 언니를 끌려고 그러지?......]
순간, 목이 움츠러진 도옥은 얼굴이 시뻘개지며 숨을 몰아쉬었다.

<......망할년이 하필 이때 나타나 다 된 일을 망치다니? 요년! 일찍 죽여버릴 것을......>

후회막심이었지만 별 수 없는 노릇이었다.
금방이라도 달려들 듯 눈에 불을 켜고 노려보는 조소접을 바라보며 도옥은 비굴한 웃음을 지었다.
[조소저는 너무 지나친 오해를 하고 있군요. 이 도옥은 진정으로 드리는 말입니다.]
조소접의 표정을 슬금슬금 살피며 도옥은 암암리에 진기를 돋우었다.
만일 조소접이 덮쳐든다면 그에 대한 방비가 있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조소접은 금방 달려들 태도만 취할 뿐 선뜻 달려들지는 않았다.
[흥! 진정으로 말한다고? 아무리 떠들어봐야 믿을 사람은 하나도 없어!]
[그럼 어떻게 하면 조소저가 믿겠습니까?]
[간단한 일이죠.]
[?......]
[지금 언니는 지광대사에 의해 상처를 입고 있어요.

그리고 지광대사도 언니에게 상처를 입고 죽었어요.

런 지광대사의 시체를 훔쳐오면 믿어 주겠어요.]
이 도옥을 이용해서 양몽환과 의논하던 지광대사의 시체를?

도옥이 훔쳐오도록 계략을 쓰려는 조소접의 계획이었다.
그러자 도옥은 가볍게 마른 기침을 하면서 마음이 내키지 않는 눈치였다.
[이 도옥이 혼자 훔쳐 오라는 말입니까?]
[혼자 힘들다면 내가 같이 가겠어요.]
도옥은 잠시 고개를 숙이고 있다가 번쩍 고개를 들었다.
[좋소. 갑시다. 만일 이 도옥이 안 가겠다고 하면 모두 거짓말이라고 믿지 않을 것이

싫어서 가겠다고 한 겁니다.]
그러자 주약란은 근심스러운 듯이 조소접을 가만히 불렀다.
[접매. 왜 위험한 일을 하려고 해요? 그만 둬요.]
그러나 조소접은 주약란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다.
[언니는 염려마세요. 다 생각이 있어요. 그리고 이 도옥이 혼자 이곳에 온 줄 알아요?]
[그럼?]
주약란의 반문에 도옥이 선뜻 대답했다.
[몇 명의 부하를 데리고 오긴 했습니다만 별 대단한 인물들은 아닙니다.]
하고는 조소접에게로 고개를 돌리며 곧 말을 이었다.
[그럼 시체를 훔치러 언제 떠나겠습니까?]
[오늘 밤 이경(二更)쯤!]
[좋습니다. 그럼 이 도옥이 일단 돌아갔다가 몇 명의 고수들을 데리고 다시 오겠습니다.]
하고는 즉시 몸을 돌려 부하들이 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기는 것이었다.
도옥이 돌아가는 뒷모습을 싸늘히 노려보던 조소접은 주약란을 바라보며 음성을 낮추었다.
[언니. 도옥이 언니에게 입은 상처가 대단할텐데 저렇게 활보한다는 것이 이상하지 않아요?]
백장봉에서 주약란과 도옥이 피차 입은 상처를 두고 하는 말에? 주약란 역시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글쎄 나도 이상한 생각이 들긴 해요......]
그러나 조소접은 더 깊이 생각하고 싶지 않은지 가볍게 한숨을 토하며 화제를 돌렸다.
[언니. 오늘 밤 천축국의 승려와 싸우다 도옥이 죽어 버렸으면 좋겠어요.]
그러자 주약란은 설레설레 고개를 흔들었다.
[그렇게 마음대로 되지는 않을 거에요. 도옥이 얼마나 간사하고 영리한데......]
하는데 한 옆에 서 있던 양몽환이 조용히 다가왔다.
[조소저. 도옥이 아무래도 이상하군요.]
[지과대사의 시체를 훔친다는 것 말이에요?]
[예. 무엇 때문에 그런 일에 응했을까요?]
[글쎄...... 저도 그의 말을 믿지는 않아요.]
[그럼 어느 정도는 믿는다는 말입니까?]
[그의 말이나 표정으로 봐서 언니를 무척 사모하고 있는 모양이에요.

그래서 어려운 일도 마다하지 않고 쾌히 응낙한 것이 아닐까?]
하고 말하던 조소접은 아무 것도 듣고 싶지 않다는 듯 눈을 지그시 감고 있는 주약란을 가만히 불렀다.
[언니. 이 기회에 도옥을 이용해서 지광대사의 시체를 훔쳐오고 또? 천축국의 고수들을 몰살시키는 것이 어때요?

지금 도옥은 언니 때문에 마음이 들떠 있어요.

이러한 지금 도옥을 손에 쥐고 움직이게 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닐 거에요.

일단 천축국의 승려들을 몰살시키고 그 다음 도옥과 대결하면 되지 않겠어요?]
그러나 주약란은 여전히 무슨 생각에 잠겼는지 아니면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은지 눈을 감고

아무 소리도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제일 원수요,

강적인 도옥이 주약란 자기를 사모한다고 그래서 손을 잡고 무술계를 제패하자는 말을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하는가.

머리가 말할 수 없이 복잡해서 이것저것? 묻는 말이나 대화에 대답할 마음의 여유가 없는 것이

사실이었다.
얼마를 기다려도 주약란에게서는 아무 대답이 없자

조소접은 양몽환을 바라보며 다음 말을 계속했다.
[물론 언니는 남을 속여 대사를 거행한다거나

또 우리들이 위험한 일을 하는 것에 찬성하지는 않을 거에요.
그러나 언니가 뭐라고 해도 저는 이미 결심했어요.

이번에 천축국의 승려를 해치우고 곧 도옥을 처치하겠어요.]
그러자 양몽환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이번에 도옥이 혼자 오지 않고 여러 명의 고수들을 데리고 온다고 했는데

주소저 혼자 처치할 수 있겠습니까?]
[관계없어요. 도옥 하나만 상처를 입히면 그 다음 부하들은 도망치기에 정신이 없을 거에요.]
[그러나 만일 사태가 그 반대로 될지도 모르지 않습니까?

만일을 생각해서라도 제가 따라가겠습니다.]
[아니. 염려마세요. 양상공은 여기서 언니를 지켜 주세요.]
하고는 계곡 밑으로 천천히 내려가는 것이었다.
그제야 눈을 지그시 감고 있던 주약란은 살며시 눈을 뜨며 멀어져가는

조소접의 뒷모습을 보다가 양몽분에게 고개를 돌렸다.
눈을 감고 아무 것도 듣지 않으려는 듯하던 주약란도 조소접의 확고한 결심의 말을 듣고는

마음이 불안한 모양이었다.
[양상공! 내 걱정은 말고 접매를 따라가 도와주세요. 나는 나 스스로 내 몸을 지킬 수 있어요.]
하는 것이었다.
[그럼 주소저도 조소저의 행동에 찬성하는 겁니까?]

[할 수 없지요. 접매가 결심한 이상 돌이킬 수는 없어요. 어서 따라가 보세요.]
양몽환은 더 지체하지 않고 앞서 가는 조소접의 뒤를 급히 따라갔다.
주약란은 주약란대로 어떤 결심을 세운 표정이고 조소접은? 조소접대로

결심한 일을 지금 행동으로 옮기는 이때 양몽환만이 가운데서 주저할 필요는 없었다.

우선 눈에 보이는 위험을 직접 소탕하려고 걸음을 옮기는
조소접을 도와 일을 처치하고 그 다음 주약란을 보살피는 것이 최선의 일이라고 양몽환은

결심한 것이었다.
이때 조소접은 급히 따라오는 발자국 소리에 흘깃 고개를 돌리다가 양몽환임을 알고는

그가 가까이 다가오기를 기다려 조심히 물었다.
[양상공. 언니가 무슨 말을 하던가요?]
[네. 조소저를 도우라고 하더군요.]
[그럼 언니 혼자 남아 있겠네요?]
[네. 혼자 있습니다.]
[위험해요. 언니는 중상을 입은 몸이에요. 무슨 수로 혼자 지킨다는 말이에요?]
[그래도 주소저는 자신이 있다고 합니다.]
[안돼요. 같이 돌아가요.]
하고 즉시 몸을 되돌려 다시 계곡을 올라갔다.
그러나 주약란이 앉아 있던 잔디 밭에는 한? 장의 종이가 남아 있을 뿐 주약란의 모습은?

사라지고 없었다.
바위 뒤, 나무 위를 살펴 보았으나 그 어디에도 주약란의 모습은 없었다.
사라진 주약란의 모습을 이리저리 찾다 찾기를 단념한 조소접은 잔디 위에 놓여진

한장의 종이를 펴들었다.
그 종이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적혀 있었다.

그것은 틀림없는 주약란의 글씨였다.


<지금 도옥과 천축국의 승려들은 모두 우리들의 적이에요.

그러니만큼 특별히 조심해서 일을 처리하도록 하세요. 그리고 나의 걱정은 말아요.>

간단한 사연이었다.

그러나 그 글씨는 힘없이 겨우 쓴 흔적이 역력했다.
이러한 필체를 보고 양몽환은 주약란의 상처가 매우 위독하다는 것을 직감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주소저는 자신의 상처가 위독함을 알고 또 스스로 고칠 수 없음을 알았나 봅니다.]
하는 것이 조소접으로서는 얼핏 이해가 가지 않는 소리였다.
[?...... 그것을 어떻게 아시죠?]
[글씨를 잘 보시오. 힘없이 그리고 글씨를 쓸 때 손이 떨린 것을 보면 알 수 있지 않습니까?

전에는 이러한 글씨를 쓴 일이 없었지 않습니까?]
그제야 조소접은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고는 눈을 크게 떴다.
[정말 그렇군요. 저도 처음 보는 글씨에요. 그런데 어디로 갔을까요?]
[주소저의 상처가 위독해서 그동안 멀리 가지는 못했을 겁니다. 같이 이 주위를 찾아 봅시다.]
그러나 조소접은 설레설레 고개를 흔들었다.
[은밀한 곳에서 조식하려고 자리를 옮겼을 거에요.

또 우리들이 찾아? 간다고 해서 도움은 고사하고 조식에 방해가 될지도 몰라요.]
조소접의 말이 맞는 것같은 생각에 양몽환도 주약란의 행방을 찾는다는 것을 단념하고

하늘에 하나씩 둘씩 나타나는 별을 바라보았다.
이미 시간은 흘러 초경(初更),
한번 약속하고 떠났던 도옥이 거짓말처럼 되돌아 왔다.

부하 고수 여덟 명을 거느리고 돌아온 것이었다.
도옥 일행이 되돌아와 우글우글 조소접 앞에 서자 조소접은 일행을 휘둘러 보고

옆에 있는 양몽환에게 고개를 돌렸다.
[자, 그럼 양상공, 떠나요.]
하는 말에 양몽환이 앞장을 서자 도옥은 잔뜩 눈살을 찌푸리며 볼이 부었다.

양몽환도 함께 간다는 것이 불만인지 노골적으로 싫은 소리를 터뜨렸다.

자기 혼자 무슨 계획을 세운데다 양몽환의 동행으로 계획이 틀어지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아니. 양형도 가는 거요?]
그러자 걸음을 멈춘 양몽환 역시 이마를 찌푸렸다.
[왜 내가 가는 것이 못마땅하오?]
[아니 그런 것이 아니라......]
[그럼?]
[양형까지 가면 주소저는 누가 돌븐단 말이오?]
[그건 도형이 염려할 것 없소!]
일언지하로 도옥의 말을 묵살하고는 성큼성큼 계곡을 내려갔다.
그러자 양몽환을 잔뜩 노려보던 도옥은 흥! 소리를 내며 마지못해 뒤를 따라 계곡을 내려 오는 것이었다.
순식간에 지광대사의 시체가 놓여져 있는 곳까지 다다른 조소접은 인기척을 내지 않도록 주의시키며

주위의 동정을 살폈다.
지광대사의 시체가 놓여져 있는 주위에는 여러개의 등불이 밝혀져 있었다.

그러나 등불의 수만큼 주위가 밝아야만 할텐데 하나같이 파아란 불빛의 등불은 주위를 밝게 비추어

주지 못했다.
그래서 그런지 시체가 놓여 있는 주위는 음산한 기운이 가득한 것같은 기분이어서

별로 기분은 좋지 않았다.
그리고 그 어렴풋한 불빛 속에서도 황색(黃色) 비단으로 덮은 하나의? 관(棺)만은

똑똑히 보여 기분이 이상했다.

그런데다 관을 지키는 승려들도 관 주위로 비잉 둘러앉아 자는 모양이었다.
얼마 동안 등불과 관 그리고 주위의 동정을 살피던 조소접은 음성을 낮추어 도옥을 불렀다.
[도옥! 저 관 속에 지광대사의 시체가 틀림없이 있을까요?]
하는 물음에 도옥보다 먼저 양몽환이 소리를 낮추었다.
[그러나 조소저. 그래도 이름이 대국사라는데 지키는 사람도 없고 이상하지 않습니까?

삼엄히 지켜야 할 관을 저렇게 버려둔 것이 아무래도 수상합니다.]
그러자 도옥도 동감인 모양이었다.
[그렇소. 그리고 그들이 이미 우리들의 거동을 살펴 알고 있을지도 모르는데 이렇듯 조용한 것은

무슨 곡절이 있는 것같습니다.]
[저 관을 잘 보세요. 승려들이 깊은 잠에 빠진 것같지 않아요?

방비도 없는 것같고 또 우리들이 온 것도 눈치조차 못챈 것같아요.

이때 우리는 세 군데로 나누어서 일제히 공격하면 무난히 처치할 것같은데요.]
그러나 도옥은 고개를 흔들었다.
[그건 너무 무모한 일입니다.

승려들이 저렇게 앉아 있다고 해서 어찌 방비도 없고 또 잠에 빠졌다고 할 수 있습니까?]
역시 지모가 많은 도옥의 예민한 관찰과 웅후한 의견이었다.
[그럼?]
[그들이 저렇게 앉아 있고 또 설사 방비가 없다해도 우리들은 그들이 만전의 방비를 갖추고

있는 것으로 알고 행동해야 합니다.

그런데 조소저는 저 승려들이 몇 명이나 되는지 세어 보았습니까?]
[아직 세어 보진 않았어요.]
[그럴 겁니다. 잘 보시오. 이 도옥이 세어 본 바로는 모두 사십구명입니다.

그런데다 또 문제가 있습니다.]
그제야 조소접도 미처 승려들의 수를 세어 보지 않은 것을 후회하고 도옥의 치밀한 관찰에 탄복했다.
[문제?]
[그렇습니다. 저 승려들의 수가 마흔 아홉인데다가 우연인지는 모르지만 파아란 등불이

또 마흔 아홉개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무리 우연의 일치라 해도 가볍게 볼것이 아닙니다.]
도옥의 말을 들으면 들을 수록 조소접은 눈이 커지고 도옥의 관찰에 절로 탄복이 터졌다.
[?......]

<과연 지략이 비상한 도옥이구나......다음 대적할 때 조심해야지......>

조소접은 도옥의 지략에 한 수 늘리고 있다는 것이 은근히 비위가 상했다.
그러나 도옥의 관찰이 비상한만큼 아무 소리 못하고 조소접은 도옥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천축국에는 괴이한 술법들이 많은 만큼 우리도 그에 대비할 방비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의 상태로서는 그들이 어떤 함정을 만들어 놓고 우리들이 빠지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같습니다.]
조소접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듯한 말이었다.
[사실이 그렇다면 큰 일이군요. 그럼 어떤 계획이라도 있는지요?]
[그렇죠. 계획으로 말하면 이 도옥은 따를 자가 없지요. 여하간 이렇게 해 봅시다.]
[어떻게?]
[우선 저 승려들이 어떻게 행동하는가를 먼저 보고 그 다음에 계획을 세웁시다.]
하고 여덟 명의 부하들을 손짓해 불렀다. 그러자 부하들은 마치 기계처럼 일제히

도옥 앞으로 다가와 섰다.
이때 도옥은 여덟 명 중에서 두 명만 남기고는 나머지 여섯 명은 다시 제자리로 돌려보낸 다음에

앞에 서 있는 두 명의 부하를 잠시 바라보다가 오른 팔을 번쩍 들어 올리는 것이었다.
그 순간, 도옥이 무슨 일을 하는가 하고 눈이 둥그래진 조소접과 양몽환은 숨을 죽이고 주시했다.
한번 머리 위로 치켜 올렸던 오른 팔을 내린 도옥은 두 명의 부하의 몸을 툭툭? 건드리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연이어 똑같은 수법으로 세 번을 치고 또 찔렀다.

그러나 도옥이? 짚은 혈도는 삼백 육십 오혈(三百六拾五穴) 중에 있는 혈도가 아니라

이맥기경(異脈奇經)이었다.
순식간에 각기 세 곳의 혈도를 짚힌 두 부하는 잠시 눈을 감고 있다가 약속이나 한 듯이 같이

눈을 뜨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두 눈은 마치 불이 타는 듯 이글거렸다.
그렇게 세 곳의 혈도를 짚은 도옥은 눈이 둥그래져 있는 조소접과 양몽환을 바라보며

나의 재간이 어떠냐는 듯이 턱을 들어 올렸다.
[조소저, 지금 이 도옥은 이들의 몸 속에 있는 기운을 용솟음치게 만들었소.

그런 만큼 이 도옥과 같은 웅후한 무공을 가진 사람이라도 이들을 십 합 이내에는

쓰러뜨릴 수 없는 것이죠.]
하고 자랑을 늘어놓은 도옥은 씨익 웃으며 다시 말을 이었다.
[이 무공은 바로 귀원비급에 기록되어 있는 무공입니다. 조소저도 알고 있습니까?]
그러나 조소접은 모르는 무공이었다.
[모르겠는데요. 어느 장(章)에 기록되어 있죠?]
[설마 모를라구요. 조소저는 귀원비급에 기록된 무공을 다 외우고 있다고 들었는데요.]
[그렇긴 해요. 그러나 지금의 무공은 모르겠는데요.]
[그럴 겁니다. 바로 책 뚜껑 속에 기록되어 있으니까요.]
하고는 더 말하지 않고 두 명의 부하에게 몸을 돌렸다.
[너희들은 즉시 저 관(棺) 앞으로 가라!]
그러자 두 명의 부하는 몸을 돌림과 동시에 쏜살같이 승려들이 둘러앉아 있는 곳을 향해

몸을 날리는 것이었다.
그러나 관을 에워싸고 앉아있는 승려들은 가까이 다가오는 두 명을 전혀 보지도

또 발자국 소리도 듣지 못한 것처럼 여전히 꼼짝하지 않고 앉아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다음 순간,

마치 죽은 사람처럼 조용히 앉아 있던 승려 중에서 네 명의 승려만이 천천히 고개를 들

질풍같이 달려드는 두 장정에게 각기 일장씩 장풍을 후려 갈기는 것이었다.
그 순간, 네 줄기의 섬광이 벼락같이 허공을 가르며 두 장정에게 덮쳤다.
그러자 두 장정은 크게 소리를 지르며 손을 들어 달려드는 장풍을 뿌리쳐 막아냄과 동시에

땅을 박차며 각기 한 명의 승려를 노리고 덮쳐들었다.
그제야 위기를 직감한 두 명의 승려는 벌떡 몸을 일으키며 마주 지쳐나와 각기 한 수씩

장풍을 교환하는 것을 시작으로 해서 드디어 치열한 싸움은 먼지를 일으키기 시작했다.
그러나 두 명의 장정에게 승려들은 적수가 되지 못했다.

흡사 미친 사람처럼 두 손과 두 팔을 휘둘러 발광하듯 요란스럽게 돌아가는 두 명의 장정 앞에서

두 명의 승려는 너무나도 무력한 존재였다.
그러나 그 많은 승려들은 뒤에서 치열한 싸움이 벌어지든 말든 아랑곳 하지 않고

여전히 앉은 자세를 흐트리지 않는 것이 도옥의 눈에는 이상하기만 했다.
[음......이상한 일이군......]
고개를 갸웃거리며 이상하다고 연발하는 도옥을 바라보며 조소접은 의아해 생각했다.
[왜 무슨 일이 있어요?]
이상하지 않습니까? 저렇게 옆에서 싸워도 그들은 꼼짝도 하지 않는 것이! 더구나

이 도옥이 보기에는 그들이 앉은 모양이 하나의 진(陣)같은데......]
그러자 조소접은 고개를 끄덕이며 동감을 표했다.
[그렇군요. 그런데 저는 이렇게 생각해요.]
[?...........]
[그들이 장님이 아닌 이상 우리들이 이곳에 온 것을 모를 리가 없잖아요?

그런데 만일 진을 풀었다가 우리들이 덮친다면 낭패가아니겠어요?]
하고 말하는 바로 그 순간,
그때까지 당당한 자세로 승려들을 몰아치고? 후려 갈기던 두 장정이 그야말로?

어이없게 큰 비명을 지르며 털썩! 나가 떨어지는 것이 아닌가!

<......? 그렇게 펄펄 날뛰던 두 장정이 웬일일까?......>

가슴이 서늘해진 조소접은 두 장정에게서 눈도 떼지 않고 도옥에게 다급히 물었다.
[어떻게 된 거에요?......]
그러자 도옥도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눈을 비비며 다시 쓰러진 부하를 바라보다 힘없이 대답했다.
[암기(暗器)를 던진 모양입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쓰러질 리가 없는데......]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조소접은 다른 생각에 빠지고 말았다.

<......옳다. 천축국의 무공은 하도 괴이하다는데 독가루를 뿌리면? 주효(主效)할지 모르겠군......

아무리 괴이한 기술(奇術)을 부린다해도 결국 피와 살로 된 승려들이라면 독가루를

이겨낼 수는 없겠지......>


하며 누가 독가루의 명수(名手)인가를 더듬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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