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 뜻밖의 방문
[접매 그리고 양상공! 손을 멈춰요.]
하는 소리에 각기 팔을 내린 조소접과 양몽환은 급히 주약란이 서있는 옆으로 달려가 호위하듯 둘러섰다.
그러자 주약란은 네 명의 승려에게 고개를 돌렸다.
[이봐요. 당신들이 우리와 적수가 되지 않는 것을 안다면 스스로 포박을 받아요.
그렇지 않으면 대국사처럼 죽여버리겠어요.]
그러자 네 명의 승려는 자기들끼리 쑥덕쑥덕 하고는 그중의 한승려가 한 걸음 앞으로? 나서는 것이었다. 그러나 주약란이 한 말의 대답은 아니었다.
[우리 대국사께서는 한 번 약속한 것은 지키는 분입니다.
대국사께서 죽어 보인다고 한 이상 그 약속을 실천하는 것이오.
그러나 당신이 만일 다시 살아난 우리 대국사와의 약속을 이행하지 않고 우리 천축국까지
함께 가지 않는다면 당신도 칠일 간을 죽었다 살아나야 할 것이오.]
[뭐라고?]
[우리 대국사께서는 어떠한 일에도 미리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습니다.
그래서 당신의 현폐가 이곳에 숨어 있다는 것도 미리 아시고 대국사님을 다치지 못하게
준비를 해두었소.]
분명히 조소접과 양몽환이 나타날줄 알고 미리 준비를 해두었다는 것에 주약란은 내심 놀랐다.
[어떤 준비를 해두었다는 거죠? ]
그러자 그 승려는 손가락을 입에 대고 길게 휘파람을 불었다.
그 휘파람은 날카로운? 짐승의 부르짖음처럼 귀를 스치고 멀리 산계곡으로 퍼져나갔다.
그리고 다음 순간,
구슬픈 피리소리와 함께 일진의 무리가 계곡 아래서부터 나타나는 것이 아닌가.
더구나 그들은 모두가 흰옷(白衣)를 입은 승려들로서 그 수는 열세사람이었다.
그리고 그중에 세 승려는 관(棺)을 들고 나머지 아홉 명은 각기법기(法器)를 들고
한 승려만이 구슬프게 피리를 불며 오는 것이었다.
잔뜩 눈썹을 찌푸린 주약란 일행의 앞을 스치고 지나간? 일진의 승려들은 쓰러져 있는
지광대사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는 일제히 무릎을 꿇고 큰 절을 했다.
그리고 조심히 쓰러져 있는 지광대사를 관속에 눕히고는 또 한번 무릎을 꿇으며
큰 절을 하고는 몸을 일으키는 것이었다.
진기한 광경을 지켜보며 도대체 어떻게 하려고 저럴까?
흥미진진하게 보고 있는 순간, 갑자기 이마를 짚으며 주약란이 비틀비틀 쓰러지는 것이 아닌가,
너무나 돌발적인 사태에 뒤로 쓰러지는 주약란을 엉겁결에 부축해 안은 양몽환의 놀라움이란 것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주소저 웬일입니까?]
그러자 정신이 흐려지는 듯 이마를 찌푸리며 양몽환의 가슴에 의지하듯 안긴 주약란은
가쁘게 숨을 쉬며 다시 얼굴을 찌푸리는 것이었다.
[아마도 지광대사의 장풍에 조금 다친 모양이에요.]
과연 주약란은 스스로 몸을 지탱할 기력조차 없는 듯 눈을 지그시 감으며 힘없이
양몽환에게 안겨 가쁜 숨을 몰아쉬는 것이 상당한 내상을 입은 것이 틀림없었다.
워낙 고수끼리의 대적이었던 만큼? 눈에 보이는 상처는 없다 하더라도 절묘한 지광대사의 장풍에
나약한 주약란이 건재하리라고는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 것이기도 했다.
이때, 역시 당황한 조소접은 급히 두 자루의 비수를 각각 한 손에 하나씩 쥐고 방금 절을 끝내고
일어나는 승려들을 노려보았다.
그리고 양몽환에게 속삭였다.
[양상공, 어서 안고 돌아가요. 뒤는 내가 맡겠어요.]
했는데 어느 사이에 조소접의 말을 들은 승려 중의 하나가 버럭 소리를 지르는 것이었다.
[못갑니다. 당신이 살기를 원하지 않는다면 모르지만!]
[뭣이 ?]
조소접의 눈썹이 대뜸 위로 치켜올랐다.
그러나 승려는 유유히 자기 할 말을 다 하는 것이었다.
[지금 그 주소저는 우리 대국사님의 칠장단혼수(七掌斷魂手)에 맞은 것이오.
만일 십일(十日)이내에 손을 쓰지 않으면 생명을 건지지 못하오.]
[사실이오?]
[왜 거짓으로 말하겠소?]
[그럼 치료할 수 있는 사람은?]
[우리 대국사님 외에는 누구도 고치지 못하오. 곧 치료할 것이오.]
[대국사? 죽어버린 대국사가 무슨 수로 고친단 말이오.]
[옳은 말이오. 그러나 우리 대국사께서는 칠일이 지나면 곧 다시 살아나오.
그러면 주소저를 치료해 줄 것이오.]
[다시 살아난다고?]
[그렇소. 믿지 못하면 주소저에게 물어보시오.]
조소접은 곧 주약란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사실이 그러냐고 눈으로 물은 조소접을 바라보며 주약란 역시 고개를 끄덕여 대답하긴 했지만
창자가 뒤틀리는 아픔을 참으며 조금씩 운기하려고 하는 듯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녔다.
그러나 운기하면 할 수록 찢어지는 고통은 더했고 이마에 맺힌 땀방울로 해서 더더욱 아름다운
얼굴은 이지러지고 고통에 싸여 있었다.
그와같은 주약란의 괴로워하고 고통을 참는 표정을 초조히 지켜보며 조소접은 그녀의 표정에서
상처가 상당히 위중함을 직감할 수 있었다.
그러나 당장 손을 쓸 수 없는 조소접은 가슴이 터질 듯이 답답하기만 했다.
이때 다시 승려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무릇 칠장단혼수에 상처를 입은 사람은 운기하여 고통을 참으려고 하면 할 수록 고통이 더하는 법이오. 고통읕 당하고 싶지 않으면 운기하지 말고 가만히 있는 것이 좋소.]
하는 것이었다.
그제야 깨달은 바가 있는 주약란은 운기하는 것을 멈추었다.
비록 내공력이 강한 주약란이지만 창자가 뒤틀리는 고통을 없애보려고 다시 운기하는 중이었다.
그때 승려의 말을 듣고 운기하는 것을 멈추자 금방 끊어고 찢어지는 듯하던 아픔이 거짓말처럼
가셔지는 것이 아닌가 !
그러한 주약란의 행동과 표정을 지켜보고 있기나 한 듯 승려는 다시 말을 이었다.
[더구나 하루에 한 번씩 참지 못할 아픔이 일어나오.
그때 만일 운기해서 아픔을 잊으혀고 하면 더욱 오래가는 것이오.
그렇게 되면 대상도 더 악화된다는 것을 말하지 않아도 잘 알 것이오.
그러니만큼 가만히 있다가 우리 대국사께서 소생하시면 치료를 받도록 하시오.]
승려의 말을 차분히 듣고 있던 조소접은 아픔이 가신 듯한 주약란을 돌아보다
싸늘한 태도로 승려에게 물었다.
[틀림없이 대국사가 소생하나요?]
[암요. 틀림없소. 틀림없이 소생할 뿐 아니라 주소저의 내상도 치료해 줄 것이오.]
[만일 소생하지 못한다면?]
[그럴리 없소. 혹시 만의 하나라도 그런 일이 있다면 주소저도 할 수 없이
우리 대국사님의 뒤를 따를 수밖에 없소.]
같이 죽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자 조소접은 이를 부드득 갈며 울분을 토했다.
그리고 그 승려를 후려 갈기려고 했다.
그러한 조소접을 급히 제지시킨 양몽환은 주약란을 안고 먼저 계곡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지광대사의 어떤 진기에 주약란이 상처를 입고 기운도 쓰지 못하는 지금 형면으로는
십 오륙명의 승려들과 대적한다는 것이 너무나 무모한 짓이라는 것을 양몽환이나
조소접이 모를리는 없다.
그러나 주약란도 같이 죽어야 한다는 말에 발끈 화를 냈던 조소접은
즉시 양몽환의 눈짓을 알아채고는 양몽환과 주약란을 호위하듯 하며 걸음을 옮겼다.
그때 그 승려는 주약란 일행의 앞길을 막지 않고 다만 음성만 높였다.
[당신들이 가고 싶다면 막지 않겠소. 그러나 주소저를 살리고 싶으면 칠일이 끝나는 날
오시(午時) 안으로 돌아오시오. 그러면 치료해 줄 것이오.
만일 기한을 어기면 영원히 죽어버릴 것이오.]
하며 틀림없이 되돌아오든가 아니면 칠일이 지나 지광대사가 살아나는 시각에
다시 나타날 것을 믿는 승려의 도도한 말이었다.
그러나 조소접은 코웃음을 터뜨렸다.
[흥! 꼭 죽는다고 할 수 없어요.]
[그럼, 죽어봐야 믿는다면 할 수 없소.
어디 천하의 명의(名醫)를 구해 살펴보시오. 그러면 잘될 거요.]
그러나 조소접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부지런히 걸음을 옮겨 어느 넓은 바위 밑에서 쉬고 있는
양몽환과 주약란에게 다가섰다.
조소접이 다가오고 주약란을 바위에 등을 기대고 앉힌 다음 양몽환은 한숨을 토하며
이마에 맺힌 땀을 씻었다.
그리고는 주약란의 힘없는 모습을 조심스럽게 바라보았다.
[주소저, 저 승려의 말이 정말일까요?]
하는 말에 주약란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일 거에요.]
[사실이라구요? 그렇다면 대국사라는 자의 치료를 받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자 주약란은 의미있는 웃음을 지어보이며 조용히 고개를 들었다.
[양상공, 그가 아무 조건없이 나를 치료해 줄 것같아요?]
그말에 양몽환은 그만 고개를 떨어뜨리고 말았다.?
미처 그런 생각을 못한 바는 아니지만 당자인 주약란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올 줄은 미처 몰랐다.
분명히 주약란의 목숨을 구해 주고 대신 천축국으로 데려가 대국사의 야욕을 채우려는 조건이
이미 제시된 바나 다름없는 형세에서 양몽환이나 조소접은 할말을 잊고 있었다.
침울한 침묵이 천천히 흘렀다. 그러나? 주약란은 어떤 계획이 있는지 아니면?
이미 각오가 되어 있는지 담담히 웃었다.
[나 때문에 걱정할 것은 없어요.
사람이 오래 산다 해도? 백년이 고래희(古來稀)라는 말이 있어요.
그러니만큼 지금 상태로서는 내 걱정보다 대국사라는 자를 처치하는 것이 더 중요해요.]
그러자 조소접은 눈이 둥그래졌다.
[아니, 그럼 언니는 누가 치료하죠?]
[꼭 대국사가 나를 치료해 준다는 보장은 없어요.
더구나 치료할 능력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것이 아네요?]
[그럼 언니는 죽어도 좋다는 말인가요?]
[그래, 나의 생사는 상관하지 말고 이 기회에 대국사라는 자를 죽여서 이후의 화근을 없애는 것이
좋을 것같아요.]
그러자 조소접은 펄쩍 뛰었다.
[안돼요. 대국사라는 자가 소생할 때까지를 기다려 언니도 치료를 받고 그 다음에 일을 도모하면 돼요.]
[ .............]
주약란은 아무 말었이 한숨을 토했다.
그때 다시 조소접은 말을 이었다.
[그런데 언니, 한 번 죽었으면 그만이지 다시 살아나는 수도 있어요?]
[나도 처음에는 이상하게 생각했어.
그러나 천죽국의 요가술이라는 것은 사람을 며칠씩 거짓으로 죽였다가도 되살려내는 수가 있어요.]
[그럼 바로 구식지술(龜息之術)과 같은 건가요?]
[거의 비슷할 거에요.
그러나 지금 거짓으로 죽은 대국사는 저항력이 없기 때문에 내장에 중상을 입히기만 하면
다시 살아나지는 못해요.]
그러자 조소접은 눈을 샛별처럼 반짝였다.
[정말이에요. 언니? 그런건 아주 쉬워요.]
[?.............]
[제가 대반야현공의 수법으로 관을 뚫고 그의 내장을 상하게 할 수 있어요. 그러나 언니 ......]
조소접은 주약란을 불러 놓고 처량한 표정이 되었다.
그러자 주약란도 눈을 반짝이며 조소접을 바라보았다.
[왜 그러지? 접매.]
그제야 조소접은 한숨을 토하며 슬픈 미소를 띄웠다.
[그따위 대국사라는 자와 언니의 목숨을 바꿀 수는 없어요.]
지광대사를 죽이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그로 해서 지광대사만이 치료할 수 있는
주약란의 내상을 치료하지 못해 목숨을 바꾸는 결과가 될 것을 조소접은 슬퍼하는 것이었다.
그제야 말을 못하고 머뭇거리는 조소접의 뜻을 알아챈 주약란은 은연중 고마움을 느꼈다.
[접매의 뜻은 고마워요.
그러나 이 기회를 놓치면 영영 후회하게 될 거에요.
그리고 나도 대국사라는 자를 너무 얕보았다가 중상을 당했어요.
또 지광대사의 무공도 우리 셋이 당해낼 수 없는 것같아요.]
[무공이 강하다면 왜 죽은 척할까요?]
[그건 자기의 기묘한 술법으로 나의 마음을 사로잡으려는 의도에서 그렇게 한 거에요.]
[그러니까 언니의 환심을 사려고 한다는 말이죠?]
[그렇다고 할 수 있지.]
[그럼 언니는 어떻게 하겠어요? 대국사의 호의를 받아들이겠어요?]
[글쎄 ......]
[지광대사가 소생하지 못한다면 국면이 달라지겠지만 언니의 상처는 누가 치료하죠?]
[그건 염려없어요. 나 하나 죽어서 세상이 평정해진다면 무슨 한이 있겠어요?
내가 죽는 것에 두려워하지 말고 접매와 양상공이 천축국의 고수들을 처치해서
무술계의 안정을 구하도록 하세요.]
그러자 양몽환은 완강히 머리를 흔들었다.
[그건 당치도 않는 말입니다.
지광대사나 주소저가 나 죽지 않고 살아나서 그 다음을 노려 대사를 처리해야 합니다.
그리고 주소저는 한가지 큰 사실을 모르고 있습니다.]
[제가요?]
[그렇습니다. 지금 우리들의 가장 큰 적은 바로 금환이랑 도옥이라는 것을 잊고 있습니다.
지광대사도 결국 도옥의 계략에 빠진것에 불과하지 않습니까?
모쪼록 상처를 회복해서 도옥과 대적해야 합니다.]
그저자 주약란보다 먼저 조소접이 가볍게 한숨을 토하며 양몽환의 말을 거들었다.
[양상공외 말이 옳아요.
역시 언니가 참고 견뎌보는 수밖에 없어요.
지광대사가 소생하기를 기다려 언니의 내상을 치료하고 그 다음 그들과 상대하는 것이 좋겠어요.]
그새야 주약란도 더 고집을 세우지 않고 순순히 조소접의 의견에 따랐다.
[그럼 그렇게 하겠어. 지광대사가 소생할 때까지 나는 나대로 혼자 내상을 치료해 보도록 하고.......]
그리고는 잠시 말을 끊고 하늘을 쳐다본 주약란은 곧 이어 계속해서 말했다.
[그럼 이제는 여기를 떠나요.
이렇게 있다가 승려들이라도 만나면 귀찮으니까...... 어디 은밀한 곳으로 가요.]
하며 먼저 몸을 일으켰다.
먼저 일어나는 주약란을 부축하며 함께 일어난 조소접은 주약란을 안 듯하고 계곡을 더 올라가
사면이 바위로 쌓인 어느 은밀한 곳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 그곳을 치료 장소로 택하고 각기 정좌해서 운기 조식에 들어갔다.
하룻밤이 지나고 동이 훤히 트는 새벽, 아직 잠에서 깨지 않은 양몽환을 조용히 흔들어 깨운
조소접이 음성을 낮추었다.
[양상공, 언니를 좀 지키고 있어요.]
[조소저는 어디 가는데요? ]
[요기할 것이 없어요. 산짐승이라도 잡아와야겠어요.]
하고 말한 조소접은 진기를 돋우워 가볍게 몸을 날렸다.
그리고는 이장(二丈) 높이의 바위 위로 오르다 오른 팔을 번쩍 들었다.
그순간 협곡으로 쏜살같이 날아가던 한마리의 꿩이 푸드득 떨어지는 것이었다.
이러한 조소접의 날렵한 행동을 지켜보고 있던 양몽환은 은근히 감탄하며
즉시 몸을 날려 조소접이 서 있는 바위 위로 뛰어을랐다.
지금 주약란 일행이 자리잡고 있는 곳은 양쪽으로 높은 산이 병풍처럼 들러쳐진 협곡으로서
아무리 강한 무공을 지닌 사람이라도 깎아지른 듯한 절벽을 기어오를 수 없을 정도의 가파른 협곡이었다.
양몽환이 몸을 날려 조소접이 서 있는 바위 위로 올랐을 때는 이미 떨어뜨린 꿩을 집어들고 되돌아오는 조소접이었다.
[놀라운 수법이군요.]
양몽환은 만면에 웃음을 띄우며 조소접의 솜씨를 칭찬하자 조소접도 생긋이 웃으며 즐거워 했다.
주약란이 누워 있는 곳으로 되돌아온 조소접과 양몽환은 가랑잎을 모아 불을 피워 잡아은?
꿩을 구웠다.
그리고 셋이 나누어 먹었지만 주약란은 조그만 고기 한점을 입에 댈 뿐 더 먹지 않고
다시 깊은 잠에 빠지는 것이었다.
그러한 주약란을 바라보며 조소접은 근심스럽게 양몽환을 불렀다.
[양상공, 란이 언니를 구하기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라도 하겠어요?]
하고 진지하게 묻자 양몽환은 거침없이 대답했다.
[물론 무슨 일이라도 하겠습니다.
주소저에게 입은 은혜를 이루다 말할 수 없는 이 몸이 무엇을 주저하겠습니까?]
그러자 조소접은 눈을 반짝거렸다.
[그럼, 한가지 어려운 부탁이 있어요.]
[무슨 일입니까? 말씀만 하시오.]
[좀 어려운 부탁이에요.]
[글쎄 말씀만 하시오. 무엇이든지 하겠습니다.]
그제야 조소접은 주저하다가 결심한 듯이 입을 열었다.
[음.......그럼 지광대사의 시체를 훔쳐왔으면 좋겠어요.]
하는 말에 양봉환은 펄쩍 놀랐다.
[시체를 그건 무엇에 씁니까?]
[언니의 말은 칠일이 지나야 소생한다는데 어떻게 그때까지 기다리겠어요?]
[그럼 미리 소생시켜서 주소저의 내상을 치료하자는 말업니까?]
[그래요. 만일 소생시킬 수 없다면 그 자의 무공이라도 폐해버리게 되면
더 걱정하지 않아도 되지 않겠어요?]
[그렇군요. 아주 좋은 계획입니다. 그럼 곧 떠나겠습니다.]
하고 일어나는 양몽환을 조소접은 다시 불러 세웠다.
[잠깐 기다리세요.]
[?.............]
[아무래도 제가 가는 것이 좋겠어요.]
하며 잠시 깊은 생각에 잠기는 듯하다가 다시 고개를 드는 바로 그때,
눈 앞의 계곡으로부터 한 사람의 장정이 질풍처럼 달려오는 것이 아닌가!
그 순간, 양몽환과 조소접은 바위 뒤로 몸을 숨기고 달려오는 장정을 노려보았다.
청의(靑衣)를 입은 장정은 일장(一丈)정도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무엇인가를 찾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다시 돌아서는 청의 장정을 노려보던 양몽환은 가슴이 서늘해짐을 느꼈다.
그것도 그럴 것이 지금 눈 앞에서 어른거리는 청의의 장정은 바로 왕한상(王漢相)이었기 때문이었다.
<...... 저 자가 무슨 일로 이곳에 나타났을까?.......>
이곳에 올 리가 없는 왕한상의 출현에 은근히 놀란 양몽환은 숨도 크게 쉬지 않고 왕한상을
주시하기만 했다.
이때 한동안 이리저리 몸을 돌리며 무엇인가들 찾던 왕한상은 손바닥을 둥글게 말아 입에 대고는
크게 고함을 지르는 것이었다.
[본인 왕한상은 방주의 명을 받고 주소저를 급히 뵙고자 하오.
주소저는 어디 있는지 대답해 주시오.]
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역시 몸을 숨기고 있던 조소접이 몸을 벌떡 일으키며 바위 위로 올라섰다.
[왕한상! 당신은 도옥의 명을 받고왔소?]
그러자 어디서 나타났는가 두리번거리던 왕한상은 바위 위에 서있는 조소접을 발견하고는
일읍하는 것이었다.
[그렇소. 주소저는 여기 계시오?]
[무슨 일인지 먼저 나에게 말해 보세요. 그러면 언니에게 전해드리죠.]
[안되오. 주소저를 직접 만나지 않고는 안되는 중요한 일이오.]
하고 거절하자 조소접은 흥! 코웃음부터 터뜨리는 것이었다.
[흥 ! 하고 싶지 않다면 말하지 않아도 좋아요.]
그러나 왕한상은 지지않고 대답했다.
[죽는 것을 두려워하는 왕한상은 아니오. 어쨌든 주소저 외에는 말할 수 없소.]
[말하기 싫으면 돌아가요. 안돌아가면 죽여버리겠어요.]
눈씹을 치켜 올리며 금방이라도 바위 위에서부터 내려 덮칠 기세인 조소접이었지만
왕한상은 조금도 겁내지 않고 말하는 것이었다.
[조소저 ! 우리 방주께서는 지금 주소저가 대단한 중상을 입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이 사실이오?]
<뭐라고? 어떻게 도옥이 그런 것까지 알고 있을까......>
불시에 놀랄 만한 말이었고 충격이 컸지만 조소접은 내색하지 않고 상당히 큰 소리로 차갑게 쏘아붙였다.
[천축국의 승려들과 결탁해 언니의 증상을 알고 왔으면 왔지 무슨 생각이란 말이오?]
그러나 왕한상은 조소접과 쓸데없는 말로 시간을 보내고 싶지 않은지 화제를 돌려 소리치는 것이었다.
[어쨌든 주소저에게 말해보시오. 이 왕한상을 만나겠느냐고 말이오! ]
[만나게 해주는 것은 어렵지 않아요.
그러나 당신의 위인됨을 어떻게 믿고 언니와 만나게 한단 말이오?]
[그럼, 어떻게 하면 되겠소?]
[우선 당신의 혈도를 짚어 움직이지 못하게 한 다음 언니를 만나게 하겠어요.]
그러자 왕한상은 어떻게 생각했는지 주저하지 않고 쾌히 대답하는 것이었다.
[좋소. 얼마든지 짚으시오.]
왕한상의 대범한 대답에 약간 당황까지 했던 조소접은 냉정을 되찾으며
즉시 몸을 날려 왕한상에게로 달려갔다.
그리고는 민첩한 행동으로 왕한상의 세 곳의 혈도를 모두 짚어버렸다.
그리고는 싸늘한 어조로 말했다.
[따라와요! ]
이때, 주약란은 아래서 수군거리는 소리에 잠이 깨어 일어나 앉아 있다가
왕한상과 조소접을 맞았다.
[주소저 ! 혈도를 짚혀 허리를 굽혀 인사하지 못하오.]
하고 먼저 왕한상은 예의를 차렸다.
그러자 주약란은 담담히 대답했다.
[괜찮아요. 그런데 무슨 일이죠?]
[도방주의 명을 받고 왔습니다.]
[도방주?]
[그렇습니다. 우리 도방주께서는 천축국에서 온 고수들로부터 암살(暗殺)을 당할 염려가 있다고
톡별히 이 왕모를 보내 주소저에게 말씀을 드리라고 했습니다.]
[뭐라고요? 다시 말해보세요.]
[우리 도방주깨서는 천축국 고수들로부터 주소저를 보호하고자?
수 십명의 부하를 이골고 주소저의 분부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흥! 간사한 꾀를 부리고 있군요.
그래서 우리가 천축국의 승려와 싸우다 다치면 그 기희에 우리들을 해치겠다는 것인가요?]
하며 싸늘하게 왕한상을 노려보는 주약란의 눈에는 광채가 발하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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