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지광대사와 주약란
완강히 싸우기를 거부하고 대국사를 불러오라는 주약란의 말에? 청의 젊은이도 한동안 계속 노려보다가 할
수 없다는 듯이 침을 탁 뱉으며 대국사에게로 다가갔다.
그리고 무슨 말을 주고 받는지 고개를 가로 흔드는 대국사의? 태도로 보아 싸우지 않겠다는 뜻인 모양이었
다.
아니나 다를까, 즉시 되돌아온 젊은이는 주약란이 예상한 대로 말하는 것이었다.
[우리 대국사께서는 주소저에 대한 애정이 지극하셔서 싸우지 못하시겠다고 합니다.]
<흥! 미친녀석. 누가 생각이나 하고 있다고 애정이니 예물이니......참 비위가 상해서...... 개울가에 가서 제 얼
굴이 어떻게 생겼는지 비춰보기나 할 것이지.....>
속이 메스껍고 구토증이 났나 내색하진 않았다.
[뭐라고요.....]
[대국사깨서는 작은 실수로 소저가 다칠까 두려워 하고 게십니다. 알아들었소?]
역시 젊은이도 주약란이 아니꼬운 모양이었다.
[그런건 염려할 것 없다고 하세요.]
[안됩니다. 주소저를 얼마나 생각하고 있는데 그런 말을 합니까? 더구나 주소저의? 무공을 지금 봐서 잘 아
는 터에 시험해 볼 것도 없다고 합니다. ]
[시험......그러니까 대국사도 내가 십여 합을 넘기지 못한다고 말하던가요?]
[천만에. 무슨 말이오.]
손까지 흔들며 젊은이는 말을 계속했다.
[우리 대국사께서는 그런 말은 하지 않았소. 대국사께서는 주소저를 생각하고 아끼기를 지극히 하셔서 조금
이라도 주소저를 쾌하게 하는 말은 하지도 않습니다. ]
<참 큰일났군......대국사를 죽이기 전에는 언제까지나 나를? 따라다닐 모양이군..... 나는 거들떠 보지도 않는
데......>
하고 은근히 걱정하는데 다시 젊은이가 말했다.
[우리 대국사께서는 주소저에게 한 가지만 말해 달라는 부탁을 하였소.]
[무슨 부탁인가요?]
[우리 대국사께서는 주소저와 무공으로 겨를 것도 없이 천축국으로 같이 가자고 하십니다.]
[뭐, 뭐라고요? 다시 한번 말해 봐요......]
그러나 젊은이는 시치밀 떼고 자기가 할 말만 계속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우리 대국사께서는 주소저가 원하는 대로 다 해주겠답니다. ]
[무엇을 해주겠단 말이죠?]
[무엇이든지 세가지만 들어주겠다는 말씀을 하셨소. 소저가 말해 보시오.]
[그러면 ?]
[그러면 주소저를 흠모하는 만큼 무슨 일이나 즐거이 응하겠다는 거죠.]
그러자 주약란은 손으로 입을 가리며 웃음을 참았다.
[그래요? 그것 참 좋군요. 그럼 말하겠어요.]
[네, 얼마든지 말하시오.]
[첫째로 대국사가 죽어주었으면 좋겠다고 해 주세요.]
하고 말한 다음 주약란은 젊은이의 반응을 기다렀다. 틀림없이 화를 내고 펄펄 뛸 줄 알았다.
그러나 뜻밖에도 쾌히 응하는 것이 아닌가.
[좋습니다. 첫째는 대국사께서 스스로 죽어 달라는 것이고......그럼 둘째는?]
일이 이렇게 되자 이번에는 주약란이 당황되는 것이었다.
첫번째 요구로써 사태가 급변할 줄 알고 또? 그것이 받아들여지리라고는 생각조차 못한 주약란으로서는 두
번째 요구 조건을 생각했을리도 만무였다.
잠시 난처하게 된 주약란은 허공을 바라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그리고는 얼마 후에 고개를 들었다.
[둘째는 당신이 죽는 것.]
그제야 젊은이는 주약란의 요구가 모두 장난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는지 펄쩍 뛰다말고 파안대소(破顔大笑)를
하는 것이었다.
[무.......무슨 말씀을......농담이 너무 지나치십니다.]
그러나 주약란은 웃지 않았다.
젊은이가 장난으로 돌리려고 하면 할 수록 주약란은 자기도 모르게 태도가 진지해지는 것을 느꼈다.
[농담이라고요? 천축국의 앞잡이가 되어 동족(同族)을 괴롭히는 자는 죽어 마땅해요.]
하는 바로 그때, 눈을 껌벅껌벅하고 섰던 지광대사가 느닷이 큰 소리로 외치는 것이었다.
[주소저, 계속해서 말하시오. 그건 쉬운 일이오. 세번째는 무슨 조건이오?]
하는 말에 상큼 고개를 돌려 지광대사를 노려보던 주약란은 싸늘하게 소리쳤다.
[당신이 죽으면 그만인데 누가 요구조건을 들어준다는 거죠? ]
[다 되는 수가 있소이다. 어서 마음 놓고 말씀하시오.]
<......그렇다면 대국사라는 자는 죽었다 다시 살아나는 재간이라도 있단 말인가......>
하고 생각을 하면서도 일시에 좋은 요구가 떠오르지 않아 잠시 망설였다.
그렇게 선뜻 말하지 못하고 망설이는 주약란을 지켜보던 지광대사는 다시 계속해서 말했다.
[어서 말씀하십시오. 무슨 요구든지 에...... 사람이 아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기필코 해드릴 수 있습니
다.]
그러나 주약란은 요구할 만한 문제가 언뜻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앞에 제시한 두 가지 문제만으로 동태를 살피기로 했다.
[우선 두가지 일만 처리하세요. 그러면 나중에 생각해서 요구하겠어요.]
[그럼, 더이상 요구할 것이 없다는 말씀이군요.]
[없는 것이 아니라 두가지 문제부터 처리하면 또 한가지를 말하겠다는 거에요.]
[그럼 됐소. 이제는 내가 말씀을 드려야 하겠소.]
[말해 보시죠?]
[만일 주소저가 요구한 일을 처리하면 소저는 어떻게 하겠소.]
[저는 모르겠어요. 어떻게 했으면 좋겠는지 말해 보세요.]
[음 ! 나를 따라서 우리 천축국으로 가는 겁니다. ]
[천축국? 거긴 가서 어떻게 하겠다는 거죠?]
하고 되물었다.
그러나 말이 잘 안 되는지 청의 젊은이를 손짓해 불러 천축국의 말로 소곤거렸다.
그러자 청의 젊은이는 일시에 얼굴이 새파랗게 질리며 탄식을 토하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것은 자신이 죽어야 한다는 것에 가슴이 서늘해졌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대국사의 말을 거역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우리 대국사님의 뜻은 주소저를 천축국으로 데리고 가서 정식으로 혼인식을 올리겠다는 말씀입니다. ]
그러나 주약란은 별로 놀라워하지도 않고 젊은이를 차갑게 노려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지금 말한 그 한 마디가 당신이 최후로 한 말이 될 거에요.]
하고 눈썹까지 치켜올리자 청의의 젊은이는 창백한 얼굴이? 더욱 흉하게 일그러지며 힘없이 고개를 떨어뜨
렸다.
죽음 앞에서는 누구나 처량해지는 것이 상정이다.
하물며 대국사가 주소저와 혼인하는 제물로 힘없이 죽어야 하는 젊은이의 심정이야 말해 무엇할 것인가,
그러한 젊은이가 눈앞으로 죽음의 손이 점점 다가온다고 느끼며 부들부들 몸을 떠는 것은 지광대사의 오른
손이 젊은이의 머리 위로 높이 드리워져 있기 때문이었다.
일그러진 표정에 공포와 분노에 뒤얽힌 두 눈을 번뜩이며 머리? 위로 치켜든 지광대사의 손만 바라보는 젊
은이의 눈빛은 흡사 도살장으로 골려가는 황소의 겁먹은 눈동자같아서 측은하기 그지 없었다.
그러나 하늘같이 아는 지광대사를 거역하지 못하는 젊은이로서는 죽음을 기다리는 순간에 피가 곤두선대도
별 수 없었다.
더구나 죽기를 결심하면 호랑이의 꼬리라도 잡고 눌어진다는? 최후 발악의 속담도 통하지 않는 지광대사와
젊은이의 관계인 모양인지 꼼짝 못하고 전신만 떠는 것이었다.
드디어 높이 치켜 들었던 지광대사의 오른 손이 천천히 내려와? 젊은이의 머리통을 힘껏 때리고는 손을 떼
지 않고 지그시 눌렀다.
그러자 천천히 두 눈을 감으며 숨을 거둔 젊은이는 뻣뻣이 굳어진 채 쓰러지지도 않고 서 있는 것이었다.
그제야 젊은이의 머리를 누르고 있던 손을 뗀 지광대사는 주약란을 바라보며 엄숙히 말했다.
[주소저 뜻대로 그는 죽었소.]
하고 말하는 그때야 주약란은 깊은 숨을 몰아쉬며 젊은이를 자세히 보았다.
숨을 거둔 젊은이의 두 뺨은 불과 같이 붉어져 있었고 꿋꿋이? 굳어버린 그의 두 다리는 땅 속으로 무릎까
지 삐져들어가 있는 것이 아닌가. 실로 놀라운 무공이라고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과연 놀라운 무공이군......무슨 무공으로 저렇게 조용히 죽일 수 있을까?......>
하고 두 눈을 둥그렇게 뜨는 바로 그 순간, 그때까지 꿋꿋이 서 있던 젊은이가 털썩? 주저앉으며 모로 쓰러
지고 말았다.
그러나 중원 땅에서 무공으로 사람을 죽일 때처럼 코나 입에서는 한 방울의 피도 흐르지 않는 것이 주약란
에게는 더 이상했다.
<...... 기술(奇術)을 써서 거짓으로 죽인 척하는 것이 아닐까?......그래, 그럴 지도 몰라...>
의심이 생긴 주약란은 냉랭한 음성으로 힐난하듯이 물었다.
[천축국에는 요가술(? 術)이라는 술법(術法) 가운데 죽음을? 위장하는 술법이 있는 것을 알고? 있어요. 저는
믿을 수 없어요. 저 젊은이가 정말 죽었는지 증명해 보세요.]
그러나 지광대사는 정색하며 손까지 저었다.
[틀림없이 죽었소. 주소저가 믿지 못한다면 가서 자세히 조사해 보시오. 그러면 알 것이오.]
[그럼, 어떻게 해서 죽였죠?]
[무상신공(無相神功)으로 그의 대뇌(大腦)를 쳐서 죽인 것이오. 그래서 보기에는 아무 상처도 없는 것이오.]
하는 말에 확인이나 하려는 듯 주약란은 천천히 쓰러진 젊은이에게로 다가갔다.
보기에 아무 상처는 없지만 온 몸이 싸늘하게 식은 것이 더 의심할 나위도 없었다.
이때, 지광대사는 길게 한숨을 토했다. 한? 사람의 생명을 그것도 여자에게 눈이? 어두워 죽인 것에 양심의
가책을 털어버릴 수는 없었다. 마음이 괴롭고 울적했다.
[주소저. 그 젊은이는 수 년간 나를 충성으로 섬기고 따른 사람이오. 만일 주소저의 분부만 아니었다면 결코
그의 생명을 빼앗지는 않았을 것이오.]
하고는 길게 한숨을 토했다.
그러나 주약란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이 짐승보다 못한 화상아! 자신의 욕심을 채우려고 죽여 놓고는 뭐 내가 어쨌다구?....... 흥......>
코웃음이 터졌으나 참고 냉정하게 말했다.
[당신은 어떻게 죽겠어요? 어서 죽으세요.]
[정말 죽어야 합니까?]
[아니, 그럼 거짓말을 했던가요?]
설마 자기까지 죽어달라고 할 줄은 몰랐다는 듯 어이없는 표정을 짓던 지광대사는 주약란의 아름다운 얼굴
에 새로운 결심이 생겼다.
며칠 죽었다 살아나면 주약란이 자기의 품에 안길 것이라 생각하니? 굳이 죽어주지 못할 것도 없다는 표정
이었다.
[그러면 할 수 없소. 내가 운기하여 관(棺) 속에? 들어가 스스로 목숨을 끊겠소. 그래서 칠일(七日) 지난 뒤
주소저가 관 뚜껑을 열어 주시면 나는 다시 살아날 수 있습니다.]
<...... 놀라운 재주군...... 나 주약란을 위해서 죽기까지 하겠다는 심정은 가상하다만? 꼭 약속을 지킬 필요도
없지......영원히 살아나지 못하도록 해버리면 다른 여자도 괴롭히진 못하겠지......>
하고 주약란답지 않은 악한 생각까지 한 주약란은 쾌히 응낙했다.
[좋아요. 관 뚜껑을 열어 주겠어요. 그럼 어서 죽어 주세요.]
그러나 지광대사는 태연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는 것이었다.
[만일 칠일이 지나서 관 뚜껑을 열어도 내가 살아나지 못한다면 주소저가 이긴 것이오.]
하고는 주약란을 응시하며 다시 말을 이었다.
[만일 내가 다시 살아난다면 주소저는 어떻게 하겠소?]
[어떻게 하긴 뭘 어떻게 해요.? 당신의 무공에 탄복할 뿐이죠?]
[너무하시오. 내가 이역만리 이 중원 땅까지 찾아왔을 때는 주소저의 탄복하는 모습이나 보자고 온 것은 아
니라는 것을 알고 있지 않소?]
조금 입장이 난처하게 된 주약란은 그가? 무엇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에 얼굴이 붉어졌다.? 그러나 교묘하게
대답을 회피하는 도리밖에 없었다.
[그 문제는 당신이 다시 살아난 뒤에 말하기로 해요.]
[그건 안 될 말이오. 먼저 약속해 주지 않으면 나도 약속을 이행할 수가 없소.]
하고 주약란의 표정을 살핀 지광대사는 다시? 말을 이었다. 아무래도 자기 편에서 강경히? 나가면 주소저의
기분을 상하게 할까 걱정이 되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주소저. 나는 주소저가 꼭 약속해 주리라 믿고 기꺼이 죽어 보이겠소. 그대신 내가 관 속에 들어가
있는 칠일 동안은 꼭 옆에 있어 주었으면 합니다.]
옆에 있어라도 주면 좋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죽어도 원이 없다는 말은 아닌 것이다. 죽은 다음에야 주약란
의 아름다움이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그러나 주약란은 여전히 냉담한 태도였다.
[죽은 사람 옆에 남아서 뭘 하라는 거죠?]
[그렇기도 합니다만 내가 정말 죽었다 살아나는지 아닌지를 봐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것도 좋은 일이지...... 지모(智謀)가 뛰어난 이 대국사가? 어떤 꼴을 하는가 지켜 봐야지...... 그래서 적시
에 손을 쓰면......>
간단히 처치할 수 있을 것같았다. 그래서 주저없이 대답했다.
[그럼, 그렇게 하죠.]
[정말 약속해 주겠소?]
[물론 약속하겠어요.]
[그럼 됐소.]
하던 지광대사가 가만히 오른 손을 내밀어 주약란의 하안 손목을 쥐려고 했다.
그바람에 질겁을 하고 손을 뒤로 들린 주약란은 날카롭게 소리쳤다.
[이게 무슨 짓이에요?]
그러자 얼굴이 벌개진 지광대사는 무안을 당한 듯 마른 침을 굴꺽 삼키며 황망히 변명을 늘어 놓았다.
[주소저. 나는 마지막으로 작별을 고하려는 것입니다. 만일 내가 다시 살아나지 못한다면 그 아니 섭섭한 일
이겠습니까. 마지막으로 주소저의 손이나 한 번 잡아보려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약란은 눈썹을 찌푸리며 차갑게 말했다.
[그렇게 애석하다면 죽지 말 것이지 뭣때문에 죽는다고 그러는 거죠? ]
[천만에 말이요. 내가 주소저를 흠모한다는 것을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어서 죽어 보이려고 하는 것이오. 그
러나 만일 내가 다시 살아나기 전에 주소저가 사라져버린다면 나는 어떻게 합니까? 또 찾아다녀야 된단 말
입니까?]
[그건 당신이 할 일이지 내가 할 일은 아니지 않아요? 나는 모르겠어요. 마음대로 하세요.]
[예? 마음대로 하라는 말입니까? 너무하십니다. 나는 그래도 죽어주어서 주소저가 기뻐하는 것을 보려고 했
는데......여하간 죽어보이겠습니다. 그러나 내가 살아날 때까지만 옆에 있어 주십시오.]
[마음대로 하세요. 여기서 구경은 하겠어요.]
죽는다는 것이 무슨 장난인 것처럼 시덥잖게 말하는? 주약란을 어이없이 바라보던 지광대사는 그래도 죽었
다 살아나면 주약란을 품에 안을 수 있다는 미련이 떠나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자기가 죽어 있는 동안
옆에 있어 주어서 다시 살아났을 때 옆에 있는 주약란을 껴안고 싶은 욕망이 부글부글 끓는지 눈이 벌겋게
충혈되었다.
[좋습니다. 주소저가 아무리 모른다고 해도 나는 주소저가 옆에 있어 주리라고 믿습니다. 그런데 정말 옆에
있어야 합니다.]
[무슨 말을 그렇게 되묻기만 하는 거에요? 죽기 싫다면 그만 두시죠.]
[아닙니다. 아닙니다. 꼭 죽어 보이겠습니다.]
[말로만 죽는다고 할 뿐 죽지 않는 것은 죽음이 두렵다는 증거에요. 그렇다면 나도 생각이 있어요.]
[예 ? 생각이라니 ?]
[다른 사람의 손을 빌려서라도 죽게 하는 거죠.]
[그럼, 주소저는 다른 사람을 시켜서 나를 죽이겠다는 겁니까?]
[그래요]
그러나 지광대사는 말도 안 된다는 듯 흥 ! 코웃음을 터뜨렸다.
[아니, 어느 누가 감히 나를 죽일 수 있다는 말이오?]
[왜 죽이지 못할 것같은가요?]
[그렇소. 이 천하에 나를 죽일 사람은 한 사람도 없소.]
[큰 소리를 치시는군. 내가 죽여 볼까요?]
[주소저가?]
[그래요. 내가 당신을 죽일 수 있는가 없는가 한 번 시험해 볼까요?]
하고는 슬쩍 오른 팔을 올려 넌지시 장풍을 몰아붙였다. 비록 행동은 느리게 했지만? 주약란의 손에서 뿜어
나온 장풍은 지광대사의 오른쪽 어깨를 사정없이 명중시키는 무시무시한 장풍이었다.
그러자 지광대사는 엉겁결에 몸을 비틀어 간신히 급소만 피했을뿐 일격을 피하지는 못했다.? 그렇듯 보기에
힘없는 듯한 장풍이 세게 부딪쳤지만 어찌된 셈인지 지광대사의 어깨에서는 마치 솜덩이리를 때리는 듯 퉁
퉁 미약한 소리가 고작이었다. 어디 그뿐인가. 일격을 맞은? 어깨에서는 오히려 차가운 기운이 뿜어져 나오
는 것이 아닌가. 이에 은근히 놀란 주약란은 황급히 다섯 걸음이나 물러서고 말았다.
과연, 지광대사의 말대로 이 세상에서 그를 죽일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싶도록 놀라웠다.
<과연 놀랍군...... 도대체 어떤 무공을 지녔기에 저렇듯 차가운 기운을 뿜어낼 수 있을까?.......>
하고 가슴을 내려쓰는데 지광대사는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주소저, 놀라운 장풍이오만 어째 공격하는 손에 힘이 없습니까?]
화도 내지 않고 반격도 하지 않는 지광대사는 도리어 주약란의 공격을 교정하는 것이? 아닌가. 그렇지 않아
도 자기의 공격이 달걀로 바위를 치듯헤서 속이 상한 지금 공격 수법까지 교정하는 그의 말에 주약란은 은
근히 화가 났다.
[그건 알 필요 없어요.]
소리친 주약란은 그대로 물러설 수는 없었다. 품 속에 감추어 두었던 날카로운 비수 한 자루를 뽑자마자 차
가운 한 줄기의 섬광을 발하며 지광대사의 가슴을 노리고 달려들었다.
그러나 이번에도 지광대사는 그 육중한 몸을 날쎄게 피하여 막기만 할 뿐 반격하지는 않는 것이었다.
이렇게 장풍과 비수의 공격이 허무하게 실패로 끝나버린 주약란은 비록 실패했다고 헤서 비수를 거들 처지
가 아니었다.
입술이 파랗게 질린 주약란은 이마 위로 흩어진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면서 다시 재차 공격해 들어갔다.
사태가 이렇게 되자 지광대사는 약간 생각을 달리했는지 팔을 휘둘러? 장승처럼 서 있는 네 명의 승려들을
소리쳐 불렀다.
그리고는 산이 쩌렁쩌렁 울리도록 고함을 터뜨렸다.
[사면(四面)으로 막아서라 ! ]
그러면 틀림없이 네 명의 승려는 주약란을 포위하며 사방으로 막아서야 했다. 그러나 무슨? 일인지 네 명의
승려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주약란은 급히 싸늘하게 외쳤다.
[부하들까지 합세시켜서 싸우겠다는 것인가요?]
그러나 지광대사는 눈을 부릅뜬 채 고개를 흔들었다.
[그런 것이 아니오. 그러나 나의 마음이 변했소.]
[?............]
[만일 이 싸움에서 내가 주소저에게 상처를 입는다면 나의 무공이 약한 것을 인정하고 죽을 것이오. 그러면
죽어도 원망치 않을 것이오. 그러나 주소저가 기회를 봐서 도망이라도 간다면 이 넓은? 세상에 또 어디가서
찾는단 말이오? 그래서 부하들에게 주소저가 도망가지 못하도록 하자는 것이오.]
[흥 ! 얼마든지 덤벼도 두려워하지 않아요.]
소리친 주약란은 비수를 쥔 손에 진기를 모으며 무지개를 그렸다.
이처럼 무지개를 그리며 몸을 날린 주약란의 일격은 매우 교묘한? 것으로서 정작 어느 부위를 겨누고 비수
를 번쩍이는지 분간할 수도 없을 만큼 빠르고 날카로웠다.
그러자 그때까지 웃음을 머금고 있던 지광대사의 얼굴에는 일시에 웃음이 가시고 긴장감이? 감돌았다. 아무
리 귀엽고 사랑스러운 주약란이라고 하지만 비수를 휘두르며 장풍을 몰아 붙이고 몸을 날리는데 웃고만 있
을 수는 없었다.
흡사 어린이가 칼을 쥐고 장난하는 것이 귀엽다고만 보고 있을? 수는 없는 지광대사는 표정을 굳히며 앞가
슴을 보호하듯 했던 오른쪽 손에 잠력을 일으키며 주약란에게 밀어붙였다. 순간, 주약란이 슬며시 튕겨보낸
장풍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어찌나 강하고 웅후한지 뒤로 넘어질 듯 비틀비틀 물러서다 겨우? 자세를 바로 잡은 주약란은 눈이 둥그래
졌다.
<......흠......이렇듯 강한? 잠력을 힘들이지? 않고 쏘아보낸다면.....굉장한? 내공을 가진?? 모양인데.......조심해
야
지......>
하고 각오를 새로이 한 주약란은 허리를 구부리며 제비같이 몸을 날리는 동시에 왼쪽 팔을 들어 천강지(天
指)의 수법으로 돌변시켰다.
이어 한 줄기의 지풍(指風)이 지광대사가 날려보낸? 잠력의 벽을 뚫고 번개같이 지광대사의 요혈로? 달려갔
다.
그 순간, 지광대사는 치켜 올렸던 오른 팔을 급히 거두었다가 달려드는 지풍을 여유있게? 튕겨 버리고 말았
다. 그리곤 재빠른 동작으로 몸을 비틀며 왼쪽 팔을 쭉 뻗쳐 주약란의 오른쪽 손목을 움켜 쥐려고 했다.
그 바람에 황망히 세 걸음이나 뒤로 물러선 주약란은 다시 이마위로 흩어져버린 머리카락을 쓸어올렸다.
그러나 지광대사는 더 따라오지 않고 엄숙한 표정으로 주약란을 불렀다.
[주소저 잠깐 할 말이 있소.]
[무슨 말이 지금 필요하다는 거죠? 어서 공격이나 하세요.]
[아니오. 잠깐만 내 이야기를 들어보시오. 만일 이 싸움에서 내가 이긴다 해도 한 번 약속한 것은 지키겠소
!]
[무엇을 지킨단 말이죠?]
[내가 이겨도 주소저를 위해서 죽어 보이겠소. 그러니만큼 주소저도 내가 살아날 때까지 관 옆에 있어 주시
오.]
자기의 신기를 꼭 보여 주겠다는 것인지, 주약란을 흠모해서 그녀의 마음이 자기에게로 돌아을 것을 기대해
서 하는 말인지 얼핏 분간은 안갔지만 주약란은 여전히 차가운 태도였다.
[이봐요. 화상. 옆에 있어 달라면 있어 주겠어요. 그러나 관에서 살아나기 전에 이 비수가 당신을 그냥 두지
는 않을 거에요.]
[헛......허 그것은 염려없소. 이미 대책을 세워두었소.]
[대책 ?]
[주소저의 무공은 지금의 공격 수법으로 이미 다 알았소. 그래서 우리 천축국에서 나를 따라 이곳 중원땅에
온 고수들 중에는 주소저의 무공을 따를 자가 없을 것이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먼저 기묘한 쇄맥(鎖脈) 수
법으로 주소저의 혈도를 짚어 움직이지 못하게 한 다음 내 부하들에게 감시하도록 하겠소. 그러면 주소저가
나를 해치지도, 도망가지도 못할 것이오.]
[흥 ! 얼마든지 짚어보세요. 그러나 당신이 먼저 나의 혈도를 짚어야만 당신의 뜻대로 된다는 것을 잊지 마
세요.]
[암, 그야 물론이오. 어려울 것 없는 일이오.]
[큰 소리를 치시는군. 만일 짚지 못한다면?]
[나는 그런 생각은 하지 않소. 꼭 주소저의 혈도를 짚을텐데 짚지 못하리라는 생각을 해서 대비책을 강구할
필요가 어디 있소?]
[그럼, 어디 짚어 보시죠 ! ]
턱을 바싹 치켜 올린 주약란은 거칠 것이 없는 만만한 자세로 세걸음 앞으로 나섰다.
그렇게 요염한 자세로 도도히 앞으로 나오자 지광대사는 더 말하지? 않고 욕정에 이글이글 불타는 두 눈으
로 주약란을 노려보았다.
그러나 주약란은 살기를 띄우며 옷자락을 펄럭였다.
그 찰나, 싸늘한 검광을 뿌리며 날으는 비수 !
그 순간이었다.
틀림없이 자기의 가슴을 겨누고 달려드는? 주약란이었지만 지광대사는 눈하나 깜박이지? 않고 바위처럼 서
있는 것이 아닌가.
드디어 지광대사의 가슴에 푹 박힌 비수! 그리고 비수를 쥔 손에 힘을 주는? 주약란! 비수의 손잡이까지 지
광대사의 살을 찢고 깊숙이 박히는 바로 그 순간 !
바위같이 섰던 지광대사는 오른쪽 손을 크게 휘둘러 주약란의 가는? 허리를 와락 끌어 안음과 동시에 읜쪽
손을 번개같이 놀려 비수를 쥔 주약란의 손목을 움켜쥐고 말았다. 그리고 다섯 손가락에? 지그시 힘을 주며
주약란을 부르는 것이 아닌가.
[주소저 ! 비수를 놓으시오 ! ]
<.......이 어찌된 일인가 ! 비수에 찔리면서까지 몸도 움직이지 않고 도리어 태연히 그리고 재빨리 허리와 손
목을 움켜쥐며 소리까지 치다니...... 과연 무서운 사람이구나!>
그만 주약란도 전신에 힘이 빠지는 것을 느끼며 쥐었던 비수를 놓고 말았다.
결국 지광대사의 호언장담대로 맥혈을 짚힌 주약란으로서는 비수를 더 쥐고 있으려 해도 쥘 기운조차 없는
처지였다.
비수의 자루에서 손을 뗀 주약란은 그제야 자기가 얼마나 힘을 주어 지광대사의 가슴을 찔렀는가. 내려다보
며 스스로 몸서리를 쳤다.
자루 끝까지 깊숙이 박힌 비수는? 지광대사의 가슴에서 숨을쉴 때마다 자루가? 들어갔다 나왔다 하는 것이
보기만 해도 소름이 끼치고 몸서리쳐질 일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깊숙이 박힌 비수이고 또 찢긴 가슴이었지만 응당분수처럼? 뿜어져 나와야 할 피는 한 방울
도 흐르지 않는 것이 아닌가 !
주약란으로서는 도무지 상상도 할 수 없는 괴이한 일이었다. 절로 놀라고 눈이 둥그래지는 주약란을 내려다
보며 그제야 지광대사는 호탕하게 웃었다.
[주소저 ! 이 비수가 나의 급소를 찔렀다면 나는 이렇게 주소저와 마주 서 있지 못할 것이오.]
사태가 온통 경악과 신기로 벌어지고 있는 것에 정신을 잃은 듯 서 있던 주약란은 차츰 냉정을 되찾았다.
그러나 지광대사의 우악스러운 손과 팔에 허리와 손목을 잡힌 주약란은 몸? 한 번 비틀어 볼 수 없는 형세
가 되고 말았다.
그러나 위험에 빠졌다 해도 주약란은 당황하거나 두려워하지는 않았다.
그때 지광대사는 주약란의 허리에 감았던 팔을 풀었다. 그러나 손목은 여전히 쥔 채 헛기침을 했다.
[주소저 ! 소저의 비수가 날카롭긴 하오만 뼈는 다치지 못했소.]
[...... 뭐라고? 뼈를 다치지 않았다 해도 피는 흘러야 하지 않은가.? 그런데 피는 고사하고 아픈 기색도 없다
니?......이상한 일이군......>
싸우다 말고 너무나 괴이한 사건에 주약란은 눈이 휘둥그래지고 말았다.
[비수에 찔렸는데 피도 흘리지 않는다는 건 무슨 재간을 부리는 건가요?]
[재간? 핫......하...... 이것이 바로 우리 천축국의 무공이오. 피정도 흘리지 않게 하는 것은 아무 것도 아니오.]
<......아무리 무공을 쌓은 사람이라 해도 어찌 흐르는 피를 막을 수 있단 말인가?? 과연 놀라운 무공을 지녔
어......>
하고 놀라워 하는 주약란을 주시하며 지광대사는 다시 말을 이었다.
[주소저 ! 지금 나는 소저의 맥혈 요혈을 짚었소. 그리고 나를 따라온 고수들에게 명해 소저를 우리 천축국
으로 데려가게 하겠소. 비록 중원땅에 고수가 많다 해도 소저를 구할 수는 없을 것이오.]
<나를? 천축국으로 데려 가겠다고? 그러면? 큰일이지. 나를 구해 줄 사람은? 지광대사의 말대로 없단 말인
가?...>
주약란이 아무리 친축국으로 가기 싫고 지광대사의 노리개가 되기 싫다해도 이처럼 맥혈을 짚힌 이상 어쩔
수 없었다.
그러나 맥없이 이끄는대로 끌려갈 주약란은 아니었다. 더구나 눈앞에 보이는 어떤 힘은 없지만 자기는 천축
국으로 끌려갈 것같지는 않았다.
또 끌려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그래서 코웃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흥 ! 그렇게는 안 될 걸......]
[그럴 거요. 만일 당신을 강제로 데리고 간다면 언제까지나 주소저는 나를 증오할 것이오. 그래서 주소저 스
스로 나를 따라오도록 하겠소.]
하고는 자기 가슴에서 뽑아낸 비수를 주약란에게 들려주고 쥐고 있던 손목까지 놓아주는 것이었다.
순간, 의아심을 금치 못하는 주약란을 지광대사의 얼굴을 다시 쳐다보았다.
악랄한 수법으로가 아닌 온화한 행동으로 주약란의 마음을? 사로잡으려는 그의 유인술에 끌려갈 듯한 마음
을 진정시키며 주약란은 머리를 가만히 흔들었다.
<천만에. 내가 지광대사에게 끌려 천축국에 갈 수는 없어. 어떻게 하든지 이번 기회에 !>
그를 처치하지 않으면 어떤 악운이 닥칠지 예측할 길이 없다고? 생각한 주약란은 앞에 서 있는 지광대사의
왼쪽 가슴을 겨누고 다시 몸을 날렸다.
그러나 주약란의 표정에서 재차 공격을 시도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챈 지광대사는 그 둔한 몸뚱이를 비호같
이 날려 주약란의 비수를 피한 다음 왼 팔을 번쩍 들어 정면으로부터 일장을 후려치는 것이었다.
순간, 주약란은 지광대사의 공격이 상당히 느린 일장이라고 느끼며 지광대사의 양쪽? 어느 손목이나 잡히는
대로 움켜쥐려고 기회를 노렸다.
그것은 지광대사의 공격하는 일장이 눈에 보이게끔 느리고 완만하다는 데서? 어느 정도 자신을 갖게 된 주
약란으로서는 지광대사의 양쪽 손목중 어느 손목이나 쉽게 잡을 수 있을 것같은 자신에 넘쳐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너무나 큰 오산이었다.
느리고 완만한 지광대사의 일장을 피하고 손목을 움켜쥐려던? 주약란은 어느덧 정신이 아찔하는 것과 동시
에 두 걸음이나 뒤로 물러서고 말았다.
그것은 지광대사의 완만한 일장이 어떤 무공인지 정신이 아찔하다고 느끼는 순간에 지광대사의 큰 손이 바
로 주약란의 가슴에 거의 닿을 듯하는 위급한 순간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황망히 두 걸음 물러서는 주약란을 바라보며 지광대사는 빙긋이 웃었다.
[주소저 ! 어찌하여 나의 손목을 잡지 않소?]
순간, 주약란은 눈썹을 찌푸렸다. 지광대사의 충혈된? 눈이 주약란의 의도를 알아챈 모양이었다.? 이에 화가
발끈 난 주약란은 이를 악물었다.
[이 음흉한 화상 ! 나를 속이려고.]
[헛...... 허...... 어찌 주소저를 속이겠소. 과연 주소저는 총명한 여인이오.]
빙긋빙긋 웃으며 주약란을 유도하려는 지광대사의 능글맞은 얼굴에 비수를 흔들어 몇 걸음 물러서게 한 주
약란은 뒤로 물러서는 지광대사를 쫓아가며 연이어 날카로운? 비수를 휘두르는 바람에 지광대사는 뒤로 뒤
뚱거리며 피하긴 했지만 아무래도 몸이 가벼운 주약란에 비해 행동이 빠르지 못했다.
그런데다 주약란의 비수가 지광대사의 급소 요혈만 겨누는 데는 어찔? 수 없이 반격을 가하는 것처럼 보이
긴 해도 주약란을 해치려는 반격은 아닌 것같았다.
흔히 주약란의 지금과 같은 공격은 극히 심오한 공격으로서 상대방이 어느 곳을 노리고 들어오는지 분간하
기가 매우 어렵도록 민첩하고, 날카로운 공격 수법이었다.
그러나 지광대사는 조금도 당황하거나 서두르지 않고 주약란의 공격을 막아냈다.
공격이 아무리 빨라도 바위처럼 서서 막아내는 지광대사를 상대하는 주약란은 화가 날대로 났다.
더 한번 입술을 깨물며 달려든 주약란은 번개같이 비수를 휘둘러? 지광대사의 아랫배를 노리고 눈을 딱 감
았다.
그리고 다음 순간! 푹 ! 하는 소리와 함께 비수는 지광대사의 아랫배에 꽂혀 부르르 칼자루가 떨렸다.
그러자 주약란은 다시 지광대사의 손에 손목이 잡히지 않도록 재빨리 비수에서 손을 떼며 물러섰다.
그 순간 ! 지광대사는 이마에 굵은 주름을 지으면서 눈을 국 감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피가 흐르는 것을 막
기 위한 재간을 부리는지 아니면 고통을 참는 것인지 얼굴을 잔뜩 찌푸리고 꼼짝하지 않는 것이었다.
두 팔을 추욱 늘어뜨리고 있기는 했지만 꽂힌 비수를 뽑아내려고도? 하지 않고 더구나 피라고는 한 방울도
흘리지 않는 것이 주약란의 눈에는 이상하기만 했다.
주약란이 힘을 주어 찌른 비수가 정말 지광대사의 아랫배를 찢고? 박혔는지 아니면 옷만 찢고 들어간 비수
를 정말 찔린 것처럼 가장하려고 바위처럼 선 채 얼굴을 찌푸리는 것인지 정작 알 길이 없었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지광대사가 어떤 행동을 하는가하고 뚫어지게 지켜보다 오랜 시간이? 지나도 꼼짝
하지 않는 지광대사를 지켜보기에 지친 주약란은 코웃음을 쳤다.
[흥! 일부러 죽은 척할 건 없어요.]
그래도 지광대사가 눈도 뜨지 않는 데는 주약란도 은근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피와 살로 된? 인간인데 저토록? 비수를 맞고도? 꼼짝하지 않는다면? 무슨 곡절이? 있는 것이? 틀림없
어......>
하고 의아하게 생각한 주약란은 잔뜩? 진기를 돋우어 오른 팔에 집중시킨? 다음 지광대사의 어깨를 노리고
힘껏 맘껏 후려 갈겼다.
그제야 바위처럼 섰던 지광대사는 비틀비틀 뒤로 물러서다 털썩 주저앉듯 쓰러지고 마는 것이었다.
그 순간 주위에 서 있던 네 명의 승려들은 코를 흥흥거리며 서로 마주 바라보는 것이었다.? 그러나 으례 그
렇다는 듯 눈도 크게 뜨지않고 더구나 주약란애게 달려들지도 않고 그대로 서 있는 것이 더욱 주약란의 의
심을 사게 했다.
<하늘처럼 아는 대국사가 정말 죽었다면 이 승려들이 저렇게 서있지는 않겠지.......그렇다면?>
자기들끼리 무슨 꿍꿍이 속이 있으리라 생각한 주약란은 이마를 찌푸렸다.
[당신들의 대국사가 죽었어요. 이제는 당신들 차례에요.]
어떠한 행동으로 나오는가 보려고 고함을 질렀다.
그러나 네 명의 승려는 주약란을 힐끗 바라불 뿐 자기들끼리 마주보며 코만 흥흥거리는? 것이 아닌가. 달려
들 기세는 고사하고 바로 쳐다보지도 않는 것이 더욱 주약란의 화를 돋우었다.
[이봐욧!? 대국사의 부하라면 응당 시체를 치우든지 나를 해치우든지 해야 할 것 아네요?]
그제야 마지못한 듯 네 명의 승려 중에서 한 승려가 귀찮은 듯이 상을 찌푸리며 시큰둥하게 내뱉는 것이었
다.
[여보쇼. 당신은 우리 대국사께서 죽는 것을 보겠다고 하지 않았소? ]
하는 것이었다. 그 말에 주약란은 어이가 없고 넋까지 빠지는 기분이었다.
[뭐라구?? 그럼 죽었단 말인가요? ]
[그렇소. 만일 아무 상처도 없이 죽는다면 당신이 믿지 않을 것이오. 신기할 것도 없지만.]
<...... 음...... 과연 이것이 바로 천축국의 요가술(? 術)이라는 것인가. 그러나 내 공격에? 내장이 모두 뒤틀렸
을 텐데 다시 살아날 수 있을까?>
[흥 ! 그 요가술이라는 것으로 죽은 척하려고? 만약에 거짓으로 죽은 척한다면 가만 두지 않겠어요. 비수로
난도질을 해서라도 죽이고 말겠어요.]
하며 쓰러져 있는 지광대사에게로 다가가는 주약란을 급히 불러세운 승려는 허리를 굽혔다 펴며 천천히 말
하는 것이었다.
[잠깐! 우리들은 대국사님을 보호하는 호법사(護法師)들이오.? 그런 만큼 당신이 마음대로? 행동하게 버려들
수는 없는 것이오.]
[흥 ! 어디 마음대로 덤벼봐욧 ! ]
날카롭게 소리친 주약란은 순간적으로 돌아서며 날카로운 일장을 몰아 붙였다. 그러자 주약란의? 일격을 받
은 승려도 지지않고 오른팔을 휘두르며? 주약란의 일장을 막아내는 동에 반격해? 들어오고 그와 때를 같이
하여 나머지 세 명의 승려들도 좌우로 퍼지며 공격할 태세를 갖추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주약란은 눈하나 깜박이지 않고 손바닥에 운집시켰던 잠력을 번개같이 뻗치며 몸을 날렸다.
그 순간, 돌풍처럼 몰려드는 잠력을 막아내지 못한 승려는 비틀비틀 몸을 흔들다가 뒹구는 것이었다.
그때 주약란은 공격의 화살을 이번에는 동쪽에 서서 기회를 노리고 있는 승려에게로 들렸다.
이어 두 팔을 휘둘러 무지개같은 성광을 그으며 일장을 후려 갈기고는 즉시 옆으로 비켜서면서 서쪽에서
달려드는 승려에게 다시 한 수를 날려 보내고 정면에서 달려드는 승려를 옆으로 피해
헛치게 한 다음 뒷둥을 노리고 천강지의 날카로운 지풍을 날렸다.
네 명의 승려를 상대로 해서 그야말로 전광석화같이 몸을 날리며
이리 치고 저리 치고 좌충우들,
가날픈 몸매에서 터져나오는 날카로운 장풍에 쓰러지고 쓰러졌다 일어나고?
다시 쓰러지고 실로 진기한 광경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런데다 장정 넷이서 여자 하나 해치우지 못하는 것에 화통이 터진
한 명의 승려는 주먹으로 땅을 치며 울분을 토하다 주약란의 발길질에 코를 땅에 박으며
끼익 ! 하는 바로 그 순간,
뒤에서부터 덮치는 승려와 때를 맞추어 좌우에서 협공하는 승려에게 포위당한 주약란은
옷깃이 찢어지는 것도 모르고 한데 어우러지고 말았다.
머리부터 디밀며 받아 넘기는 승려의 뒷덜미를 쥐어박고 허리를 펴면서 팔을 휘둘러
엉거주춤 일어나는 승려의 콧등을 힘껏 걷어차자 검붉은 피가 흘러서 땅을 적시는가 하면
터진 코를 마구 흔드는 바람에 주약란의 얼굴이며 옷이 말이 아니었다.
그러나 아차하는 작은 실수라도 저지른다면 어느 승려의 주먹에 몸이 날을지
위기에 직면한 주약란은 정신을 바짝 차리고 제비같이 몸을 날려 피하고 치고 숨돌려 쉴 사이도 없었다.
한편, 계곡 바위 뒤에서 주약란의 결투 광경을 바라보고 있는 양몽환과 조소접은 발을 동동 굴렀다.
주약란의 위급을 생각하면 당장이라도 뛰어 내려가 이리저리? 후려 갈기고 싶어
몸과 마음이 들썩거렸지만
애초에 주약란과의 약속이 있기 때문에 구원을 청하지 않는 한, 내려갈 수 없는 것이 한이오,
유감천만이었다.
마음? 초조히 지켜보며 발을 구르고 주먹을 쥐어 자기 가슴을? 두들기던 조소접은
끝내 소리내어 양몽환을 부르고 말았다.
[양상공, 어떻게 해요? 이렇게 기다릴 수는 없잖아요? ]
[글쎄 저도 망설이고 있습니다.]
[할 수 없어요. 제가 가서 돕겠어요.]
[그럼 저도 가겠습니다.]
[안 돼요. 언니가 아직 아무 연락도 하지 않았는데 우리 둘이 내려간다면 화를 낼 거에요.]
[그거야 마찬가지죠. 대국사가 쓰러져 있는 지금 더구나 사태가 급한 이때 이렇게 보고만 있겠습니까?]
[그럼, 좋아요.]
아무리 생각하며 내려다 보아도 사태가 위급한 것을 보고 그냥 있을 수 없는
조소접과 양몽환은 비호같이 몸을 날려 계곡 아래로 내려가고 말았다.
이때, 주약란은 정신없이 네 명의 승려와 싸우느라고 조소접과 양몽환이 달려오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
그렇게 절박한 때,
날카롭게 소리치며 달려드는 조소접과 양몽환의 자세에 흠칫 고개를 들렸던
네 명의 승려는 어찌된 셈인지 반격을 멈추며 지광대사가 쓰러져 있는 곳으로 달려가
비잉 둘러싸며 접근을 막는 것이었다.
이때, 두 팔을 번쩍 치켜올린 조소접과 양몽환을 발견한 주약란은 황망히
그러나 노하지 않고 타이르듯이 조소접을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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