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날아든 희망의 서찰
[그러면 당신은 우리를 인질로 삼겠다는 말이오?]
[인질로 삼겠다는 것은 아니오. 두 분 중에서 한 사람만 남아달라는 것이오.]
[우리들은 다만 서찰을 전하기 위해 왔을 뿐인데 어찌 남으라 하시오?]
[어쨌든 남아 있으라면 순순히 남아 있는 것이 좋을 거요.
만일 도옥이? 사태가 불리하게 되면 어떤 계략으
로 대항해 올지 모르는 일, 그렇게 되면 이 양모인도 당신들을 도옥 대신으로 죽여야 할 것이오.
그래서 한 사람만 남으라는 거요.]
그러자 옆에서 옥피리를 빙글빙글 돌리고 있던 옥소선자가 양몽환의 말에 덧붙여 위협하듯 했다.
[그 정도로 한 사람만 남으라는 것은 우리 양상공이 관대히 생각해서 하는 말이에요.
만일 나같으면 두 사람 다 붙잡아 둘 것이오.
아무소리 말고 시키는대로 해요.]
하는 것이었다.
이에 두 화신은 얼굴을 마주 바라보다 이번에는 오른쪽에 있는 화신이 금환검을 고쳐 잡으며
표정을 굳혔다.
[만일 우리들이 거절한다면 어떻게 하겠소?]
하는 것에 양몽환은 약간 비위가 상한 듯 이마를 찌푸렸다.
[그렇다면 당신들은 양자택일(兩者擇一)의 길밖에 없을 거요.]
[무엇을 택하라는 말인지 어디 들어나 봅시다.]
만만찮게 대해오는 화신들이었다.
그러나 앞에 있는 양몽환이 도저히 적수가 못됨을 직감했는지 휘두르려던
금환검을 옆구리에 끼며 대답을 기다리는 것이었다.
그러자 양몽환은 옆에 서 있는 하림에게서 장검을 받아 쥐며 음성을 조금 높였다.
[두 분 중에 한 사람을 남으라고 한 것은 결코 해치려고 해서 한말은 아니오.
그러나 만일 도옥이 앞을 어떠한 계략을 꾸민다면,
당신들 화신으로 하여금 더욱 악랄한 일을 하게 할 것이오.
그래서 만약을 위해서 이 양모인은 그대로 두 분을 다 돌려 보낼 수는 없소.
후일의 안전을 위해 두 분중 한 사람이 남든가 아니면 각기 손가락 하나씩을 자른다면
그것으로 도옥과 분별해서 이 양모인이 처리할 것이오.]
그러자 두 명의 화신은 서로 마주보며 무슨 눈짓을 하는 모양이었다.
그러다 왼쪽에 서 있던 화신이 싸늘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것이 양자택일의 하나라는 말이오?]
[그렇소. 그것이 싫다면 각자의 실력으로 이곳을 빠져나가 보시오.]
하고 양몽환은 장검을 들어 여차하면 날려버릴 태세를 갖추었다.
그바람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은 두 명의 화신은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버리고 말았다.
상대는 대협 양몽환이다.
그러한 양몽환이 실력것 이곳을 빠져나가라는 데는 목덜미가 서늘해지지 않을 수 없는
두 명의 화신이었다.
그 중에서도 왼쪽에 서 있는 화신은 더 한 모양인지 들고 있던 금환검을 내던지며
한걸음 앞으로 나서는 것이었다.
[우리 두 사람이 실력을 다해 이곳을 빠져나간다는 것은 죽음을 자초하는 결과 밖에
안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소.
그러니만큼 싸워 죽기보다 내가 남아서 죽는다 해도 한 사람은 살려 보내야겠소.]
[그러면 당신이 남겠다는 말이오?]
[그렇소. 내가 남겠소!]
그러자 오른쪽에 섰던 화신이 옆에 서 있는 동료에게 황망히 고개를 돌렸다.
[아니오. 제가 남겠소. 형님은 돌아가시오.]
[아니, 아우가 돌아가오. 내가 남겠소!]
서로 남아 있기를 자원하는 두 화신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던 양몽환은
그들의 우의에 감탄해 마지 않았다.
[두 분의 모습은 도옥과 같지만 마음은 도옥보다 훌륭하오.]
하고 감탄했다.
이에 왼쪽의 화신은 자기 동료에게 꾸짖듯 음성을 높였다.
[지금 이렇게 서로 고집을 세울 때가 아니오.
어서 아우가 돌아가오.
이러다 만일 사태가 악화되면 우리는 누구도 돌아가지 못할 것이오.]
하고 우물쭈물 지체하지 말고 속히 돌아가라고 소리치는 것이었다.
그제야 아우라고 불리우던 화신은 할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떨어뜨리는 것이었다.
[그럼 형님의 말씀대로 이 아우가 돌아가겠소.
그러나 돌아가는 대로 스승님에게 말씀드려서 곧 구하도록 하겠소.]
하고는 고개를 잠시 숙여 보이고는 금환검을 집어 넣으며 어둠 속으로 사라져 갔다.
두 명의 화신 중에서 한 명이 떠나고 얼마 후, 남아 있는 화신을 지켜보던 옥소선자는?
약간 차가운 어조로 화신에게 물었다.
[너는 네 명의 화신중 몇째며 이름은 뭐냐?]
[본인은 세째이고 현무(玄武)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소.]
그러자 양몽환은 갑자기 손을 들어 화신의 혈도를 짚어 버리고 냉랭히 말하는 것이었다.
[그럼 당신은 도옥이 구하러 올 것이라고 생각하오?]
하고 묻는 말에 화신은 양몽환의 손에 있는 서찰을 턱으로 가리키며 시큰둥하게 대답하는 것이었다.
[그 서찰이나 보시구려. 그러면 알게 될 것이오.]
[그것은 이 양모인이 읽어보던 말던 상관할 바가 아니오.]
내뱉듯이 말하고는 옆에 있는 옥소선자에게 고개를 돌렸다.
[잘 감시해 주십시오. 만일 경거망동하면 죽여 버리시오.]
하고 위엄있게 말하자 옥소선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싸늘하게 화신을 노려보는 것이었다.
[무공을 폐해 버릴까요? 다시는 강호에 나타나지 못하게.]
[그렇게까지는 하지 마십시오. 혹시 도망이라도 갈 눈치가 있으면 모르지만......]
[알겠어요.]
양몽환에게 대답하고는 현무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잘 들었겠지? 잊지말고 기억해 두도록......]
그러자 현무도 지지않고 대답했다.
[도망갈 마음이 있다면 여기 남겠다고 하지도 않았을 거요.]
이때 양몽환은 더 지체하지않고 주약란이 있는 방으로 들어가 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방안에서는 흐느끼는 조소접의 울음소리가 기다리고 있었다.
주약란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울음소리를 죽여가며 흐느끼는 조소접을 보는 순간,?
양몽환은 가슴이 철렁했다.
깜짝 놀란 양몽환은 급히 조소접에게로 다가가 떨리는 음성으로 물었다.
[조소저? 주소저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러자 조소접은 주르르 흐르는 눈물을 닦지도 않고 그대로 고개를 드는 것이었다.
[아무래도 구하기 힘들 것같아요.]
하며 또 흐느껴 우는 것이었다.
양몽환은 주약란의 가슴에 손을 얹었다.
그리고 미약하게 뛰고 있는 심장의 고동이 얼마나 약한지 금방이라도 꺼질 것같았다.
절로 마음이 처량해졌다.
[더 지체할 수 없습니다. 조소저!]
[그럼 어떻게 하죠? 저는 도저히 손을 쓸 수 없어요.]
양몽환은 무거워진 정신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그때까지 쥐고 있던 서찰을 내려 보았다.
[아참, 조소저! 도옥이 이런 서찰을 보내왔습니다.]
그러자 조소접은 눈물을 닦던 손을 멈추며 의아스러워 하는 것이었다.
[도옥이가요?]
[그렇습니다. 그 교활한 자가 무슨 사연을 썼는지 궁금하군요.]
[읽어 보세요. 그러나 독을 발랐을지도 모르니 조심하세요.]
[그럼 불이나 좀 켜 주시오.]
조소접은 새로 초에 불을 당기고 양몽환은 조심해서 서찰의 밀봉을 뜯었다.
그리고 아래와 같은 내용의 글을 천천히 읽어 내려갔다.
<나 도옥의 추측이 옳다면 지금 주약란은 실로 놀라운 내상을 입고 있을 것이오.
그녀는 비록 양몽환과 조소접을 구하기는 했지만 그녀 스스로 보호할 능력은 없을 것이오......>
하는 내용의 서찰을 어깨 너머로 양몽환과 같이 읽고 있던 조소접은 깜짝 놀랐다.
[도옥이란 자가 어떻게 이 사실을 알고 있을까요?]
[정말 이상한 노릇이군요. 알고 있을리가 만무인데......]
양몽환 역시 도옥이 알고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한 일이었다.
[만일 언니가 중상을 입지 않았다면 도옥은 우리를 내놓지 않았을 거에요.]
[그렇지요. 그 자의 위인됨으로 보아 중상을 입은 주소저를 능히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일거요.]
[그래서 자기의 무공을 자랑하기 위해서 이따위 서찰을 보낸 것이 틀림없어요.]
하고 말을 멈추었던 조소접은 곧 이었다.
[그러나 다시 한 번 생각하면 도옥이 이런 사실을 전연 모르고
어떤 첩자에 의하여 알게 되었는지도 모르잖아요.]
[그럼 우리 주위에 첩자가 있다는 말입니까?]
[그런 셈이죠. 그렇제 않으면 어떻게 알겠어요?]
[그렇지는 않을 겁니다.
우리 주위에 있는 사람이라면 하림과 옥소선자?
그리고 팽수위가 있을 뿐인데 그녀들이 첩자라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하면서도 양몽환은 주약란이 앓고 있다는 사실을 도옥이 알고 있다는 것에 은근히 의심이 생겼다.
<...... 조소저의 말대로 첩자가 있다면......>
도저히 생각도 해보고 싶지 않은 일이었다.
그러나 도옥이 서찰이나 마저 읽고 생각해 보기로 하고 다시 서찰로 눈을 돌렸다.
<지금 천하 무술계에서 주약란의 내상을 치료할 수 있는 사람은 이 도옥 한 사람 밖에 없을 것이오.
만일 믿지 못한다면 그녀의 병세를 잘 보면 짐작할 것이오.
그리고 그녀의 맥이 이상했을 때 쇄맥수법(刷脈手法)으로 그녀의 신장(神藏), 신봉(神封)
그리고 일월(日月)의 삼대요혈(三代要穴)을 봉(封)하시오.
그러면 숨결이 정상적으로 평온해질 것이오.
다음은 이 도옥이 구해줄 수도 있소...>
읽기를 마친 양몽환은 퍼뜩 느끼는 것이 있었다.
즉시 주약란의 가슴을 풀어 헤치고 삼대요혈을 차례차례로 짚어 내려갔다.
그러자 과연 신기무비(神奇無比)하게도 주약란의 미약한 숨결이 정상적으로 돌아오는 것이 아닌가.
이를 지켜보고 있던 조소접도 눈을 크게 뜨며 의아해 했다.
[양상공, 어찌된 일이죠?]
[그렇지 않아도 주소저의 미약한 숨결을 어떻게 정상으로 돌려놓을까?
노심초사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도옥의 서찰을 읽고 깨달았습니다.]
[참 이상한 일이군요. 어떻게 그러한 수법을 도옥이 알고 있을까요?]
[글쎄요......귀원비급의 요상편에 기록되어 있지 않을까요?]
하는 말에 조소접은 완강히 고개를 흔들었다.
[그럴리 없어요.
귀원비급에 기재된 요상편은 제가 모두 외우고 있어요.
그런데 귀원비급에 그런 글이 기록되어 있다면 제가 왜 모르겠어요?]
조소접의 말을 들은 양몽환은 그녀의 말이 그럴 듯했다.?
귀원비급의 모든 글귀를 자자구구(字字句句) 외우고 있는 조소접이 모를리 없었다.
한동안 생각에 잠겼던 양몽환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조소저, 그렇다면 그 귀원비급 기록 중에 별도로 기록된 글은 없습니까?]
[없어요. 또 그런 기록이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하지 않았어요.]
사실 귀원비급의 책 표지는 겹으로 되어 있어
그 속에 다른 기록이 있다 하더라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도옥이 주소저와 같이 총명해서 귀원비급에서
어떤 다른 기록의 무공을 발견했는지도 모르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천만에요. 도옥이 어찌 언니처럼 총명한 지혜를 가지고 있겠어요?]
[그럼 주소저는 그 귀원비급 책자를 실제로 본 일이 있습니까?]
[보았어요. 그러나 그냥 책장을 넘기다시피 훑어 보고는 곧 저에게 넘겨 주었어요.]
하는데 방문이 열리며 밖에서 경계하고 있던 하림이 달려 들어오는 것이었다.
[도옥이 왔어요.]
하는 것이 아닌가.
순간, 잠시 어리둥절했던 양몽환은 이마를 찌푸리며 일어났다.
[도옥이 나를 만나자고 하던가요?]
[예, 지금 문밖에서 기다리고 있어요.]
[도옥이 확실한가요?]
[확실히는 모르겠지만 도옥같아요.]
[알았소. 그럼 조소저는 주소저를 지켜 보시오. 곧 돌아 오겠습니다.]
그러자 조소접도 따라 일어서며 양몽환을 불렀다.
[혼자 가도 되겠어요? 저도 같이 가요.]
하고 양몽환의 신변을 염려하는 말에 하림도 곧 찬성했다.
[그렇게 하세요. 제가 여기서 란이 언니를 지키고 있겠어요.]
하는 것이었다.
양몽환은 굳이 거절하지 않고 조소접과 함께 밖으로 나왔다.
문밖에는 과연 하림의 말대로 도옥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진짜 도옥인지 아니면 그의 화신인지 분별이 가지 않아 양몽환은
싸늘하게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당신이 진짜 도옥임에 틀림없소?]
하고 묻는 말에 도옥은 이전과 달리 미소를 짓는 것이었다.
[틀림없는 도옥이오.]
[무슨 일로 찾아 왔소?]
[주약란이 이 도옥에게 심한 상처를 입혔기에 찾아 왔소.]
[그럼 치료를 받겠다는 말이오?]
조금 냉랭하고 딱딱한 대화가 교환되고 있었다.
[치료를 받으려고? 천만에. 치료법은 이 도옥을 따를 자가 없을 거요.]
[그럼 여기까지 찾아온 이유가 무엇이오?]
[그건 주약란이 큰 상처를 입은 것같아서 문병차 온 것이오.]
[문병?]
[그렇소!]
하는 말에 옆에 있던 조소접이 비웃음을 터뜨렸다.
[거짓말 말아요. 싸우려고 왔으면 솔직하게 말하세요.]
[흥! 이 도옥은 싸우러 온 것은 아니오. 염려마시오.]
[자신이 없는 모양이군요.]
[싸우러 온 것도 아니지만 더구나 자신이 없다면 이곳까지 찾아올 도옥이 아니란 말이오.]
하고 말하는 그의 태도에서는 잘 분간이 가지는 않았지만 어느 정도 진짜 도옥같은 느낌이 들었다.
말하는 태도나 연이어 패기가 있는 것으로 화신이 아닌 것같았다.
[뭐라고요? 자신이 있다고 흥! 자신이 있으면 덤벼봐요.]
소리치며 눈썹을 치켜 올린 조소접은? 지난 몇달 동안 도옥에게 사로잡혀 고생한 악몽이
양몽환 못지않게 머리 속을 떠나지 않아 그대로 있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한 수에 도옥을 처치해 버릴 심산으로 두 손을 높이 치켜 들었다.
그러자 싸늘한 웃음을 띄우던 도옥은 손을 번쩍 들며 잠깐만 참으라는 시늉을 하는 것이었다.
[잠깐! 싸움은 언제나 환영하는 이 도옥의오.
그러나 싸움보다는 우선 주약란을 구하는 것이 더 급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 아닌가. 이에 불현듯 느끼는 바가 있는 양몽환은
다급한 목소리로 조소접을 부르고 말았다.
[조소저! 잠깐만 기다리시오.]
하는 소리에 조소접은 들어 올렸던 손을 내려뜨리며 입술을 깨물었다.
당장 죽이고 싶은 심정을 억제하는 모양이었다.
그러던 조소접은 도옥을 노려보며 냉랭하게 쏘아 붙였다.
[그럼 도옥! 당신이 우리 언니의 내상을 고칠 수 있다는 말인가요?]
하고 묻는 것이었다.
그것은 좀전의 서찰과 지금 도옥의 하는 말에서 역시 무엇인가
느껴지는 것이 있기 때문이었다.
[물론 치료할 수 있소!]
그러자 이번에는 양몽환이 바싹 다가섰다.
[도형! 그것이 사실인지 아니면 거짓인지 이 양모인은 믿을 수가 없소.]
[무엇이 의심된단 말이오.
이 도옥은 진짜 도옥임에 틀림없고 이 도옥이 하는 말도 거짓이 없소.
그런데도 무슨 의심이 있어서 믿지 못한다는 거요?
의심이 있거든 말해 보시오.]
[그럼 묻겠소! 지금 도형은 주소저의 내상을 치료할 수 있다고 했는데
도대체 어떤 방법으로 치료하겠단 말이오?
그리고 왜 치료를 해주겠다고 나서는 거요?]
[이 도옥이 주소저를 치료해 주겠다는 것은 실로 주소저를 가엾게 생각해서 하는 거요.]
[가엾다고?]
[그렇소. 그리고 그녀의 지금 증세부터 말한다면 믿게 될 것이오.]
사실 도옥이 주약란에게 은근히 연정을 느끼고 있는 것은 도옥 자신도 부인할 수 없었다.
그래서 이 기회에 그녀를 치료해 주어 그녀 마음 속에 도옥을 심어 보려고 일테면
사랑을 얻어 보려고 계획한 행동이었다.
그리고 도옥도 주소저에게 입은 상처를 치료 받으려는 이중(二重)의 효과를 노리고 온 것이었다.
그런 것을 알 수 없는 양몽환이나 조소접은 경계에 경계를 거듭하면서도
도옥의 계획대로 끌려 들어가고 있는 것이었다.
[어디 말이나 해보시오.]
[그럼 들어 보시오. 지금 그녀는 진기가 역류하다 내장에 모여 응고되었으며 혼미상태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을 거요.]
하고 주약란의 지금 증세를 꼭 알아 맞히는 것이 아닌가.
이에 어리둥절한 양몽환은? 머리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긴 하오.]
그러나 조소접은 그래도 믿으려 하지 않았다.
[그건 믿을 수 없어요. 혹시 누가 밀고했는지도 모르는 일이에요.]
하는 말에 양몽환은 또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것도 그럴 듯한 말이었다.
[그럼, 도형은 어떻게 주소저를 치료할 것인지......말해 보시오.
그리고 여기에 온 목적이 치료에만 있는 것같지 않은데 그것도 들어 봅시다.]
[이 도옥이 이곳에 온 것은 사실 주약란을 치료해 주고 이 도옥 스스로도 치료를 받으려고 온 것이오.
주약란은 이미 이 도옥에게도 깊은 상처를 입힌 것이오.]
[그것이 어떤 상처요?]
[어떤 수법으로 상처를 입혔는지 이 도옥은 아직 모르고 있소.
그러나 한가지 느껴지는 것은 시간이 가면 갈수록 두 곳의 경맥이 경화(硬化)되어 간다는 것이오.
만일 이와같은 사태에서 주약란이 죽어 버린다면 이 도옥은 주약란에게서 입은 상처를
평생 고치지 못하게 될 것이오.]
[그렇다면 도형은 주소저를 치료해 주는 댓가로 도형도 치료를 받자는 것이오?]
하자 도옥은 씨익 웃었다.
[그러니까 서로 협상하자는 거요.]
[좋소. 그럼 도형이 먼저 주소저를 치료해 주시오.
그리고 다음에 도형이 치료받도록 하시오.]
[그야 말할 것도 없는 일이오.
먼저 주약란의 상처를 고쳐놓지 못한다면 그대들 두 분이
아무리 이 도옥의 상처를 치료해 주려고해도 능력이 없을 거요.]
[그럴 거요. 우선 믿어 두겠소.]
마지못해 응낙하는 듯 대답하는 양몽환이지만 속은 바싹바싹 타고 있었다.
그것은 속히 주소저를 치료하지 않으면 생명이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믿기지 않은 듯 시원찮게 대답은 했지만 속은 딴판으로 속히 치료하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러자 조소접은 그래도 경계를 소홀히 하지 않고 위협조로 말했다.
[만일 치료도중 잔꾀를 부린다면 사지를 끊어 버리겠어요.]
[얼마든지 마음대로 하시오.
이 도옥도 치료를 받으려면 주약란을 살려야 한단 말이오.
이 도옥의 상처는 주약란 이외에 어느 누구도 고치지 못한단 말이오.]
[좋아요. 어쨌든 내가 지키고 있겠어요.]
[지키는건 자유요.
그러나 만일 이 도옥에게 암암리에 손을 댄다면 이 도옥도 그냥 있지는 않을 거요.]
[알겠어요. 속히 치료하세요.]
눈썹하나 깜박이지 않고 대꾸하는 조소접에 비해 도옥은 유들유들 웃기까지 했다.
[그럼 이제부터 주약란을 치료하겠소.
그러나 치료가 하루나 이틀에 끝나는 것이 아니오.
그런 만큼 은밀하고 안전한 곳으로 옮기시오.]
하는 말에 잠시 생각에 빠졌던 양몽환은 얼마만에 고개를 돌렸다.
[좋소. 함께 갑시다.]
하고는 조소접에게 말했다.
[수고스럽지만 주소저를 안고 오시오.]
즉시 조소접은 방 안으로 들어가 주소저를 안고 양몽환과 도옥의 뒤를 따라 산 위로 오르기 시작했다.
얼마 동안 서로 말없이 산 위를 거의 사오리(四五里)를 갔을 때 먼저 앞장을 섰던 도옥이
걸음을 멈추며 맞은편 절벽을 가리켰다.
[저 절벽에 천연동굴이 하나 있소.
조금 길이 험하긴 하오만 그곳이 안전할 것같은데 어떻소?]
그러자 조소접은 의심이 가득 찬 눈으로 도옥을 노려보았다.
[뭐라고요? 그 동굴 속에다 함정을 만들어 놓고 우리를 유인할 셈인가요?]
그러자 도옥은 씨익 웃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너무 의심하지 마시오. 저 동굴은 입구가 하나밖에 없소.
이 도옥을 믿지 못한다면 두 분 중에서 누구든 한 분만 동굴의 입구를 막고 있으면 될거 아니오.]
하는 말에 양몽환은 아무말 없이 동굴 주위를 살피기에 여념이 없었다.
혹시 도옥의 어떤 계략이 준비되어 있는지도 모르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깎아지른 듯한 절벽 중앙에 입을 벌리고 있는 동굴은?
다른 이상함을 발견하지는 못했지만 그리 탐탁하지도 않았다.
[꼭 저 동굴에서 치료를 해야 될 이유라도 있소?]
그러자 도옥은 양몽환과 조소접을 번갈아 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두 분이 이 도옥을 해치려고 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이 도옥은 이곳에 와 있는 구대문파의 고수들을 믿을 수 없단 말이오.
만일 이 도옥이 주약란을 치료할 때 구대문파의 고수들이
이 도옥을 해치려고 한다면 어떻게 하겠소?]
[물론 막아드리겠소. 그런 일도 없겠지만......]
[그럴 거요. 적어도 주약란을 치료하는 동안은?
두분 역시 이 도옥을 해치지도 않고? 해치려는 자를 막아줄 것이오.]
[그렇소.]
[그래서 이 도옥은 이것 저것 다 생각한 결과로 아주 은밀한 곳에서 치료하자는 거요.
그러면 남의 눈에 띄지 않아 귀찮은 일도 없을 것이 아니겠소?]
일리 있는 말이었다.
양몽환은 고개를 끄덕이며 도옥의 말에 수긍했다.
[알겠소. 그런데 주소저를 치료하려면 며칠이나 걸리겠소?]
[음......대개의 경우 길면 칠일 짧으면 삼일쯤 걸릴 거요.]
[삼일이라......그렇다면 음식을 준비해야겠군.]
[그런건 양형이 염려할 것 없소. 이미 이 도옥이 준비했소.]
[그럼 됐소. 앞장을 서서 올라가시오.]
그러자 도옥은 약간 얼굴을 찌푸렸다.
[이미 말했지만 이 도옥은 상처가 중하오. 미안하지만 양형이 좀 거들어 주겠소?]
양몽환은 잠시 생각해 보고는 쾌히 응낙했다.
[좋소!]
하고 대답한 양몽환은 도옥의 왼쪽 손을 잡고 절벽으로 오르기 시작했다.
나뭇가지와 바위를 잡아가며 잠시 후에는 쉽게 동굴 입구에 다다랐다.
동굴은 천연적인 동굴로써 길이는 이장(二丈)정도였고 넓이는 거의 여덟자가? 넘을 듯했다.
그리고 동굴 속에는 도옥의 말대로 약간의 과일과 음식이 마련되어 있었다.
한편, 도옥은 비록 양몽환과 말을 주고 받기는 했지만 내상이 심히 중한지 석벽에 기댄채
눈을 감고 가쁘게 숨을 쉬고 있었다.
예전같으면 이까짓 절벽쯤 땅 한 번 박차면 쉽게 오를 높이었지만 심한 내상에 상당한
고통을 받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이때 뒤따라 동굴로 들어온 조소접은 주약란을 내려 눕히며 냉랭한 어조로 도옥을 불렀다.
[도옥! 이제는 치료해 보세요.]
그러자 도옥은 여전히 가쁜 숨을 쉬며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는 듯이 눈을 지그시 감는 것이었다.
[지금 이 도옥의 상처가 매우 위중한 것같소. 잠시 좌식(座息)을 취한 다음에 치료하도록 하겠소.]
그런 얼마 후, 도옥이 좌식에서 깨어나기를 초조히 기다리다 못해 조바심이 난 조소접은?
좌식하고 있는 도옥에게로 다가가 가볍게 기침을 했다.
그 소리에 눈을 뜨는 도옥에게 조소접은 싸늘히 입을 열었다.
[우선 주소저의 치료를 어떻게 할 것인지,
그 방법부터 말해 보세요.
그래서 그 방법을 들어보고 결정하도록 하겠어요.
만일 잔꾀를 부리려고 한다면 이 동굴속이 바로 무덤이 될 거에요. 기억해 두세요.]
그러자 도옥은 길게 한숨을 내려 쉬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눈을 한 번 더 감았다가 떴다.
예전에 없이 순순히 조소접의 말에 따르는 도옥이었다.
[그럼 우선 주소저의 진기가 역행하는 것은 틀림없소?]
[그래요. 틀림없어요.]
[그렇다면 지금 주약란의 내부(內部)에 응고되어 있는 진기를 그대로 둔 채 칠일이 지나면
목숨이 끊어질 것이오.]
그러자 양몽환은 눈을 크게 떴다.
[그건 중병(重病)을 치료할 수 없다는 말이오?]
하는 물음에 도옥은 씨익 웃고 대답했다.
[만일 이 도옥이 치료할 수 없다면 왜 두 분을 만나서 이곳까지 왔겠소?]
간교한 도옥이 무슨 인정이 많아서 더구나 주약란을 죽음에서 구하겠다고 나설 것인가.
그것은 주약란의 중병을 치료해서 그녀로 하여금 자기의 연정을 그녀가 품도록 하는 동시에
자신의 내상도 치료를 받으려고 정말 죽음을 무릅쓰고 찾아온 것을 양몽환은
어느 정도 어렴풋이 깨닫게 되었다.
그러나 한 번 확실한 답을 듣고 싶은 양몽환이었다.
[그러나 왜 도형이 주소저를 치료해 주려고 하는지 그것을 모르겠단 말이오.]
그러자 도옥은 낄낄 소리내어 웃다가 뚝 웃음을 그치는 것이었다.
[그거야 간단하지 않소? 수차 말했지만 그녀를 살려 놓아야만 이 도옥도
그녀에게서 치료를 받아 살 수 있다는 말이오.
다시 말하면 서로 목숨을 살려 주자는 조건부로 온 것이오.
그만하면 알아 듣겠소?]
[그것도 좋은 생각이오.]
[사실 말이오만 이 도옥이 남에게 좋은 일을 하려고 말해도
믿어주는 사람이 별로 없다는 것이 섭섭하단 말이오.]
[그건 도형이 실천하기에 달렸소. 우리가 믿을 수 있도록 치료법을 말해 보시오.]
[그러면 말하겠소. 그전에 한 가지 부탁이 있소.]
[무슨 부탁이오?]
[이 도옥이 말하는 대로 양형이 움직여 달라는 부탁이오.]
순간, 교활한 도옥이 어떤 흉계를 꾸미려고 하는 말인가 잠시 생각해 보았지만
사태가 사태인 만큼 그때그때 닥치는 대로 처리하리라 생각하고는 머리를 끄덕여 대답을 대신했다.
그러나 도옥은 양몽환이나 조소접의 초조한 마음과는 달리 이리저리 딴 소리만 하는 것이었다.
[지금 주약란의 상처가 매우 중태인 것같은데 때늦지 않게 치료한다면 곧 회복될 거요.]
주약란과 조소접을 번갈아 보며 하는 말에 조소접은 그만 성을 발칵 내고 말았다.
[빨리 이야기나 하세요. 딴 소리 말고......]
초조한 마음에 부채질만 하는 것같아 성미가 급한 조소접은 더 듣고 있을 수 없었다.
그러나 여전히 능청을 떨고 있는 도옥이었다.
[너무 서두르지 마시오. 그러면 마(魔)가 든단 말이오.
그보다 먼저 두 분이 생각해 보시오.
이 도윽이 그렇게 마음이 선량한 사람인가를 ......]
하는 도옥의 말뜻은 순순히 치료를 해줄 수 있겠느냐는 말이다.
응분의 보수가 있어야 한다는 뜻이었다.
그러한 도옥의 의중을 모를리 없는 양몽환이었다.
[알아 듣겠소. 그럼 어떻게 해달라는 것인지 말해 보시오.]
[그럼 양형에게 꼭 할 말이 있소.]
[어떤 말인지 속히 말해 보시오.]
양몽환은 차차 조바심이 나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러나 도옥은 양몽환의 조바심같은 건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씨익 웃고는
천천히 입을 여는 것이었다.
[이 도옥이 주약란의 상처를 치료해 주면 그 댓가로 주약란은
이 도옥의 상처를 치료해 줄 것은 물론,
이 석굴에서 이 도옥이 회복될 때까지 신변의 안전을 책임져 달라는 말이오.]
그러자 조소접이 날카롭게 대꾸했다.
[그럼 상처가 회복되어 이 석굴을 나서게 될 때는 어떻게 되죠?]
회복할 때까지만 책임지는 것인가 아니면
이 석굴을 빠져 나간 다음까지 책임을 지는가를 묻는 것이었다.
그러자 도옥은 눈에 광채를 띄우며 빙긋이 웃었다.
[그거야 각자의 수단에 달린 문제요.
재간껏 죽이든지 살리든지 할 것이지 여기서 말할 것은 아니오.]
하는 말에 양몽환은 이마를 찌푸렸다.
무엇인가 불길한 예감이 뇌리속을 스치고 지나가는 것이었다.
<...... 음...... 서로 회복되어 이 석굴을 빠져나갈 때 치열한 싸움이 벌어지겠군 ......>
하면서도 곧 쾌히 대답했다.
[좋소. 도형의 요구 조건을 받아들이겠소.]
[적어도 양형과 이 도옥은 남아 대장부요. 약속을 지키리라 믿겠소.]
[좋소.]
그제야 도옥은 만족한 웃음을 흘렸다. 그리고는 표정을 굳혔다.
[이제부터 이 도옥이 말하는 대로 양형은 움직여 주시오.]
하고는 잠시 여유를 두었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먼저 그녀의 결분(缺盆), 운문(雲門) 그리고 천돌(天突)의 삼대요혈(三代要穴)를 짚으시오.]
하는 것이었다. 순간, 눈을 크게 뜨고 어리둥절했던 양몽환은 도옥을 노려보며 되물었다.
[삼대요혈을?]
[양형은 염려마시오. 만일 주약란의 몸에 이상이 생기면 즉시 이 도옥의 목숨을 끊으면 되지 않겠소?]
대담하게 말하는 도옥을 양몽환은 어이없이 올려 보았다.
결코 도옥의 위인됨으로 보아 자기의 목숨과 주약란의 목숨을 바꿀? 도옥이 아님을 직감한 양몽환은
곧 태연해지며 도옥이 시키는대로 식중지(食中指)로 주약란의 삼대요혈을 짚었다.
그때 다시 도옥이 계속해서 분부하듯 말했다.
[그녀의 진기를 역행시켜 단전(丹田)에 모이도록 하시오.]
[어떻게 진기를 역행시키는 거요?]
하고 방법을 묻는 양몽환의 말에 도옥은 자세히 설명을 가했다.
[양형의 내공력으로 그녀의 부용(不容), 승만(承滿), 양문(梁門), 태을(太乙)의 혈도를 짚어서
진기를 움직이지 못하게 하시오.]
하고 그 방법을 가르쳐 주자 조소접이 눈을 크게 떴다.
[그렇게 많은 혈도를 짚어 상처를 치료한다는 말은 아직 들어보지 못했는 걸 ......]
하고 노골적으로 의심을 품는 말에 도옥은 정색하고 대답했다.
[조소저! 지금 주약란의 상처는 보통 사람의 상처와는 다르다는 것을 기억하시오.
어느 누구나 치료할 수 있는 상처라면 두 분도 이 도옥의 도움이 필요하지는 않았을 거요.]
하며 어떠냐는 듯이 양몽환을 바라보는 것이었다.
이에 양몽환은 더 의심하지 않고 도옥의 설명을 따라 주약란의 진기를 단전에 모이게끔
움직이면서 모든 혈도를 차례로 짚어 내려갔다.
그제야 도옥은 빙긋이 웃으며 고쳐 앉는 것이었다.
[이젠 됐소. 좀 쉬도록 놔 두시오.]
하고는 자기가 먼저 눈을 지그시 감으며 조식에 들어가는 것이었다.
무엇이 어떻게 되는 것인지,
또 지금의 치료법이 주약란을 살려낼 수 있는지 어떤지도 모르고 멍청히 앉아
도옥이 눈뜨기를 기다리는 양몽환은 초조함을 감추지 못하고 그 다음 치료법을 다급히 재촉했다.
[어떻게 하면 되는 거요? 그 다음은 어떻게 하는 거요?]
그러나 도옥은 다시 눈을 스르르 감으며 딴소리를 했다.
바싹바싹 양몽환의 입술을 태우려는 태도였다.
[나도 좀 쉽시다. 서두르지 마시오. 생각도 좀 해보게 말이오.]
하는 말에 양몽환은 조소접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쉴 뿐 속수무책으로 입을 다물고 말았다.
그러자 이번에는 조소접이 양몽환 대신 도옥을 불렀다.
그것은 지금 도옥의 태도가 무슨 흉계를 쓰는 것같아 마음이 놓이지 않아 조바심이 났기 때문이다.
[도옥, 섣불리 경거망동을 한다면 당장 죽여버린다는 것을 잊지 말아요.]
하고 날카롭게 소리치자 도옥은 눈을 감은채 담담히 웃는 것이었다.
[알고 있소. 그러나 이 도옥이 죽으면 이 주약란도 살아나지 못한다는 것을 알아 두시오.]
어디까지나 여유있는 도옥의 대답이오 태도였다.
그러한 도옥의 오만한 태도와 여유있는 말에 발칵 성이 난 조소접은 아니꼽다는 듯이 냉소를 터뜨렸다.
[도옥! 나의 살의(殺意)를 돋우지 말아요.]
표독스러운 말에 그제야 도옥은 눈을 뜨며 조소접을 흘겨 보고는 도로 눈을 감으며
입을 다물고 마는 것이었다.
순간, 버들잎같은 조소접의 눈섭이 파르르 떨리면서 섬섬옥수의 하얀 손이
머리 위로 치켜 올라가는 것이었다.
그 바람에 번쩍 정신이 든 양몽환은 급히 조소접의 손을 잡으면서 전음지술(傳音之術) 수법으로 말했다.
[조소저! 작은 일에 참지 못하면 큰 일을 그르치는 법이오. 조금 더 참고 기다려 봅시다.]
하고 타일렀다. 사실 조소접은 당장 도옥의 머리를 내려칠 기세였다.
그러나 도옥은 자기의 머리 위에서 주먹이 내려 떨어지려는 위기를 아는지 모르는지
지그시 눈을 감고 조식에 열심이였다.
양몽환의 간곡한 만류에 들었던 손을? 내려 놓고 입술만 깨물고 있는?
조소접과 조바심에 안절부절 마음이 편안치 않은 양몽환이 기다리기에 지친 듯했을 때야
도옥은 조식을 끝내며 입을 열었다.
[양형! 그녀의 단전을 만져 보고 진기가 모였나 보시오.]
그 말에 양몽환은 눈썹을 찌푸렸다.
그 단전이라는 것은 바로 주약란의 치부(恥部) 바로 위에 있기 때문이었다.
[그건 조소저가 하도록 하시오.]
하고 주저했다.
그러자 도옥은 못마땅하다는 듯이 역시 얼굴을 찌푸렸다.
[지금 사람의 목숨을 구하는 이 마당에서 무얼 망설이는 거요.
양형은 그따위 점잖은 척하는 태도를 버리시오.]
내뱉듯 하는 말에 매우 난처해진 양몽환은 얼마를 더 망설이다가 할 수 없다는 듯이
주약란의 아랫배에 손을 얹고 단전요혈(丹田要穴)을 더듬어 찾아 짚고 말았다.
그리고 곧 단전에 가득 차 있는 진기를 촉감으로 알 수 있었다.
[진기는 모두 단전에 모였소.]
[그럼 이제부터는 더욱 조심해서 움직여 주시오.]
하고는 곧이어 말을 계속했다.
[주약란은 지금 진기를 역행시킨 결과 공력이 깊지 못한 탓으로 진기가 정체,
응고되어 심한 상처가 된 것이오.
이제 단전에 모인 진기만 정상적으로 돌게 하면 치료가 끝나는 것이오.]
[그렇다면 도인지법(導引之法)으로 그녀의 진기가 정맥(正脈)으로 흐르게 하면 되는 것이오?]
[그렇소! 속히 손을 쓰시오.]
즉시 양몽환은 내공력을 손에 운집시키고는 주약란의 진기를 움직이게 하면서
추궁과혈(推宮過穴)법으로 진기가 정맥으로 흐르게 하고 도인지법(導引之法)의 수를 조심조심 해나갔다.
그러나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거의 한시간이라는 시간을 보내고 양몽환의 이마에 땀이 뻘뻘 나면서부터야
겨우 주약란의 단전에 모였던 진기를 정맥으로 흐르게 할 수 있었다.
귀원비급에 실린 진기역연법
한시간이 지나고도 얼마 후,
드디어 주약란은 심장의 고동소리가 정상적으로 들리기 시작하면서
막혔던 숨이 일시에 터지는 무겁고도 긴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번쩍 눈을 뜨는 것이었다.
순간, 양몽환과 조소접은 기뻐 어쩔 줄을 몰랐다.
그리고 잠시 눈을 떠 사방을 두리번거리던 주약란은 도옥의 얼굴에서 시선을 멈추었다.
그리고는 싸늘하게 묻는 것이었다.
[목숨을 구하고자 온 거에요?]
[아가씨의 목숨을 구해 주고자 왔소.]
그러자 주약란은 싸늘하게 웃었다.
[도옥. 한가지 묻겠는데 만일 거짓말을 한다면 즉시 목숨을 뺏겠어요.]
[그거야 어떤 것을 묻느냐에 달렸겠지!]
주약란은 엄숙한 표정으로 도옥을 노려보고는 차갑게 물었다.
[귀원비급에서 진기를 역행시키는 무공을 발견했어요?]
[그렇소만.]
그러자 주약란은 자지러지듯 소리를 내며 거의 절규에 가깝도록 소리를 질렀다.
[뭐라고요? 거짓말이죠? 그 귀원비급의 자자구구(字字句句)를 내가 다 외우고 있는데 왜 나는 그런 것을 발
견하지 못했죠?]
[흥! 그거야 아가씨의 눈이 어두운 탓이지 왜? 이 도옥의 죈가요? 틀림없이 기록돼 있는걸 왜? 이 도옥에게
큰 소리요?]
빈정거리듯 하는 말이었으나 주약란은 더 화를 내지 않았다. 다만 조소접이 눈썹을 치켜올렸다가 내렸을 뿐
이었다.
[그렇다면 귀원비급의 책장 속에 적혀있는 것을 발견하지 못했는지도 모르지 ......]
하고 자조적인 말에 도옥은 맞장구를 쳤다.
[그렇습니다. 과연 아가씨의 지혜는 범인이 따르지 못할 바요.]
주약란은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그럼 그 무공을 터득했단 말인가요?]
[어찌 터득하지 않고 알리 있겠소?]
오히려 반문하며 씨익 웃는 도옥을 보고 주약란은 탄식했다.
[실로 천기진인과 삼음신니는 일대(一代)의 이인(異人)이군.? 그분의 범위 밖으로 나오는 무공은? 하나도 없
어......]
하고 탄식하며 혼잣소리처럼 말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이번에도 도옥은 맞장구를 쳤다.
[옳은 말이오. 그 귀원비급에는 무엇이든 무공에 관한 것이면 자세히 기록되어 있소. 그러나 한가지 애석한
것은 역행무공을 그 두 분이 수련해보지 않은 모양이오. 그렇지? 않고야 그 무공의 위력이 얼마나 큰지, 그
리고 인체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 거기에 대해 기록이 없을 리가 없단 말이오.]
[흥! 오늘은 제법 솔직한 말을 하는군요. 항상 계략만 쓰고 속이더니......]
[이 도옥은 아가씨를 속일 수가 없을 것같소. 그래서 사실대로 말하는 것이오.]
[다른 의도가 있어서 하는 말이겠죠.]
하고 주약란은 도옥의 말을 넘겨짚었다.
그러자 도옥도 할 수 없다는 듯이 머리를 끄덕였다.
[아가씨가 꼭 아시겠다면 분명히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자 이때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양몽환이 불쑥 입을 열었다.
[도형은 그와 같은 수련을 쌓는 도중에 일어난 일을 주소저에게 알아보려는 속셈이오?]
하는 말에 도옥은 아주 제법이라는 듯이 씨익 웃는다.
[사별삼일(士別三日)이면 괄목상간(刮目相看)이라더니 양형이? 그처럼 총명성이? 있으리라고는 미처 몰랐는
데......]
빈정거리는 것이었다. 이에 주약란이 톡 쏘아붙였다.
[그럼 양상공이 총명하지 못하단 말인가요?]
[흥! 삼년 후에 천하 무술계에서 이 도옥과 적수가 될 사람은 주약란 당신 밖에 없소.]
[큰 소리치지 말아요.]
하는 순간, 어느 사이에 몸을 날렸는지 조소접이 도옥의 손목을 움켜쥐는 것이었다.
조소접이었다.
[무엇이 잘났다고 큰 소릴 치는 거야? 오늘 너의 근맥(筋脈)을 끊어놓고 말겠어!]
그러자 도옥의 얼굴빛은 대뜸 흐려졌다.
[음...... 일찍이 너부터 해치울 것을...... 잘못했어 ......]
하고 죽이지 못한 것을 후회하는 도옥이었다.
그러나 조소접은 흥! 코웃음을 터뜨렸다.
[흥! 그러나 이제는 때가 늦었어......]
하며 비웃는 것이었다. 이때 한숨을 내려쉰 주약란은 조용히 조소접을 불렀다.
[접매! 그 손을 놔줘요.]
그제야 조소접은 도옥의 손을 확 던지듯 놔주고는 싸늘히 말했다.
[언니의 말씀이 아니면 오늘 죽여버렸을 거에요.]
이에 도옥은 히죽 웃었다.
[과연 주소저는 건국영웅(巾國英雄)의 기백이 있소.]
하며 주약란을 추켜올리는 도옥을 주약란은 아니꼽게 노려보고는 내뱉듯이 말했다.
[치하할 건 없어요. 그런데 한가지 묻겠어요.]
[얼마든지 물어보시지.]
[무슨 일로 여기 왔죠? 살고 싶지 않은 모양이군요?]
[이 도옥이 살고 싶지 않다면 이곳에 오지도 않았을 거요. 아가씨의 내상을? 치료해 주고 이 도옥도 치료받
기 위해서 온 것이오.]
[흥! 교활하고 거짓말만 하는 당신같은 사람에게는 아무리 은혜를 입었다 해도 보답할 필요는 없어요.]
그러한 말에 도옥은 순간 진지한 표정으로 바뀌는 것이었다.
[무슨 말인지 잘 알아듣지 못하겠소. 다시 한번 더 말해 주시오.]
[잘 들으세요. 여기 양상공께서는 마음이? 중후하고 선량한 사람이어서 아무리 당신을? 증오한다 해도 지금
상처를 입은 당신을 해치지는 않을 거에요. 그리고? 나 역시 나의 병을 치료해준 그대를 해칠? 마음은 없어
요. 그러나 여기 조소저만큼은 우리들과 달라요. 그녀는 그대에게? 은혜를 받기는 고사하고 도리어 해를 입
은 사람, 그녀가 당신을 죽이든 살리든? 내가 관여할 바 못되죠. 그런 만큼? 당신이 살고 싶다면 오직 길은
하나에요.]
[그 한 길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그녀의 귀원비급을 돌려주는 일이에요.]
원래 도옥이 가지고 있는 귀원비급은 조해평(趙海萍)이 장진도로 찾아낸 것으로 그의 딸 조소접이? 갖고 있
었다. 그것을 강호 고수들이 서로 차지하려는? 와중에 도옥이 가로채 귀원비급과 함께 절벽? 밑으로 떨어진
것이었다.
오년 전 일이다. 그래서 주약란은 원래 주인인 조소접에게 돌려주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도옥은 시치밀 뚝 뗐다.
[응당히 주인에게 돌려주는 것이 도리라는 것을 모르는 이 도옥이? 아니오. 그러나 불행하게도 지금 가지고
있지 않소.]
[그렇다면 좋아요. 그대를 죽여서 귀원비급의 후환을 없애버리겠어요.]
[그런 말을 한다고 해서 도옥이 두려워할? 사람도 아니오. 만일 이 도옥이 삼일? 이내에 돌아가지 않는다면
그 귀원비급은 다른 사람이 차지하게 되오. 그리고? 이 도옥이 죽는다면 그 후에는 열 명의? 도옥이 나타나
강호에 군림할 것이오.]
[열 명이든 백 명이든 그런 것은 상관없어요. 모두 당신보다는 악독하지 않을 거에요.]
[헛...허...그 점에 관해서는 아가씨가 이 도옥만큼 모르고 있소. 이? 세상에 이 도옥보다 악한 사람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을 것이오.]
그리고는 잠시 말을 중단한 도옥은 주약란을 흘겨 보며 곧 말을 이었다.
[귀원비급에 관한 것만 아니면 어떠한 요구든 다 들어줄 용의가 있소.]
그러자 주약란은 잠시 생각에 빠진 듯했다가 곧 입을 열었다.
[그럼 진기를 역연(逆練)하는 원문을 외우고 있는가요?]
[물론, 자자구구를 모두 외우고 있소.]
[그렇다면 원문을 모두 기록할 수 있겠군......]
[그야 두말할 것도 없습니다.]
[됐어요. 그럼 원문 그대로 기록하세요.]
[그건 해드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말해둘 것이 있습니다.]
[뭔데요?]
[이 도옥의 신변을 누가 책임지겠소? 만일 원문을 다 써주면 내 목숨은 끝장이 아니겠소?]
[그건 염려말아요. 내가 그대의 상처를 치료해 주고 안전하게 이곳을 빠져나가도록 해주겠어요.]
귀원비급 대신 진기를 역연(逆練)하는 원문과 조건부로 도옥의 치료와 신변을 책임지기로 한 주약란은 결국
귀원비급을 포기한 셈이었다.
그리고 지금 천하무술계에서는 도옥을 따를 자가 없으리라 생각했다. 그것은 귀원비급을 오년 동안 연구 터
득한 도옥에 비해 주약란은 한 번 쓱 훑어보는 것으로 그쳤고 조소접은 나이가 어려 원문을 외우기는 했지
만 그 기록이 어떤 뜻인지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조소접이 차차 나이가? 들면서 하나하나 새삼
스럽게 느껴지고 얻는 바가 있지만 오년 동안을 하루도 빠짐없이 불철주야로 연구 터득한 도옥에게는 미치
지 못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주약란도 도옥을 죽이지 못하고 역연하는 방법을 연구코자 그 원문을 쓰게 하는? 것이었다. 그 댓가
로 도옥의 생명을 안전하게 보장하도록 하고 말이다.
주약란이 쾌히 응낙하는 말에 도옥은 어깨가 으쓱했다. 그러나 앞뒤를 계산해볼 필요가 있었다.
[주약란 아가씨는 신의가 있어 믿을 수 있긴 합니다만 ......]
말끝을 흐리면서 조소접과 양몽환을 눈으로 가리키는 것이었다.
그러자 주약란은 그의 눈치를 채고 한 번 더 안심을 시켰다. 그제야 도옥은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었다.
[그럼, 믿겠소. 그런데 지필(紙筆)이 있어야 쓰지 않겠소?]
[그건 필요없어요. 한자씩 또박또박 외우기만 하면 돼요.]
그러면 주약란은 곧 암기하겠다는 것이다. 도옥은 고개를 끄덕이다 말고 다시 표정을 굳혔다.
[그러나 아가씨가 먼저 이 도옥의 상처를 치료하고 그 후에 외우도록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고 완전무결하게 조건을 수행하자는 것이었다. 그래서 지금이라도 유리한 입장에서? 조건을 받아들이겠다
는 것이다.
그러나 주약란은 고개를 가로 흔들었다. 그녀 역시 총명했다.
[도옥! 그대의 병은 그렇게 위험하지 않아요. 하루 이틀에 죽을 내상도 아닌 만큼 먼저 외우도록 하세요.]
[그럼 이 도옥이 죽을 지경에 가서 치료하겠다는 말이오?]
하고 눈을 크게 뜨고 소리쳤다.
[그런 것은 아니에요. 다만 그대가 신의를? 지킨다면 상처를 치료해서 평안히 이곳을 떠나도록? 해주겠어요.
어서 외우기나 하세요.]
그제야 도옥은 할 수 없다는 듯이 주약란의 요구를 받아들였다.
[좋습니다. 그럼 귀원비급의 역연비결(逆練秘訣)을 외워 드리겠소. 그러나 귀원비급에 기재된 비결은 천기진
인과 삼음신니 두 분이 등선(登仙)할 때까지 확정적인 방법을 밝히지는 못했습니다.]
[그럼 귀원비급에 기재된 방법이 여러가지란 말인가요?]
[예 그렇습니다. 모두 세 가지의 방법이 기재되어 있는데 각기 다른 방법입니다.]
[그럼 세 가지의 방법 중에서 어느 방법을 단련했죠?]
[그 세 가지 방법 가운데서 어느 방법이 옳고 좋은 것인지 알 길이 없어 세 가지를 다 실험해 봤소.]
[그렇다면 그 세 방법이 각기 결과가 다르단 말인가요?]
[아니, 꼭 그렇다는 말은 아닙니다. 세가지의 방법은 모두 그 결과가 비슷하더군요.]
하며 고개를 흔드는 도옥을 바라보며 주약란은 무슨 말을 할까 하다가 이마를 찌푸릴 뿐 더 말하지 않았다.
그리고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석벽에 등을 기대고 섰다. 그리고는 이마를 가릴 듯이? 흩어져 내린 머리카락을
쓸어올리며 뜻모를 웃음을 짓는 것이었다. 항상 침착하고 고고한 기풍을 가진 주약란은 별로? 웃는 일이 없
지만 지금의 웃음은 실로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을 더우 아름답게 했다.
그러한 그녀의 웃음 띈 얼굴을 보는 사람이면 그가 같은 여자일지라도 과연 아름답구나! 하는 경탄이? 절로
나왔을 것이었다.
황홀하고 매력이 있는 웃음은 남자의 더구나 도옥의 마음을 흔들어놓고 말았다. 하던 말을? 마친 도옥은 그
만 주약란의 아름다운 얼굴에 넋이라도? 빠진 듯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할? 뿐 그리고 순간적이나마 도옥의
눈빛은 이상한 광채를 발하는 것이었다.
그때 도옥을 노려보고 있던 조소접이 흥! 코웃음을 치며 소리를 빽 질렀다.
[뭘 보고 있죠? 별꼴이야. 계속 그러고 있으면 두 눈을 빼놓고 말겠어 ...]
그제야 번쩍 정신이 든 도옥은 무안을 당해 벌개진 얼굴에 어설픈 웃음을 지으며 헛기침을 하는 것이었다.
[어서 계속하세요.]
그때 주약란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더라면? 조소접이 벌컥 화를 내며 달려들었을 것이다.? 어서 계속하라는
주약란의 말에 무안을 면한 도옥은 헛기침을 하며 말을 계속하는 것이었다.
[이 도옥이 세 가지 방법을 시험해 본 결과 거의 모두 같은 효과를? 낸다는 것을 알았소. 그렇지만 어느 방
법이 좋다고 분명히 말할 수는 없습니다.]
[좋아요. 그럼 그 세 가지 방법을 한 가지씩 모두 외워 보세요.]
그러자 도옥은 크게 소리내어 웃어제치는 것이었다.
[......허......아가씨, 세 가지 방법을 다 외운다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너무 많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까?]
하는 말에 주약란 대신 조소접이 눈썹을 치켜올렸다.
[외우라면 외우지 무슨 말이 많아요? 내가 그대를 죽여 버리면? 백 가지 아니라 천 가지의 방법을 알고 있
다 해도 무슨 소용이 있어요? 외우기 싫으면 그만둬요......]
서슬이 파래서 부르짖는 조소접의 말에 도옥은 또 한번 찔끔했다.
그때 다시 주약란이 부드럽게 말했다.
[그럼 두 가지만 외우도록 해요.]
[좋습니다. 자, 이제부터 외우겠습니다. 그 대신 약속은 지켜야 합니다.]
[염려말아요. 그러나 만일 거짓으로 다른 말을 외우면 용서없어요. 나도 대강은 알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면
섣불리 간사한 꾀는 부리지 못할 거에요.]
[그거야 내가 스스로 생각해서 잘 할 것이오. 이 도옥도 목숨만은 소중히 생각한다오.]
[그럼 어서 외우세요. 한 자도 틀리지 않게 외운다면 약속대로? 내상을 치료해서 무사히 돌아사도록 하겠어
요.]
하는 말에 도옥은 고개를 숙이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잠시 눈까지 감았다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귀원비급 최후의 일장에는 불가와 도가의 무공을 기록하고? 있는데 그것은 대반야현공(大般야玄功)과 반야
선공(般耶禪功)으로서 다만 의도(意圖)만으로도 상대를 쓰러뜨릴 수? 있으며 또, 현문강기(玄門강氣)라는 것
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일장(一掌)만으로 어떠한 상대 심지어 바위까지 깨칠 수 있고 몸을 보호하는
강력한 강기(鋼氣)가 있어 검(劍)이나 장(掌)을 막을 수 있습니다.]
[그건 나도 알고 있어요. 그러한? 지순지고(至純至高)한 무공을 한 사람이 십이분(十二分)의? 위력을 발휘할
수는 없어요.]
하고 말하는 주약란의 말에 도옥은 고개를 끄덕였다.
[옳은 말이오. 인체의 한계점이라는 것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천기진인과 같은 재능이나 삼음신니의 지혜로
도 단지 반야선공이나 현문강기를 어느 정도밖에는 발휘하지 못했을 겁니다.]
하고 말한 도옥은 주약란과 조소접을 번갈아 바라보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러니 내가 반야선공이나 대반야현공을 수련한다 해도 기적이 없는 한 성공을 거둔다는 것은 바랄 수 없
는 일이지오. 더구나 인생이라는 것이 실로 짧은? 한 평생이 아닙니까? 이처럼 짧은 기간 동안에? 두가지를
다 터득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일 뿐 아니라 설혹 성공을 거둔다 해도 두 가지를 다 성취했을 때는 늙어 죽
을 때일 겁니다. 그래서 이 도옥은 달리 생각을 했죠.]
그러자 이때까지 점잖게 듣기만 하던 양몽환이 입을 열었다.
[그래서 도형은 귀원비급의 절묘한 무공을 반대 방향에서부터 터득했다는 말이오?]
[천만에, 이 도옥은 양형처럼 그런 생각은 못했소.]
잠시 말을 끊었던 도옥은 주약란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그때 이 도옥은 너무나 조급하고 초조한 나머지 거의 자포자기의 상태로 빠져 버렸죠. 그래서 무학의 비보
(秘寶)라는 귀원비급을 그냥 땅바닥에 내동댕이치고 말았죠.]
[그랬는데 기적이 일어났단 말인가요?]
[예, 바로 그겁니다. 그 귀원비급을 내동댕이치는 바람에? 책장이 두 쪽으로 갈라지며 그 안에 기록된? 글이
나타났단 말입니다. 그래시 마음을 진정하고 읽어본 결과 그 기록이 바로 진기를 역연하는 방법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정말 기적이군요.]
[그렇죠. 원래 천기진인과 삼음신니도 똑같이 선천적인 인체의 한계점에? 봉착해서야 진기를 역연시키는 방
법을 터득한 모양입니다. 그러나 그 수련이 거의 터득되어갈 때 서로 무공을 겨루다 그만 더 연구할 기회를
놓친 모양입니다. 그래서 완전한 무공이 되지못한 이 역연 방법을? 책장 끝에 기록한 것이 아닌가 해요. 그
리고 너무나 역연하는 방법이 위험한 방법이어서 책장 속에 기록하고 봉해버린 것같습니다.]
[그럴 수도 있겠죠. 두 분은 진기역연법의 확실한 성취를 시험해 보지 않았기 때문에 후세의 사람들이 목숨
을 잃지 않도록 숨긴 곳이 바로 책장 속일 거에요.]
[이 도옥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리고는 곧 화제를 돌렸다.
[이 도옥의 상처가 점차 악화되는 것같아 이야기를 계속할 수 없군요.]
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은근히 주약란에게 속히 내상을 치료해 달라는 뜻이었다. 그러나 주약란은 싸늘하게
노려보고는 눈을 가늘게 떴다.
[그렇게 잔재주를 피우지 않아도 고쳐주겠어요.]
도옥의 성격을 다 알고 있는 주약란이기 때문에 간사한 도옥이가? 빨리 상처를 낫게 하고자 핑계를 대더라
도 그 음흉하고 비열한 속셈을 꿰뚫어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어차피 한 번 약속을 했으니만큼 그 약속은 꼭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주약란은 양몽환을 불렀다.
[양상공! 공력을 운집해서 도옥의 천영혈(天靈穴)을 짚으세요.]
양몽환은 그녀의 말대로 오른쪽 손을 들어 도옥의 천영혈을 조심히 짚었다. 그러자 도옥은? 모른 체하고 눈
을 감는 것이었다.
만일 이때 양몽환의 생각이 달라 천영혈을 짚는 손에 잠력을? 넣어 갈긴다면 도옥은 목숨이 끊어질 것이었
다. 그러나 천성적으로 악하지 못한 양몽환은 조심조심 도옥의 천영혈만 짚고 주약란을 바라보며 다음 분부
를 기다리는 것이었다.
그때 다시 주약란의 분부가 조용히 들려왔다.
[내공을 운기하여 치솟은 그의 혈기를 아래로 내려가도록 하세요.]
주약란의 말을 따라 양몽환은 익숙한 솜씨로 천천히 내공력을 쏟았다.
그러자 도옥의 얼굴이 점차 창백해지면서 얼굴에 떠돌던 핏기가 싸악 가시고 마는 것이었다.
그때 주약란은 재빨리 오른 손을 들어 도옥의 가슴에 있는 두 곳의 대혈을 짚어 버리고는 다시 양몽환에게
조용히 말했다.
[잠력을 거두세요. 그리고 피가 위로 오르도록 하세요.]
양몽환은 침착히 시키는대로 했다.
[그럼 됐어요.]
하고 양몽환의 손을 멈추게 하고는 약간 소리를 높여 도옥을 불렀다.
[도옥! 이제는 스스로 피를 운행시켜 위로 오르도록 하세요.]
하는 말에 도옥은 곧 운기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도옥의 가슴 두 곳의 대혈이 주약란의 손에 의해 전맥수법(前脈手法)으로 짚혔기 때문에? 도옥의 피
는 위로 오르지 않고 있었다.
전신의 힘을 기울여 피를 위로 올리려고 도옥이 아무리 애를 써도 대혈이 있는 곳에서 막힐 뿐이었다. 그래
서 땀만 뻘뻘 흘릴 뿐 창백한 얼굴에는 핏기라고는 찾아볼 수도 없게 되었다.
그러나 주약란은 표정하나 바꾸지 않고 차갑게 말했다.
[그대의 상처를 치료하고 못하고는 그 운기에 달렸어요. 전력으로 피를 위로 올리도록 하세요.]
그러자 도옥은 천천히 고개를 흔들었다.
[있는 힘을 다해도 가슴에서 막혀 흐르지 않는 것같습니다. 이렇게? 힘만 주다가 혈관이 터지기라도 한다면
어떻게 하죠?]
[그러니까 그 운기에 달렸다고 하지 않아요? 한번 더 해보세요.]
할 뿐이었다.
할 수 없이 주약란의 말을 따를 수밖에 없는 도옥은 한 번 더 힘을 모았다.
그 순간, 주약란은 두 손을 함께 써서 도옥의 가슴에 짚었던 두 곳의 혈도를 풀어주는 것이었다.
그바람에 힘껏 힘을 주어 피를 올리던 도옥은 막혔던 혈도가 풀리면서 왈칵 머리 끝까지 피가 유통되어 힘
차게 치솟았다.
그와 함께 창백했던 도옥의 얼굴에는 핏기가 돌면서 파란 핏줄이 나타나는 것이었다.
그때 주약란은 계속해서 도옥의 가슴과 뒷등에 있는 몇 곳의 혈도를 두드려 주고는 침착히 말했다.
[이제 더 운기해 보세요. 내상이 거의 나을 거에요.]
하는 말에 도옥은 길게 숨을 들이마시면서 운기하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주약란을 바라보았다.
[만일 조금만 더 힘주었다면 혈관이 터져 죽었을 거에요.]
하며 가슴을 내려쓰는 것이 매우 놀란 모양이었다.
그러자 주약란 대신 조소접이 싸늘하게 쏘아붙였다.
[그렇게 돼서 죽어 버렸으면 내가 손을 쓸? 필요도 없었을 거에요...... 더구나 무예계의 재난도? 없어지고......
그러면 얼마나 좋아요.]
하는 말에 도옥은 힐끗 조소접을 쏘아보고는 눈을 감고 운기에 열중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잠시 후,
눈을 감고 운기하던 도옥이 드디어 눈을 떴다. 그리고는 주약란을 바라보며 씨익 웃는 것이었다.
[상처가 많이 나아진 것같습니다.]
[그럴 거에요. 차차 완쾌될 거에요. 이제는 아까 하던 말을 계속하세요.]
그러자 도옥은 의외라는 듯이 눈을 크게 떴다가 머리 위에 떠 있는 해를 바라보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다른
말을 하는 것이었다.
[한가지 물을 것이 있는데 물어도 되겠습니까?]
주약란은 눈살을 찌푸렸다.
[무슨 말인데요?]
[주소저가 이 도옥을 암암리에 상처를 입히게 한 수법은 귀원비급의 무공이 아닌데 그건 어떤 무공입니까?]
[놀랠 건 없어요. 귀원비급의 무공을 터득하고 있는 그대같은 사람을? 다루려면 귀원비급이 아닌 다른 무공
이 필요하지 않겠어요? 그래서 내가 새로 창조한 수법이에요. 왜 이해가 가지 않아요?]
[핫...... 하...... 주소저가 그토록 이 도옥을 알아준다면 그거 영광이군요.]
[알아주는게 아니에요. 어서 하던 말이나 계속해요.]
그제야 도옥은 할 수 없다는 듯이 입맛을 쩝쩝 다시며 계속 말하기 시작했다.
[...... 두 가지의 방법은 아주 다른 것인데 천기진인과 삼음신니의 독창적인 수법으로 귀원비급 책장 속에 기
록되어 있습니다.]
[거짓말을 하는 것은 아니겠죠? 만일 거짓으로 말한다면 용서없어요.]
[주소저, 그토록 염려를 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이 도옥은 한번 약속한? 이상 거짓말을 하지는 않습니다. 그
러나 한가지 말해둘 것은 꼭 한번 밖에 외우지 않겠하는 겁니다. 한 번 외울 때에? 기억하든지 못하든지 그
건 상관하지 않겠다는 겁니다.]
[좋아요. 계속해요.]
[그럼 먼저 천기진인이 귀원비급에 기록해 놓은 진기역연법부터 외우겠습니다.]
하고는 곧이어 한편의 글귀를 외워나가는 것이었다.
이때 양몽환은 정신을 가다듬고 귀를 기울였다. 들어두면 이후에 하나의 무공을 새로 터득할? 수 있기 때문
이었다.
항상 음흉하고 교활하기만 한 도옥이? 정말 거짓으로 외우는지 아니면 사실대로? 외우는지 알 길은 없지만
청산유수로 거침없이 외워 나가고 있었다.
한편 주약란과 조소접도 한 자 한 귀절이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긴장해서 듣고 있었다. 단숨에 진기역연법을
외우고 난 도옥은 어떠냐는 듯이 얼굴을 번쩍 들었다.
[자, 지금 역연법을 외웠는데 세 분 중에서 어느 누가 이 도옥이 거짓으로 외웠다고 생각하시오?]
하고 물었지만 주약란은 도옥이 외운 글귀를 음미해보는지 눈을 가늘게? 뜨고 한 곳만 응시하고 있었고 양
몽환과 조소접 역시 각기 무슨 생각에 잠긴 듯 입을 열지 않았다.
그래서 절로 침묵이 흐르기 얼마 동안............
드디어 주약란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 글귀대로 생각한다면 진기를 역연하는 것이 별로 기묘하지 않군요.]
하는 말에 도옥은 뜻밖이라는 듯이 크게 소리내어 웃는 것이었다.
[핫...... 하...... 뜻밖인데요. 그렇다면 도립(倒立)을 하고 피가 거꾸로 흐르게 한 뒤에 생각해보죠.]
[그럼 한 번 해보세요.]
[그건 곤란한 일인데...... 이 도옥은 비결을 외우겠다고는 약속하지 않았는데요.]
[알겠어요. 강요하는건 아니에요. 한 번 해보라고 말했을 뿐이에요.]
그러자 난색을 띄우고 있던 도옥은 다시 생각하는 듯하다가 쾌히 응낙했다.
[좋습니다. 어렵지 않은 일이오.]
하고는 곧 도립(倒立)해 서는 것이었다. 도옥이 취하는 자세는 앞의? 바위에 등을 붙이고 머리를 땅에 대고
거꾸로 서서 두 팔을 서로 맞잡아 팔장을 끼는 것이었다.
도옥이 도립해 서서 잠시 시간이 흐른 다음 주약란은 세밀히 관찰해 보는 듯하다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때 주약란보다 먼저 양몽환이 도립해 서 있는 도옥을 불렀다.
[도형! 진기를 역행시킬 수 있으면 그것도 한 번 해보시오.]
하는 말에 도옥은 가볍게 코웃음을 치는 것이었다.
[이 도옥이 진기를 역행시킨다 해도 양형은 모를 거요.]
빈정거리듯하는 말에 조소접이 발칵 성을 내는 것이었다.
[도옥! 그대가 아직 나의 수중에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다면 건방진 소리는 하지 않는 것이 좋아요. 공연
히 나를 성내게 한다면 사정을 두지 않겠어요.]
[흥! 너무 큰 소린 치지 마시오. 이후 기회가 있으면 조소저와 한번 무공을 겨루어 보겠소.]
[언제든지. 얼마든지 상대해 드리지...... 흥!]
조소접도 지지않고 쏘아붙였다.
그러자 도옥은 별안간 음성을 높이는 것이었다.
그 음성은 조소접에게 아닌 양몽환에게였다.
[양형! 잘 보시오. 지금 이 도옥의 진기가 거꾸로 돌기 시작하오.]
하는 소리에 양몽환은 눈을 크게 떴다.
과연 진기가 거꾸로 흐르는지 도옥의 얼굴은 하얗게? 되었다가 붉어지고 붉어졌다가는
다시 하얗게 창백해지는 것이었다.
분명히 진기역행의 반응이 나타나는 것이었다.
그리고도 한참 그렇게 도립해 서 있던 도옥은 천천히 두 다리를 내리며 몸을 바로 세웠다.
[주소저, 상처가 아직 완치되지 않은 것같은데요.]
하고 이제는 상처를 치료해 달라는 것이었다.
[알고 있어요. 한 번 더 손을 써야 돼요.]
[그럼 속히 치료해 주시오.]
[잠깐 기다려요. 삼음신니의 비결까지 외우고 난 다음에 치료해요.]
도옥은 순간 밸이 뒤틀렸지만 상처를 치료받기 위해서는 별도리가 없었다.
[그럼 그렇게 합시다. 삼음신니가 기록한 방법은 천기진인과는 달리 진기를
기경(奇經)에 보내어 다시 순서를 밟아 역행시킨다고 되어 있어요.]
하고 말하는 도옥의 말을 양몽환과 조소접은 무슨 말인지 이해가 가지않는 표정이었다.
그러나 주약란은 깨달은 바가 있는지 머리를 끄덕이는 것이었다.
[그 방법은 내가 생각한 바와 같군요.]
[주소저는 시험해 보았습니까?]
그러나 주약란은 그 물음에 대답도 않고 이야기를 재촉하는 것이었다.
[더 계속하세요.]
[그럼 삼음신니의 비결을 외우겠습니다. 그러면 주소저의 방법과 같은지 연구해 보시오.]
하고는 곧이어 한자한자를 똑똑히 외워나가는 것이었다.
귀를 기울이고 있는 주약란은 가끔 눈살을 찌푸리기도 하고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다가
눈을 지그시 감으며 도옥이 외우는 글귀를 음미해 보고 있었으나
그녀의 표정으로 보아? 비슷한 곳도 있지만 전연 그녀의 생각과 다른 곳도 있는 것같았다.
이윽고 외우기를 마친 도옥은 눈을 감고 있는 주약란을 바라보며 상처를 치료해 주기를 재촉했다.
[이젠 주소저의 분부대로 다 외웠소.
더 요구하지 말고 상처를 치료해 주시오. 아니면 그냥 가겠소.]
그러나 주약란은 아직 역연법의 연속이었다.
[천기진인과 삼음신니가 연구하여 기록한 방법은 어떤 것이죠?]
[그건 세 번째의 방법이오. 그러나 애초에 두 가지만 말하기로 약속하지 않았소?]
하고 눈을 부릅뜨는 것이었다.
그러자 주약란은 무슨 결심을 했는지 입술을 깨물다가 목소리를 낮추었다.
[뒤로 돌아서세요.]
하는 말에 도옥은 즉시 뒤로 돌아섰다.
이때 주약란은 오른쪽 손을 들어 재빨리 등에 있는 몇 곳의 혈도를 짚었다.
그러자 옆에 서 있던 조소접이 전음지술로 주약란을 부르는 것이었다.
[언니, 정말 그를 살려보낼 작정이에요?]
하는 말에 주약란은 잠시 주저하는 빛으로 조소접을 돌아보다가 역시 전음지술로 대답했다.
[나도 지금 작정을 못하고 있어. 어떻게 하면 좋을지 양상공께 물어봐요.]
그러자 조소접은 즉시 양몽환에게로 몸을 돌렸다.
[양상공! 양상공을 괴롭히던 도옥이 지금? 우리 앞에 있어요.
지나간 고통을? 복수하기는 더 없는 기회인데 어떻게 하시겠어요?
오늘 이 기회를 놓치면 다시 후회하게 돼요.]
하는 것이었다.
한편, 손가락에 진기를 운집해 도옥의 요혈을 짚고 있던 주약란은 역시 고뇌에 빠져 있었다.?
죽일 것인가, 아니면 살려 돌려보낼 것인가 하는 문제를 결정짓지 못하는 것이었다.
만일 주약란의 손가락에 조금만 더 진기를 돋우어 찌른다면 도옥은
그대로 목숨을 잃게 되는 순간이었다.
이때 역시 도옥은 등허리에 식은 땀이 나도록 몸을 긴장하고 있었다.
지금 생사 기로에 있는 자기의 목숨을 처리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 아닌 양몽환에게 달려있다는 것을 생각하는 도옥은 몸이 오싹했다.
이제 양몽환이 어떤 말을 하는가에 따라 도옥은 죽을 수도 있고 살 수도 있는 지경에 이르렀다.
도옥은 떨리는 가슴을 진정하며 양몽환의 표정을 주시하고 있다가 참다못해 양몽환을 부르고 말았다.
무슨 결말이던 끝이 나기를 기다리는 시간이 참을 수 없이 초조하고 떨렸기 때문이었다.
[양형, 이 도옥을 죽이고 싶다면 어서 죽이라고 말하시오.
이제 주소저의 손가락에 진기만 돋운다면 이 도옥은 심맥(心脈)이 끊어져 죽을 것이오.]
그러자 그때까지 침통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고 있던 양몽환은 이윽고 고개를 들었다.
[만일 지금 도형을 죽인다면 이 양모인도 도형과 같은 사람이 되지 않겠소?]
하고 죽이지 않겠다는 뜻을 표하는 것이었다.
과연 대협다운 양몽환의 말이었다.
정정당당히 상대해서 죽이지 않는다면 명예로울 것도 없고
또 도옥과 똑같은 사람이 된다는 것이 양몽환은 싫었다.
순간, 도옥은 안도의 숨을 몰아 쉬었다.
<흥! 그래도 영웅의 본색을 지키겠다는 거겠지.
더구나? 남의 귀에 들어가면 얼굴도 들고다니지 못할 것이고......
그러면 저 놈은 이 도옥을 죽이지 않을 모양이군......>
하면서도 도옥은 칭찬의 말을 아끼지 않았다.
[과연 양형은 영웅의 풍모가 있소. 이 도옥이 따를 수 없소이다.]
하고 아양을 떠는 듯하자 조소접이 눈썹을 치켜 올렸다.
[도옥! 목숨을 건지기 위해서는 마음에도 없는 말도 잘 하는군! 간사하게!]
도옥은 그만 얼굴이 붉어지고 말았다.
<저 계집은 언제나 말썽이란 말야. 다음에 이 도옥의 손에 걸리면 용서없다!>
하고는 헛기침을 했다.
[이 도옥은 진정으로 마음 속에서부터 우러나온 말만 하는 사람이오.
사실 양형의 위인됨에는 이 도옥도 따르지 못합니다.]
그러자 주약란이 그만 코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흥! 자기의 위인됨이 간교하고 수단이 악랄하여 인정도 의리도 없는 사람이라고
왜 바로 말을 못하죠?
만일 이 세상에 용서받지 못할 사람이 있다면 바로 당신이에요.]
하는 말을 이어 양몽환이 덧붙였다.
[주소저의 말이 옳습니다.
그러나 일단 우리가 살려준다고 약속한 이상 신의를 지키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러자 도옥이 빙긋 입을 열었다.
[옳은 말이오. 양형은 과연 영웅답소. 신의를 지킬줄 아는 사람은 바로 양형이오.]
그러나 주약란은 더 듣기도 싫다는 듯이 도옥의 뒷등을 후려 갈기며 차갑게 소리쳤다.
[한번만 용서하는 거에요. 빨리 돌아가요!]
그제야 죽음에서 살아난 도옥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앞으로 달려나가는 것이었다.
그 순간, 조소접이 날카롭게 외쳤다.그렇지 않아도 누가 따라오지 않을까 조마조마하던
도옥은 조소접의 날카로운 외침에 가슴이 덜컹했다.
그러나 돌아서지 않을 수 없었다.
천천히 돌아서는 도옥에게 달려나간 조소접은 섬섬옥수의 손을 들어 뺨을 불이 나도록 올려 붙였다.
<찰싹, 찰싹.>
왼쪽 뺨을 후려 갈기고 연이어 오른쪽 뺨을 올려 붙인 조소접은 입술을 깨물었다.
[오랫동안 나를 괴롭힌 보답이 뺨 두 대라면 너무 후해요.]
하고 노려보는 것이었다.
엉겁결에 호되게 두 대를 얻어맞은 도옥의 뺨은 조소접의 손자국이 하얗게 나타났다.
그러나 도옥은 조금도 노기를 띄우지 않고 씨익 웃는 것이었다.
[이제는 속이 후련하신가요?]
하고는 홱 돌아서서서 가던 길을 재촉하는 것이었다.
이때 주약란은 가만히 탄식하며 혼자 말했다.
[저 흉악하고 음침한 도옥의 마음을 우리들이 알 수는 없지 ...]
한편, 절벽까지 걸어나온 도옥은 절벽 밑을 내려다 보다 말고 깜짝 놀랐다.
그 절벽 밑에는 이창란과 천홍대사,? 그리고 일양자를 비롯하여 여러 명의 군협(群俠)들이
모여 서서 무슨 이야기에 열중이었다.
<...... 음...... 이대로 내려 갔다가는 위험하겠는데...... 다른 길로 가야지 ......>
하고 생각한 도옥은 몸을 되돌려 가는 길을 거슬러 부지런히 걸음을 옮겼다.
이때 도옥을 지켜보고 있던 조소접이 크게 냉소를 터뜨렸다.
[흥! 왜 되돌아 섰지?]
도옥은 멋적게 씨익 웃고는 어색하게 변명했다.
[이 도옥이 중상을 마악 치료받은? 몸으로서 구대문파들과 상대할 수는 없습니다.?
그들에게 죽느니 보다는 차라리 세 분의 손에 죽겠소.]
하고 어색하게 또 웃는 도옥을 노려보던 주약란은 이마를 찌푸렸다.
[누가 지키고 있단 말인가요?]
[구대문파의 고수들이 지키고 있소.
만일 이 도옥이 중상을 치료한 직후가 아니면 얼마든지 상대할 수 있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습니다.]
그러자 주약란은 고개를 숙이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조소접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를 보내주도록 해요.]
그러나 조소접은 심사가 뒤틀리는 모양이었다.
[언니, 이 자와 약속을 지켜 죽이지 않았으면 그만이지 다른 사람들까지
우리가? 말려야 할 필요는 없지 않아요?]
그러자 도옥은 씨익 웃으며 주약란보다 먼저 입을 여는 것이었다.
[이 도옥을 죽이면 다시 이 세상에 적수가 없을 거요. 그렇게되면 주소저가 심심하지 않겠소?]
하고 빈정거리는 것이었다. 그 말에 눈썹이 치켜 올라간 조소접이 가만히 있을리 없었다.
[입은 살아서 떠드는군. 저런 자를 살려둔다는 것은 이리를 키우는 것과 같아!]
그러나 주약란은 어떤 결심이 섰는지 조소접에게 부탁했던 말을 양몽환에게 새로 부탁하는 것이었다.
[그래도 우리들은 신의를 지켜야 해요. 미안하지만 양상공께서 수고를 해주세요.]
하는 말에 양몽환은 이의없이 도옥에게로 걸어나갔다.
[도형, 이 양모인에게 한 번 더 암산(暗算)할 수 있도록 앞장을 서겠소.]
하고는 도옥 앞에 서는 것이었다. 그러자 도옥은 고개를 천천히 흔들었다.
[이 도옥은 지금 방주의 신분이오. 신의를 저버리지 않습니다. 아무 염려마시오.]
하고는 양몽환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말을 이었다.
[양형이 정말 두렵다면 이 도옥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가면 되지 않겠소?]
양몽환은 대꾸도 하지 않고 걸음을 옮겨 놓았다.
서로 원수끼리의 사이지만 정다운 친구처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절벽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드디어 절벽 밑에까지 내려온 양몽환과 도옥은 일제히 군협들의 날카로운 시선을 받았다.
그리고는 사방 팔방으로 에워싸는 것이었다.
여러 군협들이 쥐고 있는 가지각색의 날카로운 무기가 햇빛에 번쩍였고 수 많은 시선도
불길을 토하는 듯 해서 담이 약한 사람이면 금새 위세에 눌려 주저앉을 정도였다.
이때 사태를 둘러본 양몽환은 급히 주먹을 쥐고 여러 군협들에게 일읍했다.
[여러 선배님들은 이 양모인의 말을 잠시 들어 주십시오.
본인은 주소저의 분부를 받고 도옥을 안전한 곳까지 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왔습니다.
모쪼록 여러 선배님들은 이 도옥이 가게끔 길을? 터 주시기 바랍니다.]
그러자 성미가 급한 문공태가 청죽장으로 땅을 치며 소리치는 것이었다.
[오늘 저 도옥을 살려보내면 호랑이를 산으로 놓아주는 것과 같습니다.
후일 화근이 되는 자를 놓아줄 수는 없습니다.
미안하지만 양대협께서 옆으로 비켜서 주십시오.
이 늙은이가 귀원비급의 무공을 터득한 도옥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가 좀 알아봐야겠습니다.]
하고 썩 한 걸음 나서며 청죽장을 꼬나쥐는 바람에 양몽환은 황망히 손을 흔들었다.
[문노선배님! 주소저의 부탁이 간곡합니다.
그를 해치지 마십시오. 아무쪼록 문노선배님은 이 양모인을 생각해서 길을 터 주시기 바랍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이창란이 허연 수염을 부르르 떨며 말했다.
[저 도옥과 이 늙은이는 묵은 빚을 청산해야겠어.?
제 일대(一代)의 천용방 방주의 신분으로 문호를 정비하자는 것인 만큼 자네는
아무 염려말고 비켜 서게!]
하고는 용두지팡이를 거꾸로 쥐며 나서는 것이었다.
일이 다급하게 된 양몽환은 실로 난처한 입장에 처해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러나 사태가 사태인 만큼 그대로 있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장인 어른께서도 잠시만 참아 주십시오. 오늘이 아니더라도 기회는 많습니다.]
하며 양몽환은 허리를 굽혔다.
그제야 침묵을 지키던 천홍대사가 크게 염불을 외우며 앞으로 나서는 것이었다.
[여러 시주님들은 이 빈도의 말을 들어 주시오.
양대협께서 저토록 의사가 간곡한 만큼 양대협의 뜻에 따르도록 하는 것이 좋겠소이다.]
하는 말에 문공태는 울컥했던 성미를 참으며 천홍대사의 말에 호응했다.
[좋습니다. 오늘은 일단 놓아주었다가 다시 찾아 묵은 빚을 청산하기로 합시다.]
하고 먼저 길을 터주는 바람에 여러 고수들은 더 우기지 못하고 도옥이 나가도록 길을 열어주었다.
그러자 도옥은 양몽환에게 손을 흔들며 씨익 웃는 것이었다.
[양형, 오늘 이 도옥에게 베푼 정은 잊지 않고 갚겠소.]
이에 양몽환도 한마디 했다.
[도형이 하늘을 보기에 부끄럽지 않는 일을 한다면 이 양모인도 바랄 것이 없소.]
하자 도옥은 가볍게 헛기침을 하고는 더 대답치 않고 그대로 달려나갔다.
여복이 많은 대협 양몽환
도옥을 놓아 보내는 양몽환의 행동에 이창란은 마음이 언짢았다.
[이 좋은 기회를 놓치면 이제 저 놈을 어찌 하겠다고 말린단 말이냐?]
그러자 양몽환은 길게 말하지 않았다.
그것은 주약란과 조건부로 내상을 치료해 준데서부터 말을 해야 하겠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간단히 대답했다.
[주소저의 의사일 뿐 저도 잘 모르는 일입니다.]
하고 대답하자 문공태가 큰 소리로 양몽환을 불렀다.
[양대협, 주소저의 상처는 어떻습니까?]
[예, 덕분에 많이 나았습니다.]
하고 대답했다.
이에 천홍대사는 합장하며 염불을 외웠다.
[아미타불...... 부처님의 자비이옵니다.]
그러자 일양자는 어두운 표정으로 양몽환에게 물었다.
[주소저는 천기석부로 돌아가야 상처를 치료할 수 있겠는가?]
[아직 모르겠습니다. 제자가 알아본 다음 사부님께 말씀드리겠습니다.]
[자네는 이제 곤륜파의 제자가 아냐. 이 노부를 사부님이라고 부르지 말게.]
[사부님은 저에게 무술을 가르쳐 주신 스승이십니다.
어찌 그 은혜를? 잊겠습니까? 사부님께서는 옛날의 노여움을 푸시고
저를 곤륜파의 문하로 되돌아갈 수 있도록 장문 사숙님께 말씀드려 주십시오.]
[허...... 허...... 지금 자네는 무예계에서 명망이 높은 대협일세.
그런데? 이제 곤륜파로 되돌아가서 무슨 일을 하겠단 말인가?]
하는 바로 그때 양몽환을 소리높여 부르는 사람이 있었다.
조소접이었다.
[양상공, 급히 올라 오시래요.]
절벽 위에서 손을 흔들며 부르고 있는 조소접을 보고는 무슨 일이? 있는가 싶어 급히 절벽 위로 올라가 조
소접과 마주 섰다.
[주소저의 상처가 악화되었습니까?]
그러자 조소접은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언니가 급히 오라는 말만 했어요. 저도 왜 찾는지는 모르겠어요.]
하는 조소접을 뒤에 두고 급히 주약란에게로 다가갔다.
이때 주약란은 눈을 감고 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표정이 극히 평온해 보여 별 이상이? 없는 것같아 양
몽환은 우선 마음이 놓였다.
[주소저, 저를 불렀습니까?]
하자 그제야 주약란은 감았던 눈을 뜨며 양몽환을 돌아보는 것이었다.
[예, 좀 의논하고 싶은 일이 있어서 불렀습니다.]
[무슨 일인가요?]
[다른 것이 아니고 절벽 밑에서 기다리고 있는 군협들을 돌아가도록? 이르세요. 저는 며칠만 조식하면 완쾌
되지만 도옥은 적어도 삼개월 간을 정양해야만 움직일 수 있어요. 그런 만큼 여러 군협들에게 잘 말해서 돌
아가도록 해 주세요.]
그러나 양몽환은 조금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글쎄요...... 그분들이 그렇게 잘 돌아갈지 모르겠군요.]
[좋아요. 여하간 말이나 분명히 하고 돌아오세요. 그 분들이 가든 안가든 상관없어요.]
할 수 없이 양몽환은 절벽 밑으로 내려와 여러 고수들 앞에서 주먹을 쥐었다.
[주소저는 아직 상처가 완쾌되지 않아 여러분들을 접할 수 없다고 합니다. 그리고 도옥도 내장에 중상을 입
어 삼 개월의 시일이 걸려야만 몸을 움직일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런 만큼 여러분들이 이곳까지 오셔주신 것
에 우선 감사를 드리며 주소저의 부탁하는 말을 전해드리겠습니다.]
하고 잠시 말을 끊자 때를 놓치지 않고 천홍대사가 한 걸음 나섰다.
[그럼 주소저는 우리들을 돌아가라고 한단 말씀이오?]
[예, 그렇습니다. 여러분께서도 각기 바쁘신 몸임을 생각하고 이곳에 오래 머물지 못하시리라 걱정하고 있습
니다.]
하는데 절벽 위에서 갑자기 낭랑한 주약란의 음성이 들려왔다.
[양상공! 여러분들이 각기 돌아가거든 제자들을 잘 보살피고? 대기하고 있으라고 말씀하세요. 삼 개월 후에
도옥이 나타나면 구대문파에 큰 풍파가 일어날 것이라고 말씀해 주세요.]
하는 말을 모두 들은 일동 중에서 천홍대사가 먼저 하직을 고했다.
[그럼 이 빈도가 먼저 작별을 고하겠소이다.]
하고 물러가려는 천홍대사를 위로하듯 양몽환은 음성을 낮추었다.
[아무쪼록 보중하십시오. 도옥은 반드시 삼개월 후애? 나타날 것입니다. 그동안 우리들은 많은 무공을? 닦아
두도록 하십시다.]
사실 여러 군협들은 주약란의 인격과 고고한 기풍에 존경심마저 품고 있었다. 그러한 주약란의 말을 의심하
지 않고 믿는 그들은 여기 저기서 웅성거리며 돌아갈 것에 의논이 분분했다. 그리고 얼마후, 역시 천홍대사
가 입을 열었다.
[그럼 양대협이 우리들의 목숨을 구해준 주소저에게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해 주시오.]
[고맙습니다. 꼭 주소저에게 전해드리겠습니다.]
하는 말을 끝으로 여러 군협들은 제각기 주먹을 쥐고 하직을 고한다음 발걸음을 돌려 떠나가기 시작했다.
그러자 무슨 심산인지 모두 떠나가는 무리 가운데서 이창란만 검북사의를 데리고 좌선(座禪)하듯 땅에 앉아
두 눈을 꼭 감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한 이창란을 얼마 동안 바라보고 있던 양몽환은 아무말? 하지 않고 그
대로 걸음을 돌려 절벽 위로 올라갔다.
절벽 위에는 주약란이 기다리고 있다가 양몽환을 맞아 주었다.
[수고 했어요. 모두들 돌아갔겠죠?]
[예, 그런데 저의 장인 어른만 검북사의를 데리고 남아 있습니다.]
[그 분은 아무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는 모양이군요.]
하고 말하던 주약란은 전에 볼 수 없이 방긋 웃는 것이었다.
그 뜻은 아무 뜻도 없는 것같지만 한편 생각하면 양몽환에게 어떤 말대신 보내는 연정(戀情)의 표시같아 양
몽환은 얼굴이 붉어지는 것이었다.
그때 조소접이 역시 방긋 웃으며 주약란을 부르는 것이었다.
[언니, 이노영웅님은 언니와 제가 양상공을 뺏을까봐 마음이 놓이지 않는 모양이에요.]
하는 것이었다. 그제야 양몽환은 주약란이 방긋 웃던 의미를 알 수 있을 것같았다. 그러나 언제까지 얼굴을
붉히고 있을 수는 없었다.
[천만에, 조소저의 농담이겠죠. 아무려면 그렇게 생각하시겠습니까?]
어색하게 웃자 주약란은 시치밀 떼고 조소접과 동조하는 것이었다.
[농담의 말이기도 하지만 진정으로 하는 말도 돼요. 호 ......호 ......]
하는데 이번에는 조소저가 그 말을 받았다.
[사실...... 그래요. 그러나 언니는 혹 모르겠지만 이노영웅님이 남아 있는 것은 제가 양상공을 어떻게 할까봐
남은 것이 분명해요. 제가 가서 안심하라고 말씀드려야겠어요. 그렇죠 언니?]
그러자 주약란은 방긋 웃으며 조소접에게 눈을 곱게 흘기는 것이었다.
[이젠 그만해요. 양상공의 얼굴이 더 붉어지겠어.]
하고는 지금까지의 태도와는 달리 엄숙한 표정을 짓는 것이었다.
[자, 이젠 그만하고 가까이들 오세요. 할 이야기가 있어요.]
하고 양몽환과 조소접을 가까이 오게 한 다음 주약란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지금 저는 두 분과 한 가지 무공에 대해서 의논하고자 해요. 만일? 우리들이 무공에 태만한다면 일년 후에
는 도옥과 겨룰 능력이 없을 거에요.]
지금까지 웃고 즐거워하던 주약란은 안광이 번쩍이는 눈으로? 양몽환과 조소접을 번갈아 보며 엄숙히 말을
이었다.
[오년 전에 저는 한 사람이 극치의 무공에 성취를? 거둘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절실히 느꼈어
요. 배우는 것도 끝이 없지만 그와 반면에 인생은 잠깐? 사이에 지나가버려요. 그런 짧은 세월에 많은 무공
을 모두 배울 수는 없어요. 그런데 우리는 남들 보다 비교적 복이 있어서 처음 무공을? 배울 때부터 심오한
무공을 배우게 되었고 또 많은 진전도 성취할? 수 있었어요. 그러나 우리의 성취가 너무나 빨랐고? 또 크고
많기 때문에 그만큼 완벽한 무공을 터득하지 못했다고도 할 수 있어요.]
하고 잠깐 말을 멈추고 숨을 돌리는 사이에 양몽환이 말했다.
[조소저는 대반야현공의 임,독(任,督) 두 맥을 유통시키고 내공력이 끝없이? 치솟는 경지에 도달했는데 이는
인체의 한계를 극복한 것이 아닐까요?]
하는 말에 주약란은 가만히 고개를 흔들었다.
[처음에는 저도 임.독 두 맥만 유통시키면 인체의 한계를 극복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기도 했어요. 그러나
뒤에 실험에 보고 느꼈지만 그것이 하나의 단계에 지나지 않고 이 단계를 지나면 인체가 극한 상태가 된다
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그럼 주소저는 인체의 극한 상태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했습니까?]
하고 묻는 양몽환의 말에 주약란은 다시 천천히 말을 계속했다.
[저는 그 한계점을 극복하기 위해서 몇 년 동안 천기석부에서 연구했어요. 그 결과 진기역연의 방법을 생각
하게 되었어요. 그러나 도옥을 만나기 이전까지도 저는 그것이 확정적인 것인지를 모르고 지나온 것에 불과
해요. 조금전 도옥의 말을 듣고 저의 방법도 가능하다는 확증을? 얻을 수 있게 된 것이에요. 그런데 지금은
도옥이 우리들보다 한 걸음 앞서고 있어요. 만일 그가 진기역연에 성공하여 인체의 한계를 극복한다면 이후
우리가 그를 만나더라도 그와 상대가 못될 만큼 무공의 차이가 생길 거에요. 모르긴 해도 손을? 한 번 휘두
르는 것만으로도 그는 우리들을 일시에 죽일 거에요.]
하고 말을 마치자 조소접은 눈을 크게 뜨며 놀라워했다.
[정말 그럴 수가 있을까요?]
[그렇게 될 거야, 아마...]
하고 주약란은 괴로운 한숨을 쉬었다. 그러자 조소접도 따라 한숨을 쉬고는 말을 이었다.
[도옥이 다시 강호에 나타난 이래 그와 정식으로 싸워본 일은 없지만 제 생각으로는 도옥에게 질 것같지 않
아요. 만일 지금 그와 싸운다 해도? 저는 승산이 있어요. 그러니 그가? 진기역연의 수법을 완전히 터득하기
전에 제가 먼저 결판을 내는 것이 어떨까요?]
하며 도옥과 싸우겠다고 나서는 것이었다.
그러나 주약란은 이번에도 역시 고개를 천천히 흔들었다.
[지금으로서는 안 돼요. 그보다 지금 나에게는 한 가지 의문이 남아 있어요. 천기진인과 삼음신니가 연구 터
득한 것이지만 우리들이 좀 더 연구해 보도록 해요. 우선 조식을 취하고 생각하기로 해요.]
하고는 곧 조식을 취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양몽환과 조소접도 눈을 감고 조식을 취하기 시작했다.
얼마 동안 조식을 취하고 양몽환이 눈을 떴을 때는 주약란과 조소접은 아직 조식에 취해 있었다.
먼저 눈을 뜨고 두리번거리던 양몽환은 주약란과 조소접이? 충분한 조식을 취하도록 하려고 조용히 앉았던
자리에서 일어나 산 위로 걸음을 옮겼다. 때는 이미 밤도 사경(四更), 머리 위에 반짝이는 별만이 새벽의 찬
공기에 얼어붙은 듯했다.
천천히 산 위로 걸음을 옮긴 양몽환은? 해가 솟아오르는 아침까지 혼자 땀을? 흘리며 권법(拳法)과 장법(掌
法)을 연마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리고 잠시 땀을 식히며 솟아오르는 태양을 바라보고 있는 양몽환의 등 뒤로 발걸음을 죽이며 가만가만히
다가오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이윽고 양몽환의 등 뒤까지 다가온 사람은 갑자기 오른 손을 들어 양몽환의 등을 후려 갈겨 혈도를 짚어버
리고 마는 것이었다.
주약란이었다.
지금 주약란의 무공으로 말 한다면 양몽환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그런데다 정신없이 떠오르는 태양을 보고 있던 양몽환은 소리하나 내지 못하고 주약란의 일격에 요혈을 짚
히고 말았던 것이다.
그러나 양몽환도 이름 그대로의 대협, 순간적으로 가해지는 일격을 피하지는 못했지만? 요혈을 짚혔다고 느
끼는 순간, 몸을 비호같이 돌리면서 일장을 후려 갈겼다.
그러다 뜻밖의 주약란을 발견하고는 뻗었던 손을 급히 거두려고 했다.
그러나 요혈이 짚힌 양몽환은 뜻대로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한 번 내려갈긴 일장을 회수하기에는 너무나 시간이 늦었고 몸도 말을 듣지 않았다.
그러나 한 번 갈긴 일장이 주약란에게로 날아드는 순간에도 주약란을? 갈길 수 없다고 직감한 양몽환은 무
리하게 몸을 옆으로 돌리다가 그만 앞으로 거꾸러지듯 떨어지고 말았다.
그러자 더욱 다급해진 주약란은 앞으로 엎어지는 양몽환을 두 손으로 받아 안고 급히 말했다.
[양상공, 지금 당신의 주요 혈맥 하나를 짚었어요. 당신이 급히 운기한다면? 진기가 다른 곳으로 돌게 돼요.
속히 운기해 보세요.]
잠시 정신이 혼미해졌던 양몽환은 주약란의 말대로 운기하기에 애썼다.
부자유스러운 몸이라 운기하는 것에도 힘이 들었다. 힘껏 운기하여 진기를 같은 경맥으로 흐르게 하려고 했
다. 그러나 주요 요혈이 짚힌 관계로 진기의 운행은 다른 하나의 새로운 맥혈로 흐르는 결과가? 되어 그 고
통은 말이 아니었다.
그러자 주약란은 쩔쩔매며 괴로워 하는 양몽환을 응시하며 오른쪽 손을 들어 양몽환의 혈도를 짚어가며 운
기하는 것을 도와주는 것이었다.
그제야 양몽환은 주약란의 도움을 받아가며 진기를? 운행시킬 수 있었다. 사실 지금 양몽환의? 혈도를 짚고
운기시키는 것은 양몽환의 내공력을 더욱 강하게 해주려는 의도와 아울러 주약란이 생각하고 있던 한 가지
를 시험해 보기위한 것이었다. 그래서 지금 양몽환의 진기가 흘러가는 방향이 주약란 자신이 생각했던 바와
일치한다는 것을 깨닫고는 기쁨이 충만해서 어쩔 줄을 몰랐다.
[양상공, 이 경맥은 진기가 가장 통하기 힘든 곳이에요. 이 경맥만 통과하면 우리는 한 가지 무공을 성취할
수 있어요.]
그러나 양몽환은 땀을 비오듯 흘리고 있었다.? 그것은 새로운 경맥으로 진기를 흘려 보내자? 마치 날카로운
비수가 경맥이며 뼈를 쑤시는 것같고 고통이 말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주약란의? 의중을 직감한
양몽환으로서는 아프다고 소리를 지를 수도 없었다. 그대로 참고 있을 수밖에 도리가 없었다.
한편, 주약란은 양몽환이 운기하도록 손을 놀려 도와주면서도 세밀히 관찰하며 연구를 게을리 하지 않고 있
었다. 그러나 양몽환의 고통은 시시각각으로 그 도가 더해져 이를 악물고 참는 데에 전력을 다했다.
그리고 잠시 후, 드디어 주약란의 입에서는 환성이 터지고 말았다.
[양상공, 됐어요. 조금만 더 참아요. 진기가 반이나 나아졌어요. 이제 하나의 경맥만 통과하면 진기역연의 성
취는 절반을 이룩할 수 있는 거에요. 그러면 도옥보다 먼저 성취할 수 있어요.]
그러나 양몽환의 고통은 절정에 달해 입이 있어도 대답할 기력이 없었다. 다만 그렇게? 참으려고 애써도 신
음소리가 흘러나와 결국 대답을 대신할 지경이었다.
그러나 주약란은 새로운 경지를 연구 터득해서 그 결과가 성공으로 돌아오는 것에 정신을 빼앗겨 양몽환의
고통을 잊고 있었다. 이때 양몽환은 이를 악물며 고통을 참았다.
그러나 이를 악물며 고통을 참고? 신음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애를 썼으나? 간간이 신음소리가 흘러 나왔고
땀은 땀대로 온 몸을 흥건히 적시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얼마가 지난 다음에야 주약란은 양몽환의 옷이 땀에? 흠뻑 젖은 것을 발견하고는 부드럽게 속
삭였다.
[고통이 심하죠. 조금만 더 참으세요.]
하는 말에 양몽환은 고개를 끄덕이며 숨을 몰아 쉬었다.
[참기 어렵군요......]
겨우 입을 열어 기운없이 대답하자 주약란은 짚었던 양몽환의 혈도를 풀어주며 걱정스럽게 물었다.
[참기 어려우면 왜 빨리 말하지 않았어요?]
[참을 수 있는 데까지 참아서 진기역연의 방법을 알아내게 하려고 했습니다.]
양몽환은 다시 숨을 몰아 쉬었다. 살 것같았다.
그러나 양몽환을 바라보던 주약란은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많이 아팠어요?]
[진기가 역행하는 경맥이 비수로 찌르듯 아팠습니다.]
[그럼 대단한 고통이군요.]
[겨우 참았습니다.....]
하고 양몽환은 이마에 땀을 닦았다. 그러나 주약란은 실망의 빛을 감추지 못했다.
[그렇게 고통스러웠다면 틀렸어요. 무공을 닦는데? 있어서 인체에 고통이 있다면 그건? 반드시 잘못된 것일
거에요. 아마 제가 경맥을 잘못 짚었는지도 몰라요.]
하고 미안한 시선으로 바라보던 주약란은 미안한 감을 띄우며 길고? 가느다란 두 손으로 양몽환의 몸을 쓰
다듬는 것이었다.
그것은 주약란이 표현할 수 있는 가장 큰 정성으로 양몽환의? 겪은 고통에 보답이라도 하는 듯이 부드러운
손길이었다.
성격이 남달리 청순하고 강직한 주약란은 비록 속으로는 뜨거운 정열을 태우고 있어도 밖으로 나타내지 않
고 억제할 뿐이었다. 지금도 역시 주약란은 마음 속에 깊이 사모하고 있는 연정을 표현하지 못하고 다만 두
손에 힘을 주어 양몽환을 어루만지는 것으로 타오르는 연정을 달래는 것이었다.
아침 햇살을 맘껏 받고 앉은 주약란의 두 뺨은 발그스름하게? 홍조를 띄웠고 바람에 흩어진 머리카락은 그
녀의 긴 눈썹과 맑은 눈동자를 가리우듯 흔들렸다. 그러한 그녀의 호수같은 눈빛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
는 사랑이 담뿍 담겨져 있었다. 그리고 양몽환의 얼굴을 뚫어지게 조용히 응시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와같은 주약란의 애무에 잠시 정신을 빼앗긴 양몽환은 그만 주약란의 반짝이는 두 시선과 마주치는 것을
피하며 고개를 숙였다.
그제야 주약란도 손을 거두며 생긋이 웃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뜻모를 말을 했다.
[양상공, 당신은 이요홍소저와 심소저 두 여인에게서도 만족을 느끼지 못하시는가요?]
하는 것이 아닌가. 완전히 황홀지경에 빠져 있다가 당하는 물음에 그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얼핏 짐작이 가
지 않았던 양몽환은 그녀의 눈빛에서 사랑이라는 것을 발견하고는 가만히 한숨을 쉬었다.
[주소저, 나는 언제나 주소저를 난초와 겨울의 매화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자 주약란은 방긋 웃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만, 저를 구름에 태우지 마세요. 타지 않겠어요.]
하는 말에 그제야 양몽환은 꿈 속에서 깨어나는 듯 정신을 차리며 얼굴을 붉혔다.
[주소저, 한 가지 드릴 말씀이 있는데...... 조금 거북하지만...... 들어 주시겠습니까?]
[무슨 말인데요? 중요한가요?]
하며 주약란은 미소를 거두었다.
[아니 별로......]
[그럼 무슨 말씀이죠?]
[우리 부부간의 사사로운 이야기입니다.]
[당신 부부간의 사사로운 일이라면 저에게 이야기할 필요가 없지않아요?]
[그렇지만 주소저께서도 알고 있어야 할 일이기 때문입니다.]
[저도 알고 있어야 할 일이요?]
[예, 그렇습니다. 아무래도 알게 될 일이기에 일찍 알아 두시라는 말입니다.]
[모르겠군요. 무슨 일인지......당신은 이미 결혼한지가 오년이 지나지 않았어요? 그런데 지금 제가 할 이야기
가 무엇이죠?]
[바로 그 이야기입니다. 이미 결혼한지 오년이 넘습니다만 ......]
[애기가 없다는 말인가요?]
[그렇습니다.]
[그럼 됐어요. 당신은 부인이 있는 남자이고 저는 아직 혼인도 하지 않은 처녀에요. 그런 만큼 서로 더 이상
말하지 않는 것이 좋겠어요. 왜 그런지 쑥스러워요.]
[그래도 주소저, 주소저와 관계없는 말이라면 왜 제가 말하려고 하겠습니까?]
그러자 주약란은 몹시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가 곧 표정을 고치며 천천히 말했다.
[그럼 말해 보세요. 저는 일생 동안 결혼하지 않기로 결심했으니까 상관없어요.]
양몽환은 깊이 한숨을 쉬었다.
[사실 저는 명의로만 부부행세를 해 왔습니다.]
주약란은 눈썹을 모으며 고개를 들어 허공에? 떠 있는 구름을 바라보는 것이었다. 그렇게? 물끄러미 구름을
바라보고 있는 그녀의 뺨이 홍조를 띄웠다.
[그건 무슨 이유죠?]
[그것은 우리들이 혼례를 치른 뒤부터 서로 정실(正室)을 사양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법이 어디 있어요? 당연히 심소저가 정실이 되고 그 다음 이소저가 돼야죠.]
하고는 얼굴을 붉히며 말을 끊었다가 다시 이었다.
[그야 의가 좋다면 정실을 따질 것도 없는 일이지만 ......]
[그런데 결국은 문제가 주소저와 관계가 있다는 말입니다.]
[제가요? 당신 부부간의 일에 저를 끌어 넣지는 말아요.]
하는데 그때 조소접이 나타나 양몽환과 주약란은 입을 다물고 말았다.
두 사람 앞으로 가까이 다가온 조소접은 주약란을 바라보며 생글생글 웃었다.
[언니 생각해 냈어요?]
하고 묻자 주약란은 눈을 크게 뜨며 되물었다.
[무엇을?]
[그 진기역연의 수법 말이에요.]
[응......난, 또......양상공이 아프다고 해서 그만 두었어. 내가 잘못 생각한 모양이야.]
하고 조소접을 바라보자 조소접은 좌선하듯 땅에 앉아 조식을 취하는 것이었다.
이때 주약란은 다시 양몽환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양상공, 우리 다시 한 번만 시험해 봐요.]
하는 제의에 양몽환은 고개를 끄덕이며 곧 눈을 감았다.
그러자 잠시 조식에 들어갔던 조소접은 손뼉을 치며 몸을 벌떡 일으켰다.
[됐어요. 이제 발견했어요.]
그리고 주약란을 불렀다.
[언니, 한 가지 방법을 발견했어요.]
소리치며 기쁜 빛을 감추지 못하고 어쩔줄을 몰라했다.
그러자 주약란은 이마를 찌푸렸다.
[접매, 너무 떠들지 말아요. 이 진기역연의 방법은 보통의 무공이 아냐. 나도 몇 차례나 생각해 내고 기뻐했
지만 곧 실망하고 말았어.]
그러나 조소접은 자기의 생각을 굽히지 않았다.
[언니, 그러나 한 번 시험해 보겠어요. 저쪽 소나무 밑으로 가요.]
하는 바람에 주약란과 양몽환은 먼저 앞서가는 조소접의 뒤를 따라 소나무 그늘에 앉을 도리밖에 없었다.
이때 잠시 눈을 감고 운기를 마친 조소접은 얼굴에 웃음을 감추지 못하며 마음이 들떠 있었다.
[언니, 제가 운기하여 보여드리겠어요.]
그러자 주약란은 못이기는 척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운기해서 해봐요.]
하고 말하는 주약란의 태도는 별로 탐탁하지 않은 눈치였다. 그러한 광경을 보고 있는? 양몽환은 혹시 조소
접이 무안해 할까 마음이 조였다. 그러나 조소접은 별로 내색하지 않고 운기하기 시작했다.
그제야 주약란도 탐탁하지 않게 생각하던 마음이 달라졌는지 태도를 고치며 근심스럽게 조소접을 지켜보는
것이었다.
그러나 조소접은 남이야 어떻든 자기 할 일만 하는 것이었다.
열심히 진기를 운집시키던 조소접은 발딱 몸을 일으키며 앉았던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와 때를 같이하여 주
약란도 이러한 사태를 미리 알고 있었던지 급히 일어서며 조소접의 왼쪽 손목을 움켜쥐었다.
이때 조소접은 자기가 생각했거나 알고 일어난 것이 아니라 무의식? 중에 벌떡 일어난 모양인지 눈을 크게
뜨며 놀라워 했다.
[언니, 이게 어떻게 된 일이죠?]
그제야 주약란은 마음이 놓이는지 안도의 숨을 몰아쉬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나도 삼년 전에 접매처럼 일을 당한 일이 있어. 그때 나는 거의 미칠 정도였어. 그바람에 옥소선자와 팽수
위가 나에게 맞아 중상을 입기도 했지.]
하고 잠시 말을 끊었던 주약란은 나직이 한숨을 쉬며 다시 말을 이었다.
[처음엔 옥소선자와 팽수위도 어쩔줄을 몰라 주저하다가 내가 너무 미친 듯이 사물을 분간치 못하고 날뛰자
둘이 힘을 합해 나를 쓰러뜨렸어. 그 덕분에 나는 삼개월 동안을 꼼짝하지 못하고 쉬어야 했고 더구나 진기
역연의 무공은 생각할 수도 없게 되고 말았어.]
[그게 웬 일일까요?]
[나도 자세히는 모르겠어. 아마 사람의 체내에는 여러 기관이 있어서 희노애락을 조절하는 곳이 있나 봐요.
그곳이 진기의 역연으로 상처를 입게 되면 정신이 순간적으로 이상해져서 웃거나 울게 되고 나중에는 정신
까지 잃게 되는 모양이야. 지금 접매도 이상한 것같아서 주의해 봤어. 그랬는데 나의 추측이 맞고 말았어.]
[진기의 역연이 그토록 어렵고 힘든 줄은 정말 뜻밖이에요.]
[사실 직접 체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믿지 못할 거야. 사실 무공을 닦는 사람이 수 년간 고심하여 단련한다
해도 우리들처럼 무공이 강해지리라고는 할 수 없어. 다행히 우리들은 좋은 스승을 만나? 십여 년의 세월에
지고의 경지에 도달한 거에요. 만일 도옥이 강호에 풍파를 일으키지 않는다면 우리들 역시? 더 무공을 닦지
않아도 되지만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하루도 무공의 수련을 게을리해선 안될 형편이에요. 그래서 체능의 한
계를 초월해야 해요. 그렇지 못한다면 일년 후에는 도옥의 적수가 되지 못해요.]
하고는 잠시 말을 끊고 양몽환과 조소접을 번갈아 보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솔직히 하는 말이지만 어제 도옥이 말한 진기역연의 방법은 일년 전에 내가 생각했던 것이지만 지금 생각
하면 너무도 거리가 먼 생각이었어요.]
[그렇다면 귀원비급에 기재된 진기역연의 방법은 사실과 다르다는 결과가 되지 않을까요?]
하고 묻는 조소접의 말에 양몽환도 동조했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우리들이 도옥을 두려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같은 기록의? 글귀를 가지고 연구한다면
지혜가 뛰어난 주소저가 응당 도옥보다 먼저 터득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주약란은 고개를 가로 저었다.
[문제는 도옥이 말하지 않은 그 세 번째 방법에 달렸어요. 천기진인과 삼음신니? 두 분이 지혜를 모아 기록
한 방법이 혹시 바른 방법일지도 모르겠어요.]
그러자 조소접은 밝은 표정을 지었다.
[언니, 저에게 한 가지 방법이 있어요.]
[어떤 방법인데?]
[그렇게 고심해서까지 진기역연의 방법을 연구할 필요는 없어요. 우리들 세? 명이 힘을 합해 도옥이 진기역
연의 방법을 터득하기 전에 도모해 버리면 되지 않겠어요? 그래서 도옥을 죽여 버리면 무예계의 화근도 없
어지고 더구나 귀원비급을 빼앗아 태워버리면 강호에는 평화가? 찾아올 것이고 양상공의 명성도 그대로 유
지되지 않겠어요?]
그러나 주약란은 탄식을 금치 못했다.
[생각은 좋지만 이미 때는 늦었어.]
[왜요?]
[지금의 도옥은 모든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들이 그를 잡는다는 것도 쉬운 일이 아냐.]
하는데 어떻게 알고 찾아 왔는지 하림이 나는 듯이 달려와 세 명 앞에서 걸음을 멈추는 것이었다.
[모두 여기 있었군요.]
반가워 하며 웃는 하림에게 양몽환이 먼저 입을 열었다.
[팽소저의 상처는 어떠하오?]
[옥소언니의 치료로 거의 완쾌되었어요.]
그러자 주약란은 무슨 영문인지 몰라 눈을 크게 떴다.
[아니, 팽소저가 상처를 입었어요?]
사실 주약란은 정신이 혼미해 있었기 때문에 주약란? 자기를 안은 팽수위와 양몽환이 옥신각신하다가 팽수
위가 가벼운 상처를 입은 것을 알 길이 없었다. 그래서? 하림은 그간의 사정을 자세히 들려 주었다. 그제야
주약란은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었다.
[그럼 지금 어디 있어요?]
[조소저의 십이화녀들과 함께 지금 절벽 밑에서 이백부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어요.]
그러자 주약란은 하림에게 손짓해 가까이 오라는 시늉을 했다.
[이리좀 가까이 와요. 할 이야기가 있어요.]
하고 하림이 가까이 다가오기를 기다려 음성을 부드럽게 했다.
[나는 심소저에게 몇 가지 물어볼 말이 있어......]
[무슨 말씀인데요? 얼마든지 대답해 드리겠어요.]
[그렇게 중요한 물음은 아니고......요 몇년동안 이소저를 만나지 못했는데 그녀의 성격은 어때요?]
[그럼 언니의 물음이 양상공과도 관계있는 물음이군요. 그렇죠, 언니?]
[그래요 바로 맞혔어요.]
[홍이 언니는 사람이 많이 달라졌어요.]
[어떻게 달라졌는데.]
[큰 소리 한 번 내지 않고? 무슨 일이나 잘하고 더구나 시부모님이나 양상공의? 말씀이라면 모두 순종해요.
저하고도 의좋게 지내구요.]
[그렇다면 참으로 다행한 일이군......그런데 지금은 어디에 있기에 소식도 없어요?]
[시부모님을 모시고 은밀한 곳으로 피난을 갔다고만 들었을 뿐 저도 행방을 모르고 있어요.]
하는데 조소접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주약란을 부르는 것이었다.
[언니, 도옥이 편에 누구를 딸려 보냈어요?]
하고 이상한 말을 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주약란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런 일이 없는데 ......]
[그럼 참 이상한 일이군요 ......]
[도옥의 부하 중에 한 흑의인(黑衣人)이 종종 저에게 소식을 전해 주었는데 ......]
하는 말에 하림은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 알겠어요. 조소저가 말하는 흑의인은 바로 저의 사매에요.]
[사매?......남자이던데요?]
[남자로 교묘히 변장했을 뿐이지 실은 여자에요.]
[음성도 남자이던데요?]
[일부러 남자처럼 말하는 것이에요. 바로 동숙정 언니인 걸요.]
[동숙정 언니?......]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조소접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나 주약란은 그런 화제에 구미가 당기지 않는지 헛기침을 가볍게 하며 화제를 바꾸는 것이었다.
[그것보다 한 가지 의논할 것이 있어요. 마침 접매도 여기 있어서 잘됐어요.]
[무슨 의논인데요?]
조소접은 바싹 한걸음 다가서며 물었다. 그러자 주약란은 음성을 가다듬었다.
[바로 접매에 대한 이야기야. 처녀의 몸으로 강호에 떠돌아 다닌다는 것은 좀 아까워요. 빨리 가정을 꾸며야
지......]
그러자 조소접은 갑자기 얼굴을 붉히며 몸둘 바를 몰라 했다.
무슨 영문인지는 모르지만 화제가 자기에개로 집중되고 또? 처녀운운하자 금방 부끄러운 생각이 드는 모양
이었다.
그러자 주약란은 숙연한 태도로 다시 말을 잇는 것이었다.
[우리들 몇 사람은 친 자매나? 다름이 없어서 하는 말이지만 혹시? 내가 말을 잘못한다 하더라도 용서하세
요.]
하고 말하자 조소접은 주약란의 다음? 말이 양몽환에게 시집가라는 것임을? 짐작하고는 당황하며 음성까지
떨렸다.
[언니, 저는 언니를 따라 천기석부로 돌아가 무공을 연구하겠어요. 저는 언니처럼 평생 시집가지 않을래요.]
[접매, 내 말을 들어봐요. 비록 마음이 그렇다 해도 나이가 너무 젊어요. 이렇게 혼자 지낼 수 있겠어?]
[그럼 언니는 늙었어요? 언니는 시집가지 않겠어요?]
[나? 나는 달라. 접매가 행복하다면 그것으로? 족해. 그리고 옆에서 지켜보며 살아갈 수? 있어. 내가 접매를
모욕하는건 아니지만 접매는 시집을 가야만 살 수 있어. 나는 그렇지 않지만......]
[그럼 언니는 저보고 시집을 가라고 하시는데 누구에게 시집을 가란 말이에요?]
[그거야 내가 말하지 않아도 접매가 잘? 알고 있을 거야.
더구나 시집이라고 해서? 속된 말로 일부종사하는 것이라기 보다 남편과 종신토록
반려가 되어 남편을 돕고 성공시키게 하는 것을 말한다는 것을 알아야 해요.]
하고 말을 마치자 하림이 곧 뒤를 이었다.
[조소저, 저와 함께 수월산장(水月山莊)으로 가서 함께 지내도록 해요.
저는 물론 언니도 반가워 할 거에요.]
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이때 심히 난처해진 양몽환은 얼굴을 붉히며 조소접을 불렀다.
[조소저. 오해마시기 바라오. 림매는 아무 생각없이 하는 말이오.]
하는 바람에 분위기는 이상 야릇하고 어색하게 되어 버리고 말았다.
사태가 이렇게 변하자 입장이 난처하게 된 양몽환은 더 그 자리에 있지 못하고
그안 절벽 밑으로 슬그머니 내려오고 말았다.
더 버티고 있기에는 너무나 얼굴이 뜨거웠다.
더구나 주약란이 의논하자는 말이 양몽환 자기와 조소접을 결혼시키려는 의도가 완연한
지금 무슨 염치로 더 머물러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슬금슬금 세 명의 여자를 피해 절벽 밑으로 내려온 양몽환은 왜 그런지 마음이 뒤숭숭했다.
절벽 밑에는 장인 이창란이 검북사의와 함께 앉아 있다가 양몽환을 맞아 주었다.
'무협지 > 풍우연귀래' 카테고리의 다른 글
31. 여심(女心) (0) | 2014.10.26 |
---|---|
30. 귀원비급에 실린 진기역연 법 (0) | 2014.10.25 |
28. 서서히 다가오는 죽음의 그림자 (0) | 2014.10.25 |
27. 진정 그대를 사랑하건만 (0) | 2014.10.25 |
26. 누구를 선택할 것인가 (0) | 2014.10.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