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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장 국운(國運) 14

오늘의 쉼터 2014. 10. 11. 11:02

제22장 국운(國運) 14

 

 

 

알천이 왕명을 받고 불려오자 여주는 어두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과인은 용춘공의 부자와 공의 부자에게 의지해온 것이 마치 새가 숲을 의지하듯 하였는데,

 

이제 왕가의 두 어른께서는 이 세상에 계시지 않으니

 

믿을 사람이라곤 공과 춘추, 두 족친뿐이오.

 

그런데 춘추는 아직도 상중(喪中)의 몸이므로 공이 나서서 동요하는 백성들을 안심시키고

 

저 흉악한 북적을 보란 듯이 물리쳐주오.

 

과인의 왕업이 실로 공의 손에 달렸소.”

여주의 수심 깊은 용안을 마주 대한 알천이 자신감에 넘치는 얼굴로 대답했다.

“전하께서는 조금도 근심하지 마십시오.

 

신이 비록 용렬하오나 어찌 고구려 군사 따위를 겁내오리까.”

그리고 알천은 이렇게 덧붙였다.

“신이 혼자 가도 모자람은 없사오나 서현공의 장자인 김유신을 함께 보내주신다면

 

한결 도움이 되겠나이다.

 

유신은 혼자서도 만군을 상대할 큰 장수입니다.”

알천의 씩씩한 기백에 여주는 크게 마음이 놓였다.


“나도 유신에 대해서는 귀가 따갑도록 들은 바가 있소.

 

다만 서현공이 아직 병부령의 자리에 있어 그 자제를 중용하지 못했을 뿐이오.”

여주는 곧 사람을 시켜 유신을 데려오도록 했다.

 

하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심부름을 갔던 자는 털레털레 혼자 돌아왔다.

“네 어찌 유신을 데려오지 않았는가?”

“유신을 찾지 못하였나이다.”

“찾지 못하다니?”

“집안 사람들이 사방으로 수소문을 해보았지만 유신의 간 곳을 아는 이가 아무도 없었습니다.”

“허허, 거 답답한 일이로고……”

“식솔들이 사방으로 흩어져 찾고 있으니 조금만 기다려보십시오.”

그러나 반나절을 기다려도 유신은 오지 않았다.

 

더군다나 사정은 다급하여 없는 사람을 무작정 기다릴 수만도 없는 형편이었다.

“유신이 아마 답답하여 멀리 출타를 한 모양이올시다.

 

신이 혼자 임무를 마치고 오겠으니 전하께서는 편히 계십시오.”

하는 수 없다고 판단한 알천은 혼자 도성의 군사 3천여 기를 거느리고 대궐을 나섰다.

그는 군장을 화려하게 치장하고 북소리와 나팔소리를 요란하게 울려대며 도성을 한바퀴 시위하였다.

 

이는 말할 것도 없이 동요하는 백성들을 안심시키기 위한 행군이었다.

 

알천의 군대는 북향하 는 도중에도 백성들의 동요가 심한 주군을 만나면 반드시 들러 군사들의

 

위용을 과시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시일이 지체되었다.

알천은 동요하는 주군이 예상보다 많은 것을 알고 편장으로 데려간 김품석(金品釋)을 불러 말했다.

“너는 도성에서 예까지 해온 대로 군사를 이끌고 행군을 계속하라.

 

나는 먼저 칠중성으로 달려가 성을 구원해야겠다.”

그리고는 군사 가운데 날쌘 기병 2백 명만을 추렸다. 품석이 깜짝 놀라며,

“칠중하를 넘어온 고구려 군사가 1만에 가깝다고 합니다.

 

어찌 2백 명으로 대군을 상대하려 하십니까?”

하고 묻자 알천이 태연히 대답하기를,

“지금 중한 것은 성곽 하나를 잃고 말고가 아니라 임금과 조정을 불신하는

 

산곡간의 백성들을 안심시키는 일이다.

 

그런데 만일 많은 군사를 데려간다면 북적을 물리치더라도 백성들의 불안감은

 

사라지지 않을 게 틀림없다.

 

이번만큼은 무슨 수를 쓰더라도 반드시 적은 군사로써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금상의 왕업이 순탄해질 것이다.”
말을 마치자 곧 2백 명을 이끌고 말에 박차를 가하였다.

알천이 칠중성에 도착했을 때는 11월 초순,

 

고구려 군사가 칠중하를 건너온 지 보름이나 된 때였다.

 

그사이 성주 주평은 칠중성의 구루 다섯을 잃고 화살마저 떨어져 낭패를 겪었지만

 

변품이 보낸 원군 2천여 기와 화살 3만 개가 도착하면서 간신히 전세를 회복하여

 

여섯번째 구루를 사이에 두고 치열한 접전을 벌이는 중이었다.

 

알천은 칠중성에 도착하자

 

먼저 성곽 주변의 지형 지세를 유심히 살펴보고 나서 이렇게 말했다.

“그간 수고가 많았다.

 

주평은 내일 새벽 일찍 성민들을 거느리고 남쪽으로 빠져나가 호로하(瓠瀘河:임진강 하류)의

 

평산 숲속에 매복해 있으라.

 

날이 밝거든 그곳에서 불을 피워 밥을 지어 먹으며 성민들로 하여금 노래도 부르고

 

가끔 먼지를 일으키며 함성을 지르도록 하라.

 

나머지는 내가 다 알아서 할 것이다.”

주평은 알천이 시키는 대로 이튿날 날이 밝기 전에 여섯번째 구루를 버리고 남쪽으로 이동했다.

 

날이 밝자 알천은 여섯번째 성문을 활짝 열어제친 다음 일곱번째 구루 앞에 진채를 만들고

 

2천여 군사를 횡렬로 늘여 세웠다.

 

그리고 자신은 군사들과 얼마간의 거리를 격하고 을제가 생전에 자식처럼 아끼던

 

거로현의 애마 돗총이5)에 올라 달랑 칼 한 자루만을 꼬나 든 채 홀로 평원에 버티고 섰다.

잠시 뒤 고구려 군사들은 활짝 열린 성문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알천을 제일 먼저 발견한 사람은 선봉장을 맡았던 젊은 장수 시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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