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강안남자

845. 버려야 먹는다 (10)

오늘의 쉼터 2014. 10. 10. 13:13

845. 버려야 먹는다 (10)

 

(2266) 버려야 먹는다-19 

 

 

자강도 장평 근처의 작은 마을,

묘향산맥 북쪽에 위치한 이곳은 회천이 가까운데다 평안남도를 잇는 국도변에 위치하고 있어서

예부터 장이 발달했다.

요즘은 묘향산에서 딴 송이나 약초를 사려고 중국 상인들의 왕래가 잦았는데 이른 아침인 5시가

되었을 때부터 국도 안쪽의 공터에는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사업이 활발하군요.”

김대성이 공터 귀퉁이에 주차된 트럭 세 대를 보면서 말한다.

중국 번호판을 붙인 트럭이다.

트럭 주위에는 사람들이 들끓었는데 떠들썩했다.

중국 상인들은 조선족이다.

그들이 싣고 온 중국산 옷과 신발, 가전제품을 구경하는 사람들 사이로 남루한 차림의 아이들이

서성대고 있다.

김대성이 뒤쪽 트럭 옆에 벌여놓은 상품 중에서 휴대폰 하나를 집어들었다.

그때 조선족 사내가 말했다.

“어이, 동무, 함부로 만지지 말라우. 고장 난단 말이야.”

40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사내는 혈색이 좋았고 배가 나왔다.

6월인데도 아침 날씨가 쌀쌀했기 때문인지 유명 상표가 붙은 오리털 파카를 입었다.

그 순간 옆에 선 강영만이 눈썹을 치켜올렸지만 김대성은 잠자코 휴대폰을 내려놓는다.

김대성은 색이 바랜 검정 인민복 차림이었는데 소매가 짧았고 바지는 길어서 걷어올렸다.

영락없는 가난한 인민 형색이다.

강영만과 조철봉도 허름한 인민복 차림이었으니 휴대폰을 살 형편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이거 얼맙니까?”

하고 김대성이 이번에는 손목시계 한 개를 집어들고 조선족 사내에게 묻는다.

그러자 옆쪽에 있던 다른 조선족 사내가 다가오면서 대답했다.

“달러로 30불, 30미터 방수야.”

“조선돈 안받습니까?”

김대성이 묻자 주위 사람들의 시선이 모아졌고 조선족 사내는 입만 쩍 벌리면서 소리 없이 웃는다.

“남조선 돈은 받지. 조선돈은 안돼.”

“왜 안됩니까?”

“허, 이 동무가 지금….”

조선족 사내가 눈을 치켜떴을 때 옆으로 사내 하나가 다가와 섰다.

“동무, 집이 어디야?”

사내가 김대성에게 묻는다.

 

30대 중반쯤의 사내는 점퍼 차림이었는데 바지는 줄이 섰고 새 구두를 신었다.

 

시선을 받은 김대성이 되레 묻는다.

“동무는 누구십니까?”

“난 보위부에 있어.”

사내의 말투가 거칠어지자 앞에 서있던 조선족이 빙긋 웃는다.

“데려가서 말씀하시라우요, 박 동무.”

그러자 사내가 손을 뻗어 김대성의 팔을 쥐었다.

“잠깐 나하고 같이 가자우.”

“어디를 말입니까?”

김대성이 태연스러운 표정으로 묻자 사내의 눈썹이 치켜올라갔다.

“이 동무가 안되겠군, 따라와.”

“내가 무슨 잘못을 했습니까?”

“따라오지 않을 거야?”

사내가 목소리를 높이자 둘러선 사람들이 슬슬 물러갔다.

 

그것을 본 조선족 사내 둘이 다가와 서더니 말한다.

“박 동무, 이 자식 손 좀 봐주시라우.

 

이 자식이 우리 장사를 망치려고 하는 것 같구만, 그래.”

“자, 가자. 혼나기 전에 따라와.”

하고 사내가 거칠게 김대성의 팔을 잡아 끌었다.

 

그때 조철봉은 옆에 선 강영만이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웃는 것을 보았다.

 

어느새 주위에는 호위군관 10여명이 몰려와 있다.

 

모두 사복 차림이었는데 눈에서 불길이 뻗어나오는 것 같았다. 

 

 

(2267) 버려야 먹는다-20

 

 

김대성의 팔을 움켜쥔 보위대원이 공터 모퉁이를 돈 순간 발을 멈췄다.

옆으로 다가온 사내가 어깨를 잡았기 때문이다.

다음 순간 배에 격렬한 타격을 받은 보위대원은 허리를 기역자로 꺾으면서 위 안에 남아있던

위액까지 모조리 토해 내었다.

털썩 무릎을 꿇은 보위대원의 귀에 사내의 굵은 목소리가 울린다.

“이놈을 데려가서 자백을 받아.”

그러자 김대성이 몸을 돌려 뒤쪽에 서 있는 조철봉에게 묻는다.

“중국 상인들의 뒤를 보위대가 봐주고 있겠지요?”

“아마 그런 것 같습니다.”

끌려가는 보위대원의 뒷모습을 보면서 조철봉이 말을 잇는다.

“서로 상부상조하는 거죠.”

“남조선에서도 이런 일 많다면서요?”

다시 김대성이 물었으므로 조철봉은 쓴웃음을 짓는다.

“그럼요. 남조선은 다 파헤쳐지니까요.”

조금 꼬인 말이었지만 김대성은 그냥 넘어갔다.

길가의 바위에 걸터앉아 기다리던 김대성 앞으로 강영만이 돌아왔을 때는

보위대원을 데려간 지 20분쯤이 지난 후였다.

“놈은 조선족 상인의 뒤를 봐주는 대가로 한 번 올 때마다 트럭 한 대당 50불씩 받았다고 합니다.”

강영만이 상기된 표정으로 김대성에게 보고했다.

“그 50불에서 보위대원 넷이 절반을 나눠 먹고 나머지 절반은 보위대장이 먹었다고 합니다.”

“그럼 오늘은 트럭이 세대니까 150불이 되겠군요.”

김대성이 손가락을 꼽아보며 계산을 한다.

“150불에서 대장이 75불, 나머지 75불을 넷으로 나누면 1인당 18불50전쯤 되나?”

그러더니 바위에서 엉덩이를 떼고 일어섰다.

“다시 트럭으로 가 보십시다.”

아직 오전 6시가 겨우 넘었을 뿐이다. 공터로 다시 들어섰을 때 장은 가장 성황을 이루고 있다.

어디서 모여들었는지 수백 명의 남녀 인민이 트럭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것이 마치 죽은 벌레에

꼬인 개미떼들 같았다.

김대성이 다시 뒤쪽 트럭으로 다가갔을 때 조선족 상인 둘이 눈을 둥그렇게 떴다.

“죄가 없어서 풀려 나왔지요.”

사내들에게 웃음 띤 얼굴로 말한 김대성이 다시 다가가 섰다.

“그런데 동무들을 조사해야 되겠다고 하는군요.”

그 순간 뒤쪽에서 호위군관 셋이 나오더니 조선족 상인들의 팔을 움켜쥐었다.

“갑시다.”

“아니, 어디로 간단 말입니까?”

하고 사내 하나가 소리쳤지만 이미 기가 꺾인 모습이었다.

사내들이 끌려 나갔으므로 뒤쪽 트럭은 주인 없는 매장이 되었다.

모여선 남녀 인민들은 이쪽 눈치를 살피면서 주춤거리며 물러서고 있다.

때 김대성이 옆에 선 조철봉을 보았다.

얼굴에 웃음기가 떠올라 있다.

“조 선생, 어떻게 하는 것이 낫겠습니까?”

“뭘 말씀입니까?”

“이 트럭에 가득 쌓인 물자 말입니다. 지금 주인 없는 물자가 되지 않았습니까?”

김대성이 눈으로 산더미처럼 진열된 물품들을 가리켰다.

“그리고 이 물자는 밀수품이지요.

불법으로 들여와 불법으로 거래되는 물품들이란 말입니다.”

그러자 조철봉이 물었다.

“김 선생은 어떻게 하고 싶으십니까?”

조철봉의 시선을 받은 김대성이 어깨를 늘어뜨리면서 길게 숨을 뱉는다.

조철봉은 초조하게 김대성의 대답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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