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8. 갈등 (4)
(2232)갈등-7
“웰컴.”
문을 연 민유미가 밝은 표정으로 말한다.
어깨의 선이 그대로 드러난 실크가운을 입었고 윤기가 흐르는 피부는 금방 샤워를 한 표시가 난다.
“좋구나.”
집안을 둘러본 조철봉이 감탄했다.
원룸 오피스텔이지만 이층형으로 평수는 40평은 되는 것 같다.
탁 트여서 더 넓게 보였고 가구와 배치가 독특했다.
계단 위쪽에 침대 하나만 덜렁 놓여진 것도 그렇다.
저고리를 벗은 조철봉이 소파에 앉았을 때 민유미가 웃음띤 얼굴로 말한다.
“내 집에 첫 남자 손님이세요, 방명록에 사인하고 가셔야 돼요.”
“그러지. 한미 공조를 위하여, 라고 쓸게.”
“우리 정치적인 대화는 그만둡시다.”
민유미가 술병의 마개를 열면서 눈을 흘겼다. 과연 위스키 30년산이다.
“알아요? 내가 좀 들떴어요.”
조철봉의 잔에 술을 따르면서 민유미가 말을 잇는다.
“아까 오신다는 전화받고 나서 말이죠.
나한테도 이런 감정이 남아 있을 줄은 몰랐어요.”
“참 한국말 잘해.”
먼저 칭찬부터 한 조철봉이 한모금 위스키를 삼키고는 심호흡을 했다.
그러자 위스키 향이 코로 뿜어져 나오면서 맡아진다.
조철봉이 눈을 좁혀뜨고 민유미를 보았다.
“화술도 좋고 분위기 리드도 뛰어나. 참 멋진 여자야, 민유미씨는.”
“오늘 왜 이러세요? 부끄럽게.”
위스키를 삼킨 민유미가 조철봉을 보았다.
눈밑이 붉은 것은 달아올랐기 때문일 것이다.
술 기운이 아니다.
민유미의 시선을 받은 조철봉이 웃음띤 얼굴로 묻는다.
“나, 여기서 자고 가도 되겠지?”
“그럼요. 근데 사모님한테는 알리바이 잘 만들어서 연락하셨겠죠.”
“그럼, 어디 한두 번인가?”
“긴장돼요.”
“그렇게 보이지는 않는데 그래?”
그러면서 한모금 술을 삼킨 조철봉이 소파에서 일어섰다.
“침대로 갈까?”
“씻고 오세요.”
따라 일어선 민유미가 상기된 얼굴로 웃는다.
“전 씻었으니까 기다리고 있을게요.”
그러더니 조철봉의 앞으로 다가와 두 팔로 허리를 감아 안는다.
예상하지 못한 행동이었으므로 조철봉이 주춤했을 때
민유미가 몸을 딱 붙이더니 머리를 들었다.
그러고는 눈을 감고 말한다.
“키스해 줘요.”
조철봉은 민유미의 꽃잎같은 입술을 빨았다.
타액의 신맛이 느껴졌고 코는 상큼한 레몬향을 맡는다.
민유미의 혀가 빠져나와 조철봉의 입안을 조심스럽게 헤집고 다녔다.
벌린 입에서 뱉어지는 숨소리가 점점 가빠지고 있다.
이윽고 조철봉이 머리를 들더니 민유미에게 말했다.
“모두 벗고 기다려.”
홀랑이라고 말하려다가 못 알아들을까 봐 모두라고 말한 것이다.
민유미가 초점이 잡히지 않은 눈으로 조철봉을 보았다.
아직도 하반신을 딱 붙이고 있어서 민유미는 단단한 철봉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알았어요.”
민유미가 뜨거운 숨을 뱉으면서 말했다.
그러더니 철봉이 붙여진 하반신을 문지르듯 비벼대었다.
“나, 몸이 뜨거워졌어요.”
조철봉은 민유미의 어깨를 잡고 몸을 떼어내었다.
같이 비벼대었다가는 한국남자 망신당할 염려가 있다.
(2233)갈등-8
그 시간 북창동에 위치한 국정원의 안가 사무실 소파에 세 사내가 둘러앉아 있었다.
벽에 걸린 시계가 밤 10시 반을 가리키는 중이었는데 세 사내의 표정은 진지했다.
세 사내는 청와대 비서관 한영기와 국정원 정보실장 이강준,
그리고 한 시간 전에 조철봉과 헤어진 대한자동차의 이윤덕 사장이다.
먼저 이강준이 입을 열었다.
“이번에 조 사장이 평양에서 북한군 실세를 만난 건 아주 고무적인 현상이죠.
앞으로 개성공단의 임차지 결정은 위원장의 결심에 따라 결정되겠지만
조 사장의 배후 지원이 절실합니다.”
그러고는 이강준이 눈을 번들거리면서 빙그레 웃는다.
“조 사장이 로비 자금으로 1억불을 받고 나서 놀랐겠지요?”
“예, 놀라더군요.”
이윤덕이 웃지도 않고 대답하더니 손끝으로 이마의 땀을 닦는 시늉을 했다.
“개성공단을 임차지로 요구할 줄은 몰랐던 것 같습니다.”
오늘 저녁은 이윤덕이 각본대로 움직인 것이다.
이윤덕이 로비자금 1억불이 안전하다고 한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대한자동차가 국익을 위한 일이라고 해도 제 마음대로 로비자금 1억불을 만들어 쓴다면 큰일 난다.
요즘 세상에서는 안 된다. 그때 이번에는 한영기가 말했다.
“당분간 정부가 배후에서 돕고 있다는 눈치는 조 사장한테도 보이지 않는 것이 낫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당연하지요.”
이강준이 커다랗게 머리를 끄덕이며 동의한다.
“조 사장이 북측에다 말을 하지 않는다고 해도 눈치를 챌 테니까요.
그럼 당장 거부반응을 나타낼 겁니다.”
“그런데.”
하고 이윤덕이 나섰다. 둘의 시선을 받은 이윤덕이 조심스럽게 묻는다.
“물론 그 자금은 저희들이 정부와 정상적으로 회계 처리를 하겠지만 말입니다.”
침을 삼킨 이윤덕이 말을 잇는다.
“저기, 조 사장이 그 자금을 어떻게, 개인적으로….”
“횡령하면 어떻게 하겠느냔 말씀이죠?”
불쑥 한영기가 말을 끊더니 먼저 심호흡부터 하고 나서 대답한다.
“할 수 없지요, 뭐. 개성공장을 대한자동차 공장 부지로 임차받는다면
1억불 다 먹어도 수지맞는 장사 아닙니까?”
“그, 그렇지요.”
당황한 이윤덕이 맞장구를 쳤을 때 이강준이 말했다.
“조 사장이 떡고물을 좋아하지만 떡고물부터 챙기는 스타일은 아닙니다.”
“아아. 예.”
이윤덕이 다시 손끝으로 이마의 땀을 닦았을 때 이강준이 말을 이었다.
“내가 그 양반 전력을 알지만 일이 안 되면 떡고물은 한 푼도 안 먹을 겁니다.”
“저도 좀 압니다.”
하고 한영기가 맞장구를 쳤을 때 이강준이 손목시계를 보는 시늉을 했다.
그러더니 이윤덕에게 말한다.
“어쨌든 오늘 수고하셨습니다.
이제부터 개성공단 임차지 획득 전쟁이 시작되겠군요.”
“그렇죠. 그렇게만 되면 남북관계는 지난번 정상회담에 이어서
연타석 홈런을 날리는 셈이 되지요.”
자리에서 일어선 한영기가 말을 잇더니 이윤덕의 표정을 보고는 물었다.
“조 사장, 오늘 1억불 받고 나서 들뜨셨겠구먼. 그래서 이차도 안 가신 걸까요?”
“아뇨, 지금 이차하고 있습니다.”
이강준이 정색하고 대신 대답한다.
“그 양반이 그냥 집에 가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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