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강안남자

757. 결단(9)

오늘의 쉼터 2014. 10. 9. 11:01

757. 결단(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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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통일을 반대하는 한민족이 있겠는가?

 

방법이 문제일 뿐이다. 같은 말, 같은 조상을 가진 배달민족,

 

단군의 자손이 남북으로 나뉜 지 어언 60여년, 부모형제가 갈라져 소식도 듣지 못한 채

 

대부분 늙어 죽었다. 분단은 비극이다.

 

옛적, 신라, 고구려, 백제로 3국이 6백여년간 갈라져 살던 적이 있었다.

 

그러다 신라로 통일이 된 후부터 대륙 쪽 국경만 변경되었을 뿐으로 한반도는

 

지금까지 나누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조철봉의 사고는 단순하다.

아마 대부분의 대한민국 국민과 비슷한 통일관일 것이다. 통일은 되어야 한다.

 

그래서 내가 낸 세금에서 얼마쯤 떼어 남북통일을 위한 각종 자금으로 쓰는 건 이해하겠다.

 

그리고 그건 정치권이나 시민단체가 하는 일이니까 알 수도 없고 알아도 머리만 아프다.

 

그런데 자꾸 분위기를 바꾸려고 하지 말라.

왜 남북한 축구 경기를, 그것도 한국에서 축구경기를 하는데 태극기를 흔들지 못하게 하느냐?

 

그 꼭 개뼉다구같이 생긴 한반도기를 흔들어야만 하느냐?

 

남북한이 올림픽에 같이 입장하는 모습을 연출한다고 한국 선수단 5백명을

 

북한의 1백명에게 맞춰 각각 1백명씩으로 제한했다.

 

그 바람에 한국의 선수 4백명이 그 영광스러운 입장식에 참석하지 못했다.

 

아마 북한은 선수단의 주방 보조까지 다 입장식에 나갔을 것이고 한국 선수단은

 

정예 선수까지 뺐을 것이다.

정상적으로, 공평하게, 국력에 맞춰 남북한 협상을 하라는 것이다.

 

도대체 한국이 북한에 무슨 죄를 지어서 이렇게 당하고만 있는가?

 

그것이 조철봉에게는 의문이었고 가끔 화가 나기도 했다.

 

그런데 막상 북한 당국자, 이른바 실세들을 만난 후에 조철봉의 의식이 조금 변했다.

 

약간 눈을 감아주는 현상이 일어났다.

떨어져서 보던 때하고 입장이 달라진 것이다.

 

이해했기 때문이 아니다.

 

적응한 것이다.

 

정직하게 말하면 물이 들었다.

 

내 개인에게는 득이 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나한테 득이라면 나 하나쯤은 빠져도 될 것이었다.

 

그날 밤 8시, 조철봉의 별장에서 국정원장 김광준과 통전부장 양성택의 회담이 열렸다.

 

양측 두 명씩 간부들을 대동하고 여섯이 모인 회의였는데 조철봉은 빠졌다.

 

회담은 이층에서 열렸으므로 조철봉은 아래층에서 김경준과 둘이 술을 마셨다.

“오늘 밤 회의가 역사에 남을지도 모르겠다.”

술잔을 쥔 조철봉이 혼잣소리처럼 말했다.

 

시간은 9시 반, 회담은 한 시간 반째 계속되고 있다.

“내가 의원직 사퇴한다고 했더니 펄펄 뛰더구만.”

한 모금에 술을 삼킨 조철봉이 쓴웃음을 짓는다. 그러자 김경준이 정색했다.

“격변기입니다. 의원님.”

“둘이 있을 때는 쉬운 말로 해.”

“변화가 심한 시기입니다. 의원님.”

“그런 것 같군.”

“의원님은 지금 이 변화의 중심에 서 계십니다.”

“내가 만든 게 아닌데 이렇게 되었어.”

그러자 김경준이 세차게 머리를 저었다.

 

정색했고 눈까지 치켜뜨고 있다.

“아닙니다. 저절로, 우연히 그렇게 되는 일은 단 하나도 없습니다.

 

다 원인이 있고 인연이 이어졌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입니다.”

“운이 아니라고 주장한 셈이군.”

쓴웃음을 지은 조철봉이 말하자 김경준은 똑바로 시선을 주었다.

“의원님, 기다려 주시지요. 보좌관으로서 제가 충심으로 말씀드립니다.

 

결단은 조금만 더 미뤄 주십시오.”

진심이 얼굴에서 우러난다. 다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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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오후, 조철봉은 김경준과 함께 서울로 돌아왔다.

“웬일이야? 좀 더 놀고 오지.”

현관으로 들어선 조철봉에게 이은지가 웃음 띤 얼굴로 말한다.

 

영일이도 이제는 제법 의젓하게 반긴다.

“일이 일찍 끝나서.”

동문서답을 했지만 이은지는 더이상 묻지 않았고 조철봉도 자연스럽게 화제를 돌렸다.

 

일본에서의 사건이 께름칙했기 때문이다.

 

조철봉이 씻고 응접실로 나왔을 때 이은지는 과일을 깎아놓고 소파에 앉아 기다리고 있었다.

 

저녁 8시 반이다. 영일은 방에 들어갔고 어머니는 제주도 여행 중이었다.

 

어머니는 60대 여행 카페에 가입해서 한달에 평균 20일은 밖에서 산다.

 

요즘은 사진에 취미가 붙어서 슈퍼에 갈 때도 엄청나게 큰 사진기를 목에 걸고 나간다는 것이다.

 

좋은 현상이다.

 

이은지한테도 좋고 어머니 건강에도 좋지만 돈이 받쳐 줘야만 한다.

“의원직을 그만두려고 했더니 여기저기서 만류하는데.”

불쑥 조철봉이 말하자 이은지가 포크로 사과를 찍어 건네면서 웃었다.

“왜? 마음대로 여자 못 만나서 싫어?”

“그게 아니라.”

“이유는 뭔데?”

이은지의 표정은 차분했다.

 

조금도 동요하지 않았으므로 조철봉은 맥이 풀렸다.

“나하고 맞지 않는 것 같단 말야. 도무지 어울리지가 않아.”

“그럼 사업가가 어울려?”

그러더니 사과를 한 입 베어물면서 풀석 웃는다.

“내가 보기엔 당신은 사업가보다 정치인이 어울려.”

“기가 막히는군.”

입맛을 다신 조철봉이 이은지를 노려보았다.

 

씹던 것을 삼킨 이은지가 말을 잇는다.

“정치인이 되고 나서 조금 정직해진 것 같아. 사업할 때는 순 사기꾼 같았어.”

“이 여자가.”

“그래도 당신 존경했었으니까 걱정마.”

“내가 정직해졌다니 무슨 말야?”

“느낌이야.”

그러더니 이은지가 똑바로 조철봉을 보았다.

“정치인이 된 목적이 봉사하겠다는 것이었지? 번 돈을 국가에 투자하겠다고 했지?”

“그, 그랬던가?”

“했어?”

“아직.”

“나하고 우리 식구가 살 돈만 남겨놓고 투자해. 어서.”

“그, 그야.”

“그러고나서 그만두든지 말든지 하라고.”

“술 먹었니?”

“미쳤어?”

그때 조철봉이 사과를 입에 넣다가 빗나가 포크로 입술을 찔렀다.

 

그것을 이은지가 눈을 가늘게 뜨고 보았다.

“피가 나.”

“됐어.”

“당신은 어떤 자리에도 어울리는 사람이야. 그것이 신기해.”

휴지를 집어 조철봉의 입술을 눌러주면서 이은지가 정색하고 말한다.

“자꾸만 커져 가는 것 같아. 나는 그것이 자랑스럽기도 하다니깐.”

“지금도 피 나?”

“그쳤어.”

휴지를 조그맣게 떼어 입술 끝에 붙여준 이은지가 말을 잇는다.

“계속해봐.

 

난 뭔지 모르지만 당신 주변에 무슨 변화가 일어나는 것 같아.

 

그것을 한번 당신 뜻대로 받아들여 봐.”

조철봉은 심호흡을 한다.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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