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강안남자

728. 외도(4)

오늘의 쉼터 2014. 10. 9. 09:58

728. 외도(4)

 

(2037)외도-7

 

 

그날 밤, 12시가 다 되어 들어갔는데도 이은지는 소파에 앉아 TV를 보는 중이었다.

 

조철봉이 현금만 수백억대의 재산가인데다 잘나가는 국회의원이 되어 있는 지금도 이은지는

 

초등학교 교원이다.

 

제 말로 천직이라니 그런 줄 알고 내버려 두었지만 하나도 키우기 힘든 아이들 수십명에

 

둘러싸여 종일을 보내는 이은지가 답답하게 느껴진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

“저녁 먹었어요?”

저고리를 받으며 묻는 이은지의 얼굴은 평온했다.

 

거의 언제나 이렇다.

 

조철봉은 지금까지 이은지가 화를 내거나 하다못해 짜증을 내는 것도 못 보았다.

 

이은지를 떠올리면 웃음 띤 얼굴만 나온다.

“아, 먹었어.”

조철봉이 집안을 둘러보는 시늉을 하자 이은지가 말했다.

“영일이는 공부하다 자고 어머니한테서는 저녁때 이스탄불에서 전화왔어요.

 

여행 재미있으시다고.”

이스탄불은 말만 들었지 조철봉도 가보지 못한 곳이다.

 

어머니는 지금 20일 예정으로 지중해 여행을 다니고 있다.

 

조철봉이 욕실에서 씻고 나왔을 때 이은지는 탁자에 시원하게 보이는

 

식혜 그릇을 내려놓고 기다리는 중이었다.

“이성문이 알지? 그놈 만나서 술 마셨어.”

소파에 앉은 조철봉이 말하자 이은지는 머리만 끄덕였다.

 

이성문은 작년에 지나는 길이라면서 일요일에 조철봉의 집을 찾아온 적이 있다.

 

포도를 다섯 박스나 가져왔는데 맛이 없어서 모조리 포도주를 담갔기 때문에

 

더 기억하게 된 것이다.

 

지금도 포도주가 그대로 있다. 식혜를 한모금 삼킨 조철봉이 말을 이었다.

“그놈이 외도를 하다가 와이프한테 들켜서 말이야. 현장에서 잡혔다는데.”

조철봉이 힐끗 이은지의 눈치를 보았다.

 

샤워를 하면서 문득 생각이 났던 것이다.

 

도무지 이은지는 외도에 대해서 어떤 반응을 보일지가 궁금했다.

 

만일의 경우에 대비하려는 의도도 있다.

 

그러자 이은지가 웃음 띤 얼굴로 묻는다.

“현장? 그럼 여관방으로 쳐들어갔어요?”

“아니, 모텔의 주차장에서 기다리고 있더래.

 

그놈 차 앞에서. 여자하고 같이 일 끝내고 주차장으로 나왔다가 기절초풍을 한 거지.”

“그랬겠네.”

“여자는 삼십육계를 놓고 그놈은 개백정한테 끌려가는 똥개처럼 차에 와이프를 태우고 나왔대.”

“그래서요?”

이은지가 물었지만 별로 흥미를 느끼지 않는 표정이어서 조철봉의 어깨가 늘어졌다.

 

조철봉이 말을 잇는다.

“싹싹 빌었다는 거야. 잘못했다고, 두 번 다시 안 하겠다고.”

“용서해주었대요?”

“아직 풀리지 않았나봐. 열흘 되었다는데 지금도 각방 쓰고 밥도 안 차려준대.”

“그럼 다 끝났네 뭐.”

“끝나다니? 뭐가?”

“그냥 넘어간 것이라고요.”

리모컨으로 TV 채널을 돌리면서 이은지가 말을 잇는다.

“그 사람, 좀 부주의하지 않아요? 그런 일, 현장에서 발각이나 되고.”

“그, 그런가?”

“남자가 칠칠맞게 쓴 포도를 다섯 박스나 가져온 걸 보면 알 만해.”

“자식이 좀 멍청해.”

“유유상종이란 말이 있죠.”

그 순간 간이 철렁 식도로 떨어지는 것 같았으므로 조철봉은 숨을 멈춰야 했다.

 

옛날에는 우유상종이라고 했지만 지금은 뜻까지 다 안다.

 

유유상종. 도둑놈은 도둑놈끼리 뭉친다는 말, 그때 이은지가 말한다.

“자기, 나한테서 무슨 말을 듣고 싶죠?” 

 

 

(2038)외도-8

 

 

 

“무슨 말이라니?”

정색한 조철봉이 묻자 이은지가 눈을 가늘게 뜨고 웃는다.

“내 반응을 듣고 싶은 거 아녜요?”

“그럴 리가.”

했다가 조철봉은 곧 입맛을 다셨다. 유유상종할 때부터 감이 잡혔다.

 

제대로 된 사내라면 제 친구 험담을 와이프 앞에서 하지 않는다.

 

바로 제 얼굴에 침을 뱉는 꼴이기 때문이다.

 

그것을 알 만한 지능의 조철봉이 이성문의 외도를 털어 놓았으니

 

이은지가 그렇게 묻는 건 당연했다.

 

쓴웃음을 지은 조철봉이 입을 열었다.

 

그대로 털어 놓을 수는 없다.

“내가 이성문이한테 그랬어.

 

 내 마누라 같았다면 당장에 이혼당했을 것이라고 했지.

 

그랬더니 그놈은 당신은 다른 스타일이라는 거야.”

“어떻게요?”

“제 마누라처럼 모텔 주차장까지 쫓아오는 스타일이 아니라는 거지.”

“하긴.”

다시 웃은 이은지가 조철봉을 똑바로 보았다.

“당신은 어떻게 생각했는데요?”

“모르겠어.”

팔짱을 낀 조철봉이 천천히 머리를 젓는다.

“그런 일은 생각해본 적도 없으니까. 당신을 그렇게 난처한 입장에 빠뜨리지는 않을 거야.”

“당해보지 않았으니까 나도 자신할 수는 없지만.”

이은지도 팔짱을 끼고 소파에 등을 붙였다.

 

한쪽 다리를 꼬아 얹었으므로 가운 사이로 허벅지 안쪽이 드러났다.

“주차장 차앞에서 만나는 드라마틱한 장면을 연출할 것 같지는 않네요.”

“이성문이가 잘 보았군.”

입을 꾹 다문 조철봉의 콧구멍이 벌름거렸다.

 

그때 이은지가 말을 잇는다.

“외도는 병이래요. 그런 말 들어본 적 있어요?”

“병이라고?”

“본능이네 뭐네 하지만 정신병과도 관계가 좀 있다네요.”

“으음.”

말은 뱉지 않았지만 조철봉의 눈앞에 또 정신과 교수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다 귀에 붙이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같은 이야기, 듣다보면 다 정신병자다.

 

그러나 이은지의 시선을 받은 조철봉이 머리를 끄덕였다.

 

여기서 나서면 안 된다. 꼬리만 잡힐 뿐이다.

 

그때 이은지가 말을 이었다.

“여자 문제를 집안까지 끌고 들어오지는 마세요. 아셨죠? 그것만 주의하세요.”

“응? 그게 무슨 말야?”

다 들었으면서 조철봉은 눈을 크게 뜨고 묻는다.

 

그러자 이은지가 쓴웃음을 지었다.

“당신은 한 여자한테 집착하는 성품이 아녜요. 내가 잘 알아.”

“나한테는 당신뿐이야.”

“여자들이 당신하고 섹스를 하고 나서 귀찮게 따라다니지 않아요?”

“그런 적 없어.”

대번에 부인했다가 조철봉이 덧붙였다.

“내가 누구하고 섹스를 했다고 그래?”

“어쨌든.”

이제는 정색한 이은지가 조철봉을 본다.

“당신이 날 사랑하고 있는 건 알아요.”

“그럼, 그렇고 말고.”

했다가 갑자기 목이 메었으므로 조철봉이 심호흡을 한다.

 

그러자 갑자기 행복감이 밀려왔다.

 

가슴이 뻐근해지면서 몸이 붕 뜨는 것 같은 느낌,

 

입에서는 저절로 노래가 흘러나올 것 같다.

 

그때 이은지가 다시 말을 잇는다.

“나도 당신을 사랑하고, 그러니까 서로 믿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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