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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9. 거인 탄생(7)

오늘의 쉼터 2014. 10. 9. 09:52

719. 거인 탄생(7)

 

(2020)거인 탄생-13

 

 

열을 받은 조철봉이 이제는 정면으로 위원장을 본다.

“이런 일을 하실 수 있는 분은 위원장님뿐입니다.

 

누가 할 수 있겠습니까? 아무도 없습니다.”

“…….”

“지금부터 시작해도 늦지 않습니다.

 

그러면 그 백만 인민군이 실업자가 되는 걸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것입니다.”

“…….”

“잘 먹고 잘살면 되는 것 아닙니까?

 

먹고살기 힘들면 불평불만이 일어나더구먼요.

 

물론 한국에는 일 않고 불평만 해대는 놈들이 있지만 북한에서는

 

그런 놈들이 견디겠습니까?

 

그러니까 여건이 더 좋은 것이지요.”

“알았네.”

마침내 위원장이 한손을 들어 보였으므로 조철봉은 입을 다문다.

 

워원장의 얼굴에는 웃음기가 떠올라 있다.

“그래서 지금까지 그렇게 시행을 하지 않았던 내가 이상하게 보였나?”

위원장이 묻자 조철봉은 침을 삼키고 대답한다.

“예, 그렇습니다.”

“왜 그랬을 것 같은가?”

다시 한번 침을 끌어 모아 삼킨 조철봉이 대답했다.

“만일 바깥세상을 알게 된 인민들이 지금까지 속은 것에 대한 분노를 터뜨릴 것 같아서

 

그랬다고 생각했습니다.”

“…….”

“하지만 그 반대의 경우도 있을 겁니다.

 

개방되어서 잘살게 되면 고맙게 생각하지 않겠습니까?”

조철봉도 기업을 경영한 경험이 있었으므로 부하 직원에 대한 통제 기술은 약간 아는 편이다.

 

그것에 대해서는 책을 읽었을 뿐만 아니라 스스로 연구도 했으며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에게 맞는 관리 스타일도 개발했다.

 

조철봉의 관리 스타일은 간단하다.

 

직책에 맞는 일을 한다는 것이다.

 

사장은 사장 일이 있고 부장은 부장 직위에 맞는 일이 있는 법이다.

 

과장 때 하청업체에서 상납받던 놈이 부장이 되었을 때도 하청업체에다 손을 내민다면

 

그놈은 과장 밥그릇을 빼앗는 놈이다.

 

부장이라면 더 큰 리베이트를 스스로 개발해서 받아내야 할 것이다.

 

그때 위원장이 입을 열었다.

“내가 권력을 빼앗길까봐 개방을 망설이고 있었다고 생각했군?”

“예.”

대답은 했지만 감히 마주 볼 수는 없었으므로 조철봉은 이미 식은 해장국 그릇을 보았다.

 

오늘도 찬은 조촐하다.

 

젓갈류에다 겉절이 등 네 가지뿐이다.

 

위원장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잘 알았네. 고맙네, 조 의원.”

“제가 실례가….”

“아냐”

정색한 위원장이 머리를 젓는다.

“내가 기회를 만들 테니까 나한테 자주 이야기해주게.”

그러고는 길게 숨을 뱉는다.

“그래, 내 책임이야. 내가 해야 할 일들이지.”

그러면서 위원장이 다시 수저를 들었다가 벨을 누른다.

 

그러자 2초도 되지 않아서 문이 열리더니 아가씨가 들어섰다.

 

단정한 용모, 양장 차림의 날씬한 몸매를 본 순간 조철봉의 목구멍이 좁혀졌고 코가 메었다.

 

위원장이 아가씨에게 말한다.

“해장국이 식었어.”

“네, 장군님.”

구슬이 굴러가는 것 같은 목소리, 조철봉은 입 안에 고인 침을 삼켰다.

 

그때 아가씨의 뒷모습을 눈으로 가리키며 위원장이 묻는다.

 

“아름답지 않은가?”

 

귀신 같다. 

 

(2021)거인 탄생-14

 

 

조철봉이 숙소인 초대소로 돌아왔을 때는 오후 2시가 다 되었다.

 

해장국으로 아침겸 점심 식사를 마치고 나서 위원장과 차까지 마시고 돌아왔기 때문이다.

“잘 되셨습니까?”

응접실로 들어선 조철봉에게 최갑중이 대표로 묻는다.

 

옆에 선 김경문과 비서관 박동일까지 초조한 표정으로 조철봉의 입을 보았다.

“응, 잘 되었어.”

소파에 앉은 조철봉은 셋이 앞쪽에 나란히 앉기까지 기다린 후에 다시 말을 잇는다.

“오후 5시에 위원장께서 답장을 보내주시기로 했어.

 

우린 그 답장을 받고 바로 떠나면 되는 거야.”

“아, 그럼 됐습니다.”

김경문이 정색하고 말한다.

 

두 눈이 반짝이고 있다.

“그 내용이 무엇이건 의원님은 대통령 밀사로서 역할을 다 하신 겁니다.”

“그렇지.”

최갑중도 머리를 끄덕이며 동의한다.

“이런 일은 우리 의원님 아니면 아무도 못할 테니까.”

“5시에 답장을 가져온 통전부장하고 공항으로 가기로 했으니까 준비하고 있도록.”

생기있는 표정으로 말한 조철봉이 팔목시계를 보는 시늉을 했다.

“난 그동안 별관에서 만날 사람이 있어.”

조철봉이 자리에서 일어서자

 

최갑중이 뭔가 말을 하려는 듯 입을 열었다가 도로 닫는다.

 

별관은 본관에서 50미터쯤 위쪽의 단층 건물로 삼면이 숲으로 둘러싸였다.

 

조철봉이 다가가자 현관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여직원이 머리를 숙여 인사를 했다.

“응접실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머리만 끄덕인 조철봉이 현관 안으로 들어서자

 

응접실 소파에 앉아 있던 여자가 일어선다.

“아.”

여자를 본 조철봉의 입에서 저도 모르게 탄성이 뱉어졌다.

 

오전에 위원장과 해장국을 먹을 때 시중을 들었던 아가씨였던 것이다.

 

크림색 투피스 양장 차림의 아가씨가 조철봉의 시선을 받더니

 

수줍은 듯 희미하게 웃는다.

“지시를 받고 왔습니다.”

구슬이 굴러가는 것 같은 목소리.

 

조철봉은 다시 목구멍이 좁혀지는 느낌을 받는다.

 

이번에는 눈앞도 흐려졌다.

 

위원장은 조철봉의 표정을 보더니 아름답지 않으냐고 물었었다.

 

조철봉은 웃기만 했지만 남자들의 보는 눈은 거의 다 같다.

 

헤어질 때 양성택은 별관에서 만나실 사람이 있다고만 말해줬기 때문에

 

이 여자가 기다리고 있을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앞쪽 소파에 앉은 조철봉이 아직도 서있는 여자에게 말한다.

“앉아요.”

여자가 조심스럽게 자리에 앉는다.

 

반질반질한 무릎이 눈앞에 펼쳐졌고 무릎 위 스커트에 가지런히 놓여진 손이 매끈하다.

 

붉은기가 도는 손톱도 갸름했고 끝이 잘 다듬어졌을 뿐인 천연 손톱이다.

 

그때 여자가 시선을 들더니 조철봉에게 말했다.

“전 이혜정이라고 합니다.

 

삼화여대에서 영어통역 과정을 졸업했고 일본 교토대학에서도 2년 공부를 했습니다.

 

그래서 영어와 일어 통역사 자격증이 있습니다.”

조철봉의 시선을 받은 이혜정이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말을 잇는다.

“그리고 전 남조선 주민증을 가진 남조선 국민입니다.”

그러더니 희미하게 눈웃음을 친다.

“제 신분은 확실합니다.

 

귀국하시면 제가 찾아 뵙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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