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6. 거인 탄생(4)
(2014)거인 탄생-7
이번 방문은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밀행이다.
그러나 국가정보원이나 통일부 그리고 대통령실은 다 알고 있는 비밀,
입법부 쪽에는 이번에 여당 대표가 된 안상호와 정책위의장 이대동 둘한테만
청와대에서 귀띔을 해준 것 같았다.
그래서 조철봉은 김경준과 최갑중, 비서관 박동일까지 셋을 대동하고 베이징을 거쳐
고려항공편으로 평양에 들어갔다.
평양 순안공항에는 통전부장 양성택이 마중 나와 있었는데 표정이 밝았다.
“어서 오시오. 돌아 오시느라고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조철봉의 손을 잡으며 양성택이 활짝 웃는다.
“장군님께서도 기다리고 계십니다.”
“아이고, 저를.”
하면서 조철봉도 따라 웃는다.
친북 반미 세력이 이끌었던 지난 정권 때에도 납북자, 국군포로가 송환되지 않았다가
정권이 바뀌고 나서 터뜨려진 것에 대해 의견이 분분했다.
교수들이 오만가지 이유를 길게 늘어놓았지만 어려운 말은 듣기도 싫어하는
조철봉이 읽을 리가 없다.
다만 한 가지, 시기가 되었다는 것,
아무리 억지를 써도 시기는 앞당길 수도 늦출 수도 없는 법이다.
즉 인력으로 안되는 일인 것이다.
다시 말하면 운이다.
기적 같은 운이 아니라 때가 맞아 들어갔다는 말이다.
그래서 대통령은 말할 것도 없고 장관 자리에도 운이 필요하다.
인물, 실력 따져서 시험쳐 뽑는다면 되겠는가?
그래서 하늘이 낸 인물이라는 말도 있는 것이다.
평양 시내로 들어오는 차 안에 양성택과 조철봉이 나란히 앉아 있다.
차는 그야말로 쏜살같이 달린다.
길은 비었고 차는 벤츠다.
“장군님 인기가 좋습니다.”
하고 먼저 조철봉이 덕담을 꺼냈다.
여론조사기관 세곳에서 공동으로 조사한 결과가 어제 석간 신문에 나왔다.
호감이 가는 세계 지도자 중 한 사람으로 북한의 국방위원장이 뽑힌 것이다.
역사 속 인물도 포함시켰기 때문에 1위는 세종대왕, 2위는 이순신, 3위는 칭기즈칸 등이었지만
위원장은 당당히 한국 대통령을 제치고 12위를 차지했다.
모두 이번에 납북자, 국군포로를 통 크게 송환시켜준 영향일 것이다.
한국 국민들은 잘 잊는다.
특히 요즘 젊은 세대들 중 6·25가 무슨 날인지 모르는 인간도 있다.
“나도 읽었습니다.”
웃음 띤 얼굴로 양성택이 조철봉을 본다.
“우리 장군님께서 12위, 그런데 그쪽 대통령님은 23위가 되셨더만요.”
“억지로 집어넣어서 23위가 된 거죠.”
“하하, 그렇습니까?”
입을 쩍 벌리고 웃은 양성택이 묻는다.
“대통령님, 화가 나시지는 않았을까요?”
“우리 대통령은 그런 거 신경쓰지 않으십니다.
그거 금방금방 변하거든요.”
“하지만 남측 정치인들은 굉장히 신경을 쓰는 것 같던데.”
“자신없는 인간들이나 그렇지….”
“조의원님은 자신 있으신 모양이오?”
“저야 양부장님이나 장군님께서 밀어주시니까 끄떡없죠.”
그러자 다시 소리 없이 웃고 난 양성택이 정색했다.
“조의원님 이번에 처신 아주 잘하셨던데요.
장군님께서 칭찬하셨습니다.”
“예? 고맙습니다.”
긴장한 조철봉의 머릿속에 신영선의 모습이 떠오른다.
젖가슴은 작은 편이었지만 아직도 단단한 몸 그리고 그 뜨거운 샘,
그때 양성택의 목소리가 다시 귀를 울렸다.
“장군님께서는 조의원님을 많이 의지하고 계십니다.”
조철봉은 다시 자신의 이용가치를 생각해본다.
(2015)거인 탄생-8
조철봉이 비례대표 국회의원이 되려고 작심했던 이유는 단 한가지.
쉽게 표현하면 더럽게 모은 재산을 사회에 돌려주고 싶다는 것이었다.
물론 그 방법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지 않았다.
조철봉의 성품에 비춰보면 왼손이 하는 선행은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는 식은 어울리지 않는다.
생색도 좀 내는 것이 맞을 것이다.
그런 조철봉이었으니 만치 갑자기 이런 상황이 되리라고는 전혀 예상 밖이었다.
그러나 다른 욕심이 없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요컨대 제 자신을 아는 것이다. 조철봉은 그것을 북한의 국방위원장뿐만 아니라
한국 대통령도 안다고 믿는다.
만일 자신이 어떤 정치적 욕심이 있다면 이렇게 전개되지는 않았을 것이었다.
그날 저녁, 8시 정각이 되었을 때 주석궁 소연회실에 앉아 있던 조철봉은 자리에서 일어선다.
안으로 국방위원장이 들어섰기 때문이다.
위원장은 통전부장 양성택, 그리고 노동당 상임위 부위원장 김동남을 대동하고 있다.
“여어, 조 의원.”
위원장이 정색한 얼굴로 다가오더니 손을 내밀었다.
조철봉은 위원장의 안경알 안쪽 시선이 따뜻하다는 것을 느낄 수가 있다.
눈빛은 속일 수가 없다.
웃는 얼굴을 만들어도 눈이 번들거리는 인간이 있다.
그 웃음은 당연히 어색하게 보이는데 거짓이기 때문이다.
진심이 아닌 것이다.
따라서 조철봉은 상대방의 웃는 얼굴로 믿을 만한 인간인지를 판단해왔는데 거의가 맞았다.
웃는 얼굴이 좋은 인간은 믿어도 되었고 그 당사자의 인생도 좋았기 때문이다.
원탁에 넷이 자리잡고 앉았을 때 한정식 요리가 나왔다.
한국에서는 위원장이 곰발바닥 요리나 제비집 따위의 한끼에 몇백만원짜리
진수성찬을 먹는다고 비난한 글도 보았지만 식탁 위의 요리는 소박했다.
된장찌개에 고등어구이, 생선초밥이 큰 접시에 담겼고 겉절이 김치에 술 안주로
육회가 있을 뿐이다.
한정식의 원조 전주 시내에서 먹는 5000원짜리 백반보다도 빈약한 차림이다.
전주 백반은 최소한 반찬 가짓수가 20개가 넘는 것이다.
오늘도 도우미 아가씨 셋이 돌아가며 시중을 들었는데 미인이다.
조철봉은 앞에서 어른거리는 여자한테 정신이 팔려서 된장찌개 그릇에 젓가락을 넣기까지 했다.
술은 한국에서 들여온 소주였다.
슈퍼에서 대중없이 팔아서 900원도 되었다가 1400원도 되는 소주.
그 소주잔을 들고 위원장이 말했다.
“자, 북남화해의 시대를 위해 건배.”
“건배!”
김동남과 양성택이 기운찬 목소리로 건배를 외쳤고 조철봉도 따랐다.
한 모금에 술을 삼킨 위원장이 조철봉을 본다.
“이봐, 조 의원. 기득권 세력이란 말 알지?”
“예?”
했다가 조철봉은 먼저 입안에 고인 침을 삼킨다.
안다, 가진자, 정확하게 풀이하면 먼저 가진자들,
한국에서는 보수우익을 비난할 때 쓰던 말이었다.
“예, 압니다.”
조철봉이 말하자 도우미가 따라준 술잔을 다시 든 위원장이 정색했다.
그러나 눈빛은 여전히 부드럽다.
“기득권 세력은 남조선에만 있는 게 아냐. 이곳 북조선에도 있다네.”
김동남과 양성택은 먹는 시늉만 하면서 긴장하고 있다.
그때 위원장의 말이 이어진다.
“이번 출국자와 군귀순자 송환에서도 북조선 내부에서 상당한 반발이 있었어,
무슨 말인지 알겠는가?”
위원장이 심호흡을 하고 나서 말을 잇는다.
“북남이 가까워지면 가진 것을 뺏길까봐 불안해하는 세력이 이곳에도 있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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