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강안남자

(705)존경을 받다(5)

오늘의 쉼터 2014. 10. 8. 16:11

(705)존경을 받다(5)

 

 

(1992)존경을 받다-9 

 

 

“저, 왕궁에서 만났잖아요.”

김민정의 시선을 받은 조철봉의 가슴이 더 내려갔다.

 

온몸이 방바닥에 끌려 들어가는 느낌이 온다.

 

예상대로였다.

 

왕궁은 이른바 물좋은 카바레로 주 고객층은 30대에서 40대,

 

다른 클럽이 망했다 성하기를 반복했지만 30년 가깝게 꾸준히 명성을 유지해왔다.

 

조철봉은 왕궁 10년 단골이며 그곳에서 겪은 여자가 줄잡아 300명은 될 것이다.

 

그 300명 중에 김민정이 포함되었다는 말인데 기억하고 있다면

 

어떤 특별한 이벤트가 있었어야 했다.

“미안해.”

마침내 조철봉이 사과부터 했지만 진심은 아니었다.

 

이제 슬슬 짜증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잊고 있던 여자가 난데없이 나타나 저를 기억 못하느냐고 나무라는 것만큼 황당한 일도 드물다.

 

죄를 지었거나 특별한 인연이 있었다면 모를까 그냥 스쳐 지난 사인데 그런다면 짜증 안 낼

 

인간이 있겠는가?

 

그때 김민정이 풀석 웃었다.

“미안하긴요? 저한테 잘못하신 거 없어요. 오히려 제가 고맙다는 인사를 드려야 돼요.”

“그, 그래?”

“국회의원 되셨다는 걸 듣고 얼마나 좋아했다구요.”

“고마워.”

“그리고 요즘 활동하시는 것도 다 알고 있어요.”

조철봉은 이제 머리만 끄덕인다.

 

말하는 투로 보면 자긴 잔 것 같다.

 

아마 막힌 굴뚝을 뚫어 놓은 것처럼 개운했을 것이다.

 

그래서 고맙다는 인사를 드린다고 했겠지.

 

그런데 이렇게 기억이 안 난단 말인가?

 

조철봉의 시선이 김민정의 가슴께로 옮아갔다.

 

그러고는 옷을 뚫고 그 속의 알몸을 보려는 것처럼 눈빛이 강해졌다.

 

그때 김민정이 손바닥으로 조철봉의 시선이 닿은 가슴을 덮는다.

“의원님. 그때 의원님이 그냥 가신 것 기억나세요?”

“그냥 가다니?”

다시 이성문의 와이담에 다른 넷이 왁자하게 웃었고 둘의 대화가 계속된다.

 

조철봉의 시선을 받은 김민정의 얼굴에 옅게 웃음기가 띠어졌다.

“저하고 제 친구가 의원님 일행하고 넷이 왕궁의 궁에 있었죠.”

“그래서?”

조철봉은 입안에 고인 침을 삼킨다.

 

룸으로 넷이 들어갔다면 98% 이상은 다 된 상황이다.

 

김민정의 말이 이어졌다.

“그때 의원님이 절 안으셨는데 제가 싫다고 했죠.

 

그랬더니 선뜻 손을 떼시더라구요. 미안하다고 사과하시면서요.”

“…….”

“실은 그때 저도 달아올라 있었거든요.

 

싫다고 한 건 그냥 제스처였어요.

 

그런데도 의원님은 물러나시더라구요.”

“그랬나?”

“그러고는 차비하라면서 돈까지 주셨어요.

 

거금이였죠. 50만원이나 주셨으니까.”

“…….”

“그 당시엔 실업자로 돈이 궁했거든요?

 

그 돈으로 다음날 반찬 사고 쌀 사면서 울었어요.”

조철봉은 외면했다.

 

그래도 기억이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황을 들으니 자신이 한 짓은 맞는 것 같다.

 

다 자신의 스타일이다.

 

아무리 방에 둘이 있었다지만 여자가 싫다면 그만둔다.

 

특히 좋은데도 겉으로는 앙큼을 떨었다면 절대로 손은 안댄다.

 

역겹기 때문이다.

 

그리고 용돈 줬다는 것도 그랬을 것 같다.

 

얼른 내보내려고 차비를 주었을 것이다.

 

그때 김민정이 웃음띤 얼굴로 말한다.

“오늘은 솔직하게 표현해 드릴게요.”

 

 

 

 

(1993)존경을 받다-10

 

 

 

한 시간쯤이 지났을 때 눈치 빠른 이성문이 일행을 몰고 먼저 방을 나갔으므로

 

조철봉과 김민정이 남았다.

 

밤 9시경, 아직 시간이 많다.

 

이 시간에 이 지경까지 이르렀으면 일은 성사가 다 되었다고 봐도 될 것이다.

 

그러나 조철봉은 그리 기쁜 표정이 아니었고 속셈도 그렇다.

 

전에 김민정을 만났을 때와 형편이 달라진 이유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아직 찜찜한 부분도 있다.

 

김민정의 말을 들으니 본인의 작태가 분명하긴 한데

 

기억의 한 모서리도 남아 있지 않은 것이 그렇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다.

 

보아하니 김민정 정도의 용모에 몸매면 목구멍이 좁혀질 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다.

 

그런데도 아무런 흔적이 없다니.

 

그때 옆에 앉아 있던 김민정이 입을 연다.

 

둘이 되고 나서 10초쯤 지났는데도 조철봉이 일부러 입을 열지 않았던 것이다.

 

이런 상황이면 가슴이 답답했겠지.

“그때하곤 상황이 달라지셨죠? 이해해요.”

조철봉의 시선을 받은 김민정이 흰 이를 드러내며 소리없이 웃는다.

“공직자이고 유명인사가 되셨으니까요.”

“뭘 이해한단 말야?”

뻔히 알면서도 되묻자 김민정이 이제는 눈웃음을 친다.

“그거요.”

“그거라니?”

“섹스.”

“그럼 공직자는 섹스 못하나?”

“하지만 알려지면 비난을 받던데요. 뭐.”

그러더니 덧붙인다.

“불편하시죠?”

“좀 그래.”

“제가 풀어 드릴까요?”

“아니.”

가볍게 말을 자른 조철봉이 정색하고 김민정을 본다.

“내가 좀 밝혀, 그건 알고 있지?”

“왕궁 웨이터들한테서 들었어요.”

“어떤 때려 죽일 놈들이.”

했다가 조철봉은 입맛을 다신다.

 

카바레 드나드는 놈이 웨이터 속일 생각은 안하는 게 낫다.

 

그야말로 부처님 손바닥 위의 손오공 신세가 되는 것이다.

 

그때 김민정이 말을 이었다.

“우연히 제 친구 애인인 이 사장님이 의원님하고 친구 사이라는 걸 듣고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요.

 

 정말 세상이 좁다는 것이 실감나더군요.”

“…….”

“그래요. 오늘 모임은 제가 친구를 꾀어서 의원님을 불러낸 거죠.”

“…….”

“실망하셨어요?”

하고 김민정이 정색했으므로 조철봉은 머리를 저었다.

“그렇지 않아.”

“아직도 망설여져요?”

“맞아.”

머리를 끄덕인 조철봉이 지그시 김민정을 본다.

“좀 찝찝해.”

길게 숨을 뱉은 조철봉이 말을 잇는다.

“난 찝찝하면 안 해. 내 예감이지.

 

그게 맞는지 틀렸는지 알 수 없지만 여자하고는 내 예감대로 움직였지.”

“…….”

“미안해, 호의를 나쁘게 받아들였는지도 모르겠군.”

“괜찮아요.”

쓴웃음을 지은 김민정이 마시다 만 소주잔을 든다.

 

옆얼굴의 선이 부드럽다.

“그때도 비슷한 말씀을 하신 것 같았어요.

 

속마음과 다른 말을 뱉는 것이 버릇이 된 여자라고 하셨죠.”

그러고는 옆 얼굴이 웃는다.

“네 그곳은 흠뻑 젖어있는데 싫단다고.”

맞다, 이제야 기억이 난다. 젖은 그곳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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