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강안남자

703)존경을 받다(3)

오늘의 쉼터 2014. 10. 8. 16:09

703)존경을 받다(3)

 

 

(1988)존경을 받다-5

 

 

 

 

그러나 조철봉이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존경할 만한 인물을 찾은 결과는 별 무소득이었다.

 

김경준은 1백명 가까운 동서양의 인물을 소개서와 함께 가져왔는데 아무도 조철봉의 마음에

 

들지 않았다.

 

문지영한테 들은 다섯명도 마찬가지였으며, 아데나워는 독일 총리였다.

 

가만 있었던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아이젠하워를 줄인 이름이냐고 물었다면 개망신을 당할 뻔했다.

 

공부는 하루아침에 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만 뼈저리게 느껴지는 나날이었다.

 

평소에 책을 읽고 신문 사설이라도 좀 읽어 두었어야 했는데 사건기사나 보고 그 중에서

 

치정사건만 애독해온 결과가 이렇다.

“이 집입니다.”

하고 김경준이 말했으므로 조철봉은 생각에서 깨어난다.

 

그들은 지금 봉천동 좁은 골목길 안의 허름한 철제 대문 앞에 서있다.

 

골목은 두 사람이 나란히 걸을 수도 없을 만큼 좁았는데 더러운 개 한 마리가 우두커니

 

그들을 보고 서 있을 뿐 통행인도 없다.

“할아버지, 계십니까?”

하면서 김경준이 열린 대문을 밀치고 안으로 들어선다.

 

따라 들어선 조철봉은 한 평도 안 되는 마당에 가득 쌓인 폐품을 보았다.

 

신문지 더미와 빈 병, 쇳조각 등이 따로 모아져 있었지만 정연했다.

 

그때 앞쪽 문이 열리더니 노인 한 명이 나왔다.

 

머리는 온통 백발이었고 흰 셔츠에 회색 바지를 입었는데 낡았지만 깨끗했다.

“안녕하십니까. 어르신, 여기 조 의원님이 오셨습니다.”

김경준이 소개하자 조철봉은 머리를 숙여 인사를 한다.

“조철봉입니다.”

“아이구, 잘 오셨습니다. 이렇게 누추한 곳에 의원님을 모셔서 죄송합니다.”

노인도 정중하게 답례를 한다.

 

둘은 노인의 안내로 방에 들어가 앉았는데 한 평쯤 되는 방안도 정결했다.

 

구석에 놓인 밥상에 책 서너권과 펜, 종이가 가지런히 놓여 있을 뿐 TV도 없다.

“이거, 마실 것도 변변치 못해서….”

하면서 노인이 방바닥에 음료수 캔과 종이컵 두 개를 내려놓았다.

 

노인 몫은 없다.

 

조철봉은 사양하다가 음료수를 따른 종이컵을 든다.

 

노인의 이름은 한상우, 83세, 가족은 없으며 6·25때 월남한 후에 지금까지 혼자 살았다.

 

그동안 철물상을 경영하여 수백억원의 재산을 모았다가 작년에 전 재산을 탈북자 구호재단에

 

기부하고 나서 이곳으로 옮아온 것이다.

 

숨은 것이나 마찬가지여서 김경준이 심부름센터를 동원해서 겨우 찾아냈다.

 

그러나 노인은 아무도 만나지 않는다고 했다가 상대방이 요즘 납북자와 전쟁포로를 데려오게

 

만든 조철봉이라는 것을 듣더니 겨우 승낙을 한 것이다.

“제가 어르신 이야기를 우연히 듣고 나서 꼭 뵙고 싶었습니다.”

조철봉이 먼저 입을 연다.

 

그렇다. 이산가족연합회에 갔다가 우연히 한상우 노인의 이야기를 들은 것이다.

 

전 재산을 기부하고 어디론가 종적을 감춰서 아무도 찾아내지 못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조철봉의 호기심이 발동했다.

 

마침 존경할 만한 인물을 찾다가 막 포기하려던 참이기도 했다.

 

노인의 시선을 받은 조철봉이 말을 잇는다.

“저기, 60년 가깝게 남한에서 혼자 사셨다고 들었는데, 혹시….”

정색한 조철봉이 노인을 똑바로 본다.

“북한에 가족이 있으십니까?”

“있지요.”

서슴없이 노인이 대답했으므로 옆에 앉은 김경준이 침을 삼키는 소리를 냈다.

 

그런데 왜 재산을 미리 내놓았을까?

 

 

 

(1989)존경을 받다-6

 

 

“그러면.”

조철봉이 호흡을 정돈하고 나서 묻는다.

“지금 살아 계시는지요?”

“그렇더군요.”

남의 이야기처럼 대답했으므로 조철봉은 긴장했다.

“제가 듣기로 작년에 300억 가까운 재산을 재단에 기부하셨던데요.

 

이건 제 기준으로 생각해서 말씀드리는 겁니다만.”

조철봉이 조심스럽게 말을 잇는다.

“저 같으면 그 재산을 이북에 살아 있는 가족을 위해 좀 남겨 둘 겁니다.

 

그런데 어르신께서는 왜.”

그러자 노인이 빙그레 웃는다.

 

주름 투성이의 얼굴이 웃자 하회탈처럼 되었다.

 

보기 좋은 웃음이다.

 

노인이 입을 열었다.

“내 가족이 살아 있다는 게 확인된 것이 4년쯤 전이었습니다.”

“아아.”

“제가 스물네 살 때 처와 한 살이 된 아들을 남겨 놓고 월남했으니까요.

 

그런데 3년 전에 손을 써서 찾아보았더니 제 처는 재혼을 해서 아이를 넷 낳았습디다.”

“아아.”

다시 감탄사를 뱉은 조철봉이 작게 헛기침을 했다.

 

많이도 낳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재혼이야 어쩔 수 없다고 해도 넷까지 낳을 필요야 있겠는가 하는 불만도 생겼다.

 

다 이심전심, 남자 마음은 비슷하다.

 

그때 노인의 말이 이어졌다.

“3년 전부터 그쪽에서 만나자고 하더구만요. 특히 아들놈이 말입니다.”

“아아.”

“그래서 3년 전에 이산가족 상봉에서 만났지요. 아들놈하고 처를 말씀입니다.”

“아아, 예.”

“처는 펑펑 울더만요. 아들놈은 저한테 큰절을 하고, 둘다 고생을 많이 한 것 같습디다.

 

손이 내 손보다 더 거칠었으니까.”

“아아, 예”

“그런데 말씀입니다.”

“예, 말씀하시지요.”

“나한테 말끝마다 위대한 지도자 동지 덕분에 이렇게 잘살고 만나게 되었다고 하더란 말입니다.”

“예, 그거야.”

“그래서 아들놈한테 그랬지요. 너, 그런 말좀 그만 하라고.”

조철봉은 이제 침만 삼켰고 노인의 말이 이어진다.

“그랬더니 그놈이 뭐라는지 아십니까?

 

위대한 지도자 동지 덕분에 자기가 이렇게 살아 있고 아버지를 만나게 되었다는 겁니다.”

“…….”

“그순간 가슴이 꽉 막히데요.

 

그말이 맞은 겁니다.

 

난 그놈하고 한 살 때 헤어져서 해준 게 아무 것도 없거든요.”

“…….”

“그래서 그놈 얼굴을 가만히 보니까 내 아들 같지가 않아요.

 

무슨 말인고 하니 도무지 정이 붙지가 않더란 말입니다.

 

내 유전자는 섞였겠지만 말이요.”

“…….”

“생각했을 때하고 막상 만나고 나니까 마음이 달라져요. 남들은 어떤지 모르지만.”

그러더니 노인이 길게 숨을 뱉는다.

“그때 만나고 돌아와서 나는 내 인생을 정리하기로 했던 겁니다.

 

솔직히 내가 남한에서 가정도 만들지 않고 혼자 악착같이 재산을 모은 것은 북에 남겨놓은

 

내 처자식을 만나겠다는 꿈이 있었기 ?芝?潔鄕熾?

 

그런데 현실은 달랐습니다.

 

너무 세월이 흘렀고 너무 변했어요.”

“…….”

“다른 사람은 어쩐지 몰라도 난 이제 북에 둔 인연하고 끝났습니다.”

노인이 외면한 채 말했을 때 조철봉은 길게 숨을 뱉는다.

 

다 이런 건 아니지만 이해는 간다.

 

 세월이 너무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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