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강안남자

(704)존경을 받다(4)

오늘의 쉼터 2014. 10. 8. 16:10

(704)존경을 받다(4)

 

 

(1990)존경을 받다-7 

 

 

돌아오는 차 안에서 김경준이 불쑥 말한다.

“의원님이 만드시지요.”

조철봉이 머리를 들고 김경준을 본다.

“뭘 말야?”

“찾지 말고 만드시는 것이 나을 것 같습니다.”

그러고는 김경준이 덧붙인다.

“의원님이 그렇게 되시는 겁니다.”

그렇게 되시라는 것은 조철봉 스스로 존경받는 인물이 되라는 말이었다.

 

쓴웃음을 지은 조철봉이 의자에 등을 붙인다.

“글쎄, 도둑질도 배운 것이 있어야 한다고 뭘 알아야 내가 그렇게 될 것 아닌가?”

조철봉이 길게 숨을 뱉는다.

“모범이 될 만한 인간이 있을 텐데 말야.”

“제가 보기에는 없습니다.”

정색한 김경준이 말을 잇는다.

“마음을 비우신다면 의원님은 가장 가능성이 많은 분이십니다.”

창밖으로 시선을 돌린 조철봉이 다시 숨을 뱉는다.

 

듣고보니 맞는 말이기도 했다.

 

존경받는 정치인이 되겠다면서 누구를 찍어서 답안지 베끼는 것처럼 복사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환경도, 성품도 같을 리가 없는 마당에 웃음거리가 될지도 모른다.

 

조철봉은 저도 모르게 입맛을 다신다.

어떻든간에 정치인으로 마음에 와닿는 인물이 한 사람도 없단 말이냐?

 

조금 전에 만난 한상우 노인은 전 재산을 사회에 헌납한 면에서는 존경할 만했다.

 

피땀 흘려 재산을 모은 일대기도 눈물겨웠다.

 

처자식을 그리며 50여년을 독신으로 보낸 그 의지도 감동적이었다.

 

오히려 이름도 알려지지 않는 일반 시민중에 존경할 만한 인물이 더 많은 것 같다.

 

이윽고 머리를 든 조철봉이 김경준을 보았다.

“마음을 비우라고 했는데 욕심을 말한 건가?”

“그렇습니다.”

김경준이 부드러운 시선으로 조철봉을 본다.

“의원님이 지금처럼만 하신다면 가능성이 있습니다.”

“아부하는 거 아냐?”

“아닙니다. 모르는 건 솔직히 물어보시고, 뭔가 기여하려고 애쓰시고,

 

겸손하신 그 자세를 보고 말씀드리는 겁니다.”

조철봉은 심호흡을 한다.

 

낯이 조금 간지러웠지만 맞는 말이다.

 

그렇게 해왔다.

 

그랬더니 난데없이 북한에서 띄워주었다.

 

그러나 그날 저녁 7시에 조철봉이 대영호텔 지하 한정식당의 별실로 들어선 순간

 

조철봉은 꿈에서 깨어난 느낌을 받는다.

“야, 어서와.”

하고 반기는 이성문. 조철봉의 고교 동창이자 자수성가한 사업가로 전혀 부담없는

 

오입 친구이기도 한 인물이다.

“어이구, 형.”

하면서 자리에서 일어선 인물은 김태원. 역시 조철봉의 고교 1년 후배로 고시에 합격한 후

 

검사 생활을 하다가 지금은 잘나가는 변호사가 되었다.

 

역시 조철봉의 오랜 오입 친구. 몇년 전에는 김태원이 찜해놓은 룸살롱 아가씨를 조철봉이

 

먼저 가로채는 바람에 한 1년 만나지 않았던 때도 있다.

 

한정식집인데도 방에는 여자가 셋 있다.

 

모두 양장 차림에 30대쯤인데 한눈에 봐도 시중드는 여자가 아니다.

 

그러나 모두 미인이다.

 

조철봉은 숨을 들이켰다.

 

여자들이 있다는 말은 듣지 못했기 때문이다.

“자, 내가 소개하지. 이분이 그 잘나가는 조철봉 의원이시고.”

이성문이 먼저 조철봉을 소개하더니 손으로 여자들을 가리킨다.

“이분들은 조 의원 팬이신데. 자, 인사들 하시죠.”

그러자 먼저 왼쪽 여자가 인사를 한다.

“네. 저는 김민정입니다. 반갑습니다.”


 

 

(1991)존경을 받다-8

 

 

김민정과 나머지 두여자 장아무개와 신머시기는 모두 고교 동창이면서 이혼녀 그룹이다.

 

요즘은 이혼녀가 하도 많아서 신기하지도 않지만 조철봉에게는 지금도 그 소리가

 

‘미성년자 입장가’멘트를 듣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오늘은 이성문의 애인인 장아무개가 친구인 둘을 데려온 셈이었는데 조철봉의 파트너로

 

김민정이 예약되어 있었다.

 

빈 조철봉의 자리 옆에 김민정이 앉아 있었던 것이다.

 

전주식 한정식상은 그야말로 세계 제일이다.

 

어느 곳도 따라올 수 없다.

 

그런데 대영호텔 한정식당은 그대로 전주식 메뉴를 재현해 내놓았다.

 

찬 가짓수만 많다고 좋은 게 아니다.

 

그 찬 하나하나가 맛이 뛰어나야 인정을 받는다.

 

눈요깃감이나 전시용으로 어설프게 늘어놓으면 바로 그 다음날 망하게 되어 있다.

 

식사에 곁들여 소주를 두어잔 마셨을 때 이성문이 조철봉의 궁금증을 풀어주었다.

“내가 널 만난다는 이야기를 듣더니 김민정씨가 소개시켜달라고 한거다.”

조철봉이 머리를 끄덕였다.

 

만일 그런 내막이 없었다면 김민정은 이미 김태원의 파트너가 되어있을 것이었다.

 

남자들의 눈높이는 대개 비슷하다.

 

지금까지 조철봉은 같이 어울린 일행하고 다른 평가를 내린 적이 드물었다.

 

내가 괜찮다고 생각하면 일행도 다 그랬다.

 

지금 김민정은 김태원의 파트너 신머시기보다 두배는 더 괜찮았다.

 

김태원이 신머시기를 옆에 앉히고 억지웃음을 웃고 있는 이유가 바로 이것인 것이다.

“뭐하쇼?”

조철봉이 소주잔을 건네면서 슬쩍 물었을 때는 식사를 거의 마칠 무렵이다.

 

찬이 맛이 있는데다 이성문의 와이담이 좌중을 웃겼으므로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몇번 들은 와이담도 화자(話者)의 언변에 따라 얼마든지 신선해진다.

 

소주잔을 받은 김민정이 웃음 띤 얼굴로 대답한다.

“여행사 안내원이죠.”

“여행사?”

“네, 가이드라고도 하죠.”

“그렇군.”

머리를 끄덕인 조철봉이 관광객을 이끌고 외국 명승지를 안내하는 김민정의 모습을 떠올렸다.

 

어울린다.

 

조철봉이 다시 묻는다.

“외국에 자주 나가시겠네?”

“일년의 절반쯤은요.”

“좋겠군.”

“초등학교 2학년짜리 애가 있어요.”

김민정이 한모금 술을 삼키고는 말을 잇는다.

“친정 어머니가 키우고 계신데 걔 때문에 고민이 많아요.”

“그렇겠군.”

이성문의 와이담에 왁자한 웃음이 일어났고 둘의 이야기에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다.

 

그때 김민정이 똑바로 조철봉을 보았다.

“저 모르세요?”

“응?”

하고 되물은 조철봉이 김민정을 똑바로 보았다.

 

웃음을 띠었던 얼굴이 점점 굳어져가고 있는 것을 느꼈지만 표정을 바꾸기에는 역부족이다.

 

가슴이 세차게 뛰기 시작했다.

 

무슨 일인지 예상이 된 것이다.

 

다 업보다.

 

그동안 수많은 여자를 거친 업보가 이렇게 나타난다.

 

이윽고 조철봉이 어깨를 늘어뜨리며 말한다.

“모르겠는데.”

“그러신 것 같더라구요.”

그러고는 김민정이 흰 이를 드러내며 웃었으므로 조철봉의 긴장이 약간은 풀어진다.

 

그러나 아무리 애를 써봐도 김민정에 대한 기억은 돌아오지 않는다.

 

내가 이 여자를 벗겼단 말인가?

 

그때 김민정이 입을 열었다. 

 

 

 

'소설방 > 강안남자' 카테고리의 다른 글

(706)존경을 받다(6)  (0) 2014.10.08
(705)존경을 받다(5)  (0) 2014.10.08
703)존경을 받다(3)  (0) 2014.10.08
(702)존경을 받다(2)  (0) 2014.10.08
(701)존경을 받다(1)  (0) 2014.1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