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강안남자

(702)존경을 받다(2)

오늘의 쉼터 2014. 10. 8. 13:39

(702)존경을 받다(2)

 

 

(1986)존경을 받다-3 

 

 

 

그날밤, 조철봉은 응접실의 소파에 이은지와 나란히 앉았다.

 

벽시계는 밤 11시 반을 가리키고 있다.

집 안은 조용하다.

 

영일이는 모처럼 아버지하고 같이 있다가 제 방으로 돌아가 잔다.

 

어머니는 여전히 여행 중이다.

 

이제는 해외여행에 재미를 들인 어머니는 패키지 상품은 다 섭렵할 작정인지

 

지금 10박11일 일정으로 지중해를 돌아다니는 중이다.

 

조철봉이 머리를 돌려 이은지를 본다.

“자기는 누굴 존경해?”

“존경?”

 

눈을 크게 떴던 이은지가 피식 웃는다.

“없어.”

“없다니?”

놀란 조철봉이 정색하고 이은지를 본다.

 

의외였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교사인 이은지는 조철봉에게는 언제나 찬탄의 대상이다.

 

현명하고 사리가 분명한 데다 예의도 밝다.

 

친자식이 아닌 영일에게 엄마처럼 대해주는데 넘치지도 않고 부족하지도 않다.

 

그야말로 친엄마다.

 

그래서 영일이도 친엄마처럼 따른다.

 

오히려 조철봉이 양부 같다.

그런 이은지가 존경하는 대상이 없다니,

 

말이 안된다.

“그러지 말고 말해 봐. 세종대왕? 정조?”

“미쳤어?”

“아니, 미치다니?”

조철봉의 입이 쩍 벌어졌다.

“그게 무슨 말야? 세종대왕하고 정조가 어때서 미쳤다고 하는 거야?”

“갑자기 그러니까 그렇지. 요즘 살아가면서 누가 그런 사람들 생각하겠어?”

“아니, 존경하는 인물로….”

“글쎄, 아니라니까.”

그러더니 눈썹을 모으고는 조철봉을 본다.

 

뭔가 캐내려는 표정이다.

“무슨 일 있어?”

이은지가 묻자 조철봉은 머리를 끄덕인다.

 

이은지한테는 털어놓을 수 있다.

“내가 머릿속에 든 것이 없어서 그래.”

이은지는 눈만 크게 떴고 조철봉의 말이 이어진다.

“자주 내 이름이 언론에 나올수록 불안해져서 그래.

 

그래서 나도 존경하는 인물을 하나 맹글어놓고

 

그 사람처럼 처신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

“내가 책을 많이 읽지도 않아서 어느 놈이 어느 놈인지 알아야지.

 

얼마 전만해도 나는 대처가 남자인 줄 알았어.”

“누구?”

“대처, 영국 총리였던 여자.”

“아아.”

“그러니 누구를 알아야 존경하고 자시고를 하지.

 

누가 나한테 누굴 존경하느냐고 물어보면 어떡해?

 

자기 말대로 세종대왕이라고 했다가 고리타분하다는 소리 듣지 않겠어?”

“그게 그렇게 중요한 문제야?”

불쑥 이은지가 물었으므로 조철봉은 눈의 초점을 잡는다.

 

그러고는 이은지를 똑바로 보았다.

“응? 무슨 말야?”

“그까짓 게 뭐가 중요해?”

“그, 그럼.”

“자기가 존경을 받도록 해봐.”

“으응?”

놀란 조철봉이 머리까지 뒤로 젖히더니 숨을 멈췄다가 뱉었다.

“내, 내가 나를?”

“그래, 존경받도록 처신을 해봐.”

정색한 이은지가 말을 잇는다.

 

“자기는 정치에 욕심이 없고 뭔가 베풀려는 의욕이 있어.

 

그런 마음가짐이면 가능성이 있어.”

 

그러고는 덧붙인다.

“자기는 외유내강형이야.”

조철봉은 이 말도 얼마 전까지는 집에서 마누라를 패는 놈이 밖에서는

 

찍소리도 못한다는 뜻으로 알았었다.

 

 

 

(1987)존경을 받다-4

 

 

“그것 참.”

다음 날 아침,

 

의원회관에 출근하면서도 조철봉이 몇 번째인지도 모르게 혼잣소리를 한다.

 

운전사 겸 9급 직원인 미스터 윤이 긴장해서 백미러를 볼 정도였다.

 

어젯밤 이은지의 말은 가슴 깊숙이 새겨들었다.

 

감동한 것이다.

 

그런데 좀 시간이 지나자 어떻게 해야 존경을 받을 수 있는지가 애매했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 것이다.

 

누군가를 하나 세워 놓고 그것을 모범 답안으로 삼으려던 것이 본래의 계획이었다.

 

사무실에는 비서관 박동일과 임시 직원으로 채용한 문지영이 출근해 있었다.

 

국회가 열리지 않는 날이었으므로 두 보좌관은 모두 외부 출근이다.

 

책상에 앉은 조철봉의 앞으로 문지영이 다가와 선다.

“의원님, 이산가족 연합회에서 연락이 왔는데요.”

문지영이 메모지를 내려놓았다.

“연합회장님이 다시 연락을 하신다고 했습니다.”

머리를 끄덕인 조철봉이 문득 문지영에게 묻는다.

“문지영씨는 누구를 존경해?”

“나폴레옹요.”

문지영이 거침없이 대답했으므로 조철봉은 숨을 멈췄다.

 

나폴레옹은 안다.

 

프랑스 대통령이었다.

 

죽은 지는 꽤 되었다는 것도 안다.

 

알프스를 넘을 때 백마에 탄 채 망토가 휘날리는 멋진 그림도 본 적이 있다.

 

영국 워털루 다리 근처에서 죽었다던가 한 걸로 알고 있다.

“나폴레옹은 왜?”

조철봉이 묻자 문지영은 이번에도 금방 대답한다.

“멋있잖아요?”

“뭐가?”

“조세핀한테 보낸 편지요.”

“뭐라고 썼는데?”

“그건 잊었어요.”

그러더니 문지영이 웃음 띤 얼굴로 묻는다.

 

“의원님은 누구를 존경하세요?”

“나?”

당황했던 조철봉의 순발력이 발휘되었다.

“문지영씨가 맞춰봐, 세 번 기회를 줄 테니까 말야.”

그러고는 덧붙인다.

“내가 금일봉을 주지.”

“정말이세요?”

문지영의 두눈이 반짝였다.

 

그러고 보니 미인이다.

 

지금까지 눈여겨보지 않았는데 오늘만큼 오래 이야기 나눈 적도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한 달쯤 전에 김경준의 소개로 채용되었는데 삼화여대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현재 대학원에 재학 중이다.

 

24세. 화장기가 없는 얼굴이 밝고 몸매도 날씬하다.

 

어느덧 입안에 고인 침을 삼킨 조철봉이 머리를 끄덕인다.

“그래. 정말이야. 하지만 기회는 세 번이야.”

“너무 적어요. 다섯 번만 주세요.”

“좋아. 다섯 번이다.”

많을수록 좋았지만 조철봉은 아까운 표정을 짓는다.

 

그때 문지영이 선뜻 말한다.

“처칠요.”

“으음. 처칠.”

심각한 표정을 지은 조철봉이 문지영을 본다.

 

물론 처칠은 안다.

 

사진도 보았다.

 

커다란 시가를 물고 있었다.

 

만일 지금 그러고 돌아다닌다면 어디서든 다 쫓겨날 것이다.

“그런데 왜 내가 그양반을 존경한다고 생각하지?”

“2차대전을 승리로 이끈 정치인이잖아요? 그런데 틀렸어요?”

“나중에 말할 테니까 두 번째 말해봐.”

“아데나워요.”

“누구?”

아이젠하워 장군을 짧게 줄인 것 같다. 유식한 체 하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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